한눈으로 보아도 그는 마음 아픈 사람입니다. 선명하고 빛나는 얼굴 윤곽을 지녔는데, 금방이라도 그 선이 무너질 듯합니다. 웃고 있어도 곧 눈물이 날 것만 같습니다. 누군가 한걸음 다가가면, 놀라서 두 발자국 물러설 태세입니다. 간결한 검사를 거치니, 예상대로 결과가 나옵니다. 불안지수가 대단히 높은데다, 우울정서가 두텁게 결합된 상황입니다.


내력이 깊습니다. 기어 다닐 무렵 다락에서 굴러 떨어져 격심하게 놀란 적이 있습니다. 이 공포는 시간을 다라 흐르면 편만한 불안으로 자리 잡았습니다. 이루 다 말할 수 없는 다양한 유형의 공포와 불안이 일상의 모퉁이마다 포진하고 있습니다.


게다가 생후 1년 동안 방안에서 흡연하는 조부와 함께 살았습니다. 폐렴에 걸려 입원했습니다. 더 커서는 편도비대가 심해져 수술을 받았습니다. 수술 이후 인두咽頭 이물감에 시달렸습니다. 수시로 들이닥치는 구토 증세 때문에 외출하기가 겁날 지경이었습니다. 불안·우울과 신체증상은 이미 인과의 사슬 속에서 뒤엉켜 난치 상태에 이르렀습니다.


서양의학은 예의 그 분열적 태도로 그를 난도질했습니다. 외과의사는 수술하고, 내과의사는 발병 부위대로 약 먹이고, 정신과의사는 항불안제·항우울제를 처방했습니다. 하나가 좋아진다 싶으면 다른 하나가 안 좋아지는 일이 반복될 뿐 도무지 나아질 기미를 보이지 않았습니다. 급기야 직장생활도 불가능해져 그만두고 고향으로 내려가 한동안 쉴 수밖에 없었습니다.


집에서 쉬어도 상황은 별로 전보다 나을 것이 없었습니다. 하기야 그의 불안은 어머니에게서 수직 감염된 측면도 있고, 아버지의 일관성 없는 생활 태도가 증폭시킨 측면도 있으니 오히려 악화될 가능성이 높았던 게 사실입니다. 그는 점점 더 예민해졌습니다. 냄새, 소리, 색깔 모두가 날카로운 자극거리를 제공했습니다. 가령 영화 보다가 놀라 뛰쳐나온 영화관 의자 색깔과 KTX 의자 색깔이 같아 구토를 일으켰을 정도였습니다.


그렇지 않아도 나날이 피폐해져가는 그 앞에 큰 산 하나가 떡하니 버티고 있었습니다. 장애를 지닌 사람과 해야 할 혼인, 바로 그것이었습니다. 혼인과 그 상대방 이야기를 하기 시작하면서 그는 끝내 눈물을 보이고야 말았습니다. 당장 어머니 허락부터 시작해서 깨뜨려야 할 은산철벽만 생각하면 그저 아뜩할 따름이었습니다.


어느 날 그가 혼인 상대방과 함께 왔습니다. 선하고 맑은 인상을 지닌 사람이었습니다. 사고로 말미암은 장애는 제 눈에 그다지 문제꺼리로 보이지 않았습니다. 본인의 불편함으로 감안한다면 다른 사람의 시선 따위는 아무것도 아니라는 생각이었습니다. 정작 문제는 사고 뒤 어머니가 입힌 마음의 상처였습니다. 자신의 죄책감을 덮기 위해, 어머니는 자식의 장애를 한사코 마음으로 받아들이지 않았습니다. 자식의 장애를 대가로 받은 돈이 종자가 되어 누리는 풍요에 어머니는 병적으로 집착했습니다. 돈을 무기 삼아, 어렸을 때는 말할 것도 없고 성인이 된 뒤에도 자식의 일거수일투족을 조종하려 들었습니다. 저는 어머니와 싸우는 근본 이치, 그리고 세부적인 기술을 두 사람에게 자분자분 전수해주었습니다.


그와 그의 연인이 제법 긴 시간 동안 저와 함께 마음의 병을 치유하고 몸의 건강을 찾아가면서, 우여곡절 끝에 드디어 혼인예식을 올리게 되었습니다. 그들은 제게 주례를 요청했습니다. 저는 흔쾌히 허락했습니다. 행복하고 설레는 마음으로 기다렸습니다. 다른 혼인예식에서는 볼 수 없는 독특한 순서와 주례사를 준비했습니다.


예식에서 저는 주례가 주도하는 혼인서약과 성혼선언문 낭독 순서를 뺐습니다. ‘두 사람이 평등하게 서로에게 가 닿으며 살라.’는 의미를 담은 어질 인仁자의 그림 모양 붓글씨를 제가 부채에 써넣고, 신부신랑이 직접 거기에 서명하도록 했습니다. 하객들이 재미있어 했습니다. 주례가 주례사를 하는 동안 신부신랑은 의자에 앉아 듣도록 배려했습니다. 하객들은 술렁거렸습니다. 저는 술렁거림이 가라앉기를 기다렸다가 입을 열었습니다. (꽤나 긴 내용인데, 이 글의 주제와 관련해 도움이 될 것으로 판단해 원문을 그대로 실었습니다.)


“저는 보잘 것 없는 사람인데, 복이 아주 많았습니다. 아버지는 법적으로만 여섯 번 이혼과 재혼을 반복하셨고, 법적이지 않는 경우를 합쳐 두 손의 손가락을 꽉 채운 열 분의 어머니, 그러니까 계모를 제 앞으로 지나가게 했습니다. 이런 어머니 복에 하도 멀미가 나서 독신 선언을 하고 버티다가, 사십 다 돼서 독한(!) 여자 하나 만나 결혼을 하게 되었습니다. 물론 결혼식 때는, 아버지도 안 계셨고, 그 많던 어머니도 안 계셨습니다. 결혼을 하고 처음 맞는 설날, 아내와 함께 처가로 내려갔습니다. 저녁 식사를 마치고 처남·처제랑 부엌방에 둘러앉아 맥주 한 잔 하면서 놀고 있는데, 일을 마치신 장모님께서 들어오셨습니다. 물기가 채 가시지 않은 손으로 서랍장을 여셨습니다. 조그만 상자 하나를 꺼내들고 앉으시더니, 제 아내 이름을 부르시며 말씀하셨습니다. “결혼하고 첫 생일이 지나갔는데 선물을 못 챙겼다. 늦었지만 아나, 열어봐라.” 아내의 손에는 예쁘고 고급스러워 보이는 금팔찌가 들려 있습니다. 순간 모두는 손뼉을 치며 축하했습니다. 아내는 행복한 웃음을 지어 보였습니다. 바로 다음 순간, 제 등줄기에는 서늘한 물 한 줄기가 흘러내렸습니다. 아내의 생일 앞에는 제 생일도 있었습니다. 제게 이런 생일선물을 챙겨줄 어머니가 계시지 않는다는 사실을 익히 아시는 장모님께서, 바로 그 사위 면전에서 당신의 딸만을 챙기셨던 것입니다. 장모님을 원망하려고 이 말씀드리는 게 아닙니다. 만일 반대 경우였다면, 제 어머니도 제 아내한테 똑같이 하셨을 것입니다.


여기 하객 여러분 가운데 며느리 생일 챙기시는 시어머니, 사위 생일 챙기시는 장모가 몇 분이나 될까요? 그러면 대체 이런 일이 왜 일어나는 것일까요? 그것은 바로 우리가 결혼식장 가면 백이면 백 모든 주례가 하는 미사여구에 속아 넘어가기 때문입니다. “신랑 부모님은 며느리 하나 보았다 여기지 말고, 예쁜 딸 하나 얻었다고 생각하십시오. 신부 부모님은 사위 하나 보았다 여기지 말고, 든든한 아들 하나 얻었다고 생각하십시오.” 거기다 도장을 콱 찍도록, 이렇게 시키기까지 합니다. “자, 신랑 아버지는 딸을 안아주시기 바랍니다. 신부 어머니는 아들을 안아주시기 바랍니다.” 어떠십니까? 실제로 딸이고 아들입니까? 며느리한테 재산 물려주는 시아버지 있나요? 사위한테 재산 물려주는 장모 있나요? 재산은커녕 생일선물 한 번 안 챙겨주면서 딸은 무슨 딸, 아들은 무슨 아들? 이러지 말아야 합니다. 이렇게 스스로 속이지 말아야 합니다. 뭐가 정답입니까, 그럼? 있는 그대로 인정하고 받아들이는 겁니다. 며느리, 귀하디귀한 남의 자식입니다. 사위, 귀하디귀한 남의 자식입니다. 남의 자식 받아서 내 자식하고 함께 살게 인연 맺어주는 결혼입니다. 입양 아닙니다! 이 사실을 있는 그대로 인정할 때 도리어 며느리와 사위를 정중하게 대우하고 깊이 있게 사랑할 수 있습니다. 내 담장 안으로 며느리와 사위가 들어온 게 아닙니다. 내 담장 밖으로 며느리와 사위를 위해 아들과 딸을 내보낸 것입니다. 둘만의 담을 새로 만들어준 것입니다. 다른 일가가 창립된 사건이 바로 오늘의 사건입니다. 이렇게 생각하고 사시다보면 어느 날, 며느리는 딸이 되어 있고, 사위는 아들이 되어 있을 것입니다. 여태까지 우리는 거꾸로 생각했습니다. 그래서 많은 부부와 가정이 불행을 겪은 것입니다. 그러므로 이 순서를 정확히 기억하셔야 합니다.


머지않아 반드시 겪을 일 하나를 예로 들어 말씀드리겠습니다. 신부가 장차 아이를 낳고 젖을 먹여 키울 것입니다. 그 때 시어머니께서는 이러실 것입니다. “아이고, 우리 집 귀한 자손 아직 뽀얀 젖살이 덜 올랐구나! 잘 키워야 한다. 그러려면 몸 축가서는 안 된다. 자, 여기 보약 한 제 지어왔다.” 친정어머니께서는 이러실 것입니다. “아이고, 우리 딸 몸이 많이 축갔구나! 남의 집 귀한 손 잘 키우려면 너부터 건강해야지. 자, 여기 보약 한 제 지어왔다.” 두 분 다 아기·아기 엄마 모두 챙겼고, 보약도 지었습니다. 어떻습니까. 잘 하셨지요? 그런데 시어머니 하시는 말씀을 친정어머니가 들으셨다면, 반대로 친정어머니 하시는 말씀 시어머니가 들으셨다면 기분이 어떨까요? 왜 그럴까요? 그렇습니다. 순서가 잘못되었습니다. 시어머니가 친정어머니 말씀을, 친정어머니가 시어머니 말씀을 하셔야 하는 겁니다.


생각의 순서가, 말의 순서가 천지를 가릅니다. 이 생각과 말의 순서, 물론 신부와 신랑부터 지켜 나아가야 합니다. 결혼이란 이 세상에 나와 똑 같은 우선순위로 배려해야 할 사람이 있다는 사실을 공식적으로 인정하는 것입니다. 상대방이 나와 똑같은 우선순위를 가지고 있다는 사실을 인정하려면 평생 뼛속 깊이 새겨야 할 문장이 있습니다. 상대방은 내가 아니다. 부부는 이심이체다. 이 진실을 지키려면 평생 뼛속 깊이 새겨야 할 순서 하나가 있습니다. 살다보면 서로 싸울 일이 반드시 생깁니다. 그럴 때 “너!” 하고 시작하는 2인칭 어법을 쓰면 안 됩니다. 상대방은 내가 아니므로 상대방이 지닌 진실을 내 진실처럼 알 수 없는데, 대뜸 “너!” 하면 그게 아무리 진리라도 상대방은 즉각 돌아앉습니다. “나!” 하고 1인칭 어법으로 시작하셔야 합니다. 그러면 싸움의 90%를 웃음으로 마무리할 수 있습니다.


더 말씀 드리지 않겠습니다. (신랑 부모를 향해) 신부는 신랑 집안의 딸이 아닙니다. 신부 집안 귀한 딸로 신랑 집안 아들과 똑같은 우선순위를 지닌 배우자가 되었습니다. 예의를 갖추어 맞아주시기 바랍니다. (신랑 부모를 향해) 신랑은 신부 집안의 아들이 아닙니다. 신랑 집안 귀한 아들로 신부 집안 딸과 똑같은 우선순위를 지닌 배우자가 되었습니다. 예의를 갖추어 맞아주시기 바랍니다. (신랑을 향해) 신부는 신랑이 아닙니다. 신랑과 똑같은 우선순위를 지닌 타인입니다. 예의를 갖추어 맞아주시기 바랍니다. (신부를 향해) 신랑은 신부가 아닙니다. 신부와 똑같은 우선순위를 지닌 타인입니다. 예의를 갖추어 맞아주시기 바랍니다. 이렇게 하여 이 순간 하나의 사랑을 지닌 두 어른이 탄생하였습니다. 축하합니다.”


예식 초반에 신부신랑이 양가 부모님과 하객들께 인사 올리는 순서는 그대로 두되 종반에 다음 순서를 덧붙였습니다.


“이제 비로소 어른이 된 두 사람이 어른으로서 첫 인사를 부모님께 올리겠습니다. 아이로서 마지막 올린 인사와 정반대 순서로 하겠습니다. 두 사람 신랑 부모를 향해 돌아서십시오. 신랑 부모님께서는 일어서주시기 바랍니다. 두 사람을 어른으로 대우한다는 뜻에서, 신부와 신랑이 절을 하면 부모님께서는, 가볍게 고개를 숙여 맞절의 예를 갖추어주시기 바랍니다. 신부와 신랑 절! (신부 부모께도 이하 동문. 하객께도 이하 동문.) 인사가 끝나면 그대로 행진으로 이어질 것이니, 모두 앉지 마시고 서서 두 사람의 행진을 축하해주시기 바랍니다.”


예식이 끝났습니다. 피로연장으로 들어섰습니다. 하객 가운데 여러분이 제게 와서 인사를 건넸습니다. 그중 가장 인상적인 것은 70대 중반으로 보이는 여성이 제 손을 덥석 잡으며 한 말이었습니다. ‘healing이 되는 결혼식은 처음입니다.’ 저는 홀가분한 마음으로 바다를 내려다보며 소주잔을 가득 채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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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가 처음 찾아온 것은 자신의 심리적 문제 때문이었습니다. 아버지의 폭력은 청소년기 그의 기억 전반을 어둡게 물들이고 있었습니다. 또 하나 선명한 얼룩은, 남편과 시부모에게 학대당하던 그의 어머니가 분노를 그에게 드러내면서 퍼부었던 욕설이었습니다. 이 상처는 그에게 변형된 방어기제로 발현되었습니다. 내부에서 날뛰는 폭력성을 밖으로 내보낼 때는 놀림·깔봄·비아냥거림으로 표현했습니다. 토론에서 이겨 상대방에게 모욕 주는 상상을 되풀이하면서 날카로운 논리적 문장 따위를 암기하곤 했습니다. 그럴수록 내면의 평화는 깨지고 사회생활은 뒤틀렸습니다. 몇 차례 자살을 기도하기도 했습니다. 치료 받아야겠다는 결론을 황급히 내렸을 때, 우연히 저를 발견한 것이었습니다.


숙의를 진행하는 동안, 필요한 요법으로 기억과 격정 문제를 하나씩 해결해 나아갔습니다. 그런 부분들이 정리되면서 이야기는 원 가족에서 점차 배우자로 넘어갔습니다. 그의 배우자가 그를 대하는 방식은 그가 드러내는 방어기제와 흡사했습니다. 목소리 등 사소한 인신의 문제를 빌미로 좀 더 야비하게 조롱하는 습관이 있지만 본질이 같아 보였습니다. 아마도 그에게 배우자의 그런 측면이 병적 끌림으로 작용하였을 것입니다. 더군다나 배우자는 출신지역이나 학력 따위 문제에서 드러나는 열등감을, 변형된 공격으로 위장해 사사건건 괴롭혔습니다. 저는 배우자 이야기를 다 듣고 나서 말했습니다.


“제가 드릴 말씀이 무엇인지 아마 짐작하실 것입니다. 다만, 일방적 이야기이므로 충분한 근거로 삼을 수 없습니다. 배우자에게 기회를 주시지요. 함께 오세요.”


다음 주, 부부가 제 앞에 나타났습니다. 그에게 수 주 동안 들은 이야기를 백지로 돌리고 투명한 마음으로 배우자와 대화를 나누었습니다. 30분 남짓 이야기를 들으며, 저는 그가 말한 것보다 훨씬 더 강한 에너지 결을 배우자에게서 감지했습니다. 그것은 ‘옳지 않다.’ 문제가 아니었습니다. ‘그와 함께 두면 안 된다.’ 문제였습니다. 좀 더 분명히 말하자면, 그의 배우자에게는 천적의 에너지가 흐르고 있었습니다. 제가 저녁식사를 제안했습니다. 식사 도중, 배우자의 직속상사에게서 전화가 걸려왔습니다. 사적인 일이라 하면서도 배우자는 저와 그를 남겨두고 서둘러 자리를 떴습니다. 저는 그 뒷모습을 한참이나 바라보다가 그에게 물었습니다.


“제가 무슨 말씀 더 드려야 할까요?”


그는 조용히 고개를 저었습니다. 6개월이 채 지나지 않은 어느 날, 문이 빼꼼히 열리더니 간호사가 얼굴을 들이밀면서 ‘예약 잡지 않은 분이 무조건 뵙겠다고 하시는데 어쩌죠?’ 합니다. 제가 직감으로 느끼며 ‘괜찮다’ 하자, 말 끝나기가 무섭게 그가 활짝 웃으며 들어섰습니다. 그의 손에는 커다란 꽃다발이 들려 있었습니다.


“법원에서 오는 길입니다. 감사드려요.”


그 뒤, 그는 자신의 어머니·친구·선배를 제게 소개해, 병과 삶의 문제를 숙의하도록 했습니다. 10년 세월이 지난 지금도, 잊을 만하면 연락해옵니다. 밥도 먹고, 술도 한 잔 합니다. 물론 더 이상 이혼 이야기 따위를 입에 올리지 않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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상담 예약을 한 뒤, 다시 그에게서 전화가 걸려왔습니다. 이메일 주소를 알려달라는 내용이었습니다. 상담 가기 전에, 도움이 될 만한 자신의 이야기를 미리 적어 보내고 싶다는 취지를 전했습니다. 얼마 지나지 않아, 장문의 메일이 도착했습니다. 그는 그런 사람이었습니다.


그의 배우자는 그와 전혀 다른 사람이었습니다. 무엇보다 맥락을 고려하여 생각하고 말하고 행동할 줄 몰랐습니다. 지나치게 감정적으로 매사를 판단해 걸핏하면 사표 내고, 막말 하고, 이혼하자 달려들었습니다. 자기 신뢰가 부족해 사소한 데서 자존심을 내걸곤 했습니다. 매사 부정적이어서 불평불만을 일삼았습니다. 자주 격분에 빠져들어 조절 불가능한 상태로 날뛰었습니다. 급기야 만취된 어느 날, 귀신과 대화한다며 기괴한 광경을 연출하기까지 했습니다.


그는 인내를 가지고 여러 차례 진지한 대화를 시도했습니다. 부부상담도 받았습니다. 정신과 치료도 받았습니다. 매번 나온 결론은 이혼이었습니다. 아무런 변화도 일어나지 않았습니다. 저라고 해서 무슨 마법을 부리는 게 아니니, 뾰족 수가 있을 리 없습니다. 그를 공감·지지하는 정서를 바탕으로 해서, 다시 한 번 대화·협상의 기본 원리를 확인하고, 다른 데서는 쉽게 들어보지 못했을 법한 몇 가지 이야기를 해주었습니다. 그리스 고전 수사법. 남녀 성차를 고려한 대화법. 전체 맥락을 잡고 제압하는 대화법. 최후 발언과 문맥 차단을 통한 대화 정리법. 정신장애 요소를 지닌 성인에게 하는 아동 상대 대화법.


무엇보다 제가 그에게 재삼 강조했던 것은 맨 마지막 대화법입니다. 모든 정신장애에는 발달장애가 기본으로 깔려 있다는 정신의학적 전제에 입각한 것으로서 한 가지 원칙, 세 가지 규칙만 지키면 됩니다. 한 가지 원칙: 함께 내린 결론은 반드시 관철한다. 3가지 규칙: 2인칭 어법, 금지 어법, 두괄식 어법을 금한다. 그리고 팁: 관계에 기대게 하지 않는다. 팁의 팁: 호칭은 관계 호칭 아닌 고유명을 쓴다.


배운 대로 되는 일이 어디 있겠습니까. 쉽지 않았을 것입니다. 제법 시간이 흐른 어느 날 그에게서 연락이 왔습니다. 진심으로 반가운 소식이었습니다.


“선생님이 함께 해주신 덕분에 드디어 갈라섰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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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범함을 말할 때, 우리가 대부분 연상하는 의미는 비상함입니다. 의자醫者인 제 연상은 다릅니다. 비범하다는 말을 들으면, 어딘가 비정상이겠구나, 그러니까 아프겠구나, 생각합니다. 비대칭의 대칭이 역동적 평형을 이루는 생명 현상을 염두에 두고 판단하면, 비범하다는 것은 어딘가 치우쳤다는 것이기 때문입니다. 치우침이 곧 병입니다. 이런 이치를 이해할 수 없는 서양의학은 많은 경우, 병의 본령을 간파하지 못합니다.


거의 10년 다 돼가는 기억 하나가 문득 떠오릅니다. 어떤 작가와 우울장애 때문에 상담한 적이 있습니다. 그는 자신의 마음 상태에 대하여 누구보다 예민한 느낌을 지니고 있었습니다. 하지만 우울장애라는 병명만을 말하고 약 처방을 해줄 뿐, 어떤 양의사도 그가 지닌 우울장애의 기작과 특성을 명확히 이야기해주지 않았습니다. 그의 남다른 감수성은 이 점을 용납하기 어려웠습니다. 이리저리 길을 찾다가, 웬 변방 한의사가 우울증 상담 치료한다는 말을 듣고 찾아온 것입니다. 그는 작가답게 실팍한 묘사들을 통해 살아온 이야기와 마음의 풍경들을 이야기했습니다.


그의 최근 삶은 신산했습니다. 잘못된 결혼과 경제적 파탄에 이은 이혼까지 지옥 같은 여정이었습니다. 제2의 인생을 개척하기 위해 홀로 싸운 나날들도 혹독하였습니다. 게다가 새로운 일에서 거둔 성공은 또 다른 질곡을 몰고 왔습니다. 핍박과 송사에 휘말리면서, 그의 내면은 급격히 무너져 내렸습니다. 뜨르르한 대형병원 정신과에서 상담(?)하고 약을 먹었습니다. 이렇다 할 변화가 일어나지 않았습니다.


저는 한 시간 남짓 그의 말을 경청했습니다. 이야기를 일단 매듭지으며, 그는 맑은 눈빛으로 저를 쳐다보았습니다. 그 눈에 대고 딱 한 마디 했습니다.


“평범함의 부재!”


제 말을 듣는 순간, 그는 중심시각을 확 풀어버렸습니다. 극히 기민하게 내면으로 잠겨들었습니다. 다음 순간 그는 손뼉을 딱! 하고 쳤습니다.


“정확하시네요!”


그의 눈가에는 어느새 눈물이 그렁거리고 있었습니다. 그의 삶, 그의 사유, 그의 글, 모두가 그에게서 사라진 평범함을 그리워한다, 증언하고 있었습니다. 그는 왜 양의사들이 그 동안 이런 이야기를 해주지 않았는지 의아해했습니다. 사실, 하지 않은 것이 아니라 못한 것입니다. 서양의학에는 이런 어법이 없기 때문입니다. 엄밀하게 말하자면 이것은, 의학 너머 언어이기 때문입니다.


평범하지 못하다는 것은 평범하지 않다, 그러니까 비범하다는 것과 다릅니다. 평범하지 못하다는 것은, 평범함에 간직된 건강의 진실을 전제하고 거기에 이르지 못하였다는 뜻을 담았습니다. 평범함에 간직된 건강의 진실은 과연 무엇일까요? 그것은 양극단의 기계적 교차가 아닌, 다양한 스펙트럼의 역동적 중도中道가 끊임없이 흐르는 상태입니다. 중도의 역동성은 화쟁을 통해 이루어집니다. 화쟁은 곡진한 소통 없으면 가능하지 않습니다. 곡진한 소통은 평등을 전제합니다. 평등은 평범함에 터합니다. 평범함은 죽어도 지켜야 하는 무엇, 죽어도 버려야 하는 무엇을 지니지 않기에 언제나 변화를 받아 안는 삶의 기조입니다. 언제나 변화를 받아 안는 삶의 기조는 다름 아닌 무상無常의 진실에 대한 깨달음과 맞닿아 있습니다. 무상의 세계에서 평범하지 않은 것은 없습니다. 그 진실을 깨닫는 것이 관건입니다. 어쩌면 바로 이 깨달음만이 유일한 비범함일지 모릅니다.


그가 그런 삶을 얼마나 어떻게 구현해갈지 저는 알 수 없습니다. 그저 그를 신뢰할 따름입니다. 그는 그만큼 영특한 사람이니 말입니다. 하여, 그는 자주 제 기억을 일깨웁니다. 지금 그가 어찌 사는지, 안다고 해서 궁금증이 가실 것 같지는 않습니다. 그 이름 석 자, 인터넷 검색만 하면 근황이 쫙 뜨겠지만, 삼가는 것이, 그와 제가 지켜야 할 삶에 대한 예의가 아닐까,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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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는 저와 제 삶을 이렇게 묘사하곤 합니다. ‘지극히 평범한 사람이 비범한 조건에 휩쓸리는 바람에 평범함과 비범함 사이를 넘나들 수 있었다.’ 제가 휩쓸린 비범함은 거의 대부분 증폭된 슬픔과 아픔이었습니다. 증폭된 슬픔과 아픔이 제게 일깨운 삶의 진실은 결코 무시할 수 없는 육중한 것이었습니다. 그 육중함 때문에 잃어버린 경쾌한 평범함, 실로 무량한 아쉬움이었습니다. 그 무량한 아쉬움을 다독이며, 마음 아픈 사람들의 동무로 살고 있습니다. 저의 이런 각성과 함께 했기 때문에 경쾌한 평범함으로 복귀할 수 있었던 한 청년이 있습니다.


그는 오로지 1등으로 점철된 비범한 시간 위에 군림했습니다. 켜켜이 쟁여진 1등의 삶이 단 한 순간에 무너졌을 때, 그의 이름은 우울증이었습니다. 우울증으로 저를 찾아왔을 때, 그가 한 말은 ‘아무것도 하고 싶지 않다.’였습니다. 아무것도 하고 싶지 않은 1등이란 대체 무엇일까요? 그를 이런 황폐함으로 내몬 힘은 대체 무엇일까요?


그의 어머니가 말했습니다. ‘제가 이 아이를 이렇게 만들었습니다.’ 단순한 죄책감이 아닙니다. 그의 일거수일투족 숨결 하나하나가 어머니의 작의를 따라 빚어진 것이기 때문입니다. 결코 낯선 이야기가 아닙니다. 우리에게 아주 익숙한 풍경입니다. 똑같은 어머니들인데 딱 이 지점에서는 달리 생각합니다. ‘내 새끼는 달라.’ 자기 아이 만큼은 특별하면서도 건강하다는 근거 없는 믿음입니다. 과연 그럴까요.


여러 친족 가운데 그의 가족은 유난히 학력에서 돋보였습니다. 특히 그는 대한민국 최고 명문대, 대학원 석·박사 통합과정을 수석 입학했으니, 그에게 거는 친족의 기대는 더 말할 나위가 없었습니다. 그가 우울증으로 휴학하기 전까지 친족의 공부 판단 기준은 단연 그였습니다. 휴학 이후 그 기준은 의전 다니는 사촌에게로 넘어갔습니다. 그는 도리어 비교 대상으로 전락하고 말았습니다. 이런 세상입니다.


그와 삶다운 삶을 숙의한 2년 가까운 나날들, 지금 돌아보면 참으로 폐허에 불쑥불쑥 피어난 망초 꽃 같은 것들이었습니다. 상상해보십시오. 초로의 이단 한의사와 우울증에 던져진 젊은 수재가 허름한 변방 구석에 마주앉아 삶과 죽음을 이야기하는 풍경을 말입니다. 쓸쓸함을 넘어 어쩐지 궁상맞지 않습니까. 그렇습니다. 그래서 거기가 바로 향 맑은 평범함의 지성소였습니다.


그의 정서와 가족의 이해가 어느 정도 안정 상태로 접어들었을 때, 우리는 드디어 평범한 삶의 길을 모색해보기로 하였습니다. 어떤 사람한테는 결코 평범해 보이지 않을 수도 있는, 바로 공무원 그것이었습니다. 의외로(?) 반응이 나쁘지 않았습니다. 긴 망설임이 필요하지 않았습니다. 그는 곧 바로 시험 준비에 들어갔습니다.


수험 공부를 하면서 그림도 그렸습니다. 시간이 흘러 때가 되면 그림으로 봉사활동 하는 것이 꿈이라고 그가 말했습니다. 공유하면서도 긴장을 느끼는 삶의 태도 때문에 어머니와 이따금 부딪치기도 하지만 대체로 좋은 흐름을 탈 무렵 서서히 숙의를 마무리했습니다. 저는 그의 미래를 걱정하지 않습니다. 때때로 그가 궁금해지기는 하겠지요. 그 궁금증도 저와 그의 평범한 삶만큼이나 평범한 수준에 머무를 것이기에, 훗날 오가다 혹 만나면 반갑게 안부 묻는 기대 정도로 남겨두겠습니다.


“별일 없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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