바다의 뚜껑
요시모토 바나나 지음, 김난주 옮김 / 민음사 / 2016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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트렌드 책을 덮고 시집을 읽다 이 책이 갑자기 떠올라서 다시 펼쳤다. 영화도 봤기에 줄거리는 대략 알고 책도 분명 읽었었는데 재독하니 새롭다. 바다의 뚜껑이 노래 제목이었단 사실도 잊어버린 모양이다. 아무래도 문장에서 풍기는 감성보다는 장면 장면 남아있는 영상 때문일 수도 있겠다.

미래의 트렌드를 파악하다가 이 책이 떠오른 건 마치 짠 음식을 먹은 뒤 자연스레 오는 갈증인지도 모르겠다. 실은 세상의 변화가 나는 버겁다. 나의 성향은 빙수 가게 주인 마리와 비슷하다. 느리지만 그 속에서 재미를 찾는 삶 말이다.

마리는 초라해져만 가는 고향땅을 보며 내내 아쉬움을 느낀다. 동시에 그럼에도 어쩔 수 없다는 허탈감에 마음은 수십 번 뭉클거리며 끊어 오른다. 그런 곳에서 빙수 하나로 가게를 차린 건 잃어버린 것들과 사라져가는 것들 사이에 존재하고자 하는 마음이었을 것이다. 그 자리를 지키고 싶은.

어떠한 순간이 인생의 터닝포인트가 되어 주는 경우는 많다. 세상의 흐름에 올라타 기회를 잡고 승승장구하는 이들이 성공적인 삶의 표본처럼 보이겠지만 가끔은 마리처럼 세상의 속도에서 이탈하는 이들도 있다. 이렇다 할 것 없지만 마음에 남는 풍경을 잊지 못하는 이유 하나로. 그게 바로 행복이다.

'꿈을 이룬' 신비한 반짝거림은 분명하게 존재했다. -p.32

그런 사람들에겐 일상의 균열이 문제가 되지 않을 것이다. 마리의 뛰어난 공감 능력은 하지메의 흉터에 따스한 바람이 된다. 하지메가 있는 일상이 변화라기보다는 최대한 자연스러움이 되도록 맞춘다. 바다와 빙수가 있는 그 공간에서의 여름은 하지메에게 기적을 선물한다. 마리가 어느 곳에서 먹은 빙수처럼. 그것은 진심이라는 마법이 아닐까.

어쩌면 마리 역시 이곳에서의 삶의 단조로움보다 점점 사라져가는 것들로 인한 공허감이 걱정스러웠을지도 모른다. 그런 그녀의 일상에 하지메는 추억을 소환하여 옛 감성에 불을 지피게 해 주는 존재였다. 절대로 깨우치지 못할 감각을 다시 불러와 감성을 풍성하게 해 주었다.

사람은 사람과 함께 있어 보다 커지는 경우도 있다. -p.76

어둠은 어둠에 묻힌다. 어둠이 빛을 만나 점점 옅어지다 밝아지는 이야기를 만나서 나 또한 밝아졌다. 하지메는 돌아갔지만 그들은 친구로 남았다. 똑같은 나날의 반복 속에서 하지메는 가끔 무언가 다른 존재가 되어 줄 것이다. 마리의 말처럼 자기 주변의 모든 것에 조금은 너그러워질 수 있는 마음을 지닌다면 어쩌면 세상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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