토끼목 사축과 4
후지사와 카미야 지음 / 대원씨아이(만화) / 2020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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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판절판




<토끼목 사축과>는 우선 귀여운 그림체로 한 번 심쿵하게 만들고, 기발한 줄거리로 두 번 심쿵하게 만드는 만화다. 블랙 기업에 고용되어 사축으로 생활하는 싱글 직장인 츠다 신지로의 집에는 '일하지 않으면 죽는' 습성을 지닌 달에서 온 토끼 후와미와 모후코가 있다. 비정상적인 노동 의욕을 지닌 후와미와 모후코는 요리나 설거지 같은 평범한 일상을 전부 극한의 노동으로 바꾼다.


4권에서 츠다는 후와미와 모후코에게 자격증 공부를 해볼 것을 제안한다. 츠다는 후와미와 모후코가 다른 곳에 취업하면 이 집에서 나갈 거라고 생각해서 자격증 공부를 제안한 건데, 츠다의 기대와 달리 후와미와 모후코는 비정상적인 노동 의욕을 자격증 공부에서도 발휘해 단기간에 엄청난 학습 성과를 올린다. 급기야 현직 직장인인 츠다가 달토끼인 후와미와 모후코의 실력에 밀리는 상황이 발생한다...!


후와미와 모후코를 집에서 내쫓을 방법을 궁리하던 츠다는 같은 회사에 다니는 히메카와에게 후와미와 모후코를 소개한다. 후와미와 모후코는 히메카와가 츠다와 비슷한 타입의 고용주인 줄 알고 열심히 노동을 하지만, 히메카와는 후와미와 모후코가 그저 자신과 함께 가만히 앉아서 자신에게 응석을 부려줬으면 좋겠다고 생각한다. 귀여움 최강자 라파나가 등장하는 에피소드도 좋았다. 취향 저격이다 ㅎㅎㅎ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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쿵후보이 친미 개정판 4
마에카와 타케시 지음 / 대원씨아이(만화) / 2020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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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83년부터 현재까지 절찬리에 연재 중인 무협 액션 만화 <쿵후보이 친미>의 개정판이 출간되었다. 이번에 출간된 4권에서는 리키의 밑에서 매일 봉술 수련에 매진하는 친미 앞에 평생의 라이벌 '시후앙'이 나타난다. 그동안 자신의 실력을 능가하는 또래를 만나본 일이 없는 친미는 시후앙과의 첫 대련에서 아쉽게 패하고 마음에 큰 동요를 느낀다. 그런 친미에게 소슈 선사가 주는 가르침이 무척 인상적이었다.


소슈 선사는 친미에게 각각 벼룩이 한 마리씩 들어있는 상자를 건네준다. 상자 안에 든 벼룩은 크기가 비슷해 언뜻 봐선 잘 구분이 되지 않는다. 그런데 한 마리는 아주 높이 뛰는 반면, 다른 한 마리는 그의 반에도 못 미치는 높이밖에 못 뛴다. 소슈 선사는 친미에게 벼룩을 관찰하다 보면 시후앙에게 진 이유를 알게 될 거라고 말한다. 대체 벼룩 두 마리와 친미, 시후앙이 무슨 관계인 걸까.


마침내 소슈 선사가 주려고 했던 가르침을 알아낸 친미는 자신이 그동안 스스로 정해놓은 한계에 갇혀서 더 크게 성장할 기회를 잃었음을 깨닫는다. 이제부터는 자신의 한계를 정하지 않고 더 열심히 연습하고 노력해야겠다고 다짐한다. 불철주야 노력하는 친미의 모습은 나에게도 많은 자극을 주었다. 이 맛에 다들 그렇게 오랫동안 <쿵후보이 친미>를 읽어온 걸까. <쿵후보이 친미>의 매력에 서서히 빠져들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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루비프루트 정글 큐큐클래식 3
리타 메이 브라운 지음, 알.알 옮김 / 큐큐 / 2019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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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성 작가들의 책을 읽느라 너무 많은 시간을 허비했다는 생각을 하는 요즘이다. 스콧 피츠제럴드나 레이먼드 카버의 책을 읽던 시간에 리타 메이 브라운의 <루비프루트 정글>을 읽었다면 내 인생은 얼마나 달라졌을까. 나는 지금 여기가 아닌 어디에 있었을까. "읽은 즉시 각인되어 남은 인생 내내 짊어질 수밖에 없는 책"이라는, 책 띠지에 적힌 듀나 님의 한줄평만큼 이 책의 가치를 정확하게 표현하는 문장은 없을 듯하다.


몰리 볼트는 펜실베이니아의 보수적인 마을에서 사생아로 태어났다. 몰리는 어려서부터 활달하고 머리가 좋아서 틈만 나면 장난을 쳤다. 그 바람에 어머니로부터 야단을 맞은 적도 많지만, 몰리는 어머니가 야단을 치거나 말거나 자신의 주장을 굽히지 않고 자기답게 살아간다. 머리가 좋으니 학교 공부도 잘했는데, 어머니는 여자가 공부를 잘해봤자 무슨 소용이냐며 타박한다. 몰리가 아무리 학교에서 인기가 많고 선생님들의 칭찬을 들어도, 전근대적인 성 편견을 지닌 어머니의 눈에는 몰리가 그저 '여자답지 못한' 천방지축, 말괄량이로 보일 뿐이다.


몰리는 똑똑한 아이답게 일찍부터 자신의 성 정체성을 자각한다. 남자보다 여자가 더 좋고, 여자에게 더 끌린다는 것을 말이다. 몰리는 펜실베이니아에서, 플로리다에서, 뉴욕에서 자신의 인생을 살아가는 동시에 여러 명의 여자들을 만나고 다양한 형태의 사랑을 경험한다. 몰리는 늘 자신의 감정에 솔직하고 최선을 다해 상대를 사랑하지만, 정작 상대 여성들은 여성 또는 성소수자에 대한 편견 때문에, 혹은 그러한 편견을 가진 주변 사람들 때문에 몰리를 놓친다. 그로 인해 몰리는 의도치 않게 인생의 크고 작은 부침을 겪으면서도 천천히 조금씩 앞으로 나아간다.


이미 여성인 여성들에게 '여성답지 못하다'며 억압과 통제를 일삼는 사람들 중에는 놀랍게도 많은 수의 여성들이 있다. 자기 안의 자연스러운 본능과 욕망을 따름으로써 발생하는 손해보다 주변 사람들의 시선과 사회의 관습을 따름으로써 얻는 이익이 더 크다고 판단해 놓고서는, 정작 그 판단이 틀렸다는 생각이 들거나 그런 생각이 들게 하는 사람을 보면 그 사람을 괴롭히는 것으로 분풀이를 하는 것이다. (일부 이성애자들이 성소수자를 혐오하는 심리도 비슷하다고 생각한다.)


내가 이제야 하는 생각들을 1944년생인 저자가 이미 했다는 것과, 내가 지금에서야 깨닫고 있는 문제들이 1973년에 발표된 이 작품 안에 모두 있다는 것이 놀랍다. 한편으로는 이렇게 긴 세월이 흐르는 동안 여성과 성소수자와 페미니스트가 인식하는 현실에 아무런 변화가 없다는 것이 참담하다. 세상이 바뀌려면 얼마나 더 많은 '루비프루트'들의 목소리가 더 보태져야 하는 걸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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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 휴식과 이완의 해
오테사 모시페그 지음, 민은영 옮김 / 문학동네 / 2020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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본의 아니게 살면서 가장 긴 휴식과 이완을 하고 있는 요즘이다. 안 그래도 작년 말부터 일이 많이 줄어서 걱정이었는데 코로나19 사태로 그나마 붙들고 있던 일거리마저 사라질 위기에 처했다. 나만 그런 건 아닐 거라고 위로해 보지만, 이대로 내 인생 괜찮을까, 영영 이렇게 살면 어쩌나 하는 걱정과 불안은 쉽게 사그라들지 않는다. 그러던 차에 <아일린>의 작가 오테사 모시페그의 신간 <내 휴식과 이완의 해>를 만났다.


주인공 '나'는 뉴욕에 사는 26세 여성이다. 대학 졸업 후 갤러리에 취직해 적은 월급을 받으며 일해온 '나'는 퇴사와 실연을 계기로 아예 세상과의 접점을 모두 끊어버리고 1년간 동면을 하기로 결정한다. 이 결정이 가능한 건, '나'의 모부가 적지 않은 유산을 남겼기 때문이다. 모부가 남긴 집에서 따박 따박 들어오는 월세로 공과금과 세금을 납부하고, 식비를 비롯한 다른 생활비는 그동안 모은 예금으로 충당하면 된다. 음식은 가까운 슈퍼마켓에서 조달하고, 빨래는 전부 세탁소에 맡긴다. 이렇게 준비한 끝에 마침내 1년간의 동면 생활이 시작된다. 자다가 일어나 먹고, 다시 자다가 일어나 먹는 생활의 반복이다.


처음엔 '나'가 무척 부러웠다. 모부가 남긴 유산이 있다는 것도 부럽고, 그 돈으로 1년 동안 먹고 잘 수 있다는 것도 부러웠다. 모부로부터 유산을 받기는커녕 모부를 먹여 살려야 하는 입장인 나로서는 돈을 벌기 위해 잠도 줄여야 하고 먹고 싶은 것도 참아야 하는데, '나'는 그렇지 않으니 팔자가 참 편해 보였다.


하지만 소설을 읽으면 읽을수록 '나'의 삶도 참 녹록지 않았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딸을 자신의 인형처럼 여겼던 어머니와 딸에게 무관심했던 아버지, '나'에게 가스라이팅을 일삼고 모욕적인 성행위를 강요했던 전 애인들, '나'를 아끼고 염려한다는 핑계로 질투와 시기를 일삼았던 베스트 프렌드 등 '나'의 주변에는 '나'를 지치고 힘들게 하는 사람들이 대부분이었고, 그 때문에 '나'는 불면에 시달릴 만큼 괴로운 날들을 보내야 했다. 결국 '나'는 '닥터 터틀'이라는 정신과 의사를 찾아가 신경안정제를 처방받고 억지로 잠을 청해야 했다.


'나'가 동면을 택한 것은, 죽지 않고 살기 위한 몸부림이었다. 자는 것도 아니고 깬 것도 아닌 몽롱한 상태로 억지 인생을 사느니, 차라리 1년 정도 제대로 푹 쉬고 예전과 다른 사람이 되어 새로운 인생을 살겠다는 의지의 표현이었다. 어쩌면 나를 포함한 대부분의 사람들에게 이런 시간이 필요한지도 모른다. 그동안 세상의 흐름에 몸을 맡긴 채 어영부영 살아온 것을 반성하며 몸의 긴장을 풀고 의식으로부터도 자유로워지는 시간 말이다. 어쩌면 지금이 바로 그 시간인지도 모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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송혼의 소녀와 장례여행 1
로나 지음 / 대원씨아이(만화) / 2020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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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령은 인간들을 이롭게 하려고 하늘이 내린 선물이지만, 세상을 떠날 때는 주변에 저주를 뿌린다고 한다. 그래서 정령이 죽을 때 직접 몸으로 저주를 받아내는 '송혼사'라는 직업이 생겨났고, 송혼사인 소녀 알피는 여기저기 발길 닿는 대로 돌아다니면서 죽은 정령의 장례를 치러주고 그 대가로 묵을 곳과 먹을 것을 제공받는 '장례여행'을 하는 중이다.


처음에는 알피가 장례사(송혼사)라기에는 너무 작고 약해 보여서 장례 일을 제대로 할 수 있을까 싶었는데, 막상 죽은 정령을 마주하면 진지한 태도로 장례를 치르고 무시무시한 저주도 잘 감내해 믿음직스러웠다. 장례를 치를 때는 프로답게 엄숙하게 일하고, 장례를 마치고 나서는 접대 받은 음식을 와구와구 먹으며 피로를 푸는 모습의 대비가 웃음을 자아내기도 했다.


삶과 죽음을 다룬 만화답게 분위기가 대체로 차분하고 진지하다. 죽은 정령을 둘러싼 사람들의 이야기가 흥미롭고, 무엇보다 송혼사라는 소명을 무겁게 받아들이는 알피의 모습이 인상적이었다. 판타지 만화는 일견 비현실적인 이야기 같지만 실제로는 현실이 배경인 그 어떤 만화들보다도 현실적인 것 같다. 삶과 죽음의 무게를 그린 이 만화 또한 그러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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