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 휴식과 이완의 해
오테사 모시페그 지음, 민은영 옮김 / 문학동네 / 2020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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본의 아니게 살면서 가장 긴 휴식과 이완을 하고 있는 요즘이다. 안 그래도 작년 말부터 일이 많이 줄어서 걱정이었는데 코로나19 사태로 그나마 붙들고 있던 일거리마저 사라질 위기에 처했다. 나만 그런 건 아닐 거라고 위로해 보지만, 이대로 내 인생 괜찮을까, 영영 이렇게 살면 어쩌나 하는 걱정과 불안은 쉽게 사그라들지 않는다. 그러던 차에 <아일린>의 작가 오테사 모시페그의 신간 <내 휴식과 이완의 해>를 만났다.


주인공 '나'는 뉴욕에 사는 26세 여성이다. 대학 졸업 후 갤러리에 취직해 적은 월급을 받으며 일해온 '나'는 퇴사와 실연을 계기로 아예 세상과의 접점을 모두 끊어버리고 1년간 동면을 하기로 결정한다. 이 결정이 가능한 건, '나'의 모부가 적지 않은 유산을 남겼기 때문이다. 모부가 남긴 집에서 따박 따박 들어오는 월세로 공과금과 세금을 납부하고, 식비를 비롯한 다른 생활비는 그동안 모은 예금으로 충당하면 된다. 음식은 가까운 슈퍼마켓에서 조달하고, 빨래는 전부 세탁소에 맡긴다. 이렇게 준비한 끝에 마침내 1년간의 동면 생활이 시작된다. 자다가 일어나 먹고, 다시 자다가 일어나 먹는 생활의 반복이다.


처음엔 '나'가 무척 부러웠다. 모부가 남긴 유산이 있다는 것도 부럽고, 그 돈으로 1년 동안 먹고 잘 수 있다는 것도 부러웠다. 모부로부터 유산을 받기는커녕 모부를 먹여 살려야 하는 입장인 나로서는 돈을 벌기 위해 잠도 줄여야 하고 먹고 싶은 것도 참아야 하는데, '나'는 그렇지 않으니 팔자가 참 편해 보였다.


하지만 소설을 읽으면 읽을수록 '나'의 삶도 참 녹록지 않았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딸을 자신의 인형처럼 여겼던 어머니와 딸에게 무관심했던 아버지, '나'에게 가스라이팅을 일삼고 모욕적인 성행위를 강요했던 전 애인들, '나'를 아끼고 염려한다는 핑계로 질투와 시기를 일삼았던 베스트 프렌드 등 '나'의 주변에는 '나'를 지치고 힘들게 하는 사람들이 대부분이었고, 그 때문에 '나'는 불면에 시달릴 만큼 괴로운 날들을 보내야 했다. 결국 '나'는 '닥터 터틀'이라는 정신과 의사를 찾아가 신경안정제를 처방받고 억지로 잠을 청해야 했다.


'나'가 동면을 택한 것은, 죽지 않고 살기 위한 몸부림이었다. 자는 것도 아니고 깬 것도 아닌 몽롱한 상태로 억지 인생을 사느니, 차라리 1년 정도 제대로 푹 쉬고 예전과 다른 사람이 되어 새로운 인생을 살겠다는 의지의 표현이었다. 어쩌면 나를 포함한 대부분의 사람들에게 이런 시간이 필요한지도 모른다. 그동안 세상의 흐름에 몸을 맡긴 채 어영부영 살아온 것을 반성하며 몸의 긴장을 풀고 의식으로부터도 자유로워지는 시간 말이다. 어쩌면 지금이 바로 그 시간인지도 모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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