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용한 희망 - 진짜 이름을 찾기 위한 찬란한 생존의 기록
스테퍼니 랜드 지음, 구계원 옮김 / 문학동네 / 2020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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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개천에서 용 난다'는 말에 희망을 걸고 살아가는 사람도 있지만, 현실에는 용은커녕 개천도 감지덕지, 개천보다 낮은 곳으로 떨어지지 않기를 바라며 사는 사람도 많다. 가족 중 한 사람이라도 실직을 당하거나 사고를 당하거나 병이라도 걸려서 다른 가족들까지 간병에 투입되거나 하면 경제적으로 어려운 상황에 놓이고 몇 년, 몇십 년이 걸려도 회복하지 못하는 경우가 다수이기 때문이다.


<조용한 희망>의 저자 스테퍼니 랜드의 경우도 비슷하다. 저자는 원래 평범한 중산층 가정의 아이였다. 십 대 때까지만 해도 부모님과 함께 살았고, 고등학교를 졸업하면 대학에 진학해 문예창작학을 전공하고 작가가 되기를 꿈꿨다. 하지만 부모님이 이혼하고 각자의 삶을 찾아 떠나면서 저자는 트레일러에 사는 조부모에게 맡겨졌고, 설상가상으로 남자친구의 아이를 임신했다. 저자는 남자친구와 함께 아이를 키우며 살기를 원했지만 남자친구의 생각은 달랐고, 고민 끝에 저자는 대학 진학을 포기하고 아이를 낳기로 결정했다. 그러자 남자친구는 폭력적으로 변했고, 더는 그와 함께 살 수 없게 되었다.


저자는 딸 미아를 낳고 노숙자 쉼터에 머무르며 일자리를 찾았지만, 고졸 학력의 싱글맘이 고려할 수 있는 직업의 수는 적었다. 저소득층을 위한 복지 혜택이 존재하지만, 이 혜택을 받기 위해서는 매달 근로 소득이 있다는 걸 증명해야 하고 일정 금액 이상의 소득을 벌어선 안 된다. 우여곡절 끝에 청소 업체에 취직한 저자는 일과 육아, 살림, 학업을 병행하며 고된 나날을 보냈다. 이런 상황보다 저자를 더 힘들게 한 건, 주변에 도움을 요청할 가족이나 친구, 애인이 없다는 것이었다. 너무 외로워서 애인을 만나보기도 했지만, 어떤 남자도 저자를 고난에서 구해줄 '왕자님'은 아니었다. 결국 저자는 스스로 결혼 반지를 사서 끼고 혼자서 살아갈 결심을 했다.


저자의 대단한 점 또 하나는 딸을 임신하면서 포기했던, 몬태나 주립대학 문예창작학과에 입학해 학위를 받고 작가가 된다는 꿈을 이뤘다는 것이다. 저자는 청소 일을 하고 육아를 하는 틈틈이 대학 진학에 필요한 공부를 했고, 꾸준히 글을 쓰며 작가로서의 능력도 발전시켰다. 나중에는 청소 일에 능숙해져서 프리랜서로 일하기도 하고 주변 사람들에게 아예 사업체를 차리라는 제안까지 받았는데, 그랬다면 경제적으로 좀 더 일찍 여유 있는 생활을 할 수 있었겠지만, 저자는 가고 싶었던 대학에 가서, 하고 싶었던 공부를 해서, 되고 싶었던 사람이 되기 위해 (제안을) 거절했다. 


저자가 청소 일을 하면서 방문한 집들에 관한 이야기도 흥미로웠다. 으리으리한 집에 살면서 변기 청소를 한 번도 안 하는 사람, 이름만 들으면 누구나 아는 유명인인데 부엌 청소를 절대 안 하는 사람, 배우자 몰래 담배를 피는 사람, 쓰레기를 절대 안 버리는 사람.... 이런 사람들의 집을 청소하면서 저자는 부와 명예가 행복을 보장하지는 않는다는 걸 확인했고, 남들에게 보이는 삶에 집착하지 말고 자기 스스로 만족할 만한 삶을 살아야겠다고 다짐했다. 저자의 근황을 찾아보니 이 책 이후에 두 번째 책이 나왔고 세 번째 책도 곧 나온다고 한다. 얼른 읽어보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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감추고 싶어 하는 동기 군 3
소데야마 미미리 지음 / 대원씨아이(만화) / 2024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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근육을 그 무엇보다 좋아하는 회사원 카렌은 우연히 회사 동기인 타쿠마의 슬림하지만 근육이 탄탄한 몸매를 보고 반한다. 타쿠마 또한 카렌에게 호감이 있던 터라 두 사람은 자연스럽게 커플이 되었는데, 문제는 카렌이 타쿠마를 좋아하는 건지 타쿠마의 '근육'을 좋아하는 건지 헷갈린다는 거 ㅋㅋㅋ 3권에서 타쿠마는 농구 시합 때문에 헬스장에 가는 횟수를 줄인다고 말하고, 그 말을 들은 카렌은 선뜻 응원하러 가겠다고 답한다. 타쿠마는 여자친구인 카렌이 자신을 응원하러 온다는 생각에 들뜨지만, 사실 카렌은 농구를 하는 타쿠마를 보고 싶다기 보다는 농구를 할 때 타쿠마의 '근육'이 얼마나 불끈불끈한지 보고 싶은 건데...


소데야마 미미리의 만화 <감추고 싶어 하는 동기 군>은 개인적으로 메인 커플인 카렌-타쿠마보다 두 사람의 회사 동료인 아놀드와 미츠이 씨를 보는 재미로 본다. 특히 2권에서 처음 등장한 미츠이 씨는 중증의 BL 덕후로, 타쿠마-아놀드를 커플로 엮어먹으며(?) 수시로 흥분하는 모습이 너무 재밌다 ㅋㅋㅋ 그런 미츠이 씨와 아놀드가 함께 나오는 장면들도 좋다(웬만해선 녹지 않는 동인녀의 마음까지 녹이는 강력한 햇살캐 아놀드...!). 두 사람이 커플로 발전할 수도 있을까? 그래도 좋고 아니어도 좋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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너를 잊을 사랑이 하고 싶어 2
유우키 하루 지음 / 대원씨아이(만화) / 2024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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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노는 중3 때 만난 첫사랑 세나가 전학을 가면서 헤어진 이후에도 그를 잊지 못하고 다른 연애를 안 했다. 4년의 시간이 흘러 대학생이 된 시노는 밴드 동아리에 가입하는데 놀랍게도 그곳에 시노의 첫사랑 세나가 있었다. 하지만 현재의 세나는 과거의 순수한 모습은 온데간데 없고 이 여자 저 여자 집적거리며 노는 날라리 중의 날라리. 시노는 그런 세나에게 거리를 두려고 하지만, 예전보다 훨씬 멋있어지고 기타도 잘 치는 모습을 보면 여전히 설렌다. 세나 또한 시노는 연애 대상이 아니라며 거리를 두면서도 묘한 행동으로 시노의 마음을 자꾸만 흔든다.


유우키 하루의 만화 <너를 잊을 사랑이 하고 싶어>는 요즘 내가 재미있게 보고 있는 이성애 로맨스 만화 중 하나다. 로맨스 만화에서 여자 주인공이 소위 '나쁜 남자' 캐릭터를 좋아할 때 여주가 남주에 대해 좋아하는 점 때문에 좋아하지 않는 점까지 포용하는 경우가 많은데, 시노는 세나에 대해 좋아하는 점(외모와 기타 실력)과 좋아하지 않는 점(복잡한 여자관계, 사람 헷갈리게 하는 태도)을 분명하게 인지하고, 좋아하지 않는 점을 (세나가) 고치지 않으면 좋아할 수 없다고 단호하게 선을 긋는 면이 멋있다. 세나한테 "네가 나한테 상처 줘도 나는 그렇게 쉽게 상처 받지 않는다"라고 말하는 장면도 좋았다. 시노 파이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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선배는 남자아이 9
폼 지음 / 대원씨아이(만화) / 2025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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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빠가 있는 미국으로 여행을 떠난 사키는 오랜만에 만난 아빠와 즐거운 시간을 보낸다. 여행 끝에 아빠는 사키에게 같이 살자고 말하고, 사키는 고래 밖에 모르는 줄 알았던 아빠의 진심을 깨닫는다. 그러나 여행 전에 엄마에게도 같이 살자는 말을 들었던 사키는 아빠와 엄마 둘 중에서 누구와 사는 것이 좋은지 잘 모르겠다. 사키보다 한 학년 위인 마코토와 류지는 슬슬 진로를 정해야 할 시기를 맞는다. 장래를 위해 타지에 있는 대학에 진학하는 것도 고려하고 있는 류지와 달리, 마코토는 대학도 전공도 정한 것이 전혀 없는 상태다. 이런 상황에서 마코토는 사키에 대해 전과 다른 감정을 느끼는데...


<선배는 남자아이> 9권은 인생의 갈림길에 선 사키와 마코토, 류지 세 사람의 이야기를 중점적으로 그린다. 나는 이 만화의 주인공이 마코토라고 생각했는데 후반 전개를 보면 사키 이야기가 더 많이 나오고, 애초에 '선배'라는 단어도 사키 입장인 걸 감안하면 진정한 주인공은 사키인가 싶다. 그래서, 라고 볼 수는 없을지도 모르지만 마코토와 류지가 서로 호감을 느끼는 전개였던 것이 갈수록 사키-마코토가 서로 호감을 느끼는 전개로 바뀌어서 혼란스럽다(BL 전개 내놔)... 아무튼 완결 권인 다음 10권에서 사키가 드디어 중대 결정을 내릴 것 같다. 얼른 보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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음악소설집 音樂小說集
김애란 외 지음 / 프란츠 / 2024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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학창 시절에는 하루 종일 음악을 듣고 또 들어도 질리지 않았는데, 요즘은 곡 하나를 끝까지 듣는 경우가 거의 없다. 좋아하는 아이돌 그룹의 무대를 볼 때 정도만 음악을 끝까지 듣는데, 그마저도 정신은 무대에 가 있기 때문에 온전히 음악을 '들었다'고 보기에는 어려운 것 같다. 그렇다고 평소에 아무 음악도 안 듣고 사는 건 아니다. 내가 음악을 듣는 경우는 주로 글을 쓸 때인데(글을 쓰지 않는 시간에는 주로 팟캐스트를 듣는다), 이 때 듣는 음악은 보사노바나 클래식 곡이 대부분이다. 이 때도 아이돌 그룹의 무대를 볼 때와 마찬가지로 정신은 모니터 화면에 집중되어 있기 때문에 온전히 음악을 '들었다'고 보기는 어렵다.


뜬금없이 음악에 대해 생각한 건, 음악 전문 출판사 프란츠에서 작년에 출간한 앤솔러지 북 <음악소설집>을 읽었기 때문이다. 이 책에는 김애란, 김연수, 윤성희, 은희경, 편혜영 등 한국문학을 대표하는 소설가 다섯 명이 각각 음악을 주제로 쓴 소설이 담겨 있다. 다섯 편의 소설이 고르게 다 좋았는데, 그중에서도 가장 마음에 들었던 소설은 은희경 작가의 <웨더링>이다. 이 소설은 우연히 기차의 4인석에 앉게 된 네 명의 인물이 서로가 공통적으로 알고 있는 곡 하나에 대해 각자의 추억을 떠올리는 방식으로 진행된다. 이러한 구성이 마치 네 명의 연주자가 각자 다른 악기로 다른 곡조를 연주해 하나의 곡을 완성하는 콰르텟 연주 같다고 느꼈다.


편혜영 작가의 단편 <초록 스웨터>도 좋았다. 편혜영 작가의 소설 <재와 빨강>, 소설집 <아오이 가든>을 읽으며 편혜영 작가는 불안하고 공포스러운 분위기의 소설을 주로 쓴다는 인상을 받았는데, <초록 스웨터>는 편혜영 작가의 기존 작품들과 다르게(!) 다정함을 넘어 애틋하기까지 한 분위기라서 신선했다. 책의 마지막에는 작가 인터뷰가 실려 있는데, 이런 기획 덕분에 작가로서 새로운 시도도 해보고 동료 작가들과 함께 할 수 있어서 좋았다고 작가님들이 하나같이 말씀하신 점이 인상적이었다. 독자로서도 반가운 기획이고, 장르를 좁혀서 클래식, 가요, 록, 힙합 등을 주제로 앤솔로지를 내봐도 재미있을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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