축복을 비는 마음
김혜진 지음 / 문학과지성사 / 2023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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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혼 후 혼자서 딸 해민을 키우는 미애는 친구 주희의 빈 아파트로 들어가 살게 된다. 단지 내에서 어린 자녀를 키우는 어머니들을 중심으로 이루어진 독서 모임이 있다는 걸 알게 된 미애는 해민을 데리고 그들을 찾아간다. 독서 모임 멤버들은 미애와 해민이 그들과 같은 아파트 주민일 거라고 생각하고 따뜻하게 맞아주지만, 점차 미애와 해민이 그들과 '같은' 처지가 아니라는 사실을 알게 되면서 미애와 해민을 따돌린다. 그런 와중에 독서 모임의 주축인 선우의 딸 세아와 해민에게 어떤 일이 생기면서 가뜩이나 안 좋은 미애의 상황이 더욱 더 나빠진다.


김혜진 작가의 세 번째 소설집 <축복을 비는 마음>은 부동산 문제를 중점적으로 다룬다. 집도 없고 남편도 없이 혼자서 딸을 키우는 미애의 이야기를 그린 <미애>를 시작으로, 지금 살고 있는 집과 동네에서 벗어나고 싶은 마음에 가족 중 그 누구보다 집을 팔고 싶어 안달이 난 소녀 세미가 나오는 <20세기 아이>, 집주인과 세입자로 만나서 인생의 한 시절을 함께 보낸 만옥과 순미의 관계를 그린 <목화맨션>, 일확천금의 꿈을 품고 부동산 임장을 다니는 사람들의 이야기를 그린 <이남터미널>, 여섯 채의 빌라를 소유한 집주인을 대신해 세입자와 건물을 관리하는 여자의 일상을 그린 <산무동 320-1번지> 등이 그렇다.


여섯 번째 단편부터는 조금 다르다. <자전거와 세계>는 치과 직원인 현지가 교통 사고로 입원한 할머니의 보상 처리 과정을 지켜 보면서 복잡한 감정을 느끼는 내용이고, <사랑하는 미래>는 전시관 직원으로 무료한 일상을 보내던 주인이 연하의 중국계 캐나다인 남성과 연애를 시작하며 일상의 변화를 겪는 과정을 그린다. 표제작 <축복을 비는 마음>은 입주 청소 일을 하는 인선이 경옥과 함께 일하면서 마음의 문을 여는 내용이다. 모든 단편이 한국의 주거 또는 노동 문제를 다뤄서 읽는 마음이 가볍지 않지만, 힘든 현실을 회피하지 않고 버티는 사람들의 이야기인 데다가 약간의 희망도 보여줘서 책을 다 읽고 덮는 마음이 마냥 무겁지만은 않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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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랑의 종말
그레이엄 그린 지음, 서창렬 옮김 / 현대문학 / 2021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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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2차 세계 대전의 상흔이 아직 남아 있는 1946년 영국 런던. 소설가인 모리스 벤드릭스는 밤 늦은 시각 술집에서 나오는 길에 우연히 옛 친구 헨리 마일스와 재회한다. 사실 모리스는 헨리를 대하는 것이 불편한데, 그럴 만한 것이 모리스가 전쟁 중에 헨리의 아내 세라와 외도를 했기 때문이다. 그러한 사실을 전혀 모르는 헨리는 모리스를 자신의 집으로 초대하면서 한 가지 부탁을 한다. 자신의 아내가 요즘 누구를 몰래 만나는 것 같은데 고위 공무원인 자신의 체면상 직접 알아보기가 힘드니 모리스가 대신 알아봐 달라는 것이다.


모리스는 헨리의 부탁을 들어주기로 하는데, 실은 모리스도 세라의 근황에 대해 전혀 몰랐기 때문이다. 전쟁 중에 모리스와 세라는 헨리 몰래 불타는 연애를 했지만, 어느 날 갑자기 세라가 이별을 고한 이후로 직접 만난 적도 없고 전화로 안부를 주고받은 적도 없다. 모리스는 사립 탐정을 고용해 세라의 뒤를 캐고, 이 과정에서 세라의 일기장을 건네 받으면서 세라가 자신에게 이별을 고했던 이유를 알게 된다.


영국 작가 그레이엄 그린이 1951년에 발표한 소설 <사랑의 종말>은 2015년 영국 <가디언>이 선정한 '최고의 영문 소설 100선'에 뽑힐 정도로 높은 평가를 받는 작품이다. 이 소설은 그레이엄 그린의 또 다른 대표작인 <브라이턴 록>, <권력과 영광>, <사건의 핵심> 등과 함께 가톨릭 소설로 분류되기도 한다. 나 역시 종교 소설이라는 문구에 혹해 읽게 되었는데, 막상 읽어보니 로맨스, 그것도 불륜에 관한 소설이라서 의아한 마음이 없지 않았다.


의아한 마음은 세라의 일기 내용을 알게 되면서 풀렸다. 세라와 모리스는 헨리의 눈을 피해 불 같은 사랑을 하던 시절에 집 안에서 사랑을 나누다 폭격을 맞은 적이 있다. 폭격 당시 금방 정신을 차린 세라와 달리 모리스는 오랫동안 정신을 차리지 못했고, 모리스가 죽었다고 생각한 세라는 "이 남자를 살려주기만 하면 뭐든 하겠다. 이 남자와의 사랑도 포기하겠다."라는 내용의 기도를 했다. 그 후 (세라에게는) 기적처럼 모리스가 깨어났고, 세라는 신과의 약속을 지키기 위해 모리스와의 사랑을 포기했다. 사연을 알게 된 모리스는 세라의 곁으로 달려간다.


즉, 세라가 자신의 사랑을 걸고 간절한 기도를 통해 모리스를 살렸기 때문에 이 소설이 가톨릭 소설로 분류되는 것인데, 기도의 진짜 목적은 신에게 부탁을 하거나 신과 거래를 하는 것이 아니라 신의 뜻이 무엇이든 그것을 따르겠다고 약속하는 것이라고 알고 있는 나로서는 세라의 기도나 그 이후의 행동이 진정한 기독교인의 그것이 맞는지 잘 모르겠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 소설이 최고의 영문 소설 100선에 뽑히고 기독교 서적으로서도 인정 받는 걸 보면 내가 가진 기독교에 대한 이해가 얕은 것을 수도 있고... 몇 번 더 읽어 봐야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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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의 기원담
김보영 지음 / 아작 / 2023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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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은 그 자신의 모습을 본떠 우리를 만드셨다." 여기서 '신'은 누구이며 '우리'는 누구일까. 한국 SF 최초 전미도서상 후보에 오른 김보영의 연작 소설 <종의 기원담>은 신과 인간에 대한 일반적인 정의를 살짝 비틀면서 시작된다.


미국 프린스턴 대학교의 생물학과 대학원생인 케이는 동료들과 함께 총동창회 준비를 하느라 바쁘다. 케이의 동료들은 크게 세 부류로 나뉜다. 두 자리 수 모델은 둥근 원통형이고, 세 자리 수 모델은 네 개의 바퀴가 달려 있고 전신이 도금되어 있으며 신의 모습에 가장 가깝다는 평가를 받는다. 네 자리 수 모델은 이족 보행을 하고 살가죽이 부드러우며 표정이 다양해 일상 생활에 부적절하다고 일컬어진다. 이쯤 되면 짐작했을 텐데... 그렇다. 인간처럼 대학에 다니고 부류를 나누며 차별을 일삼는 이들의 정체는 사실 로봇이다. 


이 소설은 로봇이 인간의 자리를 대체한 시대를 배경으로 한다. 모종의 이유로 생태계가 달라진 지구를 로봇들이 지배한다. 산소가 거의 없고 온도가 영하 100도에 가까우며 콘크리트로 뒤덮인 지구는 높은 습도와 온도에 취약한 로봇들이 살아가기에 최적의 공간이다. 로봇들은 인간처럼 행위할 뿐만 아니라 인간처럼 사고도 한다. 심지어 이들은 인간처럼 자신들의 기원을 두고 논쟁을 벌인다. 창조론을 믿는 로봇들은 자신들이 공장에서 창조된 존재로, 신(공장)에 의해 만들어진 차별은 당연하며 변화나 성장은 가능하지 않다는 믿음을 고수한다.


로봇 중에서도 열등한 존재로 취급 받는 네 자리 수 모델인 케이는 하루 빨리 논문을 완성해 학위를 받아서 삶의 다음 단계로 나아가는 것이 목표다. 그런 케이가 학부 시절에 별 뜻 없이 쓴 논문이 사장된 학문이나 다름 없던 유기생물학의 새로운 기원이라는 평가를 받으면서 케이의 삶이 변화한다.


이 소설은 총 3부로 구성되어 있으며, 각 부는 다른 시기에 쓰였다. 작가가 2000년에 집필을 시작해 2005년에 완성한 1부는 신과 인간, 로봇의 자리를 뒤바꾼 시도만으로도 기발하고 흥미롭다. 기술의 발달로 인해 인간처럼 행위하고 사고할 수 있게 된 로봇마저도 자신들의 창조 신화를 만들고 차별 이데올로기를 고수하는 대목들은 아직도 창조론을 신봉하고 차별을 일삼는 인간들을 비판 내지는 풍자한다고 느꼈다.


1부가 인류세에서 '로봇세'로 전환된 세상의 풍경을 스케치하는 내용이라면, 2부와 3부는 케이가 만들어낸 인간으로 인해 발생하는 갈등을 그린다. 대학원을 떠나 유기생물을 연구하는 칼스트롭 연구소에 들어간 케이는 연구 끝에 인간을 완성한다. 그러자 로봇의 초기 세팅에 따라 인간을 무조건적으로 경애하고 인간에게 복종하는 마음이 '작동'한다. 그렇게 인간의 지위가 높아지고 개체수가 늘어나면 로봇의 지위는 낮아지고 생존 가능성 역시 낮아진다. 이렇게 모든 것이 상충하는 로봇과 인간은 과연 평화롭게 공존할 수 있을까.


1부에서 로봇이 자신들을 창조한 신이라고 믿었던 존재는 사실상 인간이고, 2부와 3부에서 멸종된 인간을 창조하는 것은 신이 아닌 로봇이라는 점이 의미심장하다. 인간이 인간 자신의 창조물에 의해 창조된다는 점에서 지극히 인간 중심적인 사고 방식이라고 볼 수도 있지만, 인간이 만든 종말이 새로운 시작의 단서가 되고 그 시작이 또 다른 종말의 기원이 된다는 점에서 인간 또한 인간보다 더 큰 차원에 종속된 변수에 지나지 않는다는 생각도 들었다. 내용을 온전히 다 이해한 느낌이 들지 않아서 앞으로 시간 간격을 두고 여러 번 반복해 읽어야 할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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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애의 아이 13
아카사카 아카 지음, 요코야리 멘고 그림 / 대원씨아이(만화) / 2024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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호시노 아이의 실제 인생을 다룬 영화 <15년의 거짓말>의 제작이 본격화되는 가운데, 주연을 맡은 호시노 루비는 부담감이 상당하다. 아이돌 그룹 활동 및 개인 활동만으로도 몸이 열 개라도 부족할 만큼 바쁜데 인생 첫 연기 도전까지 하게 되었으니 그럴 수 밖에 없다. 게다가 루비가 연기하게 된 인물은 전설의 아이돌이자 자신의 어머니이기도 한 호시노 아이라서 사람들의 기대가 보통이 아니다. 이런저런 생각으로 머릿속이 복잡한 루비는 자기도 모르게 어느 집 앞으로 가게 되고, 그곳에서 자신이 '호시노 루비'가 아닌 '텐도지 사리나'로서 살았던 '전생'을 반추한다.


전생의 기억을 떠올린 루비는 자신이 사리나로서 병원에 입원해 있을 때 자신에게 친절하게 대해주었던 의사 선생님을 그리워 하며 눈물 흘린다. 그런 루비와 대화를 나누다 아쿠아는 자기도 모르게 어떤 사실을 발설하게 되고, 그렇게 아쿠아가 그동안 숨겨온 비밀 하나를 알게 된 루비는 아쿠아에 대한 마음을 새롭게 정리한다. 한편 이치고 프로의 현 사장의 남편, 즉 전 사장 사이토 이치고가 알바 자격으로 다시 회사로 돌아오고, 새로운 시스템으로 정비된 이치고 프로 사람들은 무슨 수를 써서라도 영화를 성공시키기로 다짐한다. 진짜 너무 재밌어서 시간 가는 줄 모르고 읽었다. 어서 14권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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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다미 넉 장 반의 가시공주 1
사토 자쿠리 지음, 요시다 무츠미 그림 / 대원씨아이(만화) / 2024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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돈 없고 부모 없고 친구도 없는 여고생 코바야시 신라는 사랑을 믿지 않는다. 돈 한 푼 없는 자신에게 관심을 가진 사람은 이제껏 없었고, 부모조차 돌보지 않는 자신을 남이 돌봐줄 리도 없으며, 친구조차 없는데 남자친구가 생길 리 만무하다는 게 신라의 오랜 믿음이다. 그런 신라에게 어느 날 학교 최고의 인기남 사사키 라이가 다정하게 말을 건다. 자기처럼 키 크고 잘생긴 두 친구 나카무라 카난, 아오야마 햣케이와 늘 뭉쳐 다니는 라이. 학생들은 이들을 '라이 그룹'이라고 부르며 아이돌처럼 숭배한다. 그중에서도 그룹의 중심인 라이가 자신에게 말을 걸다니, 말도 안 되는 일이라고 신라는 생각한다. 


신라는 라이의 접근을 물리치고 자신의 일상에 집중한다. 학교에서는 아무와도 말을 섞지 않고 공부에만 집중하고, 방과 후에는 생계를 해결하기 위해 편의점 아르바이트를 하는 나날을 보낸다. 라이는 신라가 '돈 없고 부모 없고 친구도 없다'는 이유로 무조건 참거나 억지로 해내야 했던 일들을 일깨워 주거나 대신 해주거나 도움의 손길을 뻗는 방식으로 조금씩 신라의 일상에 들어간다. 보는 내내 '이런 남자가 어딨어?'라는 말이 나왔지만, 있다면 좋기는 하겠네 ㅎㅎ 이렇게까지 신라에게 다가오는 이유가 무엇인지 알고 싶고, 같이 다니는 두 친구들 사연도 궁금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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