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라카미 T - 내가 사랑한 티셔츠
무라카미 하루키 지음, 권남희 옮김 / 비채 / 2021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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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라카미 하루키가 애장하고 있는 수백 벌의 티셔츠 중에 아끼는 것이나 특이한 것을 엄선해 소개하는 형식의 책이다. 무슨 티셔츠를 '수백 벌'이나 가지고 있나 싶지만, 저자에 따르면 일부러 모은 것은 아니고 어쩌다 보니 '자연스럽게 모인 것'에 불과하다고 한다. 작가로서 북토크나 행사에 참석하면 홍보용 티셔츠를 받기도 하고, 마라톤 대회에 나가면 완주 기념 티셔츠를 받기도 하고, 여행 가서 그 지역 티셔츠를 사기도 하고... 


그렇게 모인 티셔츠들을 열여덟 개의 테마로 분류해 이렇게 책까지 쓰다니. 비용 대비 편익이 대단하다. 심지어 'TONY TAKITANI' 티셔츠는 마우이 섬 시골 마을의 자선 매장에서 1달러 정도에 구입해 '토니 타키타니는 대체 어떤 사람이었을까?' 생각하다 그를 주인공으로 한 단편소설을 써서 세계적인 작가가 되었으니 가성비 최고! 소설이 미국에서 출간된 후 티셔츠의 주인공 토니 타키타니로부터 편지를 받은 이야기도 재미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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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 함께 호오포노포노
요시모토 바나나.타이라 아이린 지음, 김난주 옮김 / 판미동 / 2021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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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 <벌새>를 만든 김보라 감독님이 씨네21 김혜리 기자님이 진행하는 팟빵 매거진 <조용한 생활>에 출연해 명상에 관해 이야기하신 것을 들었다. 김보라 감독님이 오랫동안 명상을 해왔다는 사실을 알고는 있었는데, 이렇게 긴 시간 동안 깊은 이야기를 들은 건 처음이었다. 마음 건강은 물론 인간관계, 작업에도 큰 도움이 되었다고 하니 직접 명상을 해보고 싶은 마음도 들고. 


그런 생각을 하다가 이 책을 발견했다. 일본 작가 요시모토 바나나와 호오포노포노 강연 활동가 타이라 아이린의 대담집 <우리 함께 호오포노포노>. 호오포노포노란 하와이에서 고대로부터 전해져 내려오는 문제 해결법으로, 과거의 기억과 화해함으로써 자신을 정화(cleaning)하고 치유를 얻는 행위를 의미한다. 


호오포노포노에 따르면, 모든 사람의 내면에는 '우니히피리'라고 불리는 '이너 차일드(inner child), 즉 내면아이가 있다. 사람의 성격이나 습관은 모두 이러한 우니히피리가 보관하고 있는 기억에 따른 것으로, 지금 어떤 것에 관심이 있는지, 어떤 일에 상처 입고 분노를 느끼는지 등은 물론 가족과의 관계, 돈과의 관계, 직업, 이상형 모두 우니히피리가 저장해 놓은 방대한 기억이 재생되어 나타나는 결과로 본다. 


호오포노포노 수련을 하는 사람들은 이러한 기억을 정화함으로써 주위의 압박이나 막연한 동경 때문에 자신에게 맞지 않는 삶을 사는 것을 그만두고 자신에게 원래 주어진 '청사진' 대로 사는 것을 목표로 한다. 머릿속을 어지럽히거나 마음을 들뜨게 만드는 사건이 일어났을 때는 "고맙습니다. 미안합니다. 용서하세요. 사랑합니다" 같은 말을 의식적으로 되뇌며 내면의 평정을 유지한다. 


인터넷 검색을 해보니, 이 책 외에도 호오포노포노 관련 서적이 국내에 다수 출간되어 있고, 우리나라에는 추성훈의 아내로 잘 알려져 있는 일본 모델 야노 시호도 호오포노포노를 실천하고 있다고 한다. 지금으로서는 호오포노포노도 명상 수련도 막연하게 느껴지지만, 앞으로 꾸준히 배우고 실천하면서 구체적인 효과를 체험해 보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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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례식을 마치고 - 애거서 크리스티 재단 공식 완역본 애거서 크리스티 푸아로 셀렉션 9
애거사 크리스티 지음, 원은주 옮김 / 황금가지 / 2015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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추리소설 마니아를 자처하면서 정작 추리소설의 대가인 애거서 크리스티의 작품도 많이 읽지 못한 게 부끄러워 뒤늦게 애거서 크리스티의 책들을 구입해 읽고 있는 요즘이다. 이 책은 황금가지에서 나온 애거서 크리스티 푸아로 셀렉션 총 열 권 중 한 권으로, 부모로부터 엄청난 부를 상속받은 갑부이자 형제 중 유일하게 살아있는 장남이기도 한 리처드 애버네티의 유언장을 둘러싸고 벌어지는 일들을 그린다. 


이 작품에서 가장 인상적인 점은 뭐니 뭐니 해도 결말이다. 결말 전까지는 애거서 크리스티의 여느 작품들과 크게 다르지 않은 전개를 따른다. 한 사람이 죽고, 그가 남긴 유산을 둘러싸고 유족들 간에 갈등이 생긴다. 이 과정에서 죽은 자의 사인이 자연사가 아니라 타살이 아니냐는 의혹을 제기하는 사람이 나오고, 공교롭게도 이 사람에게 끔찍한 일이 벌어지면서 의혹이 더욱 깊어진다. 결국 푸아로 탐정이 등장해 범인을 찾고 사건을 해결하는데, 이 작품은 범인을 잡아도 잡은 것 같지 않은 찜찜함이 남는다. 애거서 크리스티의 이전 작품들 중에 비슷한 작품이 있었던가. 없다면, 이 작품이 왜 50년대 황금기의 걸작으로 불리는지 알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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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기 日記 - 황정은 에세이 에세이&
황정은 지음 / 창비 / 2021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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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떤 날들의 기록이고 어떤 사람의 사사로운 기록이기도 해서, 그것이 궁금하지 않은 독자들이 잘 피해 갈 수 있도록 '일기(日記)'라는 제목을 붙여보았습니다."라는 '작가의 말' 속 문장을 읽고 참 황정은 작가답다는 생각을 했다. 책을 한 권이라도 더 팔기 위해 독자를 '낚는' 제목을 짓기보다, 이 책을 원했고 이 책이 꼭 필요한 독자에게 정확하게 도착할 가능성이 높은 제목을 짓는 성실함, 엄정함... 이런 면이 황정은 작가의 매력이고 미덕이지 않나 싶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나는 이 책이 더 많은 독자들에게 읽히기를 바란다. 책을 펼치면 과연 <일기>라는 제목 그대로 '어떤 날들의 기록'이거나 '어떤 사람의 사사로운 기록'으로 읽힐 만한 글들이 이어진다. 팬데믹 이전과 이후 어떤 날들을 보내고 있는지, 평소에 어떤 식으로 글을 읽고 책을 읽는지, 주로 누구와 만나고 어떤 일상을 보내는지 등 소소한 일상 이야기가 주로 나온다. 그러다 틈틈이 등장하는 세월호 사건, 용산 참사, 구의역 스크린도어 사망사고, 직장 내 갑질, 가정 폭력 등의 이야기를 읽으면, 역시 황정은 작가는 고요하고 안온한 일상을 보내는 동안에도 한국 사회의 사각지대, 역사의 이면에 대한 관심을 놓고 있지 않다는 걸 확인하게 된다. 이토록 깊고 넓게 세상을 바라보고 고통에 대해 사유하는 작가가 앞으로 어떤 글을 쓸지 더욱 궁금해지고. 


이 책에서 가장 기억에 남는 글은 <흔>이다. 나도 살면서 성인 남성에게 성희롱 또는 성추행을 당한 적이 몇 번인가 있는데, 어릴 때 그것도 가까운 친족에게 이 글에 묘사된 것과 같은 일을 당했다면 큰 상처가 되었을 것 같다. 이 글을 읽으니 황정은 작가님이 왜 최은미 작가님의 소설집 <눈으로 만든 사람>의 추천사를 썼는지 알 것 같고, 비슷한 문제의식을 공유하는 여성 작가들이 글로서 서로 연대하고 협력하는 모습이 좋아 보인다. 물론 가장 좋은 건 이런 범죄가 완전히 사라져서 가해자도 없고 피해자도 없는 세상이 되는 것이겠지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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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서관 런웨이 현대문학 핀 시리즈 소설선 36
윤고은 지음 / 현대문학 / 2021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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팬데믹 이후로 더 이상 드나들지 못하게 된 장소가 여럿 있는데 그중 하나가 도서관이다. 팬데믹 이전에는 적어도 한 달에 한 번은 집에서 가까운 도서관에 들러서 서가를 둘러보고 관심 있는 분야의 책을 살펴보는 것이 취미였는데, 팬데믹 이후로는 반드시 해야만 하는 일이 아니면 안 하는 쪽으로 선택을 하다 보니 취미였던 도서관 가기가 더 이상 취미가 아니게 되었다. 그래서 윤고은 작가님의 신작 제목이 <도서관 런웨이>라는 말을 들었을 때, 나도 모르게 '반갑다'라는 생각이 들었다. 책을 읽고, 도서관이 주 무대인 소설은 아니고 주인공이 도서관 서가 사이를 런웨이하는 취미(?)를 가진 인플루언서라는 사실을 알았을 때는 역시 윤고은 작가님답게 기발하고 재치 있는 설정이라는 생각이 들었고. 


여행사 직원인 안나는 도서관 서가 사이를 패션쇼에서 모델이 런웨이하듯 걸어가는 장면을 SNS에 올리는 것으로 소소하게 화제를 모으는 북스타그래머이다. 그런 안나가 미국 여행길에 만난 남자와 결혼한 지 얼마 안 되어 갑자기 사라지고, 안나와 함께 북클럽을 하던 지인이 안나를 찾기 위해 안나의 대학 시절 친구인 유리에게 연락을 하면서 본격적인 이야기가 시작된다. 유리는 안나의 행방을 추적하다가 안나가 사라지기 전 도서관에서 <AS안심결혼보험>이라는 제목의 책을 대출한 적이 있다는 사실을 알게 된다. 평범한 책처럼 보이지만 실제로 존재하는 보험상품의 약관집이며, 시중에서 고가에 거래되고 있다는 사실을 알게 된 유리는 안나가 심상치 않은 일에 말려들었을지(또는 스스로 뛰어들었을지) 모른다는 생각을 한다. 과연 안나에게 무슨 일이 벌어진 걸까. 


소설은 유리가 <AS안심결혼보험>을 단서로 안나의 흔적을 따라가는 과정과 <AS안심결혼보험>의 내용이 교차하는 방식으로 진행된다. 처음에는 결혼을 보험 대상으로 본다는 발상이 코믹하게 느껴졌는데, 보험금 환급 대상이 아니라는 이유로 (보험에 가입하지 않았으면 관성적으로 했을) 예단이나 예식을 생략하거나 얼굴도 모르는 친척의 관혼상제에는 참석하지 않는 모습을 보면서 작금의 결혼식 및 결혼 생활이야말로 웃기는(이라고 썼지만 사실은 웃기지도 않는) 요소가 많다는 생각이 들었다. 가장 웃기는 건, '결혼'보험이지만 가입 기간이 만료될 때까지 한 번도 결혼하지 않으면 원금의 130퍼센트를 보장해 준다는 것. 이걸 노리고 결혼할 생각이 없는 사람이 결혼보험에 가입하는 경우도 있다니. 실제로 있다면, 가입하고 싶을지도? 


결혼보험이 도입됨으로써 기존의 결혼 제도가 흔들리고, 팬데믹이 퍼짐으로써 팬데믹 이전 생활에 대한 회의가 늘어나고. 이런 식으로 많은 사람들이 당연하게 생각했던 것들이 전혀 생각해 보지 못한 것의 도입 혹은 발발로 인해 변화하고 붕괴되는 모습을 보여주는 솜씨 또한 훌륭하다. 조금 전까지 이름도 몰랐던 남녀와, 오랫동안 연락하지 않았던 친구와, 공통의 관심사를 가진 불특정 다수의 사람들이 교차하는 공간으로 도서관을 생각해낸 것도 대단하다. 여행지에서 일부러 도서관에 갈 정도로 도서관이라는 공간에 애정이 있고, 도서관 서가에 꽂혀 있는 수천, 수만 권의 책 중에 똑같은 한 권의 책을 고른 사람들이라면, 사랑이든 사건이든 뭔가가 시작되기에 충분한 조건 아닐까. 우연이 운명이 될 수도 있는 곳. 도서관에 가보고 싶다, 오랜만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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