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기 日記 - 황정은 에세이 에세이&
황정은 지음 / 창비 / 2021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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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떤 날들의 기록이고 어떤 사람의 사사로운 기록이기도 해서, 그것이 궁금하지 않은 독자들이 잘 피해 갈 수 있도록 '일기(日記)'라는 제목을 붙여보았습니다."라는 '작가의 말' 속 문장을 읽고 참 황정은 작가답다는 생각을 했다. 책을 한 권이라도 더 팔기 위해 독자를 '낚는' 제목을 짓기보다, 이 책을 원했고 이 책이 꼭 필요한 독자에게 정확하게 도착할 가능성이 높은 제목을 짓는 성실함, 엄정함... 이런 면이 황정은 작가의 매력이고 미덕이지 않나 싶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나는 이 책이 더 많은 독자들에게 읽히기를 바란다. 책을 펼치면 과연 <일기>라는 제목 그대로 '어떤 날들의 기록'이거나 '어떤 사람의 사사로운 기록'으로 읽힐 만한 글들이 이어진다. 팬데믹 이전과 이후 어떤 날들을 보내고 있는지, 평소에 어떤 식으로 글을 읽고 책을 읽는지, 주로 누구와 만나고 어떤 일상을 보내는지 등 소소한 일상 이야기가 주로 나온다. 그러다 틈틈이 등장하는 세월호 사건, 용산 참사, 구의역 스크린도어 사망사고, 직장 내 갑질, 가정 폭력 등의 이야기를 읽으면, 역시 황정은 작가는 고요하고 안온한 일상을 보내는 동안에도 한국 사회의 사각지대, 역사의 이면에 대한 관심을 놓고 있지 않다는 걸 확인하게 된다. 이토록 깊고 넓게 세상을 바라보고 고통에 대해 사유하는 작가가 앞으로 어떤 글을 쓸지 더욱 궁금해지고. 


이 책에서 가장 기억에 남는 글은 <흔>이다. 나도 살면서 성인 남성에게 성희롱 또는 성추행을 당한 적이 몇 번인가 있는데, 어릴 때 그것도 가까운 친족에게 이 글에 묘사된 것과 같은 일을 당했다면 큰 상처가 되었을 것 같다. 이 글을 읽으니 황정은 작가님이 왜 최은미 작가님의 소설집 <눈으로 만든 사람>의 추천사를 썼는지 알 것 같고, 비슷한 문제의식을 공유하는 여성 작가들이 글로서 서로 연대하고 협력하는 모습이 좋아 보인다. 물론 가장 좋은 건 이런 범죄가 완전히 사라져서 가해자도 없고 피해자도 없는 세상이 되는 것이겠지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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