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주 사적인 은하수 - 우리은하의 비공식 자서전
모이야 맥티어 지음, 김소정 옮김 / 까치 / 2023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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베스트셀러 <랩 걸>의 저자 호프 자런은 어려서부터 자연을 좋아해 자연을 탐구하는 과학자가 되었다. <아주 사적인 은하수>의 저자 모이야 맥티어도 비슷하다. 저자는 어릴 때부터 우주를 좋아했다. 지상의 부모님이 다툴 때마다 천상의 부모님인 해와 달에게 기도했고, 학교에서 유일한 흑인 아이라는 사실을 인식할 때마다 밤하늘의 별들을 친구 삼아 놀았다. 그렇게 천문학에 관심을 가지게 되었고, 하버드 대학교 사상 최초로 천문학과 신화학 학위를 동시에 받으며 천체물리학자이자 민속학자로서의 경력을 시작했다. 


이 책은 특이하게도 은하수의 시점으로 우주의 이야기를 풀어낸다. 이 책의 화자인 은하수의 공식 명칭은 우리은하다. 우리은하는 1,000억 개가 훨씬 넘는 항성의 고향이자, 항성들 사이에 50간(참고로 10간은 10의 37승이다) 톤이나 되는 가스를 품고 있다. 우리은하의 나이는 130억 년이 넘고 앞으로 남은 수명은 1조 년 정도 된다. 우리은하 내의 물질은 우리은하 내의 항성들이 죽을 때 생성되는 물질로 형성된다. 인간도 스마트폰도 우리은하 내의 별의 잔재로 만들어졌다는 점에서 동일하다. 


이 책에는 과학적 사실에 기반한 이야기도 나오지만, 우주에 관한 신화나 전설도 나온다. 우리은하는 은하수 외에 우유의 길, 은의 강, 새들의 길, 사슴의 장애물, 미리내 등 다양한 별명이 있다. 고대 아르메니아 사람들은 은하수를 지푸라기 도둑의 길이라고 불렀는데, 이는 아르메니아에 혹독한 추위가 찾아왔을 때 불의 신이 이웃 나라에서 불을 훔쳐 와 수많은 생명을 구했다는 전설에서 비롯되었다. 은하수를 영어로는 'galaxy'라고 하는데 이는 고대 그리스어로 '우유'를 뜻하는 '갈락시아스(galaxias)'에서 비롯되었다. 


과학에 대한 사람들의 오해나 편견을 바로잡는 내용도 있다. 항성의 밝기가 변하는 기간이 절대 밝기와 관계가 있다는 사실을 최초로 발견한 사람은 헨리에타 레빗인데 여성이라서 주목받지 못했다. 항성의 회전 속도는 은하가 가진 암흑 물질의 양이 결정한다는 사실을 최초로 발견한 사람은 베라 루빈인데, 그 또한 여자라는 이유로 동료들에게 조롱당하고 무시당한 과거가 있다. 망원경으로 유명한 허셜은 사실 남매다. 오빠인 윌리엄 허셜과 여동생 캐롤라인 허셜은 함께 장비를 만들고 우주를 탐구했으나 후세에 이름이 전해지고 있는 건 오빠뿐이다. 


블랙홀이라고 하면 우주 한가운데에 있는 칠흑같이 어두운 구멍이 주변 물질을 진공 청소기처럼 빨아들이는 이미지를 상상하는 경우가 많은데 실제로는 그렇지 않다. 블랙홀은 그 주위를 지나가던 물질이 굴러떨어지는 구덩이에 가깝다. 천문학은 서양의 학문으로 여겨지지만 고대 중국인들은 그리스인이나 유럽의 영향을 받지 않은 자신들만의 별자리를 수백 년 이상 발전시켜왔다. 서양의 '과학'이 아니라는 이유로 배제되거나 무시당하는 - 다양한 지역의 과학적 지식과 신화, 전설, SF 문학작품까지도 우주를 이해하는 열쇠가 될 수 있으니 지켜야 한다고 저자는 말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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에도로 가는 길 - 운명을 거슬러 문을 열어젖힌 이방인
에이미 스탠리 지음, 유강은 옮김 / 생각의힘 / 2022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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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세기 일본 여성은 어떻게 살았을까. 노스웨스턴 대학교 역사학과 교수 에이미 스탠리의 책 <에도로 가는 길>은 1804년 일본 에치고(현재의 니이가타 현)에서 승려의 딸로 태어나 자기 힘으로 운명을 개척한 '쓰네노'라는 여성을 통해 당시 여성의 삶은 물론이고 19세기 일본의 정치, 경제, 사회, 문화, 예술 등을 보여주는 논픽션이다. 


쓰네노는 1804년 린센지의 승려 에몬의 장녀로 태어났다. 당시 승려는 사무라이보다 낮지만 평민보다는 높은 계급이었다. 덕분에 쓰네노는 유복한 형편에서 자랐고, 어릴 때부터 혼담이 많았다. 열두 살 때 첫 결혼을 한 쓰네노는 15년 만에 이혼을 당하고 고향으로 돌아온다. 이후 두 번째 결혼, 세 번째 결혼까지 했지만 모두 불행하게 끝이 났고 아이도 남기지 못했다. 집안에서 네 번째 결혼을 준비할 때, 쓰네노는 일생일대의 결단을 내렸다. 에도(현재의 도쿄)로 가는 것이다. 


당시 에도는 일본의 수도는 아니지만 도쿠가와 막부의 근거지로서 가장 빠른 속도로 성장하는 도시였다. 세 번의 결혼 생활을 불행하게 마친 쓰네노로서는 결말이 뻔한 네 번째 결혼을 하느니 새로운 도시로 가서 자기만의 인생을 살아보고 싶다는 꿈을 가졌을 법하다. 하지만 당시에도 여자 혼자 여행하는 건 위험천만한 일이었다. 에도에 사는 친척이나 지인이 있는 것도 아니었고, 생활의 기반을 닦는 데 필요한 초기 자금이 풍족한 것도 아니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집안의 반대를 무릅쓰고 에도로 향한 쓰네노는 1839년 우여곡절 끝에 에도에 도착한다. 쓰네노가 에도에서 구한 첫 일자리가 하녀인 점, 가난한 사람들이 모여 사는 '나가야'에 살았던 점 등 때문에 미야베 미유키의 '미시마야 시리즈' 생각이 많이 났다. 이 책의 내용이 어렵게 느껴진다면, 이 책과 비슷한 시대, 같은 공간을 다루는 '미시마야 시리즈'를 먼저 읽어보는 것도 좋겠다. 


저자는 이러한 연구의 의미가 단지 역사상에 기록되지 않은 실존 인물의 생애를 조명하고 이를 통해 당시 시대상을 다각도로 살펴보는 것에 그치지 않는다고 설명한다. 19세기 일본이 그토록 빠르게 발전할 수 있었던 것은 이런 사연들을 품고 도시로 가서 저임금 노동을 했던 여성 노동자들 덕분이기도 하다는 것을 알아야 한다는 것이다. 20세기 한국의 발전을 이끈 -그러나 저평가된- 여성 노동자들에 대해서도 생각해 보게 만드는 책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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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람들은 죽은 유대인을 사랑한다
데어라 혼 지음, 서제인 옮김, 정희진 해설 / 엘리 / 2023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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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네덜란드 암스테르담에는 세계적으로 유명한 <안네의 일기>의 저자 안네 프랑크의 집을 박물관으로 만든 '안네 프랑크의 집'이 있다. 이곳에는 매년 100만 명이 넘는 관람객이 찾아오는데, 몇 년 전 여기서 일하는 직원이 야물커(유대인 남성이 쓰는 모자)를 썼다는 이유로 고용주에게 질책을 들었다. 유대인의 정체성을 드러내는 것이 박물관의 정치적, 종교적 중립성을 저해한다는 명분이었다." (본문 27-8쪽 요약) 

<사람들은 죽은 유대인을 사랑한다>는 정희진 선생님이 추천사를 쓰시고, 정희진 선생님이 진행하는 팟빵 매거진 <정희진의 공부>에서 소개하셔서 구입한 책이다. 책의 본문에 나오는 위의 일화를 듣고 책을 안 살 수가 없었다. 다른 장소도 아니고 유대인 박해를 상징하는 장소에서 유대인 직원에게 유대인 정체성을 드러내지 말라고 했다니, 너무하지 않은가. 한편으로는 정치적, 종교적 중립성을 준수한다는 명목으로 자행되는 약자, 소수자 차별 및 혐오를 선명하게 보여주는 예시라는 생각도 들었다. 

이 책을 쓴 데어라 혼은 1977년 미국 뉴저지에서 태어나 하버드대학교에서 히브리 문학과 이디시어 문학을 공부했고 비교문학 박사학위를 받았다. 유대인에 관한 소설을 다섯 편 집필했으며, 이 책은 저자가 집필한 첫 번째 논픽션 도서다. 이 책에는 모태 유대교 신자이자 대학에서 유대교와 유대 언어, 유대 문학, 유대 문화 등을 오랫동안 공부하고 연구한 학자, 전문가로서 저자가 직접 경험하거나 관찰한 반(反)유대주의의 사례들을 소개한다. 

사실 나는 유대교에 대해 잘 모르고, 필립 로스나 니콜 크라우스 같은 유대인 작가들의 소설을 통해 간접적으로 유대인의 삶이나 유대인들의 문화, 역사에 대해 접했을 뿐이다. 어떻게 보면 이 책을 읽은 것이 유대인, 정확히는 유대인을 차별하고 혐오하는 반(反)유대주의에 대해 가장 자세히, 깊이 있게 배운 최초의 계기다. 

저자는 앞서 언급한 '안네 프랑크의 집' 사건 외에도 하얼빈에 남아있는 유대인의 문화유산, 홀로코스트 문학이나 영화의 영웅이 주로 비유대인인 문제, 유대인 서사는 우울하고 불편해서 읽기 싫다는 편견(의 탈을 쓴 혐오), 홀로코스트에 대해 조명하면 할수록 모방 효과에 의해 차별과 혐오가 기승하고 '홀로코스트 정도는 되어야 유대인 혐오. 아니면 유대인 혐오 아님'이라는 식의 백래시 현상이 일어난 것에 대해서도 설명한다. 

정희진 선생님이 해설에 쓰셨듯이, 이 책은 기독교 중심적인 서양 사회가 어떤 식으로 타 종교를 탄압하는지를 보여주는 동시에, 남성 중심적인 인류 역사가 어떤 식으로 여성을 타자화했는지를 생각해 보게 한다. 사람들이 '죽은 유대인'(만)을 사랑하는 것과 마찬가지로, 남자들은 '죽은 여성'만을 사랑한다. (여기서 '죽은'은 물리적 죽음만이 아니라 정신적 죽음-대상화, 비인간화 등등-을 포함한다). 

저자가 열 살 아들과 셰익스피어의 '희극' <베니스의 상인> 오디오북을 듣는 일화도 재미있었다. 저자는 작품의 빌런인 샤일록이 유대인이라는 점과, 샤일록에 대한 묘사가 당대의 (그리고 현재의) 반유대주의 정서를 반영하고 있다는 점 때문에 이 작품을 좋아하지 않았다. 그러나 '살코기 1파운드'가 나오는 이야기를 듣고 싶다는 아들의 간청으로 25년 만에 이 작품을 다시 (귀로) 읽었고, 읽으면서 작품 전체가 유대인을 향한 '가스라이팅'이라고 느꼈다. 이런 식의 해석도 흥미로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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금강경 마음공부 - 불안과 두려움을 다스리고 초조하지 않게 사는 법 불경 마음공부 시리즈
페이융 지음, 허유영 옮김 / 유노북스 / 2023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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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음이 답답하고 불안할 때 읽을 책들을 사 모으는 습관이 있다. 전에는 주로 서양 철학 책을 샀는데 최근에는 동양 철학 책에 눈길이 간다. <금강경 마음공부>는 언젠가 김연수 작가가 <금강경>을 즐겨 읽는다는 말을 했던 것이 생각나서 구입했다. 저자는 1990년부터 불경을 연구한 연구가이자 다양한 책을 저술한 작가로, 전문성과 대중성 모두 갖춘 듯해 믿음이 갔다. 


금강경은 무엇인가. 금강경은 불교에서 아주 중요한 경전이며, 불교학의 기본이 되는 교법을 담고 있다. 금강경의 '금강'에는 두 가지 의미가 있다. 하나는 모든 것을 꿰뚫을 수 있는 빠르고 맹렬한 번개라는 뜻이고, 다른 하나는 가장 단단한 암석인 다이아몬드를 뜻한다. 한 마디로 금강경은 온갖 번뇌가 찾아와도 번개처럼 깨뜨려 날려 버릴 수 있고, 마음이 단단해져서 그 어떤 번뇌에도 흔들리지 않을 수 있는 방법을 담고 있다. 그렇다면 그 방법은 무엇인가. 


불교에서 말하는 지혜는 부자나 유명인이 되는 기술과는 거리가 멀다. 불교의 지혜는 세상의 모든 도리를 알고, 세상 만사에 집착하지 않으며, 오로지 최고의 정신적인 경지를 추구하는 것이다. 금강경은 사유 방식을 바꾸는 책이다. 돈을 많이 버는 방법, 대결에서 승리하는 방법이 아니라 돈에 대한 집착, 승리에 대한 갈망 자체를 회의하도록 이끈다. 인간을 미혹하는 것들로부터 벗어나 '지금 이 순간'을 살게 한다. 


총 10장 중에서 가장 인상적이었던 장은 6장 '모든 집착을 내려놓아라'이다. 부처는 자아의 상, 타인의 상, 중생의 상, 생명이 존재하는 시간의 상에 얽매여선 안 된다고 강조한다. 상(相)에 대한 해석이 다양한데, 나는 선입견이나 편견이라고 이해했다. 부처는 어떤 대상의 개념이나 명칭, 정의 또한 상으로 보았다. 변기를 두고 '샘'으로 명명한 현대 예술가 마르셀 뒤샹이 떠오르기도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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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의 문화유산답사기 12 : 서울편 4 - 한양도성 밖 역사의 체취 나의 문화유산답사기 12
유홍준 지음 / 창비 / 2022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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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의 문화유산답사기> 서울편 4권은 크게 강북편과 강남편으로 나뉜다. 강북편의 메인은 성북동이다. 성북동 하면 강북의 부자들이 많이 사는 동네로도 유명하지만 간송미술관, 수연산방, 길상사 같은 고즈넉한 장소들이 많이 있는 것으로도 알려져 있는데, 책에는 후자에 관한 이야기가 주로 나온다. 장소들과 함께 이태준, 김용준, 김환기, 김향안, 김자야, 백석, 조지훈, 최순우, 박태원, 한용운, 김광섭 등 한국의 근대 문화와 예술을 논함에 있어 빼놓을 수 없는 인물들의 이야기가 흥미롭게 펼쳐진다. 


강남편은 선정릉과 봉은사를 다루고, 강서구 가양동에 위치한 겸재정선미술관과 허준박물관, 중랑구에 위치해 있으며 오세창, 유관순, 박인환, 이중섭, 조봉암, 한용운, 문일평, 방정환, 지석영, 김상용 등이 묻힌 망우리 역사문화공원에 대한 소개가 나온다. 모두 한국인이라면 누구나 알 만한 위인들인데, 그동안 이들의 묘가 어디 있는지도 몰랐다는 사실이 부끄럽다. 런던의 웨스트민스터 사원이나 파리의 페르 라셰즈 비슷한 공간이 서울에도 있고, 그곳이 '망우리 공동묘지'라는 옛 이름으로 오랫동안 알았던 곳이라는 사실을 이제라도 알게 되어 다행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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