프로이트의 환자들 - 정신분석을 낳은 150가지 사례 이야기
김서영 지음 / 프로네시스(웅진) / 2010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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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3 때 짝이 공부를 굉장히 잘 했다. 반에서 4,5등 정도였던 나와 달리 그 친구는 전교권에서 '놀고' 있었고, 당시만 해도 특목고, 외고 개념이 없었는데도 그 친구는 일찍부터 알고 민사고 입시를 준비하고 있을 정도였다. (물론 합격했다.) 공부만 잘 하는 것이 아니라 책도 많이 읽고 성격도 좋아서 친구인데도 배울 점이 많았다.   

언젠가 그 친구한테 장래희망이 무엇이냐고 물은 적이 있다. 공부 잘하는 친구들이 대개 그렇듯이 법조인이나 의사가 되는 것이 아닐까 싶었는데, 놀랍게도 그 친구는 '프로이트 같은 정신분석가가 되는 것'이라고 대답했다. 그 때 나는 프로이트가 누군지, 정신분석이 뭐 하는 학문인지도 몰라서 '아, 그래? 대단하네...' 정도로 얼버무렸는데, 나는 이름조차 모르는 사람을 존경한다는 것만으로 친구와 프로이트라는 이름은 오랫동안 내 마음속에 같이 자리하고 있었다. (+ 나중에 들은 소식에 따르면 친구는 현재 정신분석가가 아닌 다른 길을 걷고 있다고 한다. 무슨 일을 하더라도 잘 할 친구지만 친구의 꿈을 응원했던 사람으로서 조금 아쉽다.)  

 

그 후 고등학교, 대학교를 다니면서 정신분석학과 심리학에 대해 주워듣는 것이 생겼고 자연히 프로이트가 어떤 학자인지 알게 되었다. 학문적으로 대단한 업적을 남긴 학자이기는 하지만, 남근과 거세, 항문 성애, 근친 상간 등 성(性) 문제에 지나치게 집착했다는 점 때문에 좋아하기는 어려웠다. (친구가 왜 프로이트를 좋아한 것인지 한동안 심각하게 생각한 적도 있다.)  

그러나 <프로이트의 환자들>을 읽으면서 생각이 바뀌었다. 그 유명한 오이디푸스 콤플렉스, 거세, 남근, 항문 성애, 근친상간 같은 내용이 그의 이론에서 중요한 부분을 차지하는 것은 사실이다. 하지만 그러한 이론이 나오기까지 프로이트가 실시한 수많은 정신분석과 자체적인 연구, 분석에 대해 모르면 겉만 핥고 속은 까보지도 않은 것과 같다.     

 

정신분석의 마지막 목표는 탓하지 않는 주체를 만드는 것입니다. 그 사람은 자신의 삶을 도전과 변화로 채우겠지요. 후회 없는 삶을 사는 사람에게는 남을 돌볼 여유도 생깁니다. 내 삶이 행복하기 때문이죠. 이것이 프로이트의 정신분석입니다. 남근과 오이디푸스와 거세와 항문 성애는 이 이야기들을 하기 위해 프로이트가 도움을 구한 도구들입니다. 그것들은 중심이 아니라 덤입니다.(p.253) 

이 책은 저자가 프로이트 영어판 전집 스물네 권을 하나하나 읽으며 사례만을 모아 정리하고, 사례의 의미와 시사점, 정신분석학과의 연관 등을 꼼꼼하게 설명한 책이다. 저자는 서문에서 '어떻게 하면 가장 효과적으로 대중에게 전달되는 정신분석 이야기를 쓸 수 있을까 고민했'다고 밝혔는데, 저자의 바람은 이루어진 것 같다. 나처럼 프로이트에 대한 부정적인 고정관념을 가지고 있던 사람도 사례를 읽으며 편안하게 정신분석의 세계에 빠질 수 있었고, 성경의 욥기 분석, 레오나르도 다빈치 분석 등 (학문적으로는 유명하겠지만) 그동안 몰랐던 프로이트의 자체적인 연구 성과도 알 수 있었다.  

무엇보다도 프로이트의 분석에 대해 옳다, 그르다 판단하는 것이 아니라 있는 그대로를 소개하는 데 중점을 두었고, 그의 이론 중에 현실과 맞지 않는 것, 후대에 틀리다고 밝혀진 것조차도 소개하여 프로이트에 대한 생각을 넓혀준 점이 좋았다. 세상에 완전한 이론이 어디 있겠는가.   

 

멈추지 않고 분석하지 않고 사는 사람이 타인과 갖는 관계를 우리는 상상계라고 부를 수 있습니다. 상상계 안에서 나는 가능한모든 변명과 이유를 모아 '나'라는 허상을 지키려 애씁니다. 그런 사람은 굉장히 바빠지지요. 틈이 생기는 족족 메워야 하기 때문입니다. 내 이미지가 좀 무너져도 괜찮다고 생각하는 사람은 진정 성숙한 사람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여기저기 균열이 생긴 불완전한 인생이지만 뭐 좀 그래도 괜찮습니다. 그런 사람은 여유가 있지요. 성급히 메우고 확인하고 불안해할 필요가 없기 때문입니다. 자신의 선택이 과연 정답인가를 확인할 수 없지만, 상관없습니다. 살면서 그 선택을 정답으로 만들면 되기 때문입니다. '그것'에 의해 인생이 휘둘리는 사람이 있는 반면 그것이 있던 곳에 당당히 설 수 있는 사람이 있습니다.  

끝없이 불안해하고 끝없이 확인하며 다른 사람의 눈치를 보는 사람이 있는 반면 내 인생의 중심에서 내가 원하는 것에 대해 이야기할 수 있는 사람이 있습니다. 정신분석은 우리에게 전자에서 후자로 이행하기를 촉구합니다.(pp.210-1)

정신분석 사례에 이어지는 저자의 설명도 일품이다. 프로이트에 따르면 인간은 자신에 대한 거짓된 상, 즉 허상 또는 이미지를 가지고 있고 이것을 지키기 위해 노력한다. 하지만 이 허상과 실제 자신의 간극이 커지면 실수를 하거나 갈등이 생기고, 심지어는 몸에 병이 나기도 하며, 꿈을 통해서도 나타난다. 다시말해 사람의 외면과 내면이 일치하지 않을 때 고통을 겪는 것인데, 고통이 있을 때 꿈으로 나타나는 무의식을 분석하고 내면 속에 침잠하는 학문이 바로 정신분석학이라는 것이다.     

 

내가 무심코 하는 이야기, 행동, 실수를 적어놓고 그것에 대해 치열하게 생각한다면 우리는 그 안에 담겨 있는 내 과거의 이야기를 듣게 될 것입니다. 프로이트가 제시한 방식대로 그 사건과 그 말과 그 행동과 그 실수가 내 과거의 어떤 순간과 닮았는지 기억해내고 그 과거의 순간으로 돌아가 주위를 두리번거리면 당시의 내 모습이 보입니다. 과거의 내가 아무 생각 없이 하고 있는 일들을 바라보면 내 괴로움과 분노와 외로움이 보일 것입니다. ... 하지만 그 이상하고 불합리한 행동들은 괴로움을 참고 견디기 위해 내가 사용했던 전략들입니다. 나만 참으면 된다는 생각으로 혼자 외롭게 견디려다 보니 그렇게 된 것일 수도 있습니다. 나를 이해하려는 노력은 내 이상한 모습을 두 팔로 감싸 안게 만듭니다. 괴로운 반복을 들여다보며 고개를 끄덕여주어야 합니다. 그리고 그것을 떠나보낼 수 있어야 합니다. (p.251)

이렇게 내면을 알게 된 다음에야 인간은 그것을 어떠한 방식으로든 승화시킬 수 있게 된다. 가령 프로이트는 복잡한 배경을 가진 가정에서 태어나 유태인이라는 이유로 죽을 때까지 고통받았으며, 이복형에 대한 동경과 사촌누나에 대한 사랑 등 보통 사람들보다도 다난한 마음을 안고 살았던 것 같다. 그러한 감정이 인간의 정신을 분석하는 것으로 이어졌고 결국 대단한 학문적 성과를 이루었다. 프로이트가 분석한 레오나르도 다빈치도 마찬가지다. 그 또한 복잡한 가정에서 태어났고 어머니에 대해 남다른 감정을 가지고 있었는데, 이로 인해 훗날 남긴 작품들 속에 등장하는 여성들의 모습이 실제와 다르게 왜곡되어 나타났다고 한다. (대표적인 예가 모나리자라고 한다.)    

 

이 역사상의 천재들만 보아도 알 수 있듯이, 고통 없고 상처 없는 사람 없다. 하지만 그 고통과 상처를 아름답게 승화하는 사람은 많지 않다. 대개는 그 원인조차 몰라 번민하고 다른 사람들을 상처주다가 인생을 마감한다. 그러나 괴롭더라도 고통을 직시하고 상처를 어루만지다보면 언젠가는 아물고 새 살이 돋을 것이다.  

그러고보니 지금으로부터 딱 10년 전인 중3 때 그 친구가 했던 말들 중에 유독 '프로이트를 존경한다'는 말이 기억에 남는 것도 무언가 이유가 있는 것 같다. 언젠가 프로이트의 책을 읽으며 마음의 상처를 하나둘 어루만지게 될 줄 미리 알았던 것일까, 아니면 친구를 동경하는 마음이 그 문장으로써 기억된 것일까? 책은 다 읽었지만 이 문제는 더 생각해봐야 할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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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눕 - 상대를 꿰뚫어보는 힘
샘 고슬링 지음, 김선아 옮김, 황상민 감수 / 한국경제신문 / 2010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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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책이 처음 나왔을 때 표지만 보고 자기계발서인줄 알았다. 당시 '스틱'이라는 책이 있었는데 비슷한 책이라고 생각했던 것 같다. (그렇다. 스눕이 무슨 뜻인지 몰랐다. 미안하다 무식하다...) 그러다가 최근에 이 책이 그 사람이 가진 물건이나 방 인테리어만 보고 성격이나 심리를 추측하는 기법에 대한 내용이라는 것을 알게 되었다. 원래 수사, 탐정물 같은 걸 엄청 좋아하는 데다가 요즘 보고 있는 미드 '라이 투 미'와도 연결이 되는듯 하여(지금 생각해보니 '셜록홈즈'가 비슷하지 않나 싶다.) 엄청난 의욕을 가지고 이 책을 골랐다.  

일단 저자는 인간의 성격을 성실성, 개방성, 외향성, 동조성, 신경성 등으로 분류하고 각 성격의 특징에 대해 설명한다. 책에 실린 테스트를 해보니 나는 '성실성'으로 나왔다. 이러한 성격은 어떤 책이 책장에 꽂혀 있는지, 책상이 얼마나 깔끔하게 정리되어 있는지, 사무실 내 액자나 장식이 어떤 방향으로 배치되어 있는지 등을 보아도 파악할 수 있다고 한다.  

가령 같은 사무실이라도 손님이 앉을 자리가 충분히 마련되어 있다면 그 사무실의 주인은 외향적인 사람이라고 볼 수 있고, 화목한 가족의 모습이 담긴 사진이 손님이 아닌 자신이 보는 쪽으로 배치한 사람은 가족을 매우 좋아하는 사람이라고 볼 수 있다. 방에 지도가 많이 있으면 개방적인 사람이라고 볼 수 있고, 어린시절을 떠올리게 하는 물건이 많이 있는 사람은 어린시절에 대한 추억이 많고 애착이 많은 사람이라고 한다.

재미있는 분석이지만, 한편으로는 어느 정도 관심과 관찰력만 있으면 이 정도 추측은 누구나 할 수 있는 것 아닐까 싶기도 하다. 스누핑이라는 것이 얼마나 과학적으로 신뢰할만한 것인지는 그의 후속연구를 지켜보고 답을 내리고 싶다. 

아래는 저자에 대한 미국 뉴스 보도 영상이다.  

http://abcnews.go.com/video/playerIndex?id=529024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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물건 이야기 - 너무 늦기 전에 알아야 할
애니 레너드 지음, 김승진 옮김 / 김영사 / 2011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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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근 몇 권의 책을 읽으면서 환경 문제는 다원적으로 고려되어야 하는 문제라는 것을 알게 되었다. 먼저 환경 문제는 소비 문제다. 기왕이면 친환경 제품을 사는 것이 낫고, 아예 안 사는 것도 좋다. 소비 문제가 나왔으니 생산 문제도 된다. 기업은 친환경 제품을 생산해야 할뿐만 아니라 생산 공정도 친환경적으로 개편해야 한다. 소비와 생산 문제이니 분배 문제도 된다. 한정된 자원과 부를 어떻게 분배하는가 하는 경제 문제이며, 이는 곧 정치 문제이기도 하다. 자원을 가진 집단과 자본을 가진 집단 간의 대결이며, 이는 국내적으로나 국제적으로나 중요한 문제다. 이제까지 환경 하면 친환경 제품을 구입하고, 되도록 쓰레기를 줄이고 전기 사용을 줄이는 정도의 문제로 생각했는데(물론 이것도 매우 중요한 습관이다!), 너무 안이한 생각이었던 것 같다.

호텔의 작은 카페에 앉아 옆 테이블에서 들려오는 기업인과 원조단체 활동가의 대화를 들으면서 카페오레를 마셨다. 그때 나는 저 수영장 가득 물이 반짝이는 것을 알고 있었고, 내 커피 한 잔이 나오려면 약 140리터의 물이 필요하다는 사실을 알고 있었으며, 나처럼 몰골이 꾀죄죄한 사람이 근사한 호텔 화장실을 20분이나 쓰도록 허용한 이유는 내 피부색(백인)과 주머니 속의 아메리칸익스프레스 카드라는 것을 알고 있었다. 깨끗한 물이 없어서 1년 안에 죽을지도 모르는 수십만명의 어린이가 이런 카드를 한 장씩 갖고 있다면, 아니 집 근처에 안전한 수돗물이라도 나온다면, 이 아이들의 삶은 얼마나 달라질 것인가. (p.49)

얼마전에 읽은 <노 임팩트 맨>, <굿바이 쇼핑>에 이어 애니 레너드의 <물건 이야기>를 읽었다. (내 마음대로 이 책들을 '친환경 3부작'이라고 부르고 있지만 작가도 다르고, 출판사도 다르고, 주제가 비슷한 것 빼고는 연관성은 없다.) <노 임팩트 맨>은 1년 동안 아무 것도 '소비'하지 않고 살아보려고 노력한 남성의 체험기이고, <굿바이 쇼핑>은 역시 1년 동안 아무 것도 '구입'하지 않고 살아보려고 노력한 여성의 기록이다. (<굿바이 쇼핑>의 저자는 물건 구매만 줄인 것이고, <노 임팩트 맨>의 저자는 물건 구매뿐 아니라 전기, 수도 등 소비 자체를 줄였다. <노 임팩트 맨>이 좀 더 '독한' 책이라고 할 수 있다.) 앞의 두 권이 체험기, 저널 같은 성격인 반면 <물건 이야기>는 보다 전문적이고 의식적이다. 그래서 읽는 데 좀 고전 했다. 앞의 두 권을 읽고 정리하는 차원에서 이 책을 읽으면 좋지 않을까 싶다.    

오늘날, 더 새롭고 근사한 물건을 더 많이 사야 한다는 압력은 정체성과 지위를 표현해야 한다는 압력과 관련이 있다. <미래를 위한 경제학, 자본주의를 넘어선 상상>에서 구스타브 스페스는 이렇게 설명한다. "심리학자들에 따르면, 사람은 '튀는 것'과 '묻어가는 것' 둘 다를 통해 안정성을 추구하는 경향이 있다. 그런데 소비는 이 두 가지를 모두 충족시킨다. 자본주의와 상업주의 문화는, 물건을 소유하고 그것을 과시하는 것을 통해 '튀는 것'과 '묻어가는 것' 둘 다를 강조한다." (p.294)

다양한 이슈가 소개되지만 핵심적인 주제는 '소비'라고 할 수 있다. 저자는 소비에 있어 중요한 것은 친환경적인 제품을 소비하는 것이 아니라 소비 자체를 줄이는 것이라고 강조한다. 스스로를 '합리적인 소비자'라고 생각하는 사람이라도 1+1, 파격 세일 같은 문구에 마음이 약해지고 결국 지갑을 열고 말았던 적이 있을 것이다. 이상하게도 그렇게 산 제품은 제대로 쓰지 못하고 버리거나 남에게 줘버리는 경우가 많다. 당장은 싸게 사서 얼씨구나 좋다 싶지만, 결과적으로는 자원을 낭비한 셈이 되고 지구 전체 환경에 악영향을 주는 게 된다. 

게다가 그렇게 저렴한 가격에 나오는 제품은 그 제품보다 싼값에 착취되고 있는 후진국 노동자의 손으로 만들어진 경우가 많다. 그 노동자들은 대개 사회적 약자인 여성, 아동인 경우가 태반이다. 남북 격차를 개선해야 한다, 사회적 약자들을 보호해야 한다는 의식이 있는 사람이라도 '이게 무슨 상관이 있겠어' 하는 생각에 저지른 소비 한 번으로 본의 아니게 그들을 더 큰 어려움에 처하게 하고 있는지도 모른다. 

코미디언 제리 사인펠트는 2008년 투어쇼에서 "기본적으로 집이란 쓰레기 제조 센터"라고 말했다. 집에 오자마자 물건은 쓰레기로 변신하기 시작한다. 집에 들여온 물건은 처음에는 잘 보이게 전시된다. 그런 다음 찬장이나 선반에 들어갔다가 다시 벽장으로 옮겨진다. 그 다음에는 차고의 상자에 처박힌다. 그리고 쓰레기가 될 때까지 거기 처박혀 있는다. (p.321)  

그렇다고 저자의 주장이 소비를 전혀 하지 말자는 뜻은 아니다. 단적인 예를 들자면, 저자는 프로포즈를 하는 남자친구에게 비싼 신품 반지 대신 중고 반지를 달라고 조건을 달았다고 한다. 영화 <블러드 다이아몬드>을 본 사람이라면 다이아몬드 산업 이면의 추악한 모습을 기억할 것이다. 그렇게 생산되는 새 다이아몬드 반지 대신 낡은 중고 반지를 구입하면 굳이 나를 위해 새로 광물을 더 캘 필요가 없다. 게다가 몇십년, 몇백년 전 그 반지를 두고 사랑을 맹세했던 이름 모를 연인들을 상상하면 반지의 의미가 더욱 로맨틱하게 느껴질 것이다. 나도 나중에 연인한테 꼭 새 반지 대신 중고 반지를 달라고 해야지.    

<물건 이야기>는 영화도 유명하다고 하는데 못 찾았다. 대신 인터넷에서 영상을 찾아보니 여러 개가 나왔다. 이런 영상들은 인터넷상에서뿐 아니라 학교에서 수업 부교재로 활용되며 많은 이들에게 무분별한 소비의 위험성과 환경의 소중함을 일깨우고 있다고 한다.  http://youtu.be/9GorqroigqM 

영상을 보다 보니 <물건 이야기>는 단순히 환경을 살리자는 정도의 문제가 아닌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소비의 대상에 불과한 물건의 이력과 의미를 곰곰이 생각하고, 내 몸 가까이에 두고 쓰는 물건을 더욱 아끼고 사랑하는 것은 얼마나 아름다운 일인가. 그에 반해 사자마자 서랍장, 옷장, 찬장에 처박히고 결국 쓰레기로 운명을 다하는 물건은 또 얼마나 많은가. 불필요한 소비는 물건을 사는 것이 아니라 쓰레기를 사는 것이라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하루에도 수많은 물건을 소비하고 구매하는 '호모 이코노미쿠스' 1人으로서 반성, 또 반성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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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운오리새끼, 날다 - 신경정신과 전문의 양창순의 인간관계 멘토링
양창순 지음 / 좋은생각 / 2011년 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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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학교 신입생 시절, 학교 행사를 통해 4학년 선배 한 명을 알게 되었다. 1학년 꼬꼬마 눈에 졸업을 앞둔 4학년 선배는 어찌나 근사하고 대단하게 보이던지... (졸업하고 보니 1학년이나 4학년이나 거기서 거긴 것 같지만...) 그 선배에게 만약 신입생 시절로 돌아간다면 무엇을 하고 싶은지 물었다. 그런데 선배는 영어공부도, 취업준비도 아닌, '심리학 공부를 하고 싶다'고 대답했다. 심리학 공부라니... 당시만 해도 심리학이 뭘 하는 학문인지도 모르고, 심리를 알아서 뭣에 써먹는가 싶었던 내 귀에는 선배의 대답이 생경하게만 들렸다. 하지만 이제는 알 것 같다. 한살 한살 나이를 먹으며 인간관계에 치이고 사회의 벽을 실감하고 보니 공부 중 제일은 나를 알고 남을 이해하는 것이며, 그런 학문이 바로 심리학이라는 것을 말이다.   

한동안 선배의 말을 잊고 살다가(선배님, 죄송합니다...) 언제부터인가 심리학에 관련된 책을 정기적으로 읽고 있다. 이번에 읽은 <미운오리새끼, 날다>는 신경정신과 전문의 양창순이 월간 <좋은생각>에 연재한 <양창순의 작은 속삭임>이라는 칼럼을 묶은 책이다. 책에 소개된 사연들은 특정 세대나 집단에 집중되지 않고 다양하며, 회사에 다니고 있지만 적성에 맞지 않아 때늦은 진로 고민을 하고 있는 직장인, 가족 간의 불화를 견디기 힘든 주부, 만나는 남자마다 쉽게 질려서 헤어지는 여성, 어린시절의 트라우마를 극복하지 못하고 있는 남성 등 주변에서 볼 법한 사례가 대부분이다. 어려운 심리학 용어도 안 나오니 편안하게, 남이 카운셀링 받는 것을 관찰하는 기분으로 읽을만 하다. 

 

몇 년이 걸릴지도 모를 공부를 다시 시작해야 하는 데다 직장 생활과 병행해야 하는 탓에 스트레스가 크다고 하셨는데, 저항은 사실 긴 인생에 비하면 그다지 문제가 되지 않는다고 생각해 보세요. 아니면 '그래, 힘들게 고생할 것 없지, 뭐' 하며 하고 싶은 일을 접은 채 그만 나이가 들어 버린 자신을 상상해 보세요. 그러면 지금 어떤 선택이 현명할지 해답이 나오지 않을까요? (p.33) 
실패하는 것이 두려워 아무것도 하지 않고 있으면 결국 인생 전체가 실패작이 될 수도 있습니다. 하지만 무엇이든 시도한 끝에 실패하는 것은 다릅니다. 그것은 다시 시작하라는 뜻을 담고 있기 때문입니다. 그것을 깨달을 때 우린 실패에 대한 두려움을 극복해 갈 수 있습니다. (p.239)

진로에 대한 고민은 이제 청소년, 청년들만의 것이 아니다. 평생직장, 은퇴, 정년 퇴직 등의 개념은 옅어지는데 수명은 늘어나니 한 살이라도 젊을 때 자기가 진짜로 좋아하는 일을 하지 않으면 나이를 먹어서도 진로 고민을 하지 않을 수 없는 것이다.  

번듯한 직장에 다니고 있으나 '가지 않은 길'에 대한 미련으로 고민을 하고 있는 직장인에게 저자는 돈, 남들의 시선, 가족의 부담 생각은 잠시 접고, 자신의 인생을 두고 무엇이 가장 중요한지 생각해보라고 조언한다. 만약 좋아하는 일을 하는 것이 최선이라는 답이 나온다면 실패를 두려워하지 말고 달려들라고 한다. 흔한 조언이지만, 흔한만큼 이 이상의 조언도 없는 것 같다. 공부든 일이든 원하는 것이 있는데도 두려워하며 회피하는 것은 자존감의 부족, 또는 실패로 인한 트라우마 등등에서 비롯된 것인 경우가 많다. 자기가 원하는 일 하나 못 하는 사람이 과연 누구를 돕고, 무엇을 해낼 수 있을까.    

 

내성적인 사람일수록 '내가 붙임성도 있고 사람들과 거침없이 잘 어울리고 말도 잘하고 씩씩하면 얼마나 좋을까.'하고 공상합니다. 그리고 결코 그렇게 될 수 없는 스스로에게 절망하며 불안해 합니다. 하지만 오히려 나의 내성적이고 수줍음 많은 성격이 상대방에게 호감으로 작용할 수도 있으며 장점이 될 수도 있습니다. 그것을 믿고 마음의 문을 연다면 대인관계도 그만큼 좋아질 것입니다. (p.75)

내성적인 사람에 대한 조언도 나온다. 내성적인 사람으로서 눈이 번쩍 뜨이는 부분이었다. 내성적인 성격 때문에 인간관계에 어려움을 느끼는 사람에게 저자는 내성적이고 수줍음 많은 성격이 상대방에게 호감으로 작용할 수도 있다고 조언한다. 정말 그렇다. 예전에 EBS에서 방영한 성격 관련 프로그램을 본 적이 있는데, 모 고등학교 학생들을 대상으로 한 실험에서 외향적인 아이보다 내성적인 아이가 친구로서 더 인기가 많다는 결과가 나왔었다. 나만 해도 너무 밝고 적극적이고 말을 잘 하는 사람은 친해지기는 쉬워도 오랫동안 마음을 터놓고 사귀는 친구가 되기는 어렵다. 이처럼 내향적인 성격은 장점이 될 수도 있다. 

 

학교 다닐 때 스스로는 시험을 망쳤다고 생각하고 속상해 했는데 의외로 시험 점수가 잘 나올 때가 있는 것처럼, 객관적으로 봤을 때는 말을 잘했는데도 스스로 못했다고 생각하는 경우가 많습니다. 이 세상에서 가장 혹독한 비판자는 나 자신이라는 것을 항상 명심하세요. 스스로에게 너무 엄격한 잣대를 적용하지 마시길 바랍니다. (p.189) 

'이 세상에서 가장 혹독한 비판자는 나 자신'이라니... 찔린다. 사실 사람들은 나한테 그렇게 관심이 많지 않다. 그걸 받아들이면 사는 게 한결 가벼워질 것이다. 내가 그걸 알게 된 계기는 '옷'이다. 아주 옷을 잘 입었거나 못 입었을 때를 제외하면, 사람들은 내가 무슨 옷을 입는지 잘 모른다. 입장을 바꿔서 나도 남이 무슨 옷을 입는지 잘 모르지 않나. (나는 그렇다) 그런데도 사람들은 옷장에 옷이 한 가득 들어있는데도 옷이 없다며 툴툴 댄다. 어제 입었던 옷을 오늘 다시 입고, 내일 또 입는다 해도 그걸 아는 사람은 나뿐이다. 그걸 알아주는 사람은 나한테 관심이 있는 사람이니 잘 해줘야 한다 ^^ 

남이 나를 어떻게 볼까 하는 생각은 접고, 나는 나를 어떻게 보는지, 진짜 '나'에 대한 생각을 더 많이 할 필요가 있다. 내가 뭘 원하는지, 뭘 하면 즐겁고 행복한지, 진짜 나는 어떤 사람인지... 

   

간혹 극단적인 사례도 있지만, 대개 일상 생활에는 문제가 없고 남들이 보기에는 멀쩡해 보이는데 내적으로, 또는 가정에서 문제를 겪는 경우가 많아서 놀라웠다. 거리에서 만나는 사람들, 아니면 친구나 지인들의 괜찮아 보이는 표정 뒤에는 저마다의 고민이나 갈등이 있겠지. 평생 공부하고 알려고 노력해도 전부 이해할 수는 없겠지만, 적어도 나 한 사람, 내 가족, 친구의 고민을 이해할 수만 있어도 인간관계로 인한 고민은 덜 수 있지 않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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발달장애를 깨닫지 못하는 어른들
호시노 요시히코 지음, 임정희 옮김 / 이아소 / 2010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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발달장애는 결코 드문 일이 아니다. 어떤 통계를 보면, 15세 미만 아동의 10퍼센트 이상이 발달장애 증상 중 한 가지를 나타내고 있다는 결과도 나와 있다. 그 가운데 많은 경우가 발달장애라는 것을 깨닫지 못한 채 어른이 되고 있다고 한다. '장애'라는 말 때문에 사람들이 오해를 하는 경향이 있는데, 발달장애는 지능 발달하고만 관계가 있는 것이 아니다. 학교 성적이 상위권에 드는 아이 중에도 발달장애 아이가 있다. 뭘 숨기겠는가. 발달장애 연구와 치료에 종사하고 있는 나 자신이 사실은 발달장애인이다. (pp.4-5)


 

 

 

발달장애가 15세 미만 아이들 중에 10% 이상이 가지고 있는 증상이라면 30명이 수업받는 교실에서 적어도 3명은 발달장애를 가지고 있다는 뜻이다. 돌이켜보면 학창시절 유난히 산만하고, 쉴새없이 떠들고, 주변 정리는커녕 알림장도 제대로 못 쓰는 친구들이 한 반에 몇 명씩 있었다. 지금 생각해보면 발달장애 증상과 비슷한데, 슬프게도 선생님들은 그걸 아는지 모르는지 그 친구들을 무턱대고 야단만 쳤다. 그 친구들이 어쩌면 모차르트나 피카소처럼, 발달장애에도 불구하고 엄청난 천재성을 발휘할 수 있었을지도 모르는데, 재능을 키워주기는커녕 약간의 발달장애 증상조차 눈치채지 못하고 마음에 상처만 입혔으니...

 

하지만 더 큰 문제는 어린시절에 발달장애 증상을 보이지 못하고 어른이 되어서야 나타나는 경우다. 저자도 어른이 되어서야 자신이 발달장애를 가지고 있다는 것을 알았다고 한다. 학창시절 수업에 집중하지 못하고 손톱을 물어뜯거나 다리를 떨고 공상을 즐겨서 주의가 산만하다는 지적을 많이 들었으나, 학습장애가 눈에 띄기는커녕 좋은 성적으로 의과대학에까지 들어갔을 정도이니 오히려 우등생 소리를 들으며 살았다. 그러나 대학 입학 후 청소를 안해 자취방이 온통 쓰레기 더미가 되고, 목욕한지 두 달이 넘도록 아무 생각 없이 다녀서 노숙자 소리를 듣고, 급기야는 운전학원에서 '평생 운전하지 않겠다'고 공개적으로 약속을 하고 면허를 받고나서야 자신이 발달장애자라는 것을 깨달았다. (발달장애를 가진 정신과의사라니, 그야말로 인생의 메리-고-라운드...!)
 

 

정신과 의사마저 이런데 의학에 대한 지식이 없는 사람들은 오죽할까. 발달장애가 있어도 깨닫지 못한 사람이 부지기수일 것이다. 발달장애가 있는지 의심도 못 하고 야단만 친 선생님들도 다 무지해서 그랬던 거라고 생각한다. 무식이 죄지... (그래도 어린 마음에 그 친구들이 참 불쌍했다...) 일단 어떤 사람이 발달장애일 수 있는지 증상을 소개한다.  

- 늘 차분하지 못하고 안절부절못한다

- 주의가 산만하고 집중하지 못한다

- 앞뒤를 생각하지 않고 생각나는 대로 행동해버린다

- 기한을 지키지 못해 일이 쌓여간다

- 걱정과 불안으로 감정이 폭발한다

 

- 분위기 파악을 하지 못하고 남의 말을 안 듣는다

- 부정적 사고, 심해지는 열등감

- 금방 싫증 내고 한 가지 일을 오래 하지 못한다

- 회사일은 잘 하는데 집안일은 엉망

- 계획성이 없고 관리 능력이 부족하다

 

- 수면장애, 낮 시간에 졸립다

- 남성에게 많은 틱장애, 여성에게 많은 발모벽

- 흥미 있는 것에 광적으로 빠져든다

- 애초부터 친구를 사귀려는 의욕이 없다

- 운동이나 손끝을 쓰는 동작이 서투르다 등등

 

 

 

목록을 보면서 느꼈겠지만, 대부분의 사람들이 발달장애와 비슷한 증상이 한두가지 이상은 있을 것이다. 자신한테는 해당사항이 없더라도 주변에서 발달장애가 의심되는 케이스를 많이 보았을 것이다. 가족, 친구, 상사나 회사 동료 등... 발달장애 하면 흔히 연상되는, 주의가 산만하고, 주변 정리를 잘 못하고, 쉽게 욱하는 성격만이 발달장애에 해당되는 것이 아니라, 대인관계가 미숙하고, 의사소통이 어렵고, 유달리 예민하고 민감한 사람 또한 발달장애의 일종인 '아스퍼거증후군'을 가지고 있을 가능성이 높다. 그러므로 조용한 사람이라고 해서 발달장애와 무관한 것은 결코 아니다. 외향적이든, 내성적이든 모두 약간씩은 발달장애가 있을 수 있다.

 

다만 정도가 심해져서 생활하는데 불편을 느낄 정도가 되었을 때 비로소 정신과에서는 이를 '장애'라고 부르는 것 같다. 다들 조금씩 가지고 있는 증상인만큼 발달장애라고 해서 너무 걱정할 필요도 없고, 발달장애를 가진 사람을 안 좋은 눈으로 볼 이유도 없다. 그보다는 '저 사람 발달장애가 있는데 아직 깨닫지 못한 게 아닐까?' 하는 식으로 이해하고, 전문의와 상담을 받을 수 있도록 이끌어주고, 능력을 발휘할 수 있도록 개인적, 사회적 차원으로 도와주는 것이 필요하다.

 

특히 여성은 남성에 비해 타인에게 공격성을 나타내거나 반사회적인 행동을 보이는 경우가 드물기 때문에 발달장애가 더 눈에 띄지 않는다고 한다. 발달장애를 가진 여성은 집안일이나 잡다한 주변 일을 못하거나, 자기평가 즉 자존감이 현저하게 낮은 경우가 많고, 우울증, 과식, 불안장애, 쇼핑중독 등을 동반하기 쉽고, 생리전증후군이 심해지기 쉬운 특징이 있다고 한다. 뭐든 지나치지 않게, 균형있는 생활을 하는 것이 건강한 정신, 건강한 신체를 유지하고 바람직한 인격을 만드는 데 있어 최고의 비법인 것 같다.

 

 

당신이 형편없는 게으름뱅이거나 성격에 문제가 있어서 생긴 문제가 아니다.  

불균형(disorder)으로 인한 문제이므로, 균형을 잡아주면 되는 것이다. (소개글 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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