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언어의 천재들 - 세계에서 가장 비범한 언어 학습자들을 찾아서
마이클 에라드 지음, 박중서 옮김 / 민음사 / 2013년 10월
평점 :
품절
한 번은 메조판티의 친구이기도 한 교황 그레고리우스 16세(1765~1846)가 그를 깜짝 놀라게 해 줄 생각으로 세계 각국에서 온 학생 수십 명을 대령시켰다. 신호가 떨어지자마자, 학생들은 메조판티 앞에서 무릎을 꿇고 경의를 표했다가 얼른 일어나면서 그에게 말을 걸었다. "저마다 자기 모국어로, 단어가 워낙 풍부하고 어조가 워낙 유창했으며, 방언 특유의 은어까지 동원되다 보니, 상대방의 말을 이해하는 것은 고사하고 차마 들을 수조차 없는 상황이었다." 메조판티는 전혀 굴하지 않고 "한 사람씩 상대하면서, 각자의 모국어로 대답해 주었다." 급기야 교황은 이 추기경이 승리를 거두었다고 선언했다. 어느 누구도 메조판티를 이길 수 없었던 것이다. (p.16)
"크램시에 따르면, 한 가지 언어를 안다는 것은 당신이 그 원어민의 문화를 안다는 것을 의미한다. 당신은 그 언어의 문화적 짐 덩어리를 들고 다니는 것이다. 이는 다른 무엇보다도, 여러분이 이 언어로, 또는 저 언어로 말하려고 선택하는 것의 중요성을 안다는 뜻이다." (p.45)
"물론 당신의 삶 속에 더 많은 언어를 가질수록, 당신의 경험은 더 풍부해지게 되지만, 그 모두를 유지하기 위해서는 대부분의 사람들보다도 더 많은 여행과 접촉이 필요하죠. 그래서 저는 사람들이 기껏해야 너덧 가지의 언어밖에는 할 수 없다고 말하는 거에요." (pp.47-8)
나는 여러가지 외국어를 능숙하게 구사하는 것이 꿈이다. 버킷리스트 윗줄에 떡하니 프랑스어 배우기, 중국어 마스터하기 같은 소망을 써놓은 것은 물론, 생각날 때마다 외국어 교재를 구입하거나 학원에 등록하기도 한다. 문제는 '작심삼일'이라는 말대로 얼마 안 가 흐지부지되는 일이 다반사라는 것. 작심삼일도 삼일마다 하면 된다지만, 이상하게도 외국어 공부만큼은 다른 공부나 취미처럼 지속하기가 어렵고 실력이 잘 늘지도 않는다. 학업과 취업에 필요해서 배운 영어, 학창시절에 드라마, 영화를 보며 마스터한 일본어처럼 당장의 필요나 강렬한 욕구가 없이는 외국어를 배우기 어려운 게 아닌가 싶기도 하다.
이 말조차 이 사람 앞에서는 핑계 내지는 변명일런지도 모르겠다. <언어의 천재들>에 소개된 역사상 가장 많은 언어를 구사한 초다언어구사자, 언어 천재 주세페 메조판티는 무려 72가지의 언어를 구사했다고 한다. 19세기 성직자인 그는 모국어인 라틴어와 볼로냐어를 포함하여 아랍어, 히브리어, 칼데아어, 콥트어, 페르시아어, 터키어, 알바니아어, 몰타어, 에스파냐어, 포르투갈어, 프랑스어, 독일어, 네덜란드어, 폴란드어, 심지어는 중국어까지 구사했다고 전해진다.
텍사스 대학교 출신의 학자인 저자 마이클 에라드는 세계 각지에서 영어 교육자로 일하다가 (미국에서는 보기 힘든) 외국어 습득 열풍에 놀라 언어 천재들의 노하우를 본격적으로 연구하기 시작했다. 그러던 중에 전설적인 언어 천재 메조판티를 알게 되었고, 그가 단기간에 수많은 언어를 습득하게 된 비결을 찾아나섰다. 책에는 메조판티의 천재적인 능력을 설명하기 위한 몇 가지 언어 학습 이론과 현대의 초다언어구사자들의 사례, 유전 또는 뇌신경학적 요인 등이 자세하게 나와있다. 흔히 지능지수가 높을수록, 남자보다는 여자가 외국어를 잘한다고 생각하는데, 저자의 연구 결과에 따르면 틀리다. 사람들의 편견과 달리 지능지수나 성별, 유전 같은 요인은 외국어 능력을 결정하는 절대적인 변수가 아니다. 오히려 해당 언어에 대한 문화적 이해나 애착이 더 중요하다. 피아노 건반을 잘 치는 것과 모차르트를 깊이 이해하고 연주하는 것은 별개인 것처럼, 토익 점수가 높은 것과 영어권 사람들이 사용하는 맥락 속에서 적절히 사용하는 능력은 별개인 것처럼, 외국어를 그저 아는 것과 실제 사용하는 것은 다른 차원의 문제인 것이다.
그렇다면 외국어를 습득하기 위해서는 무조건 해당 외국에 나가서 살아야 하는가? 비단 그런 것은 아니다. 교통 수단이 지금처럼 발달하지 않았던 18세기에도 메조판티는 72개 외국어를 습득할 수 있지 않았던가. 저자는 연구를 통해 섀도잉(외국어의 소리를 듣는 바로 그 순간에 그 소리와 똑같이 발음하려고 시도하는 연습)이라든가, 껌 씹기, 차, 커피 마시기 등의 방법이 외국어 습득에 도움을 준다는 사실을 밝혀냈다. 뿐만 아니라 인위적으로 옥시토신, 도파민의 작용을 활발히 하거나, 암페타민, 두뇌유래신경영양인자(BDNF) 등 약물의 도움을 받는 방법도 있다. 하지만 잊지 말아야 할 점이 있다. 18세기 인물인 메조판티는 이러한 인위적인 방법이나 약물에 의존하지 않고도 72가지 외국어를 마스터했다는 사실이다. 그렇다면 그가 그 옛날에 이렇게 많은 외국어를 습득하고 전설적인 언어 천재가 된 진짜 비결은 무엇인가? 그 답은 책 마지막 부분에 나와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