청춘이 사는 법 - 몰라서 당하고 떼이고 속는, 대한민국 청춘들을 위한 리얼 생존문화서
김민수 지음 / 리더스북 / 2013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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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1월 7일 오늘은 2014학년도 대학수학능력시험이 있는 날이다. 수능이 끝나면 많은 수험생들이 아르바이트를 하거나, 대학에 합격해 자취나 하숙을 알아보거나 등록금을 마련할 것이다. 그러면서 만나게 되는 장벽 중에 하나가 바로 '법'이다. 아르바이트를 하든, 집을 구하든, 학자금 대출을 받든 사회에서 이루어지는 대부분의 일에는 법이 얽히는데, 초등학교부터 고등학교까지 도합 12년에 걸친 교육을 받고 대학에서의 수학능력을 입증하는 수능 시험까지 치른 이들에게 법 지식은 전무하다시피 하다. 더 큰 문제는 법은 법관이나 변호사 같은 전문가들의 영역이다, 일반인이 이해하기 어렵다 같은 오해 때문에 문제가 생기면 지레 겁먹고 포기해 피해자로 전락한다는 것이다.



그런 이들에게 권하고 싶은 책을 만났다. 바로 대한민국 최초의 청년노조 청년유니온의 기획팀장 김민수가 쓴 <청춘이 사는 법>이다. 이 책은 이 땅의 20대 청춘들이 사회에서 겪을 수 있는 법적 문제를 크게 노동, 집, 신용문제로 나누어 알기 쉽고 재미있게 풀이했다. 독학으로 노동법을 공부해 노동문제 상담을 하고 있는 저자는 자신의 경험과 상담 현장에서 알게 된 사례를 바탕으로 이 책을 썼다고 한다. 그래서인지 주변에서 들은 사례와 비슷한 것이 참 많았다(그 때 내가 이 책을 알았더라면 적확하게 조언을 해줬을텐데!). 



나는 대학 4년 내내 아르바이트를 하면서 급료가 밀린 적도 없고, 사장이나 다른 직원으로부터 폭언이나 성추행을 당한 적도 없고, 부당하게 잘린 적도 없어서 이제까지 별탈 없었는 줄 알았는데, 이 책을 읽으면서 보니 모르고 당한(!) 일이 의외로 많았다. 첫째는 근로계약서. 근로계약서는 근로계약을 체결할 때 임금, 소정근로시간, 휴일, 연차 유급휴가, 근로조건 등을 명시하는 일종의 계약서로, 사업주의 법적 의무다. "2012년 1월 1일을 기준으로 바뀐 근로기준법에 따르면 사업주는 반드시 근로조건이 명시된 서면을 근로자에게 교부하여야 한다. 뿐만 아니라 이를 위반할 경우 사업주는 500만 원 이하의 벌금을 내야 한다." (pp.26-7) 그런데 나는 이제까지 수많은 아르바이트를 해봤지만 단 한 번도 근로계약서를 작성한 적이 없다. 불행 중 다행으로 아르바이트를 하면서 딱히 억울한 일을 당한 적은 없지만, 만약 그런 일이 있었다면 근로계약서가 없어서 제대로 구제를 못 받았을 생각을 하니 아찔하다. 



급료 대신 물건이나 상품권을 받는 경우도 더러 있었다. 문화상품권을 받은 경우는 양반이고, 당장 현금이 없다며 가게에 있는 음식이나 음료수를 대신 받은 적도 있다. "어떤 경우에도 사업주는 반드시 '통화'로 임금을 지급해야 한다. 여기서 통화의 사전적 의미는 유통수단이나 지불수단으로 통용되는 화폐다. 현금, 수표 등이 이에 해당하고 계좌이체를 통한 급여 지급도 허용된다. 단 민어, 스마트폰, 백화점 상품권 등으로 임금을 퉁치는 것은 절대로 있어서는 안 될 일이다." (p.33) 그 때 이 조항을 알았더라면 당당히 현금으로 달라고 요구했을 것이다. 오늘은 일이 별로 없으니까 돌아가라는 말을 들은 적도 있는데, 이 경우도 잘못 되었다. "매장 사정으로 작업량이 줄어들어도, 제품 판매가 부진해도, 심지어 불이 나서 공장을 이전하는 경우에도 모두 '사용자의 귀책사유'로 인정되어 근로자에게 휴업수당이 지급되어야 한다." (p.49) 지난 일을 이제와서 들출 수는 없으니 넘어가겠지만, 나같은 피해자가 없기를 부디 바랄 뿐이다.



이런 일을 직접 겪은 적은 없지만, 사장이나 상사에게 밉보이거나 실수를 해서 당장 내일부터 나오지 말라는 말을 들은 경우에도 구제받을 여지가 있다. "해고하기 '최소 30일 전'에 해고 사유와 시기를 '서면'으로 작성해서 근로자에게 통지해야 합니다. ... 말로 퉁치는 건 절대로 안 되고, 문자로 해고를 통보하는 것도 역시 용인되지 않습니다. 해고는 사업주가 근로자에게 통보할 수 있는 최고 수준의 징계이기 때문에 이런 까다로운 절차가 필요한 거죠. 또한 30일의 유예를 두는 것은 예고 기간 동안 근로자가 새롭게 일을 구할 수 있도록 배려하기 위해서입니다." (p.137) 심지어는 아르바이트생도 일정 요건만 충족하면 퇴직금을 받을 수 있다. "반가운 소식은 2013년 1월 1일부터 퇴직금제도가 5인 이하 사업장을 포함하여 모든 근로자에게 적용된다는 사실이다. 이말인즉 사장님과 단 둘이 매장을 꾸려나가던 편의점 아르바이트생도 일정한 요건을 갖추면 퇴직금을 받을 수 있다는 의미다." (p.142) 일하면서 단 한 번도 퇴직금을 받아본 적 없는 나로서는 그야말로 신세계다. 



이밖에도 이 책에는 자취, 하숙, 월세, 자가주택 구입 등 집과 관련된 법적 문제, 학자금 대출, 개인회생, 파산절차 등의 신용 문제 등이 나와있다. 성실하고 모범적인 사람을 가리켜 흔히 '법 없이도 살 사람'이라고 하지만, 법치주의 국가가 대부분인 현대 사회에서 법 없이 살 수 있는 사람은 아무도 없다. 젊고 어리다는 이유로, 약자라는 이유로, 잘 모른다는 이유로 법 앞에서 눈물 흘리는 청춘이 없기를 부디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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언어의 천재들 - 세계에서 가장 비범한 언어 학습자들을 찾아서
마이클 에라드 지음, 박중서 옮김 / 민음사 / 2013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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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 번은 메조판티의 친구이기도 한 교황 그레고리우스 16세(1765~1846)가 그를 깜짝 놀라게 해 줄 생각으로 세계 각국에서 온 학생 수십 명을 대령시켰다. 신호가 떨어지자마자, 학생들은 메조판티 앞에서 무릎을 꿇고 경의를 표했다가 얼른 일어나면서 그에게 말을 걸었다. "저마다 자기 모국어로, 단어가 워낙 풍부하고 어조가 워낙 유창했으며, 방언 특유의 은어까지 동원되다 보니, 상대방의 말을 이해하는 것은 고사하고 차마 들을 수조차 없는 상황이었다." 메조판티는 전혀 굴하지 않고 "한 사람씩 상대하면서, 각자의 모국어로 대답해 주었다." 급기야 교황은 이 추기경이 승리를 거두었다고 선언했다. 어느 누구도 메조판티를 이길 수 없었던 것이다. (p.16) 

  

"크램시에 따르면, 한 가지 언어를 안다는 것은 당신이 그 원어민의 문화를 안다는 것을 의미한다. 당신은 그 언어의 문화적 짐 덩어리를 들고 다니는 것이다. 이는 다른 무엇보다도, 여러분이 이 언어로, 또는 저 언어로 말하려고 선택하는 것의 중요성을 안다는 뜻이다." (p.45)

 

"물론 당신의 삶 속에 더 많은 언어를 가질수록, 당신의 경험은 더 풍부해지게 되지만, 그 모두를 유지하기 위해서는 대부분의 사람들보다도 더 많은 여행과 접촉이 필요하죠. 그래서 저는 사람들이 기껏해야 너덧 가지의 언어밖에는 할 수 없다고 말하는 거에요." (pp.47-8)

 


나는 여러가지 외국어를 능숙하게 구사하는 것이 꿈이다. 버킷리스트 윗줄에 떡하니 프랑스어 배우기, 중국어 마스터하기 같은 소망을 써놓은 것은 물론, 생각날 때마다 외국어 교재를 구입하거나 학원에 등록하기도 한다. 문제는 '작심삼일'이라는 말대로 얼마 안 가 흐지부지되는 일이 다반사라는 것. 작심삼일도 삼일마다 하면 된다지만, 이상하게도 외국어 공부만큼은 다른 공부나 취미처럼 지속하기가 어렵고 실력이 잘 늘지도 않는다. 학업과 취업에 필요해서 배운 영어, 학창시절에 드라마, 영화를 보며 마스터한 일본어처럼 당장의 필요나 강렬한 욕구가 없이는 외국어를 배우기 어려운 게 아닌가 싶기도 하다. 

 

 

이 말조차 이 사람 앞에서는 핑계 내지는 변명일런지도 모르겠다. <언어의 천재들>에 소개된 역사상 가장 많은 언어를 구사한 초다언어구사자, 언어 천재 주세페 메조판티는 무려 72가지의 언어를 구사했다고 한다. 19세기 성직자인 그는 모국어인 라틴어와 볼로냐어를 포함하여 아랍어, 히브리어, 칼데아어, 콥트어, 페르시아어, 터키어, 알바니아어, 몰타어, 에스파냐어, 포르투갈어, 프랑스어, 독일어, 네덜란드어, 폴란드어, 심지어는 중국어까지 구사했다고 전해진다.

 

 

텍사스 대학교 출신의 학자인 저자 마이클 에라드는 세계 각지에서 영어 교육자로 일하다가 (미국에서는 보기 힘든) 외국어 습득 열풍에 놀라 언어 천재들의 노하우를 본격적으로 연구하기 시작했다. 그러던 중에 전설적인 언어 천재 메조판티를 알게 되었고, 그가 단기간에 수많은 언어를 습득하게 된 비결을 찾아나섰다. 책에는 메조판티의 천재적인 능력을 설명하기 위한 몇 가지 언어 학습 이론과 현대의 초다언어구사자들의 사례, 유전 또는 뇌신경학적 요인 등이 자세하게 나와있다. 흔히 지능지수가 높을수록, 남자보다는 여자가 외국어를 잘한다고 생각하는데, 저자의 연구 결과에 따르면 틀리다. 사람들의 편견과 달리 지능지수나 성별, 유전 같은 요인은 외국어 능력을 결정하는 절대적인 변수가 아니다. 오히려 해당 언어에 대한 문화적 이해나 애착이 더 중요하다. 피아노 건반을 잘 치는 것과 모차르트를 깊이 이해하고 연주하는 것은 별개인 것처럼, 토익 점수가 높은 것과 영어권 사람들이 사용하는 맥락 속에서 적절히 사용하는 능력은 별개인 것처럼, 외국어를 그저 아는 것과 실제 사용하는 것은 다른 차원의 문제인 것이다.

 

 

그렇다면 외국어를 습득하기 위해서는 무조건 해당 외국에 나가서 살아야 하는가? 비단 그런 것은 아니다. 교통 수단이 지금처럼 발달하지 않았던 18세기에도 메조판티는 72개 외국어를 습득할 수 있지 않았던가. 저자는 연구를 통해 섀도잉(외국어의 소리를 듣는 바로 그 순간에 그 소리와 똑같이 발음하려고 시도하는 연습)이라든가, 껌 씹기, 차, 커피 마시기 등의 방법이 외국어 습득에 도움을 준다는 사실을 밝혀냈다. 뿐만 아니라 인위적으로 옥시토신, 도파민의 작용을 활발히 하거나, 암페타민, 두뇌유래신경영양인자(BDNF) 등 약물의 도움을 받는 방법도 있다. 하지만 잊지 말아야 할 점이 있다. 18세기 인물인 메조판티는 이러한 인위적인 방법이나 약물에 의존하지 않고도 72가지 외국어를 마스터했다는 사실이다. 그렇다면 그가 그 옛날에 이렇게 많은 외국어를 습득하고 전설적인 언어 천재가 된 진짜 비결은 무엇인가? 그 답은 책 마지막 부분에 나와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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애니메이션에 빠진 인문학 - 애니메이션과 인문학, 삶을 상상하는 방법을 제안하다
정지우 지음 / 이경 / 2013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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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애니메이션에 빠진 인문학>은 애니메이션을 인문학의 관점에서 분석한 책이다. 고려대학교에서 문학과 철학을 공부한 저자 정지우는 <청춘 인문학>, <삶으로부터의 혁명> (서평 http://blog.naver.com/minorstars/100178948811) 등의 인문학에 관한 책을 주로 써왔다. 만화나 애니메이션을 즐겨보는 편도 아니고, 더군다나 인문학에는 조예가 깊지 않은데, 막상 읽어보니 유명한 작품과 작가들 위주라서 친숙하고, 학문적인 내용도 크게 어렵지 않았다.  



책에는 <그렌라간>, <원피스>, <강철의 연금술사>, <충사>, <진격의 거인> 등의 작품들과 미야자키 하야오, 신카이 마코토, 호소다 마모루 등 일본뿐 아니라 국내에서도 유명한 작가들의 작품들이 주로 소개되어 있다. 먼저 1부에서 저자는 <그렌라간>과 <원피스>를 통해 중세와 근대, 현대의 사회 구조와 인간상이 어떻게 다른지를 비교한다. 크게 중세는 신을, 근대는 국가를, 현대는 개인을 중시하는 것이 차이라고 볼 때, 인류의 진보를 긍정하고 개인보다 국가와 사회를 중시하는 <그렌라간>은 근대를, 각 개인의 개성을 중시하고 다원적인 가치를 긍정하는 <원피스>는 현대를 상징하는 작품이다. 나아가 <원피스>는 유동적이고 파편화된 세계를 그린다는 점에서 지그문트 바우만이 제시한 '액체 시대' 개념과 일맥상통하며, 자기 자신만의 꿈, 신념, 열정 등을 중시한다는 점에서는 이사야 벌린이 제시한 '낭만주의적 인간' 개념과 일치한다. <원피스>가 십여 년 간 일본뿐 아니라 전세계적으로 많은 사랑을 받으며 시대를 대표하는 작품으로 자리잡은 현상에는 이같은 인문학적인 배경이 있구나 싶었다.



2부에서는 <강철의 연금술사>, <충사>, <진격의 거인> 같은 작품을 통해 현대의 문제와 그 대안에 대해 제시한다. 현대 사회의 문제로는 소비 중독, 불안, 자존감의 상실 등을 들 수 있는데, 환상의 세계를 그린 만화 속에도 이러한 문제들이 내포된 경우는 많다. 여기에 대해 <강철의 연금술사>는 성공이나 부, 명예 등이 아닌 '내가 좋아하는 일을 꾸준히 해나가는 데서 오는 만족, 그리고 타인과 나누는 우정과 사랑'을 최고의 가치로 제시한다는 점에서 대안적이다. 최근 국내에서도 큰 인기를 모으고 있는 <진격의 거인>은 더 심오하다. 근대성에서 벗어나지 못한 기존의 작품들은 개인적인 욕망이 사회적인 가치에 의해 좌절되고 희생되는 경우를 그리는 일이 많았으나 <진격의 거인>은 다르다. 주인공 에렌이 사회적인 가치를 추구하는 이유는 다름아닌 개인적인 욕망 때문이다. 개인적 만족이 사회나 타인의 이득과 충돌하지 않는다는 사실, 개인과 집단 모두 윈윈(win-win)할 수 있다는 점을 긍정한 점이 차별화된 부분이며, 인기 요인으로도 작용했다고 볼 수 있다.



마지막 3부에서는 미야자키 하야오, 신카이 마코토, 호소다 마모루 등 유명 일본 작가들의 작품을 종합적으로 소개한다. 얼마 전 은퇴 선언을 하여 많은 팬들을 아쉽게 한 미야자키 하야오는 사회비판적이고 현실적인 내용의 작품들도 더러 그렸지만, <센과 치히로의 행방불명>, <하울의 움직이는 성>, <벼랑 위의 포뇨> 같은 전원적이고 환상적인 내용의 작품들을 자주 그렸다. 현대적이고 세련된 것을 추구하는 대중의 취향을 고려할 때 미야자키 하야오가 그리는 전통적이고 향토적, 환상적인 세계는 언뜻 핀트가 안맞는 듯한 느낌이 든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의 작품들이 일본뿐 아니라 세계적으로도 큰 성공을 거둔 이유는 무엇일까? 저자는 상상과 환상, 가능성을 답으로 제시한다. "미야자키 하야오의 상상과 환상, 그로 인해 만들어진 세계는 우리를 행복하게 한다. 또 우리에게 다른 꿈의 가능성에 대한 희망을 품게 한다." (pp.148-50) 신카이 마코토와 호소다 마모루의 작품들도 마찬가지다. 현대 문명이 잃어가고 있는 감수성이 역으로 현대인들의 가슴을 울리는 것이다.



만화와 애니메이션을 좋아하는 사람에게는 새로운 통찰을 가져다주고, 인문학이나 문화 비평에 관심 있는 사람에게는 애니메이션이라는 새로운 이야깃거리를 제안한다는 점에서 추천할 만한 책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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철학의 교양을 읽는다 - 인문고전 읽기의 첫걸음
오가와 히토시 지음, 홍지영 옮김 / 북로드 / 2013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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절판


얼마 전 팟캐스트로 철학박사 강신주 선생님의 <다상담> 강연을 들었다. 상담이라고 하면 이제까지는 심리학자 또는 정신분석 전문가가 하는, 지극히 과학적인 상담만 생각했는데, 과학이 아닌 인문학을 공부한 철학자도 대중들의 일상적인 고민을 상담할 수 있다는 것이 신기하기도 하고 의심이 되기도 하여 처음에는 긴가민가했다. 그런데 들어보니 김수영 시인의 시라든가 니체의 <차라투스트라는 이렇게 말했다> 같은 문학 작품에서 인간의 가장 적나라한 심리를 볼 수 있을 뿐 아니라 인생의 교훈을 얻을 수 있다는 것이 묘하게 납득이 되고, 상담 내용도 의외로 귀에 쏙쏙 들어와서 한가할 때는 하루에 몇 편씩 내리 듣기도 했다. 잘 알고 있다고 생각했던 사랑이라는 감정에 대해서도 다시 생각해 보게 되었고, 취업이나 연애, 결혼 같은 일상적인 고민도 철학이라는 관점에서 보니 다시 보였다. 그저 어렵고 난해하게만 느껴졌던 철학이라는 학문이 이다지도 일상 생활에 가깝고 고민도 해결해주는 학문이었을 줄이야! 새삼 철학이 달리 보였다.

 

 

오가와 히토시 역시 철학으로 일상적인 고민을 해결하는 방법을 제시하는 대중 친화적인 일본의 철학자다. 그는 교토대 법학부 출신의 엘리트이면서도 종합상사 직원, 아르바이트, 시청 직원 등 다양한 직업을 전전한 경력이 있는데, 현재는 도쿠야마 공업고등전문학교 준교수로 재직하면서 상점가에서 '철학 카페'를 운영하고 있다. 나는 전작 <인생이 묻고 철학이 답하다>(서평 http://blog.naver.com/minorstars/100176441956)를 읽은 적이 있는데, 제목 그대로 연애, 결혼, 인간관계 등 일상적이면서도 누구나 살면서 한번쯤은 겪는 인생의 고민들에 대해 소크라테스, 아리스토텔레스, 칸트, 데카르트 등 유명한 철학자들의 격언과 이론을 빌려 해답을 제시하는 구성이 인상적이었다. 강신주 선생님의 강연처럼 일상적인 고민을 단번에 해결해주는 정도는 아니지만, 일상과 철학을 연결하고, 철학으로서 인생의 고민을 해결하려는 시도만큼은 좋았다.

 

 

오가와 히토시의 신간 <철학의 교양을 읽는다>는 플라톤이 쓴 <소크라테스의 변명>부터 파스칼의 <팡세>, 데카르트의 <방법서설>, 칸트의 <순수이성비판>, 아담 스미스의 <도덕감정론> 등 철학사의 고전 48편을 책의 내용과 구성, 저자의 생애와 집필 동기, 배경, 당대 또는 후세에 미친 영향 등을 중심으로 요약하여 소개한 철학 개론서다. 철학 개론서라고 하면 보통 시대순이나 학파, 지역별로 구성한 것이 많은데, 이 책은 '더 나은 삶을 위한 철학', '더불어 살아가기 위한 철학', '나를 발견하기 위한 철학', '올바른 판단을 위한 철학', '살기 좋은 사회를 만들기 위한 철학', '인간 사회의 발전을 생각하기 위한 철학'으로 저자 나름의 분류 체계를 만든 점이 특징이다. 개론서이기는 하지만 (난해하기로 유명한) 철학 분야의 책이다보니 내용이 다소 어렵기는 하다. 전작 <인생이 묻고 철학이 답하다>처럼 일상적인 고민을 철학적으로 해결해주는 대중 친화적인 내용이었으면 더 좋았겠다는 아쉬움이 남지만, 철학에 관심이 있지만 막상 배우자니 어디서부터 어떻게 시작해야 할지 모르겠다, 어려운 데다가 두껍기까지 한 철학 고전을 어떻게 읽어야 할지 모르겠다 하는 철학 초보, 초심자들에게는 유용할 듯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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교사도 학교가 두렵다 - 교사들과 함께 쓴 학교현장의 이야기
엄기호 지음 / 따비 / 2013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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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민학교 2학년 때의 담임은 정말 돈을 밝히는 교사였다. 그는 공부는 잘하지만 단칸 셋방에 사는 통에 촌지를 바칠 여력이 되지 못하던 나를 많이 미워했다. 학생들의 선거로 반장이 되었지만 그는 끊임없이 나를 괴롭히고 모욕했다. 심지어 다른 학생들 앞에서 나를 모욕하며 저런 '나쁜 어린이'가 되지 말라는 말도 했었다. 울며 집에 돌아온 나를 본 어머니는 며칠 후 화장품을 사서 담임을 찾아가셨다. 나는 아직도 그날을 똑똑히 기억한다. 어머니가 돌아간 다음 그 교사는 "누가 국산 화장품을 쓴다고......" 하면서 어머니가 놓고 간 화장품을 쓰레기통에 처박았다. (p.7)



이 이야기는 <교사도 학교가 두렵다>의 저자 엄기호가 서문에서 밝힌 경험담이다. 이 책을 읽다보니 학창시절의 안좋은 기억들이 스멀스멀 떠올랐다(평소에도 시도때도 없이 떠올라 날 괴롭히는 기억들이기도 하다). 고등학교를 졸업한지 벌써 십 년 가까이 되었건만, 내가 다니던 때의 학교와 지금의 학교는 별로 달라진 게 없는 모양이다. 책의 1장 <교실이라는 정글>을 보면 수업을 듣지 않고 널브러져 있는 아이들, 입시에 도움이 되는 수업만 골라 듣는 아이들의 이야기부터 학교 폭력, 교사와 학부모 간의 갈등 문제가 나오는데 내가 고등학생이었던 때에도 마찬가지였다. 학교 폭력이나 왕따는 다행히도 목격한 일이 없다. 하지만 내가 모르는 곳에서 벌어지고 있었을지도 모를 일이다. 2장 <교무실, 침묵의 공간>과 3장 <성장 대신 무기력만 남은 학교>의 내용들은 처음 보는 것이 많았다. 내가 지금 교사도 아니고, 교대나 사범대를 나온 것도 아니고, 무엇보다 교사의 교, 선생의 선 자만 들어도 치를 떨 만큼 관심도 없다보니 권위적인 교직 내 분위기, 선후배, 동료 교사 간의 갈등 같은 일은 알 길이 없었던 탓이다. 구세대 교사들과 신세대 교사들의 갈등은 어렴풋이 이해가 된다. 저자가 지적한대로 최근 임용되는 교사들은 수능 성적 상위권이고 (수능 성적이 좋게끔 사교육을 받을 수 있었을 만큼) 가정 형편도 좋다. 내 친구들 중에도 교대, 사범대를 나왔거나 하다못해 교직이수를 한 친구들은 대개가 그렇다. 게다가 이런 친구들은 대학 시절에도 임용 준비를 하느라 색다른 경험을 하거나 교대, 사범대 출신 외의 사람들을 만나는 일이 별로 없다. 그런 아이들이 소위 말하는 문제아, 꼴통을 이해할 수 있을까? 나는 아니라고 본다. 그런 선생들이 있는 학교에 나는 내 아이를 보내고 싶지 않다. 내가 겪어본 구세대 교사들은 더더욱 싫다. 아직 아이는커녕 결혼도 안 했지만, 가능하다면 대안학교에 보내거나 홈스쿨링을 하고 싶은 심정이다. 



그런데 이게 비단 교사들만의 문제일까? 경북대 법학전문대학원 김두식 교수가 <불멸의 신성가족>에서 지적했듯이 사법부에서도 그럴 것이고, 행정부, 의학계, 학계 등 점점 엘리트화, 세습화, 경직화, 폐쇄화되는, 소위 말하는 '순혈집단'에서는 공통적으로 벌어지는 현상이라고 본다. 우리나라 엘리트 중에서도 엘리트라고 할 수 있는 사법부와 의학계가 폐쇄적, 경직적인 것은 말할 것도 없다. 직업 또는 직위가 할아버지에서 아버지, 아버지에서 아들로 세습되고, 다른 분야, 다른 계층의 인간들과 전혀 소통이 없는 것도 마찬가지다. 그 이후에는 그런 현상을 행정부, 학계가 겪었고, 이제는 철밥통으로 불리는 교사, 공무원 또는 대기업이 겪고 있다. 고인 물은 썩는다. 다양성이 없는 집단은 환경의 변화에 쉽게 망한다. 사법부, 의학계의 병폐, 행정부, 학계의 폐단을 생각한다면, 앞으로 교사, 공무원, 대기업 임원 집단이 어떤 문제를 낳을지는 뻔하다. 그들은 각종 사회적 문제를 야기할 것이며, 사람들은 그들을 욕하면서도 자기 자식들은 거기에 집어넣으려고 갖은 애를 쓸 것이다. 사법부, 의학계를 욕하면서 제 자식은 판검사, 의사가 되기 바라고, 정부와 교수 사회를 욕하면서 제 자식은 고시에 패스하고 교수가 되기 바라며, 이제는 학교라면 치를 떨었던 사람들이 제 자식을 교대에 보내 선생 만들려고 하고, 공무원, 대기업 직원이 되기를 바라는 것처럼 말이다. 이런 악순환을 끊는 곳이었어야 할 학교는 악순환을 만드는 곳이 되었고, 이제는 그 자체가 악순환에 편입되었다. 그동안의 악순환이 점점 더 확대되고 심화될 것이 분명하다.



학교는 대부분의 사람들이 가정을 벗어나 처음으로 만나는 사회다. 학교에 대한 기억이 대부분 좋지 않다는 것은 개인으로서는 비극이고 사회적으로는 큰 손해다. 교사도 학교가 두렵다? 두렵다면 좀 제대로 했으면 좋겠다. 언제가 될지는 몰라도 내 아이를 아무 걱정없이 학교에 보낼 수 있게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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