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피엔스 : 그래픽 히스토리 Vol.1 - 인류의 탄생 사피엔스 : 그래픽 히스토리 1
다니엘 카사나브 그림, 김명주 옮김, 유발 하라리 원작, 다비드 반데르묄렝 각색 / 김영사 / 2020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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역사학자 유발 하라리의 세계적인 베스트셀러 <사피엔스>를 벨기에 출신의 작가이자 일러스트레이터인 다비드 반데르묄렝과 프랑스의 예술가 다니엘 카사나브가 그래픽 노블로 재구성한 책이다. <사피엔스>도 좋았지만 이 책을 읽으면서 느낀 재미와 감동이 훨씬 크다. <사피엔스>는 책이 무척 두껍고 다루는 주제가 방대해 읽기가 마냥 수월하지만은 않았는데, 이 책은 <사피엔스>의 내용을 충실히 담고 있으면서도 그래픽 이미지를 통해 원문의 내용을 보다 효과적으로, 기발하고 재미있게 표현한다. 


5년 전에 읽은 <사피엔스>의 내용을 다시 한번 짚어볼 수 있는 점도 좋았다. 역사학자인 저자가 물리학, 화학, 생물학 등 자연과학에 관심을 가지게 된 건, 인류가 어떻게 진화해 왔는지 모르면 프랑스혁명처럼 인류 역사의 중요한 사건들을 제대로 이해할 수 없기 때문이다. 저자에 따르면, 인간도 하나의 동물이며, 역사 속의 모든 것은 물리와 화학, 생물 법칙을 따른다. 인간이 다른 동물들과 다른 점은 많은 수의 개인, 가족, 집단을 묶는 불가사의한 '접착제'에 있다. 이 접착제는 종교이기도 하고, 예술이기도 하고, 국가나 기업 같은 허구의 관념이기도 하다. 


인간, 즉 호모 사피엔스가 세계를 지배하는 건 이러한 허구의 관념을 꾸며 내고 믿을 수 있는 유일한 동물이기 때문이다. 만약 국가나 기업 같은 허구의 관념을 모두가 동시에 믿지 못하게 되면, 법은 무용지물이 되고 돈은 쓰레기로 전락할 것이다. 인간은 또한 생태계를 파괴한 주범이기도 하다. 인간의 발길이 닿은 곳마다 육지의 무수히 많은 생명체가 사라졌고, 인지혁명과 농업혁명 이후에는 수많은 해양 동물이 멸종되었다. 인간은 생물학 역사상 가장 치명적인 종이며, 이 책임을 무겁게 느껴야 한다. 


마지막 책장을 덮기가 아쉬웠는데, 총 4권이 나올 예정이라니 다행이고 기쁘다. 어서 2권이 나왔으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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리멤버 홍콩 - 시간에 갇힌 도시와 사람들
전명윤 지음 / 사계절 / 2021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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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봄에는 왕가위 감독의 영화를 열심히 봤다. 처음에는 장국영이 출연한 영화만 보려고 했는데, 왓챠에 왕가위 감독의 영화를 리마스터링한 버전이 여러 편 올라와 있어서 이참에 아예 데뷔작 <열혈남아>부터 <2046>까지 왕가위 감독의 주요 필모그래피를 다 훑어보는 것도 괜찮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왕가위 감독의 영화를 보면서 자연히 홍콩에 대해 많은 것을 알게 되었다. 왕가위 감독의 영화는 다른 홍콩 영화들에 비해서도 홍콩의 역사와 정치, 사회와 문화를 은유하거나 상징하는 내용이 많이 담겨 있다. 왕가위 감독의 대표작 <중경삼림>, <해피투게더>, <화양연화>, <2046> 모두 홍콩의 당시 정치 상황이나 역사에 관한 이해 없이 완벽하게 이해하기 힘든 영화들이다. 


홍콩에 대해 알면 알수록 슬픈 감정이 들었다. 알다시피 2019년 중국 정부가 추진 중인 범죄인 인도 법안에 반대하는 민주화 시위가 홍콩에서 일어나 상당 기간 지속되었지만, 2020년 홍콩 국가보안법이 제정되고 시위의 동력이 사라지면서 사실상 과거의 홍콩은 사라진 상태다. 이제야 홍콩의 매력을 알고 홍콩 문제에 관심을 가진 나도 안타까운 마음이 드는데, 오래전부터 홍콩을 사랑해온 사람들은 얼마나 마음이 안 좋을까. 


'환타'라는 필명으로 유명한 전명윤 작가가 그중 하나다. 전명윤 작가도 나처럼 왕가위 감독의 영화 <중경삼림>을 보고 홍콩에 관심을 가지게 되었고, 이후 수없이 홍콩을 들락거리며 홍콩 사람들을 만나고 홍콩 사회와 문화를 관찰했다. 1997년 홍콩이 영국에서 중국으로 반환된 후 어떤 변화가 생겼는지 지켜보면서 2047년 일국양제가 종료되면 어떤 변화가 일어날지 상상해보기도 했다. 그런데 2047년까지로 예정되어 있었던 홍콩의 '유통기한'이 생각보다 훨씬 빨리 와버렸다. 앞에서 말한 2020년 홍콩 국가보안법의 제정으로 사실상 일국양제가 끝나고 홍콩의 정치 체제가 중국에 편입되는 상황이 된 것이다. 


전명윤 작가의 신간 <리멤버 홍콩>은 전명윤 작가가 그동안 선보였던 여행 가이드북이나 여행 에세이와는 결이 많이 다르다. 이 책은 아편전쟁부터 현재에 이르기까지 홍콩을 둘러싼 역사적, 정치적 이슈들을 소개하고, 2014년 우산 혁명과 2019년 민주화 시위 당시 저자가 직접 현장에 가서 시위 참가자들을 인터뷰하고 시위 안팎의 풍경을 관찰한 내용을 담고 있다. 


책을 읽는 동안 홍콩을 이렇게 만든 중국 정부가 참 무섭다는 생각을 했고, 정부의 프로파간다를 철석같이 믿고 있고 믿을 수밖에 없는 중국인들이 참 불쌍하다는 생각을 했다. 한편으로는 이런 프로파간다에 넘어가지 않고 홍콩의 민주화 운동을 지지하는 중국인들이 있다는 사실을 알고 놀라기도 했다. 홍콩 내부도 친중국파, 반중국파로 갈려서, 친중국파인 부모 세대와 반중국파인 자식 세대가 갈등하는 경우도 왕왕 있다고 한다. 상점, 음식점조차 친중, 반중으로 나뉘어 있다니... 그런데 이마저도 예전 상황으로, 2020년 홍콩 국가보안법이 통과된 후에는 다들 자신의 과거를 지우고, 정치적 입장을 숨기고 살아가고 있다. 저자와 같은 외국인과 대화를 나누는 일까지도 '외세와의 결탁'으로 몰려 처벌받을 위험에 놓여 있다. 


책을 읽고 리뷰를 쓰는 동안 다양한 생각들이 꼬리에 꼬리를 물고 이어졌다. 세상은 점점 더 나아지고 있는 것일까. 홍콩의 미래는 어떻게 되는 것일까. 중국의 야욕 앞에서 한국은 과연 무사할 수 있을까. 저자는 현재의 홍콩에서 과거의 한국을 보았지만, 나는 현재의 홍콩이 미래의 한국이 될까 봐 두렵다. 책을 덮는 마음이 무겁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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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는 모두 자살 사별자입니다 내 마음 돌보기
고선규 지음 / 창비 / 2020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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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까운 사람이 병이나 사고로 죽은 경우에는 그 원인을 알아도 애도하기가 쉽지 않다. 그렇다면 가까운 사람이 스스로 목숨을 끊은 경우에는 어떨까. 자살은 죽음의 방식 또는 형태이지 그 이유라고 할 수 없으므로, 사별자들은 장례가 끝난 후에도 오랫동안 그 이유를 찾기 위해 애쓰거나 미리 그 이유를 알아차리고 도움의 손길을 뻗지 못한 자신을 원망하며 괴로워한다. 문제는 한국 사회에서 자살은 여전히 금기시되는 주제이기 때문에, 마땅히 도움을 받아야 할 사별자들이 도움을 받기는커녕 가까운 사람이 스스로 목숨을 끊었다고 주변에 털어놓지도 못한다. 바로 지금, 여기 한국에서 자살 사별자에 관한 논의가 이뤄져야 하는 이유다. 


임상심리학자 고선규의 <우리는 모두 자살 사별자입니다>는 이제까지 한국에서는 보기 힘들었던, 자살 사별에 관한 책이다. 저자는 2014년 국내에 처음 도입된 '심리부검 면담'을 하면서 자살 사별자를 만나게 되었다. 심리부검 면담이란, 어떤 사람이 스스로 목숨을 끊은 경우 사망 전 일정 기간 동안 고인이 보였던 다양한 심리행동 변화와 죽음 직전에 겪었던 여러 가지 생활 사건들을 최대한 자세히 탐색해보면서 자살의 원인을 '추정'하는 것이다. 저자는 이 작업을 하면서 자살 사별자들이 얼마나 큰 고통을 겪는지 면밀히 알게 되었다. 자살의 여파가 사람마다 다르게 나타나고, 애도의 방식이나 회복의 계기 또한 다르다는 것도 알게 되었다. 


자살 사별이 일반 사별과 다른 가장 큰 이유는 죽음의 원인을 알 수 없다는 것이다. 또한 그 죽음과 관련해서 '왜 나는 그때 그렇게 하지 못했을까?, '왜 그때 미리 알지 못했을까?' 같은 자책 섞인 질문을 끝도 없이 하게 된다. 이는 죽음 자체를 받아들이기 힘든 상황에서  나타날 수 있는 자연스러운 반응이다. 사별자 스스로 생각을 멈추기 전에는 다른 사람이 어떻게 할 수도 없다. 죽음을 받아들이는 방식이나 애도하는 과정은 사람마다 다르다. 어떤 사람은 고인의 방을 그대로 두거나 고인의 물건을 가지고 다니면서 애도하기도 하고, 어떤 사람은 고인의 물건을 태우거나 고인의 흔적을 지우면서 애도하기도 한다. 고인을 억지로 잊으려고 노력할 필요는 없다. 오히려 고인을 잊지 않고 더욱 잘 기억하려고 노력하는 과정에서 충분한 애도가 이루어지기도 한다. 


자살 사별자에게 주변 사람들이 해줄 수 있는 일은 오로지 사별자의 말을 듣고 또 들어주는 일뿐이다. 애도는커녕 상황을 받아들이기도 힘들어하는 사별자에게 "네가 정신을 차려야 한다.", "극복해라." 같은 말은 아무런 도움이 되지 않는다. 때로는 말보다 행동이 더 큰 위로가 될 수 있다. 사별자의 식사나 간식을 챙겨주거나 사별자 대신 자녀의 등하교를 챙겨주고 숙제를 봐주는 식의 배려가 큰 도움이 된다. 자살 사별자 모두가 슬프고 괴로워하는 건 아니다. 괴롭히는 사람이 없어져서 더 편안함을 느끼는 경우도 있다. 이런 경우에도 여전히 해소되지 않은 심리적 앙금이 있을 수 있다. 어떤 감정도 "그 자체로 표현하고 위로받을 권리가 있다는 사실을 꼭 기억했으면 좋겠"다고, 저자는 덧붙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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페미니즘의 도전 (15주년 기념판, 양장) - 한국 사회 일상의 성정치학
정희진 지음 / 교양인 / 2020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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페미니즘의 교과서 같은 책인데 이제야 읽었다. 15주년 리커버 판이 나왔기에 기념 삼아 구입하기 잘했다. 15년 전에 초판이 나온 책이니 낡은 느낌이 들 법도 한데 그런 느낌이 전혀 없고, 오히려 2021년 한국 사회를 이해하는 데에도 도움이 되는 문장들이 많았다. 


무엇보다도 인상적이었던 내용은 페미니즘(여성주의)이 양성평등에 관한 주장이 아니라 사회 정의와 성찰적 지성을 위한 방법론이라는 사실이다(애초에 양성평등이라는 말에도 어폐가 있다. 성性은 남성과 여성, 두 가지만 있는 것이 아니므로). 애초에 사회가 남성을 중심으로 구성이 되어 있기 때문에 남성주의, 즉 남성을 중심으로 세상을 바라보고 이해하는 것은 무의미하다. 여성주의란, 남성을 중심으로 구성이 되어 있는 사회를 여성의 시각으로 바라보고 이해한다는 점에서 본질적으로 대안적이고 저항적이다. 그러므로 페미니즘을 인식하고 공부하는 행위 자체가 사회운동이며, 남성도 페미니즘을 인식하고 공부할 수 있다.


나아가 페미니즘이 지향해야 하는 목표는 여성이 남성처럼 되는 것이 아니라, 차이를 권력의 근거로 삼고 차별을 권력의 목표로 삼는 현재의 사회 체제와는 다른 - 전혀 새로운 사회 체제를 만드는 것이다. 여성이 남성처럼 된다는 것은, 장애인에게 장애를 극복하고 비장애인처럼 살라는 말과 같다. 페미니즘이 추구해야 할 목표는 더욱 많은 여성의 목소리, 더욱 다양한 여성의 목소리를 반영하는 것이다. 가부장제는 여성을 오로지 여성性으로만 환원한다는 점에서 억압적이고 폭력적이다. 여성들간의 차이를 드러내는 것이야 말로 여성 해방이며, 그러기 위해서는 여성을 더 많이 알고 공부해야 한다. 


“남성과 여성의 조화를 파괴하는 것은 가부장제지, 여성의 ‘직설적인’ 목소리가 아니다. 다른 목소리를 들을 수 없는 사회는, 갈등 없는 사회가 아니라 가능성이 없는 사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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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가 날씨다
조너선 사프란 포어 지음, 송은주 옮김 / 민음사 / 2020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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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엄청나게 시끄럽고 믿을 수 없게 가까운>을 쓴 미국의 소설가 조너선 사프란 포어의 환경 에세이다. 환경에 관한 책은 종종 읽었지만 환경 에세이는 처음이라 어떤 형식과 내용을 담은 책일지 궁금했다. 결론부터 말하면, 저자가 그동안 환경에 관한 언론 보도나 다큐멘터리 영화 등을 보면서 생각하고 느낀 바를 저자의 문체로 풀어쓴 책이라는 느낌. 책이 담고 있는 메시지도 좋지만, 저자가 논지를 풀어내는 방식이나 이해를 돕기 위해 드는 예화, 문장들이 좋아서 글 자체로도 만족스러웠다. 


물론 이런 감상은 저자가 의도하는 것과는 거리가 멀다. 저자에 따르면 '아는 것'과 '믿는 것'은 다르다. 저자의 할머니는 유대인 학살 직전인 폴란드에서 탈출해 미국으로 갔다. 나치가 쳐들어오는 중이라는 사실을 '알았지만' 그 사실을 '믿지는' 않았던 할머니의 고향 마을 사람들은 떼죽음을 당했다. 기후 위기도 마찬가지다. 대부분의 사람들은 기후 위기가 심각하다는 사실을 '알지만' 그 사실을 '믿고' 이를 막기 위해 구체적인 실천은 하지 않는다. 심지어 어떤 사람들은 기후 위기가 과장되었거나 실제가 아니라고 '믿는다'. 


나아가 저자는 기후 위기를 막기 위해 채식을 실천하자고 제안한다. 채식은 유명한 환경 다큐멘터리 중 하나인 앨 고어의 <불편한 진실>에서조차 언급되지 않았다. 이는 권력이 막강한 축산업계의 반발을 걱정해서일 수도 있고, 앨 고어 자신이 채식을 할 용기가 없어서였을 수도 있다. 저자 역시 채식의 중요성과 필요성을 '알지만' 실천하기는 쉽지 않다고 말한다. 그렇다면 하루 한 끼만이라도 채식을 해보는 건 어떨까. 한 사람이 완벽한 채식주의자가 되는 것보다 열 사람, 백 사람이 한 끼라도 채식을 하는 게 훨씬 효과적이라는 글을 읽은 적이 있다. '아침식사로 지구 구하기'라는 부제의 의미이기도 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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