리멤버 홍콩 - 시간에 갇힌 도시와 사람들
전명윤 지음 / 사계절 / 2021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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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봄에는 왕가위 감독의 영화를 열심히 봤다. 처음에는 장국영이 출연한 영화만 보려고 했는데, 왓챠에 왕가위 감독의 영화를 리마스터링한 버전이 여러 편 올라와 있어서 이참에 아예 데뷔작 <열혈남아>부터 <2046>까지 왕가위 감독의 주요 필모그래피를 다 훑어보는 것도 괜찮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왕가위 감독의 영화를 보면서 자연히 홍콩에 대해 많은 것을 알게 되었다. 왕가위 감독의 영화는 다른 홍콩 영화들에 비해서도 홍콩의 역사와 정치, 사회와 문화를 은유하거나 상징하는 내용이 많이 담겨 있다. 왕가위 감독의 대표작 <중경삼림>, <해피투게더>, <화양연화>, <2046> 모두 홍콩의 당시 정치 상황이나 역사에 관한 이해 없이 완벽하게 이해하기 힘든 영화들이다. 


홍콩에 대해 알면 알수록 슬픈 감정이 들었다. 알다시피 2019년 중국 정부가 추진 중인 범죄인 인도 법안에 반대하는 민주화 시위가 홍콩에서 일어나 상당 기간 지속되었지만, 2020년 홍콩 국가보안법이 제정되고 시위의 동력이 사라지면서 사실상 과거의 홍콩은 사라진 상태다. 이제야 홍콩의 매력을 알고 홍콩 문제에 관심을 가진 나도 안타까운 마음이 드는데, 오래전부터 홍콩을 사랑해온 사람들은 얼마나 마음이 안 좋을까. 


'환타'라는 필명으로 유명한 전명윤 작가가 그중 하나다. 전명윤 작가도 나처럼 왕가위 감독의 영화 <중경삼림>을 보고 홍콩에 관심을 가지게 되었고, 이후 수없이 홍콩을 들락거리며 홍콩 사람들을 만나고 홍콩 사회와 문화를 관찰했다. 1997년 홍콩이 영국에서 중국으로 반환된 후 어떤 변화가 생겼는지 지켜보면서 2047년 일국양제가 종료되면 어떤 변화가 일어날지 상상해보기도 했다. 그런데 2047년까지로 예정되어 있었던 홍콩의 '유통기한'이 생각보다 훨씬 빨리 와버렸다. 앞에서 말한 2020년 홍콩 국가보안법의 제정으로 사실상 일국양제가 끝나고 홍콩의 정치 체제가 중국에 편입되는 상황이 된 것이다. 


전명윤 작가의 신간 <리멤버 홍콩>은 전명윤 작가가 그동안 선보였던 여행 가이드북이나 여행 에세이와는 결이 많이 다르다. 이 책은 아편전쟁부터 현재에 이르기까지 홍콩을 둘러싼 역사적, 정치적 이슈들을 소개하고, 2014년 우산 혁명과 2019년 민주화 시위 당시 저자가 직접 현장에 가서 시위 참가자들을 인터뷰하고 시위 안팎의 풍경을 관찰한 내용을 담고 있다. 


책을 읽는 동안 홍콩을 이렇게 만든 중국 정부가 참 무섭다는 생각을 했고, 정부의 프로파간다를 철석같이 믿고 있고 믿을 수밖에 없는 중국인들이 참 불쌍하다는 생각을 했다. 한편으로는 이런 프로파간다에 넘어가지 않고 홍콩의 민주화 운동을 지지하는 중국인들이 있다는 사실을 알고 놀라기도 했다. 홍콩 내부도 친중국파, 반중국파로 갈려서, 친중국파인 부모 세대와 반중국파인 자식 세대가 갈등하는 경우도 왕왕 있다고 한다. 상점, 음식점조차 친중, 반중으로 나뉘어 있다니... 그런데 이마저도 예전 상황으로, 2020년 홍콩 국가보안법이 통과된 후에는 다들 자신의 과거를 지우고, 정치적 입장을 숨기고 살아가고 있다. 저자와 같은 외국인과 대화를 나누는 일까지도 '외세와의 결탁'으로 몰려 처벌받을 위험에 놓여 있다. 


책을 읽고 리뷰를 쓰는 동안 다양한 생각들이 꼬리에 꼬리를 물고 이어졌다. 세상은 점점 더 나아지고 있는 것일까. 홍콩의 미래는 어떻게 되는 것일까. 중국의 야욕 앞에서 한국은 과연 무사할 수 있을까. 저자는 현재의 홍콩에서 과거의 한국을 보았지만, 나는 현재의 홍콩이 미래의 한국이 될까 봐 두렵다. 책을 덮는 마음이 무겁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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