광기와 우연의 역사
슈테판 츠바이크 지음, 안인희 옮김 / 휴머니스트 / 2020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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얼마 전 벵하민 라바투트의 소설 <우리가 세상을 이해하길 멈출 때>를 읽고 '이 작가는 과학계의 슈테판 츠바이크구나'라고 생각했다. 인류의 역사를 바꾼 위인들의 생애를 소설의 형식으로 풀어쓴 점이 비슷하게 느껴졌기 때문이다. <광기와 우연의 역사>도 그렇다. 이 책에는 세계 역사를 바꾼 열두 명의 이야기가 소설처럼 담겨 있다. 인물뿐만이 아니다. 동로마 제국의 최후, 나폴레옹의 워털루 전투 등 역사상 중요한 순간과 대서양 해저 케이블 설치, 스콧의 남극점 정복 등 상대적으로 덜 알려진, 그러나 인류 역사에 있어서 혁명적이라고 할 수 있는 순간에 대한 설명도 나온다. 헨델, 괴테, 도스토옙스키, 톨스토이 등 예술가의 이야기가 많이 실린 점도 인상적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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평등하다는 착각 - 왜 여성의 말에는 권위가 실리지 않는가?
메리 앤 시그하트 지음, 김진주 옮김 / 앵글북스 / 2023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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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가 학생이던 시절에는 반장은 남자가, 부반장은 여자가 맡는 일이 흔했다. 간혹 여자가 반장으로 뽑히면 나댄다, 드세다는 말과 함께 그 반 남자들은 뭐하냐는 조롱 섞인 핀잔이 나돌았다. 그 시절로부터 이십여 년이 흐른 지금은 학급이나 학교에서 여자 반장, 여자 회장이 뽑히는 게 별난 일이 아니지만, 정부나 기업을 비롯해 사회 전반을 보면 권위 있는 자리에 여성을 앉히는 경우가 여전히 드물다. 아직도 많은 사람들이 권위는 남성과 어울리는 단어이지 여성과 어울리는 단어가 아니라고 생각하기 때문이다. 


메리 앤 시그하트의 책 <평등하다는 착각>은 여성과 남성 사이에 존재하는 '권위 격차'에 대해 다룬다. 예전에 비하면 훨씬 많은 수의 여성이 정부나 기업의 최고위직에 오르고, 미투 운동을 계기로 페미니즘에 대한 인식이 높아진 편이다. 하지만 사람들은 여전히 남성이 여성보다 지적이고, 전문적이고, 권위를 인정 받아 마땅한 존재라고 여긴다. 일례로 여성은 남성 작가가 쓴 책도 읽지만 남성은 여성 작가가 쓴 책을 웬만해선 읽지 않는다(만화, 영화, 드라마도 마찬가지). 여성은 아무리 뛰어난 성취를 해내도 누군가(남자)의 아내, 연인, 어머니, 딸로 호명된다. 


남녀 간 권위 격차가 가장 분명하고 빈번하게 드러나는 영역은 바로 '대화'이다. 지역과 세대를 불문하고 수많은 여성들이 자신의 말이 남성의 말만큼 진지하게 받아들여지지 않은 경험이 있다고 했다. 사람들은 남성이 말할 때보다 여성이 말할 때 더 많이 끼어들고, 전문성에 의문을 표시하고, 제대로 귀 기울이지 않는다. 여성은 남성처럼 말하라는 조언을 듣지만, 남성은 여성처럼 말하라는 조언을 듣지 않는다. 모든 남성이 아나운서처럼 듣기 좋은 음성으로 조리 있게 말하는 것도 아니고, 대부분의 경우 여성이 남성보다 말을 훨씬 잘하는데도 '남성처럼 말하기'가 권장되는 것은, 아직도 남성이 기준이고 곧 권위이기 때문이다. 


딸 가진 부모들은 딸에게 공부를 열심히 해서 학점을 잘 받으면 취업을 잘 할 수 있다고 격려하지만, 실제로는 학업 성취도가 최상위권인 여성 집단이 학업 성취도가 중간 수준인 여성 집단보다 취업 시장에서 성공하기 힘들다. 연구에 따르면 남성은 능력과 열의를 기준으로 선발되는 반면 여성은 호감도를 기준으로 선발되며, 인사권자(주로 남성)들은 대체로 자신보다 높은 지능을 가졌고 스펙도 좋은 여성에게 호감을 가지지 않는다(200-1쪽). 유능하면서 남자들에게 호감을 얻을 수 있는 외모와 성격을 지녔다면 그건 그것대로 불이익을 당할 소지가 있다. 


"여전히 일상생활에서 남성은 강물이 흐르는 방향으로 헤엄치고 여성은 강물을 거슬러 헤엄친다. 남성들은 빠르게 스쳐 지나가는 강둑 풍경을 보면서 스스로 굉장히 헤엄을 잘 친다며 기뻐한다. 그리고 강물을 거슬러 올라가려고 분투하는 여성들을 보면서 '쟤들은 왜 나만큼 빠르게 헤엄치지 못할까? 그건 분명 수영 실력이 나보다 부족하기 때문일 거야.'라고 생각한다." (27쪽) 


현실이 이러한데도, 최근에는 10대 남성 청소년들을 중심으로 극단적인 반페미니즘 정서가 유행하고 있다. 로라 베이츠의 연구에 따르면 남초 커뮤니티를 중심으로 남성이 겪는 모든 문제를 페미니스트 탓으로 돌리는 식의 악질적인 여성 혐오 메시지가 끝없이 바이럴 되며 10대 남자아이들의 눈과 귀를 막고 있다. 이는 미국이나 영국뿐 아니라 한국에서도 마찬가지다. 여성을 위해서만이 아니라 사회 전체의 퇴보를 막기 위해 무엇을 해야 할지 진지하게 생각해 보고 행동으로 옮겨야 할 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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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밀결사 수첩 에이케이 트리비아북 AK Trivia Book
시부사와 다쓰히코 지음, 김수희 옮김 / AK(에이케이)커뮤니케이션즈 / 2022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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댄 브라운의 소설 <다빈치 코드>가 전 세계적으로 유행했을 때, 나 역시 이 소설을 읽고 매우 흥분했던 기억이 있다. 이 소설에는 서양의 종교, 정치, 역사, 문화에 관한 다양한 음모론이 등장하는데, 그 중 하나가 대표적인 비밀결사인 '프리메이슨'이다. 나는 이 소설을 읽고 처음으로 프리메이슨의 존재를 알게 되었고 이후 프리메이슨에 대해 따로 알아본 적이 없어서, 프리메이슨 하면 이 소설에서 접해서 알고 있는 내용이 전부다. 


이런 나와 달리 프리메이슨을 비롯한 비밀결사에 대해 집요하게 조사하고 연구한 인물이 있다. 바로 일본의 학자 시부사와 다쓰히코이다. 시부사와 다쓰히코의 수첩 시리즈 3부작 중 첫 번째인 <비밀결사 수첩>은 비밀결사의 정의와 기원, 역사와 종류 등을 일목요연하게 정리한 책이다. 원시민족의 결사와 고대의 신비의식(밀의) 종교부터 시작해 그노시스파, 장미십자단, 프리메이슨, 쿠클럭스클랜(KKK) 등 대표적인 비밀결사, 아시아와 이슬람교 등 상대적으로 덜 알려진 지역과 종교의 비밀결사 등에 대해서도 깊이 있게 다룬다. 


애초에 비밀결사란 무엇일까. 비밀결사로 분류되기 위해서는 몇 가지 조건이 필요하다. 첫째는 비밀이라는 표현을 쓰는 이상, 표면적으로 드러나거나 다른 사람들에게 알려지는 것을 바라지 않아야 한다. 둘째는 새로운 회원을 받아들일 때 기존 회원들이 일종의 시련을 부여하는 입사 의식(입사식)을 치른다는 것이다. 셋째는 회원끼리 서로를 외부자로부터 식별하기 위한 기호(암호)를 사용한다는 것이다. 비밀결사는 갱단이나 야쿠자 같은 범죄조직과는 다르며, 정치적 테러 조직과도 구분된다. 





이 책에서 가장 흥미로웠던 대목은 비밀결사에 가입하기를 희망하는 사람들의 심리를 분석한 부분이다. 심리학자의 의견에 따르면 이런 사람들은 "괴로운 현실에서 도피해 자신만의 자그마한 봉쇄적 세계에 갇히고 싶다는, 도저히 끊을 수 없는 욕구가 내면을 지배하는" 상태에 있는 경우가 많다. "신화나 상징, 의식 따위를 선호하는 기묘한 성향"이라든가 "현실과 공상 세계를 역전시켜 오로지 공상 세계를 현실이라고 생각하며 살아가는 사람들"이 이런 경우가 많다고. (20쪽 참조) 


대표적인 비밀결사인 프리메이슨은 중세 시대 건축업자들의 동업조합(길드)에서 기원했다고 보는 의견이 지배적이다. 이후 17세기 영국의 장미십자단이 대거 프리메이슨에 가입했고, 이 때부터 기존의 실용적인 조합에서 입사식, 암호 등의 요건을 갖춘 비밀스러운 조직으로 변모했다고 한다. 댄 브라운의 또 다른 소설 <천사와 악마>에 등장하는 비밀결사 '일루미나티'에 대한 설명도 나온다. 각 비밀결사가 유럽을 비롯한 세계 역사에서 어떤 역할을 했는지에 대한 설명이 흥미롭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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회복력 시대 - 재야생화되는 지구에서 생존을 다시 상상하다
제러미 리프킨 지음, 안진환 옮김 / 민음사 / 2022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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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원한 것은 없다. 누구나 알고 있는 진리이지만, 최근 몇 년 동안 팬데믹을 겪으면서 이것이 부정할 수 없는 사실임을 깨달은 사람이 많을 거라고 생각한다. 팬데믹을 단순한 전염병이 아니라, 이제까지 인류가 성장 혹은 발전이라는 명목으로 배출해온 쓰레기를 비롯한 각종 오염원들을 지구 생태계가 스스로 정화할 수 없는 지경에 이르렀다는 신호로 바라보는 관점도 있다. 그렇다면 이제 인류는 어떻게 살아가야 할까. 


경제 사회 사상가 제러미 리프킨의 신간 <회복력 시대>는 팬데믹 이후 인류의 목표가 무엇이 되어야 할지를 숙고한 내용을 담고 있다. 이 책은 2022년에 출간되었지만, 저자 후기에 따르면 2013년에 이 책의 주요 주제에 대한 조사를 시작해 총 8년에 걸쳐 집필했다고 한다. 이제까지 <소유의 종말>, <한계비용 제로 사회>, <글로벌 그린 뉴딜> 등을 발표하며 기존 경제 모델의 한계와 새로운 발전 모델의 필요성을 주창해온 저자의 예측력이 이번 책에서도 발휘된 것으로 보인다. 


"진보의 시대는 사실상 이미 끝났고 적절한 사후 평가만을 기다리고 있다. 이제 모든 곳에서 더욱 결연한 목소리로 점점 크게 울려 펴지는 새로운 내러티브는 우리 인간 종이 우리의 세계관에서부터 경제에 대한 이해, 거버넌스의 유형, 시간과 공간에 대한 개념, 인간의 가장 기본적인 욕구, 지구라는 행성과의 관계에 이르기까지 그야말로 모든 것에 대해 다시 생각해야 한다는 것이다." (11쪽) 


저자에 따르면 그동안의 경제 성장 모델은 더 이상 유효하지 않으며 이제 '회복력(resilience)'을 새로운 시대정신으로 삼아야 한다. 기존의 산업 문명에서 가장 중요하게 여겨진 가치는 '효율성'이었다. 효율성을 중시하는 산업 문명은 인류에게 유례가 없는 번영과 풍요를 가져다 주었지만, 자원 고갈과 환경 오염이라는 부작용을 낳기도 했다. 인간이 만물의 영장이고 지구상에서 유일하게 영속해야 할 생명체라는 사고방식은, 수많은 다른 생물종의 멸종과 그로 인한 생태계 파괴라는 결과를 초래했다. 


인류의 능력은 무한하며 인류가 자연을 완전히 정복했다는 생각은 착각이라는 것이 이번 팬데믹을 통해 여실히 드러났다. 이제 인류는 정복이 아닌 '적응'의 패러다임으로 다음 시대를 준비해야 한다. 다행히 적응은 인간에게 아주 낯선 개념이 아니다. 인간의 몸은 수많은 박테리아와 바이러스, 유생생물, 고세균, 균류 등이 공존하는 하나의 생태계와도 같다. 인간의 몸은 섭취하는 음식이나 약물 외에도 24시간, 태음, 계절, 265일 등의 주기 리듬으로부터 영향받는다. 


저자는 이런 식으로 인간의 몸을 하나의 생태계, 하나의 행성, 하나의 우주로 바라보는 관점이 다른 사람의 몸, 다른 생명체, 다른 생태계를 바라보는 관점으로 확장된다면, 인류의 미래가 지금보다 밝을 거라고 예측한다. 사회적, 정치적으로는 일국의 군사적, 정치적, 경제적 이익만 고려하는 것이 아니라, 인접 국가들을 비롯한 국제 사회의 이익, 멀리는 우주 전체와 미래 세대를 포함하는 정책 결정과 판단이 이루어진다면 분쟁 가능성이 줄어들고 분쟁으로 인한 자원 고갈 및 생태계 파괴도 방지할 수 있을 것이다. 


몸에 대한 저자의 사유는 지금 한국 사회에서 벌어지고 있는 일련의 문제들을 풀 수 있는 열쇠로도 보인다. 공교롭게도 이태원 참사, 봉화 광산 붕괴 사고, 제조업 노동자 사망 사고 등 최근 한국의 언론 매체를 장식하고 있는 사건 사고들의 중심에는 몸이 있다. 만약 정부와 기업이 국민과 노동자의 몸을 자신들의 몸처럼 여기고 소중히 대했다면 과연 이런 일들이 벌어졌을까. (다른) "생명에 대한 심오한 공감적 공명의 느낌" 없이는 인류 앞에 놓인 거대한 투쟁에서 이길 수 없다는 저자의 말이 마음에 남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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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물관 수업 - 컬렉션으로 보는, 황윤의 세계 박물관 여행 일상이뮤지엄 1
황윤 지음 / 책읽는고양이 / 2021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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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근에 박물관에 가본 게 언제일까. 생각이 나지 않는 걸 보면 오래 전의 일인 듯하다. 박물관은 사계절 내내 방문하기 좋은 곳이지만, 특히 여름은 시원한 에어컨 바람 쐬면서 한가롭게 시간 보내기에 적합한 공간이다. 조만간 박물관에 가봐야지, 라고 생각하다가 책장에서 이 책을 발견했다. 소장 역사학자이자 박물관 마니아인 황윤 작가의 책 <박물관 수업>이다. 


이 책은 형식이 특이하다. 교과서처럼 단순하게 박물관의 역사와 기능 등을 설명하는 대신, 저자가 살고 있는 도시 안양에 세계 수준의 뮤지엄을 건설한다는 설정을 취한다. 마치 시뮬레이션 게임을 하듯이, 재원 마련 등 박물관을 세우는 데 필요한 과정을 하나씩 클리어하면서, 자연스럽게 독자가 세계 유수의 박물관의 역사와 종류, 각 박물관의 장점과 단점 등을 알 수 있게 구성되어 있다. 


서울도 아니고 안양에 세계적인 수준의 뮤지엄을 만든다는 발상이 신선함을 넘어 엉뚱하게 느껴질지도 모르겠다. 하지만 이처럼 수도가 아닌 지방 도시에 뮤지엄을 만들고 세계 수준의 전시품을 유치해 흥행에 성공한 경우가 다수 있다고 한다. 일본 하코네국립공원 내에 있는 폴라미술관, 오카야마현 구라시키 미관지구에 있는 오하라미술관, 야마나시현립미술관, 나고야 보스턴미술관 분점 등이다. 


한국의 박물관이 더 많은 관람객을 유치할 수 있는 제언도 몇 가지 나온다. 그중 하나가 세계적인 작품과 한국의 작품을 함께 전시하는 것이다. 예를 들면 미국 추상화의 대가 마크 로스코의 작품과 한국 추상화의 대가 김환기의 작품을 함께 전시한다든가, 중국의 반가 사유상과 한국의 반가 사유상을 함께 전시하는 식이다. (334쪽 참조) 이런 전시가 열린다면 당장이라도 가보고 싶을 듯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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