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는 모두 자살 사별자입니다 내 마음 돌보기
고선규 지음 / 창비 / 2020년 11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가까운 사람이 병이나 사고로 죽은 경우에는 그 원인을 알아도 애도하기가 쉽지 않다. 그렇다면 가까운 사람이 스스로 목숨을 끊은 경우에는 어떨까. 자살은 죽음의 방식 또는 형태이지 그 이유라고 할 수 없으므로, 사별자들은 장례가 끝난 후에도 오랫동안 그 이유를 찾기 위해 애쓰거나 미리 그 이유를 알아차리고 도움의 손길을 뻗지 못한 자신을 원망하며 괴로워한다. 문제는 한국 사회에서 자살은 여전히 금기시되는 주제이기 때문에, 마땅히 도움을 받아야 할 사별자들이 도움을 받기는커녕 가까운 사람이 스스로 목숨을 끊었다고 주변에 털어놓지도 못한다. 바로 지금, 여기 한국에서 자살 사별자에 관한 논의가 이뤄져야 하는 이유다. 


임상심리학자 고선규의 <우리는 모두 자살 사별자입니다>는 이제까지 한국에서는 보기 힘들었던, 자살 사별에 관한 책이다. 저자는 2014년 국내에 처음 도입된 '심리부검 면담'을 하면서 자살 사별자를 만나게 되었다. 심리부검 면담이란, 어떤 사람이 스스로 목숨을 끊은 경우 사망 전 일정 기간 동안 고인이 보였던 다양한 심리행동 변화와 죽음 직전에 겪었던 여러 가지 생활 사건들을 최대한 자세히 탐색해보면서 자살의 원인을 '추정'하는 것이다. 저자는 이 작업을 하면서 자살 사별자들이 얼마나 큰 고통을 겪는지 면밀히 알게 되었다. 자살의 여파가 사람마다 다르게 나타나고, 애도의 방식이나 회복의 계기 또한 다르다는 것도 알게 되었다. 


자살 사별이 일반 사별과 다른 가장 큰 이유는 죽음의 원인을 알 수 없다는 것이다. 또한 그 죽음과 관련해서 '왜 나는 그때 그렇게 하지 못했을까?, '왜 그때 미리 알지 못했을까?' 같은 자책 섞인 질문을 끝도 없이 하게 된다. 이는 죽음 자체를 받아들이기 힘든 상황에서  나타날 수 있는 자연스러운 반응이다. 사별자 스스로 생각을 멈추기 전에는 다른 사람이 어떻게 할 수도 없다. 죽음을 받아들이는 방식이나 애도하는 과정은 사람마다 다르다. 어떤 사람은 고인의 방을 그대로 두거나 고인의 물건을 가지고 다니면서 애도하기도 하고, 어떤 사람은 고인의 물건을 태우거나 고인의 흔적을 지우면서 애도하기도 한다. 고인을 억지로 잊으려고 노력할 필요는 없다. 오히려 고인을 잊지 않고 더욱 잘 기억하려고 노력하는 과정에서 충분한 애도가 이루어지기도 한다. 


자살 사별자에게 주변 사람들이 해줄 수 있는 일은 오로지 사별자의 말을 듣고 또 들어주는 일뿐이다. 애도는커녕 상황을 받아들이기도 힘들어하는 사별자에게 "네가 정신을 차려야 한다.", "극복해라." 같은 말은 아무런 도움이 되지 않는다. 때로는 말보다 행동이 더 큰 위로가 될 수 있다. 사별자의 식사나 간식을 챙겨주거나 사별자 대신 자녀의 등하교를 챙겨주고 숙제를 봐주는 식의 배려가 큰 도움이 된다. 자살 사별자 모두가 슬프고 괴로워하는 건 아니다. 괴롭히는 사람이 없어져서 더 편안함을 느끼는 경우도 있다. 이런 경우에도 여전히 해소되지 않은 심리적 앙금이 있을 수 있다. 어떤 감정도 "그 자체로 표현하고 위로받을 권리가 있다는 사실을 꼭 기억했으면 좋겠"다고, 저자는 덧붙인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13)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