How to Read a Book (Paperback, Revised and Upd)
Mortimer J. Adler. Charles Van Doren 지음 / Simon & Schuster / 1972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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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을 읽음으로써 타인의 시선에서 자유함을 얻고, 좌절과 슬픔에 대한 해독제를 구하고, 유의미한 삶에 대한 진지한 고민을 시작한지 5년 정도 되었다. 원래 책을 좋아하긴 했지만 연간 목표량을 정하고 연초를 시작하면서 양적인 욕심이 생겼다. 원래도 한가지에 몰두하면 중독되기 쉬운 성격인데, 이 책을 읽고 나니 양적 목표에 집착하며 소중한 것을 잃지 않았나 생각했다. 늘 다독/정독 사이에서 고민을 했고, 책 읽기의 속도도 나를 괴롭힌 것 중 하나이다.

철학자인 작가는 이 책을 이론서가 아니라 독서의 가이드와 실천을 도와주는 실용서적이라는 것을 누차 강조한다. 다른 책에 비해 목차(Contents)가 세부적으로 아주 아주 잘 되어 있다. 책의 내용이 너무 방대한 양을 담고 있지만, 목차만 보아도 내용을 잘 가늠할 수 있도록 책계적으로 정리되어 있다. 사실은 제목 앞에서도 위축이 되었었다. ‘책 읽은 법(독서의 기술)’이 따로 있다니, 마음으로 읽고 각자의 몫으로 느끼는 것이 아닌가라 생각했는데, 역시나 다 읽고 나니 또 한번 내가 무너지는 느낌이다.

작가는 4단계 독서법 기술을 통해(how to read) 살아가는 법(how to live)을 안내하고 있다. 이 얼마나 멋진 표현인가? how to read snd how to live! 결국 우리는 삶을 제대로 살아내기 위해 독서를 해야 하는 것인가보다. 초급(elementary), 점검(inspectional), 분석(analytical), 주제별(syntopical) 독서 4가지 독서법과 다양한 장르의 책에 대해서도 읽는 법을 안내하고 부록에 137명의 작가와 독서 종류, 그리고 John Stuart Mill, Sir Isaac Newton 등의 책을 인용한 위 4가지 독서법 연습 사례까지 들어 있다.

두 번째 점검독서(inspectional reading)에서 어려운 독서를 만났을 때는 skimming/ superficial reading(훑어보기/피상적 독서)을 이용해서라도 포기하지 말고 무조건 완독하기를 권한다. 사실 완전히 이해가 안되더라도 한자리에 앉아 끝내기를 하는 것이 포기보다 낫다는 것이다. 내가 원서를 시작하고 유일하게 절반 정도에서 포기한 Cosmos(by Carl Sagan)을 언젠가 다시 도전해야겠다고 생각했다. 완벽함에서 자유로워 진다면 천체물리의 미학을 조금이나마 맛볼 수 있을까?

저자의 추천에 매우 공감하는 부분이 있다. 언어의 4가지 기술 중 하나인 독서(reading)는 수동적 활동이 아니라는 것이다. 듣기(listening)는 안내자인 교사가 있는 상태에서 도움을 구하며 배우는 과정이라면, 읽기(reading)는 교사가 부재한 상태에서 배움과 발견이 읽어나는 적극적 활동이기에, active/demanding reader가 되어야 한다고 강조한다. 책을 구매하는 활동으로 지적 소유권을 얻을 뿐 아니라, 중요 문장에 밑줄을 치거나 여백에 메모를 하는 것 등의 활동으로 집중도를 높일 수 있고 역동적인 독자가 됨을 강조한다. 읽기와 쓰기가 상호 보완적인 것은 누구나 알고 있다. 작은 메모나 밑줄 긋는 습관도 읽기와 쓰기에 당연 도움이 된다고 생각한다.

작가가 가장 많은 지면을 할애하는 독서는 분석적 독서(analytical reading)이다. 4가지 유의미한 질문을 읽고 있는 책에 던지며 읽고 난 후 그 질문에 대한 답을 찾는 능동적 독서법을 소개한다. 3장에서 다양한 도서에 대한 접근법도 흥미롭다. 인간의 의식적, 무의식적 요구를 충족시키며 인간의 필수품으로 자리한 소설 읽기, 연극이나 서사시는 소리내어 반복하여 읽음으로써 의미 파악하기, 한 사건이나 시대를 다루는 역사책은 반드시 한 권 이상 읽고 다양한 관점에서 진실을 얻으려고 할 것, 플라톤에서 니체에 이르는 철학서적은 단지 충실히 읽고 마음을 열어 생각하는 법외에 다른 왕도가 없다는 것 등등.

마지막 4장이 독서의 최종 목표인 주제별 읽기(syntopical reading) 이다. 위 2단계였던 점검 독서를 통해 책을 고르고 바로 주제별 독서로 들어가라고 권장한다. 분석 독서는 한 권의 책을 꼼꼼히 읽을 경우 해당된다는 것이다. 네 번째 단계를 어려워 하는 독자를 위해 1940년대에 만들어진 The Syntopicon(Great Books of the Western World)을 소개한다. 주제별, 작가별 3000개가 있어서 도움을 받을 수 있다고 한다.

결국 어떻게 읽을 것인가? 유의미한 4가지 질문을 던지며 답을 찾아가는 과정을 통해 능동적 독자로 성장하라고 한다. 즐거움과 정보 위주의 독서는 성장하기 힘들며, 능력을 넘어서는(beyond you) 다소 어려운 수준의 독서를 통해 더 나은 독자(a better reader)가 된다고. 또한 양서의 선정도 매우 매우 강조하고 있다. 독서법의 향상을 가져오고, 인간의 문제에 대해 답은 아닐 수 있으나 더 잘 생각할 수 있게하며, 언젠가 책꽂이에서 뽑아서 다시 읽고 싶게 하는 양서들 말이다.

마지막 에필로그도 매우 좋았다. 무인도에 평생 갇혀 살게 될 경우 10권의 책을 가져갈 수 있다면 어떤 것을 가져가겠냐고 질문하고 있다. 인간의 몸이 나이들어감에 따라 쇠약해짐이 자명한 사실이나 인간의 정신은 마치 근육과 같아 사용하지 않으면 위축되지만, 인공 소품의 지지에 의해 지적, 도적적, 정신적으로 늘 강인해 질 수 있다고. 그 인공 소품 중 하나는 당연 책을 말하는 것이다. 책을 잘 읽는다는 것은(reading well), 능동적으로 읽는 것이고, 이 역동적 독서의 보상은, 독서 자체가 즐겁고, 직장이나 일에 있어서의 향상, 정신적 각성과 성장을 도모한다는데 동감한다.

10권의 인생 책을 자신있게 고르기 위해서는 얼마나 더 읽어야 하는가? 부록의 추천 도서 목록에 기가 눌려 이완되어 있던 근육이 긴장을 했지만 훌륭한 책을 만나 가이드를 잘 받음도 감사의 조건이 되는 일요일 저녁이다. 또 다른 스승을 만나기 위해 나의 태생적 게으름을 잘 구슬러 보자. 부지런함이 양서를 만나 잘 사귀는 지름길이라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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Life Is Elsewhere (Paperback, Reprint)
밀란 쿤데라 지음, Aaron Asher 옮김 / Perennial / 2000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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올해 읽은 [The Joke]가 너무 좋아서 구매한 밀란쿤데라의 책이다. 다음에 또 그의 책을 만날 것이 확실할 만큼 그의 책에 빠져 있다. The Joke는 영어가 어려웠으나 줄거리 이해는 쉬웠다. 그러나 이 책은 책의 구성도 편하고 영어도 쉽다고 생각해 빨리 읽었는데, 줄거리 정리가 난해하다. 단순 소설이 아니라 무의식의 세계에 빠져 있다 나온 느낌이다.

제목부터 생각하게 한다. Real life is elsewhere. Entirely elsewhere. (P. 403) 실제 삶이 내 곁에 있지 않고 완전히 다른 곳에 있다니! 정착되지 않은 고민과 방랑의 생활이란 뜻이 아닌가? 나도 그런 생각을 할 때가 있다. 나는 현재 속에서 내 삶의 주인공으로서 흔들리지 않는 삶을 살고 있는지. 조국을 사랑한 작가가 체코 해방 운동에 가담했다는 이유로 공산당에서 제명되고 프랑스로 망명하여 불어로 이 소설을 출간했다는 걸 볼 때, 이국의 땅에서 지성인이 겪었던 불안한 유랑생활을 의미하는가?

시인인 주인공 Jaromil의 일대기라 쉽게 접근했으나 그렇지 않았다. 그의 분열된 자아 Xavier가 갑자기 등장해 혼란에 빠지기도 했는데, 아주 뒷부분에 설명을 주고 유럽의 많은 시인들의 성장과정에 관한 이야기도 있다(난 랭보 밖에 모르고 나머지는 생소했다). 시인은 그의 시를 통해 자화상을 그린다(With his poems, the poet paints his self-portrait (p. 288)는 표현처럼 수 많은 아름다운 서정시가 들어있다. 거친 일을 해야하는 경찰관에게 섬세한 뭔가가 필요하기에 시를 읽어야 한다고 주장하는 주인공 친구인 경찰관의 논리처럼 매마른 현대인의 가슴에도 서정시의 축복이 있어야 하는지도.

20대 중반까지의 시인의 일대기라서, 섬세하고 여리며 다소 소심한 시인의 시가 어떻게 구성되었을지 상상이 간다. 떨어지는 눈물까지 아름답게 표현되는 수 많은 시적 허용이 있고, 사춘기 소년의 성적 호기심에 대한 애절한 표현도 시상을 전개시키는데 충분한 역할을 한다. 시인들이 들으면 얼핏 반발할지 모르나 ‘시인은 여자들이 지배하는 가정에서 나온다( Poets come from where women rule)’라는 문장이 있다. 민감하고 감수성이 풍부한 엄마의 영향으로 주인공이 여성성을 많이 띠게 외면서 부족한 남성성을 얻으려 고군분투한다.

절대적인 엄마의 영향은 극복하고 넘어야 할 산이 된다는걸 알지만 쉽지 않고 오히려 그의 무의식 마저 지배하게 된다. 사랑에 대한 사투뿐 아니라 혁명에 대한 고민도 깊다. 가장 혁명적인 것, 현대적인 것이 무엇인가에 대한 토론이 많이 나온다. 가장 현대적인 유일한 것은 사회주의를 건설한 민중이라고. 사회주의 사회에서 연애시/서정시의 필요성 및 기능에 대한 담론도 있다.

사랑은 전부이거나 아니면 아무것도 아니다(Love means all or nothing.)라는 극단적 생각처럼, 프로레타리아 아니면 부르조아는 무조건 아니다라는 혁명적 논리 가운데, 여리고 젊은 시인이 겪어야 했던 번뇌가 전해진다. 문학 청년의 생각의 바다 속에는, 사랑, 문학, 혁명, 벗어나기 힘든 모성의 굴레 등이 꽉 차 있어서, 나의 좁은 식견으로 다 이해하지 못한듯하다.

밀란 쿤데라에 대해 내가 느끼는 가장 큰 매력은 한 문장 한 문장 공들인 세련된 은유적 표현이다. 그야말로 언어의 마술사이다. 통째로 암기하면 좋은 감동적인 문장들 말이다. 다음에 만날 그의 작품이 벌써 기대가 된다.

어제 책을 충분히 끝낼 수 있었는데, 슬픈 일이 있어 책이 들어 오지 않았다. 오늘도 산책으로 달래려 했으나 우울한 상황은 진정되지 않았다. 작가에게 있어 불만족도 미덕이 된다라는 표현이 있었다( dissatisfaction is a virtue in a writer). 이를 마음에 담으며 만족스럽지 않아 화가 나는 현 상황을 지혜롭게 마무리 시킬 수 있기를 나 자신에게 기대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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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ry, the Beloved Country (Paperback) - Oprah's Book Club
Alan Paton 지음 / Scribner / 2003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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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아프리카의 아픔과 눈물로 범벅된 나라 사랑 그리고 깨어있는 의식이 전하는 아름다운 변화에 대한 이야기이다. 책 전반을 관통하는 단어는 Fear이다. 차라리 슬픔이 두려움보다 낫다. 왜냐하면 두려움은 끊이지 않는 끔찍한 여정이고 슬픔은 적어도 도착지이기때문이다. 새의 노래, 산, 계곡 등의 자연이 전하는 감동에도 지나친 기쁨을 표현하는 것을 자제해야하는 남아프리카이다. 질투심이 있는 두려움(Fear)이 엄습하여 기쁨을 앗아갈 수 있으니까 말이다.

신마저 등돌린 나라처럼 보이기에 신이 주는 고통의 이유에 대해 이해하려고 기도해서는 안되는 남아프리카에도 사회문제에 관심을 갖고 양심 선언을 하는 백인 Arthur Jarvis가 있다. 그가 다같이 생각해 보도록 던지는 질문에 permissible이 반복된다. 과연 어떤 명분으로 남아프카에서 금광개발, 종족체제의 붕괴, 원주민 공동체의 분열, 노동력 착취가 혀용되어야 하는가? 원주민의 값싼 노동력을 이용한 금광개발로 백인의 삶은 풍요로워지지만 여전히 가난한 삶에 허덕이는 남아프리카 사회의 도덕적 문제를 기독교인으로서 회피해서는 안된다는 그의 절규가 있다.

개발이라는 이름으로 오히려 많은 것을 잃고 귀중한 전통 가치가 파괴되는 그래서 결국 마음은 더욱 가난해지는 삶이 있다. 원주민의 늘어가는 범죄의 원인과 해결책에 대해 고민하던 백인 Arthur Jarvis는 그 어떤 신의 섭리에 의해 가난한 원주민 Absalom Kumalo에게 살해 당한다. It was a secret이란 문장도 두 번 이상 반복된다. 무지한 인간의 한계로 어찌 이런 역설을 이해할 수 있단 말인가? Ndotsheni 지역의 시골 목사 Stephen Kumalo도 살해범이 되어 결국 교수형에 처하게 되는 아들에 대한 신의 계획에 대해 엄청난 고통과 번민과 싸워야 한다. 아들이 살인범인 목사가 감당해야 하는 슬픔을 말로 표현이나 할 수 있을까?

결국 그는 도시로 도시로를 부르짖으며 요하네스버그로 몰려들며 교육의 기회도 박탈당한 채 여전히 처참한 가난과 싸워야 하는 수많은 아프리카인들의 삶을 개선하기 위한 노력을 하게 된다. 또한 Arthur Jarvis의 백인으로서 아프리카 원주민를 위해 했던 고민과 죽음은 헛되지 않음이 증명된다. 링컨의 책으로 꽉 찬 아들의 서재와 아들의 마지막 사회적 문제에 관한 원고를 수도 없이 읽으며 아버지 James Jarvis의 마음이 움직인다. 오지 Ndotsheni 지역에 댐건설, 농작법 교육, 교회 복원 등의 변화가 그의 노력으로 시작된다.

변화의 잔 물결은 아주 작은 것에서 시작이 되는지도. 무더운 날씨 우연히 들렀던 목사의 집에서 시원한 우유를 달라했던 어린 소년. 그는 그 목사의 아들이 본인의 아버지를 살해했다는걸 모른다. 우유가 없어 동네 아이들이 죽어간다는 소리에 다음날 그는 아이들에게 주라고 우유를 배달시킨다. 살해당한 아버지처럼 아프리카를 이해하기 위해 목사와 천진난만하게 아프리카 언어 Zulu를 배우는 소년의 밝은 얼굴과 따뜻한 심장에 천사가 있다. 그로 인해 시작된 변화가 남아프리카에서 기쁨의 표현조차 삼가해야 하는 원주민들에게 새로운 희망과 활력을 제공한다.

아들이 요하네스버그에서 교수형에 처해지는 날 목사 Stephen Kumalo는 산에 올라가 철야기도를 올리게 된다. 죄의 고백으로 시작되어 감사의 조건을 올리는 그의 기도가 눈물겹다. 결국은 언제나 그렇듯 새벽은 올 것이다. 그렇게 찾아든 새벽에 아들은 교수형에 처해질 것이고, 새벽과 함께 해방이, 구속의 공포가, 공포의 구속이 올 것인지는 아무도 모른다. 여전히 신의 섭리에 의한 비밀이다. 지금 이 순간에도 먹을 물이 없어 일일 식량이 없어 죽어가고 있는 무고한 사람들이 겪는 고통을 무지한 인간의 머리로 어찌 이해할 것인가?

요하네스버그에서 목사가 만난 Mrs. Lithebe는 도움을 주기 위해 태어난 천사로 Why else were we born? 이란 말을 연발한다. 어쩌면 우리는 사랑받기 위해 태어난 것이 아니라 늘 주변을 도우며 사랑을 실천하도록 태어났는지도. 작년에 읽었던 아프리카 소설 Thing That Fall Apart와 언제 읽어도 영감을 주는 To Kill a Mockingbird를 연상시키는 책이다. 슬픈데 아름다운 감동이 있기에, 이 책을 읽은 나는 작은 변화의 실천을 위해 오늘 무엇을 할 것인지 생각하게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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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ensees (Paperback, Reissue)
Pascal, Blaise / Penguin Classics / 1995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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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즘 처럼 ‘종교’에 관한 얘기를 하는 것이 조심스럽고 주변의 눈총을 의식해야 하는 시기에 팡세를 읽었다. 나는 ‘고전은 누구나 읽어야 한다고 하지만 실제로 고전을 읽지 않는다’는 마크 트웨인의 말을 부정하려는 몸부림으로 고전 읽기에 도전한다. 실상 확률의 창시자로 수학자이며 과학자라고만 피상적으로 알고 있었고, 너무나 잘 알려진 ‘생각하는 갈대(thinking reed)’라는 명언을 남긴 정도로만 알고 있었지 팡세가 인간의 실존과 신학에 관한 탐구인지 몰랐다는데 나의 무지가 있다.

12세에 유클리드 명제를 풀었다는 논리와 이성의 대가인 수학자이자 과학자인 파스칼이 기독교가 답이고 신에게 의지함이 근본적인 불확실성과 모순에 대한 해결책이라 했다는 것이 그 어떤 역설을 제공하는가? 명제, 증명, 반증, 실험을 거듭하며 결국 이성과 논리가 기능을 상실하게 되는 극단에서 신의 영역으로밖에 이해되지 않는 수많은 불확실성을 만난 것이 아닐까 추측한다. 소견으로, 4차산업혁명의 실체, 영향, 도래에 대하여 피로감을 느낄 정도로 많이 들었던 현 시대에 코로나 바이러스 팬데믹에 대하여 전세계가 몸살을 앓고 있으면서도 해결에 대한 단초를 못찾고 있다는 것 역시, 인간의 나약함, 비참함을 일깨운다고 생각한다. 이를 통해 더욱 겸허해지기를 말이다.

생각이 없는 인간은 과연 목석인지 동물인지 상상조차 할 수 없으며 인간의 존엄은 사고의 질서안에서 구해야 한다고 했던 파스칼은, 인간의 큰 죄악은 신으로부터 멀어진 교만과 현세에 우리를 묶어두는 탐욕이라고 했다. 생각하는 갈대는 얼마나 나약한 존재인가? 비참하고 나약한 인간은 평생을 이성과 열정 사이에서 내전을 해야하며 과정에서 분열과 모순으로 상처받게 된다. 사소한 일에 민감하게 반응하고 정작 중요한 일에는 불감증을 보이는 무질서의 증표를 보여주게 된다.

인간이 아는 가장 확실한 것은 인간은 곧 죽을 운명이라는 것이다. 인간의 나약함을 모른 채 신을 아는 것이 위험하듯이 신을 모른 채로 인간의 비참함에 대해 아는 것도 위험하다고 했다. 전자는 철학자의 교만함이고 후자는 무신론자의 절망감일 수 있다. 항상 이렇게 교만함과 절망감의 극단에서 줄타기를 하는 이중적 위험성(dual danger)에 노출 되어 있는 나약한 인간이기에 신에 대한 의존이 필요하다. 그러나 그가 창조한 인간에게 사랑과 위안이 되는 신은, 숨겨진 상태로 존재(presence of a hidden God)하며, 모든 만물은 그것을 입증한다고 했다.

요즘 처럼 종교가 가장 비난을 받는 시기에 거짓 증언, 예시, 기적에 대한 문구가 크게 들어 왔다. 거짓 예언이 많다는 것은 진실한 종교가 존재하기 때문이라고. 인간의 마음 상태가 진실에 조건화 되어서 거짓 종교를 수용할 수있게 된거라고 했다. 거짓 기적, 예언, 종교가 있다고 해서 모든 종교가 거짓이라는 것은 아니라고 했다. 일리가 있다고 생각한다.

거짓과 진실의 경계 구별을 어렵게 하는 오늘을 살면서, ‘진실이 모든 것의 첫번째 규칙이며 궁극적 목적이 되어야 한다’는 문구는 경고의 종소리 같다. 자기애(self-love)와 진실(truth)의 비유는 또 어떠한가? 자신을 사랑하고 행복과 사랑을 갈구함이 본성이지만 나 자신을 잘 알고 사랑하려 할수록 나의 결점, 불완전함을 알게 되어 결국 이를 숨기고 싶어한다. 부족함을 인정하지 않음이 더 큰 악을 낳고 자기 기만으로 이끌 수 있다.

진실(truth)을 회피함이나 혐오도 결국 자기애(self-love)와 분리하여 생각할 수 없다. 인간은 진실을 말하는 사람을 싫어하며 아부하는 사람을 좋아한다. 진실을 말하는 것은 듣는 사람에게 유용하지만 말하는 사람에게 위험하다. 친한 친구에게나 동료들에게 그들이 듣고 싶어하는 말만을 했던 것을 기억해 보면 이해가 된다. 결국 인간의 삶은 영원한 환상(perpetual illusion), 상호기만(mutual deception)과 아첨(flattery)으로 범벅되어 있는 것이다.

결국 나라는 존재의 진실, 인간의 진실, 실체가 무엇인지 알게 되었다. 나의 부족함을 넘어, 인간은 모두 작고 볼품없는 비참한 존재라는 대전제와 모든 것이 불확실하고 모순덩어리인 세상 속에서 인간은 결국 죽을 운명이라는 가장 확실한 진리를 인정할 때, 결국 인간은 어디에서 답을 구해야 하는가?

파스칼은 책을 너무 빨리 읽거나 너무 느리게 읽을 때 아무것도 이해하지 못한다고 두 번씩이나 언급하고 있다. 내 경우는 후자였다. 직장 일도 바쁘고 하고 싶은 다른 일이 있어서 팡세가 뒤로 밀리며 몇 주를 끌었다. 그래서 결국 귀한 고전에 대한 감흥이 뒤로 갈수록 약해졌다. 고전을 감동으로 받지 못함은 순전히 독자의 부족함 때문이라 자학하는 습관이 언제부터 붙었다 ㅜ.ㅜ
반성을 계기로 독서의 불을 다시 붙여보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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The Reader (Mass Market Paperback)
베른하르트 슐링크 지음 / Vintage Books / 2001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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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 속의 책 소개로 알게 되어 강하게 끌려서 오매불망 기다려 읽은 책이다. 줄거리를 전혀 모른 채 읽었으면 더 좋았을걸 하는 생각이 든다. 그럼에도, 단숨에 읽은 감동적인 책이다. 단순한 러브스토리로 보기에는 독일 법학교수이며 판사까지 역임한 저자가 쓴 이 소설의 옷 속에서 깊은 메세지가 담겨 있다고 생각한다.

2차세계 대전 관련 소설이나 실화를 많이 읽었지만 독일인의 목소리로 이렇게 유대인 대학살에 대한 자성의 목소리와 죄의식을 담고 있는 내용은 처음인 것 같다. 부모의 세대에서 저질렀던 참혹한 전쟁사에 대한 부모들의 죄의식을 2세대가 어떻게 다룰 것인지에 대한 논의도 의미심장하다. 아우슈비츠 강제 수용소에서 경호원 역할을 했던 Hanna는 결국 종신형을 받고 죄값을 치르게 된다.

많은 이들은 그녀의 만행에 손가락질 하지만, 그녀를 가리킨 손가락이 다시 본인에게 돌아 오고 마는 비련의 주인공 Michael Berg가 있다. 범죄자를 사랑했다는 이유로 평생을 죄책감에 시달리는 그는 나치 시절의 양심적인 독일인의 표상일거라 추측한다. 그의 고뇌와 죄책감이 고귀하고 빛이 난다. 죄책감에 시달린다는 것도 양심이 맑고 순수한 사람의 몫이 아니던가?

그는, 독일 대학생들 사이에서 나치 청산 운동을 벌이는 운동에 대해 갈등을 하고 있다. 독일인의 수치심을 극복하기 위해서가 아니라 수치심 때문에 겪은 고통에서 벗어나고자 범법자들과 관계를 끊은(심지어 부모와도) 친구들이 부럽기도 하다. 만행을 저질렀거나 간과하고 외면했던 그들과 단절하고 외면한다고 죄의식과 수치심에서 자유롭기는 어렵다. 그들이 사랑하는 부모 세대에서 저질러진 만행이라면 곧 2세대도 짊어지고 갈 수밖에 없는 피할 수 없는 독일인의 운명같은 것이 아닐까라고 고뇌한다.

Michael이 Hanna를 향한 평생 안고 있던 죄책감은 눈물겹다. 15세 소년으로서 두 배 이상의 나이 차이가 나는 Hanna를 사랑한 것이 사춘기 소년의 호기심 이상 아닐거라 생각했으나, 그녀를 향한 마음이 평생 그를 지배했다. 그러나 내게 더 많은 생각을 하게 한 것은 Hanna가 문맹에 대한 수치를 숨기기 위해 평생을 거짓된 자아상을 만들며 심지어 종신형도 감수했다는 것이다.

할 수 있는 것을 보여주기 위함이 아니라 할 수 없는 것(문맹)을 숨기기 위한 그녀의 필사적인 노력은 사랑, 직업, 심지어 목숨까지 위태롭게 했다. 직장에서의 승진을 거부한 것도, 강제수용소의 경호원으로 자원한 것도 모두 그녀의 문맹때문이었다. 결국은 감옥에서 Michael이 보내준 책 내용을 테이프로 들으며, 되감기와 빨리감기를 반복하다 고장난 카세트 수리를 다시 해가며 읽고 쓰기를 배우게 된다. 문맹은 곧 의존성인데 이제 그녀는 읽고 쓰기를 감옥에서 배우면서 진정한 독립과 해방을 하게 된 것이다.

Michael이 뒤 늦게 Hanna의 문맹 사실을 알게 되고 나니 과거의 의아했던 퍼즐 조각이 모두 맞추어지게 된다. 그러나 여전히 의아해 한다. 그녀가 문맹 사실을 감추려 하면서 얻은 것은 과연 무엇이고 과연 감옥행까지 감수할만한 가치가 있는 것인지 말이다. 그러나 나는 어느 정도 그녀가 이해는 된다. 누구에게나 감추고 절대 드러내고 싶지 않은 치부가 있다. 예쁘고 매력적인 그녀가 읽고 쓸 수 없다는 수치스런 사실을 어찌 쉽게 밝힐 것인가? 부귀영화와 물질만능을 추구하는 사람들이 많다지만 인간의 존엄과 품격(dignity)을 목숨보다 더 중하게 여기는 사람도 있지 않은가? 그녀에게는 dignity가 전부였던 것일까?

마지막 Hanna의 죽음은 우울하게 책장을 덮게 했지만, 그녀는 평생의 수치심이자 열등의식이었던 문맹을 벗었기에 편안했을 수도. 또한 감옥에서 Michael의 사진을 보며 그리움을 달랬고, 18년 동안 테이프로 책 읽어주는 그의 목소리만 듣다가 Michael을 두 번이나 만났으니 행복했을 수도. 그런데, 난 과연 Michael이 Hanna를 향한 평생의 마음이 사랑이었는지, 시대적 희생물로서의 Hanna에 대한 죄책감이나 동정심이었을지 궁금하다. 후자만으로도 누군가를 평생 기억 속에 품고 있을 수 있는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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