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he Reader (Mass Market Paperback)
베른하르트 슐링크 지음 / Vintage Books / 2001년 4월
평점 :
품절


책 속의 책 소개로 알게 되어 강하게 끌려서 오매불망 기다려 읽은 책이다. 줄거리를 전혀 모른 채 읽었으면 더 좋았을걸 하는 생각이 든다. 그럼에도, 단숨에 읽은 감동적인 책이다. 단순한 러브스토리로 보기에는 독일 법학교수이며 판사까지 역임한 저자가 쓴 이 소설의 옷 속에서 깊은 메세지가 담겨 있다고 생각한다.

2차세계 대전 관련 소설이나 실화를 많이 읽었지만 독일인의 목소리로 이렇게 유대인 대학살에 대한 자성의 목소리와 죄의식을 담고 있는 내용은 처음인 것 같다. 부모의 세대에서 저질렀던 참혹한 전쟁사에 대한 부모들의 죄의식을 2세대가 어떻게 다룰 것인지에 대한 논의도 의미심장하다. 아우슈비츠 강제 수용소에서 경호원 역할을 했던 Hanna는 결국 종신형을 받고 죄값을 치르게 된다.

많은 이들은 그녀의 만행에 손가락질 하지만, 그녀를 가리킨 손가락이 다시 본인에게 돌아 오고 마는 비련의 주인공 Michael Berg가 있다. 범죄자를 사랑했다는 이유로 평생을 죄책감에 시달리는 그는 나치 시절의 양심적인 독일인의 표상일거라 추측한다. 그의 고뇌와 죄책감이 고귀하고 빛이 난다. 죄책감에 시달린다는 것도 양심이 맑고 순수한 사람의 몫이 아니던가?

그는, 독일 대학생들 사이에서 나치 청산 운동을 벌이는 운동에 대해 갈등을 하고 있다. 독일인의 수치심을 극복하기 위해서가 아니라 수치심 때문에 겪은 고통에서 벗어나고자 범법자들과 관계를 끊은(심지어 부모와도) 친구들이 부럽기도 하다. 만행을 저질렀거나 간과하고 외면했던 그들과 단절하고 외면한다고 죄의식과 수치심에서 자유롭기는 어렵다. 그들이 사랑하는 부모 세대에서 저질러진 만행이라면 곧 2세대도 짊어지고 갈 수밖에 없는 피할 수 없는 독일인의 운명같은 것이 아닐까라고 고뇌한다.

Michael이 Hanna를 향한 평생 안고 있던 죄책감은 눈물겹다. 15세 소년으로서 두 배 이상의 나이 차이가 나는 Hanna를 사랑한 것이 사춘기 소년의 호기심 이상 아닐거라 생각했으나, 그녀를 향한 마음이 평생 그를 지배했다. 그러나 내게 더 많은 생각을 하게 한 것은 Hanna가 문맹에 대한 수치를 숨기기 위해 평생을 거짓된 자아상을 만들며 심지어 종신형도 감수했다는 것이다.

할 수 있는 것을 보여주기 위함이 아니라 할 수 없는 것(문맹)을 숨기기 위한 그녀의 필사적인 노력은 사랑, 직업, 심지어 목숨까지 위태롭게 했다. 직장에서의 승진을 거부한 것도, 강제수용소의 경호원으로 자원한 것도 모두 그녀의 문맹때문이었다. 결국은 감옥에서 Michael이 보내준 책 내용을 테이프로 들으며, 되감기와 빨리감기를 반복하다 고장난 카세트 수리를 다시 해가며 읽고 쓰기를 배우게 된다. 문맹은 곧 의존성인데 이제 그녀는 읽고 쓰기를 감옥에서 배우면서 진정한 독립과 해방을 하게 된 것이다.

Michael이 뒤 늦게 Hanna의 문맹 사실을 알게 되고 나니 과거의 의아했던 퍼즐 조각이 모두 맞추어지게 된다. 그러나 여전히 의아해 한다. 그녀가 문맹 사실을 감추려 하면서 얻은 것은 과연 무엇이고 과연 감옥행까지 감수할만한 가치가 있는 것인지 말이다. 그러나 나는 어느 정도 그녀가 이해는 된다. 누구에게나 감추고 절대 드러내고 싶지 않은 치부가 있다. 예쁘고 매력적인 그녀가 읽고 쓸 수 없다는 수치스런 사실을 어찌 쉽게 밝힐 것인가? 부귀영화와 물질만능을 추구하는 사람들이 많다지만 인간의 존엄과 품격(dignity)을 목숨보다 더 중하게 여기는 사람도 있지 않은가? 그녀에게는 dignity가 전부였던 것일까?

마지막 Hanna의 죽음은 우울하게 책장을 덮게 했지만, 그녀는 평생의 수치심이자 열등의식이었던 문맹을 벗었기에 편안했을 수도. 또한 감옥에서 Michael의 사진을 보며 그리움을 달랬고, 18년 동안 테이프로 책 읽어주는 그의 목소리만 듣다가 Michael을 두 번이나 만났으니 행복했을 수도. 그런데, 난 과연 Michael이 Hanna를 향한 평생의 마음이 사랑이었는지, 시대적 희생물로서의 Hanna에 대한 죄책감이나 동정심이었을지 궁금하다. 후자만으로도 누군가를 평생 기억 속에 품고 있을 수 있는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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