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tandpoints : 10 Old Ideas In a New World (Paperback)
Svend Brinkmann / Polity Press / 2018년 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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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을 읽는 순간이 행복하다는 느낌을 갖게 했다. 작가는 ‘행복’이 가장 고귀한 가치는 아니라고 했다. 난 나의 행복을 위해, 즉 유의미한 삶을 위해 공부를 버리고 다독을 택했는데 행복과 유의미한 삶은 별개라고 일침을 놓았고, 특히나 내가 불안하게 흔들릴 때 자기계발서를 읽으며 도움을 얻곤 했는데 이것에 대한 비난도 있다. 책을 마치니 공감이 간다. 책을 책 자체로 사랑해서 즐겁게 읽어야 하는데, 뭔가를 피하고 내 행복의 수단으로 책을 선택했던 것이다. 작가의 주 메세지에 따르면 책 자체가 목적이 되어야 했다. 모든 것이 수단화가 됨을 비판하고 있다.

책 전반에 수도 없이 반복되는 단어들이 있다.
instrumentalization, an end in itself(per se), meaning of life, meaningful, intrinsic value, purpose, duty, morality, responsibility 등의 단어들이 일관성있게 반복된다. 수치화, 정량화, 측량, 손익계산에 익숙한 현대인들에게 숙고할 시간을 제공하는 소중한 책이다. 심지어 사람마저 사람 자체가 목적이 되어야 하는데, ‘인적 자원’이라는 말을 서슴지 않게 사용하며 쓸모나 소용을 따지는 것에 익숙해졌다. 나조차도 어딘가에서 유익한 사람이 되어 인정받기 위해 노력하지 않았나? 내가 수단으로 전락된 것에 당연하게 길들여져 있었다.

배우 Woody Allen의 삶이 아무 의미가 없다는 허무주의(nihilism)에 대한 반박으로, 소중한 것들이 수단화 된 것에 대한 비판적인 시각으로 쓰여진 책이다. 우리 삶에 본질적인 가치(intrinsic value)를 제공하며 그 자체가 수단이 아니라 목적(end)인 철학자들의 10가지 명언을 통해 우리는 유의미한 삶을 살 수 있다고 안내하고 있다. 삶의 방법으로 철학을 택하는 것이 수단화에 저항하는 것이다라고 했다. 가치있는 것에 대한 철학적 숙고는 그 자체로 내적인 의미가 있기에 철학적 삶은 의미에 대한 수단이자 목적이라면서, 철학이 수단이 되는 것에 대해 배수진을 치고 있다.

결론은 본질적인 가치를 지니는 활동에 적극 참여함으로써 유의미한 삶이 가능해진다는 것이다. 비록 도덕적으로 선한 의미있는 삶이 항상 자신의 행복과 복지를 가져다 주지 못하는 비극이 있을지라도. 이 책 전반에 걸쳐 작가가 우리를 안내하는 단어 중 독특한 것 중에 self-outsight라는 신조어가 있다.
Freedom is not just about self-insight, but also about self-outsight. (p.120)
철학자 Murdich의 Love에 관한 가치도 pay attention to another as another이다. 이런 이유로 작가가 자기계발서를 비난하는 것 같다. 자아실현, 자기애 등을 강조함으로써 자꾸만 나만을 바라보며 타인에 대한 관심이 줄어들게 하는 자기계발서에 대한 대안으로, 밖으로(self-outsight) 또는 타인(another)에게로 시선을 돌리는 관계맺음을 통해 의무감, 책임감을 기르며 의미있는 삶을 살아야 한다고!

마지막 10. Death(Montaigne)도 매우 감동적이었고 독특한 접근이었다. 아리스토텔레스의 The Good, 칸트의 Dignity등은 놀라운 얘기는 아니고 어쩌면 당연한 것인듯 보인다. 선과 존엄은 어떤 대가나 쓸모가 아니라 그 자체로 목적이 되어야 하고 그것을 실천하며 살아야 한다. 그런데 죽음도 우리 삶에 의미를 던져 줄 수 있다고 했다. 우리가 유한한 삶을 산다는 것은 부담도 되고 위협도 되지만 우리 삶을 풍요롭게 한다는 죽음의 역설이 있다. 우리가 죽는다는 이유때문에 모든 것은 의미를 가진다. 불멸이 아닌 유한한 삶을 산다는 것은 더욱 더 우리가 도덕적인 삶을 실천하며 낭비하지 않는 삶을 살아야 하는 이유가 된다. ‘죽는다는 것을 기억하라(memento mori)’는 문구를 떠올린다는 것은 죽음에 대한 찬미가 아닌 삶 속에서 더욱 기뻐하며 감사하는 삶을 살게 할 수도 있다.

심리학도 수단화의 수단이 된 이 시대에 쓸모가 없다는 이유, 즉 수단화가 되지 않는다는 그 이유가 삶의 의미를 찾게 하는데 매우 유용하고 쓸모 있다는 역설이 진하게 와 닿는다. 내 생각을 많이 바꾸어 놓은 책이며 사람과 관계의 소중함을 알게 했고, 내가 늘 입버릇처럼 내 삶의 의미와 목적에 대해 고민했는데 이에 대한 방향 정리가 필요함을 느꼈다. 그리고 내 삶이 이대로 행복한가에 대해서 자꾸만 생각하고 집착하는 것이 의미있는 삶과 반드시 연관이 깊지 않음도 알게 되었다. 역시 철학 속에 답이 있었다.

Only the useless is useful in helping us discover meaning. (p. 13)
Every ‘is’ has a built-in ‘ought’. (p. 37)
Everything had either a price or dignity. (p. 40)
We are only something because of our relations with other. (p. 68)
Everything has meaning because we die. (p. 124)
Mortality is a prerequisite for morality. (p. 13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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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nne of Green Gables (Paperback, Reissue) - Puffin Classics
루시 M. 몽고메리 지음 / Puffin / 1996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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음악치료(music therapy)나 미술치료(art therapy)에 대해 공감할 수 있지만 책치료(book therapy)에 대해서는 낯선 느낌이 있었다. 책을 너무 좋아하지만 마치 신체 건강을 위해 음식을 선별하여 먹듯이 책은 정신 건강을 위한 필수품목 같은 것이었다. 읽어야 할 책이 많기에 구미에 맞는 것만 읽을 수 없어 괴로운 적도 많았다. 그러나 이 책은 book therapy가 가능할 수도 있다는 생각을 하게했다. 긍정적이고 아름다운 표현으로 가득 차 있어서 부정이 들어 올 틈을 원천봉쇄 한 책이어서 읽는 내내 따뜻했다.

어른이 되어 읽었을 때 어린 왕자(The Little Prince)가 주는 느낌이 다르듯이 너무나 잘 알려진 ‘빨강머리 앤’을 읽으니 어른이 된 것이 서글프기도 했다. 과연 나에게도 이런 감수성이 살아 있었던 적이 있었나 실감이 나지 않았다. 3개월만에 부모를 잃고 10년 동안 두 가정을 돌며 집안일을 돕다가 고아원에서 4개월을 보냈던 Anne이 입양되면서 가장 많이 했던 말은 다음과 같다.

There’s scope for imagination.
처음부터 끝까지 Anne은 imagination/imagine을 빼고는 말하기 힘든 감상적 소녀이다. 상상력이 곧 그녀이고 지나친 상상력에 몰두하다가 해야 할 일을 까먹는 치명적 단점이 있을 정도이다. 아침에 눈을 뜨고 계절의 변화를 느낌이 너무나 감사한 그녀는 splendid, thrill, scrumptious, romantic 등을 항상 연발하면서도 언어로 구사할 수 없는 장면이 너무 많다고 한다.

케이크를 만들거나 소풍을 가는 것들이 모두 처음인 그녀에게 세상은 놀라움과 경이로움의 바다이다. 항상 놀랄 준비가 되어 있는 소녀이다. 감탄사를 연발하며 감동과 감격으로 살 수 있는 삶은 얼마나 행복한가? 사물을 침착하게 받아들임은 그녀의 본성을 바꿈과 같을 정도로 표현하지 않으면 안되는 Anne은 어른들의 잃어버린 감성과 순수를 찾아 주고 있었다.

이 책은 누가 언제 읽느냐에 따라 다른 느낌일 것이다. 휴대폰 한개만 있으면 시간 가는 줄 모르는 오늘날의 청소년들이 Anne의 문학 작품 암송이나 story club을 만들어 글쓰기를 하는 내용에 대해 얼마나 공감할지 모르겠다. 보는 사물마다 낭만적인 이름 짓기를 하며 낭만과 상상력을 찾는 그녀의 지칠줄 모르는 수다가 이성의 촉수로 긴장하며 살아가는 어른들에게는 얼마큼 신선하게 다가갈지.

마침내 어른들은 낭만을 모른다고 포기하려는 Anne에게 대인 기피증이(특히 여자)있고, 평생을 비사교적으로 살아 온 Mattew도 약간의 낭만은 있어도 된다고 한다. A little of it(romance) is a good thing. Keep a little of it. (p. 274) 감성을 잃어버린 채 아니 숨기고 살아가는 어른에게도 순수함과 감성의 나라에 대한 동경이 항상 남아 있기에 목석 같던 Mattew도 Anne에게 자석 처럼 끌렸으리라.

날마다 감탄사를 연발하며 오늘도 또 다른 새 날을 맞이함에 감동만으로 살아가기에는 녹록치 않은 현실이 주는 고통의 무게가 너무 크다. 그럼에도 내가 이 책을 읽으며 수다쟁이 Anne의 표현에 마음이 무너지면서 나도 누군가에게 이렇게 희망을 주는 아름다운 표현만을 쏟아내면서 살면 얼마나 좋을까 하는 착각이라도 해본다.

Anne에게 상처나 실망이 없는 것이 아니지만 오랜 기간 슬퍼하기에는 너무나 아름다운 세상이라며 무서운 회복력을 보인다. Mattew가 죽고, Marilla가 시력을 잃어감에 대학에 대한 꿈을 접으며 삶에 굴절이 있다는걸 알지만 또 다른 조용한 행복의 꽃이 그 길을 따라 필 것을 직감하는 사랑스런 Anne. 어려운 삶에도 다른 사람이 아닌 바로 그 자신이 되고 싶어했던 자연이 낳은 Anne.

Anne의 슬프지만 매력적인 표현 너머로 보이는 잃어버린 순수에 대한 외침에 귀를 기울여 보자.

My life is a perfect graveyard of buried hopes. (p.45)
She was a kindred spirit. (p. 97)
Don’t you think the trying so hard ought to count for something? (p.217)
There is one consolation when you are poor-there are so many more things you can imagine about. (p.280)
There’s the worst of growing up. The things you wanted so much when you were a child don’t seem half so wonderful to you when you get them. (p.282)
He was a foeman worthy of herself. (p.294)
I don’t want to be anyone but myself. (p.329)
There was always the bend in the road. (p.36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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포크는 왜 네 갈퀴를 달게 되었나
헨리 페트로스키 지음, 백이호 옮김, 이인식 / 김영사 / 2014년 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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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학이 필요한 시간’을 읽고, 책 속의 책의 발견으로 인해 주문한 책이었다. 구매를 통해 책을 읽어야 종이책이 영원히 사라지지 않는데 일부 기여한다는 미약한 논리와 나의 책이라는 소유감 때문에 메모도 하며 꼼꼼하게 읽을 것이라는 피상적인 생각으로, 대부분의 책을 구매하고 구매 전 책 선정에 신중을 기한다. 여러 방면의 독자평을 참고한 책인데 읽기에 어려움이 있다면 나 스스로의 한계라고 자책을 하며 자괴감에 빠지게 된다.

편독을 막는다고 다짐을 했으나 이과 계열의 책을 읽지 않아서인지 처음과 마지막을 빼고 다분히 인공물(포크, 클립, 망치, 도끼, 포스트잇, 단추, 지퍼 등등)의 탄생 및 진화 과정에 관한 중간부분은 지루하기 짝이 없었다. 작가의 의견이나 인문학적 부연 설명이 전혀 없이 fact만 설명하는 부분이 많아 힘들었다.

공학의 아버지라 불리는 헨리 페트로스키가 쓴 책으로 거의 필독서 수준이라는데 내가 역량이 모자라나 한탄하며 읽었다. 그럼에도, 전체를 정독하지는 못했으나 모든 책 속에서는 각기 다른 보석을 안고 있다는걸 또 새삼 느낀다. 처음부터 끝까지 관통하는 주제는 ‘형태는 실패에 따라 결정된다(Form follows failure)’이다. 인공물의 형태의 변화가 기능에 따라 결정되거나 필요는 발명의 어머니라는 표현을 반박한다고 볼 수 있다.

너무나 멋진 표현이 아닐 수 없다. 인공물은 기능면에서 뭔가 부족함이 있기 마련이며 이것이 진화의 원동력이었다고. 기술과 물건이 지니는 문제점과 결함을 먼저 인지하고 해결하려고 했던 이들이 발명가, 디자이너, 엔지니어들일 것이다. 모든 기술 변화는 비난과 칭찬을 받을 잠재력이 있기에, 현대인들은 진화하는 기술에 대해 양가감정이 들기 마련이다. 그럼에도 보통 사람들은 불완전한 기술에 생활습관을 맞추며 살아간다.

신선했던 표현은 기술이 냉혹하게 앞으로만 전진하기 때문에 뒤쫓아 가지 않으면 곧 시대에 뒤떨어지리라는 생각은 잘못된 것이다라고 했다. 즉, 우리 자신의 본질처럼 결점 많고 불완전한 인공물의 특성을 고려하고 아무리 최상의 것이라도 완벽은 커녕 완벽에 가까운 신제품은 없기에, 새 것에 익숙해지는 동안 옛 것의 친숙함이 길러낸 타성에 젖어 있던 우리가 불평을 해도 용서받을 수 있다는 뜻이 아닐까?

인공물과 기술적 환경에 잘 적응할 수 있다는 사실이 오히려 변화에 저항하는 요인이 된다고 했다. 에디슨의 명언 ‘끊임없이 움직이면 불만이 보인다. 불만이야말로 발전을 위한 최초의 필요조건이다’를 통해, 인공물의 단점을 지각하고 기술적으로 비평하길 촉구하는 듯하다. 문명의 선진화는 그 자체의 실수와 결함을 끊임없이 고쳐 나가는 역사라고 하면서...

평소에 쉽게 만족하지 않는 나, 감사의 조건을 헤아리자 하면서 상황에 불평했던 나, 늘 뭔가를 완벽하게 하려고 노력했던 나, 항상 내 삶에 뭔가 하나가 빠져 있는 듯 허기를 느끼는 나 자신에 대해 나는 또 불만이었다. 감사하자고 매 번 다짐하고 일기를 쓰면서도 항상 갈증을 느끼는 내가 교만하다 생각했었다. 그런데, 이 책을 통해 불평도 변화의 촉매 역할을 한다는걸 알게 되어 약간의 위안을 얻었다.

그러나, 이 책에서 말하는 불평의 대상은 인공물과 기술이기에 나의 자의적 해석을 통해 헛된 위안을 얻은 것은 아닌지 모르겠다 ㅜ.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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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신주의 감정수업 - 스피노자와 함께 배우는 인간의 48가지 얼굴
강신주 지음 / 민음사 / 2013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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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날에 큰오빠 집에 갔다가 책꽂이에서 자신의 자태를 뽐내는 이 책을 들고 왔다. 겉도 화려하고 자신감이 넘치며 제목마저 매력적이다. 그런데 상업적인 냄새도 난다. 내가 잘 아는 나의 감정까지 학원 수업을 듣듯이 강의를 듣도록 자극하여 나를 수동적이고 의존적인 사람으로 만들다니 말이다. 그런 유혹에 넘어가 48가지 감정을 들여다 보았다.

인문학과 예술의 동력이 감정이라는 의견에 동의한다. 감정의 윤리학을 주장한 스피노자의 감정에 대한 정의를 바탕으로 48개의 문학작품 속 감정을 분석했다고 하지만 많은 부분이 사랑에 치중되어 있는 듯 하다. 어쩌면 각기 다른 이름의 질투, 복수, 수치심, 대담함, 절망 등의 감정들이 사랑을 모태로 태어나는 것이라 어쩔 수 없다지만 그래도 감정수업이 아니라 사랑수업인듯하다.

개인적으로 당황의 경험을 통해 우리는 진정한 자신 혹은 맨얼굴을 찾을 수 있고, 당황의 감정에 빠진 사람은 행운아란 표현이 신선했다. 과거를 동경하는 것은 자신의 삶에 대한 모독이며 현재의 삶과 직면할 때만 우리는 새로운 삶의 절정에 이를 수 있다는 부분은 애들러의 심리학을 생각나게 한다. 그리고 나의 화두인 겸손 부분도 좋았다. 자신의 무능과 약함을 고찰하는데서 생기는 슬픔. 겸손을 통해 해묵은 편견, 허영 그리고 자만심으로부터 자유로워진다.

마지막 니체의 인용을 통해 선과 악이라는 규범을 벗고 좋음과 나쁨이라는 자신만의 기준에 따라 살도록, 주변의 평가에서 자유롭고 당당하게 자신의 감정의 색채에 따라 살 것을 권장한다. 감정은 현재에 살게하고 안전한 삶에 대한 생각은 미래에 살게 하기에 우리는 늘 미래를 위해 현재의 열정적인 감정을 교살하도록 배우지 않았는가? 늘 더 나은 미래를 위해 현재의 즐거움을 유보하도록!

그러나 현재가 된 미래에서도 또 다른 미래를 위해 ‘지금 이 순간’을 포기하게 된다니 너무 슬퍼진다. 현재의 감정에 충실하게 산다는 것은 많은 희생이 따르기도 하는데 이것까지 감당할 용기가 나에게 있는가 묻는다. 감정이 아닌 이성이 지배하는 내 마음의 상태를 유지하려 안간힘을 쓰는 나는 다분히 감상적인 사람이라는 강한 반증이다. 일기 쓰기나 가요 듣기조차 거부하며 나약한 의지력으로 버틸 때가 있었다. 사랑이라는 감정이 얼마나 부질없고 찰나에 지나지 않는 덧없는 감정이라 그간 꾹꾹 눌러 왔는데 작가는 감정이 순간적인 것이 아니라 우리 삶의 속도만큼 충분히 지속적이라 했다. 과연 그럴까?

에필로그에서 48개의 도서 선정이 원고 청탁을 했던 여자 편집자에 의해 이루어졌다는 내용을 읽고 나니, 책 내용이 한쪽으로 치우친 듯한 이유를 알듯하다. 또한, 이미 읽었던 작품을 나의 느낌과 달리 해석한 것에 아쉬움도 있었지만 새롭게 읽고 싶은 문학작품 몇 개를 건진 것만으로도 감사하다. 삽입된 48점의 그림도 특색있었다.

수업을 제대로 소화하고 내재화하여 앎과 삶이 일치하는 지행합일의 삶을 통해 삶 속에서 앎이 열매를 맺으려면 예습과 복습을 철저히 하고 이론을 실제에 적용하는 응용력을 길러야 한다. 두려움 없이 단단해진 감정 근육을 통해 가면 없이 순수한 얼굴로 내 감정을 표현할 준비가 되었는가 내게 묻는다. 이론과 실제는 또 다르니 좌충우돌을 하며 시행착오를 겪게 될지도. 그럼에도 감정에 나를 맡길 수 있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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The Metamorphosis (Mass Market Paperback) Bantam Classics 6
프란츠 카프카 지음 / Bantam Classic & Loveswept / 1972년 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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너무나 유명한 고전이라 내용도 이미 알고 있었으나 분량이 적어 꼼꼼하게 정독을 했다. 영어로 읽고 나니 느낌이 또 달랐다. 글이 매우 어두워서 작가의 슬픔이 묻어 나오는 듯 했다. 작가의 성장 배경이 작품 속에 스며드는 것은 불가피하다고 생각한다. 허구가 실제가 되고 실제가 허구가 될 수 있는 것이 문학작품의 매력이라 생각한다. 주인공 Gregor Samba가 곧 프란츠 카프카로 연상이 되기에 슬프기까지 했다. 아니면 슬픈 현대인 곧 나의 자화상이라서 감정이입이 된 것일까?

부유한 유대인 가정과 위압적인 아버지 아래서 아버지의 기대에 따라 살아야 했던 감수성이 풍부하고 문학을 너무 사랑하여 문학이 곧 자신이라 했던 카프카는 얼마나 힘들었을까? 체코말을 하는 독일계 유대인이라는 민족의 정체성에서 오는 혼란과 아버지의 권고에 따라 법을 전공하고 보험회사를 다니며 밤에 글을 쓰는 것이(nocturnal writing) 일상의 무료함을 이기는 유일한 희망이었던 카프카의 소외와 고독이 하루만에 썼다는 이 ‘변신’에 담겨 있다.

세일즈맨(traveling salesman)인 Gregor Samba가 어느 날 눈을 뜨니 벌레로 변신해 있다. 그는 변신한 순간부터 죽는 날까지 오로지 가족의 생계를 위해 전전긍긍하고 돈을 벌어 오지 못함에 수치와 죄책감을 느꼈다. 바이올린을 연주하는 17세의 동생 Greta를 음악학교(Conservatory)에 보내주겠다는 것이 동생에게 주려던 크리스마스 선물이었다.

사업 부도로 5년 동안 일을 해본적 없는 아버지, 천식을 앓는 어머니, 예쁜 옷과 바이올린을 좋아하는 여동생을 위해 생계를 책임졌던 Gregor는 어쩌면 어깨가 무거워 벌레가 되어 짐을 내려놓고 싶었는지도 모른다. 그런 꿈을 꾸며 잠들었는지도 모를 일이다. 일만을 하며 기계적으로 살면서 그의 빈자리와 존재감을 인정받고 싶었는지도 모른다.

그러나, 그는 가족들에게 흉칙하고 역겨운 벌레이상이 아니다. 여동생 Greta가 음식을 가져다 주고 방청소를 맡지만 부모는 방에 들어 오지도 못한다. 그가 너무나 좋아하는 그림을 옮기지 못하게 하기 위해 그림에 달라 붙어 있는 그를 보며 어머니와 여동생이 소스라치게 놀라는 모습을 본 Gregor는 더 상처를 받는다. 그의 빈자리는 경제적인 이유로 공허했을 뿐이다. 다시 은행에서 일을 하는 아버지, 바느질을 시작한 어머니, 가게에서 일을 하는 여동생과 방에 세입자를 들이면서 그의 빈자리는 너무나 빨리 채워지고 더 이상 돈을 벌어 오지 못하는 그는 제거 대상이 된다.

여동생의 바이올린 선율이 너무나 아름다워 감동한 나머지 거실로 나오게 된 Gregor는 세입자들을 놀래키고 결국 여동생은 할만큼 했다고 벌레는 오빠가 아니기에 제거해야 한다고 한다. 마음의 상처때문인지 그날 밤 Gregor는 죽게 되고 가족들은 너무나 행복하게 감사의 기도를 하고 여동생에게 멋진 남편감을 구해 줄 시간이 되었다고 하며 끝이 난다.

벌레를 좋아하는 사람은 아무도 없겠지만, 나는 특히나 기어다니는 것은 정말이지 너무 싫다. 그런데 이 소설 속 Gregor에 대해 많은 연민을 느낀다. 그가 외모만 달라졌다면 가족들이 최소 눈물은 흘렸을까? 경제를 책임지는 가장의 역할이 박탈되면서 그의 존재 자체가 유명무실해진 것이다. 가족을 누가 천륜이라 했던가? 가족들에게서 특히 아버지의 억압에서 사랑받지 못한 상처받은 연약한 카프카의 모습이 Gregor에서 나타난다.

누구나 가슴 속에 외로운 섬하나 안고 사는 현대인들의 아픔을 잘 드러내는 고전이다. 가족들에게서 조차 이해받지 못하고 조건부적인 사랑을 나누는 시대에 누군가를 ‘있는 모습 그대로 사랑’한다는 것이 가능할까? 특히나 더 외모지상주의 시대에 살면서 나는 아니라고 하지만 누군가의 진가를 겉모습으로 평가했던 적이 많음을 반성한다.

나는 겉이 아닌 나의 진실함으로 인정받고 싶어하고, 나의 역할과 기능이 아니라 부족함 모습 그대로 안아주길 바라면서, 정작 나는 내가 사랑하는 사람들을 그들의 겉이 달라졌을 때도 따뜻하게 감싸 주었는지, 앞으로 그럴 수 있는지 생각해 본다. 나는 남매관계에서 Gregor의 역할을 하지는 못했고 오히려 빚을 졌기에 그것으로 힘든 적이 있었고, 나 역시 진정한 가족의 의미에 대해 고민을 했었다.

변화는 현대인의 화두이고 원동력이라 하는데 변신은 나의 실존을 위태롭게 하는구나. 누구나 어느 날 갑자기 어떤 형태로의 변신은 일어날 수 있지 않을까? 현대인의 소외와 고독은 어디에서 위로를 얻어야 하는가?

문학을 너무나 사랑한 카프카의 명언이다.
A book should serve as the ax for the frozen sea within us. -Kafka-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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