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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 Little Life (Paperback)
Hanya Yanagihara / Pan MacMillan / 2017년 3월
평점 :
독서 삼매경을 선물한 이 책이 너무 고맙다. 나의 눈물샘을 자극시키며 3번씩이나 주체할 수 없는 눈물을 쏟게한 이 책이 너무 감사하다. 주변 지인들이 모두 울고 있던 작년 연말 어느 상황, 눈물이 나지 않는 나를 보며, 감정이 메마른 나를 자책하지 않았던가? 나의 주체할 수 없었던 눈물이 이 책의 자극성 때문인지 아니면 나의 감수성 때문인지는 정확히 구분하기 어렵다. 그러나, 이 책이 심정적으로 부담스러웠던 것은 사실이다. 글씨도 깨알만한데, 분량도 어마어마하고(720p), 인칭도 1인칭이 아니어서 원서로 읽음에도 he가 누구를 지칭하는지 순간 혼란스럽기도 했다.
무엇보다 마음이 힘들었던 것은 Jude의 삶이다. 상상하기 힘든, 현실에서 일어나서는 안되는 소설 속의 이야기로 남기를 희망한다. 친구 Willem은 Jude를 ‘숨기는 것이(concealment)이 그의 유일한 기술인 마법사(magician)’라고 묘사하고 있었다. 숨김의 명수라는 뜻이다. 평생에 걸쳐 철저하고 완벽하게 숨기고 싶었던 것은 무엇일까 답답했는데, 알고나니 충분히 이해가 된다. 자해가 갈수록 심해지는 그의 삶이 답답하여 화까지 나려고 했으나 점차 밝혀지는 그의 과거를 읽으며 상상이나 감당이 어려워서, 이렇게까지 슬프고 처절한 삶이 현실에 있을까 생각하며 작가가 미워지기까지 했다.
5장에서 끝났어도 충분히 재미있는 책이 아니었을까? 충분히 자극적이고 감동적이었는데, Willem을 너무나 끔직한 교통사고로 죽게 설정한 후, Jude와 주변 사람들이 받는 고통, 결국 Jude의 자살, 그로 인한 평생 인자함을 실천한 Harold의 슬픔이 나에게도 전해지는 것 같아 후반부는 읽기가 너무 너무 힘들었다. 내가 독서를 통해 얻고자하는 것은 무엇일까? 소설의 소재는 현실을 기반으로 하는데, 이렇게도 슬픈 이야기거리가 현실에 존재하는지, 아니면 자극적인 것에 중독된 독자를 위한 반전을 위해서인지 작가의 의도가 궁금하기까지 하다.
Jude는 가장 불행한 남자이면서 가장 행복한 삶을 살았다고 생각한다. 외모, 재력, 지성을 모두 가진 탁월한 변호사이다. 내가 가장 부러웠던 것은 그를 변함없이 사랑해 주는 친구 3명(Willem, Malcolm, JB)이었다. 대학 시절부터 평생을 함께 할 수 있는 우정이 많지는 않을 것이다. 보통 여자들의 끈끈한 우정을 그린 드라마와 책은 많이 보고 읽었는데 남자 4명의 진한 우정을 그린 내용은 다소 신선했다. 뿐만 아니라 평생을 친자식보다 더 사랑한 Harold와 Julia와 같은 양부모가 있었다는 것은 엄청난 특권이다. 그를 한결같이 사랑해준 지인들도 (Andy, Richard) 많다.
그럼에도, 모두의 연인으로 사랑받으며, 가장 용감하게 살아왔던 Jude의 28년은 늘 15년의 과거에 철저하게 사로잡혀 있었다. 타인의 눈에 비추인 그의 완벽한 현재는 과거에 종속되어 한발자국도 나아가지 못했다. 평등의 공리(axiom of equality), 즉 X always equals X이며, 과거의 그가 항상 현재의 그가 될 것이라는 공포가 있었다. 상처의 원인을 과거에서 찾는 프로리드의 심리학보다, 삶의 궁극적인 목적과 이유에 의해 상처도 치유될 수 있다고 믿는 애들러의 미래 지향적 심리학에 정면으로 도전하는 소설이 아닐까한다.
한편으로는, Jude가 유일하게 그의 아픈 과거를 모두 털어 놓았던 변함없는 친구 Willem으로 인해 Jude가 변화되기도 한다. 그들의 우정이 사랑으로 발전하며 Jude의 외로움이 잠시 위로받는 듯 했다. 과거에 대한 상처외에도 Jude의 외로움은 엄청난 두려움이었다. 배우로서 화려한 삶을 살아가면서도 결혼에 대한 고민을 하는 Willem의 이야기도 많이 공감하며 읽었다. 20, 30대를 지나며, 일, 운동, 봉사 활동도 혼자 외롭게 평생 늙어가리라는 두려움을 극복해 주지 못했다. 20대에는 친구에게 서로 의존하는 것은 멋있지만, 30대에는 남자들의 우정에 대해 주변의 색안경이 있음에 불편해하는 Willem의 고민을 읽으며, 서양에서도 나이에 대한 편견이 있다는걸 느꼈다.
Willem의 결혼관을 보면서 한동안 잊고 있었던 결혼에 대해 생각해 보게 되었다. 결혼이란 항상 무언가를 희생해야 하며, 문제는 무엇을 희생하느냐이고, 사람들은 각자 다른 선택을 한다. 이것이 현실적인 결혼관이라는 것인데, 나는 과연 무엇을 선택하며 무엇을 희생할 생각을 했는가? 지적 교감/양립성, 외적인 미, 부드러움, 친절함, 유연성, 신뢰감, 능력 등에서 한가지를 선택하고 나머지는 희생을 했어야 했다. 모든 것을 가진 사람을 찾음은 불가능에 대한 도전이며, 나는 과연 그런 상대방이 될 수 있는가를 돌아보아야 한다.
평생을 과거의 수치심과 힘겨운 싸움을 했던, 울지 않는 것이 가장 자랑스러웠던, 가장 용감한 삶이면서 가장 소심한 삶을 살았던 Jude의 결코 작지 않은 이야기는 상처, 열등의식, 가족, 우정, 사랑, 결혼관, 삶의 목적과 이유, 동성애, 입양 등에 대해 많은 생각을 하게 했다. 누구에게나 아픈 과거는 다 있을 것이고 나에게도 있다. 정도의 차이가 있을 뿐이고, 그 과거가 현재를 긍정적으로 혹은 부정적인 방법으로 이끌 수도 있다. 깊은 아픔과 상처의 희석은 많은 시간의 기다림과 무한한 애정이 필요한 것같다. 어쩌면 궁극적 치유와 회복은 신의 영역인지도 모르겠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