Demian (Paperback) - 『데미안』영문판
헤르만 헤세 지음 / HarperPerennial / 2009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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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엇이 나로 하여금 데미안을 읽게 했는지 정확히 모르나, 출판사의 마케팅이나 온라인 서점의 과도한 홍보 등에 빚이 있는 듯하다. 가끔은 귀가 얇은 것도 뜻하지 않은 행운을 던져 주는구나. 똑같은 책이라도 언제 어떤 심정으로 읽느냐에 따라 완전히 다른 그림을 시시한다는 것은 알고 있었으나, 이 데미안을 내가 예전에 읽었다고 할 수 없을 만큼 완전히 새 책을 읽는 느낌이었다. 어린 학창 시절에 한글 버전으로 읽었을 때는 전혀 이런 느낌이 아니었다.

나의 고통스런 부분은, 읽는 내내 너무나 섬세하고 예민한 감각에 감동하고 또 감동했는데 리뷰를 쓰기가 어렵다는 것이다. 얇은 분량이나 결코 쉽지 않은 책이고, 누가 언제 읽느냐에 따라 다른 해석이 충분히 가능하고 시대적 배경과 작가의 철학을 배제하고 읽으면 쉬울 수도 있는 책이다. 내게는 너무나 아름다운 책이나 쉽게 정리되지 않는 책이라 책 앞 뒤 서평까지 모두 읽어 도움을 받을 수밖에 없었다.

1차 세계대전(1914-1918) 중인 1916년에 시작해서 대전이 끝난 1919년에 출간된 책이고 반전운동을 했던 헤세의 작품이지만 과도한 상징적 표현으로 인해 예민한 시대적 문제 즉, 반전에 관한 내용이 묻혔다는 비난도 있다는걸 이번에 알았다. 반전활동 캠페인을 벌인 평화주의자 Romain Rolland 작가와의 관계가 Demian에 끼친 영향, 책 속에 지속적으로 나타나는 꿈이야기는 헤세가 Carl Jung의 제자와 시작했던 정신분석 연구의 산실이라는 것도 새롭게 알게 되었다.

위 배경을 배제해도 한 가지 선명한 그림은 보인다. 헤세는 서문에서, 자신은 과거부터 현재까지 여전히 추구하는 사람(seeker)이라고 시작한다. 무엇을 추구하는가? 진실한 자신을 찾기 위한 노력이리라. 그러나 인간은 그 누구도 완전히 철저하게 자기 자신으로 살아간 적이 없다고 했다. 그리고 서문을 지나 첫 장을 열기 전에도 왜 그리 진실한 내면의 소리에 귀를 기울이며 진짜 나로 사는 것이 그리 힘든가로 시작한다. 책 전반에 자신에 이르는 길을 찾는 것이 유일한 삶의 소명이라고 몇 번씩 반복하고 있다.

왜 그렇게 우리 자신 본연의 모습으로 살아가는 것이 힘들까? Sinclair가 대학생이 되어 Demian과 나눴던 군중심리/ 무리 본능(herd instinct) 때문이 아닐까? 남들 처럼 살지 않으면 불안해진다. 그러나 군중 속에 있다는 것은 기존의 관습을 인정해야 하기에 자유와 사랑을 찾아보기 힘들며 진정한 교감이 어렵다. 자신과 조화를 이루지 못할 때만 두려워해야 하지만 대부분의 사람들은 타인과 조화를 이루지 못할 때 불안해 한다. 더불어 사는 삶과 순응하며 같이 가는 삶을 얼마나 많이 강조하는가?

너무나 감수성이 풍부하고 예민했던 Sinclair는 아주 어린 시절부터 빛과 어둠의 두 영역사이에서 고뇌했다. 빛의 세계에서 어둠의 세계를 동경하다가 의도치 않게 Franz Kromer의 폭력에 눌려 힘겨운 어린시절을 보냈다. 그런 Sinclair에게 구세주로 Demian이 나타났고 그에게 엄청난 영향을 받게 된다.

따뜻하고 여유로운 가정에서 자랐으나 예민하고 조숙한 청년 Sinclair에게는 외로움과 내적 갈등이 너무나 익숙했고 혼자있는 시간을 더 편안하게 느꼈다. 그 스스로 자꾸만 안으로 들어가 빗장을 걸고자 자처했으나, 혼자 살아갈 수 없는 삶이 아니던가? 어쩌면 거의 선천적 심약한 우울증을 앓던 Sinclair라 할지라도 그가 걸어가던 길에서 만난 사람들이 그를 아름다운 청년으로 살아가게 하는 양분이었으리라 생각한다. 당연 Demian, Alfons Beck(반 친구), Pictorius(오르간 연주가), Knauer(그를 따랐던 반 친구), Frau Eva(데니안의 엄마) 등. 물론 철학자 니체, 그림, 음악도 그의 자양분이었다.

Demian의 각 챕터 제목도 반드시 사람 이름은 아니지만 요지는 누가 Sinclair에게 얼마나 깊은 영향을 끼쳤는가이다. 언제 누구를 만나느냐는 정말 중요하며 가치관 전체를 흔들 수도 있다. 사색적이고 우울하던 지적인 청년 Sinclair가 Demian을 만나 자신 본연의 소리에 귀를 기울이며 진정한 자아를 찾아가는 성장 스토리 그 이상의 깊이와 무게가 있는데 그걸 여기에 다 담아내지 못함이 안타까울 뿐이다.

나는 그저 Demian을 만난 Sinclair가 부러울 뿐이다. 나의 데미안, 나만의 데미안을 어른은 가질 수 없는가? 누구의 데미안이 되어줄 수도 없는데 청소년이 아닌 어른들은 어디서 데미안을 찾아야 하는가? 이런 의존적 사고로는 진실한 나로 원래의 내 모습으로 살지 못하고 늘 가면을 쓰고, 군중에 묻혀 그저 살 수밖에 없다고 책 속의 데미안이 걸어 나와 비난할 것 같다. 이렇게 우리는 아니 나는 타인의 해석과 판단에 길들어져 있다. 말이 아닌 내 머리 속 생각조차 타인의 시선과 평가를 염두해 두는 나에게 놀란다.

미래 언젠가 다시 Demian을 읽으면 어떤 느낌일지 궁금해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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The Great Alone (Paperback) - '나의 아름다운 고독' 원서
크리스틴 한나 / St. Martin's Press / 2019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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캐나다 시인 Robert Service가 Alaska를 The Great Alone라 칭했다고 했다. 그 누구의 도움도 없이 혼자서 당당하게 살아갈 수 있는 자만이 알래스카의 잔인한 아름다움을 누릴 자격이 된다는 말을 암시한다 생각한다. 충분히 강인한 자에게 천국이 되고 한 번의 실수만 가능하고 두 번째의 실수는 죽음을 부르는 곳, 과거에 어떤 사람이였느냐가 중요치 않고 어떤 사람이 되느냐가 중요한 곳, 가혹한 날씨와 고립으로 인해 성격을 만드는 것이 아니라, 성격의 민낯을 진실하게 보여 주며 내가 누구인가를 잘 배울 수 있는 곳이 알래스카라고 묘사되어 있다.

분량이 너무 많았으나 일단 읽기 시작하자 내려 놓기 힘들만큼 너무 재미있어서 주말에 누리는 잠의 사치를 접을 수 밖에 없었다. 재미와 감동이 꼭 같이 가는 것은 아니다. 화려한 문체나 미사여구를 동반하지 않았고 예측가능한 스토리로 승부수를 던지는 소설이라 쉽게 접근했으나 읽는 동안 감동이 아니라 분노가 일었다. 가정 폭력을 다룬 점에서 볼 때, 이 책은 ‘Educated’와 닮아 있다.

13살의 Leni는 베트남 전쟁포로(POW)인 아빠(Ernt)의 분노와 엄마(Cora)가 선택한 사랑이라는 굴레로 인해 언제나 익숙한 슬픔에 길들여진 채, 환경과 재정적 어려움에 갇힌 오두막에서 살아간다. TV, 전기, 전화도 없는 곳에서 가혹한 겨울을 준비함도 버거운데 Leni와 엄마는 늘 아빠의 잠재적 폭력을 숨죽이며 대비해야 한다. Leni는 엄마가 내린 사랑이라는 정의에 길들여져 있었다. 아빠는 전쟁으로 인해 아픔이 있는 사람이고 상처가 있는 사람에게 사랑을 멈추면 안된다고. 시간이 흐르면, 알래스카로 가면 아빠는 변할 것이고, 너무 사랑해서 폭력을 휘두르는 것이라고.

엄마 Cora의 사랑의 실체는 과연 무엇인가? 부모님과 의절하고 어린 나이에 결혼한 엄마에게는 결국 아빠가 전부였다. 사랑이라 믿었고 그렇게 선택한 남자에 대한 믿음과 사랑을 깊어지는 폭력 때문에 부인한다는 것은 그녀 자신의 삶 전체에 대한 부정이 될까봐 사랑이라 계속 믿고 있었던 것이 아닐까? 그녀 사랑의 실체를 알지 못한 채, 중독되고 변질된 그녀의 사랑때문에 나는 읽는 내내 화가 났다.

여러가지 형태의 사랑이 있을 수 있다. 어쩌면 남녀간에 사랑이 아니어도, 사랑이라는 명목하에 자행되는 신체/언어 폭력 혹은 변질된 행위가 사랑의 허상에 가리워져 드러나지 않을 뿐인지도. 내가 하는 사랑을 객관화시켜 보지 못할 뿐 나 역시 사랑의 허상에 속으며 사랑이라 믿고 굴레에서 벗어나지 못하는지도 모른다.

사랑이라는 이름때문에 치뤄야할 대가와 큰 위험, 눈과 귀를 가리는 사랑의 허상과 허울에도 이 책은 주제를 ‘사랑의 견고함/내구성(durability of love)’ 으로 정하고 있는가? 사랑은 빛을 바래지도 사라지지도 않으며 과거와 현재를 넘나들며 어떤 역경에도 불구하고 삶의 동력으로 존재한다고 했다. 잔인한 아름다움/아름다운 가혹함을 발산하며 훼손되지 않은 눈부신 자연의 미로 사람들을 유혹하는 알래스카에서 Leni와 Mattew의 사랑은 결국 아름답게 결실을 맺는다.

사람의 최상의 면을 이끌어 낼수도 있고, 동시에 인간의 최악의 면도 이끌어 낼수 있다는 알래스카를 책으로라도 만난 것에 감사하다. 작가는 모험을 좋아하시는 부모님의 결정에 따라 어린시절 알래스카애 살았던 경험을 바탕으로 이 책이 출간된 것 같다. 다양한 경험은 삶의 양념이 된다.

물론 다양성을 누리기 위해서는 나의 안전지대에서 과감히 벗어나야 한다. 무엇을 선택 하느냐는 내 몫으로 남는다. 사랑의 선택, 모험의 선택, 눈부신 주말 오후에 무엇을 할 것인지의 선택... 선택이 곧 내가 되는구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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The Library at Night (Paperback)
Manguel, Alberto / Yale Univ Pr / 2009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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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는 책에 의해 설립된 사회에 살면서 책을 읽지 않으며, 책이 악세서리가 된 사회에 살고 있다고 한다(p. 219). 매우 공감하는 표현이고 역설적 표현이나 악세서리라는 표현에는 긍정적이다. 책이 장식의 지적 소모품이 되어서라도 가까이에서 접할 수 있다면 고무적이라 생각한다. 백화점, 까페, 심지어 공원 한켠에 책들이 인내심을 가지고 기다리고 있고, 또 다른 기다림의 시간을 보내는 사람들이 책장을 열고 있는걸 심심찮게 보게 된다. 그런 겉치레도 아름답게 보이는건 나만 그런걸까?

이 책을 만난 것이 얼마나 큰 행운인지, 영영 읽지 못했다면 서운할 뻔했다. 이렇게 보물찾기 하듯이 양서를 만나는 행운은 가끔씩 온다. 도서관에 대한, 책에 대한 애정이 듬뿍 담겨 있고, 어느 페이지를 넘겨도 작가의 책 사랑이 스며 나온다. 여기저기서 책이 영혼의 치료제라고 노래하는 듯하다. 몽테뉴는 그의 집 3층에 위치한 도서관에 낮에만 갔다고 하지만, 작가는 밤의 도서관을 선호한다. 밤이 주는 신비함 때문인가 표지도 제목도 매력적이다.

이 책을 읽고 나니 도서관에 갈 때마다 이 책이 생각날 것 같다. 도서관에 관한 모든 것을 담고 있는 책이다. 챕터마다 부제도 얼마나 잘 붙였으며 글도 얼마나 영혼을 울리는 표현이 많은지, 세계 최고 독서가에게 저절로 고개가 숙여진다. 독서는 환생의 의식이라며 불멸을 추구하던 이집트의 신비한 알렉산드리아 도서관 이야기로 시작하여 책의 다양한 나라별 분류법의 역사 등 흥미진진한 도서관 이야기가 펼쳐진다.

‘권력(Power)으로서의 도서관’은 공공 도서관 만큼 인간 희망의 허영심을 잘 나타내는 것은 없다는 사무엘 존슨의 명언으로 시작한다. 진정한 지식은 지식의 축적이 아니라, 페이지로 부터 건져낸 경험이 다시 새로운 경험으로 변화된 것이라 했다. 가난을 딛고 성장한 Andrew Carnegie의 역설은 다소 의아했다. 책을 읽었던 아버지와 노동 개혁 전도사였던 삼촌의 큰 영향을 받았음에도 카네기가 선택적 기억력을 가졌다고 할만큼 근로자들을 착취했고 부를 축적함에 무자비했다. 그런 그가 카네기 도서관 건립에 앞장섰다. 도서관이란 기념비적 건물을 통해 가난한 시절 탐했던 권력을 과시하고 싶었을까?

‘그늘(Shadow)로서의 도서관’이 가지는 역사도 전에 깊이 생각지 못하던 부분이었다. 세계대전 동안 파괴, 분실, 약탈된 도서관 및 책에 관한 내용이었다. Don Quixote, Pinocchio, Harry Potter 등의 책들이 나라마다 시대별로 금서로 지정했던 사례도 있었다. 많은 도서관 파괴와 도서 약탈 행위를 통한 상대 문화말살 정책은, 오히려 개종, 동화, 충성의 가능성을 없애는 어리석은 행위라는 측면을 논하지 않더라도, 그 얼마나 귀중한 문화적 손실인가? 권력자들은 ‘기억(memory)’을 두려워 하는가? 글의 힘이 얼마나 강한지 알기에 범하는 파괴적 행동이리라.

‘마음(Mind)으로서의 도서관’에는 독일 역사학자 Aby Warburg이야기가 주를 이룬다. 어린시절부터 책에 탐닉했던 그가 독서에 대해 상기했던 표현이 매우 인상깊다. “책은 무기력한 순간에 우울한 현실로 부터 벗어나게 했던 수단이었으며, 세상적 잔인함에 대비하는 예방접종” 같은 것이었다고. 얼마나 책을 많이 읽으면 세상적 고통과 아픔으로부터 면역력이 생길 수 있을까? 범인인 나에게도 가능하기는 한걸까?

‘생존(Survival)으로서의 도서관’에서도 그늘(Shadow)편에서 다루었던 것과 비슷한 사례로 1943년 나찌 정권시기에 아우슈비츠 강제 수용소 근처에 설립된 Block 31 수용소에서 8~10권의 책을 돌려 읽으며 열악한 상황에서 지적 삶을 지속했던 500명의 아이들 이야기가 있다. 일종의 아이들의 비밀 도서관이었던 것이다. 강제 수용소에서 책이 어린 아이들의 위안이 되고 희망이었다니 생각만 해도 뭉클하다.

‘망각(Oblivion)으로서의 도서관’은 제목만큼 굉장히 매력적인 내용이었다. 기억이 아니라 망각으로서의 도서관이라는 역설적 표현은 많은 위안을 주었다. 많은 책을 읽었다해도 기억이 나지 않아 아둔한 나를, 제대로 소화하지 못한 나를 탓한 적이 많았다. 그런데, 모든 독자는 지식과 무지, 회상과 망각 사이의 적절한 균형으로부터 이익을 얻는다고 했다. 밤이 혼돈이 낳은 자식이라면, 망각 즉 레테(Lethe)의 강은 밤과 불일치 사이의 끔찍한 조합으로 태어난 손녀라고 위안을 주고 있었다.

작가의 영적 스승이 되는 Jorge Luis Borges를 알게 된건 큰 수확이고 나의 무지의 재발견이다. 시력을 잃어가며 낮에는 글쓰기와 책읽기를 했고, 시력을 잃고 나서도 받아쓰기와 다른 사람에게 책을 읽어달라 하면서까지 독서를 한 Borges. 그는 시력을 잃고도 도서관장을 역임했다. 작가가 Borges에게 4년 동안 책을 읽어 주며 얼마나 많은 영향을 받았는지 책 곳곳에서 느낄 수 있었다.

사회나 국가의 정체성(identity)으로서, 범세계적 시민의 고향(home)으로서 자리매김해야 하는 도서관 속에서 우리는 과거를 만나고 과거 속에서 견딜만한 미래의 희망을 보는 것일까? 책 자체가 희망이나 해결책을 제시한다고 하면 과장일 것이다. 우리가 찾는 것은 미래에 대한 ‘가능성’인지도. 마지막에 작가는 자문한다. What do I search at the end of my library’s story? 답은, 위안(consolation)이었다. 직가가 도서관 속에서, 책 속에 묻혀 얼마나 행복했고 큰 위안을 받았는지 충분히 느낄 수 있었다.

Bill Gates는 머지 않아 책이 없는 미래 사회(future paperless society)가 올거라 했고, 나도 예전에 그렇게 추측했으나 작가는 책을 읽는 것과 스크린을 읽는 것은 질적으로 다르다고 펄쩍 뛰고 있다. 나도 예전 추측과 달리 아이패드를 사용하지 않고 꾸준히 종이책을 구매하며 늘어나는 책장에 나름 자부심을 느끼고 있다. 누군가 쓴 리뷰처럼, 책은 나의 사치품이자 필수품이며 운명이자 행운이 되었다.

책을 읽고 나서 또 다른 거대한 사치를 꿈꾸게 되었다. 서재나 북까페 개념에서 벗어나 작가처럼 나만의 도서관을 멋있게 꾸며서 책 속을 거닐며 책과 영혼이 만나는 경험을 해보고 싶다. 불가능한 꿈을 꾸는 것도 삶의 활력이라 생각하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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The Conquest of Happiness (Paperback) - 『행복의 정복』원서
Russell, Bertrand / Liveright Publishing Corporation / 2013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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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손님이 왕이다(The customer is always right)’에 대한 패러디가 많다. 나도 이렇게 표현하고 싶다. ‘고전은 언제나 옳다’라고. 명불허전이란 수식어도 꼭 들어맞지 않나 생각한다. 너무나 많이 알려진 거장의 책이 나를 행복하게 했다. ‘행복의 정복’을 읽으며 행복했다는 나의 표현이 행복에 대한 답을 찾았다는 것인가 아니면 단순히 책에서 기쁨을 얻었다는 것인가?

책을 좋아하지만 책을 읽음이 항상 기쁠 수 없고 고통스럽게 끝내는 경우도 있으나, 이 책은 들기 시작하면서 내내 즐거웠고 아껴 읽었다. 예전 ‘The Consolations of Philosophy(Alain De Botton)’를 읽을 때와 비슷한 경험이었다. 운전 중 대기 신호일 때도 짧게 짧게 읽곤 했다. 어쩌면 다소 우울한 순간을 지나던 나의 심리 상태와 맞닿아서 그 답을 이 책에서 구하려 몰두했는지, 아님 내 슬픔을 잘 읽어내고 가려움을 적절히 긁어주는 수사력에 매료되었는지도. 독서도 때와 상황의 심리상태에 많은 영향을 받는다.

감동의 또 다른 이유은 영어 표현이 너무나 좋았다는 것이다. 글을 쓰는 재능을 선물 받았다는 것은 얼마나 큰 축복인지 부러웠다. 어쩌면 우리는 행복과 불행의 원인과 해결책을 이미 알고 있을 수도 있다. 그러나 무의식과 혼란의 상태에 무질서한 상태로 잠들어 있는 무지한 언어들을 잘 건져내어 이렇게 세련되고 정제된 상태로 포장하여 잘 배열할 수 있다니 작가 본인뿐 아니라 읽는 독자에게 얼마나 큰 축복인가? 내 불행의 원인을 스스로 찾지 못하는 미성숙한 어른들에게 양분을 제공하는 책이다.

나는 앞부분 불행의 원인 파트가 더 좋았다. 작가도 행복의 원인보다 불행의 원인에 더 많은 지면을 할애했다. 사랑만큼 추상적인 어쩌면 평생 찾아도 손에 잡히지 않을 행복의 실체는 그만큼 파악하기 힘든거 아닐까? 아니면 불행의 원인이 이 세상을 더 많이 잠식하고 있는 것일까? 내가 행복의 원인에 덜 감동했던 이유는 이미 앞에서 서술된 불행의 원인에 행복의 비결이 나와 있었기 때문이다. 원인을 제대로 진단했으니 그것을 피하면 행복한거 아닌가? 불행과 행복의 원인이 외적으로 보면 다른 단어로 서술되어 있으나 궁극적으로 귀결되는 요지는 같았다. 그리고 역설적으로 양날의 검처럼 불행의 원인은 곧 행복의 출처가 되기도 했다.

불행의 원인 모두 다 감동 그 자체였으나, boredom(지루함)과 envy(시기)부분이 백미였다. 권태를 견디지 못함은 권태에 대한 두려움 때문이지만 이런 지루함을 견디는 것도 행복한 삶의 필수 요소이고 이는 어린 시절부터 배워야 한다. 늘 자극적이고 흥미 본위의 활동을 쫓는 삶의 끝이 무엇인지 알지 않는가? 그리고 우리 삶의 유익한 많은 활동은 불가피하게 지루한 요소와 영역을 내포하고 있다. 비교, 경쟁, 피로함으로 인해 발생하는 치명적인 Envy(시기심)는 불필요한 겸손을 가진 사람이 더 쉽게 가질 수 있는 감정이라는 표현도 크게 들어 왔다. 겸손은 미덕으로서 늘 지나치다 싶을 정도로 강조되지만 이것도 지나치면 시기심, 억압, 열등의식을 유발시킨다는 것이다.

결국 어떻게 하면 행복할 수 있는가? 책 제목에 conquest라는 단어를 의식적으로 사용했음을 강조한다. 행복은 신에 의해 저절로 얻어지는 선물이 아니라 정복해서 얻어야만 하는 성취물인 것이다. 마치 산을 정복하고 나라를 정복하고 나 자신의 한계를 정복하듯이 말이다. 그러기 위해서는 내 안의 껍질에 쌓인 자기몰두의 질병에서 벗어나야 한다고 말한다. 내 안의 세계에서 자성과 비활동적 삶만을 사는 경우는 죄의식, 나르시즘, 과대망상에 사로잡히는 불행한 삶을 유발한다.

나 아닌 다른 사람과 사물에 지속적인 관심과 흥미를 갖고 객관적인 삶을 살라고 한다. 한가지에 편협하게 몰두하는 것이 아니라 외부세계에 많은 관심을 돌리며 여러가지 부수적인 것들에도 관심과 애정을 주어야 한다고. 이런 폭넓은 관심은 행복한 시기에 배양해야 한다는데 전적으로 동의한다. 결국 이런 노력은 무엇을 통해 가능한가? 책 제목에서 강한 의지와 메세지가 나오듯이 이성적 코드와 확신를 통한 정신훈련이다. 나를 괴롭히는 무의식과 잠재의식의 세계에 의식적인 노력으로 이성적이고 합리적인 사고를 심어 부정적 사고가 나오지 못하게 해야 한다. mental hygiene(정신 위생)도 여러 번 반복된다. 몸을 깨끗이 하듯 수시로 정신적 위생관리에 힘써야 부정적 무의식에 사로잡히지 않을 것이다.

원하는 것 중 몇가지가 부족한 것도 행복의 필수 요소라는 표현에 겸허해졌다. 남들처럼 다 갖고 싶었는데 내 삶에 한가지가 빠져있어서 불만족과 불평의 원인이었는데 부족한 삶에도 감사해야 한다고 했다. 다 가짐이 행복의 조건도 아니고 오히려 바이런적 불행(Byronic Unhappiness)을 가질 수 있다고 한다. 또 다른 깨달음이 되었다. 그리고 최근에 나를 흥분시키는 새로운 취미를 갖게 되어 불안했었다. 왜냐하면 책 읽는 순간조차 침해하며 자꾸 새 취미에 빠졌기 때문이다. 그런데 작가의 충고로 안도하게 되었다. 사실 일중독이었던 내가 책, 환경, calligraphy에 관심을 돌린지도 몇 년 안되었다. 그래서 일중독으로 사는 동안 행복하지 않다고 느낀 것일까?

마지막에 행복한 삶(to be happy)이란 선하게(to be good) 사는 것이라 했다. 선한 삶, 행복, 유의미한 삶, 이유있는 삶 자체에 자꾸 질문을 던지며 답을 찾으려 하는 것이 그렇지 못하다는 반증이 될지도 모른다. 이미 그런 삶을 사는 사람들은 그런 질문 자체를 하지 않을지도 모른다. 나의 질문은 언제쯤 멈출 것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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External discipline is the only road to happiness for those unfortunates whose self-absorption is too profound to be cured in any other way. Self-absorption is of various kinds. We may take the sinners, the narcissist, and the megalomaniac as three very common types. (p. 25)

I believe this unhappiness to be very largely due to mistaken views of the world, mistaken ethics, mistakenhabits of life, leading to destruction of that natural zest and appetite for possible things upon which all happiness, whether of men or animals, ultimately depends. (p. 24)

The cure lies not in lamentation and nostalgia for the past, but in a more courageous acceptance of the modern outlook and a determination to root out nominally discarded superstitions from all their obscure hiding places. (p. 42)

He forgets that to be without some of the things you want is an indispensable part of happiness. (p. 34)

Too little (excitement) may produce morbid cravings; too much will produce exhaustion. A certain power of enduring boredom is therefore essential to a happy life, and is one of the things that ought to be taught to the young. (p. 62)

Among those who are rich enough to choose their way of life, the particular brand of unendurable boredom from which theysuffer is due, paradoxical as this may seem, to their fear ofboredom. A happy lifemust be to a great extent a quiet life, for it is only in ananatmosphere of quiet that true joy can live. (p. 66)

Unnecessary modesty has a great deal to do with envy. (p. 85)

Envy therefore, evil as it is and terrible as are its effects, is not wholly of the devil. It is in part the expression of a heroic pain, the pain of those who walk through the night; blindly, perhaps to a better resting place, perhaps only to death and destruc-tion. To find the right road out of this despair, civilized man must enlarge his heart as he has enlarged his mind. He must learn to transcend self, and in so doing to acquire the freedom of the Universe. (p. 89)

therefore a more deliberate realization of the dangers of uniformity has become desirable. (p. 125)

To bear misfortunewell when it comes, it is wise to have cultivated in happier times a certain width of interests, so that the mind may find prepared for it some undisturbed place suggesting other associations and other emotions than those which are making the present difficult to bear. (p. 206)

It is therefore necessary that our lives should not have that narrow intensity which puts the whole meaning and purpose of our life at the mercy of accident. For all these reasons the man who pursues happiness wisely will aim at the possession of a number of subsidiary interests in addition to those central ones upon whichhis life is built. (p. 206)

The happy man is the man who lives objectively, who has free affections and wide interests. To be the recipientof affection is a potent cause of happiness. (p. 219)

Undoubtedly we should desire the happiness of those whom we love, but not as an alternative to our own. In fact the whole antithesis between self and the rest ofthe world, which is implied in the doctrine of self-denial, disappears fás soon as we have any genuine interest in per-sons or things outside ourselves. All unhappiness depends upon some kind of disintegration or lack of integration. (p. 222)

The happy man is the man who does not suffer from either of these failures of unity, whose personality isneither divided against itself nor pitted against the world. Such a man feels himself a citizen of the universe, enjoying freely the spectacle that it offers and the joys that it affords, untroubled by the thought of death because hefeels himself not really separate from those who will come after him. It is in such profound instinctive union with the stream of life that the greatest joy is to be found. (p. 22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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