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3 Reasons Why (Paperback) - 넷플릭스 미드 '루머의 루머의 루머' 원작 소설
제이 아셰르 / Razorbill / 2017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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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음이 아픈 내용이었으나 너무나 읽고 싶어 늦게까지 읽다가 직장에 지각까지 했었다. 눈코뜰새 없이 바쁜 일이 원망스러울 뿐이었다. 청소년 소설은 읽기도 쉽고 흡입력도 강한데 감동도 있다. 어른 소설이나 고전에서는 쓰이지 않는 신세대 영어 표현을 배울 수 있다는 장점도 있고 나의 중고 시절을 되짚어 보게 하는 묘미도 있다. 세상은 온통 배움터인것 같다.

What you do affects others(당신이 하는 일이 다른 사람에게 영향을 끼친다). 즉, 루머의 무서운 파급 효과(repercussions/ after-effect)를 다루고 있다. 이야기의 독특한 전개도 이 책의 묘미이다. 자살한 여고생 Hanna Baker의 목서리가 이탤릭체로 되어있다. 그녀에게 너무나 완벽했던 그러나 가까워지지 못했던 남학생 Clay Jensen이 1인칭 화자로서 이야기를 끌어가는데, Clay와 Hanna의 목소리가 번갈아 나타나고 정자체와 이탤릭체로 목소리를 구별하게 한다.

사실이 아닌 소문으로 인해 왕따로 살아온 Hanna가 자살하기 전 녹음한 7개의 테이프 안에 13개의 이야기가 담겨 있고 이 테이프가 Clay에게 익명으로 전달되고, 이 테이프를 다 들으면서 이야기가 전개된다. 친구들이 쓴 메모지까지 그녀에게 너무나 소중했다. 누군가 그녀를 아껴주긴 했으나 자살을 막아줄만큼은 아니었다.(A lot of you cared, just not enough.)

그녀가 도움의 손길을 요청하며 자살을 준비한다는 사인은 도처에 있었다.(The signs were all there.) 긴머리를 짧게 자르는 것과 같은 갑작스런 외모 변화등 외적 신호가 많았으나 관심이 충분치 못해, 외로움과 아픔을 읽어낼 만큼이 아니었다는 것이다. 외로운 소녀가 외로움을 달래는 지적 수단은 시를 써서 암기하는 것이었다.

진정한 연결(connection)을 찾지 못한 Hanna는, 그녀를 사랑하는 Clay가 옆에 있다는 것을 알지 못했다. Clay는 그녀에 대한 무성한 소문때문에 그녀에게 다가서길 주저했기 때문이었다. 그녀가 테이프를 녹음하여 13명의 친구들에게 경종을 울리는 것은 그녀와 같이 근거없는 소문의 희생양이 더 이상 나오지 않기를 바래는 것이었을까?

어른도 마음 속에 외로운 섬 하나씩 안고 있어 끊임없이 밖으로 신호를 보낸다. 마음을 읽어달라 애원하며 서로와 연결되길 기다리고 있는지도 모른다. 아이러니한 것은 밖으로 신호를 보내면서도, 신호의 유의미한 답은 얻지도 못한 채, 하루종일 비대면 인터넷과 연결이 되어 있다. 연결은 연결인데 따뜻함이 없는 비인간적 24시간 연결이다. 그래서 또 다른 형태의 연결을 갈구하고, 다시 누군가와 연결이 되고 나면 진정한 의미의 만남이 되지 못한 채, 거짓 소문의 제물이 되거나 무의미한 소음에 피로감을 느낀 채, 다시 인터넷 연결에 의존한다.

전자기기이든 따뜻한 사람이든 그 무엇과의 연결이 우리를 살아있게 한다. 같은 시간대를 살아가지만 서로 다른 길을 걸어가며 죽을 것 같은 외로움을 느끼는 우리은 왜 그리 서로의 손을 잡아주기가 이리도 힘든가? 너무 늦은 때가 있고, ~만큼 충분치 않을 때가 있다. 그렇다면 바로 지금이 충분한 관심을 누군가에 주어야 할 때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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상실의 풍경 - 개정판
조정래 지음 / 해냄 / 2011년 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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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 번도 나를 실망시킨 적이 없는 작가의 글을 다시 만났다. 일과 코로나 블루를 핑계로 올해 독서조차 슬럼프를 겪고 있어서, 좋아하는 작가의 글을 통해 힘을 얻고 싶었다. 누군가에게 기대어 의지하고 싶을 때 만나고 싶은 작가가 있다는 것에 감사하며 일요일 하루를 다 바쳐 순식간에 읽었다. 역시나 글 속에 작가가 지향하는 삶이 있고, 독자에게 원하는 숙제 같은 것이 있다.

70년, 71년대에 문예지에 당선되었던 단편을 모은 책이었다. 늘 작가의 10권 정도 되는 장편에 길들여진 나라서, 단편에 약간 실망했으나 일단 책을 펴니 여느 때 처럼 순식간에 지루함 없이 읽었다. 오랜만에 만난 구수한 전라도 사투리, 제목에서 암시하는 상실의 아픔, 슬픈 우리의 역사 등을 읽으며 작가가 왜 글을 끊임없이 쓰는지 알 것 같았다. 목적있는 작가의 삶이 전해진다고 할까?

10개의 단편 모두 아픔이 들어 있다. 반공, 공산주의, 빨갱이, 연좌제 등등으로 아픔을 겪었던 서민들의 삶이다. 교육이라는 것이 얼마나 무서운지, 반공 교육이란 이름으로 세뇌처럼 주입된 교육의 위험성, 무고한 시민들이 몇 대에 걸쳐 겪어야 했던 아픔을 난 책으로 읽는데 실제로 겪었던 삶은 어떠할지 상상이 안되었다.

분단의 아픔으로 주한 미군들과 함께 생활하던 카투사로 자원했던 군인들이 겪어야 했던 서러움과 아픔도 읽기만 해도 화가 났다. 작가가 글을 쓴지 40년이 지났어도 우리는 여전히 통일을 이루지 못하고 분단 상태에서 작년 트럼프로부터 주한 미군 비용에 대해 터무니 없는 비용인상을 요구받은 상태였다.

잊고 살았던 서민들의 아픈 삶을 통해 우리 민족의 처절했던 과거를 상기시키고 현재 분단의 상황을 일깨운다. 또한 의식의 변화와 적극적 행동의 실천을 요구하는 작가의 글을 만날 때면 나의 문제가 너무 사소하게 느껴진다. 역동적인 필력 속에 잠들지 못하는 민족혼에 대한 애정과 사랑이 있다.

작가는 나로 하여금 나는 어떤 한국인으로 살아야 할지를 생각하게 한다. 일상 속에서 노력을 하면서도 매일 매일 지치고 좌절을 겪으며 나 하나로 무엇이 달라질지 회의적이었다. 그런데 작가는 평생을 시대와 사회를 향한 뜨거운 애정으로 글을 쓰고 있다. 생각하는 지성인, 실천하는 행동인으로 인해, COVID-19에도 우리의 삶이 지속되고 있는 것인가?

슬프고 척박한 땅에 태어나 애환으로 점철된 삶을 살면서도 굴하지 않는 강인한 삶을 살았던 선조들의 민족혼을 정기로 받은 우리가 2020년의 어려움을 잘 딛고, 2021년에는 가장 ‘한국적인 모습’으로 세계의 무대에서 빛나기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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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 Room Of One's Own And Three Guineas (Vintage Classics Woolf Series) (Paperback) - 『자기만의 방』 원서 Vintage Classics Woolf Series 1
Virginia Woolf / Vintage Publishing / 2016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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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학교 시절 문학책에 감동을 받고 감상에 젖어 습작을 하면서 언젠가 작가가 되는 꿈을 꾸어본 적이 있다. 초등학교부터 쓰기 시작한 일기는 성인이 되어서도 지속하면서 하루를 돌아보며 나 자신을 다독거리는 훌륭한 스승의 역할을 하고 있다.

중학교 때, 작가와 현재의 직업을 놓고 고민할 때, 부모님이 작가는 가난하게 산다고 현재의 직업을 권하셨다. 진짜 좋아하는 것은 취미로 가지라 했던가? 가지 못한 길에 대한 동경인지, 취미로 책을 읽고 쓰기를 해서인지 여전히 작가에 대한 매력은 멈추지 않고 있다.

1929년에 출간된 이 책에서 여성과 소설에 대하여 현실적인 접근을 하고 있다. 즉 글을 쓸 수 있는 지적 자유함도 물질적인 것에 달려 있다고 했다. 최소의 생계를 유지할 수 있는 돈(500 Pound)과 문을 걸어 잠글 수 있는 자기만의 방(One’s own room)이 있어야 글을 쓸 수 있다는 것이다. 500 파운드는 사색할 수 있은 힘, 걸어 잠글 수 있은 방은 자신을 위한 사고의 힘을 상징한다고 했다.

거실이 하나밖에 없는 집에서 끊임없이 방해를 받을 수밖에 없었던 19세기 초기의 중산층 여성들은 시를 쓸 수 있는 기반이 없었고 소설을 쓸 수 밖에 없었으며 Jane Austen도 그녀만의 서재가 없었다고 했다. 12명의 남성 시인 중 9명이 대학 교육을 받았고, 영국의 가난한 아이는 아테네 노예의 아들보다 더 글을 쓸 수 있는 가능성이 적다고 했다.

가부장적인 사회, 여성에겐 투표권조차 주어지지 않았던 시절에 다른 사람의 의견에 흔들리지 않고 기죽지 않으며 여성작가로서 글을 쓴다는 것은 Jane Austen이나 Emily Bronte정도 아니고는 매우 힘들었을 것이라 했다. 여성은 남성에 비해 지적, 영적으로 열등하다는 교수의 글을 필두로, 남성적 우월감으로 가득찬 그래서 침투력이 약한 남성 작가의 글을 강하게 비판하고 있다.

궁극적으로는 남녀가 택시안으로 나란히 같이 들어 가는걸 보면서 두 성이 서로 협력하며 살아감이 당연함을 이야기한다. 의식적인 편견은 치명적인 결과를 낳고 협력과 반대의 결합이 서로 아름답다고 한다. 즉, 사람은 여성이되 남성적이고, 남성이되 여성적이어야 한다고 했다( One must be woman-manly or man-womanly.)

몇 년 전 화제가 되었던 82년생 김지영을 읽고 실망했던 적이 있다. 어쩌면 나는 그런 차별을 받고 자라지 않았고 현재 직장에서도 여자라는 이유로 받는 차별이 없다고 생각해서 공감이 덜 되었던가? 19세기에 여성이라는 이유만으로 많은 기회조차 주어지지 않았다는 것도 슬프긴 한데 작가가 되기 위해 물질적 조건이 전제 되어야 한다는 것은 어쩌면 현대에도 그대로 적용되는 것 같아 더 불편하다.

Money talks라고 했던가? 작가라는 직업이 아니어도, 여성에게만 국한된 것이 아니어도, 21세기를 살아감에 있어서 물질적 기반이 차지하는 비중이 얼마나 큰지, 물질에서 자유함을 얻고 마음껏 하고 싶은 것을 하기가 얼마나 어려운지 생각해 본다. 물론 물질적 어려움이 없다고 해서 무조건 지적 자유함이나 행복을 얻을 수도 없다.

이 글이 쓰여진 시기와 달리 이제는 균등한 교육적 기회가 성에 관계 없이 주어지지만 부의 불평등이 존재한다. 가난때문에 역시 기회조차 받지 못하는 사례가 많다. 내가 여성이라는 것 때문에 받는 차별에 상관없이, 해결책에 힘도 보태지 못하면서 갈수록 커져가는 부의 불평등때문에 내 마음 한켠이 매우 불편해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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The Tyranny of Merit : What's Become of the Common Good? (Paperback) - 마이클 샌델 '공정하다는 착각' 원서
Penguin Books Ltd / 2020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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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랜만에 신간을 읽으며 뒤통수를 맞은 느낌이 들 정도로 고여 있던 내 생각에 큰 파문을 일으킨 책이다. 재미있게 읽던 중 이 책을 주말에 직장에 두고 오면서, 중간에 다른 책이 끼어 들어 그걸 끝내고 다시 이 책을 읽느라, 오랫동안 읽었으나 그 만큼 꼼꼼하게 읽어야 하는 책이었다. 물론 오래 읽어서 중간에 흐름이 끊겨서 리뷰를 쓰기 어렵다는 문제도 있다 ㅜ.ㅜ

The Tyranny of Merit(업적주의의 독재/능력주의의 독재)라는 제목도 도발적이다. 능력위주, 업적주의라는 표현에는 연공서열이나 인종 차별 등이 배제된다는 공정성이 담겨 있다고 생각했는데, 이런 능력위주의 정치가 폭군으로 작용했다는 것이다. Yuval Noah Harari 책을 읽을 때 만큼 너무나 뛰어난 필력에 감동하며 읽었고, 이와 같은 진정한 지식인의 자성의 목소리가 많이 출간되어야 한다고 생각했다.

오만함(hubris, conceit), 당연히 자격이 되는(deserve, entitled)이란 단어에, 경종을 빈번하게 울리며 민주주의와 겸손(democracy and humility)으로 책이 끝이 난다. 나도 즐겨 쓰던 속담 ‘God helps those who help themselves’란 표현이, 노력하지 못하여, 노력을 덜하여 승자가 되지 못한 자들과는 신이 함께 하지못할 것이다라는 표현으로 해석될 것은 생각지도 못했다. 패자의 입장에선 그 속담이 신의 응징으로 들릴 것 아닌가?

시장 주도형 세계화의 물결을 타고 수입과 부의 불평등이 가속화되었다. 이 불평등을 없애는 마법의 주문으로 ‘노력하면 된다(You can make it if you try)’라는 표현이 양날의 검으로 작용된다는 것에 큰 충격을 받았다. 노력하여 승자가 된 자들은 자신의 성공을 노력한 자신이 당연히 받을만한 것이다로 해석한다. 상대적으로 성공하지 못한 자는 자신의 무능함만을 탓하게 되며 패배의식에서 벗어나기 힘들다.

내가 존경했던 오바마 대통령까지 노력하면 그 무엇이든 얻을 수 있다는 능력/업적 위주의 정치와 기술주의 정치(meritocracy and technocracy)의 칼날을 서슴없이 휘두르며, 세계화의 물결에 발맞추어 가지 못한 약자들의 마음을 보듬지 못하고 불평등을 가속화시켰다고 생각하니 혼란이 찾아들기 시작했다. 오바마가 한국의 뜨거운 교육열을 예시로 들면서 교육의 중요성을 많이 강조했다. 그 만큼 그 역시 교육으로 불평등을 해소하려 했던 것이 분명하다. 대학이 불평등 해소의 열쇠가 아니었는데 말이다.

상류계층 자녀들이 입학했던 하버드 대학의 입학 전형을 SAT도입, 소수 인종, 여성, 유대인등 다양하게 공평한 기회를 제공하였으나 역시나 헬리콥터 부모, 개인과외, 입시 컨설팅 등의 과열로 IVY 리그의 대학이나 국립대학들은 여전히 부유층 자녀들이 주로 입학하는 것이 통계로 드러났고 가난한 자들의 수직 상승은 교육으로 일어나지 못했다. 부유층 자녀들 역시 어린 나이부터 입시지옥에 시달리며 과도한 스트레스를 받고 있으며, 대학에 입학한 후에도 낮은 자존감과 독립심이 약한 것으로 집계되었다.

업적주의/ 능력주의로 인해 계층간에 깊어진 불평등을 해소하기 위해 숙고해야할 문제점으로 교육 외에 ‘노동의 존엄성(dignity of work)’을 들고 있다. 불평등 해소 방안으로 대학 교육을 강조했고, 자격증이 또 하나의 무기이고 편견으로 작용하게 되었고, 대학 자격증이 없는 고졸 계층의 백인들은, 세계화의 물결과 AI의 등장으로 일자리를 더욱 잃으며 자신의 무능력함에 대해 정체성을 상실할 수 밖에 없었다. 경제적 박탈감을 떠나, 일을 함으로써 공공 선에 기여함으로써 본인이 하고 있는 일의 존엄성을 인정 받아야 하는데 그렇지 못하게 된 것이다.

그렇게 좌절감과 분노로 가득찼던 백인 노동 계층은 업적주의와 능력주의를 부르짖는 오만한 앨리트 계층인 Hilary Clinton에게 등을 돌리고 Trump에게 표를 던진 것이다. 영국의 사회학자 Michael Young은 2034년에 하류계층의 반란이 일어날걸 예상했는데, 2016년에 Brexit, Trump의 당선이 일어났으니 18년이나 일찍 반란이 도착했다고 작가는 지적하고 있었다.

구약시대의 선민사상처럼 승자들이 자신의 결과를 재능과 노력의 당연과 결과로 여기는 것이 얼마나 큰 오만인지 책 전반에서 반복하고 있다. talent라는 재능은 신의 선물이나 행운으로 받은 것이기에 당연하게 받거나 원래 자신의 것이었다 생각하면 아니되고 effort라는 것도 혼자하는 노력이 없고 과정에서 좋은 부모, 공동체 등의 도움으로 가능해진 것이 아닌가?

즉, 채무감을 가져야지 당연하게 받는 오만함은 오히려 불평등을 가속화시키고, 약자나 패배자들의 분노와 좌절을 아우르지 못하기에 사회는 양극화의 극단으로 치닫게 된다. 스스로 혼자 자수성가 한것이 아니기에 겸손함을 갖고, 성공의 새로운 윤리학을 정립하고 능력주의의 독재를 넘어 공공 선에 기여하는 삶을 살기를 촉구한다. 재능이라는 것도 절대적 평등으로 모두에게 똑같이 주어지는 것이 아니고, 노력도 혼자하는 것이 아니기에, 뒤에 남겨져 뒤처진 이들을 향해 오만한 시선이나 비하의 눈초리가 아닌 그들을 향한 의무감과 채무감을 가져야 한다고 촉구한다.

옳은 것과 선한 것(between the right and the good)사이에서 또 다시 많은 생각을 하게 한다. 노력하지 않은 자는 적게 갖는 것이 옳다고 생각했는데 시시비비를 가리는 것이 전부가 아니며, 시시비비도 누구의 입장에서 가려지는냐에 따라 오만과 겸손의 다른 색깔로 드러남을 알게 되었다. 내가 옳다고 생각한 것이 틀릴 수 있다는 것을 또 다시 배우며, 공공 선에 기여하는 삶의 중요성을 절실히 느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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The Stranger (Paperback) - 『이방인』영문판
알베르 카뮈 지음, Ward, Matthew 옮김 / Vintage / 1989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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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방인’이란 제목만 들어도 차가운 느낌이 찾아든다. 제목이 내용과 너무나 잘 아귀가 딱 들어맞는다는 생각이 든다. 분량이 적고 쉬운 활자이지만 내용이 너무 무거워 책을 덮고도 여운이 크게 남아 다른 리뷰와 유투브 영상 여러개를 보았다. 화려한 수식어구 없이 간결하고 정갈하게 메세지를 던지니 사유는 내 몫으로 남았다. 어렵고 철학적인 책이다.

책에 지나치게 감정이입을 시키는 습관때문인지 모르나 나 역시 올해 ‘이방인’으로 살아가는 느낌을 떨칠 수가 없다. 사회적 거리뿐 아니라 감정의 거리까지 두어야 할 지경으로 서로 간의 거리는 좁아질 수 밖에 없는 시기이다. 프랑스 식민지 하에 있던 Algeria에서 태어난 Camus가 2차세계대전 중이던 1942년에 출간한 책이다. COVID-19을 겪는 올 해도 이리 우울한데 전쟁 중에 알제리인도 프랑스인도 아닌 이방인의 심정으로 대전을 겪으며 Camus가 어떤 마음으로 펜을 잡았을지 약간 이해가 되려한다.

도발적인 제목만큼 책의 첫 문장은 우리를 놀라게 한다. 그러나 우리의 감정마저 ‘학습된 연상’의 일부로 나타난다는 것을 아는가? 감정 표현도 학습의 잔재라서, 사회화 과정에서 혹은 문화속에서 배운대로 표현되어야 따가운 시선을 피할 수 있다. 즉 주인공 Monsieur Meursault는 엄마 Maman의 죽음에 임하는 자세 때문에 결국 광장에서 교수형에 처하게 된다. 그는, 엄마의 죽음을 대하는 자세, 장례식에서 흘려야 하는 감정 표현, 장례를 치르고 나서 취해야 하는 행동 등에서 모두 상식을 벗어난다.

물론, 가족이 아니어도 우리는 타인의 죽음 앞에서 숙연해지고 저절로 눈물이 흐르거나 가슴이 먹먹해지는 것이 인지상정이고, 소원했던 가족이라해도 죽음 앞에서는 마음이 약해지는 것은 사실이다. 그러나, 상식선의 감정을 표현하지 않았다는 이유로 주인공은 재판장에서 인간적인 면모라고는 조금도 없는 범죄자의 영혼을 가진자로서 검사에게 기소되어 결국 배심원들은 그를 사형에 처해야 한다는 결론을 내리게 된다.

법정에서의 검사의 논리가 책을 읽고 있는 나를 분노하게 했다. 왜 아랍인을 죽였느냐는 질문에 주인공은 “햇살이 너무 강해서”라고 대답을 한다. 이 대목에서 그리스인 조르바(Zorba The Greek)가 떠오른다. 그는 자유로운 영혼 조르바를 닮았다. 정직하게 필터없이 말을 하지만 그건 법정에서 기대했던 답은 아닌 것이다. 그가 아랍인을 죽였다는 것때문에 법정에 섰는데 중심 논쟁은 그가 피도 눈물도 없는 냉혈인으로 엄마의 장례식에 참석한 것으로 몰아가고, 법정에서 그는 그저 이방인으로 앉아 법정의 부조리를 침묵으로 마주한다.

아무것도 중요한 것이 없다는 말이 여러 번 반복된다.(Nothing, nothing mattered.) 살인으로 기소되었으나 엄마의 장례식에서 눈물을 흘리지 않았다는 이유로 처형된다한들 어짜피 모두가 죽느는다는 것은 기정사실인데 언제 어떻게 죽느냐는 중요치 않다고 생각한다. 마지막 장면에서 주인공은 세상을 향해 마음을 열며 부드러운 무관심(gentle indifference)을 보이며 마치 형제애까지 느낀다고 했다.

그는 엄마의 장례식에서 만큼이나 세상을 향해서도 큰 욕심이나 애정이 없었다. Marie를 사랑하지 않아도 그녀가 원하면 결혼할 수 있었고, 이웃집 Raymond가 대필을 원하면 아니 써 줄 이유가 없었다. 세상을 향한 큰 애정, 미움, 거절, 반항도 없이 살았던 주인공은 죽음도 그렇게 맞이한다. 세상을 향한 부조리를 향해 그가 했던 최고의 저항이 아니었을까? 세상의 이방인으로 살았으나 그의 영혼은 자유로왔다.

주인공은 우리의 상식을 벗어나는 인물이다. 상식이라는 것은 누가 정한 것인가? 보편적인 기준이나 도덕이라는 규범에 들지 않으면 비상식이 되고 이것이 굴레로 작용하고 엄청난 부조리의 무기까지 된다. 나 또한 주변에서 얼마나 많은 부조리와 직면하는가? 어쩌면 주인공처럼 차라리 세상의 이방인으로 자유롭게 살 수 있다면 세상의 부조리에 분노하거나 역겨워하지 않으며 죽음마저 초연하게 맞이할 수 있을까?

나는 왜 이방인으로 살면서 주인공이 되고자 발버둥 치는가? 그러면서 안고 가야하는 감정의 묵직한 찌꺼기는 또 얼마나 많은지 모른다. 이방인으로 살았으나 세상을 향해 gentle indifference를 품을 수 있었던 주인공이 부럽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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