Jane Eyre (Paperback) - Penguin Classics
샬럿 브론테 지음 / Penguin U.S / 2006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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편식이 건강에 좋지 않듯이, 편독이 나의 정신에 편향을 가중시킬 것을 염려하지만, 문학에 눈과 손이 가고 마음이 자석처럼 끌리는 것은 저항할 수 없는 유혹이다. 무모한 ‘독서 실험’으로 앞에서 리뷰를 쓴 비문학과 동시에 읽었으나, 아니 늦게 시작했으나, 더 일찍 읽기를 마쳤다. 비문학의 다소 딱딱한 내용 때문에 고전 Jane Eyer는 나의 상대적 뜨거운 애정을 받았다. 밤늦게까지 읽어도 졸음과의 사투가 필요없는 책이었다.

중학교 때, 폭풍의 언덕과 함께 너무나 재미있게 읽었던 기억이 있는 책이라 대강의 줄거리는 알고 있었으나 역시 원문으로 읽는 느낌은 달랐다. 언젠가 친구에게 추천받은 기독교 서적을 읽을 때 이 책이 인용되어 있어서 깜짝 놀랐다. 그 만큼 어려서 읽었을 때는 자극적이고 강렬한 줄거리에 치중해 읽었을 것이 분명하다. 어려서 미처 깨닫지 못한 부분들을 엿보는 계기였다.

오만과 편견이 1813년 소설이고, Jane Eyer는 1847년에 발행되었다. 둘 다 좋아하는 책이지만 느낌이 많이 다르다. 산업화와 자본주의에 의해 경제적으로 궁핍했고, 노예제도가 있던 19세기에 여성이 아닌 남성작가의 필명으로 발행된 소설이다. 여성이 어쩌면 남성의 부속물로서 인권을 주장하지 못하던 시기에 이렇게 강렬하게 개인의 자유의지를 주장하는 소설이 출간되었다는 것이 놀랍다.

Mr Rochester의 프로포즈를 받고도, ‘내가 영혼도 마음도 없는 자동인형이라 생각하는냐?(Do you think I am an automaton? Soulless and heartless)라고 당당히 주장하는 Jane Eyer. 또한 St John Rivers가 결혼하여 인도에 선교사로 같이 가자고 할 때에도, ‘내 마음과 정신은 자유롭다(my heart and mind would be free)’라고 표현한다. 그 만큼 Jane Eyer에게 정신과 영혼의 독립 및 자유의지가 중요하다.

19세기가 아닌 현대에도 누군가에게 예속되지 않고 물질적 정신적 독립을 이루며, 스스로의 자유 의지에 의한 선택이 얼마나 중요한가? 인간은 예나 지금이나, 늘 그 무엇에서의 구속과 압박에서 자유로와지려고 날마다 발버둥을 치고 있는지도 모른다.

고아의 신분으로 친척인 Mrs Reed의 집안에서 온갖 아동학대를 받으며, 늘 최선을 다해 노력해도 돌아오는건 경멸뿐이었다고 라고 말하는 환경에서 자란 Jane Eyer는 Lowood Institution에서 학생 신분 6년, 교사 2년의 생활을 마친 후 마침내 독립을 하게 된다. 그녀가 온갖 어려움에도 개척자 정신을 발휘할 수 있도록 결심하게 된 배경에는 친구 Helen Burns와 교사 Miss Temple의 도움이 있었다. 살아가며 누구를 만나느냐는 정말 중요하고 결정적인 영향을 끼치게 된다.

신문에 가정교사 광고를 낸 Jane Eyer의 도전의식도 놀랍다고 생각한다. 결국 Thornfield에서 가정교사로 일하며 만난 Mr Rochester와의 만남은 그녀의 삶에 전환점이 되고 이 소설의 압권이 된다. Jane Eyer의 30년 간의 이야기를 자서전적 구성으로 전개시킨 이 소설에서 Mr Rochester를 향한, 또는 Mr Rochester가 Jane Eyer를 향한 애정 표현은 고어이기에 더욱 품격있고 아름답게 여겨지는 것이 아닐까 생각한다.

거실에서 친구들과 흉내내기 게임(playing Charades)을 하며 파티를 즐기고 있는 Rochester를 거실 한 구석에서 몰래 지켜보며 흠모하는 그녀의 모습도 사랑스럽다(He made me love him without looking at me. He is not to them what he is to me. He is not of their kind.) 가정교사라는 신분과 20살 넘는 나이 차이를 뛰어 넘고 그녀가 사랑한 Mr Rochester가 15년 전 부모와 형의 속임수로 미친 여자와 결혼을 했고, 그의 아내 Bertha가 3층에 갖혀 살고 있다는 비밀이 밝혀지며 아무도 모르게 무일푼으로 집을 떠난다.

Jane Eyer가 얼마나 강인하고 독립적인 여성인지 밝혀지는 부분이다. Whitcross에서 사촌들과의 극적인 만남을 가지기 전까지 그녀는 추위와 배고픔의 극한 상황에 처하게 된다. 그 상황에서 했던 그녀의 독백도 압권이다. ‘더 고독할수록, 더 친구가 없을수록, 더 나 스스로를 지탱할 수 없을수록, 나는 더욱 더 나 자신을 존중할 것이다(The more solitary, the more friendless, the more unsustainable I am, the more I will respect myself.)

자아 존중감이 상황의 궁핍에 지배받지 않으며, 오히려 난관과 어려움을 극복하게 하는 열쇠임을 멋지게 보여주는 표현이다. 의지 박약인 나이기에 쉽게 좌절과 실망을 끌어 안고 포기를 내려 놓는 나로서는 한 없이 질투나는 매력적인 표현이 아닐 수 없다. 사촌을 만나 마침내 물질보다 소중한 가족을 얻고, 삼촌으로 부터 유산 상속을 받으며 물질적 독립을 얻게 된다. Moor House에서 교사로서의 역할도 훌륭하게 해낸 Jane Eyer는 St John Rivers로 부터 인도로 가자는 권유를 받는다.

나이, 외모, 인품 등 어느 면에서 손색이 없는 St John Rivers를 포기하고, 실명을 하고 한 쪽 팔이 잘려서 불구가 된 Mr Rochester와 결혼을 결심하고 그의 손과 빛이 되려는 그녀에게 난 놀라움을 금할 길이 없다. 이 결말은 내가 기억을 못하고 있어서 강한 호기심으로 마지막까지 읽었는데 결국 이 책은 Jane Eyer의 순애보였다. 책을 덮고 나니 ‘영원한 사랑’이라는 진부한 주제가 다시 내 마음을 흔든다.

개인적으로 영원한 사랑은 없다는 생각으로 사랑 자체에 대해 회의적이었는데 간만에 순애보를 만나니 과연 조건, 상황, 시간을 뛰어넘는 사랑이 현실에 존재할 수 있을까에 대해 생각해 본다. 이런 사랑은 문학 속에서만 형체를 갖출 수 있기에 그렇게 강렬한 빛깔로 문학이 나를 끌어 당기는가? 문학이 주는 위험성에 대해 잘 안다. 즉, 문학은 나로 하여금 문학과 극명한 대비를 이루는 현실에 대한 적응력을 떨어뜨린다. 알면서 문학이 주는 ‘달콤한 독성’에서 벗어나려는 노력조차하지 못하는 나는 어리석은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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초딩 2021-01-21 23:52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저는 한 때 폭풍처럼 고전만 읽었어요
현실을 도피하고 싶어서
그런데 그 독서가 나중엔 사람들의 의도를 좀 더 잘 볼 수 있게 해준 것 같아요. 회사에서도요.
지금은 골고루 보려고 노력하고요.
사실은 그냥 책이면 다 좋긴해요 ㅎㅎ

serendipity 2021-01-21 23:54   좋아요 1 | URL
소중한 글 감사해요^^ 저에게도 현실 도피 기질이 있는듯 ㅜ

김승연 2021-03-11 14:41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좋은 글 잘 읽었습니다. 저는 중학생 시절에 읽었던 제인에어가 갑자기 생각나서 원서를 찾아보다가 우연히 글을 읽게 되었습니다. 글쓴이님께서는 글을 참 재미나게 쓰시는 장점이 있으신것 같습니다. 덕분에 책을 더욱 사서 읽고 싶게 되었어요. 어느 광고 글 보다 효과적인 것 같습니다. 책 편식은 책읽는 사람들이 고질적으로 가지고 있는 병인 것같습니다.
하지만 글쓴이 님처럼 책을 통해 자신 만의 생각과 이야기를 만들어 낼수있다면 저는 그것도 나름 괜찮다고 생각합니다. 마음이 있는 곳에 길이 있는거고 그 장르에 대한 애정이 무수한 가지를 만들어 내는 동력이 될테니까요. 다시 한번 좋은 글에 감사드립니다.

serendipity 2021-03-11 20:06   좋아요 0 | URL
감사요^^ 댓글이 따뜻한 위로를 전해주는 너무 바쁘고 힘든 하루네요 ㅜ 책 속에 길이 있다고 생각하는데 너무 너무 힘들어 책을 못 읽고 있는게 우울해요 ㅜ 책과 함께 행복한 시간 되세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