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른 아침 출근길에 이 책을 한 손에 들고 지하 주차장에 들어섰을 때 첫 장(Alone)을 읽고 감격이 밀려와서 울뻔했다. 또 누군가 어딘가에서 내 맘을 읽어내는 이가 있다고 생각하니 오랜만에 진한 감동을 느꼈다. 책을 읽는다는 것은 무엇을 의미하는가? 자꾸 욕심을 내면서 어려운 책에 도전하다가 결국 지난 번 책을 중간에서 접고 새로 주문한 이 책을 읽으니 독서가 도전이 아닌 즐거움으로 다가선다. 어떻게 읽을 것인지 다시 고민이 되기도 한다.

책 제목과 내용이 이렇게 잘 들어맞기는 오랜만인 것 같다. 제목 그대로 내게 커다란 ‘위안’이 된 책이고 분량이 적어 금방 끝낼 수 있었으나, 일부러 아껴서 읽었다. 언어의 연금술사인 작가가 특정 단어에 대해 은유(metaphor)를 사용하여 정의를 내린 것이라 스토리가 이어지는 것이 아니어서, 시간 날 때 챕터별로 다시 읽어도 커다란 위안이 되는 책이다.

언어 치료란 이 책을 두고 하는 말이 아닌가 싶다. 내가 늘 사용하고 글로 쓰는 언어가 이렇게 심금을 울릴 수 있고, 평이한 단어 하나로도 나를 위로할 수 있다는 것이 놀라울 뿐이다. Disappointment, Forgiveness, Loneliness, Longing, Maturity, Parallels, Procrastination, Unrequited, Vulnerability 등에 관한 내용이 너무 감동적이었다. 약간 긴 한 편의 시를 읽는 느낌이었다.

이 책에 가장 많이 반복된 단어는 robust vulnerability이다. Vulnerability는 인간의 나약함, 취약함, 상처받기 쉬움 등을 의미한다. 신이 아닌 인간은 누구나 예외없이 나약하며 불완전하기에 이 단어는 인간에게 겸손을 가르친다. 이 단어 앞에 서면 저절로 작아지고 위축되기 마련이다. 그런데 촌철살인의 작가는 robust(강인한/튼튼한)란 형용사를 취약함 앞에 여러 번 사용하며 우리에게 큰 위안을 선물한다.

‘실망, 용서, 외로움, 후회, 지연’ 등의 그늘이 있어 어두운 색깔의 단어조차, 세련되고 정제된 언어의 옷을 입혀주니 반짝 반짝 빛나는 보석이 된다. 부정의 단어도 모두 긍정이 되고, 어둠도 빛이 된다. 실제로 단점이 장점이 되고, 장점도 단점이 될 수 있다는걸 생각할 때 과장된 표현은 아니라 생각한다.

진한 외로움이 나를 엄습할 때, 나의 미성숙함이 나를 슬프게 할 때, 실망감이 커서 용서하기 힘든 일이 있을 때, 영원히 만나지 못할 평행선이 원망스러울 경우를 대비하여 이 책을 늘 침대 곁에 두고 다시 읽으며 위안을 얻고자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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han22598 2022-10-18 02:40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이책 읽어보고 싶네요.. 리뷰 감사합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