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실 이 책은 아버지께 사 드린 것이었다.
친정 가까이 보수동 헌책방이 있는데, 아버지는 국어대사전보다 두꺼운 동의보감을사서는 늘 읽으셨다.
그래서 자신의 공책에 요즘에도 활용할 수 있는 용법(?)을 써 놓으셨다가 기회가 될 때마다 우리에게 알려주셨다.
하지만 대부분의 어리석은 자식들이 그러하듯이, 그 때는 호랑이 담배 피던 시절의 이야기를 하시나 하고 흘려들었다.
봄에 솔순으로 술을 담아 주기도 하시고
생강을 편으로 썰어 말렸다가 우리가 먹기 좋게 만들어 주기도 하시고
지금은 기억도 나지 않는, 아홉 번 말리고 아홉 번 볶아서 만들었다는 이런 저런 차와 환을 주시기도 했지만, 대부분은 씽크대 안에 넣어두고 잊어버리고 있다가 결국은 못 먹고 말았다.
아버지가 민간요법을 이야기할 때마다 어머니는 귀신 씨나락 까먹는 소리라고 하고, 우리도 귓등으로도 듣지 않았었다.
아버지가 좋아하실 것 같아 이 책을 사 드렸더니, 마치 누군가 앞에서 야무지고 찰지게 이야기한 것을 들은 느낌이 들었는지 아버지는 “무슨 말을 이렇게 잘 하는 사람이 있느냐”고 무척 흐뭇해하셨던 기억이 있다. 그 뒤로 고미숙씨의 책은 몇 권 더 사서 아버지께 드렸는데, 이 책을 특히 좋아했던 것 같다.
다시 읽고 나니 아버지께서 10년 넘게 사전 같은 책을 옆에 끼고 계셨던 이유를 알 것 같고, 내 몸에 대한 관찰과 관심을 가져야겠다는 생각을 하게 된다.
어느 날 갑자기 병이 툭 떨어지는 것이 아니고, 일상에서의 습관과 음식, 느낌과 행위들의 종합적인 결과라면 나 또한 늙어가고 여태 큰 병 없이 산 행운만을 믿고 계속 건강하게 늙는다는 보장은 없을 테니까.
우리 시대의 의료기술은 불치병, 난치병을 고치는 데 주력한다.
보통사람들의 평범한 일상에 대해서는 대체로 무관심하다고 할 수 있다. 어찌보면 일상을 내팽개침으로써 병을 있는 대로 키우고는 그 다음에 첨단장비에 의지해 병을 고치는 ‘버라이어티쇼’를 벌이는 느낌이다. p435
오래 사는 것이 좋은 것이 아니고, 내 몸 내가 잘 돌보고 건사할 수 있을 때까지만 사는 것이 나는 장수라고 생각한다.
사실은 작년에 읽기 시작했지만 오늘 다 읽었으니 새해의 첫 책이 되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