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 - 하 열린책들 세계문학 5
제임스 미치너 지음, 윤희기 옮김 / 열린책들 / 2009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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드디어 제임스 미치너 선생이 만든 소설인 "소설" 마지막편인 독자 제인 갈라드까지 읽었다. 아마 이 작품의 최종적인 결론부분이 나오면서 이 작품의 제시하는 부분이 여기서 드러내는 것이 아닐까 싶다. 이 소설의 마지막인 제인 갈라드 편에서는 마지막 부분이지만 신기한 부분이 있었다. 그것은 마치 한편의 일기를 적어놓은 듯한 글이란 점이다.

 
처음부터 시작한 1991년 10월 6일이라는 가을부터 시작하여 1992년 1월 15일까지 일어난 일들을 적어 내려갔다. 다른 사람들은 몰라도 이 제인 갈라드 여사에 대한 이야기는 다른 파트에 나온 인물에 비해 상당히 객관적으로 다루어졌다. 루카스 요더, 미즈 이본 마멜, 칼 스트라이버트 교수는 자신의 과거시절과 현재 상황에 이야기하는 것에 출실한 반면 독자인 제인 갈라드는 자신의 과거보단 위 3명을 응시한다는 느낌으로 적어 내려갔기 때문이다.
 
우선 제인 갈라드 여사는 펜실베이나 독일인 마을에서 오랫동안 살아온 마을유지라는 점이 중요한 사항이고, 그 여사의 남편인 돌아가신 래리모어 사장은 상당한 부자이면서도 매우 넓은 마음과 깊은 생각을 지닌 소유자란 점이다. 래리모어와 갈라드 여사는 자신이 살고 있는 마을을 위해 헌금도 하고 학교를 위해 기부도 한다. 그리고 마을 사람들이 서로 잘 어울릴 수 있도록 화합을 도모한다.
 
내 개인적인 생각으로 진정한 여성 지식인으로 갖추어야할 지식, 덕목, 교양을 고루게 가진 한명의 사람이었다. 그런 갈라드 여사이던 만큼 그녀는 교양인으로서 갖출 덕목과 교양에다가 독서도 좋아했다, 그년느 책을 엄청 빨리 읽었고, 명석한 지식을 소유한 만큼 잘 이해했다. 그런 그녀의 재능덕분인 갈라드 여사의 손자인 티모시도 역시 명석하고 지성이 넘치는 청년이었다.
 
그래서 이 마지막 이야기는 갈라드 여사가 일기에 적힌 순서대로 주변 사람들과 만나서 일어나는 일들과 갈라드 여사의 최고비극인 그녀의 손자인 티모시의 살해로써 이야기가 진행된다. 이야기가 진행되면서 기본적으로 갈라드 여사는 같은 마을에 사는 메노파 사람이던 루카스 요더씨를 매우 좋아한다. 시골노인만큼 고집이 세나 자신이 노력하고 언제나 성실한 모습을 사랑한다는 점이다. 게다가 루카스 요더의 작품은 인간의 사소한 감수성까지 담아내는 글이라 갈라드 여사 역시 그런 감성이 담긴 서적을 좋아한다.
 
그러나 루카스 요더를 탐탁하게 생각하지 않은 칼 교수의 태도와 손자 티모시의 의견은 루카스 요더의 팬인 갈라드 여사에게 좋지 못한 인상을 준다. 그러면서 갈라드 여사는 칼 교수와 티모시에게 갈등을 느끼며, 한편으로 루카스 요더를 돌에 묻힌 보석처럼 찾아낸 미즈 이본 마멜에 대해 깊이 신용한다. 게다가 갈라드 여사는 자신의 하나뿐인 혈육인 티모시의 연인인 소어킨 양도 마음에 들어한다.
 
루카스 요더는 개방적이고 전위적인 소어킨에 대해 반발감을 느끼나 갈라드 여사는 오히려 포용해주는 사람이었다. 게다가 손자를 만나게 되어 고맙다고 할 정도이니 갈라드 여사의 의식구조는 구식세계관에 있는 사람이기도 하지만 한편으로 새로운 것을 받아들일 사람이기도 하였다. 그래서 갈라드 여사는 소어킨 양의 소설을 보면서 좋은 비평까지 아끼지 않은 인물이었다.
 
그녀는 글을 보는데 있어서 칼과 티모시처럼 깊은 비평지식이 없어도 글을 잘 보고 있었으며, 이본 마멜처럼 편집자가 아니나 편집부분에 대해 이야기할 수 있었다. 단지 그녀는 감성이 넘치는 것을 좋아했을 뿐이다. 하지만 루카스 요더는 조금 이야기가 달랐으며 한편으로 새로운 면을 볼 수 있었다.
 
내가 갈라드 여사편을 읽으면서 가장 큰 사건이 3가지가 있는데, 하나는 파운드에 대한 영화, 하나는 손자 티모시의 죽음, 하나는 루카스 요더의 새로운 소설이다. 갈라드 여사의 손자인 티모시가 칼 교수에게 교육을 받으며, 파운드에 대한 내용에서 티모시는 파운드에 대해 좋은 평을 주나 루카스 요더에 대해 좋지 않은 인상을 준 점이다. 그런데 루카스 요더는 그 자리에서 글을 쓰고 보고 하는 사람이 글에 대해 진지하게 비판하는 것은 좋으나 유대인 학살을 주장하는 사람에 대해서는 동조할 수 없다는 말에서 내 가슴에 큰 파문을 던졌다. 그저 시골노인처럼 보이던 루카스가 그것도 소통하지 않고 피하는 것처럼 보이는 루카스가 가장 열린 생각과 깊은 마음을 가진 것이 아닐까?
 
아무리 지식인이라도 그것이 우수해도 인간의 존엄성 밟힌다면 그것은 진정한 문학적 가치가 있을까라는 평소 내 생각처럼 루카스 요더의 발언은 의외였다. 갈라드 여사편에서 읽어본 루카스는 매우 인간적인 인물이었다. 티모시가 살해당할 때 그는 매우 진지하게 티모시의 살인범을 추적하려고 했다. 결국 그레쥴러라는 사람과 노력해서 독일인 마을의 애플파이군을 잡아내었으나 루카스 요더의 냉철한 사고와 추리력은 상당히 놀랬다.
 
물론 티모시의 살해됨에 따라 그런 걱정은 루카스 요더 뿐만 아니라 칼 교수와 이본 마멜도 매우 진지하게 받아들였다. 하지만 티모시의 살해로 인해 이렇게 루카스 요더라는 사람에게 큰 영향을 줄 지는 몰랐다. 칼 교수는 항상 루카스의 책에는 자신이 생각하던 새로움과 이상적인 가치관이 없다고 생각하면서 루카스를 공격했다. 그런데도 루카스는 그런 의견이나 그런 의견이 실린 신문기사조차도 외면해 버린다. 루카스 옆에 있던 그의 부인 엠마는 그런 내용을 접할 때마다 분노하나 루카스는 눈썹 하나 움직이지 않는다.
 
그런데 알고 보니 루카스는 하루에 몇 십통의 독자편지가 온다는 것이다. 그것도 미국만이 아닌 전 세계적으로 말이다. 루카스는 그 편지를 읽은 후에 하나하나 답장을 해준다. 소설 상권의 루카스 요더가 갑자기 되버린 싸인회에서 그렇게 일일이 악수하고 애기하고 싸인해주던 모습이 왜 그런지 알 수 있게 해준 대목이었다. 루카스라는 사람은 독자의 입장에서 글을 적으려던 사람이고, 칼이라는 사람은 독자가 자신을 따라와주길 바란 사람이었다.
 
그래서 루카스는 누가 뭐라고 하든 자신의 길을 묵묵히 걸어가던 것이다. 그렇지만 한편으로 본다면 너무 시대적인 정신에서 멀어진 것은 분명하다. 그런 루카스의 정체된 인생에 하나의 파문이 된 것은 칼 교수와 티모시일 것이다. 그런 상황을 보고 말해주는 것은 갈라드 여사일 것이다.
 
이상하게도 소설 마지막편은 갈라드 여사로서 끝맺음을 하는 게 루카스 요더와 엠마로서 맺는다. 루카스는 티모시의 살인과 더불어 거기에 대한 새로운 소설구상을 담아 기존에 자신이 담은 글과 새로운 양상을 보인다. 칼이라는 사람이 루카스라는 인물에 대해 좋은 평을 주지 못했으나, 그런 평들을 루카스에게 아무것도 전달해주지 않았을 것이라 생각했다. 그런데 루카스는 마지막에 그런 칼과 티모시의 생각을 받아들여 자신을 새롭게 변하려고 했다.
 
이 소설이란 작품을 보면 초반에 루카스 요더라는 사람은 장인정신을 가진 작가로 내비추었으나, 이본 마멜로 통해 고집불통이나 자신에게 힘이 되는 시골영감으로 칼 스트라이버트에서는 시대에 동떨어져 감수성에 빠져사는 어리석은 노인으로 비추어졌다. 그러나 이제 여기서 루카스 요더는 하나의 진실한 작가로서 다시 태어난다. 물론 진실한 작가로 되어 빛을 본 것은 루카스만이 아니다.
 
냉철하고 엘리트주의적인 칼 교수도 자신이 비평가이었으나 비평가로서 너무 거기에 매달린 것에 대해 조금은 개선되어 갔으며, 이본 마멜은 외롭고 삭막한 도시를 떠나 독일인 마을로 정착하여 거기서 자신의 새로운 인생을 지내려 한다. 갈라드 여사도 기존에 루카스 요더 작가 작품만 좋아하는 것으로 생각했으나 칼과 티모시가 주장하는 작품도 좋다고 생각한다.
 
단지 이렇게 되는 과정이 티모시라는 젊고 유능한 인재의 희생 아래 성립된 것에서는 아쉬운 점이나 글을 쓰고 읽고 생각하고 말하는 것은 어느 한쪽만이 아니라 동시에 대화하는 것과 같다. 글로 통해 세상을 보고 듣고 글로 통해 감동을 받는 것은 어느쪽이든 소중하다. 이런 부분을 강조하는 것이 소설 마지막편 독자 제인 갈라드 여사편이 아닐까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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화씨 911 - Fahrenheit 9/11
영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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상영종료


 
전에 추석때 화씨 911이란 영화를 보았다. 화씨 911는 21세기 최고의 비극적인 테러인 미국쌍둥이 빌딩이 항공기에 의해 무참하게 찢겨진 사건이다. 이 날의 사고로 많은 사람들이 죽고 다치고, 살아남은 희생자들은 당시 악몽과 후유증으로 고통받았다. 사람이 죽으면 말이 없는 법이다. 그러나 살아남은 사람은 말은 남는 법이다. 

사건으로 억울하게 희생된 사람들의 가족과 친구, 연인들이 있을 것이다. 그들은 그날의 고통을 잊지 못한채 남은 인생을 살아가야 한다. 비극의 문제는 비극이 생겼다는 것이 아니라 비극이 왜 일어나게 되었는가이다. 세상에 그 모든 사람들은 자신의 소중한 사람과 혹은 아무런 상관없는 사람조차도 억울하게 죽어가는 것을 원하지 않을 것이다.

그러나 2001년 9월 11일 이날 많은 사람들이 어긋난 세계이념 아래 무참히도 살해되었다. 살인자는 누구인가? 테러리스트인가? 아니면 그 외의 누군가인가? 

이 영화를 보기 전에 나는 노암촘스키의 불량국가라는 서적을 읽어보았다. 노암촘스키 교수는 세계의 양심적인 지식인으로 나이가 80대임에도 불구하고 그의 열정은 꺼질 줄 모르는 활화산과 같다. 얼마 전에 이스라엘에 가려고 했지만, 그 이스라엘 정부가 거부했다고 한다. 

나이 80대인 할아버지가 뭐가 무서워서 한 나라 정부조직이 거부한다는 것일까? 국내에서는 국방부 불량서적에 올라갈 정도로 낙인찍힌 분이다. 이분이 미국에서 언어학을 가르치고 사회학을 연구하는데 무엇이 무섭다는 말인가? 

세상에서 가장 무서운 말 하나가 진실이다. 진실은 아름답고 정의롭다 말보단 정의는 오히려 사람들을 불편하게 한다고 한다. 세계적인 환경운동가인 미국 전 정치인 엘 고어는 이런 책을 적었다. 불편한 진실, 나중에 이 책을 기반으로 영화도 나왔다고 한다. 환경공학자 입장에서 책을 보았지만, 아직 영화는 감상하지 않았다. 그러나 이 불편하다는 진실은 환경뿐만 아니라 국제사회와 정치외교에서 얼마든지 등장한다.  

이런 불편한 진실은 언제나 뒤에서 대중들을 눈을 가리고 이익만 챙기는 일부 몰지각한 인간들에겐 그야말로 짜증나고 꼴도 보기 싫은 가시와 같을 것이다. 이 불편한 진실을 정말인지 아닌지 알 수 없으나 그런 내용을 공감할 수 있는 화씨 911, 노암촘스키 서적을 보고 이 영화를 한번 더 보기를 권장한다. 정말 이 영화와 노암촘스키 서적의 싱크로를 따지자면 대단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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생각을 넓혀주는 독서법 - 개정2판
모티머 J.애들러 외 지음 / 멘토 / 2012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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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선 이 책에서 내가 가장 감응한 부분은 서적 23페이지에 있는 내용이다. 저자가 하는 말을 기억하는 것이 매우 중요하나 그 저자에 의한 정보습득만큼이나 중요한 이 정보를 어떻게 제대로 사용하는 가이다. 책을 읽는 것은 개인적인 지식을 수용하는 즐거움에 대해 생각해 볼 수 있지만, 그 즐거움을 나만이 아닌 타인에게 전달해 줄 수 있는 즐거움이 있기 때문이다. 글이란 무엇인가?

애초에 글을 보고 읽고 쓰고 생각하고 말하는 것은 인간이 자기 스스로만 갇혀 있는 것이 아니라 타인들과 소통관계를 유지하기 위한 것이라고 본다.



그러므로 인간은 자신이 가진 지식을 얼마나 잘 습득하여 얼마나 잘 이해시켜 주는 것에서 그 인간이 원하는 이상이나 가치관을 반영할 수 있다고 본다. 물론 그런 자신의 이상과 가치관을 남에게 전달한다는 것은 그것에 대해 얼마나 잘 아는가이다.


본문 내용에 <몽테뉴는 “지식은 얻지 못하는 ABC 수준의 무지와 지식을 얻고 난 후 박사 수준의 무지”에 대해 이야기했다. 전자는 ABC도 몰라서 전혀 읽을 수 없는 사람들의 무지함을 말하고 후자는 많은 책을 읽기는 했으나 잘못 읽은 사람들의 무지함을 이야기한다. 알렉산더 포프는 이들을 가리켜 “무식하게 책만 읽은 멍청이들”이라고 말했다. 늘 닥치는 대로 읽지만 제대로 읽지 않아 지식과 어리석음을 동시에 지니고 있는 이런 사람들을 지칭하는 그리스 말이 있었다. 바로 sophomore이다>.

우리는 책을 읽는 것은 자신의 무지를 깨달고 다시 자신이 얼마나 아직까지 수련이 부족한지 그리고 그 자신을 위해 무엇을 해야 제대로 생각하고 행동할 수 있는지 판단할 수 있게 해야 한다. 그러나 책이란 것을 그저 자신의 과잉의식 아래 읽게 된다면 그 사람은 정말 똑똑한 바보가 되는 것이다. 이 책 18장 “철학 서적 읽는 법”에서는 철학은 아주 어렵고 난해하고 이야기가 곤란한 것이 아니라 마치 나이가 어린 아이가 어떤 사물과 현상, 그리고 거기서 발생되는 일들에 대해 의문을 가지고 질문을 하고 나서 이해해야 하는 것처럼 책이란 단순히 누군가의 위를 군림하기 위해서만 읽어서는 안된다.

그런다고 모든 서적이 다른 사람에게 지식을 잘 전달해 줘야 하는 것은 아니다. 예를 들어 인간의 생명을 다루는 의사나 간호사나 혹은 정밀한 기계를 다루는 과학자와 기술자와 같은 사람들이 읽고 있는 서적은 보편적인 인간들을 이해시키기 위해 만들어진 책이 아니다. 단지 일반적인 상식선에서 보통 인간에게 이해시킬 수 있을 정도면 충분하다고 본다. 반드시 과학기술적인 프로세서를 하나하나 이해시킨다는 자체가 어려운 일이기 때문이다.




그렇지만 이런 서적들을 이해하기 위해서는 반드시 그 인간의 곁에 전문가적인 지식을 가진 교사가 필요하므로 “생각을 넓혀주는 독서법”에서 추구하는 방향은 “곁에 있는 교사와 곁에 없는 교사” 중에서 “곁에 없는 교사”를 가진 사람들이므로 우리는 곁에 교사가 없다는 가정 아래 이 서적을 읽으면서 생각해야한다고 본다. 물론 사람에 따라 학교나 학원에 다니거나 혹은 가정 과외로 통해 교사로부터 충분히 지식을 획득할 수 있다.

그러나 모든 인간들이 학교와 학원을 다니는 것은 아니다. 모든 인간들이 자신의 집에서 전문가에게 지식을 얻을 수 없다. 주변에 자신을 가르칠 인간이 없다고 몽테뉴의 이야기처럼 ABC까지는 아니더라도 기본적인 소양을 배우고 생각해야 한다. 그렇다면 이런 지속적으로 인간이 추구해야할 지식과 소양을 키우려면 어떻게 해야 하는 점에서 이 책의 가장 큰 목적이란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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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방위 글쓰기 - 글과 생각이 깊어지는 웹 2.0시대의 글쓰기 매뉴얼
김봉석 지음 / 바다출판사 / 2008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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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방위 글쓰기, 글이란 것은 지금 현대사회에 살아가는 우리 한국사람에게 모두 알고 있는 언어 및 정보교환매체로서 글을 쓰고 보고 읽고 생각하는 것은 내가 나만의 공간이 아닌 타인과의 공간과 공유하여 서로 대화를 나눌 수 있는 하나의 연결로 볼 수 있다.

그러나 글이란 것은 초기에는 우리가 살아가는 현실처럼 모두에게 열려있는 존재가 아니었다. 글은 하나의 권력이고 하나의 상징이었기 때문이다. 우리가 현대사회에서 춤, 노래들이 언터테인먼트적인 요소로 발현되나 사실 춤과 노래는 과거 오래전의 인간이나 혹은 지금 살아가는 인간조차도 하나의 주술로써 받아들였다.

예를 들어 우리가 집안에 큰 제사가 있을 때마다 집안 어른들이 문중의 조상들에게 읊는 문구를 보았는가? 일정한 간격으로 말을 하는데 그 운구와 장단 높낮음이 있지 아니한가? 또는 우리의 고대신앙인 무속신앙을 보자. 무당이 굿을 하면서 신내림 과정에 미친듯이 춤을 추는 그들의 모습을 보자.

그들은 미친듯이 춤을 추고 장단에 맞추어 흥얼거리는 이유가 다 주술적인 관계이서이다. 그렇다면 우리 인간의 문화 생활 속에 보이는 이런 주술적인 범위는 우리가 보고 쓰고 말하는 언어와 문자에도 그대로 녹아있는 것이다. 고대 서양사람들은 글보단 말로써 대중에게 이야기함으로서 대중에게 자신의 주장을 설득하였다는 점에서 사람은 글보단 말로서 이야기하는 것이 더 감정적으로 다가온다.

하지만 말로 하는 것은 순간적이라는 사실 때문에 자동녹음장치 도움없이 그저 한순간 나타난 뒤에 사라지는 존재라는 것에 한계점이 있었다. 그런 문제를 제대로 해결해주는 것은 어느 일정한 매체로 통해 우리 인간의 눈으로 정보를 들어오게금 하는 것이다. 시각적인 정보매체에서 글이란 그 정보제공자가 전달하고자 하는 내용을 순간적으로도 전달할 수 있지만 한편으로 체계적으로 전달할 수 있다. 

또한 글이란 것은 자신의 사고능력을 요구하는 작업이 많으므로 생각의 깊이로 통해 우리가 미쳐 생각하지도 못한 정보까지 수용하여 다른 사람에게 전달할 수 있는 정보가 된다. 그러면 우리는 이렇게 인간의 사고와 정보를 포함하는 글을 잘 적어서 타인에게 전달할 수 있을까?

글을 적는 것은 자신에 대한 개발이기도 하지만 자신의 생각을 정리하여 자신의 주관을 나타내게 하는 하나의 지표이다. 그런 자신의 의견을 정리하여 남에게 보여주는 것은 곧 자신의 현재 상황이나 수준, 환경까지 바라볼 수 있는 조건도 되는 것이다.

그래서 글이란 누구나 보고 쓰고 읽고 말할 수 있는 보편적인 특성을 가지고 있으나, 한편으로 전달할 수 있는 범위와 깊이가 무궁무진하므로 거기에 따라 어떻게 글을 적어야 할까에 대해 깊이 생각해 볼 필요가 있다.

그래서 전방위 글쓰기에서 최근 정보화 시대에 따른 현대사회 인간에게 정보의 홍수인 인터넷이나 혹은 각종 매체에서 어떻게 하면 글을 잘 적을 수 있을까에 대해 적어 놓은 책이다. 그리고 글을 적으면서 글쓴이가 어떤 매체나 상황에 대해 객관적인 자세와 주관적인 사고로 전문성을 갖추어 하나의 비평을 적는 방식을 안내한다.

글을 적는 방법이나 자신이 쓰고 하는 대상에 대한 접근성, 이해도, 관련내용은 상당히 많다. 때에 따라서 그 매체가 시각, 청각, 촉각, 후각, 미각. 육감까지도 모든 것이 글을 적게 하는 동기이다. 결국 글이란 자신이 느끼는 것을 좀 더 세심하게 들여다 봄으로써 자신만의 새로운 공간을 창출할 수 있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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독서력 - 우리는 무엇을, 어떻게, 왜 읽어야 하는가
사이토 다카시 지음, 황선종 옮김 / 웅진지식하우스 / 2009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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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본 메이지대학교 문학부 교수로 재직하고 있는 사이토 다카시 교수는 그의 열정적이고 헌신적인 독서생활을 자기만이 누릴 것이 아니라 자기 주변과 혹은 그 이상의 사람들에게 즐기는 것을 바라는 사람이다.

 

그런 사이토 교수이기에 그가 생각하는 독서는 우리가 평소 운동을 좋아하고 TV와 영화를 보는 것을 좋아하듯이 독서가 그저 어쩌다 보는 흥미위주나 혹은 잠시 시간 내어 보는 취미생활이 아닌 하나의 생활관으로 보자고 한 것이 특징이다.

 

솔직히 이 글을 적는 나 역시 독서라는 것을 제대로 시작한 것은 중학교 이후 처음인 듯하다. 그래서 독서라는 것이 왠지 모르게 나라는 사람에게 다가가기 어려운 벽으로 생각했다. 고등학교 입시수험생활과 빠득한 전문대학 수업시간은 언제나 나에게 정신적으로나 심리적으로 강박관념에 시달리게 하였다.

 

그만큼 나라는 사람은 시간에 의해 쫓겨 살았고, 내 인생에서 책이란 그저 학교에서 배우는 교과과정이나 자격증을 따기 위한 기술서적 혹은 학점을 잘 받기 위한 도구로 전략해 버린 것일지도 모른다. 어떻게 100% 책에 대한 실용적인 면만 보아 책이 가지는 진정한 의미 따위는 방관한 채 살아 왔을지도 모른다.

 

물론 일반 정규 학사과정을 밟는 대학교에 넘어오면서 강의시간이 약간 한가한 점, 그리고 학교와 집이 멀다는 점으로 도서관에 가서 책을 잠시 빌려본 적이 있었다. 아마 그 시간이 1년 조금 넘었을 것이다. 하지만 대학교 3학년 말부터 자격증공부로 인해 나에게 주어진 책이란 자격증을 따기 위한 기술도서이다.

 

마음의 여유와 인생에 대한 가치를 논하는 책은 다시 내 마음 한편에 당분간 나두며 살아왔다. 그렇게 지내다가 어느 순간 나의 생활에서는 독서란 것이 빠질 수 없는 일상의 흐름이 되었다. 내가 지금 책을 읽고 있는 것에 대해서 특별하게 나에게 경제적인 이득이나 별개의 특혜는 오지 않는다.

 

 

그래도 나는 한 달에 계속 2~4권, 최대 5권정도 읽는다. 바쁜 회사일과 집에 오면 녹초가 될지라도 하루에 책 몇 페이지는 읽으려고 한다. 그것은 책으로 통해 나라는 사람이 현재 살아있음을 증명하기 위해서이다. 그냥 쳇바퀴에 돌아가는 다람쥐처럼 오늘 하루 아무 일없이 보내는 것보단 나 자신과 혹은 내가 아닌 타인에 대한 소통에서 조금 더 낳은 삶을 사려고 한 것이다.

 

물론 그 책은 사회학, 철학, 정치학, 윤리학, 문화인류학, 신화학과 같이 다소 어려운 주제를 다루고 있는 서적도 있고 한편으로 에세이, 수필, 잡지, 만화와 같은 재미있는 서적도 있다. 어느 책이든 그 책이 나에게 도움이 된다면 충분한 가치가 있는 것이 아닐까? 그런 만큼 이 책에서는 사람이 책을 읽는 것이 본인으로 하여금 얼마나 많은 도움을 주는지 알려준다.

 

물론 그런 독서에 대해 좋다고 하는 서적은 많다. 그러나 이 책에서는 그 책을 읽는 좋은 것들임을 독자들에게 알기 쉽게 알려주는 것이 특성이다. 또한 책을 어떻게 사고 정리하고 보고, 그렇게 보고 읽음으로써 다른 사람들과 어떻게 이야기하고 생각하고 대하는지도 나온다. 어째 보면 책이란 것은 인간이 인생에 살아가는데 있어서 좀 더 나은 내일을 추구하기 위한 하나의 열린 장이라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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