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펙타클의 사회 - 문화교양 7
기 드보르 지음, 이경숙 옮김 / 현실문화 / 1996년 10월
평점 :
구판절판


 
내가 카페활동이나 사이트 활동하면서 제일 말안되는 소리를 하는 것이라고 생각하는 것이 가상과 현실의 경계점에 대한 논의다. 어차피 TV, PC, PMP, i-pon, PSP 등 영상매체로 보고 있는 세계는 현실이 아니다. 물론 거기 원본의 이미지가 촬영된 곳이 현실이라 하지만, 그 현실이 우리에게 다가올 때는 그 것이 정말 사실인지 아닌지는 직접 눈으로 확인해야 한다. 하지만 우리는 확인할 수 없다. TV 뉴스에서 어느 박사가 특수한 연구결과를 내놓아도 얼마 기간 후에 위조라는 사실이 밝혀지는 해프닝이 하나 둘이 아니다. 그래서 TV라는 가상세계 매체에 통해 우리는 얼마나 현실성을 잊혀가는가?



애초부터 TV 드라마보면서 이것은 리얼리티해라고 할 수 있지만, 이것이 내 옆에 일어나고 있어라고 하는 것은 틀렸다. 드라마속의 아름답고 멋진 광경이 내 주변에 일어나는가? 아직도 TV속의 이쁜 바비인형처럼 꾸며진 세계에 빠져 살아가고 있는가? 현실의 좌절감을 가상세계로 통해 보상심리를 채울 수 있을 망정 왜곡된 사람들의 현실을 바꿀 수가 없다. 사랑이라는 판타지도 어째보면 인간은 서로 사랑하고 사랑받으며 살아가야 한다. 그렇게 드라마에선 사랑을 외치지만 그렇게 사랑하고 있는 인간들은 얼마나 있는가? 마치 드라마를 보면서 그 가상적인 사랑이 이루어진 것에 동의하는 것만으로도 자신들은 낭만적 사랑을 한다고 생각하는가?



어이없는 농담따먹기도 아닌 그저 바보도 아닌 바보들이 헛소리를 하는 꼴과 같다. 본인들은 현실에서 모든 것을 가려가면서 왜 드라마에서는 그런 것을 따지는 인간을 욕할까? 자신들은 마치 안그러는 것처럼 말이다. 드라마 세계의 못된 인물을 욕해봤자 무엇이 달라진다고 그럴까? 드라마 속에 감추어진 작가와 시대의 흐름따위는 눈꼽만치 관심없다. 단지 흥행이나 신드룸이 될만한 요소만 귀를 기울린다. 드마라의 재미를 재미로 보는 것에 대해 나쁘지 않다. 물론 재미있으라고 만든 것이 드라마가 아닌가? 그런데 드라마 세계의 하이퍼리얼리티 세계는 대중들로 하여금 이상한 이념으로 가득차게 한다.



스펙타클이란 말은 그런 현실세계가 아닌 가상의 이미지가 현실로 들어나는 현상이다. 태풍불어와 집들이 무너지고 길고 긴 장맛비가 내린 후에 하늘은 참 스펙타클하게 푸렇구나 하는 소리는 정말 스펙타클을 알고 하는 소리인가? 아닌가?  기 드보르의 스펙타클의 사회는 1967년 출판된 도서이다. 어느날 우연히 기 드보르를 검색하던 도중에 기 드보르의 영화를 볼 수 있는 사이트를 찾았다. 정말 횡재하였다. 1994년 자살을 한 영화감독 기 드보르의 작품을 본다는 것은 그가 주장하던 스펙터클의 사회라는 책을 영화로 볼 수 있다는 것이다. 볼 수 있다는 것은 좋으나 문제는 나는 불어를 알아 듣지 못한다. 불어대사와 함께 영어자막가 나오지만 나는 영어실력이 좋지 않아 언어적인 구조에서는 도저히 알 수 없었다.



영어단어 몇개와 영상이미지로 통해 뭔가 말하고 싶은가만 생각하고 있다. 다행히도 스펙타클이 사회란 책을 1번 읽어보아 대략적으로 감만 잡았다. 2번 3번 이상 봐야하겠지만, 한번 봤다는 것이 이 작품에 대한 관점을 준 계기다. 먼저 기 드보르의 society of the spectacle를 보기 전에 Critique de la séparation (1961)를 보았다. 불어 글자철자도 모르겠는데, 불어로 말하는 나레이션은 더욱 더 미궁이다. 단지 눈에 가는 것은 이 영화도 society of the spectacle에서 나온 내용과 뭔가 중첩이 된다는 점이다.



평범한 어느 한 여성, 시위와 진압, 전쟁, 정치인들의 상황연출은 뭔가 평범하게 살아가고 있는 사람들은 자신들이 알 수 없는 곳에서 뭔가 일어난다는 것을 알리는 듯 싶다. 실제는 존재하나 실제는 허구로 대중 눈앞을 가리는 느낌처럼 말이다. 위에 society of the spectacle 서적의 한 표지에 실린 그림이다. 눈앞에 선글라스를 끼고 앞을 보는 사람들 이게 진정한 스펙타클이라고 말하고픈 기 드보르다. society of the spectacle 영화는 1973년에 나왔다. 도서가 나온지 5년 뒤다. 1968년 5월 프랑스 68혁명 후에 나온 영화다. 그가 이 영화로 전달하고자는 의미는 뭘까? 불어가 안통하는 나로서는 고민이 막중하다. 하지만 처음부터 끝을 본 직후의 이야기는 이데올로기 통한 국가대립이라는 것과 여성이 성적인 소비대상, 시위와 진압에서 보이는 불합리성, 세계 정치지도자들의 정치활동, 그리고 평범한 사람들의 이야기, 흑백영상의 글자들의 나열은 도저히 개연성의 연계성이 보이지 않는다.  



이것이 전위예술적인 요소일까? society of the spectacle 영화에서 흑백으로 된 영상에 어느 한 남자의 나레이션이 계속된다. 이 남성의 음성 아래 하단에 찍히 영어로 읽어보면 스펙타클이 그래 좋지 못한 것을 알 수 있다. 조장된 세계의 이미지로 대중들이 아무것도 모른 채 살아가고 있으니깐.  제일 기억나는 장면은 파시즘과 나치즘이다. 광기에 가득찬 이 이념들은 인간을 하나로 만들지만 그런 하나가 타국에 대해서는 전쟁을 불러 일으킨 것은 분명하다. 전쟁이란 상황이 그야말로 스펙타클의 현실을 여실히 보여주는 현실이다. 문제는 이 전쟁을 일으키는 인간들은 뒤에서 가만히 앉아 구경하면서 막상 그 스펙타클한 세계에 휘말리는 것은 대중이란 점이다. 스펙타클은 대중들을 현혹하여 이념적 조장자로 하여금 꼭두각시처럼 행동하게금 한다. 전쟁에서 목숨걸고 싸우는 젊은이들이 전쟁을 만들었는가? 그들은 국가적인 이념아래 간다고 하지만, 자신의 목숨마져 날릴 수 있을 정도로 이념이란 것은 강력한 무기다.



이런 강력한 무기인 이념은 반드시 국가만이 아니다. 문화, 단체, 심지어는 개인들의 일상에서도 존재한다. 우리가 축구를 볼때 토탈사커라고 들어봤는가? 이 집단축구는 오렌지군단인 네덜란드에서 만든 축구전략이다. 물론 스펙타클한 전법이지만, 그렇게 해롭지는 않다. 문제는 이런 스펙타클한 전법을 보는 대중들이 걱정이다. 훌리건이라는 광적인 축구팬들은 자신들의 팀이나 국가가 지면 상대방에게 집단적인 행동으로 들어간다. 각 개인마다 독특한 개성과 인격이 있음에도 불구하고 이 축구팬 단체란 틀에서 그들은 집단적행위를 시작한다. 누구 하나의 생각도 아닌데, 이렇게 적게는 수백, 많게는 수만까지 가는 사람들이 스펙타클한 축구전략이지만, 그 축구경기가 스펙타클하지 않은데도 자신들의 그 경기에 따라 스펙타클한 연출을 하기 시작한다. 



각본도 감독도 없는 없는 훌리건에서 스펙타클이란 반드시 국가적인 이념만 아니라 이런 사소한 일상생활에서도 목격이 가능하다는 사실이다. 그렇다면 대중들의 비일상적인 공간의 스펙타클은 이런 집단에서 나오지 않아도 얼마든지 집단을 대상으로 이념적인 행동들을 일으킬 수 있다.  이런 생각을 만들게 하는 society of the spectacle에서 위에서 언급한 것처럼 전쟁, 시위와 진압, 정치인들 활동, 일상생활, 시민들의 선동, 전쟁포로에 대한 억압, 여성의 가슴노출, 글자만 나오는 장면들을 어지렇게 나열되어 있다. 그런데 여기서 재미는 점은 여자의 가슴노출에서 처음에 자본주의에서는 여성은 남성의 소유물로 인식되는 수동적 존재로 만든 점에서 그런 의도인가 싶었다. 그런데 나중에 영화 후반에 어느 해변에 모든 여성들이 상의를 다 벗고 있었다. 누드해변인가? 소문으로 있다고 들어보았지만, 남자나 여자나 모두 상의를 탈의한 채 재밌게 놀고 있다.



최근에 매릴린 옐롬 교수의 서적을 구입하여 초반을 읽고 있다. 패미니스트 인문학자인 그녀는 여자의 가슴에 대해 서양철학 역사 2,500년을 이야기하고 있다. 남성이 보는 여성의 몸이란 섹시한 아이돌스타처럼 그저 보기 좋게 하려는 시각적인 소유물인가? 아니면 당당하게 권리를 누리는 자유인가? 영화 society of the spectacle에서는 이런 문제를 다루는 듯하다. 처음에 마치 누드모델처럼 나오는 여자들의 영상이 어느순간 자유로운 누드해변가로 나온다. 영화 society of the spectacle에서 가장 많이던 장면은 인간과 인간의 투쟁이다. 전쟁터에서 서로 총을 쏘우는 군인들, 시위자와 그 시위자를 진압하는 공권력, 투쟁의 역사는 좀 더 과학기술적으로 변모하여 항공모항 위로 이착륙하는 전투기들, 스펙타클한 사회란 그런 국가 내에서도 국가 외적으로도 갈등을 일으키고 있는 현상이다.

 

 그의 작품 마지막에 1968년 이야기가 나온다. 1968년 5월 프랑스에서 68혁명이 일어나고 1969년 드골정부에서 다른 정부로 교체된다. 어째든 그가 보며준 영화 society of the spectacle에서는 전혀 맞지도 않은 서사구조에 전혀 맞지도 않은 이미지에 나레이션을 입혀 놓는다. 전위예술에 대한 개념이 부족한 나로서는 전위예술적인 영화란 과연 대중들이 쉽게 받아들이는 게 쉽지 않을 것이라고 생각했다. 실제 기 드보르의 영화가 상영될 때 이상한 편집과 해괴한 연출에서 영화를 위한 영화가 아니라 도구를 위한 영화라는 말처럼 상영객들의 평가가 희비를 달리했다. society of the spectacle, 사람들이 살아가고 있는 사회가 눈에 보이지도 않은 이미지가 매개로 하여 대중들이 그저 조장된 이미지로 탄생된 미디어 안에서 수동적으로 살아갈 것인가? 아니면 인간 그 자체로 능동적으로 살아갈 것인가? 언제나 우리 주변은 스펙타클한 세계로 이루어져 있다.  대중들이 말하고 있는 스펙타클하다는 그것들. 분명히 스펙타클할 것이다. 하지만 정작 스펙타클한 것은 본인이라는 것을 사람들은 망각하고 있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1)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공포의 외인구단 애장판 1~5 박스 세트 1 - 전5권 공포의 외인구단 애장판 세트
이현세 지음 / 학산문화사(만화) / 2009년 7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이현세 화백님은 현재 세종대학교 만화애니메이션학과 교수님으로 재직 중이다. 내가 생각하기에 그가 한국 만화역사에서 남긴 흔적과 공헌을 생각한다면 엄청난 분이며, 한국 만화애니메이션 문화를 향유하는 입장에서 본다면 그 분은 내가 어린 시절에 가장 좋아했던 작가였다.
바로 이현세 화백님이 만들어낸 많고 많은 작품이 있지만, 나는 이현세 화백님의 이름 3자가 나오면 딱 이 만화를 추천한다. 바로 공포의 외인구단이다. 공포의 외인구단은 당시 1980년대 한국에서 3s 정책(sex, sports, screen)이 나올 적에 국내에서는 한참 프로야구가 인기몰이였다. 이런 흐름에 따라 공포의 외인구단은 그런 한국 대중문화에 어울려 나온 명작 만화책이다.

내가 이 만화책을 처음 본 것은 국민학교(현재 초등학교) 시절이었다. 당시 1980년대와 1990년대 한국 프로야구가 국민학생인 나에게도 큰 여파가 올 정도로 많은 인기가 있었다. 당시 그런 프로야구와 더불어 공포의 외인구단은 아주 흥미롭고 재미있는 만화책였다. 물론 그 안에 담고 있는 내용은 단순히 야구승부만을 내세우는 것은 아니었으나 지금 다시 생각해보면 주인공의 역경과 시련 그리고 극적인 비극과 플롯이 작품 요소에 반영되어 많은 몰입도를 조성한 작품이었다.

그리고 그런 추억에 잠긴 나에게 최근 읽어본 공포의 외인구단은 어린 시절에 보던 그 만화책과 사뭇 다른 모습이었다. 왜냐하면 공포의 외인구단은 엄청난 내용과 가치관이 담겨 있었기 때문이다. 공포의 외인구단에서 그 외인구단 소속 선수들은 모두 엄청난 실력을 가진 인간이지만 사실 알고보면 인간패배자였다. 모두 멸시와 조롱을 받는 실패한 인간들, 즉 당시 살아가던 힘없는 서민과 억압받던 소외된 자였다. 그런 패배적인 인생을 살아가는 그들이 최후의 발악을 떨며 자신은 이 세계에서 살고 있다는 것을 비명지른 만화가 공포의 외인구단이다.

팔이 고장난 투수 오혜성, 거대한 덩치인 백두산, 손가락 하나 없는 조성구, 게다가 팔이 없거나 태어날 때부터 키가 너무 작거나 태어날 때 한국인이 아닌 혼혈아 태어난 사람들, 그리고 미치광이 감독.. 이들은 모두 패배한 인생을 살아가고 있는 대한민국 소시민이들었다. 아무런 내일도 기약도 없이 죽음을 각오하고 야구훈련을 한 이들은 자신들의 잃어버린 공간을 찾아 투쟁을 한다. 그리고 이들의 목표는 프로야구단 꼴등 팀에 가서 100연승하는 것을 목표로 한다.

그 100연승이란 길고 긴 서사 속에서 이루어지는 세상에 대한 복수와 패배한 자들의 포효는 야구 팬들로 하여금 환호성을 외치게 한다. 하지만 모든 세상에는 완벽한 일들이 없는 가보다. 100연승을 앞둔 상태에서 외인구단의 최대 라이벌인 마동탁이 다시 돌아와서 100연승의 종지부를 찍고 만다. 결국 100연승을 이루지 못한 패배한 인생들은 마지막 1승을 앞에 두고 현실 앞에 좌절한다.

이 좌절의 패배로 인해 오혜성은 시력을 잃어버리고, 마동탁의 아내요 오혜성의 첫사랑인 엄지는 오혜성이 눈이 실명된 것에 충격받아 정신을 실성한다. 그리고 마동탁은 엄지와 이혼하고 실성한 엄지와 눈이 멀은 오혜성은 최후에 해후하여 자신들의 사랑을 확인한다. 패배한 인간이 자신들의 목포인 100연승을 달성하지 못해 좌절하지만, 그 1승을 놓치더라고 99승의 노력은 배신하지 않았다. 외팔이 선수 최관은 엄지 동생와 결혼하였고, 땅꼬마 최경도도 자신이 좋아했지만 자신에게 냉대하게 대한 은행여직원과 결혼하다. 조성구도 패배자 투수로 살림살이가 어려워 집에서 구박받았으나 이제 그렇지는 않다. 하지만 그들은 그들의 안식처를 얻었으나 오혜성은 안식처를 얻지 못했다. 그러나 최후에 실성한 엄지와 만나 제정신이 아닌 두 사람은 사랑을 영원히 나눌 수 있다.

억압받던 우리 한국 사회에서 공포의 외인구단은 어떻게 보면 패배자들의 향연이다. 마동탁은 부유한 집안에 엘리트 선수로 언제나 성공이 보장된 인간이었다. 그의 엘리트의식이 패배자들에게 조금씩 밀리자 자존심이 상하게 되고 마동탁이란 엘리트는 최후의 100승 고지에서 외인구단에게 패배를 안겨주게 된다. 하지만 아무리 외인구단이 패배하더라도 그들 가슴 속에 묻은 억압된 욕망과 현실에 대한 분노는 닫혀진 것이 아니라 세상에 향해 분출되고 있었다. 너무 뜨겁고 열정적이기 때문에 최후의 패배는 우리에게 아주 비극적으로 다가올 수밖에 없던 것이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0)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왕립우주군 : 오네아미스의 날개 - 할인행사
야마가 히로유키 감독 / 아인스엠앤엠(구 태원) / 2008년 3월
평점 :
품절




드디어 보았습니다. 전설의 그 애니메이션 왕립우주군 오네아미스의 날개를 말이죠. 왕립우주군 오네아미스의 날개는 오타쿠 전문집단인 가이낙스의 최초작품입니다. 1987년 야마가 히로유키가 각본과 감독을 맡아 안노 히데아키, 오카다 토시오, 사다모토 요시유키, 오구라 마사히로 등 현재 일본 애니메이션 계에서 많은 영향을 끼친 분들이 만든 작품으로 제가 보고 있는 2010년이니 지금으로부터 23년전에 만들었음에도 불구하고 배경이나 사물에 대한 그림체는 정말 완벽하다고 말할 수 있을 정도로 퀄리티가 높습니다. 그러나 대신 인물에 대해서는 그래 이쁘게 혹은 멋지게 나오지 않았습니다. 왕립우주군은 내용적인 작품성과 인간에 대한 철학적인 담론을 담고 있으므로, 캐릭터의 모난점은 그런 부분을 강조하겠지요. 이 작품에서 보이는 특성은 아마 저보다는 오랫동안 애니메이션이나 영화를 보고 있는 분들이 잘 아시고 더욱 잘 적어 주실것이라고 생각합니다. 게다가 이 작품은 최근까지도 영화평론가 사이에도 호평을 받고 있습니다. 전 명작구분에서 대중의 인기가 좌지우지하는 것을 반대하는 사람입니다. 유행이나 인기의 가치로 작품의 가치를 어떻게 매기는 지요?




제가 이게 명작이라고 할 수 있는 그것은 여기에 무엇이 담겨있고 무엇을 말하고 무엇을 생각하고 무엇을 전달하는가라는 겁니다. 화려한 영상이미지와 극적인 플롯전개와 몰입도로 작품을 판단짓는 것이 아니라 그것으로 통해 이 작품들이 무엇을 전달하는 겁니다. 아직 개념이 잘 안되서 이해반 불가반인 영상기호학이란 책을 보면서 애니메이션화면이 카메라시점과 똑같이 적용하는 점과 숏과 숏이나 시퀀스. 몽타쥬, 미쟝센 등 익숙하지 않은 단어와 그 단어가 지칭하는 의미도 이해가 어려워서 계속 고민합니다. 하지만 왜 이런게 중요한가는 이해갔습니다. 애니메이션 화면과 화면은 프레임과 프레임의 연결로 영상이미지에 사운드를 가미하여 우리에게 어느 주제를 전달하고자하는 한가지의 전달체계 즉 언어라는 겁니다.



주인공인 시구르츠 리닷트입니다. 그는 왕립우주군의 장교로 있지만, 사실 왕립우주군은 속된 말로 당나라군대라는 말을 들을 정도로 나라에서는 아주 무시당하고 무능력한 사람들이 모인 곳으로 봅니다. 사실 주인공의 얼굴을 보면 뭔가 영웅이라는 느낌보다는 그저 한심하고 나약한 한 청년으로 보입니다. 그런 그가 처음 작품 시작할 때 동기 한명이 우주로켓 발사시험에서 사망합니다. 그러나 그는 집에서 무력한 인간처럼 천정을 보면 생각합니다. 그리고 장례식장에서 그는 예식복장을 갖추지 않고 지각까지 했으니 그의 한심하고 나약한 현실을 절실하게 보여줍니다. 그는 이 왕립우주군이 자신이 그나마 밥을 빌어먹을 수 있지만, 언제 여기가 해체될지도 모르고 자신은 어떻게 해야하나 고민합니다. 그리고 그런 현실을 타파하기 보다는 그런 현실에 안주하며 살아가고 있는 전형적인 현대사회의 젊은이이라고 볼 수 있는 겁니다. 우리도 현실에서 주어진 환경에서 그저 마음을 안주하지만 한편으로 언제나 불안해합니다. 목표없는 미래, 꿈, 희망 어째보면 리닷트의 모습은 우리의 일상처럼 그저 흘러가는 청춘을 담고 있습니다.  그런 무기력한 리닷트가 왕립우주군에서 실패한 인생을 넘어서는 모습에서 우리는 무엇을 생각하고 무엇을 해야할지 다시금 고민하게 하는 작품입니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0)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치심, 마음 다스리기 - 조선 선비들의 마음 경영법
문효.이소영 지음 / 왕의서재 / 2009년 9월
평점 :
절판


우리 선조들 중에서 위대한 학자와 사상가들은 마음을 스스로 다스기를 중시했다. 그 이유는 자신의 가치관이나 마음가짐을 확고히 다지기 위한 길이기도 하나 한편으로는 그 시대상에 놓여 있던 자신들의 입장에 많은 부담이나 모순을 느낀 것도 없지 않다.

특히 조선시대는 유교사상 성리학을 필두로 하여 모든 정치, 사회, 문화 등이 형성되어 왔다. 그리고 유교시대인 조선에서는 이른바 사대부라는 최고 계급이 통치하던 사회이므로 그 사대부라는 양반들은 위로는 임금에서 아래에 있는 농민들을 받치고 봉양해야만 했다.

그러나 모든 사회가 이런 마음가짐으로 통하는 세상이 아니다. 양반이라도 당파싸움에 쌓여 귀양을 가거나 벼슬을 잃은 경우도 있고, 높은 벼슬에 있더라도 막대한 업무에 항상 마음을 노심초사하였다. 게다가 조선후기로 넘어오면서 사회적 모순이 급격하게 심해지면서 지식이나 재주는 많으나 신분상 중인 내지 서열로 머물러 그 자신의 능력을 제대로 보여주지 못한채 생을 마감한 인물들도 많았다.

그런 점에서 조선사회는 지식인들에게 매우 심적인 고생을 안겨주고 그들에게 많은 현실모순을 통해 답답함을 안겨주었다. 그래서일까 그들에겐 의지할 수 있는 것은 자신의 심적인 안정을 찾을 수 있는 자신만의 공간이다.

물론 요새 사회에서는 신분제가 사농공상이 아닌 경제적인 부로서 조금 다르게 배치되었으나 적어도 정치적 사회적 참여면에서 조선시대보다 훨씬 자유로워졌다. 그렇게 자유로워도 여전히 사람들에겐 마음의 안식처가 필요하다.

그래서 마음 약한 존재는 자신의 안락함과 편안함을 찾기 위해 자기만들의 틀에 박혀 버리기도 한다. 최근 히키코모리(은둔형 폐인)이나 남의 이야기를 들어주지 않고 자신의 주장만 펼치는 이른바 중2병이란 속칭도 생겼다. 물론 이런 부정적인 요인은 사람들간의 소통과 대화를 끊게 하나 어떤 분야와 장르에 잘 접근하면 좀 더 새롭게 좀 더 발전적으로 변할 수 있다.

이런 점에서 지금보다 더욱 답답한 당시로는 선조들은 어째 마음을 다스렸는가? 그들은 자신의 울분을 삼키기 위해 우리보다 더욱더 깊은 여가활동을 즐겨왔다. 답답한 귀양생활과 정치생활을 피해 자연으로 간 윤선도, 어지러운 세상에서 차로 통해 마음을 푼 추사 김정희와 초의선사, 당파싸움으로 멸문지화하여 대학자로 거듭난 성호 이익, 어지러운 정치를 탕평책으로 이끌어 내던 개혁군주 정조의 담배 등등 말이다.

여기에 소개된 인물은 우리 나라 역사에서 매우 뛰어난 인물임에 동시에 매우 심각한 고뇌를 짊은 인물이다. 그런 사람들로 통해 새롭게 자신의 마음을 다스리는 방법 그리고 그것으로 통해 울분과 한을 삭히는 선조들의 지혜를 엿보는 것도 좋은 의미가 되지 않을까 싶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0)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노무현, 마지막 인터뷰 - 대한민국 제16대 대통령 노무현! <오마이뉴스> 오연호 대표기자와 나눈 3일간 심층 대화
오연호 지음 / 오마이뉴스 / 2009년 7월
평점 :
구판절판


 

솔직히 한국에서는 기나긴 왕족과 양반들이 권력을 갖고 통치하던 봉건주의 국가사회이었다. 그리고 그 조선이라는 마지막 봉건국가가 1905년 을사조약과 1910년 경술국치로 인해 그 역사는 머나먼 과거로 흘러가 버렸다.

 



그리고 억압된 일제강점기와 해방직후의 양쪽 이데올로기의 대립과 625전쟁, 그리고 수많은 독재와 봉기 등등 그러고 보면 대한민국 근현대사는 너무나도 빠르고 숨 쉴 사이 없이 지나가기 바쁜 고속철도와 같았다. 너무 빨리 지나가기만 하니 앞만 바라보고 뒤와 옆을 제대로 볼 수 없었다.

 



물론 그런 난항들은 근현대가 아니라 조선시대와 그 이전에도 있었다. 그 많고 많은 시련과 수난 속에서 조금 이런 생각을 해본다. 과연 누가 역대 정치지도자에서 가장 탁월했는가? 나는 우선적으로 추천하는 정치지도자는 학자임금인 정조이다. 조선시대 세종대왕이 훈민정음 창제나 여러 사업을 했지만, 결국 그것은 아버지 태종 이방원의 덕이었다.

 



순수하게 자신의 힘으로 어려운 정국은 헤쳐 가며 나라를 위해 붕당정치의 폐단과 관료들의 비리, 제도의 불안정 등을 척결하여 더욱 강한 나라로 만들려고 했다. 물론 1800년 정조가 승하하면서 탕평정책은 깨져 버리고 다음해인 1801년 신유사옥과 황사영백서로 인해 많은 실학자들이 유배와 처형은 당한다.

 



역사에서는 이런 말을 인정하지 않는다고 한다. “만약에 그렇게 되었더라면” 라고 말이다. 과거가 지나간 이상 되돌아 갈수도 만들어 놓을 수도 없다. 그저 흘러갈 뿐이다. 단지 과거를 이해함으로 현재를 알고 미래를 준비할 뿐이다. 지금 조선시대 봉건사회도 끝이 나고 냉전시대 산물인 625전쟁도 다 지나갔다. 세월은 그렇게 변화를 거치어 온 것이다.

 



그렇다면 이런 긴 여정을 마친 한국이 왕권국가에서 국민국가로 변화되면서 나보고 누가 가장 좋아하는 대통령이라고 물어본다면 나는 노무현이라고 말할 것이다. 물론 노무현 대통령이라 해서 모두 잘하고 탁월하다고 생각하지 않는다. 단지 역대 대통령들을 보면서 생각한 것이다. 참고로 나는 나이가 20살 이전에 정치에 전혀 관심 없었다.

 



고등학교 시절 학업열등생이 대학에 가기 위해 고등학교 말년 3학년은 그저 공부에 매진하였다. 그런 다음 수험에 대한 해방감을 맛보기 위해 예전부터 좋아한 락을 즐기기 위해 언더그라운드 세계에서 자유를 만끽했다. 기타 치는 형들에게 기타도 조금 배우고, 합주도 구경하고 공연도 가고 같이 술마시고 그저 그게 나는 좋았다.

그것이 나의 고등학교 이후 대학입학전의 생활이다. 내가 정치에 대해 눈을 뜬 건 대학교 1학년 시절이다. 우리학과는 환경공학이라 환경부에서 주관하는 전국 폐기물 통계조사에 참여할 때이다. 때는 1999년 겨울, 나는 지정된 구역에서 주택, 상가 등 다양한 거주 및 건물형태에 따라 폐기물 수집을 하고 있었다. 



마친 사무실 부분이 있길래 개인사업장에 들어가서 폐기물조사하는 것이 다소 부담스러워서 인근에 국회의원 사무실이 있었다. 사무실에 들어가서 환경부 통계조사한다고 말하는데, 순간 그 국회의원 밑의 보좌한다는 인간이 우리에게 이렇게 말했다. “야이 쌔끼들아! 여기가 어딘줄 들어와! 어서 안꺼져!”라는 심한 욕설과 비인간적인 행동이었다. 



이때 이후로 이 사무실의 주인과 그 주인이 몸담은 정당은 일체 뽑지 말아야 하겠다고 생각했다. 당시 어린시절이라 그렇게 흥분했지만, 지금 역시 생각해보면 열받는다. 국민이 낸 세금으로 활동하는 사람들이 시민이 찾아와 어려운 부탁도 아닌데 욕한다는 사실에 사실 충격을 받지 않을 수가 없었다. 



그 후에 부산에서 계속 지내면서 부산에 살면 부산권 정치인인 노무현 해양수산부 장관의 이름이 거론되었다. 당시 부산은 경상권이라 전라도지역과 지역감정이 매우 심했다는 점과 그런 상태에서 노무현 장관은 신기하게 보였다. 나 역시 부산에 살다보니 노무현이란 3자는 금방 알게 된다. 정치적 당색이라던가 신념이 아닌 어떤 인물인가에서 말이다. 



그런 애기를 들은 직후에 2002년 나에게 처음으로 대통령 선거할 수 있던 기회가 왔다. 그리고 노무현을 선택했다. 그리고 그는 당선되고 나는 2003년 군입대를 하게되었다. 나는 군복무를 공군으로 갔는데, 당시 배치부대가 김해공항으로 갔다. 2004년에 들어오고 2005년에 부서가 공사설계시공파트로 갔는데, 때마친 그 해는 APEC이 열렸다. 의전실 공사의 설계, 시공, 관리를 맡은 부서에서 기술행정을 맡았던 나로서 이 APEC은 사실 악몽이었다. 



맨날 잦은 공사내용 변경, 주요 지휘관, 정부기관, 심지어는 국무총리와 대통령까지 들어와서 이 현장을 보고 갔다. 시공부서에 있던 사람으로 VIP가 오는 것은 상당히 싫다. 아니 짜증난다. 공기는 다가오는데, 이 사람들로 인해 공사가 제대로 될 수 없다보니 잦은 야근과 주말잔업이 있었다. 남들은 군복무 하면 초소근무가 주된 추억이나 나는 사무실에서 야근과 잔업이 추억이다. 



솔직히 이때는 노무현 대통령이 미웠다. 개인적으로 말이다. 그런데 그것은 아니었다. 이라크 전쟁과 더불어 정부에서 파병안을 내고 어느 순간 파병안이 결정되자 그 여세는 내 주변에서 일어났다. 내가 속한 부대가 수송기가 있던 곳이라 많은 장병들이 머나먼 이라크로 가게 되었다. 거기에는 내 동기도 있었고, 같은 대대 사람들도 있었다.  



나에게 한없이 고맙고 친근하기도 한 사람이 한국을 떠나 몇 개월 동안 모래폭풍으로 이루어진 이라크로 간 것이다. 나중에 한국에 무사히 귀국하여 내가 전역 전에 서로 잘 지냈지만, 그들이 느낀 이라크 파병은 그렇게 재미난 이야기가 아니다. 비록 전투가 바로 일어나는 위험지대가 아니나 언제 전투가 날지 언제 폭격이 날지 언제 테러가 날지 모르는 비상시기이니 말이다. 



그런 곳을 내 옆에 있던 사람이 갔다. 그런데 놀라운 일이 있었다. 노무현 대통령이 이라크 파병부대에 가서 장병들과 만났다는 것이다. 누구는 인기몰이라거나 혹은 정치적인 수단이라 하지만, 나는 역으로 묻고 싶다. 당신은 당신의 이름을 올리기 위해 언제 죽을지 모르는 사지공간에 들어갈 자신이 있냐고 말이다. 



사실 이라크 지역에 이착륙하던 항공기는 대부분 보잉이나 에어버스에서 만든 제트엔진으로 된 항공기가 아니라 C-130H이라는 군작전수송기였다. 이 항공기 직접 타지는 않으나 같이 있던 사람들에게 들으면 안다. 대단히 시끄럽고 불편하다고, 그런데 그 수송기에 몇 시간을 앉아 사지로 갔다고 생각해보라. 



그래서 나는 노무현이 좋아한 것이다. 물론 공군이라는 이름아래 좋아하게 되었으나 차후 전역 전까지 지켜보면서 그가 한국군사력을 위해 열심히 노력한 것은 충분히 알 수 있었다. 그런다고 모두 이런 군인으로 지내면서 생각한 노무현이 나에게 전부는 아니다. 그가 100% 옳은 것은 아니나 그가 자신을 스스로 낮추는 것이 나는 좋았다. 



권력의 최고점에 있음에도 불구하고 국민에게 머리를 숙이는 모습에 솔직히 군인으로 있었던 당시 나로서는 놀라움이었다. 그런 사람인듯 노무현 대통령은 여러 가지로 참 말이 많고 많았다. 마지막 인터뷰에서 보고 아이러니한 내용은 진보세력에서는 보수적이라고 비난받고, 보수세력에서는 너무 진보적이라고 비난받은 것이다. 우리나라가 진보와 보수가 양극화되어 으르렁되는데, 그는 진보도 보수도 아닌 곳에서 비난당하고 있었다. 



그런 이것이 무엇인가? 한국 진보세력의 가장 문제점은 이책에서 보여준 “쉬운데로 안주거리처럼”이란 것이다. 반대에 대한 반대로 하는 점이다. 노무현 대통령이 진보주의자에게 하고 싶은 이야기는 “우선 한국의 진보주의자들에게 역사의 사실을 존중하라는 말을 전하고 싶습니다. 역사라는 것은 과거로부터 법칙을 배우고 그 법칙으로 현재를 이해하고 미래를 예측하는 것 아닙니까. 진보주의자들이 주로 개방 문제와 관련해서 그동안 주장했던 것이 그 이후에 사실로 증명된 것은 하나도 없습니다. 전부 다 사실이 아닌 것으로 증명 되었습니다.” 



사실 한국에 진보든 보수든 어느 것이든 버릴 수만은 없다. 그런데 노무현 대통령이 제기한 진보에서는 현실을 보고 국제사회를 보자는 것이었다. 진보가 우리는 이 세계에 대해 불만으로 반대만 한다고 하여 그것이 우리로 끝나면 모르나 한국은 한국이기 때문에 존재하는 것이 아니라 한국 아닌 다른 나라가 있기에 존재한다. 한국이 국제정세에 흐름을 따라가지 않으면 자재수입과 제품수출 무역으로 생존하는 국가로서 치명적인 게 분명하기 때문이다. 



그리고 이 말이 인상 깊었다. “그래서 이런 현실, 역사적 사실을 제대로 돌아보지 않는 자세는 공부하는 사람들의 자세도 아니고, 정치하는 사람들의 자세도 아닙니다. 정치하는 사람들이야말로 정말 과학적인 자세를 가져야 하는 것이지요. 객관적 사실을 사실로 인정할 줄 알고, 그래야 오늘을 바로 해석할 수 있고 내일을 예측할 수 있는 것입니다.” 그는 현실을 제대로 꿰뚫어보는 과학적 논리를 지니고 정치를 해야 한다고 했다. 



오히려 “그러니까 공허하고 교조적인 이론에 매몰되어서 흘러간 노래만 계속 부르지 마라. 이겁니다. 일부 고달프고 불평스러운 사람들을 선동해서 끌고 갈 수 있을지도 모르고, 일부 이른바 강단사회주의라고 이야기하는 급진지식인들은 뭉쳐갈 수 있을지 모르지만...”에서 현실에 대한 이해도를 높여야 한다고 했다. 그가 주장하는 것은 한쪽으로 치우쳐서 뭐든지 극단적 행위보단 과학적인 사고로 판단하라고 했다.

그렇기에 국민들이 이런 지나친 이데올로기에 빠지지 않으려면 국민 스스로 정치에 참여하고 생각해야 한다고 했다. 그리고 “권력은 위임하되 지배를 거부하라” 모든 국가조직은 국민을 위해 존재하는 것이다. 그리고 국민을 위해 공적인 업무에서 공권력이 필요한 것은 사실이나 그 공권력이 국민이 위임한 사람들의 사욕에 이용되는 것을 국민 스스로 막아야 한다고 했다.



과연 내가 아는 노무현, 당신이 아는 노무현, 아니면 내가 모른 사람들의 노무현, 그것은 각각마다 다르다. 사람들이 살아온 환경과 조건, 그리고 가치관은 뭐든지 다르게 보일 뿐이다. 단지 타인에 의한 노무현이 아니라 노무현에 의한 노무현은 무엇인가에서 그는 기존에 내가 생각하던 것이랑 다른 것은 분명한 사실이었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1)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