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 - 하 열린책들 세계문학 5
제임스 미치너 지음, 윤희기 옮김 / 열린책들 / 2009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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드디어 제임스 미치너 선생이 만든 소설인 "소설" 마지막편인 독자 제인 갈라드까지 읽었다. 아마 이 작품의 최종적인 결론부분이 나오면서 이 작품의 제시하는 부분이 여기서 드러내는 것이 아닐까 싶다. 이 소설의 마지막인 제인 갈라드 편에서는 마지막 부분이지만 신기한 부분이 있었다. 그것은 마치 한편의 일기를 적어놓은 듯한 글이란 점이다.

 
처음부터 시작한 1991년 10월 6일이라는 가을부터 시작하여 1992년 1월 15일까지 일어난 일들을 적어 내려갔다. 다른 사람들은 몰라도 이 제인 갈라드 여사에 대한 이야기는 다른 파트에 나온 인물에 비해 상당히 객관적으로 다루어졌다. 루카스 요더, 미즈 이본 마멜, 칼 스트라이버트 교수는 자신의 과거시절과 현재 상황에 이야기하는 것에 출실한 반면 독자인 제인 갈라드는 자신의 과거보단 위 3명을 응시한다는 느낌으로 적어 내려갔기 때문이다.
 
우선 제인 갈라드 여사는 펜실베이나 독일인 마을에서 오랫동안 살아온 마을유지라는 점이 중요한 사항이고, 그 여사의 남편인 돌아가신 래리모어 사장은 상당한 부자이면서도 매우 넓은 마음과 깊은 생각을 지닌 소유자란 점이다. 래리모어와 갈라드 여사는 자신이 살고 있는 마을을 위해 헌금도 하고 학교를 위해 기부도 한다. 그리고 마을 사람들이 서로 잘 어울릴 수 있도록 화합을 도모한다.
 
내 개인적인 생각으로 진정한 여성 지식인으로 갖추어야할 지식, 덕목, 교양을 고루게 가진 한명의 사람이었다. 그런 갈라드 여사이던 만큼 그녀는 교양인으로서 갖출 덕목과 교양에다가 독서도 좋아했다, 그년느 책을 엄청 빨리 읽었고, 명석한 지식을 소유한 만큼 잘 이해했다. 그런 그녀의 재능덕분인 갈라드 여사의 손자인 티모시도 역시 명석하고 지성이 넘치는 청년이었다.
 
그래서 이 마지막 이야기는 갈라드 여사가 일기에 적힌 순서대로 주변 사람들과 만나서 일어나는 일들과 갈라드 여사의 최고비극인 그녀의 손자인 티모시의 살해로써 이야기가 진행된다. 이야기가 진행되면서 기본적으로 갈라드 여사는 같은 마을에 사는 메노파 사람이던 루카스 요더씨를 매우 좋아한다. 시골노인만큼 고집이 세나 자신이 노력하고 언제나 성실한 모습을 사랑한다는 점이다. 게다가 루카스 요더의 작품은 인간의 사소한 감수성까지 담아내는 글이라 갈라드 여사 역시 그런 감성이 담긴 서적을 좋아한다.
 
그러나 루카스 요더를 탐탁하게 생각하지 않은 칼 교수의 태도와 손자 티모시의 의견은 루카스 요더의 팬인 갈라드 여사에게 좋지 못한 인상을 준다. 그러면서 갈라드 여사는 칼 교수와 티모시에게 갈등을 느끼며, 한편으로 루카스 요더를 돌에 묻힌 보석처럼 찾아낸 미즈 이본 마멜에 대해 깊이 신용한다. 게다가 갈라드 여사는 자신의 하나뿐인 혈육인 티모시의 연인인 소어킨 양도 마음에 들어한다.
 
루카스 요더는 개방적이고 전위적인 소어킨에 대해 반발감을 느끼나 갈라드 여사는 오히려 포용해주는 사람이었다. 게다가 손자를 만나게 되어 고맙다고 할 정도이니 갈라드 여사의 의식구조는 구식세계관에 있는 사람이기도 하지만 한편으로 새로운 것을 받아들일 사람이기도 하였다. 그래서 갈라드 여사는 소어킨 양의 소설을 보면서 좋은 비평까지 아끼지 않은 인물이었다.
 
그녀는 글을 보는데 있어서 칼과 티모시처럼 깊은 비평지식이 없어도 글을 잘 보고 있었으며, 이본 마멜처럼 편집자가 아니나 편집부분에 대해 이야기할 수 있었다. 단지 그녀는 감성이 넘치는 것을 좋아했을 뿐이다. 하지만 루카스 요더는 조금 이야기가 달랐으며 한편으로 새로운 면을 볼 수 있었다.
 
내가 갈라드 여사편을 읽으면서 가장 큰 사건이 3가지가 있는데, 하나는 파운드에 대한 영화, 하나는 손자 티모시의 죽음, 하나는 루카스 요더의 새로운 소설이다. 갈라드 여사의 손자인 티모시가 칼 교수에게 교육을 받으며, 파운드에 대한 내용에서 티모시는 파운드에 대해 좋은 평을 주나 루카스 요더에 대해 좋지 않은 인상을 준 점이다. 그런데 루카스 요더는 그 자리에서 글을 쓰고 보고 하는 사람이 글에 대해 진지하게 비판하는 것은 좋으나 유대인 학살을 주장하는 사람에 대해서는 동조할 수 없다는 말에서 내 가슴에 큰 파문을 던졌다. 그저 시골노인처럼 보이던 루카스가 그것도 소통하지 않고 피하는 것처럼 보이는 루카스가 가장 열린 생각과 깊은 마음을 가진 것이 아닐까?
 
아무리 지식인이라도 그것이 우수해도 인간의 존엄성 밟힌다면 그것은 진정한 문학적 가치가 있을까라는 평소 내 생각처럼 루카스 요더의 발언은 의외였다. 갈라드 여사편에서 읽어본 루카스는 매우 인간적인 인물이었다. 티모시가 살해당할 때 그는 매우 진지하게 티모시의 살인범을 추적하려고 했다. 결국 그레쥴러라는 사람과 노력해서 독일인 마을의 애플파이군을 잡아내었으나 루카스 요더의 냉철한 사고와 추리력은 상당히 놀랬다.
 
물론 티모시의 살해됨에 따라 그런 걱정은 루카스 요더 뿐만 아니라 칼 교수와 이본 마멜도 매우 진지하게 받아들였다. 하지만 티모시의 살해로 인해 이렇게 루카스 요더라는 사람에게 큰 영향을 줄 지는 몰랐다. 칼 교수는 항상 루카스의 책에는 자신이 생각하던 새로움과 이상적인 가치관이 없다고 생각하면서 루카스를 공격했다. 그런데도 루카스는 그런 의견이나 그런 의견이 실린 신문기사조차도 외면해 버린다. 루카스 옆에 있던 그의 부인 엠마는 그런 내용을 접할 때마다 분노하나 루카스는 눈썹 하나 움직이지 않는다.
 
그런데 알고 보니 루카스는 하루에 몇 십통의 독자편지가 온다는 것이다. 그것도 미국만이 아닌 전 세계적으로 말이다. 루카스는 그 편지를 읽은 후에 하나하나 답장을 해준다. 소설 상권의 루카스 요더가 갑자기 되버린 싸인회에서 그렇게 일일이 악수하고 애기하고 싸인해주던 모습이 왜 그런지 알 수 있게 해준 대목이었다. 루카스라는 사람은 독자의 입장에서 글을 적으려던 사람이고, 칼이라는 사람은 독자가 자신을 따라와주길 바란 사람이었다.
 
그래서 루카스는 누가 뭐라고 하든 자신의 길을 묵묵히 걸어가던 것이다. 그렇지만 한편으로 본다면 너무 시대적인 정신에서 멀어진 것은 분명하다. 그런 루카스의 정체된 인생에 하나의 파문이 된 것은 칼 교수와 티모시일 것이다. 그런 상황을 보고 말해주는 것은 갈라드 여사일 것이다.
 
이상하게도 소설 마지막편은 갈라드 여사로서 끝맺음을 하는 게 루카스 요더와 엠마로서 맺는다. 루카스는 티모시의 살인과 더불어 거기에 대한 새로운 소설구상을 담아 기존에 자신이 담은 글과 새로운 양상을 보인다. 칼이라는 사람이 루카스라는 인물에 대해 좋은 평을 주지 못했으나, 그런 평들을 루카스에게 아무것도 전달해주지 않았을 것이라 생각했다. 그런데 루카스는 마지막에 그런 칼과 티모시의 생각을 받아들여 자신을 새롭게 변하려고 했다.
 
이 소설이란 작품을 보면 초반에 루카스 요더라는 사람은 장인정신을 가진 작가로 내비추었으나, 이본 마멜로 통해 고집불통이나 자신에게 힘이 되는 시골영감으로 칼 스트라이버트에서는 시대에 동떨어져 감수성에 빠져사는 어리석은 노인으로 비추어졌다. 그러나 이제 여기서 루카스 요더는 하나의 진실한 작가로서 다시 태어난다. 물론 진실한 작가로 되어 빛을 본 것은 루카스만이 아니다.
 
냉철하고 엘리트주의적인 칼 교수도 자신이 비평가이었으나 비평가로서 너무 거기에 매달린 것에 대해 조금은 개선되어 갔으며, 이본 마멜은 외롭고 삭막한 도시를 떠나 독일인 마을로 정착하여 거기서 자신의 새로운 인생을 지내려 한다. 갈라드 여사도 기존에 루카스 요더 작가 작품만 좋아하는 것으로 생각했으나 칼과 티모시가 주장하는 작품도 좋다고 생각한다.
 
단지 이렇게 되는 과정이 티모시라는 젊고 유능한 인재의 희생 아래 성립된 것에서는 아쉬운 점이나 글을 쓰고 읽고 생각하고 말하는 것은 어느 한쪽만이 아니라 동시에 대화하는 것과 같다. 글로 통해 세상을 보고 듣고 글로 통해 감동을 받는 것은 어느쪽이든 소중하다. 이런 부분을 강조하는 것이 소설 마지막편 독자 제인 갈라드 여사편이 아닐까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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