칼날 위의 역사 - 역사학자, 조선을 읽고 대한민국을 말하다
이덕일 지음 / 인문서원 / 2015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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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끔 오래된 동네 친구와 그냥 하랄 것 없이 집 근처를 돌아다니다가, 한 번씩 박물관에 가서 쉬는 경우가 있다. 박물관 입장이 무료에다가 집하고 가까우니 아무런 부담 없이 주말의 여유를 즐길 수 있는 것이다. 그런데 오늘 그곳을 방문하면서 나는 조금 놀라게 되었다. 그곳의 상시 전시장으로 해양박물역사관이 있고, 한국의 해양인물, 해군의 영원히 군신, 조선의 성웅인 충무공 이순신 기록문헌이 있다. 내가 읽은 책이 이덕일의 <칼날 위의 역사>이다. 그런데 전시관에 가보니 이순신이 자신의 방에 항상 장식해둔 장검이 전시관에 배치되어 있던 것이다.

 

물론 원본은 다른 곳에 있지만, 복제한 전시품이라 해도 충무공의 정신을 알 수 있었다. 3, 대략 길이가 보통 남성의 키와 유사한 도()를 보는데, 죽고자 하면 살 것이오, 살자고 하면 죽을 것이란 글귀가 적힌 한자가 눈에 들어왔다. <칼날 위의 역사>에서 나온 이순신 장군의 칼과, 전시관에서 본 칼을 보면서 이런 상황이 어떻게 나올 수 있을까 하는 생각에 놀라지 않을 수가 없었다. 지난번에 <송시열과 그들의 나라>라는 책을 보고 서평을 적었는데, 이번에도 그 서평과 연결되지 않을 수 없는 서평이 되었다.

 

이순신 하면 성웅이기도 하나, 한국 전사인 조선왕조실록에서 전쟁사만이 아니라 정치와 외교까지 영역을 넓힐 수밖에 없다. 조선의 초기 태조 이성계가 조선을 건국할 때 그가 왕권을 유지하려한 이유는 고려시대 백성들의 생활이 너무 어려웠기 때문이다. 고관대작부터 시작하여 하급관리까지 백성을 수탈하는데, 그 근본이 권력의 유착성과 재산의 분배였다. 한 권력자에게 재물이 모이면, 누군가 그 재물을 위한 희생자가 되어야 했다. 조선시대까지 1차 산업시대, 즉 농업을 중심으로 산업구조가 정리된 사회이다.

 

조선이 멸망하여 일제로 들어가면서 2차 산업이 도입되고, 한국정부 수립 후 근대화 이름으로 사회가 급속으로 변화해도, 근본은 농촌사회라는 점이다. 아직까지 시골 농촌이 도시와 비교하여 전통문화가 잘 유지되는 이유는 농업이 기반 되었기 때문이다. 농업의 기반은 농민이 주도로 생업에 종사되어야 하는 게 정론이다. 농민 그리고 평민 내지 양인이 많아야 재정도 탄실하고, 부국강병이 된다. 하지만 농민이 가진 땅이 적어지고, 그들의 생계가 어려워지면 국가재정이 파탄하고, 전쟁의 위기에서 패망의 길로 접어든다.

 

프랑스 대혁명의 아버지면서 세계 민주주의사상을 만들어준 장 자크 루소의 <사회계약론>에서 인민이 저절로 늘어나는 국가는 발전하나, 인민이 저절로 줄어드는 국가는 망한다고 했다. 사회계약론이 정치철학적 도서이기도 하나, 루소의 사상은 정치학을 떠나 경제학, 즉 정치경제학적 영역에서도 중요하다. 인구의 배분, 국민의 생계현황은 국가의 위기에서 어떤 상황으로 이끌어주는지 잘 알려준다. 조선은 바로 이런 문제로 시작된 국가이나, 이런 문제로 망한 국가이다.

 

태종 이방원은 외척과 고관대신의 비리와 부정을 용서하지 않았다. 심지어 자신의 형제, 아들, 조카까지 두 말할 필요가 없다. 만일 그들의 비리와 부정을 눈을 감아주면 그것에 의해 백성이 피해보고, 그들이 피해보면 국가를 신뢰하지 않게 된다. 또한 약자들은 강자의 부당한 권력에 저항할 수 있는 수단이 없다. 계속 피해를 본다면 국가 존위에 막중한 위기를 주는 점이다. 태종의 사상은 세종대왕의 정치적 기반을 만들어주는 계기지만, 세종이 다시 정승제의 도입은 세조의 쿠데타로 이어지는 계기가 된다.

 

단지 세종은 황희 정승이 있었기에 가능했다. 영의정이 중심으로 6조를 관리하든지 혹은 왕이 직접 6조를 대면하든 문제는 사람이었다. 인물을 보고 잘 판단하는 것은 중요한 점은 역사로 통해 알 수 있다. <칼날 위의 역사>2016년에 나온 도서이고, 그 책에서 나온 일들은 700년 전부터 대한민국 임시정부까지 이어진다. 과거의 일이 과거만이 아니라 현대에도 계속 비슷한 일이 다시 돌아오는 점이다. 조선시대 권력층과 지식인은 사대부이나, 한편으로 양반 사대부들은 칼날에서 언제나 목을 갖다 바쳐야 했다.

 

그들의 죽음은 권력에 저항했기에 권력을 승복했기에 권력에 의존했기에 권력을 이용했기에 그렇다. 애초부터 태종의 조치나, 연산군의 사화나, 기묘사화, 윤휴의 죽음, 이순신 죽음, 류성룡의 기각, 정조의 의문스러운 붕어조차 그렇다. 대한민국에 비명으로 죽은 어느 한 대통령은 대한민국 역사 아니라 조선 역사에서 바른 말하던 사람들은 모조리 죽고, 피지배자 계급인 약자는 평생 억압을 받고 억울함을 호소하지 못한 채 서러운 인생을 살아야 했다고 말한다. 생각하면 정말 그런 것 같다.

 

아버지가 병으로 세상을 떠나면서 집에 있는 족보는 결국 나의 소유물이 되었다. 이전부터 아버지의 말을 들으면서, 혹은 아버지가 병으로 괴로워하면서도 족보를 틈틈이 보게 되었다. 증조할아버지가 돌아가실 적에 나의 친할아버지는 3권짜리 족보를 유산으로 들고 갔다. 재물보단 족보를 선택하였다. 그 족보는 아버지로 넘어가 이제 나에게 돌아왔다. 과거의 이야기에 매달리는 것을 바보 같다고 보나, 그건 아니라 본다. 삼국시대부터 조선시대까지 소재로 한 영화와 드라마를 열광적으로 시청하면서 집안의 족보는 우습게 보는 사람이야말로 한심한 것이다.

 

족보에서 어떤 할아버지가 사간원 사간(司諫院 司諫)을 했는데, 그 시기가 중종이었다. 이분이 중종 이전 연산군 시절에 진위장군(振威將軍)에서 사간원 정언(正言) 자리를 맡았는데, 연산군 10년차에 만화석(滿花席) 문제로 장 70대를 맞았다는 기록이 나온다. 물론 장을 맞기 전에 연산군 시절 내내 비리나 부정, 혹은 잘못된 것에 대해 계속 상소나 진언을 올렸다. 결국 바른 말을 하다가 화를 당한 것이다. 그래서 병조참의공비문을 보면, 이분의 업적이 나오는데, 최고의 업적은 자식을 많이 두어 집안을 번창하게 해준 공이다. 지금의 내가 있는 것도 이분의 덕분이지만, 이분의 비문을 보면 그렇게 즐겁지는 않다.

 

임진왜란 당시 많은 사람들이 나라를 구하기 위해 순국했는데, 비문을 보면 임진왜란과 정유재란에서 순국한 이름이 너무 많이 나왔기 때문이다. 그 할아버지의 종형제 후손은 충무공 진영을 도와주기 위해 진군 중 적군과 만나 순국하고, 그 소식을 충무공 이순신 이억기 수사가 듣자 분통을 참지 못했다는 기록이 남아있다. 이억기는 전투 중에 죽고, 이순신은 친우 류성룡이 실각되자 희망을 잃는다. 아무 생각이 없던 과거에는 그저 드라마(<불멸의 이순신>)에서 드라마틱한 상황으로 보겠지만, 가문의 사연에서는 한탄스러운 이야기이다.

 

<칼날 위의 역사>를 보면 과거에 일어난 일들이 현실과 동떨어진 게 아니라 되풀이 된다는 식으로 정리된다. 과거 조상들에게 닥친 일들이 지난 일이 아니라 나에게도 비슷한 일들이 닥칠 수 있음을 알려주는 것이다. 권력에 의한 무고한 신하를 죽이고, 권력을 위해 임금을 속이는 행위에서 그 모든 피해는 백성에게 부가된다. 사간원 청빈한 자리이고, 모든 백성의 눈총을 받는 자리이다. 그런 만큼 위험한 자리이면서 권력의 중심이 되기도 한다. 청백한 관료들은 권력자들에게 박해받고, 권력을 오로지 권력을 위해 존재하는 지난 역사를 보면서 지금의 현실은 어떠한가?

 

이순신을 몰아낸 서인들은 노론으로 이어지고, 노론은 을사오적의 뿌리이다. 노론의 역사는 400년이나, 우리 사회에서 그들이 만들어낸 사회적 통념은 아직도 은근히 남아있다. 과거에 집착해서는 아니 되고, 과거의 폐단을 고쳐가는 게 정당하나, 그런다고 과거를 버리는 것은 우리의 지금을 완전 부정하는 것만이 아니라, 현실의 문제점조차 갈피를 잡을 수가 없다. 솔직히 조선이 과거의 유물이라 해도 조선의 관직을 보면서 놀라지 않을 수 없었다. 권력의 독점을 방지하기 위해 각각 인사권과 수사권을 분산하고, 서로 간의 부정부패를 견제하기 위해 만든 관료제를 보면서 아무리 조선이 낡은 것이라 해도 현재 관료조직보다 훌륭한 것을 부정할 수 없었다. 단지 일당으로 채워진 관료는 심각한 폐단이 되었을 뿐이다.

 

지금은 당론정치가 국회와 정부 수장에게 주어지지, 하부 관료들에겐 당론이 아니라 시스템으로 운영되고 있다. 그러나 당론의 주장이 하부관료들에게 운영지침이 되는 것도 현실이다. 조직만큼이나 중요한 인물, 인물을 찾아내거나 혹은 검증하기 위한 제도, 비선제도를 엄연히 통제하기 위한 시스템 구축이 중요한 이유는 바로 그 모든 오류와 왜곡은 백성들에게 피해로 이어지고, 백성이 가난하면 나라는 망한다. 대한민국은 왕조국가에서 민주국가로 되나, 민주정이나 군주정이나 근본은 같다.

 

백성, 국민들을 위한 정치를 펼치기 위해서이다. 국민이 아닌 권력자를 위한 정치란 곧 망국의 시작이다. 국가의 주인이 바뀌어도, 국가의 존립자체에서 그 근본 토대는 변화하지 않았다. 그러나 이것을 망각하고 날뛰는 세력은 여전하다. 하지만 더 중요한 문제는 과거에는 그것을 바꿀 힘을 국민에게 주지 않았으나, 이제는 국민만이 바꿀 힘을 가지고 있다. 대신 국민 스스로가 현명한 판단을 내리지 않으면 그 고통의 나날은 변하지 않고 지속될 뿐이다. <칼날 위의 역사>에서 조선은 칼로서 목을 베나, 현대는 칼보다 더 무서운 무기들이 나온다. 인터넷의 정보와 첨단무기 등등, 어찌 보면 오늘 우리는 칼날 위가 아니라 미사일 위에서 역사를 만들어가고 있는지 모르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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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7-04-23 19:04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17-04-23 20:29   URL
비밀 댓글입니다.
 
송시열과 그들의 나라 - 한 인간을 둘러싼 300년 신화의 가면 벗기기, 전면 개정판
이덕일 지음 / 김영사 / 2016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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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주 예전의 일이다. 아버지가 제법 건강한 상태에서 배를 타고 때이다. 아버지와 나는 당시 TV를 보면서 역사관련 영상물을 보고 있었다. 이때 등장한 인물이 송강 정철이었다. 송강 정철이라면 선조 시대 아주 유명한 정치가이고, 명문가이며, 국어교과서에 가사문학의 대가로 나온다. 그런 정철을 보는 아버지의 시선은 조금 의아했다. 송강 정철은 유배가면서 사미인곡을 저술했는데, 임금에 대한 그리움과 나라를 걱정하는 충신의 모습을 보여주려 했다. 하지만 아버지가 말한 것은 송강 정철은 아주 아부를 잘 하며, 그래 훌륭한 사람이 아닌 것처럼 이야기했다.

 

당시 나로서는 알 수는 없었지만, 어느 날 그것이 왜 그렇게 말했는지 알게 되었다. 500년 전에 살았던 사람이라도 과거의 인간으로 끝날 수가 없었던 것이다. 정철이 기축옥사가 일어났을 때 많은 문무백관과 선비를 죽게 만들었다. 당시 기축옥사 발화점이 서인이던 정여립이 남인과 어울리면서 이것에 대한 불만이 이상하게 터진 것이다. 물론 동인(남인과 북인의 이전 통합세력)이 서인의 반대세력은 맞으나, 권력관계에서 이상하게 되어버린 것이다. 이때 동인의, 영수 이발이 기축옥사로 죽게 되는데, 이발이 죽게 되면서 그의 노모와 아들까지 옥사로 죽고 만다.

 

이발의 노모 연세는 팔순을 지났고, 어린 아들은 아직 10살 밖에 되지 않았다. 아들과 아버지가 역모와 아무 관계도 없는데도, 국문에 불러와 고문을 받은 할머니와 손자는 그대로 차가운 시신이 되었다. 이발의 노모에게 남동생이 있었다. 그 남동생도 기축옥사와 연루되어 귀양 가는 길에서 객사하고 만다. 기축옥사는 430년 전의 일이다. 생각한다면 아득한 과거이나, 문제는 그 이발의 어머니는 안타깝게도 내 직계할아버지와 6촌 관계였다. 정여립의 주요 활동처가 전남이었는데, 강진과 해남 일대에 이발의 외가 친척들이 포진한 곳이다.

 

지금이야 촌수 6촌도 잘 모르는 시대지만, 당시는 형제와 부모 그리고 일가들이 같은 마을에 무리지어 살거나 설사 같이 있지 않더라도 다소 가까운 자리에 머물며 왕래가 잦았다. 정철의 서인과 남인의 관계는 1589년 기축옥사를 시작하여 학봉 김성일이 왜국의 시찰가던 일까지 파장을 일으킨다. 학봉 김성일은 남인계통 문관이며, 임진왜란 당시 의병장으로 활약하다 순국한 사람이다. 같이 일본에 간 사람이 서인이었고, 남인과 서인의 관계가 틀어질 때, 서로 의견이 일치하지 않았던 것이다. 임진왜란에서 그런 관계성은 잘 보여준다.

 

흔히 임진왜란에 활약한 인물하면 바로 이순신, 이억기, 곽재우 등을 떠오른다. 문제는 이순신과 그 친구 서애 류성룡은 남인 계열이고, 곽재우와 정인홍은 북인 계열이다. 남인 영수 류성룡이 왜국과 임진왜란을 종결한 이유로 탄핵받아 평생 안동에 머물다 울화병으로 인해 생을 마감한다. <송시열과 그들의 나라>에서 송시열이 나오기 전에 이미 정철과 류성룡이 나오지 않을 수가 없는 이유는 바로 이런 오래된 원한과 권력투쟁에서 시작된 비극이란 점이다. 광해군 시기는 북인이 대세였고, 그 밖의 서인과 남인이 연합한다고 해도, 남인의 대우는 다시 집안의 가계를 생각하면 틀이 맞는다.

 

내 직계 할아버지 1분은 무반으로 입관하여 함경도 북청군에서 숨을 거두었다. 나이가 70세가 넘어 그런 추운 오지에 보내는 것은 솔직히 죽어라고 하는 것과 같았다. 훈련원정(訓鍊院正)을 역임했는데, 임진왜란 당시 류성룡은 타개책으로 양반이 아닌 천민이 왜군 하나를 죽이면, 면천을, 2면은 호위무사, 어느 이상이 되면 충분한 직급을 주어 출세하게 해준다는 정책이었다. 훈련도감을 설치하여 여기에 군사를 양성한다면 충분히 병력을 모을 수 있다. 그러나 그렇게 하면 기존 사대부계층의 특권에 큰 반류가 형성되므로, 기득권을 잡은 양반들에게 반발을 당했다. 군역과 세금문제에 류성룡은 실각하게 되고, 조광조 역시 기묘사화로 당하고, 백호 윤휴도 죽임을 당한다.

 

문제는 류성룡과 윤휴의 실각에서 반대세력이 깊숙하게 개입하고, 윤휴에 이르면 노론과 노론 영수 송시열의 권력에 의해 이루어진 점이다. <송시열과 그들의 나라>를 이해라면 여러 가지 정황을 이해하는 것이고, 나는 거기에 집안의 내력에 대입한 셈이다. 한국의 조선역사에서 가장 위대한 사상가로 다산 정약용 선생이 있다. 그분이 서가한지 100년 정도 지나 일제 치하에서도 그분의 책이 제대로 융통되지 못했다. 그만큼 역사에서 보인 권력의 욕망은 세대를 지나 영원불구로 가려는 것 같다.

 

물론 송시열은 유학자로 실력이 뛰어나고, 우암연구소가 생길 정도로 현대 한국에서 큰 인정을 받는 선비이나, 그의 신화는 그의 진정한 모습보단 후대에 의해 만들어진 하나의 이야기가 많다는 게 이책의 요점이다. 율곡 이이는 서인의 학문적 스승이다. 이에 반대되는 사람은 퇴계 이황이다. 남인과 서인은 초반에 같은 사림의 동료지만, 어느덧 죽고 죽이는 사이가 되었다. 이이의 연구자료를 보면 그는 임진왜란 전 10만 대군 양병성을 주장하지 않았으나, 후대에 의해 만들어진 것이고, 송시열의 북벌론은 그가 주장한 게 아니라 윤휴의 주장이었다.

 

윤휴는 효종과 현종 시대 계속 북벌론을 주장하고, 이에 대한 대책은 양인의 양성, 군병의 보강이다. 양인의 보강은 노비를 줄여 농사짓는 평민을 늘려 재정자원을 확보하고, 양민에게 입관할 기회를 주어 병력보강을 하자는 것이다. 임진왜란 당시 류성룡이 만든 기획안은 이미 폐기되었고, 거기에 동참한 무관과 평민, 노비 모두 귀양가거나 죽임을 당했다. 숭명반청을 외친 사대부사회라고 실제는 그렇지 않고, 단지 자신들의 이익에 몰두한 셈이다. 이데올로기에 대한 지나친 강요와 집착은 그 이데올로기가 만들어진 사상적 기반을 철학적 사유와 윤리적 판단이 아니라 하나의 통치방법론으로 만들어버린다.

 

주자가 만든 성리학은 결국 공자맹자가 만든 유학을 변용할 뿐이다. 공자는 선비를 두고 백성들이 평안히 자신들의 삶을 영위할 수 있도록 해주는 사람이라 말한다. 말 그대로 생업에 종사하더라도, 여러 가지 행정이나 학문적 도움이 필요하면 여기에 선비의 실력을 보여주는 것이 올바른 것이라 했다. 하지만 양반들은 권력을 누리기 위해 기득권을 놓지 않았고, 세금과 병역폐단은 이미 뿌리깊이 못이 박혀버렸다. 우암 송시열과 그들의 세력에게 농민과 노비의 운명은 중요하지 않았다.

 

송시열은 자신의 이익에 치중하지 않았지만, 송시열을 따른 무리들은 송시열이란 인물로 통해 이익을 추구하려 했다. 현종 사후, 숙종이 등극할 때, 숙종은 매우 무서운 군주였다. 숙종은 장인과 외척세력을 이용하여 권력을 잡기 위해 공작정치를 했다. 송시열도 여기에 한몫했다는 점에서 그는 권력에 대한 집요한 집착이 있었다. 물론 반대세력 남인도 존재했다. 하지만 학문과 학문으로 통해보는 왕조시대에 송시열은 조선을 왕권이 아닌 신권이 중시되어야 주장했다.

 

왕권이 강화되면 사대부들이 누릴 이익과 기득권들이 사라지기 때문이다. 그는 그런 이익이 없을 것이라 생각하지 않겠지만, 그런 것보다 자신의 관점에서 정립되어야 주자학을 절대성의 불가침에 집착한 셈이다. 모든 것은 이미 정해지니 거기에 따른다면 어떤 문제에 봉착할 때 어떻게 대처해야 하는 것인가? 예송논쟁에서 임금이 장남이든 차남의 관계보단 왕이란 직분이 중요했지만, 오히려 사대부와 동일한 시점에서 파악하려 했다는 점이다. 왕과의 권력관계 주도성이 신하에게 가면서 임금이란 자신들의 이데올로기를 절대적으로 보장해주어야 할 보증인이 된 것이다.

 

만일 거기에 의문이나 반대론을 주장하면 가만히 두지 않았다. 많은 피를 뿌렸고, 영원히 희생당한 자들의 자손까지 피를 보게 만들었다. 송시열의 주적에서 백호 윤휴가 있지만, 또 하나는 고산 윤선도가 있다. 윤선도는 기축옥사 죽은 이발에게 외삼촌의 손자이다. 서인에게 대한 분노와 원망에서 가족을 잃은 윤선도의 입장에서 천하의 원수이고, 임금에 대한 충정에서 왕조국가 군주정을 위협하는 세력이다. 그러나 서인에 의한 인조반정은 이미 기울어진 축구장을 만들었고 그 안에서 조선왕조는 이어갔다.

 

18세기 조선의 르네상스인 정조시대 다산 정약용이 등장해도, 그의 어머니는 고산 윤선도의 직계 후손이었다. 정약용이 남긴 글에서 조선의 한 사람에게 매우 따르는 것에 대해 깊이 우려하는 내용이 나온다. 그 한 사람은 여기서의 송시열을 의미한다. 예송논쟁은 350년 전에 일어난 일이나, 지금도 문제가 되는 내용이고, 450년 전의 기축옥사의 억울함 역시 지금도 역사학자들에게 늘 새로운 숙제로 등장한다. 권력을 잡기 위한 사대주의적 태도는 늘 우리 한국사회에서 자주성을 놓치게 만드는 요인이다.

 

문제는 그런 흐름이 이미 450년 전후로 시작되었다는 점이다. 역사를 보면 지금을 알고, 지금을 알아 가면 미래에 우리가 어떤 길을 가야하는지 생각할 수 있다. <역사란 무엇인가>에서 E.H 카가 역사란 과거와 현재가 계속 이야기를 주고받는 대화라고 지칭한다. 지난 일이 뭐가 중요하냐는 말에 그 사람의 불과 1일 내지 1년 전에 일어난 불행한 일조차 하나의 역사이다. 단지 우리의 역사는 국가적 틀에서 보겠지만, 국가나 개인에게 일어난 시간적 흐름을 그대로 흘러 보낸다는 것은 정말 위험하지 않을 수 없다.

 

역사란 지금의 현실이 만들어진 것을 알게 해주는 스토리텔링이라 생각한다. 스토리텔링의 이야기구조에서 Narrative의 시작과 끝은 이미 정해진 것이다. 단지 그 과정에서 일어난 일로 통해 어떤 이데올로기가 함축되어진 것인지 알아가는 것이다. 이데올로기 관점은 화자 내지 화자를 형성하는 어떤 특정세력에 의해 의미로 만들어질 수 있다. 21세기 한국에서 향교에 가면 공자와 맹자, 그리고 조광조와 이황 같은 유학자들의 신위가 모셔져 있다. 그러나 이중에 송시열이란 이름도 당당히 들어가 있다.

 

노론 일당독재 시대를 수 백 년을 거친 조선에서 송시열의 존재란 당연히 신성시 되어야 할 존재일 것이다. 물론 그의 학문의 정신과 깊이는 엄청나지만, 그가 가지고 온 학문의 자율적인 관점, 그리고 상대방의 무관용은 조선의 정치사에 피바람을 불러일으킨 것은 분명하다. 서평을 적으면 생각하나, 많은 사람들은 과거의 인물을 주요인물만 생각해야 하나, 진정한 인물을 보는 것은 그 인물이 무엇을 하려 했고, 누구를 통해 무엇을 실천하고자 하는 것이다.

 

조선 사대부는 지식인이고 엘리트이다. 그들이 지식인이라면 민중, 즉 백성의 의향을 정치권과 학문으로 발전시키는 것이 정도의 학문이다. 그런 학문과 정치를 하지 않은 사대부는 그저 권력만 치중한 소인배 일뿐이다. 소인배는 대의라는 이름을 통해 자신의 입장을 내세우나, 대인은 대의라는 큰 의지를 내세우는 게 아니라 작은 것 하나부터 시작해야 하는 것이다. 주자가 만든 소학을 읽으면 작은 자신만이 아니라 자신이 마주해야 할 작은 대상도 포함되어야 한다. 임금을 구중궁궐에 앉아있지만, 도탄에 빠진 백성의 눈물은 볼 수도 들을 수도 없다. 백성들의 작은 눈물을 닦아주고 위로하는 게 정치의 기본도덕이나, 과연 거기에 충실하였다면 그는 분명 훌륭한 정치가이나, 그렇지 못하면 권력자들에게 훌륭한 상징에 불과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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겨울호랑이 2017-04-21 23:22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아버님 심정을 저도 이해 됩니다. 저도 광산 이씨집안이고, 할아버지 중 한 분이 말씀하신 이 발 자 할아버지셔서 공감이 가네요...지금도 집안에서는 정씨 집안과 혼인을 하지 않고 있습니다만, 저는 한 편으로는 정 철 개인의 문제만이 아니라 정치적 문제라는 생각이 더 많이 드네요...

만화애니비평 2017-04-22 08:10   좋아요 1 | URL
기축옥사와 임진왜란(정유재란) 당시 집안에 화를 너무 당한지라 참 끔직해보이더군요. 장형 참 무섭더군요. 장형 1대만 맞아도 고통이 이만전만 아닌데 수십대를 맞은 할머니와 어린아이에겐 무슨 죄가 있는지.
기록을 보니 당시 광산 이씨의 씨를 말리려 했다는 글에 깜짝 놀랐습니다.
광주(광산) 이씨 중 국상 동고 이준경이란 분이 운명하기 전 붕당의 폐단을
지적하는데, 그 폐단의 화염이 바로 정철이란 아이러니하군요

2017-04-22 07:28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17-04-22 08:04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17-04-22 08:47   URL
비밀 댓글입니다.
 
조선의 무인은 어떻게 싸웠을까? - 무지와 오해로 얼룩진 사극 속 전통 무예
최형국 지음 / 인물과사상사 / 2016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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절판


집안 문중에서 발간한 도서를 보면 반드시 등장하는 그림이 있다. 자신의 얼굴을 그린 자화상이 현재 국보 240호로 되어 있고, 그의 작품 중에 유명한 것으로 <유하백마도>가 있다. 백마를 그린 이 작품을 본다면 당시 한국의 말들, 즉 조선의 마필은 우리가 TV에서 보는 말하고 상당히 다르다. 우리가 보는 말은 다리가 매우 길고, 몸매가 매우 날씬하여 승마용으로 사용되는 말들이다. 그러나 조선의 말은 덩치가 크고, 다리가 그렇게 길지 않으나 다리 굵기가 매우 굵은 편이다. 제주도의 조랑말이나 혹은 조선의 여타 지역의 말은 보면 키가 그렇게 높지 않으나 덩치나 다리 굵기가 매우 튼튼해 보이는 점이 특징이다.

 

한국의 지리를 잘 생각해보자. 유럽의 지형은 일부지역은 제외하면 대부분 평야들판이다. 산이 많지 않고 오히려 큰 하천을 중심으로 문화가 형성되어 있다. 하상계수, 하천의 경사가 급한 한국의 지형에서 서양의 말들, 특히 경마공원에서 보이는 말들이 제대로 달릴 수가 없다. 현대사회로 넘어오면서 구릉지에 도로를 만들고, 산을 깎아내려 거대한 대규모 단지를 만든다. 그러나 조금이라도 개발이 덜 된 지역을 가보면 우리는 알 수 있다. 한국의 산세는 그렇게 평탄한 편이 아니란 점이다. 배산임수(背山臨水), 산을 뒤로 하고 강이 앞에 있는 지형은 전형적인 한국의 전통적인 삶의 형태이다.

 

산에서 나무도 하고, 열매를 채집하며, 사람이 죽으면 산에서 장례식절차를 밟는다. 강이 옆에 있으면 논에 물을 대고, 식수도 구한다. 산이 많은 지형에 경기용 승마들이 달리기가 쉬운 일이 아니다. 그런데 TV 사극이나 하다못해 역사를 소재로 만든 다큐멘터리에서도 서양식 마필과 안정까지 등장한다. 역사적 고증은 매우 중요하다. 역사학자들도 과연 얼마나 여기에 집중하고 하는지 모르나, 대부분 국민들이 접하는 역사는 중고교 과정의 국사 혹은 대학에서 배우는 교양 선택과목 수준이다.

 

그 외는 TV에서 보는 것인 역사이다. 주몽이 누구냐고 물으면 고구려의 창시자로 인식하기보단 오히려 탤런트 송일국 씨를 생각할 것이다. 태왕사신기에서 주인공은 광개토대왕을 소재로 한다면, 광개토대왕을 사람들은 떠오르기보단 배용준 씨를 더 먼저 생각 낼 것이다. 물론 배우의 인기에 따라 좌우되는 것은 분명한 것은 어쩔 수 없으나, 하다못해 역사적 고증절차는 신경 써야 하는 점은 분명하다. 우리나라는 안타깝게 일제 치하 시대와 한국전쟁으로 많은 문화유산을 소실했다.

 

조선시대나 그 이전에도 전쟁에 의해 문화재들이 모두 소실되는 경우가 많다. 아주 사소한 단서로 역사의 형태를 복원할 수밖에 없다. 그런 점에서 <조선의 무인은 어떻게 싸웠을까?>에서 작가는 이런 문제를 잘 지적했다. 그는 처음부터 E.H Carr<역사란 무엇인가> 한 대목을 제기한다. 역사라는 과거와 현재가 끊임없이 계속 대화하는 점이다. 과거의 역사는 과거에 있었던 하나의 사실보단 현재의 상황에 따라 새롭게 재구성되는 현재형이다.

 

객관적으로 생각해보면 우리는 조선의 병사들은 삼지창처럼 생기 당파를 들고 싸웠을 것이라 본다. 그러나 아무리 생각해봐도 당파는 베거나 찌르는 도구로 사용하기에 많은 문제가 있다. 당파는 창의 길이처럼 되어 있으나 창처럼 길게 찌르기에 부적합하고, 환도처럼 베는 것도 어렵다. 무기는 단순히 폼이 아니다. 자신의 생명이 거기에 모든 것이 달려있다. 그러나 드라마를 보면 조선의 병사들은 당파만 들고 있다. 오히려 일반적인 창이나 환도를 들고 있는 것이 적합한 게 아닐까 싶다.

 

대부분 병사들은 당파만 사용하는데, 당파 말고 다른 무기가 없는 것인가? 전쟁에서 무기의 백미는 20세기부터는 공중전, 16~19세기 전후로는 근대는 총과 대포, 그 이전에는 칼이다. 물론 근대전쟁에서 근접전에서 칼은 중요하다. 한국 군대를 입영하는 장병에게 총검술은 아직도 필수과목이다. 총에 검을 부착하여 적에게 직접적인 물리공격을 취하는 것은 공중에서 미사일을 날려도 유효하다. 다소 구시대적 발상이 아닐 수 없겠지만, 칼을 사용하는 것이 최고의 전략전술 뿐만 아니라 전투에서 매우 중요한 요인이다.

 

칼을 사용할 때 보병과 기병의 차이에서 기병은 보통 칼집을 한 손에 잡고, 말고삐를 잡고 이동한다. 다르게 생각하면 말의 고삐는 두 손을 잡는 편이 더 안전하고, 말을 훨씬 조정하기 쉽다. 이 책에서는 기병은 어리에 허리끈처럼 생긴 띠에 칼집을 연결시켜 칼을 언제 어디에서 꺼낼 수 있도록 고안했다. 허리춤에 칼을 차는 것은 일본 왜구군사들이 많이 쓰던 방법이다. 무기나 갑옷 체계도 일본, 중국하고 분별하지 않은 게 많았던 것이다.

 

이러다보니 시청자들에겐 보이는 조선시대 전쟁은 그렇게 만들어진 사극에 의해 아니면 그 영화로 만든 장면에 바로 넘어갈 수밖에 없다. 의복은 어느 정도 거의 일치하지만, 전투장면은 언제나 볼거리로 만들어진 셈이다. 전쟁에서 장수는 언제나 군주나 군주 바로 밑에 있는 고위신료들이 지휘하는 것은 옳다. 적어도 국가가 처음 생길 때는 군주가 장수로 등장하여 부하를 이끄나, 국가체계가 어느 정도 자리 잡히면 장수가 앞에 나가 싸우는 것은 말이 안 된다. 지휘관은 전장에서 부하를 이끌고 명령하는 존재지, 선발대 병사가 아니기 때문이다.

 

투구도 착용하지 않고, 맨 머리로 싸우는 형태, 칼을 한 번 베면 바로 죽는 장면은 잘 어울리지 않는다. 과거 전쟁에서 가장 많이 죽는 이유는 칼에 신체()가 절단되거나 과다한 출혈에 의해서가 아니라, 상처에 파상풍균 등과 같은 세균에 의한 패혈증 증세로 사망하는 경우가 높다. 갑주를 만들 때 그리 쉽게 칼에 베이거나 화살이 관통당하지 않는다. 화살도 깃이 3개가 정석인데, 우리가 보는 TV2개로 나온다. 조선시대 무기체계가 상당히 과학적이고 합리적이었다. 어느 순간 한국 전통문화는 낡은 것이고, 그런 소재조차 고증조차 제대로 하지 않고 멋대로 만들어낸다.

 

현대 산업은 문화라는 콘텐츠를 통해 새로운 이익을 창출한다. 문화산업을 하는 것은 그 나라의 문화와 정체성을 드러나게 해주는 중요한 수단이다. 일본하면 유명한 소재는 사무라이이고, 중국하면 쿵푸나 소림사 권법이다. 유럽에도 유럽 나름의 문화재 소재를 항상 문화산업 매체에 반영한다. 그런 중요한 일에 우리의 현실을 돌아보자면 다소 아쉬움을 느끼지 않을 수가 없다. 물론 다른 나라의 작품을 참고하는 것도 좋지만, 국내 사극드라마 전투장면은 일본 사무라이 장르를 어느 정도 따라하는 게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든다.

 

우리는 드라마로 통해 조선시대 역사를 거의 배운다고 해도 과언이 아닐 것이다. 정도전과 이성계, 태종대왕과 세종대왕, 세조와 단종, 성종과 연산군, 정조와 영조 등등 그 시대의 인물은 우리가 직접 보지 않았기에 알 수 있는 것은 어떻게 현대적 관점으로 복원하는 가이다. 지금 만일 이런 관점을 제대로 보지 않으면, 우리의 먼 미래에 사는 한국인도 21세기 한국인에 대한 정의를 엉뚱하게 내릴 것이다. 우리는 과거에 대해 아주 고리타분하고 지난 것은 보겠지만, 우리 역시 먼 미래에 아득한 과거에 불과하다.

 

<미래는 오래 지속된다>라는 책이 있듯이 우리의 미래는 결국 현대의 인간들이 조성한 토대에 의해 올라올 수밖에 없다. 과거의 모든 것이 옳은 것은 아니지만, 과거에 있었던 것을 모조리 부정하면 나라는 존재는 과연 어디에서 왔는지를 잃어버린다. 외국에 나가면 세계 문화유산을 접한 계기는 매우 많다. 하다못해 그 나라의 지역에서 조성된 유서 깊은 거리나 마을을 방문하면서 좋은 경험했다고 말한다. 그러나 막상 우리나라에 대해 생각하면 깊은 관심을 표하지 않는다. 그렇게 깊게 생각하라고 말하는 것은 아니나, 최소한 우리가 무엇인지 생각을 하고 주변을 보는 것도 중요하다.

 

나 혹은 우리가 살아가는 관점, 그 무게의 중심을 잡은 후 서서히 주변을 확장하여 퍼져가는 게 옳지 않을까 싶다. 독립운동을 하던 사람 중에 불교가 조선에 오면 조선의 불교가 아니라 부처의 조선이 되고, 유교가 조선에 들어오면 조선의 유교가 아니라 공자의 조선이 된다는 말을 본 것 같다. 세계화 시대가 이미 지난 시대에 근대화란 이름은 이렇게 우리 스스로를 파괴했는지 모른다. 전통을 지키는 것만이 능사는 아니나, 전통도 새로운 문화적 형태를 받아들여 그 자체로 전통이 된다. 가령 우리 제사상을 보면 사과와 시금치가 올라오나, 그것들은 원래 한국 토지에 없던 작물이었다. 그러나 집안제사를 가면 사과는 항상 올라가는 과일이다.

 

한국 전통문화 제사조차 그러하니, 앞으로 한국의 다양한 문화가 그대로 유지되기보단 시대적 흐름에 따라 변화하는 것은 피할 수 없다. 하지만 적어도 고증이나 제대로 된 장면을 위해서라면 그런 섬세한 요소를 제대로 보여줄 필요가 있다. 전에 읽은 책으로 <문무를 갖춘 양반의 나라>를 보면 조선의 사대부들은 동반인 문관보단 서반이 무관의 수가 더 많았다. 집에 있는 족보를 봐도 나의 할아버지들은 문관보단 오히려 무관들이 더 많았다. 그 중에는 을묘왜변(1555) 때 왜구를 무찌른 만호공(萬戶公)도 계셨고, 임진왜란 시기에 무관을 하시 분도 계셨으며, 그 무관의 친척들은 왜군과 싸우다 전사했는데, 아버지와 아들, 조카까지 같이 순국하기도 했다.

 

임진왜란이 발발한지가 400년이나 더 되어도 21세기 대한민국에서 이순신 장군을 성웅으로 모시고, 통영 충렬사에서 매년 충무공을 위한 제사가 열린다. 그런데 이순신 장군 동상이 조선의 갑옷이 아닌 중국식 갑옷이란 책 본문을 보면서 아직 갈 길이 참으로 멀다고 여겼다. 가끔 일본 애니메이션이나 만화를 보면 오다 노부나가와 토요토미 히데요시, 신선조와 유신자사의 이야기가 너무 낭만적으로 표현하는 경우가 많다. 임진왜란과 메이지유신 이후의 조선침략 준비 시기는 그들에게 언제나 좋은 콘텐츠거리이다. 그에 반해 우리는 어떠한가?

 

독도문제가 외교문제만 아니라 역사문제까지 확장되는 점을 보면서 생각하지만, 지나친 민족주의는 문제가 되나, 근본을 모르는 상태는 더 심각하다고 여겼다. 조선이 처음부터 문약한 국가라고 생각하나, 처음부터 문약한 게 아니라 문약해지면서 그렇게 된 것이다. 지금도 우리 스스로가 우리의 과거가 문약하고 여기는 것은 역사에 대하여 너무 가볍게 혹은 너무 재미를 위한 관심거리로 봐서 아닌가 하는 기분이 든다. 가벼운 기분으로 접하는 부분은 인정한다. 대중이 쉽게 접하는 방법은 미디어밖에 없다. 그러나 그 미디어 자체가 틀려먹는다면 많이 심각한 문제가 아닐까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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캐모마일 2017-04-10 09:31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광화문 이순신 동상은 중국식 갑옷에 일본식 검을 차고 있다는데, 사극 속 우리나라 무예와 전쟁신 또한 잘못된 고증이 많았나 보네요. 몰랐던 사실을 알고 갑니다.

만화애니비평 2017-04-10 15:54   좋아요 0 | URL
칼집이 허리춤에 있는 띠가 아닌 그냥 들고 있지 않은 게 한국식 무장체계이니 읽으면서 계속 놀라움만 뽑아내었습니다.
 
말하다 - 김영하에게 듣는 삶, 문학, 글쓰기 김영하 산문 삼부작
김영하 지음 / 문학동네 / 2015년 3월
평점 :
절판


인간에게 말을 한다는 것은 무엇일까? 말이란 언어라고 칭하며, 언어(言語)를 살펴보면 둘 다 한자어 중에 를 분리해보면 숫자 사(, 다른 한자로 )와 입 구()자를 사용한다. 네 명의 입이 모이면 말씀 언자가 생기는 원리에서 말하는 것은 인간이 모이면 반드시 이루어지는 하나의 행위이다. 왜 예전에 저녁 석()에 입 구()자가 붙으면 이름 명()이 되는 것인가? 이름을 부르는 것은 밤에 입을 사용하는 것이다. 앞이 보이지 않은 어두운 밤에 상대방이 누군지 알아볼 수 있는 유일한 수단은 이름을 부르는 것이고, 이름은 언어라는 하나의 주술력이 강한 형태로 이루어진다.

 

이름을 부르는 것이 왜 주술적인가? 생각해보면 누가 길을 걷다가 다소 불량한 행동을 한다. 그런데 뒤에 그 사람의 이름을 부르는 행인이 나타나면 어떻게 되는 것일까? 불량한 행동을 하던 사람은 어느 순간 동작을 멈추고 자신의 신변을 다시 돌아보게 된다. 인간이 가진 말이란 행위는 엄청난 힘을 가지는 것이다. 말과 글에서 모두 같은 뜻을 전달할 수 있다. 배고프면 밥을 먹는다면, 우리 부모님이 누구야 어서 저녁 먹어라라고 말하는 것과 문자로 저녁 먹자라고 말한다면 우리의 반응은 어떨까?

 

말로 전달하는 게 더 큰 효과를 발휘한다. 시각은 인간의 눈으로 보고 뇌에서 판단하고, 귀는 들으면서 감정적으로 움직이게 된다. 인간에게 말 하다는 것은 그 사람이 본질이 나올 수밖에 없는 것이다. 글은 쓰면서 상대방에게 보여주므로 생각할 틈을 주는 반면, 말은 말하는 순간 화자나 청자 모두 그 상황에 몰입한다. 글은 흔적을 남기지만, 말은 흔적을 남기지 않는다. 대신 귀에 들리는 언어의 울림은 매우 강렬하다. 말하는 그 순간은 판단의 이성능력보단 감성의 공감능력이 중시된다.

 

방송이나 주변 토론회를 보면 패널이 참여하여 서로 대화를 나누면서 어느 누군가는 매우 침착하고 논리정연하고, 다른 누군가는 논리도 없이 억지를 부리며 심지어 욕설과 큰 소리로 떠드는 경우도 볼 수 있다. 말하다 그 자체는 결국 인간의 본질적인 요소가 바로 튀어나오는 패턴으로 볼 수 있다. 김영하 작가의 <말하다>는 작가 김영하가 인터뷰를 하면서 그의 생각을 들을 수 있는 책이다. 말은 귀로 들어야 하나, 요새는 녹음 장비가 잘 되어 있으므로, 녹음된 인터뷰 내용이 책으로 실려 기록으로 전해진다.

 

김영하 작가가 말해주는 그의 이야기, 이야기를 하면서 사람은 생각을 하지 않을 수 없겠지만, 이야기를 하기 전에 생각을 하는 것이 아니라 이야기하기 위해 생각하는 것이라 한다. 결국 말하는 방법이나 이야기 속 내용은 그 인간의 본질이 튀어나오는 이유는 바로 이야기하면서 생각하고, 그 생각이 이야기로 이어지고, 그 이야기로 통해 다시 생각이 이어지는 반복이 이루어지면서 대화가 오고 간다. 그러니 그 인간의 본질이 대화로 통해 나오지 않을 수가 없는 어쩔 수 없다.

 

김영하의 이야기는 언어로 통해 인터뷰하는 사람의 귀로 전달된다. 아마 우리가 책을 보는 감정과 청자의 귀로 듣는 목소리는 상당히 다를 것이다. 김영하 작가는 이야기를 하면서 자신의 이야기꾼적인 기질을 보여주었다. 그의 사고방식은 매우 독특했다. 김영하 작가가 있다는 것은 알고 있었고, 그의 소설책이 제법 많이 나온 것도 알고 있다. 게다가 그의 소설 하나가 영화로 제작되어 조만간 나오는 것을 알았다. 하지만 나는 김영하의 책을 한 번도 읽지 않았고, 단지 그의 대화록인 <말하다>만 읽었을 뿐이다.

 

그의 사고회로는 매우 독특했고, 사고의 확장에는 상당히 흥미로운 인물이었다. 하지만 그의 책을 읽으면서 뭔가 모르게 아이러니함을 느꼈다, 김영하는 <참을 수 없는 존재의 가벼움>을 저술한 밀란 쿤테라를 좋아했다, 밀란 쿤테라의 소설 <참을 수 없는 존재의 가벼움>에서 인간이 존재라 가벼운 깃털 같은 존재이기도 하나, 그 가벼움 속에 아주 무거운 삶이 눌러져 있다. 외과의사 토마스는 생명을 살리는 의사이다. 그러나 그는 아내 테레사 외에도 다른 여자와 성행위를 즐기는 바람둥이다. 인간을 가볍게 여기는 것인지 무겁게 다루는 것인지? 아니라면 소비에트 연방의 탱크가 체코 프라하를 밟아 넘어오던 시절, 자신이 적은 글이 신문에 기고되면서 의사에 해고되어도 그는 단호한 모습을 보여준다.

 

가벼움과 무거움의 영역은 도대체 어디에서 보여주는 것이란 말인가? 평범한 인간이라면 토마스와 정반대의 삶을 살았고, 자신의 삶에 주어진 그 자체에 무거운 집착을 보여준다. 밀란 쿤테라의 소설이라면 인간의 삶을 토마스를 통해 본다면 가볍다면 오히려 마지막 토마스의 죽음을 의미심장하게 다가왔을 것이다. 김영하가 밀란 쿤테라를 좋아하고, 그의 글에서 많은 영감이 왔다면 그는 밀란 쿤테라와 다른 길을 가는 것 같다. 밀란 쿤테라는 니체의 말을 많이 사용하면서도 한편으로 공산당에서 활동한 만큼 사회적인 관심이 높다.

 

김영하는 철저한 개인주의자이고, 비관적 현실주의자로 선언한다. 현실에서 한국은 개인주의자로 살아가기 힘들고, 단지 집단적 이기주의 하나의 개인주의로 되어버렸다. 개인의 이기심에서 타인에게 관심도 없다가 뭔가 화제나 이익거리가 생기면 순식간에 모이는 속성, 현실에 너무 좌절하거나 혹은 지나친 기대를 하는 것, 독자가 김영하에게 묻는다. 이 사회에 희망이 있는가? 희망은 없고 앞으로도 없을 수 없다. 단지 그 환경에 냉정하게 생각하고 대처하라 한다. 아우슈비츠 수용소나 가혹한 환경에서 살아남은 사람은 그렇게 죽음의 공간에서 벗어날 수 있다고 말이다.

 

그러나 나는 그 생각에 반대하는 것은 그것은 단지 생물학적으로 살아갈 수 있는 여건이지, 생물학을 넘어 사회학적으로 살아가는 것에서 비관적 현실주의는 도움이 될 수 있지만, 그 어느 개인에게 주어진 삶을 바꿀 수 없다. 방관적 태도로 삶을 보는 작가라 하여 그 자체가 틀리거나 부정할 수 없다. 자신은 자신만의 개인주의 성향을 가지고 사는 건 자유다. 그러나 그 자신의 입지로 인해 타인의 삶에 큰 영향을 주면서 개인주의 성향이라 말하는 것에서 아주 모순되어 있다. 인간은 모순과 부조리에 의해 살아가는 존재이다.

 

김영하의 <말하다>를 보면서 재미는 분명 있었다. 단지 마지막 페이지를 접은 후 남은 것들이 아무 것도 없었다. 그의 개인주의 성향은 책에서 읽혀진다. 나의 이야기는 이렇고, 그 이야기를 재밌게 전달하지만, 그런다고 이 이야기는 당신과는 아무 상관이 없다. 책 본문에서 소설과 현실적 관계에서 그는 연결성을 배제하려 한다. 역사와 소설은 분리한다. 역사라는 사실과 소설이 문예적 세계관을 분리되면, 형식주의적 형태의 글이 탄생된다. 그의 소설을 읽지 않아도 그의 소설을 읽은 주변 사람과 이야기해보면 확실히 느낌이 온다.

 

영화로 제작되면 아주 재미있겠지만, 막상 영화관을 나오면 무엇이 지나갔는지 알 수 없다는 것이다. 겉의 세계는 화려한 꽃다발이라면 꽃 안에 숨겨진 달콤한 꿀은 없는 느낌이다. 글을 쓰는 것이 인간에게 유일하게 남은 최후의 자유라고 한다. 글을 쓰는 이유는 무엇인가? 말을 하더라도 글을 적어 힘들게 손가락을 아프게 하고, 책상에서 불편하게 앉아있어야 하는 이유는 무엇인가? 이 책에서 그런 의미심장한 전달과 더불어 책 안의 내용이 서로 유리되어 있다는 것을 느낀다.

 

말하는 것은 순간적이나, 글은 지속적인 것이다. 예전에 다산 정약용 선생에 대한 책을 읽은 적이 있었다. 다산 선생이 강진에 유배 오면서 남양주에 식구들의 안위가 무척 걱정되었을 것이다. 외로운 귀양살이 중 다산 선생은 집에서 비보를 접한다. 자신의 막내아들이 병으로 죽은 것이다. 아직 4~5살 정도밖에 되지 않은 어린아이였다. 다산의 아들이 죽었지만, 다산은 아들에 대한 죽음을 애도하며 기록으로 남겼다. 그 기록이 없었다면 그 아들은 살아있었다는 사실조차 후대에 남기지 못했을 것이다.

 

인간은 누구나 태어나면 죽고 세상에서 사라져 사람들의 뇌리에서 사라지는 것은 당연한 사리일 수 있다. 하지만 태어난 순간, 내가 살아가는 이 시간만큼 나라는 존재가 있었다는 사실을 증명하기 위해 인간은 몸부림을 친다. 정체성이란 결국 나라는 존재가 있다는 것을 주변에게 알리는 하나의 방법이다. 김영하 작가가 글을 쓰는 것이 인간에게 남은 최후의 자유이고, 그 글을 쓰게 만드는 생각의 확장은 어느 누구도 빼앗을 수 없는 인간의 재산이다. 인간이 글을 쓰고 생각하는 것은 인간이 세상을 살면서 나라는 존재를 다시 돌아보고 그 자신이 어떤 세상에 살아가며, 세상이 어떻게 흘러가는지 돌아볼 수 없다.

 

그러면 김영하 작가의 개인적 성향과 자아성찰 세계가 모순을 일으킨다. 그것이 반드시 나쁜 것이 아니다. 부정의 부정은 긍정이 되고 또 하나의 부정이 되어 간다. 변증법이란 반드시 어느 한쪽만 옳다고 돌아갈 수 없는 것이다. 단지 인간은 내가 누군가 영향을 받고 있다면 또 다른 누군가도 영향을 받고 있다는 사실이다. 말을 하는 것은 그 영향을 줄 수 있는 최고의 방법이다. <말하다>를 읽으면서 사고와 표현의 확장을 동반하면 거기에 모순과 부조리에 대한 변증법적 관계 역시 동반한다. 말을 하는 화자는 언제나 옳은 말만 논리적인 주장만 하지 않는다.

 

내 서평을 읽으면 누군가 그럴 것이다. 그렇다면 말과 언어는 무슨 관계이고, 김영하 작가가 말하는 내용과 소설은 좋다는 것이야? 나쁘다는 것이야? 작가가 마음에 드는 것이야 들지 않은 것이야? 솔직히 말하여 김영하의 <말하다>는 재미있는 책이지만, 좋은 책은 아니다. 김영하의 이야기들은 재미있고 새로운 생각에 도움이 되는 유익한 말이나, 한편으로 현실적 상황과 조우하면 그렇게 도움이 되지 않는 내용이다.

 

딱 무엇이 맞거나 틀린 것을 의미하는 것이 아니다. 단지 말하는 것이란 모두에게 맞는 이야기로 되지 않는다는 것이다. 아마 가장 중요하고 조심할 부분은 매너리즘에 빠지지 말아야 하는 점이다. 어느 관점을 두고 바라보는 것은 중요하고 당연하다. 무게의 중심이 있어야 하니 말이다. 하지만 그 무게에 자신의 의식과 판단조차 같이 침몰해서는 안 되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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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7-03-25 10:33   UR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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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7-03-27 09:09   UR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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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7-03-27 09:21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17-03-28 09:06   UR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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철학 체험 : 나는 103호 환자 천재들의 생각법
사회적기업 인문학카페 지음, 샤크언니 그림, 임시혁 글 / 인문학카페 / 2017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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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103호 환자>라는 서적은 우리가 살아가는 현실에서 철학이란 개념이 얼마나 익숙한 것인지를 보여주는 책이다. 철학이란 단어를 생각하면 많은 사람들이 어려운 것이라 여기고 멀리 하려 한다. 물론 철학을 진짜 한다는 것은 어렵다. 이 책에서 처음에 니체로 시작하여 마지막으로 칸트로 끝이 난다. 중간에 플라톤과 프로이트, 마르크스도 등장하지만, 그런 이름들을 듣는 순간 많은 이들의 표정은 밝지만은 않다. 사실 생각해보면 그 이름이 가진 하나의 의미로도 벅차지만, 그들이 저술한 책을 보는 그 자체도 어려운 일이다.

 

그래도 이 책을 상당히 쉬운 방식으로 개념을 전파했다. 인간이란 지식과 경험 그리고 몸의 지식이 있듯이 우리가 알고 있는 지식과 경험으로 충분히 상기시킬 수 있는 내용이었다. 단지 왜 나는 103호의 환자이었을까? 103호에는 그다지 의미를 두지 않을 수 있다. 단지 환자라는 대상이 바로 어린이병동에 입원한 사람이란 점이다. 어린이란 존재란 곧 배움을 받아야 할 대상이고, 배움으로 통해 사회적인 가치와 삶의 방식을 익혀간다.

 

주인공은 아무런 기억도 없고, 자신이 남자인지 여자인지 아니라면 나이와 국적조차 모른다. 이름을 본다면 백인이 맞겠지만, 그래도 어느 나라에서 태어나서 어디서 자란지도 모른다. 곧 자신의 이성은 존재해도 이성이란 하나의 관념을 좌우할 수 있는 경험이 없다는 점에서 선험적 판단이 가능하다. 인간은 자신의 사회적, 지리적, 환경적 속성에 따라 경험을 가지고 그것은 자신의 판단력에 큰 영향을 미친다. 로크가 말한 백지설이 중요한 이유는 바로 인간은 자신의 요건이 선천적인 요인보다 후천적인 요인이 클 수 있다는 점이다.

 

이 책에서 소개되지 않았으나, 장 자크 루소의 <인간불평등기원론>에서 인간의 모든 불평등과 사회적 갈등은 인간의 후천적인 영향에 의해 기인된다고 말한다. 칸트의 <순수이성비판>을 읽어본다면 알 것이다. 인간의 이성은 선험적으로 모든 것이 이루어져 할 것이나, 경험과 주변여건에 따라 다르게 되고, 곧 그것은 윤리와 논리를 지배하는 하나의 방해로 된다. 그러나 철학이란 모든 게 하나의 답만 옳은 것이라 말하지 않는다. 다양한 관점과 시선 그리고 그 너머의 해답을 알려줄 뿐이다.

 

답을 제공하는 점에서 이 책에서 주인공 중에 하나인 바덴 박사와 같이 굳이 정신의학과 전공자나 혹은 철학도, 인문학자가 아니어도 철학을 말할 수 있다. 철학(哲學)이란 사리를 밝히는 학문이고, 서양철학의 시작점인 플라톤은 철학이란 필로소피아(philosophia)란 단어를 스승 소크라테스로 통해 밝힌다. 철학은 신을 사랑하는 학문이고, 신의 사랑을 받을 수 있는 학문이다. 그리고 그것은 자신이 지혜로운 인간이 되기 위한 하나의 과정이다. 지혜와 지식은 조금 다르다.

 

이 책에서 지식을 몸과 경험 등으로 쌓을 수 있겠지만, 지혜는 지식으로 채워지지 않는다. 지식에 철학적 사고를 집어넣어야 지혜가 탄생한다. 옛날 우리 어른들도 보면 그렇게 높은 수준의 교육을 받지 못해도 많은 일들을 슬기롭게 처리한다. 철학이란 우리 인간사를 슬기롭게 처리하기 위해 존재한다. 하지만 철학이 어렵고 복잡해진 이유는 과거와 달리 현대로 넘어오게 되면서 세상이 많이 변화하고, 좁은 세계가 넓은 세계로 확장되고, 인간이 보던 우주조차 더 넓어지게 되었다. 종교와 과학, 윤리와 논리가 계속 변화할 수밖에 없는 구조인 것이다.

 

철학을 알아가는 것은 우리가 살아가는 복잡한 사회와 세상 더 나아가서 우리 안에 있거나 혹은 없을 수 없는 미지의 세계를 탐구할 수 있는 원동력이다. 철학은 돈은 되지 않으나, 철학이 없다면 인간에게 인간이란 이름을 부여할 수 없다. 왜 철학을 배우는가? 라는 말보단 왜 우리는 철학을 생각해야 하는가? 그것은 우리가 현재 살아가는 인간이고, 언젠가 죽을 수 있는 유한한 존재이기 때문이다. 자신에게 주어진 삶과 시간이 소중하게 살아가기 위해서는 나라는 존재를 먼저 생각하고, 그 나라는 존재가 앞으로 살아갈 세상에서 스스로 지키기 위한 길인 것이다.

 

그런데 철학을 할 때 왜 유명한 철학자로 통해 보는가? 인간사고방식은 누구든지 자신이 가진 생각이 타인에게 확인할 수 있지만, 자신이 사고할 수 없던 지식과 지혜를 타인으로 통해 알아갈 수 있기 때문이다. 현실에서 일어나는 하나의 현상이나 존재성을 이해하기 위해서는 그런 사고를 할 수 있는 예비지식 내지 준비과정이 필요하다. 물론 그 지식과 지혜의 습득은 쉽지가 않다. 1권에서 어린이의 새 생명에 대한 찬양에서 니체의 <비극의 탄생>을 읽지 않으면 길을 열 수 없다.

 

니체의 <비극의 탄생>은 쉽지 않은 책이고, <차라투스트라는 이렇게 말했다><선악의 저편> 등을 읽으면 과연 무슨 말을 하고 있는지 의아할 수 있을 것이다. 철학이 쉬우면서도 쉽지 않은 게 바로 이때까지 내가 접하지 못한 영역을 접촉하고, 그 경험으로 통해 새로운 것을 마주하고 배워간다는 것이다. 철학함이란 결국 계속 배우는 인간이고, 배움으로 통해 늘 새로운 자신과 마주해야 하는 것이다.

 

하지만 철학을 그런 식으로 진행하면 모두가 지칠 것이다. 이 책에서 소개된 과학적 사고, 변증법적 유물론을 제시한 마르크스의 경우, <자본> 전 권을 읽기 위해선 몇 개월을 고생해야 한다. 헤겔 역시 마찬가지다. 그런 책에 접근한다면 어느 일반인들이 철학에 흥미를 가지게 될 것인가? 철학은 처음에 쉽게 간단히 접근하는 편이 좋다. 만일 조금 더 깊은 성찰과 현실에 대한 존재성을 탐구하고 싶다면 더 높은 책을 읽는 게 좋다.

 

배를 타면 나침반이 필요하듯이, 학문 역시 나침반이 필요하다. 더구나 철학을 알아갈 때 기존 자신이 가진 가치관으로 접근할 수 없다. <나는 103호 환자>가 되어야 하는 이유는 이때까지 가진 고정관념에서 조금이라도 더 벗어나야 받아들일 수 있기 때문이다. 안타깝게도 현실에서 대부분 사람들은 103호 환자보단 바덴 의사처럼 되고 싶어 한다. 물론 자신은 바덴 의사와 같이 전문적으로 교육을 받지 않은 사람이 많다. 아이러니하게도 이 책은 103호 환자만이 철학적 연구대상으로 지정하지 않는다.

 

103호실 환자를 치료하는 바덴 박사조차 하나의 대상으로 놓는다. 칸트의 <실천이성비판>과 같이 정언명령, 인간의 선을 추구하기 위해서는 타인을 하나의 목적으로 대해야지 자신의 이익을 위한 수단으로 삼을 수 없는 것처럼, 바덴 박사는 병원비나 기타 편의를 제공하기도 하나 자신의 학문적 성과를 위해 103호 환자에게 호의를 보낸다. 생각해보면 바덴 박사가 하는 행동은 자신의 이기심도 있지만, 다르게 생각해보자면 여러 임상조건을 연구하여 다양한 증세를 파악하여 세미나에 발표한다면 자신의 입지 이상으로 의학발전에 큰 발전을 줄 수 있다.

 

이 책에는 없는 애덤 스미스의 <국부론>처럼, 경제라는 것은 어떤 재원과 서비스를 필요할 사람이나 그것을 제공하는 사람 모두 좋은 이익을 줄 수 있는 게 나라가 부유해지는 것이라 말한다. 아마 마지막 파트에서 애덤 스미스의 생각처럼 모두가 좋아지는 결론이었다면, 칸트의 논리와 다른 방향으로 갈 수 있을지도 모르겠다는 생각을 했다. 인간에게 주어진 상황과 조건에 따라 행동을 어떤 식으로 해야 할지는 개인의 선택이나, 그 선택적 기로에서 어떤 생각을 해야 할지는 철학적 사고는 필수적이다. 세상은 나만 혼자 살아가는 곳이 아니다. 타인의 존재가 있기에 자아라는 존재가 인식하는 것처럼, 한 번은 우리 스스로 103호 환자는 아니더라도 102호나 104호 환자 정도 되어보면 좋을 듯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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