당의통략 - 조선시대 당쟁의 기록 자유문고 동양학총서 39
이건창 지음, 이덕일.이준영 해역 / 자유문고 / 2015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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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건창의 <당의통략>을 읽으면서 그가 생각하는 원론에 대해 보면서 조금 놀란 게 있었다. 붕당정치의 폐단에 대한 문제를 지적하면서 8가지를 논의를 제시한다. “첫째는 도학이 지나치게 중한 것이고, 둘째는 명분과 의리가 지나치게 엄한 것이며, 셋째는 문사가 지나치게 번잡한 까닭이고, 넷째는 옥사와 형벌이 지나친 것이고, 다섯째는 대각이 너무 높은 것이며, 여섯째는 관직이 너무 맑은 것이요, 일곱째는 문벌이 너무 성대한 것이고, 여덟째는 나라가 태평한 것이 너무 오래되었기 때문이다.”

 

내가 정말 놀란 이유는 문벌의 성대한 점이고, 명분과 의리에 대한 문제였다. 아버지가 병으로 돌아가신 후 아버지의 물품들을 정리하면서 나에게 거의 100% 상속된 게 있었다. 그것은 집안의 족보이다. 21세기 민주주의 시대에 조선의 성리학을 토대로 만든 족보가 무슨 문제냐고 하지만, 한국학에 대한 연구와 포스트모더니즘에 대한 문화적 가치에서 그 나라 혹은 그 민족의 역사와 삶이 크게 평가되었다. 민족성이 과거에 낡은 문물이라면 이제는 새로운 콘텐츠가 되는 원류이다(한국의 신화, 역사적 인물과 사건을 드라마, 영화, 연극, 오페라 등으로 만드는 얼마나 성대한가?).

 

아버지가 돌아가시기 전 집안의 대동보가 나에게 왔다. 아버지가 돌아가기 전 내가 하던 일 하나가 집안 족보를 확인하던 절차였다. 처음에는 아버지 이름과 형, , 엄마, 형수, 조카의 이름을 확인하다가 점차 할아버지 쪽으로 올라가기 시작했다. 개인적으로 나는 족보와 집안제사에 대해 생각하자면, 집안제사를 여자만 준비하는 것은 문제가 심하나, 제사 자체를 하지 않은 것은 더 문제라고 생각했다. 왜냐하면 집안 몇 대조 할아버지가 누구인지가 중요하나, 그 몇 대조 할머니가 누군지도 정말 중요하다.

 

아버지 없는 자식 없지만, 어머니 없는 자식은 생각조차 할 수 없다. 결국 할머니의 이름을 몰라도 할머니가 누구의 집안인지까지 다 보게 된 셈이다. 조선이 1910년 일본에 의해 멸망해도 조선이란 국가는 없을망정 조선인은 여전히 살아있고, 그들의 역사는 민중 사이에 계속 이어져 20세기 광복과 21세기 현대로 이어져 왔다. 일제침략 때 협조한 친일파 중 대부분 노론 출신이 많았고, 남인은 없었다. 소론과 북인이 일부 있었지만, 대부분 노론에 의해 장악된 점이고, 독립군 중 남인의 후손이 많았다. 게다가 국회의원 중에 선조가 독립군 내지 독립투사를 하던 분도 있는 점도 눈 여겨 볼 수 있다.

 

조선이 비록 일본에 의해 망했더라도 당파싸움은 조선이 멸망해도 계속 이어졌다. 한국 역사학에서 빼놓을 수 없는 위당 정인보 선생은 조선의 마지막 등불을 다산 정약용 선생으로 여기고, 그의 업적을 남겨 우리 역사를 크게 발전시켰다. 그런데 정약용 선생의 책이 1930년대까지 제대로 전파되지 않았다. 노론의 후예가 정약용 선생의 책을 시중에 나오는 것을 탐탁치 않게 여긴 것이다. 지나간 일이라 하나, 역사란 과거가 아니라 현재와 끊임없이 대화하는 것이라고 E.H Carr<역사란 무엇인가>에서 주장한다.

 

조선의 당쟁은 과거의 일이기도 하나 한편으로 현대사회를 살아가는 우리의 모습을 만들어 놓은 일이기도 하고, 그것이 현재도 비슷해도 여전히 이어져 내려온다. 아버지가 돌아가신 후 집안족보를 확인하면서 할머니의 가계 쪽을 살펴보았다. 친할머니는 해주오씨, 큰할머니 한 분은 하동정씨, 또 따른 분은 동복오씨, 작은 할머니는 보은이씨였다. 더 높이 올라가면 증조모 남양홍씨, 고조모 통천최씨, 현조모 여산송씨이다. 그 외로 혼계가 많은 집안을 보면 광산이씨, 광주이씨, 전주이씨, 한양조씨, 청주한씨, 문화유씨, 원주이씨, 경주이씨 등이다.

 

본래 우리 집안은 남인의 후손이다. 남인이 숙종 이후 몰락하고, 서인이 노론과 소론으로 분리되자, 소론이던 사람들과 혼맥을 유지하고, 북인이던 사람도 혼맥을 유지한다. 특히 북인의 시초라고 볼 수 있는 남명 조식 선생의 본관의 창녕조씨도 많이 있었다. 다른 가계를 보면 어머니가 창녕조씨, 문화유씨, 원주이씨, 청주한씨인데 그 본인의 아내도 역시 어머니와 같은 본이었다. 물론 촌수가 멀겠지만, 결국 이건창의 <당의통략>대로 그게 이루어진 셈이다. 그가 책을 저술한 시기는 고종인 점에서 상당히 놀라지 않을 수가 없었다.

 

이건창은 전주이씨 후손이고, 그의 조상은 동국진체를 만든 원교 이광사, 연려실기술을 저술한 이긍익이 있다. 이광사는 소론이었다. 소론은 서인에서 분리되었지만, 우암 송시열과 윤증의 갈등에서 시작되고, 노론이 남인을 도륙하는 것을 보면서 소장파 서인이 소론으로 이어갔다. 소론이 경종 시기 득세하다 영조 때 거의 멸문했다. 사도세자의 죽음을 두고 시파와 벽파로 갈렸다. 경종의 죽음과 사도세자의 죽음을 두고 깊이 슬퍼하던 자는 소론이고, 특히 사도세자를 중심으로 모인 게 시파이다.

 

시파는 정조대왕 서거 후 노론벽파에 의해 모두 권력에서 멀어지고, 남인은 천주교와 엮여져 멸문지화를 겪는다. 조선당쟁사가 결국 사대부 집안의 혼인관계에도 영향을 끼치게 된 점이다. <당의통략>의 시발점은 역시 선조와 광해군 시절이다. 선조는 원래 직계 왕손이 아니고, 명종의 조카였고, 조카 중에도 장자도 아니다. 군주로서 올라갈 위치는 아니나, 명종비와 국상 이준경의 재치로 임금으로 올라간 자다. 그러다보니 그의 위치가 약한 것은 어쩔 수 없다. 선조가 초반에 정치적으로 뛰어났으나, 후로 갈수록 신하들 세력을 서로 몰아 피를 부르고, 그렇게 하여 자신의 왕권을 다졌다.

 

이때 사림에서 동인과 서인으로 갈렸고, 동인 중에서 퇴계 이황을 중심으로 남인, 남명 조식을 중심으로 북인이 되었고, 서인은 율곡 이이와 우계 성혼을 중심으로 뭉쳤다. 문제는 당쟁을 두고 간략을 사용하여 상대방을 해친다는 점이다. 송강 정철이 중심으로 되어 수많은 선비를 죽음을 몰고 간 정여립모반사건은 그 정체가 명확하지 않았다. 게다가 조선의 거유인 최영경 선비가 자신의 편이 되지 않아 귀양 보낸 후 결국 목숨까지 빼앗았다. 이때 정여립과 친분이 있는 이유로 죽거나 화를 당한 자가 1,000명이 넘으니 당쟁의 역사에서 잊을 수 없는 상처이다.

 

그 대부분이 동인이었고, 서인에 대한 불만은 남인과 북인으로 갈리게 되었다. 임진왜란 당시 이들의 증오가 얼마나 심했는지 당파로 군사지휘 체계가 정해졌다. 근왕병과 전시행정은 주로 서애 유성룡과 오리 이원익을 중심인 남인이었다. 의병은 북인이 중심으로 활동했다. 광해군 정권이 이이첨을 비롯한 정인홍이 주요 실권 세력인 이유는 북인이 광해군을 추대한 점이다. 당쟁에서 놓칠 수 없는 게 광해군 시대의 대동법일 것이다. 대동법에서 서인의 한당과 산당이 있는데, 한당은 한양을 중심으로 산당은 향촌을 기반으로 활동한다.

 

대동법을 주도하던 이원익과 김육은 당파를 넘어 대동법이 백성을 위한 길임을 알고 있지만, 향촌에서 대농장지주인 산당 거부 사대부들은 그게 싫었다. 광해군의 몰락은 단순히 폐비나 영창대군의 죽음만으로 설명할 수 없다. 성종도 폐비윤씨로 통해 연산군의 폭정을 일으켰고, 태종 이방원은 형제의 난으로 사촌과 친형제까지 죽였다. 그런데도 이점을 용인한 점에서 왕실 내 권력다툼으로 왕은 몰아내는 것은 설명이 되지 않는다. 왕조의 반정은 신하세력의 보존이다. 즉 재산권의 문제이다. 인조반정 이전의 중종반정 당시 반정공신 중에 연산군 아래 크게 성공한 자도 있다.

 

그들이 주군의 등을 돌린 이유는 간단하다. 재산을 지키기 위해서이다. 자신의 재산을 지키기 위해서면 주군도 필요 없고, 백성의 눈물은 더 필요 없다. 광해군 시절 무리한 궁궐 토목공사를 일으킨 것에 대해 문제를 삼지만, 나는 개인적으로 명군에 파견나간 조선백성의 목숨이 더 중요한 것 같다. 궁 하나를 만드는 것보단 병사 수 만 명을 죽게 만든 게 오히려 국력의 훼손이 아닌가? 당쟁이 명분과 의리가 생기지 않을 수 없는 이유는 자신의 권력을 넘어 왕도정치까지 이어진다는 점이다.

 

그러나 상대방이 자신의 길을 막으면 어떻게든 권력을 차지해야 하고, 상대방이 나에게 위해를 가하면 그 이상으로 폭력으로 갚아야 한다. 조선의 백성이 추위와 굶주림에 시달렸지만, 권력의 다툼으로 사대부들의 목은 항상 떨어지고 있었고, 심하면 가족까지 몰살이다. 죽어도 깨끗하게 참수당하는 게 아니라 능지처참까지 당하고 시신조차 찾지 못한다. 아니 이미 죽은 시신을 다시 관에서 꺼내어 목을 자르는 부관참시는 잔혹하다 못해 비참하다.

 

이건창의 글에도 그러하나 권력을 유지하기 위해서는 어떻게든 왕의 척신으로 있어야 하는 점이다. 숙종의 가장 심각한 문제는 외척을 배척하지 못한 점이다. 책에서 인평대군의 아들인 복평군 형제들이 궁녀와 내통해서 사약을 받은 것으로 되어있지만, 역사의 후대에서는 그게 억울한 누명으로 밝혀진다. 숙종의 당숙이던 그들이 남인하고 친하게 지내고, 특히 복평군 형제의 어머니는 동복오씨인 점에서 남인세력을 두려워하던 노론세력에 의해 무고로 죽는다. 하지만 숙종의 어머니 명성황후가 숙종에게 달려가 김우명의 목숨을 보존하기를 바랐고, 무고죄로 죽어야 할 김우명 대신 복평군 형제들이 화를 당했다.

 

숙종은 몸이 약했고, 숙종의 아들 경종 역시 몸이 약했다. 영조 연잉군은 문제없으나, 영조의 작은 형은 병으로 젊은 나이에 세상을 떠났다. 왕의 병세와 심기를 두고 다음 권력을 두고 당파간의 항쟁은 어쩔 수 없었다. 왕이 바뀌는 순간, 왕은 자신의 편과 합작하여 상대세력을 도륙을 낸다. 이건창은 이런 조선의 당쟁사를 객관적으로 비교적 부정적 관점에서 바라본다. 그가 왕가의 후예이고, 소론의 후예지만, 최대한 소론에 대한 긍정적 평은 배제했다. 그래도 소론의 입장은 어느 정도 반영했다.

 

숙종에서 영조까지 조한명에 대한 처신에 대해 상당히 긍정적으로 평가하고, 북인에서 남인으로 혹은 북인과 친분이 있는 남인에 대해서는 과격하거나 무모한 인물로 설정했다. 단지 아쉬운 점은 당쟁을 비중이 큰 인물에 비추어 큰 사건에 비교했다. 당쟁은 아래로 권력에 대한 집착이고, 그 권력을 재력을 넓히는 방법이다. 재력이 넓어지면 백성의 살림은 곤궁해진다. 사실 광해군이 몰락할 때 백성들은 궁궐에 대해 깊이 생각하지 않았다. 궁궐 내 권력암투는 일상화적인 문제이고, 그들이 원하는 바는 세금감면과 병역문제의 해결이다.

 

이 책의 관점은 소론의 후손이나, 남인의 후손으로 보자면 소론인물인 어사 박문수를 생각한다면 그들의 업적이 나쁘지 않다. 실제로 박문수가 활약한 장면이 나온다. 21세 윤증의 고택은 아직도 벽이 없고, 그 가풍을 유지한다. 이들이 정녕 원하는 바는 무엇인가? 단순히 정치적 권력을 두고 투쟁인가? 아니면 그 이상인가? 책에서 자세히 명기하지 않으나, 많은 인물들이 백성을 위해 고군분투했다. 문제는 백성의 이익을 원하지 않은 자가 있고, 그것 역시 붕당정치에서 빼놓을 수 없는 당쟁거리였다.

 

사소한 계기나 혹은 작은 말꼬리나 소문을 가지고 상대편을 몰락시킨 점을 보면 무섭지 않을 수가 없다. 명분 뒤에 가려진 진실이란 상당히 두려운 것이다. 옳은 일을 해도 옳은 말을 해도 권력의 관계성에서 저울질하여 그만큼의 세력을 확보하지 못하면 반드시 처리해야 할 업무조차 제대로 통과되지 않는다. 명분과 의리가 군주를 통한 왕도정치인지 아니면 이권과 권력을 위한 패권정치인지는 후세의 관점에 따라 달라진다. 역사라는 것도 결국 후예가 바라본 기록의 판단에서 다르게 이어져간다.

 

최근 국회에서 일어난 정치적 일들을 보면 이건창의 <당의통략>이 주는 교훈을 충분히 상기시킬 수 있다. 옛날에 고관대신이 화를 당하면 임금의 기분에 따라 처분되나, 지금은 국민의 여론에 의해 좌우된다. 당장 목이 날아가거나 먼 곳에 유배가지 않으나, 그 이상으로 괴로운 앞날이 기다리고 있는 게 권력자들의 말로이다. 역사를 보면 현재를 안다고 했다. 정치권력에 대해 관심이 없다면 그것 나름대로 좋은 삶을 살지 모른다. 하지만 정치적 입지에 따라 국민의 생활이 달라진다. 백성의 삶을 제대로 돌보지 않고, 상대편을 죽음으로 내몰렸던 자들을 보면서 우리는 어리석은 행동을 반복해서는 안 된다.

 

그나마 다행일까? 결혼과 관련하여 과거에는 사농공상이 나누어진 것도 모자라 당쟁의 입장에 따라 혼인이 성사된다. 나의 할아버지 세대까지 이루어진 셈이니 그 깊이는 매우 깊다고 볼 수밖에 없다. 지금은 민주주의 국가이나 사농공상보단 경제적, 사회적 부와 권력에 의해 좌우된다. 그래도 과거에 가난한 선비라도 학문적 명성과 인품이 자자하면 어느 정도 살림이 보장되는 집안의 사위로 될 수 있지만, 지금은 가난하면 평생 가난에 살 뿐이니 과거보다 나아진 것은 겉모습인가? 그러니 우리는 역사를 다시 보고 생각해야 하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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yamoo 2017-09-16 14:44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와~~이건창의 당의통략이 번역되었군요! 예전부터 읽고 싶었던 책인데, 만애비 님의 리뷰로 읽으니 이 책을 꼭 소장해야 할 것만 같습니다. 종은 리뷰 감사합니다!

만화애니비평 2017-09-16 22:38   좋아요 0 | URL
건강은 쾌유했다니 다행입니다. 이 책이 지만지 출판사도 있지만, 이덕일 작가가 번역한 점에서 한번 읽어봤습니다. 제 리뷰가 도움이라니 감사할 따름입니다.
 



솔직히 말하자면 이데올로기를 내세우기 전에 알라딘 사이트의 블로그 유저들에 대해 생각해본다. 나도 화이트칼라에 속하지만, 그래도 그 세계에 매몰된 사람이 아니다. 할아버지가 1차 산업의 중심, 농사를 지으신 농부였고 시골 작은아버지 역시 소키우고 농사짓고 있는 농부이다.


돌아가신 아버지는 배를 타던 노동자이니, 1차와 2차 산업을 뛰던 그들을 옆에서 보니 현실의 벽과 부조리에 노출되는 것은 어쩔 수 없다.엘리트주의적 발상의 문제는 자기 중심적 사고와 세계관이다. 내가 가장 싫어하는 부류 중에 하나가 자기를 누릴 것을 누리는데 아무 것도 하지 않는다. 하지만 생활의 불편한 일들이 생기면 그들 역시 불만을 토로한다.


비혼이 선혼하고, 딩크족을 하던지 말던지는 자유이다. 그러나 그런 사람들이 제발 자기 존재를 선언해도 남에게 들이대는 것을 보기 싫다. 노동력 문제에서 최근 노인실버산업이 육성해도 그런 것은 편의점이나 간단한 물건배달이지 장거리 운송이나 여객, 자동차 및 공업설비 수리정비, 도로와 철도 정비, 선박운행 등에서 한계가 있다. 물론 70이 넘은 사람들도 그 작업을 하지만, 그들은 본래 20~30대부터 해오던 분이다.


평생 손에 기름 만지지 못한 사람이 지금와서 배타고 노가다 한다는 생각이 우습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사람들은 많은 인프라를 누리기 바란다. 상수도가 나오지 않아 샤워하지 못하거나, 하수관로가 막혀 대변이 내려가지 않으면 대개 화를 낸다.


문제는 이들은 그것을 고쳐주는 사람에 대한 배려심이 없다. 그들은 지금이고 10년 뒤고, 20년 뒤에라도 자기가 누리고 있는 인프라를 계속 하여 누리기 원한다. 일업무가 SOC와 관련된 도로, 항공, 철도 등 다양한 시설현장을 돌아본 입장에서 이런 부류들은 자기가 누리던 곳이 처음부터 있는 것도 아닌데 그렇게 있는 것처럼 보일 뿐이다.


그럼 사회적 구조에서 대부분 건설과 선박, 철도 현장에 있는 노동자, 여객이나 운송하는 노동자의 비참한 현실에 대해 생각하지 않고, 오히려 그런 사람들이 죽어도 무관심하거나 잘 죽었다고 놀리는 인간을 비호하는 모습을 보자면 참으로 바보같아 보인다.


어떤 작가가 책을 내던지 말던지 그를 좋아하던 사람들이 좋든지 말던지 관여는 안한다. 그러나 내가 말하고 싶은 것은 지금 당신들이 키보드 모니터 앞에서 인터넷할 때 기 전기와 통신선로를 만들고, 이동할 때 자동차와 지하철, 택시를 타도 그것을 만들거나 다니는 도로 및 철도 역시 누군가 만들고 관리를 한다.


그것을 하는 사람은 누구인가? 나이가 60이상 사람이 평생 하지 못한 그런 관리를 하는 게 새로운 노동시장개척이라 말하면 그들은 더러운 자본주의시장에서 비정규직 노동자의 입장을 완전히 깔보는 인간일 것이다. 


여성혐오하는 인간도 문제있고, 여성혐오가 속으로 내재되어 이게 무의식적 표출되는 것 자체에 대해 크게 의식하지 못하는 것도 문제이나, 그 문제만이 아닌 다른 복합적 요소에서 결과론적인 해석만 한다면 위험할 것이다. 


최근 비혼선혼하는 책이 많던데, 나는 그 작가가 전기도 잘 들어오지 않은 산 속에서 혼자 농사지으며 밥을 짓고, 커피 대신 산열매로 차를 마신다면 불만은 없겠지만, 괜찮은 원룸에 살며 아메리카노 커피를 마시며 작업한다면 참으로 맹인일 것이다. 


우리는 전기를 수입하는 연료에 의지하고, 커피도 배로 수입한다. 결국 연료와 원자재가 배로 오는데 선원 노동자의 비참한 환경은 잘 모르며 그들의 입장을 모른다. 결국 물화되는 노동자의 현실을 외면하고 자기만 느끼는 환경만 말한다. 대개 여성비하적 사고를 가진 사람을 보면 과격한 노동이 수반되는 사람이 많다. 이들의 노고 없이 하루를 견딜 수 없는 게 우리 현실이다. 그래서 진정한 의미에서 인권이 해결되려면 모든 것을 복합적으로 봐야 한다. 


만일 그 작가가 지금도 앞으로 10년 20년 뒤에도 게속 좋은 주거환경과 좋은 취미생활, 맛이 좋은 커피를 마신다면 누군가 외국에서 힘들게 배를 타고 날린 선박화물에서 시작될 것이다. 남성 엘리트 작가들이 글을 적으면 이런 관점이 전혀 없다. 이들은 노동자의 인권과 자유를 말하지만 그들이 직접 노동의 세계에 뛰어들지 않았다.


영화 <그림자의 섬>에서 한진중공업 크레인 농성을 힘들게 시위하신 김진숙님의 말을 들어보면 조금 이해가 갈 것이다. 이른바 개저씨 내지 한남이라 불리는 사람 중에서 그들이 어떤 삶을 살고 있는지 말이다. 이들은 엘리트의 도움 없이 살아가나, 엘리트는 이들의 노고 없이 살 수 없다. 오늘 당장 당신의 밥상에 올라오는 식단부터 가스연료까지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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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7-09-15 16:06   UR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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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7-09-15 17:27   UR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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죽음을 넘어 시대의 어둠을 넘어 - 광주 5월 민주항쟁의 기록, 전면개정판
황석영.이재의.전용호 기록, (사)광주민주화운동기념사업회 엮음 / 창비 / 2017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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과거의 슬픔과 고통은 기나긴 시간이 지나도 쉽게 사라지지 않는다. 60갑자가 몇 번이나 되풀이 되는 그 긴 시간을 지나지 않은 이상 원한은 사라질 수 없다. 최소한 2갑자 이상 지나지 않으면 과거의 원한이 사라지기 어려울 것이다. 생각해보면 조선이란 국호를 박탈당한지 110년이 다 되어 간다. 을사늑약을 생각하면 2갑자의 시간이 도래하고 있다. 조선이란 국가는 사라져도 조선이란 국가에 살고 있던 많은 사람들이 겪은 고통의 한은 사라지지 않는다. 그 후예들은 아직도 이 땅에서 숨을 쉬고 있기 때문이다. 하물며 아직 40년도 되지 않은 광주의 아픔은 오죽하랴?

 

당시 그 잔혹한 기억을 평생 상처로 안은 자들이 과거로부터 벗어나지 못한 채 절규에 탄식한다. 그들은 지난 기억을 떠오르는 것이 고통스러워하나, 더욱 고통스러운 것은 그 사실이 잊혀 진다는 점이다. 고통의 순간을 간직하여 마음속 깊이 침묵으로 살아갈 수 있지만, 그 침묵의 깊이만큼 삶에 짊어지는 아픔은 더욱 깊어만 간다. 인간은 한에 맺히면 죽을 때 두 눈조차 감지 못한다. 얼굴 표정은 모든 짊을 내리고 간 것처럼 잠을 자는 게 아니라, 원한과 분노로 일그러진 표정으로 그 삶을 마무리한다.

 

그 표정을 보는 사람들의 슬픔이란, 그 표정을 잊을 수 없는 가족의 상처는 어떻게 그 원한을 토로할 수 있을까? 신이란 과연 존재하는지 안 하는지 알 수는 없으나, 신이 정말 존재한다면 이들의 깊은 원한을 왜 겪어야만 하는 것일까? 운명의 장난인지 아니면 피할 수 없는 숙명인지 알 수 없다. 사람이 하는 행동은 사람의 의지겠지만, 그것이 정하는 것은 하늘의 뜻인 것인가? <죽음을 넘어 시대의 어둠을 넘어>라는 책은 518의 슬픔을 담은 책이다. 1980517일 계엄이 발동되고, 전국은 군부독재의 통제로 민주주의의 위기를 맞이한다.

 

다른 곳은 몰라도 왜 광주인가? 지금도 전국을 돌아보면 가장 낙후된 지역을 찾아보라고 하면 강원도와 전남지역이다. 강원도는 산이 많고 군사보호구역이 많지만, 전남은 개발 자체가 안 되고, 목포와 부산을 비교하여 부산이 거리가 더 멀지만, 부산은 경부선과 경부고속도로가 한국의 중심 교통이 되어 있다. 전남지역 21세기 초반까지 개발이 거의 덜 되어 있고, 인구도 많지 않다. 1980년대를 생각한다면 고속도로나 철도 등과 같은 교통, 전기, 통신 등 기본적 인프라가 부족한 지역이 바로 전남지역이다.

 

서울과 주변지역에서 군부독재를 저항하는 시위가 어느 순간 위축되었지만, 전남지역은 그렇지 못했다. 소식이 제대로 전해되지 않았고, 그 덕분에 광주에서 저항이 일어나게 된 것이다. 군인들의 비중도 전남지방보단 타 지방이 더 많은 것은 당연하다. 만일 광주출신 군인이라면 당연히 광주시민이 폭도가 아니라 이래저래 아는 사람일 것이다. 광주의 비극은 군부독재가 바라던 권력에 의해 희생된 지역이다. <죽음을 넘어 시대의 어둠을 넘어>518 이전부터 한국근현대사를 정리하면서 부마항쟁과 1212사태 과정을 다룬다.

 

하나회라는 군대 내 사조직은 군사행정을 국방의 의무가 아니라 사익을 추구하기 만들었다. 전두환과 노태우를 중심으로 육사출신 장교가 주축이 되었다. 게다가 이들은 박정희의 지원을 받고 있었고, 육사 내에도 이들을 뒷받침할 수 있는 세력을 계속 키웠다. 전방에 위치한 20사단 병력을 국토방위가 아니라 권력을 위한 총을 사용했고, 그들은 광주시민을 대한민국 국민이 아니라 반국가세력으로 지정하고 무참하게 학살했다.

 

아직도 518에 대한 왜곡이 끊이지 않고 있다. 최근 미국 국방부 및 외교부에서 생산된 비밀문서의 보안조치가 완료되면서 그 암울한 역사의 비극이 다시 재조명되고 있다. 미국은 북한이 광주에 침투하지 않은 것을 알았고, 광주시민이 계엄군의 총탄에 쓰러져 가고 있을 때 수수방관했다. 오히려 북한에게 한국 상황에 개입하지 말라는 의미로 한국 영해에 병력을 배치하여 전두환 군부세력을 옹호했다. 미국의 입장에서 한국은 전략적으로 중요한 우방 국가이지 민주주의 정신을 공유하는 국가는 아니다.

 

이런 사실이 만천하에 드러나고, 518에 일어난 잔혹한 학살이 결국 독재세력이 저지른 죄악임을 다시금 확인된다. 그런 점에서 <죽음을 넘어 시대의 어둠을 넘어>의 개정판은 의미가 깊다. 광주의 비극이 1980년으로 끝나지 않았다. 계엄군에 저항하거나 거기에 동조하는 사람들은 다시 잡혀가서 모진 고문을 받아야 했고, 많은 사람들이 목숨을 잃거나 평생 고통스러운 삶을 살아야했다. 그래도 그 기억은 사라지면 안 되는 것이다. 책은 당시 존재했던 사람들의 진술을 비롯하여 외신기자가 촬영한 사진, 군사자료를 찾아내어 1권의 책으로 만들었다.

 

518일부터 도청이 함락되던 27일까지 말이다. 읽으면서 정말 끔찍한 사건임을 다시금 생각하게 되었다. M16 소총을 군부에 저항하던 광주시민만 아니라 길가에 서 있는 어린아이와 임산부에게 사격했고, 여학생들의 가슴부분을 도려내기도 했다. 자신들끼리 오인사격으로 타격을 입자, 화풀이로 주변마을에 가서 마을청년들을 학살했다. 길거리에 7세 어린아이가 주검으로 변한 채 쓰러져 있었다.

 

거리에 무참히 쓰러진 시신을 가져가는 사람들을 향하여 사격했고, 죽은 사람에게 칼을 다시 찔려 확인사살을 했다. 게다가 시체를 제대로 묻어주거나 가족에게 인계해주지 않고 암매장을 했다. 5월 말이며 초여름이 시작되니, 시신이 부패하기 시작하고, 날이 어느 정도 지나면 형체를 알아보기 어려울 정도로 시신이 훼손된다. 가족의 품으로 돌아가지 못한 채 영원히 헤매는 영혼을 생각하자니 참으로 애석했다. 설사 시신을 인수해도 문제다. 대부분 20~30대 청년들이 많이 죽었기 때문에 그들의 장례식을 치루기 위해 상주가 되어야 했던 이들은 아직 얼굴의 젖살이 빠지지 않은 어린아이였다.

 

아버지의 영정을 들고 멍하니 앉아있던 어린아이의 표정, 자신의 아들이 담긴 관을 잡고 통곡을 하는 노모, 그 장면을 보면서 분노와 슬픔을 참지 못해 울음을 터뜨리는 사람들, 절망의 시간은 이들의 운명의 뿌리를 모조리 뽑아 버렸다. 이런 죄를 짓고도 과거의 잘못을 반성하기는커녕 오히려 뻔뻔한 얼굴을 들고 다니고 있으며, 과거 자신이 저지른 죄가 두려워 그의 아이들에게 재앙이 갈까봐 종교에 빠진 사람도 있다고 한다. 신이 정말 존재한다면 그들을 용서할까?

 

그런 죄를 용서해주는 신이라면, 니체의 <차라투스트라는 이렇게 말했다>처럼 신은 죽었다라고 외쳐도 좋다. 신이 절대적 선의 기준이 된다면, 그건 신이 아니라 악마가 신이란 탈을 쓰고 군림하고 있을 뿐이다. 518의 기록은 세계 문화유산 UNESCO에 등재되었다. 부당한 권력에 저항하여 자유라는 이름을 건진 값진 가치이기 때문이다. 민주주의라는 나무는 인간의 피를 빨아 먹고 자란다는 말이 있다. 인간을 억압하여 피를 흘리게 만드는 전체주의를 무너뜨리는 것조차 피가 필요하니 얼마나 아이러니한가? 다시 이런 피가 흘리지 않도록 518의 기록은 계속 기억되고 전수되어야 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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역사에 지고 삶에 이긴 사람들
송광룡 지음, 이종국 사진 / 풀빛 / 2000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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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에 내 블로그에 어느 누가 나의 포스팅에 덧글을 적었다. 나는 답글을 주지 않았으나, 주요요지는 조선 학자군주 정조의 죽음에 대해 독살설이 정식이 아니라는 점, 그리고 이덕일 작가의 서적인 <송시열과 그들의 나라>를 읽지 않았으나, 보지 않아도 이 책은 읽을 가치가 없다는 점이다. 그런 덧글을 보는 순간 나는 굳이 답할 필요가 없다고 여겼다. 필요가 없다면 왜 없는지 그 이유는 무엇인지를 말해야 하고, 정조의 죽음이 최근 심환지와 정조의 편지가 공개되었다고 해서 정조독살설 자체가 부정되는 것도 그렇지 못할 것이다.

 

당시 노론 벽파와 남인 시파의 대립에서 채제공의 죽음 이후 정조의 죽음은 1801년 신유사옥으로 이어졌기 때문이다. 노론 벽파 영수 심환지가 정조하고 편지를 주고받으며 이래저래 이야기한다고 해도, 그것은 오랫동안 같이 왕과 신하이라도, 정조는 심환지보다 채제공을 더욱 신뢰했다. 어찰을 주고받으며 예의가 없는 농담을 건네도 그것 자체가 독살설과 멀다고 하는 것이 수상하다. 독살설이란 것은 반드시 독약을 넣어 죽이는 것만은 아니다. 한의학자들이 정조의 죽음을 두고 어의 처방을 보니, 술을 많이 마시고 스트레스가 심했다고 한다.

 

한국 남자 대부분인 스트레스와 과음으로 간암과 위암으로 고생하여 죽는 것은 맞으나, 정조의 죽음 등창으로 인한 패혈증 증세로 사망한다. 패혈증이란 인간의 혈액으로 세균이 침투하여 혈액이 부패하여 결국 사망에 이르게 하는 증세이다. 등창은 피부에 난 화농성 세균인데, 당시 집도한 어의가 침을 잘못 놓아 등창부위가 터지고, 침이 들어간 자리가 신체 내부로 들어가면 등창을 일으킨 세균이 패혈증 감염증세로 사망에 이르게 한 것이 바른 것이다. 독살이라 하여 뭐든지 약 안에 비산이나 독약을 넣는 것이 아니다(이것은 역사학도 아닌 기본적으로 미생물학을 조금이라도 안다면 의심하고도 남는다).

 

우리가 일반적으로 처방받은 약은 다른 각도로 보면 독이다. 하다못해 교감신경과 부교감신경의 조절을 위해 약을 처방하는데, 고혈압증세 환자에게 처방전으로 교감신경을 자극하는 약을 주며 심장쇼크를 일으킬 수 있고, 저혈압 환자에게 안정제를 처방하면 심장이 약하게 뛰어 문제를 일으킬 수 있다. 약이란 그런 것이다. 등창에 걸리면 몸에 열이 오르는데, 사람 몸에 열을 올리는 인삼을 처방한 점에서 독살설의 의문을 풀 수가 없다. 게다가 어의가 손을 떨거나 보통 의사 같이 아니하다면 의심이 가는 것은 당연하다.

 

임금을 진찰한 어의가 진료도중 임금이 죽으면 국문을 받지만, 그런 과정도 생략된 점에서 정조독살설을 부정하는 가설은 부당하며, 이런 과정을 역사학계 시각이란 말도 웃긴다. 한국사학계에서 대부분 서울대학교 국사학과 이병도로 시작하고, 이병도는 이완용의 후손이다. 을사오적의 후손이 한국역사학의 시초이고, 역사학 강의시간에 외부초빙강사로 일제강점기 조선사를 연구하고, 이병도 세력에 강의를 가르친 자를 데리고 오는 것을 본다면 어느 것이 더 상식적으로 다가가야할지 망설이지 않을 수 있겠는가?

 

어째든 본래 책과는 다른 방식으로 서두를 장식했으나, <송시열과 그들의 나라>를 저술한 이덕일의 글을 오늘 우연히 보았다. 역사적으로 위대한 인물, 조선에서 가장 위대한 인물 중에 다산 정약용 선생을 손꼽는다. 그가 다산초당에서 머물러 큰 학업을 남길 때, 정약용의 형님인 정약전이 흑산도에 남아 <자산어보>를 남길 때, 또 다른 형님인 정약종이 순교하여 한국천주교회사에서 성인으로 남았을 때 그들은 과연 그것을 원해서 그 위치에 올라갔냐는 말이다. 결국 그들은 권력자에 의해 강제로 현실세계에서 버려진 유학자이었다. 그들이 버려진 이유는 단 1가지이다.

 

기존 사회체계를 부정했고, 그 사회체계란 권력자들의 이권이 보장되고, 힘없는 백성들은 고통 받으며 괴로워하던 세계이다. 조선시대 사대부와 일반 백성은 계급에 따라 큰 차이점은 있으나, 최소한 백성들이 편안한 생활을 영위해야 하는 것이 공자의 유학사상이다. 그러나 조선의 유학은 성리학만 쫓고, 글자 하나 토씨에 의문을 가지면 사문난적으로 몰려 죽음을 면치 못한다. 물론 사문난적이란 핑계에 불과하다. 그 모든 것은 권력의 다툼이다. 세상을 바꾸려면 세상을 바꿀 수 있는 힘이 필요하다. 권력의 이름으로 행세하지 않으면 아무 것도 움직일 수 없다. 잘못된 정책을 바꾸려면 그 정책을 바꿀 수 있는 위치가 되어야 했다.

 

조선에서 그런 도전을 하는 자에게 끊임없는 죽음과 멸문만이 도살아 있었다. <역사에 지고 삶에 이긴 사람들>을 보면 양산보로 통한 기묘사화부터 시작한다. 기묘사회로 정암 조광조 사림세력이 큰 화를 당한다. 화를 당한 사대부들은 죽음을 당하거나 유배를 떠나간다. 그리고 대부분 가세가 기울여 향반으로 농사를 짓기도 한다. 따라서 사족 중에도 개혁사상 내지 실학자, 왕도정치를 추구하던 세력은 늘 어둠에 가려져 있거나, 혹은 목숨을 부지하기 위해 숨어 있어야 했다. 바른 말을 하는 순간 화가 뿌리까지 미치는 일이 허다했다.

 

<역사에 지고 삶에 이긴 사람들>에 소개된 인물 대부분이 권력에 저항하거나 혹은 권력의 화를 피해 살다 간 사람들이다. 이덕일 작가가 논한 것처럼 조선의 선비 중에 그렇게 훌륭한 자들이 많았고, 그들은 후세 사람들에게 기억된다. 하지만 그들을 그렇게 만든 것은 누구이고, 그들은 어떤 짓을 했는 가이다. 이 책은 주된 배경은 전라도 지역이다. 전라도 지역은 20세기에 많은 아픔이 있다. ·순 반란사건에서 많은 민간인들이 학살되고, 광주518 같은 경우 지금 다시 보니 학살극이란 사실을 알 수 있다.

 

20세기 한국, 그 이전인 조선에서 전라도 역시 아픔이 많았다. 전라도는 경상도와 달리 알려진 인물이 많이 없다. 성호사설에서 낙동강 위로는 퇴계 이황, 아래로는 남명 조식이란 선비가 있었다. 전라도에 이름난 학자가 드러나기 어려운 이유는 1589년 일어난 기축옥사 때문이다. 이른바 정여립 반역사건은 그 출처와 배경 그리고 전후과정이 명백하지 못하나, 천 명에 가까운 호남의 사대부들이 화를 당했다. 당시 인구가 지금보다 101이고, 사대부는 전체 인구의 10%도 안 되는 점을 고려하면 엄청난 사건이다.

 

호남은 유배의 지역이며, 왜구가 항상 침탈하는 곳이다. 변방의 세계이고, 가난한 선비가 많이 살았다. 조선의 마지막 선비인 매산 황현의 죽음이 서글프게 흐르는 곳 역시 호남이다. 유배지에서 서글프게 노래를 부른 인물로 고산 윤선도가 있고, 유배지에서 모든 것을 초월한 다산 정약용이 있다. 죽은 뒤에도 자신의 서원이 계속 만들어지고 없어지는 것을 겪은 정개청의 원한이 있다. 이들은 모두 권력 앞에서 변방의 공간에 떠돌거나 죽음을 맞이했다. 비참한 죽음을 맞이했지만, 20세기에서 21세기로 넘어오면 이들은 우리가 늘 우리 스스로 부정한 헬조선의 세계를 조금 긍정적으로 바라보게 해준다.

 

하지만 이들을 내몰았던 당시 권력자들을 보면 헬조선의 어원은 쉽게 사라질 수 없는 모양이다. 헬조선에 의해 희생된 그들의 인생을 두고 우리는 학회연구도서나 혹은 위인도서에서 볼 수 있다. 역사에서 패배자인 그들이 결국 삶을 초월한 세계에서 당당히 승리했다. 이들을 억압한 권력자들은 수백 내지 수천 명일 텐데, 그 이름이 전혀 나오지 않는다. 피해자의 이름은 나와 명예가 회복해도 가해자의 이름이 나와 죄악을 다시 묻지 않으니, 지금도 계속 그 비극이 되풀이 되는 게 아닌가? 20세기의 대한민국은 일제의 침략, 한국전쟁, 군부독재 등과 같은 혼돈의 시기를 보냈다. 그 어둠의 시기에 작은 빛줄기를 찾아 떠난 자들은 깊은 어둠속에 침몰해 영원히 떠오르지 못할 치욕의 날을 보냈다.

 

권력에 의해 당시 역사에서는 패배한 것이다. 물론 당시의 역사는 패배해도, 미래의 역사에서는 승자가 된다. 그래서 역사적으로 위대한 인물이 승자로 오르는 과정을 보면 슬프지 않을 수 없다. 역사의 패배자는 명예가 실추되고, 부끄러움을 참아야 하는 자들은 패배자들의 후예들이다. 최근 독립군 후예들이 가난에서 벗어나 제대로 보장된 생활을 찾을 수 있다고 해서 다행인 것 같다. 피해자로 살아온 그들은 가해자들의 보복이 두려워 늘 어둠의 그늘 속에서 숨었다. 이들의 소원함이 풀어지는 순간 책 제목처럼 <역사에 지고 삶에 이긴 사람들>로 승화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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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7-08-31 23:35   UR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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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7-09-01 08:33   UR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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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18 10일간의 야전병원 - 전남대학교병원 5.18민주화운동 의료활동집
노성만 외 29명 지음 / 전남대학교병원 / 2017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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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을 읽으면서 슬프고 화가 나고 무서웠던 책은 그다지 많지 않았던 같았다. 책은 글이란 문자로 되어 있기에 그리고 눈으로 읽기에 이성적 판단 아래 내용을 알아갈 수 있다. 그러나 이번에 읽은 <5.18 10일간의 야전병원 - 전남대학교병원 5.18민주화운동 의료활동집>은 정말 심각했다. 19805월 광주의 봄은 여전한 늦은 봄바람을 맞이했지만, 그 봄바람은 어느 순간 피바람으로 불어왔다. 518일 계엄군의 군화발이 광주시내로 들어오면서 광주시는 광주시민이 살아가는 곳이 아니라 지옥의 아수라가 펼쳐졌다.

 

광주민주화항쟁 내지 광주사태 등 여러 말이 있지만, 거의 학살에 가까운 참극이었다. 예전에 다른 책을 보니 전두환 군부세력이 계엄령 발령과 동시에 저항세력을 진압하기 위한 충정훈련을 했다고 한다. 훈련에 투입된 사병은 모르나, 위관 이상의 영관급 장교, 부사관은 상사급 이상은 대부분 월남전에 투입된 살인기계였다. 베트남전쟁에서 이데올로기적 갈등이라고 해도 베트남 민간인에 대한 학살, 한국군이 도중에 받은 고엽제 후유증은 아직도 씻을 수 없는 상처로 남아있다.

 

베트남전쟁에서 많은 사람이 죽었다. 총에 맞고 칼에 맞고, 폭탄에 온몸이 갈기갈기 찢어나가고, 고엽제로 시달려 이름 모를 병에 죽어갔다. 인간이 만든 전쟁은 역사의 큰 획이 되나, 그 획에 동원된 인간은 그저 비참한 죽음과 조우해야 했다. 베트남전쟁은 1970년대로 끝난 게 아니다. 전쟁에서 배운 기술이나 전쟁에서 느낀 피의 전율은 여전히 폭력의 미학으로 이끌어 내었다. 안 그러면 그렇게 잔혹하게 광주시민을 학살할 수 있겠는가?

 

버스에 사격하고, 농촌 저수지에서 물놀이하는 어린아이에게도 조준사격을 한다. 심지어 길에 서있는 임산부의 머리까지 노리니, 이건 사람이 할 짓이 아니다. 지옥은 인간이 살아있는 한 갈 수 없겠지만, 518이 일어난 그날부터 열흘 동안 광주는 지옥이었다. 사람이 죽게 되면 더 이상 어찌할 도리가 없다. 심장과 폐, 그리고 간과 뇌에 총알이 뚫고 지나가면 금방 출혈사로 죽고 만다. 하지만 운이 좋다면 응급처치 후 치료를 제때 받을 수 있다면 살아남을 수 있다.

 

<5.18 10일간의 야전병원 - 전남대학교병원 5.18민주화운동 의료활동집>은 바로 518 그 참혹함 역사의 소용돌이에서 사람을 살리기 위해 모든 것을 바친 전남대학교 의료진들의 이야기이다. 당시 의료진들은 일부 진료과장 교수를 제외하면 레지던트, 인턴 등이 집도하였고, 간호사들도 의사와 같이 쪽잠을 자며, 힘겨운 나날을 보내고 있었다. 물론 다른 518 관련도서를 봐도 화가 치밀어 오르는 것은 사실이나, 이 책에서 더 심한 분노가 오는 이유는 병원에 오는 사람은 목숨을 구하기 위해서이나, 안타까운 죽음을 계속 목도해야 한다는 점이다.

 

응급실을 지키던 의료진은 처음에 곤봉과 개머리판에 가격당한 광주시민만 만난다. 그들은 두부가 손상되거나 얼굴 안면을 다쳐, 외과처치를 하고 안정만 취하면 충분히 치료될 수 있다. 그러나 때로는 잔혹한 일도 마주한다. 어느 여학생은 계엄군의 총에 장착된 칼에 찔려 가슴부위를 다치고, 누구는 쓰러진 상태에서 군화에 차여 안구가 손상되었다. 제일 심각한 것은 21일이다. 도청 앞에 몰린 시민들을 향하여 집단사격이 시작되었다. 3일째 병원은 전시상황과 맞먹을 정도로 비상사태였다. 총에 맞은 사람은 도착할 쯤 이미 사망했고, 치료를 하기 위해 상태를 확인하니 총알이 복부를 통과하여 장기가 엄청 상했다.

 

계엄군의 총은 어린아이도 피하지 못했다. 5살 아이가 총상으로 다치고, 어머니와 같이 차를 타고 가던 아이는 총을 맞고 평생 휠체어에 의존해야 했다. 복무의 장기들이 다 보일 정도로 다친 학생, 총알이 눈을 스치고 가서 한쪽을 잃어도 다른 눈을 치료받으면 볼 수 있다며 털털하게 웃는 사람들, 이들을 위해 헌혈을 해주고, 밥과 음식을 날려주던 광주시민들, 이 급박한 상황이 너무 마음이 아팠다. 수술을 해도 출혈쇼크사, 패혈증, 후유증으로 눈을 감은 사람들, 살아남아도 평생 몸과 마음의 흉터를 지니고 살아야 했던 그들, 37년이 지나도 그 당시 의료진과 연락을 하던 광주시민은 많았다.

 

군대에서 전쟁에 관한 규칙을 배울 때 최소한 병원에 폭격을 가하면 안 되는 것으로 배웠다. 병원을 공격하는 것은 인도주의적 원칙에 어긋나고, 그것 인간이 해야 할 짓이 아니다. 그런데도 계엄군들은 병원을 향하여 사격을 가했고, 심지어 최루탄까지 발사했다. 최루탄이 군사훈련용과 진압용은 다르다. 심폐가 손상된 환자나, 호흡기 부위가 다친 환자에게 치명적인 위험이기 때문이다.

 

518의 폭풍이 지나간 뒤 추후 경찰과 검찰, 군대에서 나온 사람들이 병원을 다시 찾아올 때 그들의 야만성을 다시 느낄 수 있었다. 시신을 검사하는 장면에서 과연 부끄러움을 아는 사람일까? 계엄군 사이에도 서로 충돌이 있었다. 계엄군이 소속이 다른 부대를 보고 시민군으로 오인하여 사격을 가했고, 이 일로 계엄군 사망자 60% 발생했다. 자신들의 실수인데 화가 난 그들은 인근 마을에 찾아가 화풀이로 마을주민에게 사격했다. 탱크가 움직일 때 실수로 옆에 있던 사병을 깔아뭉개 죽였다.

 

518사이트에 가서 사망자 중에 민간인 이외에도 경찰, 군인이 있던 이유는 아마 그럴 것이다. 광기와 폭력으로 죄 없는 광주시민을 죽인 것도 모자라 광기가 폭발하여 계엄군끼리도 죽인 것이다. 어떻게 같은 민족이 그렇게 해를 가할 수 있단 말인가? 예전에 광주 망월동묘지에 가서 기념관을 관람했다. 그렇게 희생된 사람을 아직까지 비웃고 조롱하여 광주의 영혼을 왜곡하는 자를 보면서 인간이 얼마나 무서운지 알 수 있었다.

 

책을 읽은 내가 그런 생각을 할 정도면, 그 당시 그 자리에 있던 사람들은 얼마나 심한 고통을 받았을까? 억울한 죽음을 목격하고도 그 사실을 제대로 말할 수 없었던 오욕의 기억, 인간이 가장 괴로운 일들은 감추는 게 아니라 드러내야지 치료할 수 있다. 하지만 드러내는 것조차 힘든 세상이었다. 2017518, 광주518 37주년 행사는 참으로 특별했다. 1980518일에 태어난 한 여성은 그날 자신의 아버지를 잃었다. 자신이 태어났기에 아버지가 돌아가신 것이라 여기던 그 고통은 참으로 마음이 아팠다.

 

인간이 태어나면 언젠가는 그 천수가 다해 이 세상을 떠나 새로운 여정을 떠난다. 그 여정은 어떤 곳인지 알 수 없지만, 적어도 살아있는 그 시간만큼은 행복을 위해 살아갈 의무와 권리가 있다. 만일 옆에 소중한 사람이 허무하게 억울하게 사라진다면 정말 불쌍한 사람은 이 세상을 떠난 자가 아니라 그 떠난 자를 보내야 하던 사람이다. 그들에게 남은 생이란 오직 슬픔과 분노, 고통과 절망일 것이다. 슬프고 아픈 일을 겪고도 슬프다 아프다.”라는 말조차 외치지 못한 그들을 위로해주는 것은 그날의 상처를 다시 처음부터 찾아가야 하는 것이다.

 

이 책을 보면서 마지막으로 느낀 점은 우리나라의 의술(醫術)은 서울권역의 대학병원과 종합병원이 가장 최고일 것이다. 그러나 의술(義術)은 전남대학교병원이 가장 최고일 것이다. 아무리 훌륭한 의료기술을 가진 의료인들이 모여도 그들이 펼치는 의료가 사람을 위한 것이 아니라면, 그들이 원하는 것은 오로지 부와 권력일 것이다. 양심과 인륜이 없는 의술은 존경심을 받지 못한다. 총알이 날아오고, 죽음의 경계에서 희망을 다시 찾아준 전남대학교 의료진들에게 감사의 마음을 표하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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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7-08-29 22:38   UR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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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7-08-30 08:44   UR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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