철학 체험 : 나는 103호 환자 천재들의 생각법
사회적기업 인문학카페 지음, 샤크언니 그림, 임시혁 글 / 인문학카페 / 2017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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품절


<나는 103호 환자>라는 서적은 우리가 살아가는 현실에서 철학이란 개념이 얼마나 익숙한 것인지를 보여주는 책이다. 철학이란 단어를 생각하면 많은 사람들이 어려운 것이라 여기고 멀리 하려 한다. 물론 철학을 진짜 한다는 것은 어렵다. 이 책에서 처음에 니체로 시작하여 마지막으로 칸트로 끝이 난다. 중간에 플라톤과 프로이트, 마르크스도 등장하지만, 그런 이름들을 듣는 순간 많은 이들의 표정은 밝지만은 않다. 사실 생각해보면 그 이름이 가진 하나의 의미로도 벅차지만, 그들이 저술한 책을 보는 그 자체도 어려운 일이다.

 

그래도 이 책을 상당히 쉬운 방식으로 개념을 전파했다. 인간이란 지식과 경험 그리고 몸의 지식이 있듯이 우리가 알고 있는 지식과 경험으로 충분히 상기시킬 수 있는 내용이었다. 단지 왜 나는 103호의 환자이었을까? 103호에는 그다지 의미를 두지 않을 수 있다. 단지 환자라는 대상이 바로 어린이병동에 입원한 사람이란 점이다. 어린이란 존재란 곧 배움을 받아야 할 대상이고, 배움으로 통해 사회적인 가치와 삶의 방식을 익혀간다.

 

주인공은 아무런 기억도 없고, 자신이 남자인지 여자인지 아니라면 나이와 국적조차 모른다. 이름을 본다면 백인이 맞겠지만, 그래도 어느 나라에서 태어나서 어디서 자란지도 모른다. 곧 자신의 이성은 존재해도 이성이란 하나의 관념을 좌우할 수 있는 경험이 없다는 점에서 선험적 판단이 가능하다. 인간은 자신의 사회적, 지리적, 환경적 속성에 따라 경험을 가지고 그것은 자신의 판단력에 큰 영향을 미친다. 로크가 말한 백지설이 중요한 이유는 바로 인간은 자신의 요건이 선천적인 요인보다 후천적인 요인이 클 수 있다는 점이다.

 

이 책에서 소개되지 않았으나, 장 자크 루소의 <인간불평등기원론>에서 인간의 모든 불평등과 사회적 갈등은 인간의 후천적인 영향에 의해 기인된다고 말한다. 칸트의 <순수이성비판>을 읽어본다면 알 것이다. 인간의 이성은 선험적으로 모든 것이 이루어져 할 것이나, 경험과 주변여건에 따라 다르게 되고, 곧 그것은 윤리와 논리를 지배하는 하나의 방해로 된다. 그러나 철학이란 모든 게 하나의 답만 옳은 것이라 말하지 않는다. 다양한 관점과 시선 그리고 그 너머의 해답을 알려줄 뿐이다.

 

답을 제공하는 점에서 이 책에서 주인공 중에 하나인 바덴 박사와 같이 굳이 정신의학과 전공자나 혹은 철학도, 인문학자가 아니어도 철학을 말할 수 있다. 철학(哲學)이란 사리를 밝히는 학문이고, 서양철학의 시작점인 플라톤은 철학이란 필로소피아(philosophia)란 단어를 스승 소크라테스로 통해 밝힌다. 철학은 신을 사랑하는 학문이고, 신의 사랑을 받을 수 있는 학문이다. 그리고 그것은 자신이 지혜로운 인간이 되기 위한 하나의 과정이다. 지혜와 지식은 조금 다르다.

 

이 책에서 지식을 몸과 경험 등으로 쌓을 수 있겠지만, 지혜는 지식으로 채워지지 않는다. 지식에 철학적 사고를 집어넣어야 지혜가 탄생한다. 옛날 우리 어른들도 보면 그렇게 높은 수준의 교육을 받지 못해도 많은 일들을 슬기롭게 처리한다. 철학이란 우리 인간사를 슬기롭게 처리하기 위해 존재한다. 하지만 철학이 어렵고 복잡해진 이유는 과거와 달리 현대로 넘어오게 되면서 세상이 많이 변화하고, 좁은 세계가 넓은 세계로 확장되고, 인간이 보던 우주조차 더 넓어지게 되었다. 종교와 과학, 윤리와 논리가 계속 변화할 수밖에 없는 구조인 것이다.

 

철학을 알아가는 것은 우리가 살아가는 복잡한 사회와 세상 더 나아가서 우리 안에 있거나 혹은 없을 수 없는 미지의 세계를 탐구할 수 있는 원동력이다. 철학은 돈은 되지 않으나, 철학이 없다면 인간에게 인간이란 이름을 부여할 수 없다. 왜 철학을 배우는가? 라는 말보단 왜 우리는 철학을 생각해야 하는가? 그것은 우리가 현재 살아가는 인간이고, 언젠가 죽을 수 있는 유한한 존재이기 때문이다. 자신에게 주어진 삶과 시간이 소중하게 살아가기 위해서는 나라는 존재를 먼저 생각하고, 그 나라는 존재가 앞으로 살아갈 세상에서 스스로 지키기 위한 길인 것이다.

 

그런데 철학을 할 때 왜 유명한 철학자로 통해 보는가? 인간사고방식은 누구든지 자신이 가진 생각이 타인에게 확인할 수 있지만, 자신이 사고할 수 없던 지식과 지혜를 타인으로 통해 알아갈 수 있기 때문이다. 현실에서 일어나는 하나의 현상이나 존재성을 이해하기 위해서는 그런 사고를 할 수 있는 예비지식 내지 준비과정이 필요하다. 물론 그 지식과 지혜의 습득은 쉽지가 않다. 1권에서 어린이의 새 생명에 대한 찬양에서 니체의 <비극의 탄생>을 읽지 않으면 길을 열 수 없다.

 

니체의 <비극의 탄생>은 쉽지 않은 책이고, <차라투스트라는 이렇게 말했다><선악의 저편> 등을 읽으면 과연 무슨 말을 하고 있는지 의아할 수 있을 것이다. 철학이 쉬우면서도 쉽지 않은 게 바로 이때까지 내가 접하지 못한 영역을 접촉하고, 그 경험으로 통해 새로운 것을 마주하고 배워간다는 것이다. 철학함이란 결국 계속 배우는 인간이고, 배움으로 통해 늘 새로운 자신과 마주해야 하는 것이다.

 

하지만 철학을 그런 식으로 진행하면 모두가 지칠 것이다. 이 책에서 소개된 과학적 사고, 변증법적 유물론을 제시한 마르크스의 경우, <자본> 전 권을 읽기 위해선 몇 개월을 고생해야 한다. 헤겔 역시 마찬가지다. 그런 책에 접근한다면 어느 일반인들이 철학에 흥미를 가지게 될 것인가? 철학은 처음에 쉽게 간단히 접근하는 편이 좋다. 만일 조금 더 깊은 성찰과 현실에 대한 존재성을 탐구하고 싶다면 더 높은 책을 읽는 게 좋다.

 

배를 타면 나침반이 필요하듯이, 학문 역시 나침반이 필요하다. 더구나 철학을 알아갈 때 기존 자신이 가진 가치관으로 접근할 수 없다. <나는 103호 환자>가 되어야 하는 이유는 이때까지 가진 고정관념에서 조금이라도 더 벗어나야 받아들일 수 있기 때문이다. 안타깝게도 현실에서 대부분 사람들은 103호 환자보단 바덴 의사처럼 되고 싶어 한다. 물론 자신은 바덴 의사와 같이 전문적으로 교육을 받지 않은 사람이 많다. 아이러니하게도 이 책은 103호 환자만이 철학적 연구대상으로 지정하지 않는다.

 

103호실 환자를 치료하는 바덴 박사조차 하나의 대상으로 놓는다. 칸트의 <실천이성비판>과 같이 정언명령, 인간의 선을 추구하기 위해서는 타인을 하나의 목적으로 대해야지 자신의 이익을 위한 수단으로 삼을 수 없는 것처럼, 바덴 박사는 병원비나 기타 편의를 제공하기도 하나 자신의 학문적 성과를 위해 103호 환자에게 호의를 보낸다. 생각해보면 바덴 박사가 하는 행동은 자신의 이기심도 있지만, 다르게 생각해보자면 여러 임상조건을 연구하여 다양한 증세를 파악하여 세미나에 발표한다면 자신의 입지 이상으로 의학발전에 큰 발전을 줄 수 있다.

 

이 책에는 없는 애덤 스미스의 <국부론>처럼, 경제라는 것은 어떤 재원과 서비스를 필요할 사람이나 그것을 제공하는 사람 모두 좋은 이익을 줄 수 있는 게 나라가 부유해지는 것이라 말한다. 아마 마지막 파트에서 애덤 스미스의 생각처럼 모두가 좋아지는 결론이었다면, 칸트의 논리와 다른 방향으로 갈 수 있을지도 모르겠다는 생각을 했다. 인간에게 주어진 상황과 조건에 따라 행동을 어떤 식으로 해야 할지는 개인의 선택이나, 그 선택적 기로에서 어떤 생각을 해야 할지는 철학적 사고는 필수적이다. 세상은 나만 혼자 살아가는 곳이 아니다. 타인의 존재가 있기에 자아라는 존재가 인식하는 것처럼, 한 번은 우리 스스로 103호 환자는 아니더라도 102호나 104호 환자 정도 되어보면 좋을 듯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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