호남 절의록 호남문화 연구총서 13
김동수 지음 / 경인문화사 / 2010년 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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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가를 위해 순절한 분에게 물론 감사의 마음을 담는 것은 중요하다. 하지만 그 감사의 의미를 담아야 할 대상은 그 현실에서 일어난 사건에 치중하는 게 아니라, 후세의 판단과 의지에 따라 다르게 해석된다. 가령 남명(南冥) 조식(曺植) 선생과 같은 경우 조선시대 후기에 그렇게 인정받지 못한 인물이다. 그러나 성호(星湖) 이익(李瀷) 선생의 <성호사설(星湖僿說)>을 읽으면 남명 조식 선생에 대해 나온다. 퇴계(退溪) 이황(李滉) 선생과 같은 시대에 살아오면서 단 한번도 만나지 못한 사이다. 하지만 재미있게도 조선 명재상 중 하나인 동고(東皐) 이준경(李浚慶) 선생은 2사람 모두 친분이 있었다.

 

퇴계 선생이 먼저 1570년에 타계하시고, 그 뒤에 남명 선생이 2년 후 타계하신다. 남명 선생이 돌아가기 전 퇴계 선생과 일전에 1번도 만나지 못해도 같은 경상권에 사는 학자로서 그의 뒤에 따라가겠다고 하신 일화가 유명하다. 성호 선생은 그 내용을 사설에 담았다. 문제는 남명 조식이란 인물이 조선 성리학에서 매우 중요한 위치에 있지만, 그렇게 큰 대접을 받지 못했고, 서원에 퇴계 이황 선생과 율곡(栗谷) 이이(李珥) 선생이 배향되어도 남명 선생은 배향되지 못했다. 그 이유는 남명은 조선시대 분당정치사에서 북인의 학문적 스승이었다. 그의 학문은 단지 하나만 말한다.

 

학문의 기본적 원리와 배울 덕목은 이미 선현들이 모두 남겨주었으니, 이제 우리는 그것을 보는 것을 넘어 실천을 해야 한다고 말이다. 실제 역사 속에서 북인의 활약은 임진왜란과 정유재란에서 볼 수 있다. 의병군에서 최초로 발의한 인물은 홍의장군(紅衣將軍) 망우당(忘憂堂) 곽재우(郭再祐)이다. 그분은 남명 선생 수재자인 내암(來庵) 정인홍(鄭仁弘)의 제자이고, 남명 조식 선생의 손녀와 결혼했다. 곽재우의 거병은 남해바다의 이순신 장군과 동시에 7년 전쟁을 승리로 이끈 장본인들이었다.

 

그러나 북인들의 활약은 대부분 경상권이다. 경상우도와 좌도 퇴계와 남명의 제자들이 분포했고, 초기 경상도 학자들은 2사람에게 학문을 배웠으나 점차 2사람에게서 제자들이 분리되기 시작한다. 남명 조식 선생에게 정인홍, 곽재우, 김우옹, 최영경 같은 학자들이 있었고, 퇴계 이황 선생에게 학봉 김성일, 서애 유성룡, 이들의 제자인 이억기 장군 같은 인물도 있었다. 임진왜란과 정유재란 당시 의병과 관군 모두 왜적에 항거했지만, 한편으로 당쟁의 소용돌이에도 같이 있었다. 외부의 적인 왜군과 내부의 적인 당쟁이 있었다.

 

이런 관점을 내가 제시하는 이유는 이번에 읽은 <호남절의록>이란 도서가 얼마나 편중되어 있는 서적이란 사실을 철저히 알았기 때문이다. 이 책을 번역하신 사학과 학자들도 인정했지만, <호남절의록>이 작성된 시기는 정조시대이고, 정조는 영조의 세손이다. 영조는 경종의 동생이나, 사실 경종이 죽은 후 등극된 임금이다. 당시 경종은 대다수의 소론과 일부 남인에게 지지를 받고 있었고, 영조는 노론에게 지지를 받고 있었다. 경종 사후 영조가 오르자 소론의 영수인 김일경 등이 과거 영조에게 한 행동과 노론4대신을 죽인 죄로 죽임을 당한다.

 

반대로 생각하면 노론대신이 경종을 살해하려는 의도가 명백한 일로 참살되었는데, 영조는 자신의 형보다 자신을 지지한 대신에게 편중했다. 권력을 부자와 형제조차 냉정하다. 영조 집권 당시 일어난 난이 이인좌의 반란이다. 이인좌는 경종의 죽음에 불만을 품은 인물이었다. 그리고 그 위로 올라가면 1618년 사르후 전투와 1627년 정묘호란, 1636년 병자호란이 올라가있다. 정묘년과 병자호란의 치욕적인 일은 한국 역사에서 결코 지워지지 않은 상처이다. 인조 임금은 청나라 황제에게 세 번 절하고 9번 머리를 받는 삼궤구고두례(三跪九叩頭禮) 절차를 수행했다.

 

당시 사료를 보면 인조의 행동에 사대부들이 실망을 하여 효종까지 출사하지 않았다는 내용이 있다. 반대로 생각하면 인조는 광해군 실각 이후 등극된 임금이다. 그는 서인의 반정을 중심으로 움직인 존재이다. 그가 올라간 순간 청나라의 습격을 받고, 인조반정 다음해 1624년 이괄의 난이 일어났다. 이괄의 난과 청나라와의 전쟁에서 조선은 아직 정신을 차리지 못했다. 그들이 패배한 이유는 과거의 문제점을 보지 못하고, 백성을 진정 생각하지 않았으며, 오로지 성리학의 틀에서 명나라를 절대적 존재로 보는 사대주의가 나라를 버렸다.

 

물론 <호남절의록>18세기말 성리학의 관점에서 적은 도서이다. 정조는 상당히 우수한 군주이나, 그 역시 성리학의 틀에서 벗어나지 못한 한계가 있었다. 일본은 도쿠가와 막부에 있다고 하나, 19세기 후반 메이지유신을 거친 후 강대국이 되었고, 청나라는 19세 중반 영국과의 아편전쟁의 패배로 큰 타격을 입는다. 조선은 그러면 무엇을 하고 있었는가? 성리학적 관점 조선왕조의 시대라면 당연히 <호남절의록>은 절대적 가치를 내세운 것은 분명하다. 하지만 책을 천천히 읽은 국사를 생각하면 나라가 망한 이유가 다시금 보인다.

 

국가를 위해 희생된 순국자는 칭송받아야 할 것이나, 이 책에 적힌 이름은 대부분 양반 사대부 집안이다. 그들은 명나라와 조선임금만 생각하지 조선에 살고 있는 백성에 눈을 두지 않았다. 광해군이란 인물을 두고 참으로 재미있다. 임진왜란과 정유재란을 바라보면 광해군의 분조활동에 의해 의병들이 전국적으로 창궐하고, <호남절의록>에서 세자의 분조역할을 은근히 내비치고 있으나, 광해군의 분조활동을 드러내는 것보다 광해군 집권시기 혼주(昏主) 내지 폐주(廢主)의 이미지를 더욱 부각했다. 사르후 전투에서 강홍립은 명나라를 배신하고 청나라에 항복하고, 정묘호란 시기 조선을 밟아대는 존재로 여겼다.

 

하지만 정묘호란 당시 조선과 청나라의 화의에서 강홍립의 역할이 컸고, 그가 없었다면 조선의 많은 백성들은 고초를 당해야 했다. 그가 중재하지 않았다면 조선왕실 역시 큰 피해를 봐야 했다. 다급한 상황에 이르러 강홍립이 중재한 사실은 빼놓고, 오히려 그를 나라를 배신한 역도로 몰아넣었다. <호남절의록>은 광해군 시대의 부정, 북인세력의 부정이 강력히 깔려있다. 1589년 기축옥사(己丑獄死) 당시 수많은 선비들이 화를 당했다. 정여립과 단지 친하거나 글을 나누었거나, 그와 인척이거나 또는 의심가는 인물들이 모조리 화를 당했다.

 

남명 조식 선생과 퇴계 이황 선생의 제자이며, 상당히 학문이 높은 최영경이란 선비는 송강 정철의 무리한 수사로 인해 억울하게 죽임을 당했다. 그 외에도 아무 죄 없는 학자들이 정여립 옥사에 연루되어 죽었으니 그 원한이 골수에 새겨져버렸다. 남인과 북인은 원래 동인이었으나, 북인에게 기축옥사는 친구와 친척, 동문수학하는 이들이 억울하게 죽임을 당한 사건이었다. 우습게도 송강 정철도 왕세자 문제를 선조에게 언급하는 바람에 선조에게 미움을 받아 귀양을 가게 되었다. <호남절의록>에서 이런 내용을 다루지 않는다. 정치적 입장이 상당히 많이 반영되었다.

 

<이순신과 임진왜란>이란 서적에서 <선조실록>을 보면 왜적이 침탈해 전국이 지옥처럼 변하는데, 임금을 명을 받은 송강 정철은 어서 달려오지 않고, 기생을 끌어안고 술을 마시며 시조나 읊어대었다. 송강 정철의 국문학적 가치는 높지만, 그가 해온 행동들을 보면 결코 의로운 인물은 아니다. 서인들이 만든 기축옥사로부터 인조반정은 어떻게든 숨기고 싶은 지난날의 과오이다. 문제는 그 과오를 정당히 밝히는 게 아니라 억지로 가면을 씌우게 만든 책이 <호남절의록>이다. 임진왜란과 정유재란을 시작으로 앞에 잠시 1555년 을묘왜변을 언급한다.

 

임진왜란과 정유재란 뒤에 바로 오는 게 병자호란과 정묘호란 그리고 이괄의 난 평정이다. 이들의 난을 사전에 막을 수 있는데도 막지 못했고, 막을 수 없어 도망친 후 그 죄를 모조리 광해군에게 이전했다. 명나라를 구하지 못하고, 그대로 청나라와 외교정책을 펼친 점, 1609년 광해군이 왕으로 오르자 제일 먼저 한 것이 일본과 국교를 다시 시작한 것이다. 만일 일본과 앙금을 남긴 채 계속 지닌다면 왜적과 호란 사이에 더욱 난감한 상황이다. 전쟁이 나면 제일 고생하는 부류는 여인네와 백성들이다. 여인네들은 체력적 한계로 도망치지 못하고, 싸우지도 못한다.

 

백성들은 억지로 군사로 징병되고, 어리석은 지휘관의 명령에 목숨을 잃게 된다. 목숨을 잃기 위해 군에 입영하는 게 아니라 사회적 약자로 입영한 것이다. 60세까지 군역을 해야 하는데, 갓 태어난 아이가 군적에 오르고, 이미 백골이 된 아버지와 할아버지가 군적에서 사라지지 않는다. 백골징포와 황구첨정의 폐단이 이미 17세기 조선을 지배하고 있었고, 그 시대의 기득권은 서인이었다. 그들은 자기만의 이상 속에서 백성들이 추위와 굶주림, 적들의 칼과 창 앞에서 베어지는데도 망상만 꾸고 있었다.

 

임진왜란과 정유재란은 조금 다른 양상이다. 이 당시 의병들은 각기 출현했으나, 병자호란은 조금 다르다. 의병이 창궐해도 전국적으로 큰 성황을 이루지 못했다. 백성들은 알았다. 혼주 광해군을 내쫓아도 사실 인조 역시 별반 차이가 없었고, 광해군이 억지로 올린 토목공사도 인조에서 멈추게 아니라 그대로 유지하고 있었다. 지금 전주에 있는 태조 이성계 초상을 모신 경기전은 광해군 시대에 재건된 건축물이다. 전쟁 속에서 궁궐이 없어져 대군의 집에서 조회를 해야했던 선조였다. 폐모살제(廢母殺弟)와 관련하여 인조는 자신의 아들 소현세자와 손자를 죽게 만들고, 자신의 조카 역시 반역자들이 옹립하자 사약을 내린다.

 

어머니를 폐하고 동생을 죽인 광해군과 아들손자를 죽이고 조카까지 죽인 인조에서 왜 이리 다른 양상이 보이는가? 광해군의 어머니는 생모도 아닌 아버지의 계비로서 자신보다 어렵다. 그러나 인조는 자신의 친자식을 죽게 만든다. 이런 정치적 사건을 전후맥락을 따져 보면 <호남절의록>의 목적은 진실로 임진왜란과 정유재란에서 희생된 순국자를 위한 기록인가? 책을 읽어가면서 인조부터 시작하여 계속 이루어진 서인(노론)들의 정권통치를 정당화하는 문맥으로 이어진다.

 

책 초반에 동래부사 송상현을 너무 뛰워준 것부터 문제였다. 왜적이 3시간만에 동래읍성을 함락했는데, 그는 자신의 첩을 피신하게 했다고 하나, 사실 성안에 수많은 백성들은 도망가는 것은 꿈도 꾸지 못한 채 모조리 학살당했다. 경상권 최전선 성문이 단시간에 무너진 것은 일본군이 강한 것도 있지만, 전쟁의 기록에서 본 것처럼 화포를 제대로 운용하지 못한 것이다. 화포를 이용하면 장거리 적에게 큰 타격을 주고, 성 아래보다 성위에서 발사하는 대포는 더 멀리 나가고, 성 아래서 발사하는 대포는 성 위로 오르기가 어렵다. 조총은 화약의 양과 탄환의 무게가 대포보다 못하기에 사정거리로 따지자면 대포에 비할 바가 못 된다. 평양성 전투에서 명나라 연합군이 승리한 이유는 일본군보다 더 강력한 장거리용 무기가 있었기 때문이다. 군사들에게 대포를 이용하여 적진을 공격하고, 평소 훈련을 했다면 그렇게 단시간에 무너질 수 없다. 단지 일본군에게 죽임을 당한 이유로 충신으로 올린 그 자체가 한심한 자태이다.

 

무기가 정비되지 않았거나 군사훈련이 제대로 되지 않았다면 그것은 지휘관의 무능과 실책이다. 문관이 무관의 병법이나 지휘방법조차 모르고 그 자리에 앉는다면 적들에게 이로움만 주는 꼴이다. 만일 죽기를 각오하고 혼자 장렬히 전사하면 모르지만, 성안의 병졸과 백성들은 말이 다르다. 그들이 죽어도 어떤 기록도 남지 않고, 보상과 영광조차 없다. 그들은 목적은 전쟁에서 어서 벗어나 평온한 일상을 보내는 것이다. 이미 곡식을 탐내는 탐관오리가 판을 치고, 조정에서 이들에 대한 구휼정책이 제대로 돌아가지 않으면 백성들에게 적이란 그저 왜만이 아니라 조선이란 그 자체였을 것이다.

 

왕이 몽진하여 북으로 갈 때 백성들은 궁궐을 태우고, 양반 사대부집안을 불태우며, 일부 상인들은 왜적에게 호의적으로 대했다. 민심은 왜 천심인가? <호남절의록>에서 민심의 향방을 묻는 글은 없다. 번역하신 분도 공신록에 대한 설명문을 언급할 때 역사적 사실을 전후맥락에 맞게 적어내었다. 하지만 책 자체가 당시 조선시대 한문서적을 한글로 번역했기에 역사적 평론을 거론하기는 힘들었을 것이다. 정말 나라를 사랑해서 죽은 사람이 만일 수 백 년 뒤 일본에 의해 조선이 망했다면 무슨 생각을 했을까? 절의를 지키는 것은 중요하나, 절의를 지키기 전에 그런 상황을 막는 것 역시 중요하다.

 

광해군를 어리석은 임금이라 했지만, 막상 정묘·병자호란 당시 공신을 보면 광해군 시절 무과에 급제하여 변방에 나간 인물이 많았다. 이미 광해군은 청나라의 불온함 움직임을 보고 거기에 대비하기 위해 병력을 확충하고 훈련을 시켰고, 불천지 원수인 왜국에 주문하여 무기까지 수입한다. 항일전쟁사에서 임진왜란 이후 조선독립전쟁사라면 임진왜란의 역사정신을 따라볼 수 있다. 일제에 의해 유린당한 조선이 이미 없어졌기에 다시 고국을 되찾고, 자유를 향한 분투는 순국자의 진정한 애국정신이다. 그런 애국자들은 병자호란의 인조와 서인 같은 모습을 보여주지 않는다.

 

조선독립을 위해서라면 중공과 소련, 미국과 유럽연합국이라도 손잡을 각오가 되어 있었다. 그러나 그들의 자발적 의지는 무참히 깨져 광복 아닌 광복을 맞이했으나, 21세기 우리 대한민국에서 다행히도 그들의 죽음과 공로를 기억해주고 있다. <호남절의록>에서 예로부터 전라도 지역은 의병도 많았지만, 그 지역이 임진왜란 당시 유일하게 점령당하지 않은 영토이다. 게다가 전라도는 곡창지대라 많은 식량이 나오며, 전라도를 잃은 것은 전쟁에서 패배하는 것과 같다. 한편으로 곡창지대만큼 많은 수탈과 억압을 당한 지역이다. 농민이 쌀을 추수해도 대부분 나라와 권력자가 빼앗아 가버린다.

 

의병의 역사가 있는 만큼 동학운동사도 있고, 민족의 독립운동과 저항정신, 심지어 518의 민주화 투쟁도 있다. 21세기 <호남절의록>을 읽으면서 호남은 저항의 지역이기도 하나, 그만큼 아픔과 시련이 많은 곳이기도 하다. 국가의 주인이 국민인 현세대에서 백성을 하늘로 봐야 할 그들이 오히려 그들의 고통을 외면하고, 지배이데올로기만 만들기 바쁜 것을 <호남절의록>이란 도서로 확인했다. 물론 기억하고 칭송해야 할 분이 많은 것은 사실이나, 그 진의를 다시 파악할 필요가 있다. 21세기 전쟁에서 의병은 필요 없다. 의병이 되기 전에 이미 국가전산자료에 의해 강제로 동원된다.

 

무기도 조총같이 수십m만 가는 게 아니라 수 천까지 날아가는 미사일이 날아온다. 물론 전쟁나면 탁월한 지휘관 내지 용사가 탄생하겠지만, 지금 무기는 과거처럼 검술과 궁술로 좌우되는 게 아니라 무기의 성능에 따라 달라지니 전쟁은 될 수 있으며 피하는 것이 상책이고, 억지로 죽음의 길을 선택해야 할 이유도 없다. 명예가 전부이던 과거 조선이나, 그 명예를 위해 억지로 전쟁에 끌려가던 사람들을 기억해야 할 것이다. 사르후 전투에서 수많은 조선인들이 희생되었다. 그 희생을 만든 자들은 반정을 만들고, 그 이상의 조선인들을 죽게 만들었다. 역사란 반성을 해야 한다.

 

병자호란의 패배로 인조는 혼자서 삼궤구고두례 절차를 수행해야 했지만, 일제에 의해 망한 조선은 국민 모두가 삼궤구고두례보다 더한 치욕을 당해야 했다. 이것을 두고 공신목록을 기록했다면, 이런 행위를 지금에 와서 계속하거나 용인한다면 똑같은 일들이 반복될 것이다. 그런 <호남절의록>이라 책 내용을 다 읽으면 비장미를 억지로 밀어붙인 것이 왠지 안타깝고 한심스럽다. 하지만 이런 책이 있어야 후대에 알려지고 우리가 과거의 일을 다시 보는 것이 아닐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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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7-12-07 00:13   URL
비밀 댓글입니다.

만화애니비평 2017-12-07 08:56   좋아요 0 | URL
어느순간 제 글이 헬조선의 기원을 찾아가는 블로그로 바뀌어 가고 있습니다.
없는 사람, 백성을 위한 양반들은 바른말을 하다 의금부에 끌려가서 맞아죽고
또는 사문난적으로 몰려 끔찍한 보복에 집안이 몰락합니다.

앵반이란 존재가 행정가 및 사상가로서 백성의 삶을 돌봐야 하는데
그리고 문자를 모르는 백성을 위헤 학문을 해야 하는데 시문놀이만 추구했죠.

돌이켜보면 남인계열 학자들이 조선후기에 성리학 외에 의학, 복서, 지리학
수리학, 천문학 등을 연구하는데, 다 농사에 도움이 되고 주변 지여에 살아가는
백성의 삶을 유지하게 되는 방편인데 말입니다.

예전에 성호사설을 읽으면서 성호 이익선생이 길을 가다 앞을 보지 못하는
어느 늙은거지가 남의 집 대문을 두드리면서 제발 죽여달라고 외치는
글귀가 생각납니다. 다 떨어진 옷에 추운 겨울에 비참한 몰골을 하는
그 모습을 생각할 때면 성호선생은 눈물이 난다고 했습니다.

병자호란 이후 이인좌의 난이 일어나기까지 조선은 그야말로 완벽한 헬조선이었죠.
하다못해 이익 선생의 아버지 이하진도 바른 말 하다 귀양가서 죽고
형인 이잠은 바른 말을 하다 장살당해 죽으니 참으로 한심하기 짝이 없는 역사이고 그런 역사를 만든자들이 책임의식 없이 성리학에 의한 영웅주의만 외치니....

yamoo 2017-12-07 20:24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양난 이후 조선 조정이 한 행태를 보면 나라가 망하지 않는 것이 오히려 이상한 일이지요.

남인이 상대적으로 부국강병을 위주로, 백성을 위하는 정책을 많이 시행하려고 한 듯합니다. 노론 세상이 되니 헬조선이 된 듯....그러고보니 헬조선의 계보의 중조는 아마도 노론 일당 체제가 득세한 조선 후기가 아닌가 합니다~

만화애니비평 2017-12-08 20:16   좋아요 0 | URL
항교에 가면 제일 먼저 할일은 송시열과 송준길을 배향대상에서 제외하는 겁니다. 백성들이 배고픔에 절규할 때 대동법을 시행햐라 하는데, 이때 김육이 제안하자 같은 서인 그리고 노론의 창시자인 우암 송시열이 반대합니다. 산당 즉 재야에서 활동하는 사대부들이 농민을 보살펴주지 못할 망정 계속 착취하는 형국에서 헬조선의 역사는 다시금 불국토로 만듭니다.
 
브루스 커밍스의 한국전쟁 - 전쟁의 기억과 분단의 미래
브루스 커밍스 지음, 조행복 옮김 / 현실문화 / 2017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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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8년 평창 올림픽이 개최된다. 올림픽 마스코트가 백호와 반달곰을 기반으로 제작된 캐릭터이다. 이 캐릭터를 보면 사람들은 무슨 생각을 했을까? 나는 단방에 생각한 것이 있었다. 곰과 호랑이는 한국인의 국조 단군신화에 나오는 존재이다. 단군신화는 한국인의 시작이고, 한국의 역사와 신화의 시작이다. 단군신화가 없다면 한국인이란 정체성은 사라지는 것과 마찬가지이다. 1988년 서울에서 개최된 올림픽 역시 호돌이와 반달곰 캐릭터가 등장했다. 한국에서 단군신화를 결코 놓칠 수 없는 이유는 많을 것이다. 하지만 단군신화의 중요성은 단순히 국제행사의 마스코트로 상징성을 부여하는 것은 아니다.

 

한국인은 하나의 민족이지만, 국가는 2개로 분단되었기 때문이다. 대한민국(大韓民國)의 전신은 고종황제께서 반포하신 대한제국(大韓帝國)에서 따온 말이고, 한국(韓國)은 고대 우리의 국가인 삼한(三韓)의 한()을 가지고 온 것이다. 생각하면 그렇지 않은가? 한국이란 국가는 우리이기도 하나, 한편으로 우리는 남한(南韓)이라고 말하고, 저 위에 있는 정권은 북한(北韓)이라고 한다. 반대로 북한은 자신을 두고 조선민주주의인민공화국(朝鮮民主主義人民共和國)이라고 한다. 그들은 자신을 두고 북조선(北朝鮮)이라 하고, 우리를 보고 남조선(南朝鮮)이라 한다.

 

단어를 본다면 북한은 조선을 우리는 한국을 인용하는 점이다. 그러나 대한민국의 역사, 그리고 대한민국 이전의 역사 조선, 조선이란 국가가 단군조선을 계승한 점을 생각하면 국가의 이름에 아주 깊은 뜻이 있는 셈이다. 하지만 전쟁이나 전투에서 다른 국가와 민족보다는 같은 국가 내에서 같은 민족끼리가 더 잔인하고 비극적인 결말을 부른다. 신화에서도 그리스비극 오이디푸스왕과 아가멤논왕의 가족이야기는 비극을 넘어 인간의 딜레마를 보여준다. 같은 종족이기에 같은 형제이기에 갈등은 더욱 무섭다.

 

집안에서도 마을에서도 친하게 지낸 사람끼리 다투면 그 화가 더 심해진다. 타인에 대한 애정과 관심이 높을수록 증오와 복수는 깊어지는 게 인간이 가진 딜레마이다. 한국전쟁이 일어난 지 64주년이 되고, 광복절은 61주년이 되었다. 그러나 아직 우리는 일제로부터의 광복과 한국전쟁에서 벗어나지 못했다. 여전히 조선총독부에 의해 징용에 끌려간 청년들, 위안부 성노예로 끌려간 소녀들의 영혼은 안식을 찾지 못했다. 이들의 영혼을 위로받지 못하는 이상 우리는 영원히 독립국가라 말할 수 없고, 한국이 통일되기 전까지 한국전쟁은 끝난 것이 아니다.

 

한국전쟁(韓國戰爭)은 종전(終戰)이 아닌 휴전(休戰)이다. 최근 북한 핵문제나 휴전선 귀순병사 사건을 보면서 우리에게 남겨진 지난날의 슬픔을 지워지지 않았다. 그러나 우리는 이런 문제로부터 시선을 돌리면 안 된다. 조선을 잊는 것은 분단 이전의 한국을 버리는 것이고, 일제와 전쟁을 피해 멀리 외국 타향에서 외롭게 살아가는 고려인들을 버리는 것과 같다. 이 모든 비극의 씨앗은 그 당시 살아간 이들만 아니라 이들의 후예까지 이어지고 있다. 그리고 그 후예들은 아직도 우리라는 사실을 가끔 우리들은 망각한다.

 

예전에 형과 집안 이야기를 나눈 적이 있었다. 우리 집안은 일본제국주의에 많은 원한을 가지고 있었다. 할아버지의 큰형님과 동생분이 징용에 끌려가고, 해방 후 돌아오신 할아버지의 큰형님은 그만 병으로 세상을 하직했다. 본래 집안이 양반가문이나, 몰락한 남인의 후예이기에 그 여파로 할아버지는 한자를 제대로 읽지 못한 농부였다. 그래서 한국전쟁 전후로 공산주의가 무엇인지 자유주의는 무엇인지 전혀 몰랐다. 그러나 한국전쟁 시기 밤이면 늘 시골집 근처에 있는 저수지 들풀 사이에서 숨어 지냈다고 한다.

 

게다가 정치적 이데올로기와 아무 관련도 없는데도 빨갱이로 몰린 누명도 있었다고 했다. 비록 20년 전에 세상을 떠났지만, 그분이 살아온 인생은 순탄치 못한 굴레의 연속이었다. 징용에 끌려갈 뻔했으나, 스스로 몸을 자해하여 운 좋게 징용당하지 않았다고 한다. 이런 가족의 비극적 시나리오에서 <브루스 커밍스의 한국전쟁>을 읽었다. 한국전쟁과 관련된 도서로 가장 잘 읽은 서적은 박태균 교수의 <한국전쟁>, 김태우 박사의 <폭격>이었다. 한국전쟁사를 일방적인 관점이 아니라, 미국과 소비에트 러시아의 군사기밀해제문서를 다각적으로 정리하여 만든 도서이다.

 

전쟁은 단순히 이분법적으로 볼 것이 아니라 전후맥락을 관찰해야 하고, 특히나 그 시대에 전쟁 당사국이 아닌 주변 국가의 정치군사적 갈등도 확인해야 한다. 한국전쟁을 시기적으로 잘 정리하고 풀이한 도서는 박태균 교수님의 서적이다. 하지만 그 이상으로 한국전쟁에 가려진 분노와 역사적 관점은 브루스 커밍스와 김태우 박사의 책이다. 김태우 박사의 책에서 북한이 패배한 전쟁이 아닌 것처럼 보이나, 사실 북한은 상당한 피해를 받고 모든 것이 사라진 전쟁이라 말한다. 이에 반해 브루스 커밍스는 미국은 한국전쟁에서 이기지도 못하고, 압록강에서 후퇴하여 패배한 전투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완전한 승패가 나누지 못한 패배한 전쟁이라 말한다.

 

전쟁은 패배하지 않아도 패배라고 말하는 이유는 미국은 이 전쟁에서 이기지 못했고, 그들이 저지른 행동들이 결코 떳떳하지 못했던 것이다. 최근 노근리 사건을 대두되고 있는데, 노근리 학살과 관련하여 한국전쟁 당시 민간인에 대한 학살이 상당히 많았다고 한다. 한국전쟁에서 한국인이 300만명이 사망하고, 그 중 반 이상이 민간인이다. 한국인에 대한 학살이 미군도 그러하나 왜 자국민끼리 그럴까? 브루스 커밍스는 한국전쟁에서 미군과 중공군의 개입보다 한국인끼리의 혈전에 많은 생각을 보여준다.

 

전쟁의 시작은 1950년이 아니라 1932년부터란 점이다. 일본의 괴뢰국가인 만주국이 설립된 시기, 만주군관학교에 많은 조선인들이 일본군장교로 임관하고, 그 중 일부는 유명한 대한민국 육군 장군이 되었다. 대한민국 초기 육군 장군과 육군사관학교는 친일세력에 의해 만들어졌고, 그들과 더불어 경찰과 관료조직은 친일파들이 메우게 되었다. 이들은 자국민에 대한 탄압이 무척 잔혹했고, 항일독립투사에 대한 탄압도 지독했다. 민간인 학살에서 보여준 만행은 이가 떨리는 정도이다.

 

어느 친일파 장교출신 육군 장군은 한국전쟁 당시 마을 소년을 산에 끌고 와서 10명 중 9명은 일본도로 목을 베고, 나머지 1명에게 죽은 9명의 머리를 가져가게 했다고 한다. 군부와 경찰에 대한 불신과 문제점은 대한민국 독립운동사에서 등장하고, 대한민국 독립운동가 중에 가장 많이 몸담은 단체가 대종교이다. 대종교는 국조 단군을 모시는 민족종교로 많은 독립운동가들이 대종교 신자였다. 대종교 신자가 해방 후 서울에 오니 당시 자신을 지독하게 고문한 일본순사가 한국경찰이 되어 있었다. 항일무장투쟁을 하던 김원봉 대장도 해방직후 일제시대 순사를 했던 친일파에게 잡혀 고문을 당하고, 북으로 넘어갔다.

 

따라서 친일파와 친일파에게 불만을 가진 한국인의 대립이 이미 1930년대부터 존재했고, 쥐잡이작전은 육군사관학교에 가장 인기 높은 전략이다. 그런데 그 작전의 기원은 일본군이 하일유격대를 처치하기 위해 고안한 고도의 전략이다. 독립운동을 하던 사람은 대부분 중국 및 러시아 일대에서 활약했고, 사회주의 노선 항일투쟁가들은 중국 공산당과 협력하여 활동했다. 중국내전에서 조선인이 있었다는 사실은 의외였다. 한국전쟁은 중국과 소비에트연방, 그리고 미국의 파워게임에서 시작되었으나, 이미 그 전초는 한국인 내부에 있었다는 점이다.

 

브루스 커밍스 교수가 미국인이나, 은근히 한국사회와 역사, 게다가 문학과 신화 등 전반적인 한국문화를 이해하고 있었다. 한국전쟁의 갈등은 당시 전쟁만이 아니라 21세기에 이어지고 있다는 것을 잘 알고 있었다. 이 책의 서문에 그는 김대중 전 대통령에게 자신의 책을 바친다고 적었다. 반정부 인사, 평화중재자, 정치가로 활동한 그를 말이다. 지금도 김대중 전 대통령을 두고 호남에 태어났고, 한국전쟁 전에 인민위원회 활동으로 빨갱이란 꼬리표가 따라 다닌다. 하지만 브루스 커밍스는 김대중 전 대통령이 몸담은 곳은 공산주의 세력과 무관하고, 김대중 전 대통령이 아닌 각종 인민위원회는 자생적 조직이라 말했다.

 

그런 증거는 미군의 문서에서 발견되었고, 당시 미군은 한국의 자체조직에 대해 부정적으로 보고 있었으며, 이들을 공산주의와 같은 세력으로 보았다. 대표적인 학살사건은 제주도의 4·3사건이고, 당시 제주도 주민들은 아무런 통신장비도 없었기에 공산세력과 연락을 취할 방법이 없었다. 하지만 이런 생리를 잘 이해하지 못한 미군과 서북청년단은 경찰세력으로 편입하여 민간인 학살을 주도했다. 아직도 제주도는 4·3사건의 비극에서 몸부림을 치고 있다. 당시 몇 만명의 주민들이 살해당했고, 몇 만명의 주민은 일본으로 대피했다고 한다. 그리고 그들의 후손은 아직도 일본에 있다고 한다.

 

빨갱이로 낙인찍히면 본인은 물론이고 가족에게 화가 미친다. 빨갱이라고 지목된 남자의 아내 여동생, 누나가 있다면, 많은 사람들 앞에서 윤간을 하고, 그것도 모자라 희생자의 성기 안에 수류탄을 넣었다고 한다. 이 글귀를 보는 순간 온 몸에 소름이 끼쳤다. 그 잔인함이란 인간으로 해서 안 될 경계선을 넘은 것이다. 3살짜리 어린 여자아이가 총에 맞아 울고 있으니, 총에 달린 검으로 그 아이의 목을 베기도 했다. 당시 8살 소년은 자신의 여동생이 억울하게 죽어간 모습을 보았다. 평생의 상처가 되어 부모의 이름조차 말하지 못하다, 드디어 21세기 (진정한 의미로) 민주주의 정부가 도래하면서 당시의 비극을 말했다.

 

지금도 그렇지만, 당시의 미국은 한국에 대해 더 심각하게 대했다. 지금은 우방국가라고 하지만, 당시 한국전쟁 전후는 일본의 전진 군사국가, 일본의 전후경제 복구를 위한 체계로 보았다. 한국전쟁 당시 미군의 군수물자 공장을 맡은 일본은 경제적으로 급성장을 했다. 미군에 의해 항복한 전범들은 일부 사형에 처해졌지만, 그들의 후손 대부분이 일본의 총리와 의원직을 차지하고 있다. 아베 신조를 비롯한 자민당 의원은 대부분 우익정치가 내지 군인들의 후손이다. 미국에게 가장 치욕을 당한 그들이 이제는 태평양 국가 중에서 미국과 가장 가까운 나라가 되었다.

 

한국인들은 미국의 최고 우방은 한국이라 여기나, 사실은 일본이다. 동북아시아 미군기지 중 가장 핵심 전략은 일본 오키나와 주변에 포진하고 있다. 괌은 미국의 영토이니 그렇다 하더라도 미국영토가 아닌 미군의 군사력은 일본에 많이 포진하고 있다. 1950년 한국전쟁은 내전이고 주변 강대국의 이해관계에 의해 좌우된 전쟁이다. 하지만 전쟁에서 보여준 잔인성과 비극은 이미 뿌리내린 씨앗이 있었기 때문에 가능했다. 한국전쟁 당시 한국군이나 북한군과 아무 관계없어도 단지 북한군의 의복을 세탁을 해준 이유로 많은 여성들이 살해당했다.

 

그들은 이데올로기 내지 사상 따위는 전혀 모르는 까막눈이며, 오로지 원하는 것은 굶주린 배를 채울 수 있는 식량이었다. 이런 민간인들의 속성을 모르는 미군과 주변 강대국, 일제강점기 때부터 싹이 튼 원한과 공포는 광기의 도가니로 몰았다. 한국전쟁이 세계전쟁사 특히 항공전쟁사에서 가지는 의미가 중요한 점은 세계 2차 대전보다 한국전쟁에서 폭격기의 역할이 두드러지게 활약했고, 폭격기는 각종 군사시설 및 산업시설을 파괴했을 뿐만 아니라 수많은 민간인들을 죽이게 만들었다.

 

한국인은 대부분 흰색옷을 입으니 그들은 민간인인 것을 알아도 흰색만 보이면 무조건 폭탄을 투하했다. 민간인들에게 대피할 것을 권유해도 떠나지 못하는 것을 이해하지 못한 것도 있다. 한국인은 기본적으로 농업에 종사하고, 집안의 조상이 산에 있기에 쉽게 고향을 버릴 수가 없었다. 여기에 만주군관학교 출신 친일파장교들이 수행한 독립군 토벌작전도 포함되어 있다. 간도나 만주의 조선인들은 몰래 독립군에게 식량과 군자금을 지원하는 지원세력이었다. 그곳 출신 청년들은 독립군의 용사가 되어 일제에 항거했다.

 

조선의 민간인을 친일파 조선인들이 무참하게 살해하였던 것이다. 이런 그들이 이승만의 정치세력으로 등장하여 한국전쟁까지 이어졌다. 제주도 4·3사건 당시 제주도 주민들은 대부분 희생자의 친척들이었다. 이들의 증오와 복수심은 지금도 제주도의 한으로 남아있고, 이들의 저항을 막기 위해 더 심한 억압과 폭력을 가한 것이다. 제주도만큼 심하게 압박을 받은 곳은 전라도지역이다. 전라도는 동학운동 시절 가장 착취를 많이 당한 지역이고, 외세가 가장 많이 초토화시킨 지역이다. 청일전쟁에서 전라도 지역이 많은 타격을 받았고, 일제강점기 시대에 가장 많은 곡식을 수탈당했다(왜 군산시가 항구도시로 성장했을 수 있는가?).

 

전라도 지역사람들이 폭압을 당한만큼 그들 역시 저항을 많이 했다. 그래서 제주도처럼 이데올로기의 대립에서 많은 사람들이 갈등을 빚은 곳이었다. 지금 전라도 내부에서는 자신들끼리 이데올로기적으로 대립하기보단 타 지역과 갈등을 빚고 있다. 518의 비극에서 아직도 빨갱이로 낙인이 찍히고 있는 그들을 보면 참으로 마음이 아프다. 한국전쟁 전후의 한국사를 보면 항상 피해자가 악마나 마녀 내지 적으로 간주되어야 했기 때문이다.

 

역사는 승자의 기록이라고 하나, 단지 그것은 살아남은 하나의 국가나 사회적 합의체이지 그 사회 내의 존재들이라면, 결국 역사적 진실은 다시 우리에게 찾아오는 법이다. 브루스 커밍스의 책을 보면서 E.H Carr<역사란 무엇인가>가 다시금 떠오른다. 역사는 과거에 있었던 일이고, 그것은 하나의 진실이다. 하지만 진실은 어느 관점에 따라 사실과 왜곡으로 변모된다. 20세기 한국에서 광주는 불온세력이 포진한 지역이라면, 21세기 현재 광주는 한국의 민주주의를 성숙시킨 곳이다.

 

서평을 보자면 한국전쟁 전후로 민간인 학살을 한국인과 미군만 했을까 라는 의문이 들겠지만, 북한군 역시 민간인을 학살했다. 문제는 민간인학살을 하던 전범들은 자신들이 저지른 죄를 부정한다는 점이다. 그 죄를 건들면 아직도 이데올로기적인 마녀사냥을 구가한다. 당시 한국전쟁의 전환점은 미군의 군사력이다. 미군은 2차 세계대전 시에도 국방력을 그렇게 올리지 않았다. 하지만 한국전쟁 이후 군사력이다. 한국전쟁을 기해 미국은 방위산업체의 확대되고, 지금 미국의 방산업계는 세계 최고이다. 한국전쟁은 미국에게 있어서 2차 세계대전처럼 파시스트에게 이기기 위해 싸우는 것이 아니라 세계 패권을 잡기 위한 싸움이다.

 

그 전쟁은 베트남전쟁도 이어지고, 냉전체계로 이어진다. 그리고 그 당시 미국 상원위원인 메카시가 있었다는 점도 중요하다 메카시즘은 미국정치와 사회를 숙청의 소용돌이로 몰아넣었고, 그 시기 한국은 공산진영과 전쟁을 벌였다. 브루스 커밍스의 책에 언급했지만, 더 자세한 것은 <폭격>이란 도서에 나와 있는데, 미군은 유색인종인 동양인을 상당히 무시했다. 일본 상공에 폭격을 하나 한국의 농촌을 폭격하는 심정이었다. 한국인도 그들에게 하나의 gook(동양인을 멸시하는 말)이었다. 그렇게 학살하고도 이기지 못한 전쟁, 게다가 민간인학살까지 저지른 일들이 한국전쟁은 미국에게 잊어진 전쟁이 되었다.

 

다르게 생각하면 미국에서 베트남전쟁에 대한 미디어가 참 많다. 베트남전쟁에서 미군에게 베트남 그 자체가 적이나, 한국은 적이 아니라 반쪽자리 우방국이다. 압록강까지 올라가 흥남부두에서 쫓기듯 내려온 그들에게 한국이란 인상은 좋지 않다는 것이다. 한국전쟁을 두고 변증법적인 논리로 보자면, 한국전쟁 이전 일제치하에서 조선인들을 상대로 횡포를 부린 친일파와 그들과 대치한 민중의 갈등에서(방안에 가득 찬 메탄가스), 소비에트의 지원을 받은 김일성 정체세력이 총(라이터)을 발사한 것이다.

 

1950년보단 못하나, 아직도 그 메탄가스는 여전히 우리 주변을 부유하고 있다. 이데올로기의 갈등은 정치적 세력으로 표출되며, 정당간의 대립은 한국전쟁과 그 이전에 존재했던 과거의 그늘에서 나오고 있다. 저자의 놀라운 관찰력은 노무현 대통령이 대통령 후보로 나올 때의 이야기도 알고 있었다. 노무현 대통령의 영부인 권양숙 여사는 어릴 적에 아버지를 여의였다. 아버지는 사회주의 단체와 연계되어 있지만, 앞을 볼 수 없는 맹인이란 점에서 그가 실제 전쟁에서 한국군에게 위해를 가할 수 있는 조건이 되지 못한다.

 

하지만 그런 과거를 가지고 색깔론을 상대편 후보가 펼쳤다. 그 시대가 한국전쟁이 끝난 지 54년이 넘어도 그런 말이 나왔다. 이런 이데올로기적 갈등이 계속 우리 사회에 남아있다면 한국전쟁의 불씨는 꺼질 수 없을 것이다. 당장 북한과의 대화를 해야 하나, 한국사회의 갈등은 국내외적으로 정치, 군사, 외교에 큰 갈등을 야기한다. 전 정권의 정부는 일제가 저지른 위안부 문제와 징용문제를 신속하게 해결하려 했다. 당시 자국민들과 그들의 후손들이 지울 수 없는 고통을 받고 있는데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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NamGiKim 2018-04-14 00:22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좋은 리뷰 잘봤습니다. 저도 이 책 읽어봐야 겠어요.

만화애니비평 2018-04-14 21:14   좋아요 0 | URL
아이고 칭찬 감사합니다
 
포비아 페미니즘
박가분 지음 / 인간사랑 / 2017년 9월
평점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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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들어가면서

전에 친한 동생 녀석하고 같이 호프집에서 생맥주를 마시며 대화를 나눈 적이 있었다. 이때 내가 질문한 것이 있다. “사람이 아프면 어떻게 해야 하는가?”, 동생은 여기에 대해 형님, 그건 병원에 가야 하지 않겠습니까?”, 다시 내가 그러면 병원에 가면 무엇이 가장 필요하겠는가?”라는 질문에 동생은 아무래도 의사가 필요하겠죠.”라고 대답을 했다. 물론 상식적인 보통 인간이라면 그 대답은 정답이다. 하지만 중요한 부분이 있다. 병원을 진료를 받을 때 진료를 하는 주체는 의사이고, 의사는 병원에서 근무하는 직원이다.

 

병원을 하나의 미디어(media)라고 보면, 의사는 콘텐츠(Contents)라고 볼 수 있다. 최근 미디어콘텐츠의 관계성에서 인터넷의 각종 문화적 매체만을 미디어와 콘텐츠로 보는 게 아니라 일상생활에 접하는 요소조차 미디어와 콘텐츠로 볼 수 있다. 내가 이런 말을 하는 이유가 무엇인가? 나는 동생에게 이렇게 말을 보강해주었다. “환자가 아프면 병원에 가는 것이 맞지. 하지만 병원을 가려면 병원이라 그 건축물이 필요하고, 병원을 가기 위해서는 도로가 필요하지. 즉 도로와 병원이라 기반시설이 없으면 아무 의미가 없다고 말한 것이다.”

 

이런 말을 한다면 보통사람들은 왠지 지나치게 멀리 간 것이 아닌가 하는 의문이 들지만, SOC(social overhead capital) 이른바 사회간접자본(社會間接資本), 인프라는 것이 구비되어야 한다는 점이다. 사회간접자본은 병원시설부터 시작하여 도로, 철도, 공항, 항만, 상하수도, 전기통신 등 다양한 시설들이 있다. 문제는 바로 여기서 모든 것이 시작된다는 점을 일반 사람들은 잘 모르는 것이다. 즉 사회기반시설이 도심지에 구비되지 않으면 도심지의 기능을 할 수 없으며, 사회기반시설이 제대로 돌아가지 않으면 그 역시 사회생활에 많은 문제가 따른다.

 

우리가 일화로서 전기가 정전이 되거나, 혹은 겨울철 상수관로가 동파되어 물이 공급되지 않을 경우가 있다. 그때 겪는 불편함이란 이루 말할 수 없다. 사회간접자본은 시설물, 즉 움직이지 않고 고정된 형태 구조물을 통해 유틸리티가 끊임없이 제공된다. 병원에 가는 병원이란 건물이 없으면 진료가 어렵다. 가령 대도시가 아니라 산골이나 농촌 같은 벽지에 사는 마을주민은 종합병원을 찾아가려면 몇 십 를 차로 가야하며, 하다못해 섬에서 사는 주민은 배나 헬리콥터를 이용하지 못하면 생명에 큰 위협을 받는다.

 

병원에 가야 하는데 병원시설이 없고, 병원시설에 가야하는데 교통기반시설이 구축되지 않으면 어떤 일이 발생하는가? 일부일 수 있으나 상당한 큰 불편함을 겪어야 하고, 그런 시설이 구비되어도 인프라 시설이 제대로 운영되지 않으면 그 역시 불편함을 겪는다. 여름철 폭우로 교통사고가 났는데 구급차가 사면부 옆 도로가 유실되어 골든타임을 놓친다면 사고를 당한 사람은 더 이상 희망을 찾을 수 없다. 결론은 사회가 제 기능을 발휘하고, 거기에 따른 문명적 혜택을 누리기 위해서는 인프라가 제대로 구비된 상태에서 지속적으로 운영되어야 하는 것은 당연하다.

 

문제는 인프라의 보충과 유지의 업무는 녹녹치 못한 일이다. 왜냐하면 대부분 인프라와 관련된 업무를 하는 사람은 건설계통 노동자이기 때문이다. 건설계통 노동자 중 설계엔지니어링을 제외한 대부분 기술 인력은 현장에 상주한다. 현장에 상주한다는 것은 시공과 감리, 관리업무를 한다는 점이다. 현장세계는 늘 위험과 안전사고가 마주하고 있다. 한 해 안전사고로 사망하는 사람이 수 천명에 이른다. 제일 유명한 사건은 서울2호선 구의역에서 일어난 스크린도어 노동자 사망사건이다.

 

또한 거제조선소에서 붕괴된 크레인이나, 고속도로에서 도로정비를 하던 노동자가 고속주행 중인 차에 부딪혀 사망한 사례들이다. 우리가 늘 현실에서 마주하는 인프라시설을 유지하기 위해서 많은 노동자의 노력과 희생이 따른다. 특히 철도나 지하철 같은 대중교통 수단에서 철로를 수리하던 노동자들의 사고는 늘 문제가 되었다. 그들의 사고를 유심히 보면 안전관리 미비, 근로기준 시간 초과, 휴식시간 보장 미비 등 다양한 사유가 있다. 그리고 그들 대부분 정규직이 아니라 비정규직 노동자들이 많다. 대한민국의 하루를 만드는 자들이 가장 열악한 환경에서 희생당하는 현실이다.

 

이들의 희생은 자본주의 경제구조에서 이윤만을 추구하는 회사 운영진, 사회적으로 관심 받지 못한 채 소외받는 서민들이다. 아침에 출근하기 위해 버스 정류소에 가면 새벽부터 운행하는 버스기사가 있고, 자가용을 이용하여 출근할 때 도로를 보수하는 건설노동자가 있다. 게다가 도로와 관련된 업무는 대낮보단 심야시간에 주로 이루어진다. 야간작업에 따른 노동 집약도가 높으며, 시야의 확보가 제대로 되지 않은 점에서 안전관리가 무척 어렵다. 이런 일을 하는 사람들은 보통 서민이고 비정규직 노동자가 많다. 다행히 버스는 준공영제가 되었다고 하나, 우리 사회에 비정규직 노동자의 처우가 무척 심각하다. 그렇다면 난 왜 이들의 현실을 말하고 있는가?

 

2. 페미니즘이 아닌 페미니즘

2016년 강남역에서 묻지가 살인사건이 일어났다. 이 문제가 여성혐오로 일어난 범죄인지 아닌지 모르나, 적어도 상당히 잘못된 일이고, 그것은 다시는 일어나서는 안 될 비극이다. 내가 이 사건에서 그 살인자를 두고 여혐인지 아닌지 따지는 것은 무의미하다. 일부 여성 진영에서 여성혐오라고 하나, 경찰과 범죄정신분석에서는 약물의존과 정신병에 의한 행위로 보기 때문이다. 어디가 논리이냐 아니냐를 말하는 것 이상으로 중요한 문제는 피해자의 가족들이다. 이 사건의 최고 희생자는 살해당한 본인이 아니라 그 가족과 주변사람이다. 인간이 사망하면 그 자신이 피해를 받았다는 인식과 판단을 할 수 없으며, 범적인 절차와 행정적 절차 역시 피해자 자신은 아무 것도 할 수 없다.

 

여성 진영에서 이 사건을 두고 모두 공포와 공허감을 느끼며 페미니스트운동을 펼쳤고, 사회적 문제에 대해 이슈를 건넨 것까지는 나쁘지 않았다. 문제는 그들이 어떤 방식으로 가고 있었나는 것이다. 죽은 피해자의 가족에게 찾아와 그들의 고통을 대해 서로 다독거리는 것이 아니라 페미니즘 이야기만 하고, 그들의 가족이 남성이란 이유로 남성이 여성의 죽음을 두고 슬퍼할 자격이 없다고 말한 것이 그렇다. 인간이 억울하게 죽어 그 가족과 주변 사람들이 실의에 빠져 있는데, 이런 말을 하는 것이 상식적으로 맞는 가이다.

 

혹은 누군가 이런 일에 충격을 받거나 과거 성폭행 내지 성추행에 당한 분이 있더라도, 직접적으로 피해를 당한 가족에게 그런 식의 발언을 하는 것도 문제고, 그것에 대한 문제의식 없는 것 역시 심각하다. 게다가 일반남성들은 이유 없이 여성을 구타하거나 성폭행하지 않는다. 정상적인 사람이라면 타인을 헤치거나 모함할 이유는 없다. 상식적이지 못한 사람이나 혹은 비인간적인 사람만 그런 행위를 한다. 문제는 모든 남자를 범죄자로 모는 것과 그것이 곧 범죄는 어떤 특수한 상황이 아니라 늘 현실에서 24시간동안 이루어진다는 점과 마찬가지라고 말하는 것과 같다.

 

공포의 심리는 사회적 큰 이슈를 남겼고, 인터넷은 서로를 비난하는 아수라장이 되었다. 반대로 구의역에서 비정규직 노동자 남성이 작업 중 안전사고로 젊은 삶을 마감했다. 그가 죽었을 때 많은 사람들이 추모를 했고, 비정규직에 대한 안전관리 및 대우가 무척 심각한 것은 다시 보여주었다. 월급도 적고 근무시간은 빡빡하여 점심밥조차 제대로 먹지 못한다. 그가 죽었을 때 정상적인 사람, 그중에 일반 여성들은 어떻게 보겠는가? 그 청년의 죽음을 두고 안타까워하고, 그의 죽음에 소극적으로 대응하는 사측에 분노를 느꼈을 것이다.

 

그런데 어느 순간 그 청년의 죽음을 두고 비난하고 조롱하는 부류가 있었다. 심지어 전태일 열사의 죽음을 희롱하고, 백남기 어르신의 죽음을 조롱했다. 메갈리아 워마드는 미러링 수법으로 여성혐오에 대한 불만으로 남성혐오 발언을 한다고 했다. 하지만 이들의 죽음에서 여성혐오는 전혀 상관없고, 그저 안타까운 죽음이다. 이들의 죽음을 조롱하는 부류는 일베나 극우성향의 네티즌이었다. 만일 메갈리아 워마드가 여혐을 미러링 한다면 남녀간의 젠더적 문제를 다루어야 하는데, 그들은 전혀 상관없는 사람들에게 혐오발언을 했다.

 

일베가 여성을 비하한 말을 했다고 해서 남성들이 그것을 동조하는 것은 아니고, 메갈리아가 남성을 비하한다고 여성 전체의 말은 아니다. 하지만 일부 엘리트 진보진영에서 메갈리의 담론을 페미니즘이론으로 전환하여 혐오적 담론과 사회적 이슈를 이용하여 자신의 주장을 펼치기 시작했다. 내가 이들의 행위에 회의감을 느끼는 이유는 포스트모더니즘 사회도래 이후 (권력이 없는) 자신들의 입장을 내세우는 것은 정당화되어도 그것이 윤리적 한도를 초과해서는 안 된다. 윤리적 한도를 초과하여 타인에게 직접적으로 피해를 주고 그것이 문제라고 말하면 오히려 여성운동을 저지하는 남성권력이라고 말한다.

 

억울하게 죽은 사람들이 처음부터 권력이 있었다면 저렇게 될 리가 있을까? 이들의 착각이 심각한 이유는 바로 이렇다. 일베가 죽은 (남성)노동자를 조롱하면 그것은 메갈리아 워마드가 추구하는 유아적 페미니즘과 분명히 다르다. 일베가 조롱한 사람을 메갈리아 워마드 역시 조롱했다. 흔히 페미니즘 세력에서 말하는 너희 남성이 우리를 조롱했으니 우리도 여기에 대해 조롱한다.”라는 전략이 틀린 것이다. 국가주의적 발상과 시장자본주의에서 경영자 마인드를 지지하는 극우적 발언이 이제는 메갈리아 워마드에서 나왔다.

 

페미니즘이 진보진영에서 담론화 하는 형국에서 극우적 발언이 진보의 꽃이라고 보던 메갈리아 워마드에서 나온 점에서 한국 진보진영의 엘리트들은 이미 좌파세력으로서 상식과 도덕을 배반한 것이다. 여성학자들이 대부분 진보진영에 속한다. 그러나 이들이 말하는 남녀 간의 불평등에서 기존 기성세대가 지닌 문제는 거의 틀리지 않고, 때로는 가장 중요한 문제를 지적한다. 하지만 기성세대의 문제가 점차 20대 내지 30, 그리고 10대로 내려오면 전혀 다른 이야기가 전개된다.

 

사회적 약자라던 여성이 점차 사회적으로 요직에 나가게 되면서 그 자리를 사회적으로 직급이 높은 자들이 차고 올라간다. 하지만 하부에는 그렇지 못하다. 계급적 박탈감은 남녀를 모두 떠나 사회 그 자체의 문제가 되었는데도 말이다. 그러나 이들은 아직도 여성이 약자라고 본다. 분명 신체적으로 남성이 유리한 부분이 있으나. 사회적으로 남성만이 유리하지 않다. 대부분 권력자가 남성인 것은 사실이나, 그 권력자의 권좌를 모든 남성이 앉는 것도 아니고, 일부 남성이고, 대다수 남성들은 거기서 소외된다.

 

3. 진보의 문제

한국에서 좌파와 우파 문제를 다룬 것만큼 피곤한 문제가 없다. 한국적 시선에서 정하기 때문이다. 서구의 정식이론이 있어도 좌우 이데올로기는 둘째 치고, 자유주의 사상조차 제대로 검증하지 못한다. 아직도 자유주의 사상을 두고 반공이데올로기로 보고 자유주의는 70년대 군부독재가 지배하던 구조로 생각하는 사람도 많다. 한국의 진보운동의 시작은 이상하게 시작되었다. 자유주의사상은 인간의 자유가 아니라 자본주의시장경제를 제대로 활용할 수 있는 것이 자유주의이고, 사회주의는 그렇지 못한 체계로 본 것이다. 자유주의이든 사회주의이든 모두 자유를 중요하게 보고 있다.

 

경제적 자유와 사회적 자유는 완전 같은 것이 아닌데도 같은 것으로 보는 오류가 존재한 것이다. 가령 한국의 유교사회라 하여 조선의 성리학을 제대로 알고 있는 노인도 없으며, 공자의 <논어>조차 읽은 어른도 없다. 어른이 말하면 무조건 아랫사람은 토를 달지 못하는 구조는 이른바 꼰대사회로 만들었다. 나이가 많든 적든 중요하지 않다. 사회 직장생활과 학교의 선후배 사이에도 존재한다. 계급이 깡패라는 의식은 군대가 아니라 사회 전반적으로 깔린 체계이다. 남성중심의 사회구조에서 시작된 계급적 억압은 일부 남성만에게 권력을 가지고 있다.

 

최근 문재인 정권에서 피우진 보훈처장이 내각에 오르면서 그분이 예전에 군대생활을 기반으로 작성한 <여군은 초콜릿을 좋아하지 않는다>에서 고급 장교들의 행패를 다루고 있다. 영관급 장교는 군대 내에서 막강한 힘을 가진다. 장관급 장교는 상상을 초월한 권력을 가진다. 여군이 군대 내 차지하는 비중이 적었고, 그들이 처한 입장도 불리했다. 간호사관 같이 군병원을 중심으로 체계화된 조직이 아니라면 언제나 소외될 수밖에 없는 처지인 점은 분명하다. 이런 사례를 두고 군대는 남성위주이니 한국의 남성이 모두 예비적 성추행범 내지 무뢰배라는 생각은 위험하다.

 

여군은 초콜릿을 좋아하지 않아도, 일반 사병들은 초콜릿을 매우 좋아한다. 시대가 얼마나 변했는지 모르나, 피우진 처장님이 책을 쓸 시기나 혹은 책에서 묘사한 시기에 사병들은 초코파이에 열광을 했다. 일반사병들이 여군에게 과연 행패를 부릴 수 있는가? 군대는 계급이 깡패이기 때문에 피우진 처장님이 말한 일들이 벌여진 것이다. 일반사병이 밖에서 술을 마시고 여군을 부를 수 있는 것은 상상조차 불가하다. 누군가 이런 말을 했다. “남성이 역차별을 당하지 않으려면 먼저 성차별을 하지 말아야 한다.” 그 말은 상당히 일리가 있다. 하지만 중요한 문제가 있다.

 

그 분이 말하는 내용은 모든 사회적 전반이 아니라 어느 특이한 상황과 구조를 봐야 한다는 점이다. 전후맥락을 놓치고, 일방적으로 여성만 약자라는 생각은 매우 위험하다. 남성이 징병되고 여성은 징병되지 않는다. 여성이 남성보다 신체적으로 약하다는 이유이다. 리뷰를 적는 본인은 부사관으로 입관할 때 여군동기와 같이 훈련을 받았다. 내가 본 여군들은 훈련과정에서 도태되는 인간이 아니다. 자신의 한계에 충분히 이겨내는 훌륭한 사람이다. 피우진 처장님은 헬리콥터 조종사면, 더욱 강인한 정신력과 체력이 지니고 있다.

 

단지 내가 여성징병에 반대하는 것은 징병이 되는 기준은 사병부터 입영해야 하고, 그것을 위한 인프라 구조가 전혀 구비되지 않은 점이다. 아무 준비 없이 실행하는 것은 분명 문제가 있다. 21세기 중반으로 가면 인구절벽을 맞이하면 군사력 보전을 위한 징병 대상 인구를 점차 확대할 것이다. 과학기술이 발전하여 CCTV나 군사장비를 보강한다고 하면 되지만, 현재 군사조직을 본다면 거기에 투입되는 예산은 쉽게 나오지 않는다. 충분한 예산이 되면 점차 개선하겠지만, 사병들이 사용하는 군장비가 한국전쟁 때 사용하는 수통이 있다. 예비군들이 사용하는 총기는 칼빈소총이다.

 

단순히 남녀의 문제로 보는 감정적 대립보다, 현실적으로 전후맥락과 상관관계 그리고 기본적 토대를 분석하는 것이 우선이다. 하지만 이런 문제를 제대로 하려면 바른 토론문화가 성립되고, 거기에 따른 데이터베이스가 구축되어야 할 것이다. 이런 문제를 두고 진보진영에서 일부 페미니즘 담론만 받아들이면 사회구성원 국민들에게 과연 인정을 받을까? 진보진영의 문제는 바로 시대적 맥락에 많이 해리되어 있다는 점이다. 한국의 진보를 두고 그 시작은 일제강점기 시대이다.

 

일제는 만주나 상해에서 독립운동을 하는 중국인과 조선인을 이간질하기 위해 조선 내 중국인과 조선인에게 노동문제를 제공했다. 서로 다른 임금을 주고, 각 민족별로 험담을 내어 임금문제를 서로 노동자끼리 다투게 한 점이다. 이들의 갈등은 당연히 외부에서 항일운동 하는 사람에게 심리적으로 위협을 주게 되며, 일자리를 찾기 위해 임금을 적게 받는 쪽에 주는 경쟁방식을 도입하여 노동환경을 더욱 열악하게 만들었다. 한국의 진보운동과 관련하여 일본의 자본독식과 노동환경을 대해 저항한 세력이 있었다. 조선공산당(북한과 전혀 무관함)은 독립운동과 노동운동을 동시에 진행했으며, 그 타도세력은 일제였다.

 

여기에 대종교 신도를 중심으로 백산 안희제가 설립한 백산상회는 독립군의 군자금이 되어주었으며, 조선에 대한 일본의 자본침식을 저지하려 했다. 조선이 독립하여 대한민국으로 되고, 대한민국은 다시 한국전쟁으로 역사의 운명을 맞이한다. 이때 이승만 정권과 박정희 정권 그 후 전두환 정권이 한국사회를 지배한다. 이때의 진보가 내세운 투쟁의 슬로건은 국민주권과 노동운동이다. 노동환경이 열악하면 노동자가 시위를 하거나 파업을 하면 사업자는 이에 대한 문제를 같이 합의하는 것이 아니라 국가의 권력을 이용하여 폭력적으로 진압했다.

 

10.26사건 시작점은 DH사건이다. 여성노동자들(그것도 나이가 어린 여공들!)이 임금의 적정성과 노동환경 개선을 요구하다가 경찰에게 진압당하는 과정에서 한 사람이 창문으로 떨어져 그 삶을 마감했다. 진보진영이 추구한 노동인권은 단순히 노동자의 문제가 아니라 노동자를 탄압하던 국가라는 그 자체, 국가주의 파시즘을 타도하는 조류였다. 6월 항쟁과 대통령직선제, 문민정부와 국민의 정부로 옮기면서 노동운동은 민주화보단 노동문제를 중심으로 투쟁한다.

 

특히 IMF 시기로 경제적 퇴보와 신자유쥬의의 도래는 노동시장 유연화란 단어로 많은 노동자의 삶을 피폐하게 했다. 신자유주의 노선은 국제사회 흐름이고, 현재 그 노선을 따라가지 않을 경우 외교와 통상무역도 문제가 발생한다. 결론은 비정규직의 양산화, 임금의 저하, 노동환경의 부조리 등은 계속 유지된 셈이다. 진보진영은 바로 이런 문제에 대해 끊임없이 국가와 합의하여 유리한 방향으로 가야 한다. 국가정책으로 반영되어 법적 제도를 유지하지 않으면 자본주의 시장구조에서 노동자는 100% 불리하기 때문이다.

 

최근 10년간 보수화로 인해 노동환경은 가혹해졌다. 작년은 한국 최초로 대통령이 탄핵되어 파면되었다. 그렇다면 진보진영에서 봐야 할 개선안은 무엇인가? 당연히 노동문제에 대해 논의하는 것이다. 그런데 문제는 페미니즘 이론을 내세우는 진보진영 엘리트들은 이런 문제를 두고 진보의 길이 아니라 보수세력을 옹호하는 형국이 되었다. 메갈리아 워마드 발언 중 가장 문제가 남성 그 자체만이 아니라 남성이 살아가는 그 삶의 형태를 조롱하기 때문이다. 200충이란 단어가 있다. 1달에 200만원 가량 버는 남성을 두고 조롱하는 단어으로 그 대상은 돈도 많이 벌지 못하는 중소기업 내지 비정규직 노동자들이다. 20178월 기준 연봉 2,600만원 가령 받는 노동자가 상위 50%로 기록되었다. 세금과 공제금을 제하고 200만원을 월급으로 받는다면 연봉 3,700 이상이 상위 30% 이상이다. 200만원이라 하여 200만원 딱 숫자가 아니지만, 그 내외에 해당되는 노동자 대상자이다.

 

한국 노동운동이 중요한 것은 이들이 국민이기도 하나, 국민들의 생활경제가 어려우면 나라 역시 제대로 운영하기 어렵다. 인구의 감소는 국방력 보전만 아니라 경제적 수요도 문제이다. 최근 교대 학생들이 임용으로 사회적 이슈를 남겼다. 학교에 교대생을 받아들일 수 없는 구조는 인구의 감소이다. 국가가 어느 정도 해결해줄 부분이 있겠지만, 근본적 문제는 인구감소의 절벽이다. 산부인과와 소아과 의원이 감소하고, 이에 반해 한의원과 노인요양병원은 증가한다. 인구의 문제는 그 시대적 흐름에서 보여주는 실태이다.

 

인구의 감소는 경제소비능력이 감소하고, 내수구조를 어렵게 하고, 더 나아가 시장 그 자체를 감축된다. 인구감소로 인한 국가경제력이 심각한 사태에 이른 것이다. 존 스튜어트 밀의 <정치경제학>에서 본다면 한국은 쇠퇴하는 국가이다. 물론 기계의 대체화로 노동력을 그만큼 줄이면 기업은 유지가 가능하나, 고용된 노동자 입장에서 생계가 문제이다. 비정규직으로 인한 노동환경은 여전히 열악한데, 진보진영 엘리트들이 계속 물고 늘어지는 페미니즘 이론이 한국사회에 과연 좋은 길을 열어주는가?

 

이들은 비정규직 노동자를 무시하고, 더 나아가 그들과 같이 살아가는 가족을 무시한다. 맘카페 내지 다수의 인터넷동호회에서 가난한 남편과 같이 사는 기혼여성을 두고 명예자지라는 단어를 사용한다. 여성이 여성보다 남성의 편을 드는 기혼여성이라는 이유 때문이다. 거기에 대하여 메갈리아를 비판하면 페미니즘을 부정하는 것이 되고, 그것은 진보진영에 대한 도전이란 프로세스로 만드는 진보언론의 관점은 매우 심각하다. 진보언론이 노동자들의 편이라면, 그들이 처한 문제를 다룬 것은 분명하다.

 

노동환경과 메갈리아 워마드 문제의 순환도를 보자면 노동자가 사망했는데 그것이 남성(재해율이 95% 이상)메갈리아 워마드가 남성노동자의 산업재해를 두고 조롱을 함 일부 네티즌이 여기에 대하 비판하고 메갈리아 워마드를 비판함 진보진영이 메갈리아 워마드를 비판하는 사람을 두고 안티페미니즘으로 몰아세워 일베로 몰아세움

 

이런 도식이 결국 진보진영에 대한 시민사회의 불신으로 이어지게 된 것이다. 최근 오마이뉴스의 후원자가 계속 감소하여 2016516,570명에서 20171013,930으로 감소했다. 메갈리아 논쟁으로 시작하여 진보진영의 대표언론기관인 오마이뉴스의 후원자 수가 2,600명 가량 낮아진 것이다. 전체 비율의 15.7% 되는 후원자가 빠진 것이다. 시사인의 행태 역시 후원자 내지 구독자로 운영되다가 인터넷 배너 광고를 달기 시작했다. 이들을 보는 시민사회의 눈총이 그리 고운 것이 아니다. 시민사회라 해도 어느 커뮤니티 내지 기관에 속해진 사람이 아니라 네티즌으로 참여하여 꾸준히 사회정치적 문제에 관심을 가지는 사람 역시 시민사회의 일원이다.

 

4. 마르크스주의 쪽으로 생각해 보자.

좌파의 시작은 어디인가? 좌파라고 한다면 노동운동이 가장 먼저 떠오르고, 좌파의 핵심을 차지한 인물과 사상은 마르크스주의이다. 마르크스가 저술한 <공산당 선언><자본>이 토대가 되어 엥겔스, 룩셈부르크, 레닌, 알튀세르, 마르크스주의에서 새롭게 탄생한 프랑크푸르트학파 및 구조주의 사상사단들도 그 여파들이다. 마르크스주의가 소비에트 붕괴 이후 몰락할 것이라 했지만, 오히려 21세기는 마르크스주의가 세계적으로 다시 학문적으로 대두되고 있다.

 

마르크스의 <자본>을 읽으면 노동력을 착취하고, 노동강도를 올리며, 기계의 개선으로 노동임금을 감소시키며, 도구의 발달은 노동착취 대상자를 남성에서 여성으로 변모시킨다. 마르크스의 서적에서 여성노동자들이 겪는 현실에 대해 매우 심각하게 저술하고, 남성노동자와 같이 사는 여성들의 삶 역시 다루고 있다. 페미니즘 이론 중에 영국의 존 스튜어트 밀의 <여성의 종속> 같이 자유주의 이외에도 마르크스주의에 따른 페미니즘 역시 존재한다.

 

만일 진보진영에서 노동문제와 여성문제를 마르크스주의에서 본다면, 임금문제와 노동환경을 중심으로 볼 것이다. 그리고 여성노동자의 문제를 다루며, 노동문제를 개인 기업만이 통제하는 것이 아니라 국가라는 법적 강제집행기구가 있기에 국가와 기업을 동시에 고찰대상으로 봐야 한다. 올해 201711월은 러시아 볼셰비키혁명 100주년이 되는 해이다. 볼셰비키혁명의 성공은 러시아 민중의 지지도 있지만, 볼셰비키 당원들이 대부분 노동자였고, 그들은 철도와 전기, 통신, 도로 등의 인프라를 통제할 수 있었다.

 

지금으로 전자식이 아니라 수동식으로 통제했기에 군부세력은 볼셰비키세력을 무력화할 수 없었다. 노동자들이 결국 사회적 인프라를 통제하면 그 사회는 바로 혼란으로 이어질 수 있는 이유가 바로 그렇다. 마르크스주의에서 대다수 국민들은 국가와 기업의 통제를 받고 착취당하는 피지배계급이다. 임금수준이 삶을 지탱하기도 어렵고, 노동환경이 열악하여 언제 어디서 사고로 죽거나 다칠지 모르는 상황이다. 마르크스주의적 담론을 페미니즘에서 인지하여 노동자 삶 그 자체를 본다면 메갈리아 문제가 심각하지 않을 것이라 본다.

 

대다수 여성학자는 좋은 학벌을 가진 엘리트들이다. 그들이 보는 남성이란 이미 혐오발언과 행위를 일으키는 문제아들이다. 노동여건과 임금 그리고 그들 삶 그 자체를 두고 본다면 포비아 페미니즘을 공론화하지 않았을 것이다. 메갈리아와 워마드는 갑자기 튀어나온 존재가 아니라 기존 인터넷 카페에서 혐오적 발언을 하던 일부 여성들이 세력화한 부류이다. 단지 메갈리아의 발언을 페미니즘이란 옷을 입고 사회로 나온 것이다. 페미니즘의 전사로 둔갑한 이들의 혐오발언은 처음에 사이다로 느꼈을 것이나, 점차 이들의 행패나 문제는 이슈화 되었다. 강남패치, 한남패치 같은 경우 타인의 신상정보를 무단으로 노출시켰으며, 아무 관계 없는 사람을 범죄자로 낙인을 찍게 만들었다.

 

소라넷 운영자가 잡히지 않고, 자신만 잡혔다는 이유로 여성혐오로 다시 말하고, 유족무죄 무족유죄라는 발언도 만들었다. 하지만 상식을 갖춘 사람이라면 그 말은 통용되지 않는다. 남자의 성기가 있든 없든 죄를 지은 것은 변함이 없다. 사회적으로 모든 범죄를 남성으로 몰고가나, 최근 학원폭력을 봐도 남학생과 여학생 구분 없이 일어나는 점, 인천에서 일어난 엽기적인 살인사건 등을 봐도 범죄는 여자라서 남자라서가 아니라 그 개인의 문제라는 것을 보여준다. 이런 문제를 두고도 현실적으로 인정하지 않은 채 자신들의 불리함을 알아달라는 인정투쟁이 결국 정치적 올바름이 되고, 그것을 위한 발언이 윤리적으로 문제가 되어도 문제의식을 제대로 간판하지 않는다.

 

그러면 대한민국에서 가장 비참한 사건 중에서 세월호 침몰을 보자. 세월호 사건으로 인해 박근혜 전 대통령은 탄핵의 계기를 내어주었다. 물론 직접적 탄핵사유는 최순실 국정농단 사건이다. 세월호 사건에서 국민들의 불신이 도화선이 되어 최순실 국정농단이 폭발로 일어나 탄핵으로 이어졌다. 그런데 박근혜와 최순실의 구속을 두고 메갈리아 워마드에서 여자라서 대통령에서 떨어지고 구속되었다고 한다. 박근혜의 파면과 구속은 극우 사이트 일베에서 가장 피하고 싶은 상황인데, 그들의 미러링인 메갈리아 워마드도 일베가 추구한 가치와 같은 방향을 보여주고 있는가?

 

페미니즘이론을 서구 저명한 자유주의 페미니스트 사상가의 책을 봐도 여성이든 남성이든 그 본인이 자질과 능력이 되면 그 자리에서 업무를 수행할 수 있어야 한다고 했다. 결국 여자라서 남자라서가 아니라 그 사람이기 때문이다. 박근혜가 대통령이 되어야 한다는 발언은 비단 메갈리아 워마드의 의견이 아니다. 여자도 대통령이 되어야지 하는 발언은 박정희를 통해 박근혜를 지지하던 사람들도 말하던 방식이다. 그러면 그렇게 말하던 박근혜 지지자들은 모두 페미니스트인가?

 

심지어 박근혜 탄핵 전 특검의 조사 중, 청와대로 전화하여 박근혜에게 응원했다고 하는 메갈리아 워마드 유저도 있으니, 이게 진보에서 말하는 페미니즘인가? 여성학자 정희진과 최근 서민교수의 페미니즘 담론에서 과거 이들은 박근혜는 여자이기 때문에 대통령이 되어야 한다고 기고했다. 그 결과는 무엇인가? 인권을 추락하고 노동시장은 악화되고, 세월호 희생자들은 억울하게 죽는 것도 모자라 그 가족들을 사회적으로 매장시키려 했다. 그런 악의적 행위를 한 사람들을 두고, 최순실 국정농단을 두고 과거 그런 식으로 발언했던 분들의 생각이 궁금하다.

 

5. 나는 인간의 얼굴이 보고 싶다.

나하고 친한 여자교수님이 계신다. 아주 똑똑하시고 내가 좋아하는 분이다. 개인적으로 책을 추천받고(마르크스주의 도서 몇 권) 읽어보았다. 작년에 이분이 메갈리아 이슈에서 페미니즘의 형태에서 그들의 행위에 대해 문제가 다소 있어도 발언의 의의가 있기에 좋다고 했다. 하지만 문제는 올해이다. 메갈리아는 군대에서 의문사 내지 사고사로 당한 장병들을 조롱한다는 점이다. 군장병들 중 영관급 장교 내지 부사관은 상사원사 이상 아니면 모두 하위계급이다. 특히 사병들은 절대적인 약자이다.

 

그들이 사고사로 희생당할 때 잘 죽었다고 말하는 그들의 멘탈이 궁금하다. 어째든 나하고 친한 여자교수님의 아드님이 군복무 중이다. 최근 철원에서 일어난 사격장 사고로 접하고 나서 무척 불안하다는 SNS 글을 보았다. 당연히 그런 일이 무섭지 않을 수가 있을까? 당시 메갈리아 워마드를 페미니즘의 발언이라 지지하신 분이다. 그리고 그 페미니즘은 군대에서 죽은 병사를 조롱하고 무시하는 사람이다. 이제 자신의 아들이 군에서 그런 위기의 상황에 머물러 있는 것이다. 예전부터 나는 사병들의 죽음을 두고 남자만의 문제가 아니라 그 남자의 가정과 기존 커뮤니티의 붕괴라고 생각했다.

 

대한민국 기혼여성 중 아이를 낳는다면 남성이 태어날 확률은 최소 50% 이상이 된다. 왜냐하면 여자아이나 남자아이 하나만 출산하는 게 아니라 2명 이상 다수의 아이를 출산할 경우 딸이 1, 아들이 1명인 경우가 존재하기 때문이다. 작년 군부대에서 일어난 구타사건이 일어나고, 어느 병사가 총으로 내무반 사병들을 사격한 충격적인 사건이 발생했다. 이때 가장 두려움에 떨던 사람은 기혼여성이었다. 주변에 아는 기혼여성에게 아들이 고등학교에 다니는데 몇 년 뒤 징병되어 군에 가서 저런 일이 생길까봐 하는 마음에 잠을 제대로 이루지 못했다고 한다.

 

내가 아는 형은 강원도에 무장공비가 나타나서 유서를 작성하여 자신의 머리카락을 잘라 집에 보냈다고 한다. 작전 중 사망할 경우 그것이 곧 자식의 마지막 소식이 될 것이다. 이를 받아든 어머니는 잠도 제대로 못자고 밤낮으로 울었다고 한다. 위에서 말한 강남역 사건에서 피해여성의 오빠와 남자친구가 있었고, 구의역에서 사망한 노동자는 어머니가 있었다. 도대체 누가 가장 불쌍한 인간인가? 인간의 얼굴이라면 희생자와 희생자 주변에 있는 그들을 가장 생각해야 하는 것이 아닌가? 메갈리아 워마드에 대한 포비아페미니즘은 인간의 얼굴이 아닌 단지 종교적 주술력으로 넘어간 셈이다. 내가 이 길을 선택하니 너네도 해야 한다는 신념은 전체주의적 발상이 아닐 수 없다.

 

인류의 시작에서 여성이 처한 부조리가 많았지만, 남성이 처한 부조리를 두고 조롱하고 야유하며 심지어 부정하는 관점에서 페미니즘이 추구하는 것은 여성이 처한 사회적 모순의 해결이 아니라 오히려 그 대립의 각을 올리는 형국이 된 것이다. 어느 영화인지 만화인지 모르나 남자는 전쟁에 나가 죽으면 영웅이 되고, 살아 돌아와도 영웅이 된다. 살아와도 몸이 멀쩡하지 않아도 영웅이 된다고 한다. 이런 말은 참으로 비겁한 말이다. 그러면 반대로 여자가 전쟁에 가서 총에 맞아 죽고, 폭탄에 팔다리가 잘린 채 돌아와서 계속 살아야 한다면 그게 좋은 것인가?

 

전쟁은 결국 정치적 행위를 말이 아닌 무력으로 행동하는 것이다. 전쟁이 좋아 당장 총을 들고 신나서 전쟁터에 달려가는 남자들은 과연 얼마나 있을까? 남자의 불리한 요소를 말하면 그들은 당장이라도 남자들에게 찌질 하다고 말하거나 조롱한다. 여자가 말하는 불편함을 당연하나 남자가 말하는 불편함을 당연하지 않은 것이다. 역차별을 당하는 남자를 구제하기 위해 성차별을 없애야 한다는 발언을 위에서 언급했지만, 전쟁에서 억지로 끌려 나가 죽거나 공장에서 산업재해로 죽는 남자들이 무슨 성차별을 했는가? 일상생활의 대화나 행위들의 문제라면 당연히 시정해야 한다. 그러나 그 모든 것으로 치부하여 어느 하나라도 자기합리화한다면 논리적으로 사회문제를 해결할 수 있는 것일까?

 

기존 남녀 간의 문제를 다룬 점에서 제일 문제는 인간의 얼굴이 아니라 그저 남녀만으로 본다는 점이다. 내가 대학교 다닐 때 여학생들이 월 1일 생리로 인해 조퇴가 가능하고, 출석에 영향을 주지 않는다는 말을 들었다. 그때는 거기에 대해 아무런 생각도 없었고, 혹은 좋지 못한 것으로 생각했다. 그 이야기를 해준 분이 학교의무실 간호사선생님이고, 그분이 이야기하기를 그것을 악용하여 어디 놀러가는 학생이 많다고 한 것이다. 그리고 지금에 다시 생각하면 생리휴가는 나쁜 것이 아니라 여겼다. 미혼남성이 아닌 기혼남성 입장에서 아내가 월경으로 힘들어 한다면, 하루 쉬는 것을 당연히 여긴다.

 

결혼준비를 하는 동갑내기 직장인 남녀가 임금을 보니 여자는 돈의 액수가 높으나 남자는 낮다. 그래서 결혼준비에 소요될 예산문제(대출)에 봉착되어 있다면 그것 역시 남자가 군복무한 시간이 마이너스가 된다는 것이다. 예비군을 가는 남성이 장사를 한다면 그 일수만큼 생계수단을 잃는 것이다. 결혼하여 아내가 임신 및 출산상태라면 그 여성의 입장에서 예비군 제도가 좋을 수가 없다. 과거 임금과 관련하여 남성이 높았다. IMF 전에는 남자 혼자 평균 4인가족의 생계를 유지할 수 있었다.

 

하지만 그런 점을 현재 통하지 않는다. 고소득 연봉수익자가 아니면 불가능하다. 연봉 3,700만원이 상위 30%라면, 그가 집 구매와 식자재, 기타 공납금을 낸다면 남는 것이 얼마나 될까? 과거 대학은 남성만이 특권이고, 여성은 여대 정도 갈 수 있는 정도지만, 이제 여성이 대학진학률이 올라가고, 조금 더 좋은 직장에도 많이 들어간다. 단지 들어간 상태에서 간부들은 대부분 남성이다. 하지만 자신과 같이 입사한 동기 남성 중에 그 자리에 올라갈 수 있는 부류는 극히 일부이다.

 

20대 청년세대는 임금수준이 좋지 못하고, 비정규직이 대부분이다. 생계가 보장되지 않아 결혼을 둘째 치고 연애조차 포기한다. 약자는 여자와 남자로 구분하는 게 아니라 현재 사회적 구조에서 경제적으로 사회적 기반이 약한 부류이다. 남녀 간의 대립에서 이득을 볼 자는 누구인가? 이택광 교수의 <마녀프레임>을 보면 마녀사냥의 근원은 사회적 문제를 만들거나 방치한 권력자들이 자신에게 돌아올 책임을 전가하기 위해 일반 민중에게 화살을 돌린다고 한다.

 

민중들은 피지배계급이기도 하나, 한편으로 같거나 비슷한 무리이다. 이른바 왕따문화 내지 인신공양이 튀어나오는 상황과 같다. 동급생 사이에서 왕따와 이지메가 나온 점을 생각하면 결국 문제의 해결보다 문제의 회피로 이어진다. 마녀사냥은 왕따문화와 비슷하다. 남녀 사이에 일어나는 일련의 문제는 사회적 경제적 모순과 부조리에서 일어난다. 임금 역시 노동문제이고, 성차별적인 상황에서 남성이 역차별을 받는 이유는 권력의 중심과 변두리에 있는 남성이 다른 점을 부정하기 때문이다. 만일 메갈리아 워마드 행위와 발언을 두고 그대로 페미니즘 전체로 물고 늘어지면 어떻게 될까? 일부 페미니즘 진영(그것도 오랫동안 운동하신 분들)에서 메갈리아 워마드 논쟁은 불편한 상황이 되었다.

 

한국 여성주의 운동은 단순히 여성주의로 시작한 게 아니라 노동운동과 민주화운동 세력과 많이 연접되었기 때문이다. 기존 독재세력에서 가부장 군사문화를 주입했기에 그에 대한 해체의식으로 여성의 인권도 수면 위로 부상한 것이다. 그러나 문제는 위에서 언급한 것처럼 민주화 이후로 노동문제는 여전히 남아있지만, 노동자의 인권은 해결되지 않은 문제이고, 특히 비정규직 노조의 경우 거의 최악의 상황이라고 볼 수 있다.

 

비정규직 노동자는 연애와 결혼보다 삶 그 자체의 생계가 다급한 부류이다. 이들은 메갈리아 워마드에서 조롱하는 200충이란 단어 축에 들지 못하는 아웃사이더들이다. 현재 한국은 노동시장의 변화를 맞이한다. 한국 자본산업화가 축척되던 70년대의 노동자들이 이제는 노인이 되었고, 열악한 노동환경에 노인만 남아있다. 통계자료를 보면 선원들의 숫자가 감소하고 있다. 한국은 삼면이 바다이고, 자원이 부족하여 수출입으로 재원을 확보한다. 신자유주의는 노동자의 삶을 파괴하지만, 그 흐름을 제대로 간파하여 위기를 넘지 않으면 국가부도로 이어진다.

 

6. 삶의 선택은 자유, 그러나 답이라고 말하지 마라.

내가 살아가든 일상에서 비혼 내지 자녀계획을 세우지 않은 분이 있다. 물론 개인이 그것을 하든지 말든지 개인의 자유이나, 그것이 마치 답이거나 혹은 진리라고 말하는 것은 싫다. 최근 비혼주의자 선언을 하는 책이 나왔다. 결혼을 하지 않아야 세상의 부조리를 끊을 수 있다고 한다. 나는 이런 사람들이 참 위선자라고 본다. 그들이 스스로 그런 생각을 하고 일상생활을 영위하는 것은 자유이다. 문제는 내가 이 글을 서두에 위치한 글이다. 이들은 좋은 삶을 살고 싶어 한다. 좋은 음식이나 좋은 집은 물론이나 쾌적한 환경에서 지내길 바란다. 이들이 만일 산에서 채집과 수렵, 자급자족 하여 산다면 불만이 없다.

 

좋은 카페에서 아메리카노 한 잔에 여유를 즐기고, 맛집에 가서 맛있는 음식도 먹고 싶을 것이다. 그리고 캐리어 가방을 끌고 공항에 가서 외국의 멋진 장면을 보고 싶을 것이다. 그런 점이야 상대가 그 무엇이든 누릴 수 있는 자유라고 본다. 단 내가 말하고 싶은 것은 한국에서 좋은 커피가 생산되지 않고 수입 된다. 음식재료도 반 이상이 수입에 의존한다. 외국에 가려면 공항시설이 유지되어야 한다. 물론 많은 사례가 있겠지만, 일단 차와 요리를 위한 커피와 식자재를 수송해야 할 배가 필요하다. 그 배를 움직이는 것은 한국의 선박회사이다. 배가 스스로 움직이는 것도 아니고, 선원이 필요하다.

 

선원이 1번 멀리 나가면 길게는 1년 동안 한국에 귀국하지 못한다. 나의 아버지는 40년 가까이 배를 타신 선원이다. 30년 넘게 해외를 돌아다니면서 화물선의 기관을 수리하던 분이다. 해외를 누비는 선원이 없다면 우리는 건물을 세울 공사자재도, 차를 움직일 기름도, 전기도 만들지 못한다. 이 모든 것이 선박에 의해 움직인다. 그런데 선박회사가 외국회사가 다 장악하면 한국경제는 후퇴하고, 외국인 선원만 고용하면, 선박의 통제와 운영이 제대로 되지 않는다. 결국 사회 현상유지를 위한 노동력이 필요하다.

 

사회에 필요한 노동력을 두고 노인들로 한다는 발언에 할 말이 없었다. 장시간 운전이나 노동강도가 높은 업무는 노인들에게 미룰 수 없다. 편의점 알바나 간단한 매표나 행정이야 가능하나, 사회적 기반시설 유지에서 한계성이 있다. 만일 그들이 버스와 전철을 안 타고, 방안에서 전기기구를 사용하지 않으면 관계가 없다. 누군가 계속 유지관리를 하지 않으면 결국 자신도 그런 유틸리티의 가치를 향유할 수 없다. 분명 사회적으로 문제가 있고, 여성에 대한 부조리한 처사는 시정되어야 한다.

 

그러나 그 문제에 몰두하여 다른 문제를 배타적으로 다루는 것은 위험한 발상이다. 극단적 페미니즘 내지 자치 페미니즘이라고 하는 메갈리아 워마드 여성은 결혼은 하지 않을 것이라 하자, 그러나 그것을 두고 뭐라 할 생각도 없고, 오히려 그런 여성이 남성과 결혼하여 결혼생활이 제대로 될 리도 없다. 그러나 적어도 그들은 여전히 따뜻한 방에서 따뜻한 커피를 마시며 노트북을 키며, 따뜻한 물도 필요할 것이다. 물론 그들은 그런 인프라를 구비하고 유지하는 노동자를 노예 내지 200충으로 보겠지만 말이다.

 

세상은 200충으로 만들어진다. 가진 것이 없어 힘든 삶을 살아가는 그들이 우리 사회의 토대라는 사실에 왠지 마음이 무거워진다. 이런 노동문제, 경제문제, 남녀 간의 문제 역시 삶이 점점 피폐해지기 때문이다. 최근 개저씨 내지 맘충이 대두되고 있는데, 맘충의 문제는 남녀 간의 문제가 아니라 왜 여성과 아이가 가게로부터 외면을 받았는 가이다. 전부터 생각하여 글로 정리했으나, 부동산이 폭등하여 가게를 내는 점주들이 임대료를 견디지 못해 영업을 문을 닫는 사례에서 봐야 한다.

 

그러나 진보언론은 이런 문제에 대해 깊게 논의하지 않는다. 임금과 이윤 그리고 지대는 애담 스미스의 <국부론>부터 시작하여 마르크스의 <자본>, 케인즈의 이론까지 이어진다. 결국 자본의 소득창출은 임금과 이윤에서 많은 것을 차지하는 것이 아니라 지대에서 시작된다. 잘 나가는 가게가 문을 닫는 원인이 아르바이트생에게 임금을 많이 줘서인가? 아니면 가게의 매상이 낮아져서인가? 아니다 임대료가 상승 즉 지대의 문제이다. 지대의 임대료를 해결하기 위해 매상의 회전율을 올려야 하고, 11식이 아닌 21, 그것도 1130분이 아닌 211시간이라면 회전율을 채울 수 없다.

 

이것이 기업인의 논리인가? 아닌가 하는 논의에서 이런 문제를 갖는 사람은 소상공인 같은 영세업자이다. 이들도 프롤레타리아로 언제 추락할지 모르는 사람이고, 원래 프롤레타리아에서 시작한 부류도 많다. 작은 가게를 내어 생계를 책임지어야 하는데, 이들에게 책임을 전가하니 결국 문을 닫는 점포를 두고 속수무책으로 바라볼 수밖에 없다. 경제적 문제를 제대로 이해하지 않으면 해결될 리 없고, 지금의 진보진영이 마르크스주의적 분석조차 하지 못하고 일반화 논리만 매몰되니 그 무엇이 해결될 수 있는가?

 

7. 페미니즘은 필요하나 포비아 페미니즘은 필요 없다.

어느 누가 페미니즘이 남성에 공손하고 착하여야 하냐는 말을 했다. 기존 권력자에게 자신의 입지를 떳떳하게 주장하면 그럴 수 있겠지만, 그 대상이 아무 것도 가지지 못한 21세기 헬조선 청년이면 곤란하다. 모든 진보진영, 페미니스트가 그렇게 하지 않을 것이다. 전에 메갈리아 워마드 이슈가 SNS에서 화제가 될 때 어느 분이 메갈리아 워마드 지지발언과 남성중심사회에 대해 불만을 토로했다. 내가 어떤 강의에서 그 분을 알게 되었는데, 아무 생각 없이 강연준비하는 그분이 친구하고 대화하는 것을 들었다.

 

친구(여성)분이 어느날 선을 봤는데, 그 선자리가 어떻게 되었는지 물어보고 있었다. 처음 물어본 것은 뭐하는 사람이지만, 결국에 물어본 것은 연봉이 얼마냐는 것이다. 답변으로 대략 6,000~7,000만원 정도인 것 같았다. 남성의 종속화를 거부하고, 가부장제를 비판하는 페미니스트라고 하는 분이 친구가 선을 보자 그 남자의 연봉부터 물어본 점에서 이중적 잣대를 느꼈다. 물론 연봉 정도 충분히 물어볼 수 있다. 그러나 자신이 소신이라고 말한 네티즌의 입장과 현실에서 친구하고 나눈 대화에서 괴리감이 느낀다.

 

이런 식을 느낀 남성에게 다소 찌질 해 보인다고 말할 수 있겠지만, 그런다고 하여 자신 내면에 새겨진 자본주의 속물근성이 부정할 수 없다. 남성에게 정치적, 사회적, 경제적으로 독립하여 의존하지 않겠다며 그런 발언 자체가 문제이다. 그런다고 나는 이런 사람만 페미니스트로 보지 여기지 않는다. 대학학부 시절 시간이 남아 우연히 들은 여성학 강의시간에 오신 여교수님은 이미 자신은 결혼을 하여 남편과 같이 자녀를 키우고, 서로의 상황에 따라 집안일과 육아를 분담한다고 했다. 한국은 성적인 담론이 너무 조심스러워서 자유롭지 못하다면 오히려 상대방에게 피해주지 않을 정도라면 서로 격식 없이 성적인 이야기를 나눠야 한다고 설명했다.

 

21세기 초반 내가 처음 접한 페미니즘은 그랬다. 그러나 10년 지난 후에 네티즌 세계의 페미니즘은 내가 처음 접한 페미니즘과 전혀 다른 길을 걷고 있다. 분야도 많고 생각도 많으며, 인간이 많은 만큼 여성과 남성도 많다. 그래서 의견이 하나로 통일되기는 어렵고 그 나라와 민족, 사회와 현황 속에서 각가지 이론이 나오는 것은 당연하다. 페미니즘은 인간을 위해 나온 사상이지 인간이 페미니즘을 위해 살아가는 것은 아니다. 마르크스와 엥겔스가 저술한 <공상에서 과학으로>라는 책자에서 정말 맞는 말을 했다.

 

인간이 사상을 만들었지만, 인간을 지배하는 것은 사상이라고 말이다. 인간은 자신의 진리와 사명을 위해 목숨을 초개처럼 버린다. 그런 사람들을 두고 인간의 윤리적 도덕적 가치에 따라 순국자내지 애국자로 볼 수 있고, 때로는 테러리스트 내지 광신도로 볼 수 있다. 다시 여성학 강의시간에 돌아간다. 당시 교수님은 페미니즘은 여성의 인권만큼 그런 여성과 같이 동반자로 살아가는 남성의 인권도 생각한다고 했다. 남성이 가부장제도에서 자신의 감정을 죽이며, 군대화 된 직장사회에서 노동력이 착취당한다고 말이다.

 

내가 접한 페미니즘 도서는 페미니즘은 여성의 인권만 아니라 어린이, 노인, 장애인, 외국인, 소외된 그 모든 사람을 위해 필요한 사상이라고 했다. 장애인을 비하하고, 어린아이가 쉬는 어린이집에서 행패를 부리며, 518에서 사망한 사람을 조롱하며, 산업재해로 죽은 노동자를 두고 페미니즘 실천가라 지칭하고, 거기에 옹호하는 엘리트 진보들을 볼 때마다 내가 처음 페미니즘이 이건가 하는 의문이 든다. 일베에 대항한다던 그들이 이제는 일베처럼 되어버렸고, 일베의 미러링이 아니라 일베의 메아리의 대상에게 같이 메아리를 보내는 현상도 보여주었다.

 

진보진영 사람들이 메갈리아를 지지하던 말든 자유이나, 그들이 노동자의 입장을 두고 운운하는 것은 차마 두고 볼 수 없다. 산업재해를 당하여 사람이 죽거나 다칠 때 그 당사자만 아니라 주변에 있는 사람 역시 정신적 충격에 빠진다. 내 친구는 생선가공공단 폐수처리장을 관리하다가 호흡곤란 증세로 사망했다. 안전도구도 없이 21조라는 안전규칙도 제대로 지켜지지 못한 채 그렇게 세상을 떠났다. 내 친구처럼 허무하게 죽은 노동자들은 너무 많다. 이들이 사회적 약자가 아니라면 누가 약자인가? 올해 친구의 1주기 제사에 가고 싶었다는 말을 친구 여동생에게 문자로 보내니, 답장이 친구의 어머니가 우리를 보면 당신의 아들이 너무 생각나서 견딜 수 없어 차마 부를 수가 없다고 했다.

 

내 친구가 일하는 폐수처리시설은 생선을 이용하여 만든 가공식품이다. 우리 대한민국 국민이라면 어묵을 먹거나 통조림을 먹을 것이다. 대국민을 위한 노동자는 아니나, 대국민을 위해 필요한 노동자였다. 그런 사람들이 년 간 수천명씩 생명을 잃고, 그들의 가족은 평생 지울 수 없는 고통을 안은 채 살아간다. 그 중에서 남성도 있고 여성도 있으며, 특히 그들의 어머니들이 깊은 상처를 받는다. 인터넷 페미니즘을 보면 주패턴은 기혼여성이 배제되고 있으며, 기혼여성의 부조리를 말할 때는 어린아이를 달고 다니는 산모들에 대해서다.

 

솔직히 이런 말을 하면 나 자신도 한심하게 여기지만, 아이를 낳지 않을 사람들이 아이를 낳고 기르는 사람을 두고 입장대변하면서, 한편으로 남자와 같이 살아가는 것을 선택한 여성을 두고 명예자지를 운운하는 것도 아이러니하다. 누구의 말처럼 임산부와 산모에게 친절하지 않은 세상은 맞다. 하지만 이런 세상을 만든 원인이 뭔지에 대한 고찰과 담론 없이 민폐사례만 열거만 하는 짓에서 에너지 낭비만 하는 게 아닌가 싶다. 전에 우리 회사 직원의 아내분이 아이를 출산했는데, 그 직원이 집에서 그의 아내를 돌보고 있었다.

 

휴가를 내어 집에 머무는데, 저녁 7시 정도 전화 와서 업무를 처리해달란 말을 하고, 8시 정도 사무실에 와서 업무를 하고 간 일이 있었다. 육아휴가를 남성도 제대로 누릴 수 있는 것, 노동시간을 조금 더 축소하여 집안일을 분담해주는 남편이 되려면 결국 노동문제와 경제문제를 돌아볼 수밖에 없다. 정작 중요한 해결방안을 이러하나, 이데올로기의 정점에서 주장하는 일부 엘리트들은 자신의 입지만 굳히기 위해 서로를 혐오하게 만들고 있다. 이 세상에서 여성만 약자가 아니다. 이 세상의 강자는 남성만이 아니다. 자신이 처한 상황이 열악하고 어려운 여성과 남성이 약자인 것이다.

 

페미니즘 입장에서 경제적으로 가난한 남녀가 서로 사랑하여 결혼하여 아이를 가지고 싶다면 그들에게 줄 수 있는 행복은 무엇인가? 가난으로 여성이 그 남성과 결혼하지 못하고, 결혼해도 아이를 가지지 못한 채 현실의 벽에 부딪힌다면 그 여성에게 무엇을 해줄 수 있는가? 아니라면 사회적 기반시설을 유지하지 못한 채 자신은 계속 문명과 벽을 쌓으며 삶을 영위할 수 있는가? 단순한 이야기가 아닌 것은 아니나, 조금 더 깊이 생각해 볼 필요가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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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7-10-29 21:06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17-10-29 21:10   URL
비밀 댓글입니다.

겨울호랑이 2017-10-29 23:45   좋아요 2 | 댓글달기 | URL
사회문제에 접근할 때 ‘부당하게 억압 받는 이‘들의 관점에서 사태를 바라봐야 한다는 생각입니다. ‘문제‘가 아닌 ‘계층‘문제로 접근했을 때, 문제 해결보다 계층간 대립으로 잘못 옮겨간다는 생각이 듭니다...

만화애니비평 2017-10-30 08:46   좋아요 3 | URL
예전에 세월호 희생자 중에 고등학교 학생들이 많았죠.
보통 남자고등학생들이 활달하여 선실 내부보다 외부에 있어서 생존자가 많았습니다.
그런데 구조자 중 남학생이 많고, 희생자가 여학생이 더 많으니 여성혐오로
밀어붙이는 그들의 모습에 그저 할말을 잃었고, 그런 비정상적 발언을 해대는
부류에게 마치 페미니즘 전사라고 칭송하는 진보 학자 내지 언론들의 무뇌아적인
발상에 기겁했습니다. 과연 세월호 여자고등학생 희생자 어머니가 저 말을
들으면 무슨 생각을 할까 싶더군요....참....

HG.Chris 2018-04-29 12:58   좋아요 2 | 댓글달기 | URL
좋은 글 잘 읽었습니다. 저 스스로도 페미니즘을 지지하는 입장으로 살아오긴 했는데, 최근의 행태들을 보면 제가 알고있던, 그리고 추구하던 페미니즘과는 너무 달라서, 어디서 감히 페미니즘의 페 자도 못 꺼내겠습니다.

만화애니비평 2018-05-09 08:49   좋아요 1 | URL
요새 홍익대 미대 누드 사건을 보면서 본질이 드러나고 있습니다.
메갈리아 워마드에 대해 비판하는 글을 쓰면서 알라딘 여성유저들도 그런 환상에서 벗어나면 좋으려만 참 아깝씁니다.
오늘 기사를 보니 한겨례에서 워마드와 페미니즘은 다르다는 식으로 꼬리자르기를 하던데, 과거 그들이 패륜질을 일삼은 부류를 쉴드친 점에서 반성의식이 없는 그 어떤 사상은 인류의 발전에 전혀 도움이 되지 않습니다.

ㅇㅇ 2018-05-15 02:07   좋아요 0 | 댓글달기 | 수정 | 삭제 | URL
좋은 글 감사합니다.

2019-03-16 19:29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좋은 글 감사드립니다. 페미니즘을 연구하는 것에 있어 참고가 많이 될 것 같네요 !

사실 페미니즘에 관련된 유명한 책들 중에서는 ‘메갈리아‘에 관한 내용은 별로 없고 가부장적인 남성문화 혹은 성고정관념, 대상화와 인식들에 대해 비판적인 입장을 읽으면서 심히 공감하고 응원하고 있었습니다. 그렇게 ‘메갈리아‘의 방식에 대해 표면적으로만 알고 있었는데, 실상을 알고나니 조금은 당황스럽더군요. 아무렴 저는 그렇기 때문에라도 군대에서부터 이어진 남성들의 소위 ‘강간문화‘를 근절하는 것이 가장 우선시 되고, 양 측의 주된 타겟이 되어야 한다고 생각하는데 어떻게 보시는지요??... (정치는 암울하지만 논외로 치부하고 사회적으로라도 방향성을 잡아가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그리고 제가 인권을 공부하면서 ‘정치적 올바름‘의 개념에 대해 더 자세하게 알고 싶어졌는데 혹시 관련해서 자세히 알고 있는 책이 있으시다면 추천 부탁드리겠습니다. 감사합니다 ! ^^

만화애니비평 2019-03-17 18:52   좋아요 1 | URL
사실 강간문화의 문제는 남성만의 세계로만 치부되는 게 아니라 역사적 시스템에 있다고 저 개인적으로 생각합니다.
물론 문화적 여건도 있다고 여깁니다. 외국 드라마와 혹은 연예계 방송을 보면 여성 방송인들이 야한 옷을 입고 서로 섹시 섹시 라는 말이 자주 등장합니다.
가끔 저도 의아하게 느끼는 것은 성에 대한 대상화인가 아니면 개방화인가 어느 게 옳은가? 라는 고민입니다. 제가 2000년 초반 여성학 수업을 받을 때 여성교수님이 성적인 대화가 개방되어야 하고, 자연스럽게 야하지만 상대방에게 극히 불쾌하지 않을 정도로 말하는 것도 성의 억압에서 벗어날 수 있다고 합니다. 여성학 관련 도서에서 주로 메릴린 옐롬 교수 책을 보면서 지금의 현실과 다른 괴리성을 느낍니다.

어째든 강간문화가 문제되는 건 그 사회의 경직성이라 봅니다. 군대 특히 육군 중심편제 한국은 원래 일본 관동군 만주군의 장교들이 이끌고, 육군사관학교 같은 경우 친일파 후예와 독재자들의 세력이 모인 곳이기도 합니다. 강간문화의 문제점은 바로 군대에서 전체주의적 발상에서 약자인 하급자도 강자의 힘을 부여하려면 약자를 누군가 부여해야 합니다.
일반적으로 전쟁에서 가장 자행하는 행위는 여성에 대한 성폭행입니다. 남성들은 대부분 죽지만, 여자는 그 자리에서 성폭행당하죠. 이건 심리적 압박행위이기도 합니다. 518 당시에도 여성에 대해 성폭행하고, 민주화 투사 중 여성들은 성고문을 자행했죠. 강간문화가 하나로 밀집되는 게 문제가 있고, 남성이 여성에 대한 성적 욕망을 부정하는 것 역시 문제지만, 그런다고 그런 성향을 강압적 드러내도 되는 문화는 역사적으로 이어온 과거의 잔재가 심하게 깔려있다고 봅니다.

혹은 그 교수님이 오히려 성을 개방되어야 하는데, 서로 감추니 억압된 성적 학대가 사회적 도덕적으로 해리된 게 아니냐는 말도 하네요.
 


 

오늘 퇴근길 버스를 타고 가는데, 마치 노 키드 존에 대한 의견이 나왔다. 진행자와 패널, 그리고 시청자의 전화까지 받아보면서 노 키드 존에 대한 열렬한 의견이 오고갔다. 기본적으로 노 키드 존에 대한 내 의견을 밝히자면 찬성이다. 진보성향이 있지만, 진보언론과는 다른 의견을 내놓은 것이 의아하겠지만 그렇다. 그런데 진보신문사의 글을 보면서 내심 의구심이 들었다. 나중에 정리하겠지만, 진보성향 언론은 뭔가 핀트가 일괄적이지 못하고 점차 파상적으로 흩어진 맥락이 많이 보이기 때문이다.

 

그런 점에서 내가 이 소고를 적어 내려가는 이유는 언론과 방송에서 모든 원인을 제대로 간파하지 않았다. 어느 유명한 식당의 주인의 인터뷰를 보면서 답은 이미 그곳에 나와 있는데 말이다. 노 키드 존에 대한 인식은 최근 몇 년 사이에 발생한 사회현상이다. 그 전에 아이들이 오면 어떠한가? 그렇게 심한 반응을 보이지 않았다. 노 키드 존에 대한 문제가 대두된 것이 과거라고 한다면 어떻게 보는가? 어린이에 대한 훈육과 어머니에 대한 태도의 문제는 분명히 있다. 가정주부로 고생하여 아이하고 같이 집밖에 나와 산책도 하고 맛있는 차 한 잔을 하고 싶으며, 게다가 자신 역시 문화생활을 즐기고 싶을 것이다.

 

그런 것은 문제가 없다. 아이가 옆에 울고 보채면 달래주어야 하나, 가끔 매장을 보면 그것을 무시하고 서로 수다 떨기 바쁜 분도 있다. 하지만 모든 분들이 그런 것은 아니다. %의 몰지각한 분들로 노 키드 존이 완성될 수가 없다. 단지 노 키드 존이 생성될 수밖에 없는 변증법적인 원인이 무엇인가? 라는 의문은 우리가 분명히 가져야 한다. 전에 어느 유명한 식당 인터뷰를 보았는데, 서울 중심상가에서 작은 가게를 운영하는 식당이다. 점심시간에 발 딛을 틈도 없이 바쁘며, 손님은 가게 안에 늘 왕래했다.

 

이 가게가 처음에 노 키드 존을 시행하지 않았다. 그리고 11식을 원하지 않았다. 어느덧 11식에 노 키드 존까지 이어졌다. 그 이유를 물어보니 임대료가 올랐다고 한 것이다. 내 기억에 인터뷰를 진행할 때, 한 달 임대료가 약 2,000만원 가까이 된 것으로 기억한다. 2,000만원 임대료에 일하는 아르바이트생을 4명을 고용한다고 생각하자. 급료는 1인당 약 150만원이면, 1달 최소비용은 2,600만원이고, 거기에 음식재료, 전기, 수도, 세금, 각장 감각상각비를 고려하면 최소 월 매출은 5,000만원 정도일 것이다.

 

그러나 임대료가 처음에 2,000만원이 아닌 1,000만원이라면 최소매출은 4,000만원으로 보면 되고, 지금 가게를 방문해주는 손님의 80% 정도면 충분하다. 가게를 이용하는 손님이 오고가는 전환비율만 제대로 되면 문제가 없다. 1인당 주문 및 식사시간이 40분이고 좌석이 20개 정도라면 점심시간 12:00~14:00 사이 20 × (120÷40) = 60명이 온다. 1인당 1만원이라면 60만원의 매상이 오르는 것이다. 만일 1인당 1식단이 아니라면, 그것도 2인이 1개만 시키고, 식사시간도 많지 않고 부수적인 것까지 제공한다면 가게 입장에서 손해가 오는 것은 당연하다.

 

결국 시간당 비율 손님이 오는 것과 매상의 차이는 분명히 존재한다. 단지 과거에는 문제가 없었는데. 이제 왜 문제인가? 라는 설정에서 문제는 가게를 찾는 손님이 아니라 가게에 손님이 전환비율을 고려할 수밖에 없는 이유이다. 전에 유명 치킨 메이커가 비싼 가격으로 상품을 팔았다. 2만원이 넘어가는 가격에 막상 원자재 육계의 가격은 2만원의 101조차도 되지 않았다. 나머지 비용은 무엇인가? 치킨집 인건비를 생각해도 아르바이트생이 200만원 이상 될 리 없고, 다른 재료비를 다 합쳐도 육계 1마리의 반도 되지 않는다.

 

나머지는 대기업에서 영업점에 요구하는 상품메이커 가격이고 나머지 임대료이다. 가령 2만원 짜리 메이커 통닭이 있다면 메이커 없는 치킨은 15,000~18,000원 사이가 되는 것이다. 그런 명확한 답이 있어도 언론은 부모의 자질이나 사회적 소통문제로 여긴다. 물론 그것도 있다. 하지만 왜 그렇게 되었는지 과정에 대한 고찰은 없다. 진보언론의 문제는 가게 점주의 의견을 제대로 피력하지 않았고, 진영적 논리로 따지고, 보수는 자본주의적 문제가 가진 본질을 피한다.

 

요새 새로 지은 아파트 1채 가격이 서울에서 5~6억이 기본이라 말을 들었다. 강남이 아닌 지역에서 그렇게 요지부동으로 가격이 오르니 임대료가 하늘 무서운 줄 모르고 오르고 있다. 서민들의 시장물가는 엉망이고, 집은 구경조차 하기 힘들다. 형이 얼마 전 통화하면서 앞으로 젊은 사람들은 집 사기가 어렵다는 말을 하면서 부동산 투자하지 않으면 돈 벌기 어렵다며 한 번 재고하라는 말을 한다. 문제는 알면서도 문제해결보단 문제의 본질을 두고 이익을 챙기려 하는 점에서 참으로 아이러니하다.

 

문재인 정부가 전번 정권처럼 부동산경기를 엉망으로 하지 않겠지만, 부동산을 잡기가 어려울 것이라 말에서 주변 사람의 말을 들으니 과연 그렇다. 내 아이가 나하고 좋은 곳에서 먹기 어려운 이유는 No-Kid Zone이 생긴 이유도 있지만, No-Kid Zone이 생기기까지의 한국현실은 외면하고, 거기에 동조하여 부동산투기에 빠진 현 실태에서 가게점주를 탓하는 것은 무리한 요구이다. 집 옆에 메이커 브랜드 아파트가 오는 것은 좋아해도, 영세한 시민을 위한 임대주택이 오는 것은 반대이다. 그런데 이런 점을 논하지 않는 언론이다. 그들은 밑바닥에 관심을 두는 것이 아니라 진영의 논리에 억지로 끼워 맞추기 놀이만 할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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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왕 광해군 1
박혁문 지음 / 늘봄 / 2011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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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의 임금 중에서 가장 칭송을 많이 받은 인물은 세종대왕과 정조대왕이다. 세종대왕은 문의 극치로 훈민정음을 반포했다면, 정조대왕은 조선의 르네상스를 만든 문무를 겸비한 군주이다. 그러나 2사람의 조건에서 분명한 차이가 있다. 세종의 아버지는 태종 이방원이고, 그는 강력한 군주세력을 만든 장본인이다. 결국 강력한 왕권을 바탕으로 왕도정치를 실현할 수 있으며, 권력을 조금이라도 이용할 가능성이 농후한 척신과 고관대신을 숙청했다. 심지어 형제의 목을 내치니 그의 잔혹함에서 다들 너무한 임금이라 생각할 수 있으나, 백성의 입장에서는 성군이라 볼 수 있다.

 

권력이 세분화된 가지로 집중되면 결국 이권이 몰리며, 그 이권의 토대는 백성의 노고로 이루어진 것이다. 임금은 피로 이어진 세습제이나, 피보다 더 중요한 것은 백성의 삶이다. 백성을 해롭게 하는 인물이라면 형제라도 아내라도 내쳐야 한다. 임금은 왕자에게 하나뿐인 아버지이나, 임금은 만 백성의 어버이여야 하다. 백성을 위한 정치를 하는 임금이 진정한 군주이듯이 그 시기가 잘 맞으면 성군으로 기록으로 남겨지나, 그렇지 못하면 평생 폭군이란 명칭이 남아 전해진다. 정조대왕은 아버지 사도세자의 죽음을 목격하고 할아버지로부터 임금을 승계 받은 군주이다.

 

영조는 처음에 사도세자를 죽일 때 그 자신의 입장과 노론의 정치적 입장이 어느 부합되었기에 가능했다. 하지만 정조가 올라갈 때는 그 시점이 달랐다. 사도세자는 죽어도 사도세자의 아들은 살아있고, 사도라는 이름도 결국 영조가 자신의 아들을 죽음으로 내몬 것에 대한 슬픔과 후회로 이어진 것이다. 조선의 왕조는 최고 권력자라고 하기엔 너무 힘들었다. 조선은 역대 한국의 왕조국가와 다른 형태의 정치구조이다. 고구려와 발해, 고려 같은 경우는 북방의 중국에서 독립하여 자치적으로 세운 국가이다. 주몽이 부여에서 탈출하여 고구려를 건국해도 결국 고구려는 고조선의 영토를 중심으로 활동한 점, 발해는 고구려와 말갈부족의 후예들이 건국한 점, 고려 역시 내분에서 시작했으나, 북방 중국과 외교적 분쟁이 있었다.

 

중국대륙과의 종속관계는 몽골의 침입에서 시작했고, 몽골이 원나라로 이어진 후 명나라에 뒤에 명나라에 삼켜진다. 명나라가 새로이 오르자, 태조 이성계는 고려의 무신이면서 반정으로 조선을 만들었다. 결국 조선은 반정의 국가이고, 반정 무신에 의해 만들어진 정치세력이다. 반정의 역사는 세조와 중종, 그리고 인조에 이르게 된다. 조선의 왕은 순탄하지 못한 운명을 받아들이며 살아간다. 중종은 이복형 연산군의 눈치를 보고, 명종은 후사가 없어 대비의 의지에 따라 조카 선조에게 인도된다.

 

선조가 오르자 많은 문제가 발생했다. 선조는 원래 왕세자가 아니라 조카인 점에서 권력이 없었다는 점, 그리고 대신들은 동서로 분당될 시기이다. 붕당정치를 만든 폐단 제공자 중 단연히 책임자는 선조이다. 선조는 두 당으로 갈라진 신하를 보고 서로 죽이기까지 하던 정치적 음습을 고려하여 정쟁에 참여했다. 왕권을 살리기 위해 신권을 죽일 필요가 있다. 그러나 그게 오히려 신권을 키우게 되었다. 왕은 강해도 왕자들은 여럿이 있기 때문이다. 불운의 화는 광해군에게 미친다.

 

소설 <대왕 광해군>은 바로 동서분열과 동인에서 남인과 북인으로 나누어질 때, 그리고 임진왜란 이후를 다루는 소설이다. 소설에서 광해군의 역할이나 모습은 그래 대두되지 않는다. 오히려 실존했던 김류나 신경진, 혹은 가공의 인물 이혼 등과 같은 인물을 내세운다. 그리고 마부태라는 청국의 장수는 진짜 조선인인지 아닌지 알 수 없으나 적어도 이들을 보는 조선의 모습을 다시 볼 수 있었다. 광해군이 등극하여 폐군이 된 것은 누구나 아는 사실이다. 그러나 모든 것은 광해군만을 보는 것은 아니다.

 

소설에서 정말 광해군이 인조와 그의 계모대비를 향한 말이 사실인지 아니나, 알 수 없으나 적어도 광해군이 그린 외교적 판단은 정확했다. 역사학자 이덕일이나 오향녕 같은 사람 말고 한명기 교수의 서적을 보면 대충 그 이유를 알 수 있다. 임진왜란과 정묘·병자호란 전후의 세계정세와 조선의 정치적 상황, 그리고 전쟁의 의도에서 많은 것을 내포하니 말이다. 이런 관점에서 광해군을 오점으로 볼지 아니면 다른 관점으로 볼지는 많은 여지가 남아있다. 알라딘에서 우리가 알아야 할 조선의 임금에서 세종과 정조가 있었으면, 나머지 1명은 광해군이었다. 광해군을 우리가 왜 알아야 하는가?

 

세종은 태평성대의 시대고, 정조는 르네상스시대였다. 세종은 서구사회에서 르네상스가 도래한 시기이고, 정조는 프랑스대혁명이 일어난 시기이다. 서구사회는 동양의 세계에 눈을 돌리기보단 내부갈등과 식민지정책이 아메리카로 향하고 있었다. 동양이 평온한 시기란 중국의 정치적 세력이 변하지 않은 점이다. 세종은 명국이 안정된 시기고, 정조는 청국이 안정된 시기이다. 태조 이성계가 원나라와 명나라의 교체시기 명나라를 따라 조선을 건국했지만, 광해군 시기는 명나라가 여진족에게 밀리던 시기이다.

 

명나라는 중국 한족이 한고조부터 시작한 이데올로기를 강화하기 위해 유학사상이 성리학을 중시하고, 조선 역시 성리학이 통치이념이 되었다. 공자의 사상과 달리 성리학은 지배계급 통치이데올로기를 중시한 학문이다. 어머니가 첩이면 태어난 아이는 양반이 아니라 서자로 평생 썩혀야 한다. 이런 사회적 모순은 능력이 있어도 신분제의 한계로 좌절을 맛본다. 광해군이 겪은 임진왜란과 광해군 이후 병자호란은 바로 이런 문제에서 조선을 후퇴시킨 문제였다. 책은 소설이나 서애 류성룡에 대한 연구서적을 보면, 류성룡 역시 정치적 문신이라도 현실을 제대로 인식했다.

 

명나라를 의지해서 임진왜란을 종결할 수 없는 점, 명나라는 자신의 국경에 조선을 두고 왜국으로 침범 받지 않으려 한 점, 막상 명군이 파견와도 전투에 참가하기보단 눈치만 본 점, 명국이 상국인 점에서 무리한 요구를 계속 하는 점에서 자주국방이 중요했다. 왕권은 추락하고, 입만 놀리면서 권력을 탐하는 신료들은 도망가기 바빴다. 조선의 백성은 굶주려 죽거나 말굽에 밟혀죽는데 말이다. 류성룡은 전쟁을 끝내기 위해서는 백성들의 도움이 필요했고, 무관의 자질이 있는 자가 공을 세우면 벼슬을 내려야 한다고 보았다.

 

그러나 그의 꿈은 좌절되었고, 왜란 이후 탄핵되어 안동 하회마을로 내려가 평생을 마감한다. 그의 탄핵은 남인의 몰락이었고, 광해군 이전은 북인들이 득세하고, 북인은 광해군을 중심으로 대북, 영창대군을 중심으로 소북으로 갈라진다. 임금이 의지를 가져도 양반 사대부 신료들이 지지하지 못하면 임금의 결정도 결국 무마될 뿐이다. 소설의 시작 전에 이미 소설의 주인공 이혼의 한이 그대로 남아있었다. 이혼을 보자면 북인이나 서인이나 다를 바 없었다. 탄금대전투에서 최초로 승리해도 군령을 어긴 죄로 상관이 참수되고, 가상의 이야기지만 이이첨의 무리에 의해 가족은 몰살되었다.

 

명나라는 지고 여진은 올라오는데, 한양의 고관대신은 외교적 군사적 판단 내신 내부총질만 일삼고 있다. 권력을 가질수록 더 원하는 바고, 권력은 더 높은 권력을 위해 행사한다. 내외부의 위기를 넘어 더 나은 세계로 가기보단 그것을 찬스로 여겨 권력을 차지한다. 광해군 시절 북인들의 행동은 한심했으나, 인조반정 이후 서인들은 멍청하기 짝이 없다. 세계정세를 읽지 못한 점, 명나라를 위해 출병할 때 자국의 백성에 대한 안위를 생각하지 않았다. 광해군 말대로 4만의 병력을 출전시키면 그들을 위한 국고와 식량은 둘째 치고, 나라의 백성이 없어져 큰 위기에 봉착한다.

 

만일 가족이 타국에서 잃게 되면 그 가족들의 원한은 어떻게 헤아려 볼 수 있는가? 광해군은 분조 당시 찬 바닥에서 잠을 자고, 전장에서 굶주리면서 백성과 같이 왜란을 이겨내었다. 광해군이 무리한 정책을 한 것도 있고, 그가 실책을 한 것도 있지만, 그 이상으로 이룩한 일들도 많다. 업적으로 따지면 선조와 인조하고 비교조차 되지 않는다. 그러나 조선의 대신은 재조지은이란 이름 아래 명국을 무조건 따랐다. 재조지은이란 이름으로 변방에서 고생하던 전쟁영웅은 조연에 불과했다.

 

전쟁영웅은 선조에게 미움 받아 죽음을 당해야 했다. 소설에서 인목대비 역시 선조 옆에서 한몫을 거둔다. 인목대비는 광해군 즉위를 반대한 세력이었고, 광해군이 선조와 인목대비에게 문안드릴 때 문전박대를 했다. 광해군이 선조에게 문전박대 당하자 피를 토하며 쓰러졌다는 기록도 있다. 그것도 임진왜란을 거친 후이다. 아들에게 분조를 내려 전쟁을 책임졌는데도 말이다. <대왕 광해군>은 그런 광해군 시대의 명암을 가상의 인물로 통해 보는 책이다. 허균은 유용한 인물이나 역성혁명으로 사라진 자이다.

 

현재상황을 파악하고 지난 과거를 분석하여 앞으로 방침을 정해야 하는 것이 국가의 대사이다. 자신의 정치적 이권을 위해서라면 만 백성의 목숨도 아깝지 않은 자들이 결국 득세하는 역사의 일례를 보자면 탄식이 나오지 않을 수가 없다. 역사는 승자의 기록이나, 다행히도 승자도 그 당시의 승자이지, 먼 후예들에게 승자들은 백성을 팔아먹을 무뢰배에 불과했다. 인조는 홍타이지 앞에서 머리를 박으며 패배를 시인했고, 많은 조선인들은 청국에 끌려가 죽음을 맞이했다. 앞날을 대비하지 않은 덕분에 백성들은 피눈물을 흘리고, 왕은 수모를 당했다. 그런 것을 보고도 반성하지 않은 조선은 계속 되었다.

 

소설에서 인목대비가 화가 나서 광해군을 꾸짖는다. 인륜을 말하면서 말이다. 소설이니 그렇지만, 적어도 광해군은 맞는 말을 한다. 인목대비 한 사람이 백성보다 위에 있지 않다는 발언이 말이다. 동생 영창대군과 형 임해군의 죽음이 비극이지만, 그들의 죽음이 없다면 만 백성은 더 큰 고통을 겪어야 하는 점을 말이다. 광해군의 몰락 그 스스로가 제대로 대처하지 못한 부분도 있지만, 광해군의 몰락으로 조선의 굴욕을 광해군을 몰락시킨 자들의 몫이 되었다. 그들은 알아야 했다. 조금 더 조선의 백성을 위한 길이 무엇인지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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