섹스와 돈 - 페미니즘과 정치경제학 그리고 미디어
아일린 미핸 외 엮음, 김선남 외 옮김 / 커뮤니케이션북스 / 2009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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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대사회에서 들어와서 여전히 자본의 위력은 대단하다. 하지만 자본의 힘이 하나의 권력으로서 등장한 것은 프랑스 시민혁명과 영국 산업혁명에 비롯되었다. 이 2가지의 혁명으로 통해 절대 왕권과 봉건귀족들이 누리던 화려한 봉건사회는 문을 닫고 근대 유럽의 시작은 자본력이 사회를 좌우하는 구조가 되었다.

사회가 자본주의적인 성향을 가지게 되면서 대부분 상인이나 혹은 은행가, 재산가처럼 금전적인 여력이 많은 사람들에게 정치적인 권력이 향하게 되었다. 자본을 가지고 있는 수준과 범위 그리고 그 자본을 돌릴 수 있는 한계에 따라 다시 자본은 자본가들에게 돌아가게 되었다. 그렇게 함으로써 유럽사회에서 노동자, 어린이, 노인, 여성 등과 같은 사회적 약자들은 사회적인 약자로 대두되면서 불평등한 사회구조를 가지게 되었다.

이런 불평등한 사회구조에서 자본력을 가지고 있는 유럽 자본가들은 대부분 백인남성으로 이루어진 존재로 나타났으며, 여기에 자본력을 가지지 못한 여성, 흑인, 노동자들은 자본이 없다는 이유로 상당한 노동과 차별대우를 받아야만 했다. 게다가 자본가들은 자본이 쌓이면 쌓일수록 그것을 노동에 알맞게 분배하기 보단 오히려 그 노동력을 착취하여 자신의 이익만 쌓게 되었다.

그렇게 자본을 수용하고 있는 자본가들은 자본을 소요할 수 없는 노동자, 여성, 흑인들에 비해 생활여건이 우월하므로 교육의 기회가 증대되었고, 교육의 기회가 늘면 늘수록 자신들이 차지할 수 있는 사회적인 지위권이 보장되었다. 자본을 가진 부르주아가 자신의 자본을 후손에게 넘겨주거나 자본가의 자식들을 고등교육을 실시함으로 정치가 내지 사회실세세력으로 독점하게 되었다.

다시 이런 세력들은 자신들의 권익을 보장하기 위해 자신들이 유리한 방향으로 제도와 정책을 만들었고, 결국 근대사회는 마르크스의 경제학철학초고처럼 남성들은 언제나 모진 노동으로 얼룩진 하루를 보내야 하고, 여성들은 남편이 노동하고 있을 시간에 유흥업소나 윤락업소에서 일을 하게 되었다. 어떻게 보면 산업혁명으로 인간의 노동력이 아닌 기계력에 의해 상품을 만들면 남녀 모두 고루게 일할 수 있는 것처럼 보였지만, 오히려 남성과 여성이 일을 할 수 있는 분야가 차별화 되었다.

남성이 일을 하는 분야는 근무조건이 매우 고되고 어려우며, 육체적인 소모가 매우 심한 것들로만 채워졌다. 이에 반해 여성들은 노동력이나 전문성이 그렇게 요구되지 않은 업무만을 하게 되었다. 일을 할 수 있는 범위와 수준이 남녀 불평등으로 이어지자 사회적 주도권은 남성들에 의해 가지게 되었으며, 여성들은 남성에게 의존할 수밖에 없는 사회적 구조를 지니게 되었다. 이런 근대사회의 업무형태는 곧바로 20세기에도 연관되어 여성의 직업군이 전문화가 되었다고 하나 전문직종이나 혹은 사회적지위는 여전히 남성이 높았다.

하지만 어느 정도 여성의 인권이 상승한 만큼 여성도 자신의 경제력을 소유하게 되면서 남녀 불평등에 대해 어느 정도 조금씩 개선되어 가는듯 하였다. 그러나 제일 중요한 사항은 자본은 아직까지 남성에게 있는 것과 남성이 가지고 있는 이 자본력이 다양한 사회현상에서 하나의 이념으로서 작용한다는 것이다.

특히 미디어 즉 우리가 정보를 얻을 수 있는 매체에서 백인남성우월주의적인 면들이 고스란히 우리 정보에 녹아 들어가있다. 미디어라는 것은 정보력을 좌우하는 매우 중요한 체계이며, 이 정보력으로 통해 우리 인간은 정보를 수용한다. 만약 정보가 올바르고 정당한 주장만 나오는 것이 아닌 어느 특정세력을 위해 조장되거나, 혹은 어느 대상으로 하여금 거기에 속박되게금 만들 수가 있는 것이다.

내가 가장 기억나는 것은 20세기 중반 미국에서 여성들의 결혼나이가 너무 어리게 된 점이 신기하게 보여졌다. 10대 후반이나 20대 초반 여성들이 자신의 능력을 키워 당당한 사회인으로서 남성과 결혼하기 보다는 여성은 그저 남성의 아내로만 충실하면 그만이다는 관념이 그렇게 심각한지는 꿈에도 몰랐다.  TV에서는 하이틴과 갓 20대인 여성이 이쁘게 꾸미도록 하는 것이 정당한 것과 그렇게 꾸며서 돈이 많은 남성에게 시집가는 것을 최고의 미학으로 만들어 버린 것이다.

TV 드라마, 영화, 광고에서 온통 여성들에 대한 태도는 자율적이고 책임성이 있는 여성보단 타율적이고 책임을 전가시키는 인간이 되기를 바랬던 것이다. 그래서 이런 서구의 잘못된 관점을 보면서 한편으로 나는 이렇게 생각했다. 대한민국 여성들이 가지는 올바르지 않은 인식에 대해서다. 겉으로 여권신장을 외치면서 왜 책임과 의무를 회피하는가이다. 여서들이 인권이나 권리만 주장한 뒤에 책임을 회피하면 결과론적으로 여성은 남성이 없으면 아무것도 못하는 인간이 된다는 뜻이다.

힘들고 어려운 일들을 외면하여 남성들에게 그저 하길 바라면서 자신은 경제적 사회적 보장을 바라는 것은 결국 억지에 불과한 일이다. 그리고 겉으로는 권리를 운운하면서 결국은 경제적으로 보장된 남성을 찾아 자신의 편익을 도모하려고 한다. 이것이 과연 우리가 맞다고 생각하는 페미니즘인가? 이건 오히려 자신을 스스로 깍아내리는 안티페미니즘이다. 이 챡에서는 이렇게 말하고 있다. 여성의 몸에 대해서 말이다. 매릴린 옐름 교수의 "유방의 역사"를 보면 여성의 몸이 가면 갈수록 얇아지고 있다고 한다. 물론 남성의 입장에서 뚱뚱한 여성보단 날씬한 여성이 좋다. 

그렇다고 해서 여성들이 거기에 불만을 가지면 여성들보고 뚱뚱한 남성과 날씬한 남성 중에 누구를 선택할 것이냐고 물어본다면 어떻게 대답할 것인가? 결국 서로 같지 않은가? 그러나 문제는 너무 뚱뚱할 경우 성인병, 당뇨, 각종 질환으로 건강에 위협을 받을 수 있지만 너무 날씬해도 신체적인 문제를 유발할 수 있다. 지나친 골격성형, 유방확대수술, 각종 다이어트는 여성이 여성 스스로 건강을 위해서 몸을 관리하는 것이 아니라 남성의 미적 감각에 맞도록 자체적으로 설계하고 있는 것이다.

문제는 여성 스스로가 자신의 몸을 망치는 것 자체가 미디어로 통해 정당화되고 있다는 사실이다. 이런 문제가 발생함에도 불구하고 여성들은 그런 미디어를 비판적으로 수용하기 보다는 그 자체가 하나의 트렌드로 받아들여 자신이 그렇게 트렌드에 맞추는 것이 시대를 앞서 나가는 사람인양 착각하도록 하는 것이다. 그 뒤에 감추어진 이면에는 남성의 입맛에 길들어진 여성을 만들기 위한 하나의 수단에 불과하기 때문이다. 물론 나 역시 남성이므로 여성의 매력이 한껏 내보이는 스타일이 좋을 수 있다. 하지만 그게 너무 당연해버리면 결론적으로 사회적인 남녀 불평등은 해결되지 않으며 오히려 왜곡된 형태로 유지될 뿐이다.

이런 문제에 대해 이 sex and money에서는 다양한 페미니스트 인문사회학자들이 오랜 연구결과를 토대로 만든 논문을 묶은 서적이다. 이 도서에는 남녀 불평등부터 시작해 인종차별, 게인, 레즈비언과 같은 비주류적인 인간에 대해 다루고 있다. 페미니즘이라고 해서 모든 여성들에게 혜택이 가는 것이 아니라 일부는 백인여성에게 권리를 주장하려고 하는 경우가 있기 때문이다. 여성의 자유는 여성만의 자유가 아니라 노인, 어린이, 장애인, 유색인종과 같은 모든 불평등한 대우를 받는 이들을 위한 하나의 인간차별 철폐이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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치심, 마음 다스리기 - 조선 선비들의 마음 경영법
문효.이소영 지음 / 왕의서재 / 2009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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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 선조들 중에서 위대한 학자와 사상가들은 마음을 스스로 다스기를 중시했다. 그 이유는 자신의 가치관이나 마음가짐을 확고히 다지기 위한 길이기도 하나 한편으로는 그 시대상에 놓여 있던 자신들의 입장에 많은 부담이나 모순을 느낀 것도 없지 않다.

특히 조선시대는 유교사상 성리학을 필두로 하여 모든 정치, 사회, 문화 등이 형성되어 왔다. 그리고 유교시대인 조선에서는 이른바 사대부라는 최고 계급이 통치하던 사회이므로 그 사대부라는 양반들은 위로는 임금에서 아래에 있는 농민들을 받치고 봉양해야만 했다.

그러나 모든 사회가 이런 마음가짐으로 통하는 세상이 아니다. 양반이라도 당파싸움에 쌓여 귀양을 가거나 벼슬을 잃은 경우도 있고, 높은 벼슬에 있더라도 막대한 업무에 항상 마음을 노심초사하였다. 게다가 조선후기로 넘어오면서 사회적 모순이 급격하게 심해지면서 지식이나 재주는 많으나 신분상 중인 내지 서열로 머물러 그 자신의 능력을 제대로 보여주지 못한채 생을 마감한 인물들도 많았다.

그런 점에서 조선사회는 지식인들에게 매우 심적인 고생을 안겨주고 그들에게 많은 현실모순을 통해 답답함을 안겨주었다. 그래서일까 그들에겐 의지할 수 있는 것은 자신의 심적인 안정을 찾을 수 있는 자신만의 공간이다.

물론 요새 사회에서는 신분제가 사농공상이 아닌 경제적인 부로서 조금 다르게 배치되었으나 적어도 정치적 사회적 참여면에서 조선시대보다 훨씬 자유로워졌다. 그렇게 자유로워도 여전히 사람들에겐 마음의 안식처가 필요하다.

그래서 마음 약한 존재는 자신의 안락함과 편안함을 찾기 위해 자기만들의 틀에 박혀 버리기도 한다. 최근 히키코모리(은둔형 폐인)이나 남의 이야기를 들어주지 않고 자신의 주장만 펼치는 이른바 중2병이란 속칭도 생겼다. 물론 이런 부정적인 요인은 사람들간의 소통과 대화를 끊게 하나 어떤 분야와 장르에 잘 접근하면 좀 더 새롭게 좀 더 발전적으로 변할 수 있다.

이런 점에서 지금보다 더욱 답답한 당시로는 선조들은 어째 마음을 다스렸는가? 그들은 자신의 울분을 삼키기 위해 우리보다 더욱더 깊은 여가활동을 즐겨왔다. 답답한 귀양생활과 정치생활을 피해 자연으로 간 윤선도, 어지러운 세상에서 차로 통해 마음을 푼 추사 김정희와 초의선사, 당파싸움으로 멸문지화하여 대학자로 거듭난 성호 이익, 어지러운 정치를 탕평책으로 이끌어 내던 개혁군주 정조의 담배 등등 말이다.

여기에 소개된 인물은 우리 나라 역사에서 매우 뛰어난 인물임에 동시에 매우 심각한 고뇌를 짊은 인물이다. 그런 사람들로 통해 새롭게 자신의 마음을 다스리는 방법 그리고 그것으로 통해 울분과 한을 삭히는 선조들의 지혜를 엿보는 것도 좋은 의미가 되지 않을까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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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무현, 마지막 인터뷰 - 대한민국 제16대 대통령 노무현! <오마이뉴스> 오연호 대표기자와 나눈 3일간 심층 대화
오연호 지음 / 오마이뉴스 / 2009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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솔직히 한국에서는 기나긴 왕족과 양반들이 권력을 갖고 통치하던 봉건주의 국가사회이었다. 그리고 그 조선이라는 마지막 봉건국가가 1905년 을사조약과 1910년 경술국치로 인해 그 역사는 머나먼 과거로 흘러가 버렸다.

 



그리고 억압된 일제강점기와 해방직후의 양쪽 이데올로기의 대립과 625전쟁, 그리고 수많은 독재와 봉기 등등 그러고 보면 대한민국 근현대사는 너무나도 빠르고 숨 쉴 사이 없이 지나가기 바쁜 고속철도와 같았다. 너무 빨리 지나가기만 하니 앞만 바라보고 뒤와 옆을 제대로 볼 수 없었다.

 



물론 그런 난항들은 근현대가 아니라 조선시대와 그 이전에도 있었다. 그 많고 많은 시련과 수난 속에서 조금 이런 생각을 해본다. 과연 누가 역대 정치지도자에서 가장 탁월했는가? 나는 우선적으로 추천하는 정치지도자는 학자임금인 정조이다. 조선시대 세종대왕이 훈민정음 창제나 여러 사업을 했지만, 결국 그것은 아버지 태종 이방원의 덕이었다.

 



순수하게 자신의 힘으로 어려운 정국은 헤쳐 가며 나라를 위해 붕당정치의 폐단과 관료들의 비리, 제도의 불안정 등을 척결하여 더욱 강한 나라로 만들려고 했다. 물론 1800년 정조가 승하하면서 탕평정책은 깨져 버리고 다음해인 1801년 신유사옥과 황사영백서로 인해 많은 실학자들이 유배와 처형은 당한다.

 



역사에서는 이런 말을 인정하지 않는다고 한다. “만약에 그렇게 되었더라면” 라고 말이다. 과거가 지나간 이상 되돌아 갈수도 만들어 놓을 수도 없다. 그저 흘러갈 뿐이다. 단지 과거를 이해함으로 현재를 알고 미래를 준비할 뿐이다. 지금 조선시대 봉건사회도 끝이 나고 냉전시대 산물인 625전쟁도 다 지나갔다. 세월은 그렇게 변화를 거치어 온 것이다.

 



그렇다면 이런 긴 여정을 마친 한국이 왕권국가에서 국민국가로 변화되면서 나보고 누가 가장 좋아하는 대통령이라고 물어본다면 나는 노무현이라고 말할 것이다. 물론 노무현 대통령이라 해서 모두 잘하고 탁월하다고 생각하지 않는다. 단지 역대 대통령들을 보면서 생각한 것이다. 참고로 나는 나이가 20살 이전에 정치에 전혀 관심 없었다.

 



고등학교 시절 학업열등생이 대학에 가기 위해 고등학교 말년 3학년은 그저 공부에 매진하였다. 그런 다음 수험에 대한 해방감을 맛보기 위해 예전부터 좋아한 락을 즐기기 위해 언더그라운드 세계에서 자유를 만끽했다. 기타 치는 형들에게 기타도 조금 배우고, 합주도 구경하고 공연도 가고 같이 술마시고 그저 그게 나는 좋았다.

그것이 나의 고등학교 이후 대학입학전의 생활이다. 내가 정치에 대해 눈을 뜬 건 대학교 1학년 시절이다. 우리학과는 환경공학이라 환경부에서 주관하는 전국 폐기물 통계조사에 참여할 때이다. 때는 1999년 겨울, 나는 지정된 구역에서 주택, 상가 등 다양한 거주 및 건물형태에 따라 폐기물 수집을 하고 있었다. 



마친 사무실 부분이 있길래 개인사업장에 들어가서 폐기물조사하는 것이 다소 부담스러워서 인근에 국회의원 사무실이 있었다. 사무실에 들어가서 환경부 통계조사한다고 말하는데, 순간 그 국회의원 밑의 보좌한다는 인간이 우리에게 이렇게 말했다. “야이 쌔끼들아! 여기가 어딘줄 들어와! 어서 안꺼져!”라는 심한 욕설과 비인간적인 행동이었다. 



이때 이후로 이 사무실의 주인과 그 주인이 몸담은 정당은 일체 뽑지 말아야 하겠다고 생각했다. 당시 어린시절이라 그렇게 흥분했지만, 지금 역시 생각해보면 열받는다. 국민이 낸 세금으로 활동하는 사람들이 시민이 찾아와 어려운 부탁도 아닌데 욕한다는 사실에 사실 충격을 받지 않을 수가 없었다. 



그 후에 부산에서 계속 지내면서 부산에 살면 부산권 정치인인 노무현 해양수산부 장관의 이름이 거론되었다. 당시 부산은 경상권이라 전라도지역과 지역감정이 매우 심했다는 점과 그런 상태에서 노무현 장관은 신기하게 보였다. 나 역시 부산에 살다보니 노무현이란 3자는 금방 알게 된다. 정치적 당색이라던가 신념이 아닌 어떤 인물인가에서 말이다. 



그런 애기를 들은 직후에 2002년 나에게 처음으로 대통령 선거할 수 있던 기회가 왔다. 그리고 노무현을 선택했다. 그리고 그는 당선되고 나는 2003년 군입대를 하게되었다. 나는 군복무를 공군으로 갔는데, 당시 배치부대가 김해공항으로 갔다. 2004년에 들어오고 2005년에 부서가 공사설계시공파트로 갔는데, 때마친 그 해는 APEC이 열렸다. 의전실 공사의 설계, 시공, 관리를 맡은 부서에서 기술행정을 맡았던 나로서 이 APEC은 사실 악몽이었다. 



맨날 잦은 공사내용 변경, 주요 지휘관, 정부기관, 심지어는 국무총리와 대통령까지 들어와서 이 현장을 보고 갔다. 시공부서에 있던 사람으로 VIP가 오는 것은 상당히 싫다. 아니 짜증난다. 공기는 다가오는데, 이 사람들로 인해 공사가 제대로 될 수 없다보니 잦은 야근과 주말잔업이 있었다. 남들은 군복무 하면 초소근무가 주된 추억이나 나는 사무실에서 야근과 잔업이 추억이다. 



솔직히 이때는 노무현 대통령이 미웠다. 개인적으로 말이다. 그런데 그것은 아니었다. 이라크 전쟁과 더불어 정부에서 파병안을 내고 어느 순간 파병안이 결정되자 그 여세는 내 주변에서 일어났다. 내가 속한 부대가 수송기가 있던 곳이라 많은 장병들이 머나먼 이라크로 가게 되었다. 거기에는 내 동기도 있었고, 같은 대대 사람들도 있었다.  



나에게 한없이 고맙고 친근하기도 한 사람이 한국을 떠나 몇 개월 동안 모래폭풍으로 이루어진 이라크로 간 것이다. 나중에 한국에 무사히 귀국하여 내가 전역 전에 서로 잘 지냈지만, 그들이 느낀 이라크 파병은 그렇게 재미난 이야기가 아니다. 비록 전투가 바로 일어나는 위험지대가 아니나 언제 전투가 날지 언제 폭격이 날지 언제 테러가 날지 모르는 비상시기이니 말이다. 



그런 곳을 내 옆에 있던 사람이 갔다. 그런데 놀라운 일이 있었다. 노무현 대통령이 이라크 파병부대에 가서 장병들과 만났다는 것이다. 누구는 인기몰이라거나 혹은 정치적인 수단이라 하지만, 나는 역으로 묻고 싶다. 당신은 당신의 이름을 올리기 위해 언제 죽을지 모르는 사지공간에 들어갈 자신이 있냐고 말이다. 



사실 이라크 지역에 이착륙하던 항공기는 대부분 보잉이나 에어버스에서 만든 제트엔진으로 된 항공기가 아니라 C-130H이라는 군작전수송기였다. 이 항공기 직접 타지는 않으나 같이 있던 사람들에게 들으면 안다. 대단히 시끄럽고 불편하다고, 그런데 그 수송기에 몇 시간을 앉아 사지로 갔다고 생각해보라. 



그래서 나는 노무현이 좋아한 것이다. 물론 공군이라는 이름아래 좋아하게 되었으나 차후 전역 전까지 지켜보면서 그가 한국군사력을 위해 열심히 노력한 것은 충분히 알 수 있었다. 그런다고 모두 이런 군인으로 지내면서 생각한 노무현이 나에게 전부는 아니다. 그가 100% 옳은 것은 아니나 그가 자신을 스스로 낮추는 것이 나는 좋았다. 



권력의 최고점에 있음에도 불구하고 국민에게 머리를 숙이는 모습에 솔직히 군인으로 있었던 당시 나로서는 놀라움이었다. 그런 사람인듯 노무현 대통령은 여러 가지로 참 말이 많고 많았다. 마지막 인터뷰에서 보고 아이러니한 내용은 진보세력에서는 보수적이라고 비난받고, 보수세력에서는 너무 진보적이라고 비난받은 것이다. 우리나라가 진보와 보수가 양극화되어 으르렁되는데, 그는 진보도 보수도 아닌 곳에서 비난당하고 있었다. 



그런 이것이 무엇인가? 한국 진보세력의 가장 문제점은 이책에서 보여준 “쉬운데로 안주거리처럼”이란 것이다. 반대에 대한 반대로 하는 점이다. 노무현 대통령이 진보주의자에게 하고 싶은 이야기는 “우선 한국의 진보주의자들에게 역사의 사실을 존중하라는 말을 전하고 싶습니다. 역사라는 것은 과거로부터 법칙을 배우고 그 법칙으로 현재를 이해하고 미래를 예측하는 것 아닙니까. 진보주의자들이 주로 개방 문제와 관련해서 그동안 주장했던 것이 그 이후에 사실로 증명된 것은 하나도 없습니다. 전부 다 사실이 아닌 것으로 증명 되었습니다.” 



사실 한국에 진보든 보수든 어느 것이든 버릴 수만은 없다. 그런데 노무현 대통령이 제기한 진보에서는 현실을 보고 국제사회를 보자는 것이었다. 진보가 우리는 이 세계에 대해 불만으로 반대만 한다고 하여 그것이 우리로 끝나면 모르나 한국은 한국이기 때문에 존재하는 것이 아니라 한국 아닌 다른 나라가 있기에 존재한다. 한국이 국제정세에 흐름을 따라가지 않으면 자재수입과 제품수출 무역으로 생존하는 국가로서 치명적인 게 분명하기 때문이다. 



그리고 이 말이 인상 깊었다. “그래서 이런 현실, 역사적 사실을 제대로 돌아보지 않는 자세는 공부하는 사람들의 자세도 아니고, 정치하는 사람들의 자세도 아닙니다. 정치하는 사람들이야말로 정말 과학적인 자세를 가져야 하는 것이지요. 객관적 사실을 사실로 인정할 줄 알고, 그래야 오늘을 바로 해석할 수 있고 내일을 예측할 수 있는 것입니다.” 그는 현실을 제대로 꿰뚫어보는 과학적 논리를 지니고 정치를 해야 한다고 했다. 



오히려 “그러니까 공허하고 교조적인 이론에 매몰되어서 흘러간 노래만 계속 부르지 마라. 이겁니다. 일부 고달프고 불평스러운 사람들을 선동해서 끌고 갈 수 있을지도 모르고, 일부 이른바 강단사회주의라고 이야기하는 급진지식인들은 뭉쳐갈 수 있을지 모르지만...”에서 현실에 대한 이해도를 높여야 한다고 했다. 그가 주장하는 것은 한쪽으로 치우쳐서 뭐든지 극단적 행위보단 과학적인 사고로 판단하라고 했다.

그렇기에 국민들이 이런 지나친 이데올로기에 빠지지 않으려면 국민 스스로 정치에 참여하고 생각해야 한다고 했다. 그리고 “권력은 위임하되 지배를 거부하라” 모든 국가조직은 국민을 위해 존재하는 것이다. 그리고 국민을 위해 공적인 업무에서 공권력이 필요한 것은 사실이나 그 공권력이 국민이 위임한 사람들의 사욕에 이용되는 것을 국민 스스로 막아야 한다고 했다.



과연 내가 아는 노무현, 당신이 아는 노무현, 아니면 내가 모른 사람들의 노무현, 그것은 각각마다 다르다. 사람들이 살아온 환경과 조건, 그리고 가치관은 뭐든지 다르게 보일 뿐이다. 단지 타인에 의한 노무현이 아니라 노무현에 의한 노무현은 무엇인가에서 그는 기존에 내가 생각하던 것이랑 다른 것은 분명한 사실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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