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인의 전쟁 샘터 외국소설선 1
존 스칼지 지음, 이수현 옮김 / 샘터사 / 2009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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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왕 재밌다.

처음부터 마지막 장까지 흥미진진하다.

물론 이럴줄 몰랐네 식의 반전같은건 별로 없다. 다만 sf의 클리셰를 훌륭히 버무렸다 표현하는 것이 맞겠다.

주인공인 존 페리는 충분히 매력적이고, 영웅적이다.

끔찍한 비극은 어울리지 않는다는 듯 희미하게만 그려져있다.

노구를 이끌고 자원입대를 한 후 일어나는 상황들은 많은 부분 상상력을 동원하여 이미지화해야하기 때문에,

다른 감정적 소모까지는 감당하지 못했을 것 같다.

그런 의미에서 정말 괜찮은 이야기다. 최적화 되어있달까.

시리즈를 구입해 놓았는데, 조금씩 톤이 다르다는 이야길 들어서 기대도 되고, 그 반대이기도 하다.


묘지를 싫어하긴 하지만, 이곳에 감사하고 있기도 하다. 나는 아내가 그립다. 묘지에서, 죽어서 묻혔을 뿐인 곳에서 그녀를 그리워하는 편이 그녀가 살아 있던 모든 장소에서 그리워하는 것보다 쉽다. 나는 오래 머물지 않았다. 오래 머무른 적이 한 번도 없었다. 그저 8년이 지나도록 생생한 아품을 다시금 느낄 시간이면 족했다. 그것은 또한 나에겐 멍청한 늙은 바보처럼 묘지를 어정거리는 것말고 다른 할 일이 있다는 것을 상기시켜 주는 아픔이기도 했다. 아픔을 느끼도 나서 나는 몸을 돌려 떠났고, 돌아보지도 않았다. 그 묘지든 아니면 내 아내의 무덤이든 이것이 마지막 방문일 테지만, 그곳을 기억하는 데 지나친 노력을 기울이고 싶지는 않았다. 말했다시피 이곳은 아내가 죽어서만 와본 장소다. 그 장소를 기억하는 것은 그리 가치 있는 일이 아니다. - 11

날 괴롭히는 게 그건지도 몰라. 결과에 대한 감각이 없어. 난 방금 살아 있는, 생각하는 존재를 집어서 건물에 집어 던졌어. 그런데 전혀 괴롭지가 않아. 그게 괴롭지 않다는 사실이 고로운 거야, 앨런. 행동에는 결과가 있어야 해. 최소한 우리가 얼마나 끔찍한 짓을 하고 있는지, 훌륭한 이유가 있어서 하는 짓인지 아닌지 정도는 알아야 해. 난 내가 하는 짓이 전혀 끔찍하지가 않아. 그게 무서워. 그게 의미하는 바가 무서워. 난 저주받을 괴물처럼 이 도시를 짓밟고 다녀. 그러면서 내가 도대체 무엇인지 생각하기 시작하는 거야. 내가 무엇이 되었는지를. 난 괴물이야. 자네도 괴물이야. 우리 모두가 인간 아닌 괴물인데 그게 잘못됐다는 생각도 안 해. - 270


2016. Aug.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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짙은 백야 문학과지성 시인선 487
이윤학 지음 / 문학과지성사 / 2016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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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집 고양이 에코가 방광염이 재발했다.

처음 보다야 많이 놀라지 않았지만, 여전히 나는 패닉상태가 되어버리고...

나이 많은 고양이가 아픈 곳 한두군데 있는 것은 이상한 일은 아니지만

그게 그렇다고 하더라도 익숙해질 수 없는 일상이 아닌가.

그 와중에 밤을 새며 틈틈히 읽은 짙은 백야는 어쩜 지금 읽기에 적절치 않은 시집이었을지도 모른다.

왠지 맡아지는 쇠락과 노후의 느낌이랄까.

그냥 기분탓일 수도 있을것이다.

올 사람 아무도 없는데 나는 어느새 누군가를 기다리고 있었습니다 그는 한 번도 오지 않았습니다 한 번도 오지 않았기에 나는 기다릴 수 있었습니다 - 추석 중.

2016. Aug.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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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도 책 안녕.

요 며칠 소강상태인 책읽기에 불을 붙여줄 것인지.

아우구스투스 허먼멜빌 기대중입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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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쓰는 여자의 공간 - 여성 작가 35인, 그녀들을 글쓰기로 몰아붙인 창작의 무대들
타니아 슐리 지음, 남기철 옮김 / 이봄 / 2016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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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5명의 여성 작가의 작업스타일? 작업 공간? 을 소개하는 책.

뭐가 딱히 유익하다는 점은 없지만, 작가들의 모습을 조금씩 훔쳐보는 맛은 있다.

책을 고르다가 책장 구석에 꽂혀 있는 언제샀는지, 왜샀는지 기억도 안나는 책을 발견하는 일은

왠지 보물찾기, 혹은 아무 생각 없는 book hoarder 같은 소름끼치는 내 모습의 발견.

이번엔 보물 찾기에 가까운 경우라고 해도 될듯.

그렇다고 재미있어요?라고 묻는다면 관심사에 따른 문제라고 말해두고 싶다.

2016. Aug.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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에이미와 이저벨
엘리자베스 스트라우트 지음, 정연희 옮김 / 문학동네 / 2016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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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자비하게 뜨거운 여름을 지나는 와중에 무자비하게 뜨거운 여름을 열병처럼 치뤄내는 에이미와 이저벨의 이야기를 읽다.

데뷔작이라니..... :0

에이미는 자신이 엄마와 검은 선으로 연결되어 있는 것 같았다. 그 선은 고작 연필로 그은 정도의 굵기였지만 늘 거기 존재했다. - 16

그녀와 엄마는 바보 같은 자신들의 삶이 고단하고 구역질났지만 서로 찰싹 들러붙어 있었다. - 313

전 생애를 단지 엄마라는 존재와 부대껴온 고립된 자아가 어떻게 성장? 하는지를 참으로 집요하게 관찰한 기분이다.

알고 읽은 것은 아니지만 곳곳에서 드러나는 여성들의 연대를 아름답게 그려낸다.

에이미와 이저벨은 서로를 지긋지긋해 하면서도 결국 연민하고 사랑할 수밖에 없는 가족이기에 의지하게 된다면, 에이미와 스테이시는 십대 후반다운 적당한 어리석음과 적당한 무구함이 버무려진 우정을 구축하고, 이저벨은 스스로의 결벽을 벗어던지고 동료인 베브와 도티와 삶의 한 조각을 공유한다.

그들이 뭔가 대단한 것을 행하기 때문이 아니라, 단지 서로의 마음 한 조각을 들여다봐주고 가만가만 울어준다는 것 만으로...

어느 새 점점 속도가 붙어 책을 놓을 수가 없게 되고, 희미했던 캐릭터들도 생생한 살과 피를 지닌 인물로 선명해진다.
익숙한 세계이면서, 또 생경하기도 한 세계가 설득력있게 다가와서 오히려 당황스러운 기분도 든다.

오랫만에 으악! 하게 만드는 엄청나게 좋은 소설이다. 엘리자베스 스트라우트의 다른 소설들도 어서 번역되기를 몸달아하며 기달릴것 같다. :):):)


에이미는 데비 돈에 대한 생각을 멈출 수가 없었다. ˝친척이나 뭐 그런, 확인해볼 사람들이 있잖아. 그 사람들까지 다 조사했는데 가출이 아닌 게 확실하대. 경찰이 분명히 밝혔어. 살해당하지 않았을까 의심한대. 유괴됐으니까. 그애는 학교에서 문제를 일으킨 적도 없고 행복한 아이였대.˝ ˝지랄.˝ 스테이시는 한 손으로 크래커를 먹으면서 다른 손으로 해군복 스타일의 감청색 코트 칼라를 단단히 감아쥐어 목을 감쌌다. ˝열두 살은 행복하지 않아.˝ - 97

이저벨은 입술에 손가락을 댔다. 그 일이 얼마나 그의 마음을 어지럽혔을지 그녀는 알았다. 하지만 그 구절, ˝나약함이여, 그대의 이름은 여자이니!˝ 이건 전혀 마음에 들지 않았다. 그가 어머니에게 한 말이었다. 맙소사. 혼자 아이를 키우는 것에 대해, 사랑하는 남자를 잃는 것에 대해 햄릿이 뭘 안다고? 이저벨은 얼굴을 찡그리고 엄지손톱을 물었다. 솔직히 햄릿은 여기서 매우 공격적이었다. 보스턴 법정 건물 앞 계단에서 속옷을 불태웠다는 그 여자들도(뉴스에서 들었다) 그 부분은 좋게 받아들이지 않았을 것이다. 나약함이여, 그대의 이름은 여자이니! 이저벨은 실내복을 더 단단히 여몄다. 솔직히 슬슬 짜증이 났다. 남자들은 깨우쳐야 할 것이 많았다. 여자들은 전혀 나약하지 않았다. 누가 뭐래도 먼 옛날부터 세상을 흘러가게 한 것은 여자였다. 게다가 그녀만 해도 전혀 나약하지 않았다. 지붕은 새고 차에는 윤활유가 필요한 뉴잉글랜드의 을씨년스러운 겨울 날씨에 혼자 딸을 키우는 여자에게 나약하다니, 가당치 않았다. - 163

뚱뚱이 베브가 라이프세이버스를 통째로 에이미에게 내밀었다. ˝잘 들어.˝ 그녀는 나긋하지만 지칠 대로 지친 표정으로 눈썹을 치키며 한숨을 쉬었다. ˝이따금 난 내가 미쳤다고 생각해. 아니면 미친 것과 끔찍이 비슷하거나.˝ ˝별로 미친 것 같지는 않은데요.˝ 에이미가 말했다. ˝더없이 정상으로 보여요.˝ 뚱뚱이 베브는 미소를 지었지만 어딘지 슬퍼 보였다. ˝착하기도 해라.˝ 그리고 말했다. ˝어쩌면 우리 모두 미쳤을 거야.˝ - 276

하지만 무엇을 할 수 있겠는가? 계속 나아갈 뿐이다. 사람들은 계속 나아간다. 수천 년 동안 그래왔다. 누군가 친절을 보이면 그것을 받아들여 최대한 깊숙이 스며들게 하고, 그러고도 남은 어둠의 골짜기는 혼자 간직하고 나아가며,, 시간이 흐르면 그것도 언젠가 견딜 만해진다는 것을 안다. 도티, 베브, 이저벨 모두 저마다의 방식으로 이것을 알고 있었다. - 508

2016. Aug.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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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락방 2016-08-22 08:23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헬라스님이 책 읽고난 후에 별 다섯 개 주시는 거 정말 드문 거 아닌가요!!!

hellas 2016-08-22 08:24   좋아요 0 | URL
작년즈음부터 제 별이 그리 인색해졌지요. 사실 이년전쯤만해도 후했는데... 어쨌든. 으아 좋아요 좋아>_<

곰곰생각하는발 2016-08-22 09:47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으악, 이라고 소리칠 정도로 좋은 소설이라니..

hellas 2016-08-22 13:03   좋아요 0 | URL
네. 정말입니다:)

yamoo 2016-08-28 21:01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헐~ 얼마나 괜춘길래....
아, 궁금하네요...저도 리스트에 추가하겠습니다! 모르는 작가인데, 소개해주셔서 감사합니다!ㅎ

hellas 2016-08-28 21:03   좋아요 0 | URL
뜨거운 여름이 점묘화그리듯 섬세한데 요즘 제가 이런 스타일에 꼿혔나봐요:) 이 작가의 단편집도 엄청 좋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