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체르노빌의 목소리 - 미래의 연대기
스베틀라나 알렉시예비치 지음, 김은혜 옮김 / 새잎 / 2011년 6월
평점 :
위안부에 대한 글을 읽은 후에 왜 또 이런 대형 재난에 관한 책을 뽑아들었는지...
전쟁은 여자의 얼굴을 하지 않았다를 읽었을 때는 여성이 겪는 전쟁이라는 점에서 좀 더 감정이입이 되었던 것 같다.
원전사고라니 너무 와닿지 않는 파국아닌가.
물론 이제 이것은 남의 나라 이야기로 생각할 수 있는 문제는 아닐 것이고, 이에 대한 다각적인 대책도 마련되어야 하고.... 등등.
원전에 대해서는 기본적으로 반대하는 입장이지만, 내가 상상하는 것 이상의 논의가 필요한 문제이니 일단 패스.
이런 대형 재난은 재난 자체가 주는 데미지도 문제지만, 재난을 대처하는 결정권자들의 독단과 판단미스가 더 큰 재난이 되어가는 것이 쟁점이랄수 있다.
체르노빌도 마찬가지였다는 것을 이 책을 통해 적나라하게 알수 있다.
사고 피해자들은 체르노빌의 원전에 대해 제대로된 선행 지식도 별반 없었고,
사고 후에는 강제 소개령으로 피해자들을 외부와 고립시켰고,
적절한 대책을 내놓지도 못했고(뭐 기술적으로 적절한 대책이란게 있기 힘들기도 했을 것이지만),
합당한 처우와 보상을 해주지도 않았다.
숨기기와 감시하기에 급급한 모습은 이 나라의 모습과도 너무 닮아 소름끼칠 지경.
솔직히 후쿠시마 원전사고 이전에는 원전에 대해 큰 관심이 없었다.
당연히 최악의 원전 사고로 기록되는 체르노빌에도 관심이 있었을리 없다.
스베틀라나 알렉시예비치가 노벨문학상을 받지 않았더라면 이 책은 읽지 않았을지 모른다.
읽어서 다행일까.. 그건 잘 모르겠다.
집계된 통계에 따르면 사건 후 150만명이 사망했다. 쏟아지는 증언들에 현기증이 생긴다. 속도 안좋아지는 것 같고...ㅡㅡ;;;
다행이겠지. 라고 생각하려 한다.
평화로운 핵이라는 말이 얼마나 무심한 말인가...
이 나라는 원전 보유국 순위로 세계 6위, 총 25기의 원전이 있다.
나는 과거에 대한 책을 썼지만, 그것은 미래를 닮았다. - 2011.3월 스베틀라나 알렉산드로브나 알렉시예비치
나는 이렇게 산다. 현실과 비현실에서 동시에 살아간다. 어디가 더 나은지는 모르겠다. - 순국 소방대원의 아내.
톨스토이의 작품을 기억하는가? 피에르 베주호프 백작은 전쟁 후 충격으로 자신도, 세상도 완전히 변했다고 생각한다. 하지만 시간이 지나면서 예전과 같이 마부에게 화를 내고 투덜거리는 자신을 발견한다. 그러면 사람은 왜 기억을 할까? 진실을 되찾기 위해? 정의를 위해? 자유를 얻고 잊어버리기 위해? 자신이 역사적인 사건에 참여했다는 사실을 알기 때문에? 아니면 과거의 보호를 받기 위해? 그런데 기억은 약하고 순간적이며, 확실한 지식이 아닌 자기 자신에 대한 추측이다. 그럼에도 사람들은 기억한다. 지식이 아니라 느낌일 뿐인데도...... - 55
30분마다 오줌을 손으로 짜내야 하는 아이가 세상 어디에 또 있을까? 그리고 얼마나 더 견뎌낼 수 있을까? 나는 울음을 참는다. 나는 울면 안 된다. 문마다 두드렸다. 편지를 보냈다. 실험이 목적이라도 내 딸 좀 봐주세요. 연구 때문이라도 데려가 주세요. 내 딸이 살 수만 있다면 실험용 개구리나 토끼가 되어도 괜찮아요. 수십 통을 보냈다. 오, 주님! - 137
원고를 잡지사에 투고했다. 답변이 돌아왔는데, 내 글이 문학 작품이 아니라 악몽을 재구성한 것이란다. 물론 내가 글에 재능이 있는 사람은 아니다. 하지만 거절 당한 이유가 또 있다고 본다. 생각해 봤다. 왜 체르노빌에 대한 글이 없을까? 우리 작가들은 아직도 전쟁과 스탈린의 수용소를 주제로 글을 쓰면서 이에 대해서는 침묵한다. - 141
처음에는 `누구 잘못인가?`가 가장 중요했어요. 누군가 탓할 사람이 필요했던 거예요. 나중에 더 많이 알게 되자, 어떻게 할까 어떻게 하면 살 수 있을까에 대해 고민하기 시작했어요. 그것이 1년이나 2년 있다 지나가는 것이 아니라 여러 세대 동안 지속할 거란 사실을 받아들인 지금, 다시 옛일을 떠올리기 시작했어요. - 263
2016. Sep.