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의 엔딩 크레딧 이판사판
안도 유스케 지음, 이규원 옮김 / 북스피어 / 2022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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북스피어의 이판사판 시리즈, 딱 열권을 목표로 하는 점이 매력적이라 열권쯤이야 다 읽어야지.라고 생각한 시리즈.

인쇄회사의 이야기이고, 얼마 전에 읽은 [배를 엮다]라는 책과 비슷한 감성을 가지고 있다.

내가 맡은 일을 하루하루 실수 없이 마치는 것이 꿈인 톱 세일즈맨 나카이도와 인쇄가 모노즈쿠리로 인정받는 날을 맞이하는 게 꿈인 우라모토가 대비되어 어쨌거나 저쨌거나, 우라모토가 좋은 인쇄영업맨이 되고 책을 만드는 일은 소중하다는 이야기다.

인쇄회사가 굳이 모노즈쿠리의 경지까지 가야할 것까지 있나 싶겠지만, 그만큼 책임을 담아 일을 한다는 지점은 좋은 자세니까.
그런 조금 촌스러운 감상으로 이 책에 빠져들다 보면 하다하다 인쇄 가동률이 저조한 인쇄기까지 응원하고 있는 나를 보게 된다.

- “충분히 협력하고 있어. 우리는 하루하루 사고 없이 작업을 마치는 것만으로도 벅차. 일개 영업맨의 개인적인 열정에 휘둘릴 여유가 없다고.”
그날 맡은 작업을 하루하루 실수 없이 마치는 것.
나카이도가 설명회에서 말한 꿈 이야기가 생각난다. 간행물 하나하나를 무사히 납품하는 것이 얼마나 힘든 일인가. 노즈에의 말을 들으니 새삼 느끼지 않을 수 없다. - 30

- “요즘 영업부의 답답한 일처리 때문에 죽겠어요. 특히 우라모토가 가져오는 일감에 휘둘려서 부하들도 힘들어합니다.”
“그 아이 말이군. 저도 나름 애쓰는 것 같던데. 왜 그렇게 싫어하지?”
“이상을 말하니까요.”
스스로 놀랄 정도로 냉큼 대답이 나왔다.
“그 사람뿐만 아니라 이상을 말하는 놈들은 믿을 수 없어요. 독선적이고 자기 생각을 관철하기 위해서라면 남들 희생도 마다하지 않는 자들이니까.”
지로 씨는 “자네 말부터가 꽤 독선적인 것 같은데”하며 고개를 갸웃했다. - 119

- “엄마...... 고마워.”
“갑자기?”
“별일은 없지만...... 고마워.”
뭐라고 표현해야 좋을지 몰라 얼른 고개를 꾸벅 숙였다.
“별난 아이네. 뭔지는 모르지만, 그래 알았다.”
엄마도 고개를 깊이 숙였다.
사실은 ‘책이 있는 인생을 만들어 줘서 고마워’라고 말하고 싶었다. 하지만 전부 말로 해 버리면 도리어 제대로 전해지지 않을 것 같아서 그냥 ‘고마워’라고 말할 수밖에 없었다. - 292

- “모로미자와 류이치의 30주년 기념작 <사이버 드러그>는 이 1호기로 인쇄했다. 판권에는 이 1호기 이름과 노즈에라는 이름도 나온다, 라고.”
“설마. ‘인쇄소 도요즈미인쇄주식회사’, 이렇게 나올 텐데.”
“도요즈미인쇄라는 글자 너머에는 전체 직원의 이름이 새겨져 있느느 거야. 판권은 책의 엔딩 크레딧이니까.”
서점에서 책 판권만 살피고 다니는 아들의 모습이 머리에 떠오른다.
“그렇군. 멋진 발상이야. 그렇게 생각해서 나쁠 건 없지.” - 350

- 책이 점점 안 팔리는 세상이라 인쇄업계는 가라앉는 배에 비유되기도 합니다. 하지만 언젠가는 가라앉더라도 내가 현역으로 있는 동안은 절대로 가라앉히지 않겠다. 그런 생각으로 일하고 있습니다. - 447

- “꿈은, 내가 맡은 일을 하루하루 실수 없이 마치는 것. 그리고 인쇄기 가동률을 유지하는 것.”
“당신이 해 온 말과 정반대잖아.”
“아니, 같아요.”
우라모토는 확신을 가지고 대답했다.
“내가 맡은 일은 하루하루 실수 없이 마치고, 인쇄기 가동률을 유지한다. 그 축적 위에서 인쇄 회사도 모노즈쿠리를 할 수 있을테니까요.”
높은 이상을 향해 나아가는 것과 눈앞에 닥친 일들을 하나씩 가시화해 가는 것은 결국 하나의 길로 이어져 있었다.
“그럼 나는 우라모토 씨의 말을 빌릴까. ‘인쇄 회사는 모노즈쿠리이다’, ‘책을 찍는 게 아니라 만들고 있다’라고.”
“전에 말씀하신 것과 정반대 아닙니까?”
“이상과 긍지가 있어야 눈앞의 일도 힘 있게 할 수 있지.”
무사히 책이 완성되어서 다행이다. 마무리가 훌륭해서 다행이다. 작가가 기뻐해 주어서 다행이다. 수주 증가를 바라볼 수 있어서 다행이다. 제본소 젊은 사장이 기뻐해 줘서 다행이다. 나카이도와 서로 인정해 줄 수 있게 되어서 다행이다.
오늘은 소소하나마 여러 가지로 다행이었다. - 465

- 그렇다. 우리는 책이라는 필수품을 만들고 있는 것이다. - 512

2022. sep.

#책의엔딩크레딧 #안도유스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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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부만두 2023-02-05 07:59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배를 엮다>와 비슷한 느낌이라니 읽고 싶어요.

hellas 2023-02-05 12:04   좋아요 1 | URL
아무래도 책과 관련되고 특유의 회사문화 분위기 뭐 그런게 복합적인데 재밌게 읽었어요:)

북깨비 2023-02-05 10:53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이 책은 리뷰들이 다 좋아서 장바구니에 넣었다가 보관함에 넣었다가 아직도 안 사고 있는데 헬라스님 별 다섯개를 보니 또 솟구치는 물욕을 어쩌나.. 😭

hellas 2023-02-05 12:03   좋아요 1 | URL
사실 큰 기대 없었다가 성실한 캐릭터들 보다보니 마지막엔 좀 울컥하기도 했어요. 예상외 감동을 준 점이 별점에 큰 영향을;)

blanca 2023-02-05 12:11   좋아요 3 | 댓글달기 | URL
저도 이 책 읽고 울컥해서 막 책 덮고 눈물 흘리고 그랬네요. 반가운 리뷰입니다.

hellas 2023-02-05 12:45   좋아요 2 | URL
정말이지 감동받아버려서 다 읽고 약간 당혹스러웠어요 ㅎㅎ