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헤픈 것이다 ㅣ 위픽
J. 김보영 지음 / 위즈덤하우스 / 2024년 10월
평점 :
강렬하게, 치고 가는 무엇이 있다.
장례식 배경에, 엄마의 죽음에 이르는 투병 상황... 나에게는 아무래도 지뢰 같은 소재다.
양친을 병으로 떠나보낸 입장에서....
리얼리즘... 이라고 밖에 표현 할 수 없는 장례식장의 풍경이 좀 우습기도 하고...
늘 좋은 작가지만, 더하여 소재로 떠올린 것을 이렇게까지 쫙 펼쳐 보이는 글을 쓴다는 것에 늘 경이롭달까.
우리 안의 각색의 믿음들, 어리석고 무지해 보일 경우도 많지만, 한 인간에게 그것이라도 위안이라면 그걸 비난할 순 없다 생각하지만, 역시 참견과 오지랖의 영역이 된다면...
결론적으로 주책 맞은 사람은 돼지 말아야 한다는 큰 교훈이 있다. ㅋ
외려 속 없어 보이는 주변 인물의 사소한 행동과 말이 어떤 경우엔 철퇴 같기도, 포근한 미풍 같기도 할 수 있다는 것.
그것이 인간의 다양한 측면이기도 하겠지.
그 사실을 흥미롭게 보여주는 이야기다.
- 지금도 궁금해하곤 한다. 왜 우리는 그토록 긍정적이었을까. - 24
- "얘야, 나는 그때 구원받았단다. 이 은총을 나 혼자만 받고 싶지 않구나. 다른 사람도 나와 같이 나눌 수만 있다면 좋겠어."
큰아버지는 땅이 꺼져라 푹푹 한숨을 쉬었다.
"너도 딱 한 번만 겪어보면 무슨 말인지 알게 될 거다."
순간 벼락처럼 저항감이 일었다. 이 사람의 내면의 무대 앞에 펼쳐진 가상의 군중이 거슬렸다. 내가 상주인 줄도 모르고, 내가 엄마를 잃은 사람인 줄도 모르는 이 늙은이의 경망스러움이.
"한 번만, 한 번만이라도 내가 본 것을 볼 수 있다면."
"매일 봐요."
나는 충동적으로 내뱉었다. 큰아버지는 내 말을 들을 마음이 없었기에 "그 기적을, 신비를" 하며 말을 잇고 있었다.
(...)
큰아버지는 뭘 이해했는지 몰라도 알겠다는 듯 내 등을 두드렸다.
"지금은 큰아버지 말이 귀에 잘 안들어오겠지만, 잘 새겨듣다가, 언제든 아, 그때 큰아버지 말이 그 뜻이었구나, 싶어질 때......"
아, 그제야 알 것 같았다.
이 사람은 너무나 잘 살아온 것이다. 그래서 오만해진 나머지, 신비가 얼마나 헤픈지 모르는 것이다.
세상이 불가해로 이루어져 있음을 믿어본 적이 없기에, 일생 딱 한 번 찾아온 비현실을 저 혼자에게만 쏟아진 은총인 줄로만 안다. 홀로 선택받은 자라는 증명인 줄로만 안다. 세상에 부품처럼 딱딱 맞아 들어가며 일생 한 줌의 의심도 혼란도 없이 살아온 이 사람으로서는, 일생 딱 한 번 찾아온 불가해를 해석할 방법이 그뿐이었던 것이다.
기이는 흔해빠진 것이다.
잡풀처럼 무성하다 못해 경이마저도 주지 않는다. 널려 있다 못해 진부한 것이다. 그러므로 기이에 삶을 침해당할 이유도 없으며, 신비를 접했다고 현실의 삶을 굳이 새로이 해석할 까닭도 없는 것이다. - 69
- 내가 물끄러미 보자 민재가 나를 가리키며 말했했다.
"아, 의미 부여하지 마라. 거짓말이란 뜻은 아니고. 참말이다. 그런데 나한테만 참말이다. 너한테는 아무 의미도 없다. 무슨 말인지 알겠냐. 됐다, 몰라도 된다."
그 말에 맥이 탁 풀렸다. 마음이 누그러졌다. 신기하기도 하지. 이리 간단히도 사람에게 정이 붙다니. - 75
2024. oct.
#헤픈것이다 #김보영