프로젝트 헤일메리 (영화 특별판) 앤디 위어 우주 3부작
앤디 위어 지음, 강동혁 옮김 / 알에이치코리아(RHK) / 2026년 2월
평점 :
절판


하드 sf (과학적 개연성이나 설명이 자세한 장르).

페트로바선의 입자들이 태양 에너지를 흡수하여 지구의 인류 및 생명체의 대멸망을 가져올 재앙으로 예측되고, 이 입자들이 태양을 잡아먹는 생명체 아스트로파지라고 규정하고 누군가를 해결책 마련을 위한 편도 여행 자살임무자로 선정해 우주로 내보낸다는 이야기.

타우세티를 향해가다가 또 다른 외계 종족 로키를 만나는 것.... (귀여워... 로키>_<)

마션도 그렇지만 앤디 위어의 낙관적이고 희망 가득한 메시지를 
전작보다 더 진하게 느낄 수 있는 이야기다.

우주 생명체에게 치명적인 아스트로파지를 해결하기 위해 막막하고 망망한 우주로 향했는데, 같은 위기에 처한 호전적인 폭력성 없는 비슷한 수준의 과학지성체를 만나 소통이 가능해 협력한다는 이야기가 얼마나 동화인지. 이 우주 속 두 생명이 서로에게 둘도 없는 친구가 된다는 게 말이다.

과학적 설명 부분이 지나친 하드 sf라고 하더라고 너무 많은 설명이 좀 지쳐갈 무렵(약 200p) 로키의 등장으로 독서의 활력이 고조되고, 틈틈이 회상되는 지구에서의 우주발사 준비과정이 조금은 코믹하고 절실하기도 하여, 엔터테인의 요소들이 충족된다. 그러니 영화로도 만들어지겠지. 
로키의 귀여움을 확인하고 싶지만, 영화로까지 굳이 보게 될까 싶긴 하지만.

결말 부분도 취향 차이는 있겠지만, 나에게는 더할 나위 없는 엔딩이었음.

영화 개봉이 얼마 남지 않아, 유튜브에도 관련 영상이 많고, 이동진의 유튜브엔 엔디 위어와의 화상 인터뷰도 있다. 자신이 창조한 이야기 속 생명체와 공간이 실현되는 과정을 얼마나 경이롭게 지켜보며 참여했는지 설명하는 인터뷰가 무척이나 흥미롭다. 그레이스의 성격과 성품의 모든 것이 작가로부터 비롯되었다는 확신이 드는 작가의 캐릭터를 목격할 수 있다. 인류라는 존재에 대한 믿음과 어떤 상황에서도 잃지 않는 낙관과 한번 후련하게 울고 후회를 남기지 않고 나아가는 인간의 면모랄까.
그런 앤디 위어가 자신의 조국인 미국의 현 상황은 어떤 심정으로 보고 있을지도.... 조금은 궁금하다.
아 그리고 무엇보다 13살 고양이 조조도 출연함.

https://youtu.be/XsIC_QA4ce4?si=d67S08n1Px-II-CO


- 헤일메리 : 절망적인 상황에서 아주 낮은 성공률을 바라보고 적진 깊숙이 내지르는 롱 패스를 뜻하는 미식축구 용어, 버저가 울리는 순간에 득점할 것을 노리고 먼 거리에서 던지는 슛을 뜻하는 농구 용어이기도 함.

- 나는 자살 임무를 수행하러 왔다. 존, 폴, 조지, 링고는 집에 돌아가지만, 길고도 험난한 나의 여정은 여기에서 끝난다. 이번 임무에 자원했을 때 나는 이 모든 사실을 알고 있었던 게 틀림없다. 그러나 기억상실증에 걸린 내 두뇌에게는 이 정보가 새롭기만 하다. 나는 여기에서 죽는다. 혼자서 죽게 된다. - 111

- 그리고 내가 왜 여기에 와 있는지도 알고 있다! '있잖아, 세계가 망해간대. 좀 막아 봐.'처럼 애매한 형태로 아는 게 아니라 아주 구체적으로 알고 있다. 아스트로파지가 왜 타우세티에는 영향을 미치지 않는지 알아내라는 것. - 151

- 뜻은 확실하다. '네 우주선으로 돌아가.'
나는 엄지를 들어 보인다. 외계인은 작은 나와 헤일메리호 모형이 둥실둥실 떠가도록 손을 떼더니 엄지를 치켜드는 것과 비슷한 모양으로 손을 일그러뜨린다. 손가락 두 개가 둥글게 말려 있고 세 번째 손가락이 위를 가리킨다. 그래도 뭐, 위로 쳐든 게 중지는 아니니까. - 252

- 난 지금 하는 일을 계속해야만 한다. 과학적 의사소통 방법을, 물리학의 동사와 명사 들을 전달할 방법을 알아내야 한다. 우리에게 공유할 수 있는 어떤 개념이 있다면 그건 물리학의 개념이었다. 물리학적 법칙은 어디에서나 같으니까. 그리고 과학에 대해 이야기 다운 이야기를 나눌 만큼 많은 어휘가 생긴다면, 우리는 아스트로파지 이야기를 시작할 수 있을 것이다. - 270

- "와아..." 나는 그를 바라본다. "인간들은 수천 년 동안이나 별을 쳐다보면서 저 바깥에는 뭐가 있을지 궁금해했어. 너희들은 한 번도 별을 본 적이 없지만, 그런데도 우주여행을 해냈구나. 너희 에리디언들은 정말 놀라운 민족이 틀림없어. 과학 천재들이야." - 280

- 우리는 그렇게 잠시 가만히 있는다. "네가 자는 걸 지켜볼게."
"좋음. 나 잠." 그가 말한다.
그의 팔이 축 늘어진다. 어느 모로 보나 죽은 벌레 같다. 로키는 자기 쪽 터널에서 아무렇게나 둥둥 떠다닌다. 더는 지지대에 매달려 있지 않다.
"뭐, 이젠 혼자가 아니야, 친구." 내가 말한다. "우리 둘 다." - 310

- 문제가 생긴 에리디언의 모든 세포가 죽었다고? 끔찍하게 들리는데. 방사선 장애처럼 들리기도 하고. 그걸 어떻게 설명하지? 꼭 설명할 필요는 없겠지만. 우주를 여행할 줄 아는 사람들이라면 이미 방사선은 이해하고 있을 것이다. 그러나 우리 사이에는 아직 방사선을 의미하는 단어가 없다. 이 문제부터 풀어보자.
"단어가 필요해. 빠르게 움직이는 수소 원자. 아주, 아주 빨라."
"뜨거운 기체."
"아니, 그것보다도 빨라. 아주 아주 아주 빨라."
그는 등딱지를 움찔거린다. 혼란스러워한다.
나는 다른 접근을 시도한다. "우주에는 아주 아주 아주 빠른 수소 원자들이 있어. 이 원자들은 거의 빛의 속도로 움직여. 오래 오래 오래전에 별들 때문에 만들어졌어."
"아님. 우주에 물질 없음. 우주는 비어 있음."
세상에. "아니, 그렇지 않아. 우주에는 수소 원자들이 있어. 아주, 아주 빠른 수소 원자들이 있어."
"이해함."
"몰랐어?"
"응."
나는 놀라서 멍하니 바라본다.
어떻게 한 문명이 방사선을 발견하지 않고 우주여행을 개발할 수 있었을까? - 325

- "인류는 100년 동안 실수로 지구 온난화를 일으켜 왔어요. 작정하고 지구온난화를 일으킨다면 뭘 할 수 있을지 봐야죠."
르클레르 박사가 움찔했다. "뭐라고요? 장난합니까?"
"온실가스를 배출해 멋진 담요를 씌운다면 시간을 좀 벌 수 있겠죠? 그 덕분에 지구가 파카를 입은 것처럼 단열 효과를 누릴 테고, 우리가 얻는 에너지도 더 오래 지속될 테니까요. 내 말이 틀렸습니까?"
"무슨..." 르클레르 박사가 말을 더듬었다. "틀린 말은 아니지만 그 규모가... 게다가 온실가스 배출을 일부러 일으킨다는 건 도덕적으로도..."
"난 도덕에 아무 관심이 없습니다." 스트라트가 말했다.
"진짜로 관심 없어요." 내가 말했다.
"나는 인류를 구하는 데 관심이 있습니다. 그러니까 온실효과를 일으키세요. 박사님은 기상학자입니다. 우리가 27년을 버틸 수 있게 해줄 뭔가를 생각해 내세요. 난 인류의 절반을 잃고 싶지 않습니다." - 340

- "아스트로파지가 방사선을 막아." 내가 말한다. "너는 대부분 아스트로파지에 둘러싸여 있었어. 너희 승조원들은 아니었고. 그래서 방사선이 네 동료들한테 닿은 거야."
로키는 대답하지 않는다. 이 말을 이해하는데 조금 시간이 필요하다. "이해함." 그가 낮은 음으로 말한다. "감사. 이제 내가 왜 안 죽었는지 이해함."
나는 로키의 종족이 얼마나 간절했을지 상상해 본다. 그들은 바깥세상에 뭐가 있는지 전혀 모르면서도 지구의 우주 프로젝트를 훨씬 넘어서는 프로젝트로 종곡을 구할 성간 우주선을 만들었다.
내 상황과도 다르지 않다고, 나는 생각한다. 그저 내게는 좀 더 나은 기술이 있을 뿐이다. - 345

- 에리디언의 과학과 인간의 과학이 왜 이렇게 비슷할까? 수십억 년이 흘렀는데도 진도가 거의 비슷하네. - 346

- 로키가 생각에 잠긴다.
"네 우주선에 내 우주선보다 많은 과학, 더 나은 과학. 내 물건 네 우주선으로 가져옴. 터널 분리. 네 우주선 돌려서 과학. 너와 나 아스트로파지 죽일 방법을 함께 과학. 지구 구함. 에리드 구함. 좋은 계획, 질문?"
"어... 그래! 좋은 계획이야! 하지만 네 우주선은?" 나는 그의 제노나이트 구체를 톡톡 두드린다. "인간의 과학으로는 제노나이트를 만들 수 없어. 제노나이트는 인간이 만들 수 있는 그 어떤 물질보다도 강해."
"나 제노나이트 만들 재료 가지고 옴. 모양 다 만들 수 있음."
"알겠어." 내가 말한다. "지금 물건 가져올래?"
"좋음!"
나는 '혼자 살아남은 우주 탐험가'에서 '괴상한 룸메이트와 함께 사는 남성'이 됐다. 앞으로 어떤 일이 펼쳐질지 흥미롭다. - 368

- 그의 등딱지가 털썩 주저앉는다. 팔꿈치가 호흡구 높이에 있다. 슬플 때면 로키는 가끔 등딱지가 처지는데, 이렇게까지 깊이 처지는 모습은 지금이 처음이다.
그의 목소리가 한 옥타브 낮아진다. "실패, 실패, 실패. 나는 고치는 에리디언. 과학 에리디언 아님. 똑똑한 똑똑한 똑똑한 과학 에리디언들 죽음."
"야... 그런 식으로 생각하지 마..." 내가 말한다.
"이해 못 함."
"음..." 나는 그가 쌓아놓은 더플백 더미 위로 몸을 끌어올린다. "넌 살아 있잖아. 여기에 있고. 아직 포기하지도 않았어."
하지만 로키의 목소리는 여전히 낮다. "나 아주 여러 번 시도. 아주 여러 번 실패. 과학 못 함."
"내가 잘해." 내가 말한다. "나는 과학 인간이야. 너는 물건을 만들고 고치는 일을 잘하잖아. 함께라면, 우린 이 일을 해결할 수 있어." - 375

- 이번에도 나는 우울함에 사로잡힌다. 남은 평생을 에리디언 생물학을 공부하면서 보내고 싶은데! 먼저 인류를 구해야 한다. 인류 바보. 멍청이. 내 취미 생활도 방해하고. - 397

- 그는 자기 화면에 나타난 원을 가리킨다. "이것이 에이드리언, 질문?"
나는 로키가 가리키는 에이드리언의 정확한 위치를 확인한 다음 내 화면과 비교한다. "응. 그리고 그 부분은 '초록색'이야."
"나한테는 그 단어 없음."
당연히 에리디언의 언어에는 색깔을 나타내는 단어가 없다. 있을 이유가 없잖은가? 나는 한 번도 색깔을 신비스러운 존재라고 생각해 보지 못했다. 하지만 색깔에 대해 들어본 적이 한 번도 없는 누군가에게 색깔이란 틀림없이 꽤 이상한 존재일 것이다. 자기장 스펙트럼 내의 주파수 범위에 이름을 붙여두다니. 하긴, 내 학생들은 모두 눈을 가지고 있는데도 내가 '엑스레이'니 '극초단파'니 '와이파이'니 '보라색'이니 하는 것들이 모두 빛의 파장이라는 얘기를 해주면 놀란다. - 414

- "너 오래 나가 있음." 로키의 목소리가 헤드셋을 통해 들려온다. "너 안전, 질문?"
나는 EVA 우주복 화면이 늘 통제실의 스피커보다 큰 소리로 무전 내용을 재생하도록 설정해 두었다. 이에 더해, 로키의 통제실 구체에도 헤드셋 마이크를 테이프로 붙여놓고 음성을 통해 활성화되도록 설정했다. 로키가 무슨 말을 하기만 하면 그 말이 송신됐다.
"에이드리언을 보고 있어. 예쁘다."
"나중에 봐. 지금은 표본 가져와."
"너 되게 이래라저래라 한다."
"맞음." - 416

- 지능을 갖춘 종족으로 이루어진 행성 전체가 틀린 과학적 가정에 기반해 우주선을 만들어냈는데, 웬 기적인지 대원 중 유일한 생존자가 시행착오 문제 풀기에 무척 뛰어나서 실제로 그 우주선을 목적지까지 끌고 오다니.
그리고 그 엄청난 실수 덕분에 나를 구원할 수 있게 되다니. 에리디언들은 훨씬 많은 연료가 필요할 거라고 생각했다. 그래서 로키에게는 엄청나게 많은 연료가 남았다.
"알았어, 로키." 내가 말한다. "진정하고, 설명해야 할 과학이 엄청나게 많아." - 437

- "다른 유사성. 너랑 나는 둘 다 우리 사람들을 위해 기꺼이 죽으려 함. 왜, 질문? 진화는 죽음을 싫어함."
"종족 전체로 봐서 좋은 일이잖아." 내가 말한다. "자기희생 본능은 종 전체가 지속될 가능성을 높여줘."
"모든 에리디언이 다른 이들을 위해 기꺼이 죽지는 않음."
나는 키득거린다. "인간들도 그래."
"너랑 나는 좋은 사람." 로키가 말한다.
"그러게." 나는 미소 짓는다. "그런 것 같아." - 506

- 한참 만에 뭔가 긁히는 소리가 난다. 로키가 바닥에서 등딱지를 들어 올리는 소리다. "우리 더 노력함." 그가 말한다. "우리 포기 안함. 우리 열심히 노력함. 우리 용감함."
"그래, 맞아."
나는 이 임무에 적합한 사람이 아니다. 실제로 자격을 갖춘 사람들이 날아가 버렸기에 마지막 순간에 투입된 대체 인력이다. 하지만 나는 이곳에 와 있다. 모든 해답을 가지고 있는 건 아닐지 몰라도, 난 여기에 와 있다. 당시에 나는 이걸 자살 임무라고 생각하면서도 자원한 게 틀림없었다. 지구에 별 도움이 되지는 않겠지만 그래도 그건 대단한 일이다. - 563

- 나는 로키가 기다리고 있는 실험실로 떠가며 웃는다. "지구에는 '거미'라는 무섭고 끔찍한 동물이 있는데, 네가 그 녀석들하고 비슷하게 생겼어. 그냥 알려주려고."
"좋음, 자랑스러움. 나는 무서운 우주 괴물. 너는 물이 새는 우주 슬라임." - 607

- 하지만 많은 걸 배웠습니다. 실제로 그 전공이 마음에 들었어요. 요즘 사람들은... 요즘 사람들은 자기들이 얼마나 좋은 시절을 살고 있는지 몰라요. 과거는 대부분 사람들에게 참혹한 비극이었죠. 시간을 거슬러 갈수록 상황은 심각해요. - 619

- 내게 남겨진 선택지는 두 가지뿐이다. 하나. 영웅이 되어 고향으로 돌아가서 모든 인류를 구한다. 둘. 에리드로 가서 외계인 종족을 구하고 얼마 지나지 않아 굶어 죽는다.
나는 머리를 잡아 뜯는다.
두 손에 얼굴을 묻고 흐느낀다. 후련하면서도 진이 빠진다.
눈을 감았을 때 보이는 것이라곤 로키의 바보 같은 등딱지와 언제나 뭔가를 만지작거리고 있는 그의 작은 팔들 뿐이다. - 655

- 지구는 상황이 얼마나 나빠졌을까? 살아남기 위해 모두 힘을 합쳤을까? 아니면 전쟁과 기근으로 수백만 명이 죽었을까?
인간들은 비틀스를 수거해 내가 보낸 정보를 해독하고, 해결책을 실행할 수 있었다. 아마 탐사선을 금성에 보냈을 것이다. 그러니 아직 지구에 첨단 기간 시설이 있는 건 확실하다.
분명 다들 힘을 합쳤을 것이다. 어쩌면 그냥 내 안의 유치한 낙관주의자가 하는 생각일지 모르지만, 생각해 보면 인류에게는 꽤 감동적인 면이 있다. 어쨌거나 헤일메리호를 만들기 위해서도 모두가 힘을 합쳤다. 그건 만만히 볼 만한 업적이 아니었다. - 684

2026. mar.

#프로젝트헤일메리 #앤디위어 #projecthailmary #andywei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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딸기홀릭 2026-03-19 17:24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전 책으론 힘들었어요
주말 예매해놨네요
평이 갈리더라구요
전 일단 상상이 안가던 로키를 영상으로 확인해보려구요^^

hellas 2026-03-20 01:00   좋아요 1 | URL
초반엔 좀 더뎠지만 로키나타나고 발사전 지구 에피소드들도 흥미로웠어요 전 :) 그치만 영화는 굳이 안봐도 될것 같음 책으로 충분히 즐겼으니까요. :)
 
뒤렌마트 희곡선 - 노부인의 방문.물리학자들 민음사 세계문학전집 265
프리드리히 뒤렌마트 지음, 김혜숙 옮김 / 민음사 / 2011년 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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클레어 자하나시안... 캐릭터 있음.

영락한 도시 귈렌에 과거의 복수를 위해 찾아오는 여인. 시에 어마어마한 기부를 약속하며 과거의 연인이었던 자를 사냥하라는 조건을 내 거는데...
흥미진진 그 이상이다.
마녀라고 수군거리지만 그의 행동을 비난할 수 없게 만드는 아우라가 있는 캐릭터다.

개인의 사적 복수가 주는 통쾌함도 있고, 그 복수가 힘없던 여성이라는 점도 흥미요소다.
그러나 한 번 더 나아가 공동체를 위해 개인을 희생시키는 것으로 생각은 확장되고, 그 공동체의 악의에 대해 생각하게 된다. 효율을 위해 개인의 희생을 강요하는 일은 이미 너무 흔한 일이지 않은지. 효율을 위해 사람들이 무엇을 의도적으로 바라보려 하지 않는지 블랙코미디의 장면처럼 펼쳐지는 장면은 그저 코미디로 머무는 게 아니라 일종의 호러로 다가오기도 한다.

물리학자들은 조금 지루한 면이 있고, 노부인의 방문이 아주 좋았다.

- 망했어.
바그너 공장은 파산했어.
보크만 사는 도산했고.
행복 성공 제련 공장은 문을 닫았지.
실업 연금에 매달려 사는 인생.
무료 급식으로 연명하는 신세.
인생이라고?
힘겹게 버티다가.
뒈지는 거지.
온 도시가. - 12 노부인의 방문

- 시장 조건이 있다고 말씀하셨습니다. 그것이 무엇인지 알 수 있을까요?
클레어 자하나시안 조건을 말하지요. 여러분에게 10억을 주고 정의를 사겠습니다.
(쥐 죽은 듯한 고요.)
시장 그 말씀을 어떻게 이해해야 할는지요, 여사님?
클레어 자하나시안 말한 그대로.
시장 하지만 정의를 살 수는 없습니다.
클레어 자하나시안 살 수 없는 건 없어요. - 48 노부인의 방문

- 난 당신을 사랑했어요. 당신은 날 배신했고요. 하지만 삶에 대한 꿈, 사랑과 신뢰의 꿈, 예전에는 현실이었던 이런 꿈들을 난 잊지 않았어요. 그 꿈을 다시 일깨워 세우겠어요. 내 돈 10억으로요. 당신을 없애서 과거를 바꾸겠어요. - 133 노부인의 방문

- 나는 꼭두각시가 아니라 인간을 묘사하며, 알레고리가 아니라 행동을 기술한다. 나는 세상을 제시할 뿐, 사람들이 지금까지 나에 대해 말하는 것처럼 도덕을 제시하는 게 아니다. 나는 결코 나의 작품을 세상과 대립시키려 하지 않는다. 관객 역시 연극의 일부가 되는 한, 이 모든 것은 저절로 자연스럽게 드러나기 때문이다. - 초판 작가의 말 중


2025. dec.

#뒤렌마트희곡선 #뒤렌마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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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타터 빌런
존 스칼지 지음, 정세윤 옮김 / 구픽 / 2024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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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본가와 빌런과 고양이와 돌고래와 등등등의 흥미로운 인물들.

재정적 위기에 처한 주인공이 먼 친척의 유산을 받게 되면서 벌어지는 나름 스파이물.

설정은 흥미로운데 범세계적 빌런 집단들의 이야기가 좀 지루한 면이 있다.
그 지리멸렬한 자신들의 세계만을 위한 협잡과 욕망의 설명이 너무 지지부진하여 무매력이랄까.

마지막에 다 죽어버려(거의...)서 속은 시원했지만.

고양이와 돌고래가 현명해서 마음이 좋았던 측면도 있다.

주인공의 허접스러움에도 이야기가 순항한 것은 일종의 sf, 판타지라고 여기고 넘어간다.

- 지금 내가 기르고 있는 고양이들인 슈가, 스파이스, 스머지에게도 바친다.
너희들은 전부 골칫덩어리야. 하지만 나는 너희의 바보 같은 털 뭉치 얼굴을 사랑해. - 7

- 악당은 나쁜 사람도 사악한 사람도 아니었다. 악당은 전문적인 방해자였다. 시스템과 과정을 조사해 각각의 약점, 빠져나갈 구멍, 의도치 않은 결과를 찾아낸 다음, 그들 자신이나 고객의 이익을 위해 그것들을 이용한다. 이러한 활동은 그 자체로는 선하지도 악하지도 않으며, '선함'이나 '악함'은 관찰자의 시각에 전적으로 달려 있다고 양은 설명했다. - 116

- 난 고양이야. 위험쯤은 처리할 수 있어. 최악의 상황이 닥쳐서 돈을 다 잃더라도 누군가는 여전히 내게 먹이를 주겠고 낮잠 잘 곳도 있겠지.
"그거... 놀라울 정도로 냉정한 사고방식이네."
가끔은 인간이 아닌 게 더 나아, 찰리. - 250

2026. jan.

#스타터빌런 #존스칼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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토지 21 - 5부 5권 박경리 대하소설 토지 (나남출판) 21
박경리 지음 / 나남출판 / 2002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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절판


드디어 완독.

기억을 더듬어보니 거의 30년 전에 처음 완독을 목표로 도전했었다.

초반의 이야기는 드라마의 기억도 희미하게 남아있어 쉽게 읽었는데,
두어 번 시도하다 손놓게 된 이유는
이 장대한 이야기가 인물의 서사에만 기댄 글이 아니고,
당시의 사회상과 역사관, 세계의 권력 재편성에 관한 총체적인 인문학적인 글이어서
지루한 부분이 솔직히 없지 않아서였던 것 같다.
이번에 읽으면서도 중언부언 늘어지는 지식층 계급층 캐릭터들의 변명과도 같은 대화들은 좀 지루했지만,
아무래도 과거의 나보다는 알게 된 상식들이 늘어서인지
참을성도 동시에 향상되어 (다른 책들에 비해 더디긴 했으나) 완독에 성공했다고 생각한다.

결국 해방을 맞이한 평사리 사람들....
그들이 모든 회한을 풀어냈다고는 절대 느껴지지 않고, 실제의 역사에서 우리 국민들도 그러했겠지만, 그 이후로도 지난하게 반복되는 홧병의 역사가 있었기 때문에
홀가분하게 마지막 장을 덮게 되지는 않는다.

언제쯤이면 진정한 대동세상을 볼 수 있을지 현재도 뭐... 그렇지만...

이런 복잡다단한 감정을 제쳐두고 토지를 한번 완전히 읽어냈다는 점이 스스로 대견하므로 셀프 토닥토닥하고 언제가 될지 모르겠지만 재독도 도전해 보겠다고 다짐. :)

- 최서희로 인하여 돌이킬 수 없는 깊은 상처를 받은 상현은 일본으로 유학하고 오라는 부친의 당부도 있었고 해서 귀국했다. 그것은 지극히 형식적인 것이었지만 동경서 몇 해 공부는 했고 심장이 폭발할 것만 같았던 삼일 민족 봉기를 겪었으며 신문사 기자 생활, 소설을 발표하기도 했다. 그러나 독립 쟁취를 위하여 일어섰던 조선민족의 절규가 허사로 끝나고 만 삼일운동은 많은 청년들에게 좌절과 허무감을 안겨주었다. 국제사회의 냉엄하고도 그 비정함에 얼마나 절치부심하였는가. - 12

- "카이로선언, 그거 확실하게 조선 독립을 보장한 건가?"
"당사국들이 자기 자신들 몫을 챙기는 만큼이야 하겠습니까." - 19

- 언덕으로 올라섰을 때 모화의 마음은 다소 진정이 되었다. 언덕에서 눈 아래 내려다보이는 마을은 사방 언덕과 산에 둘러싸여 아늑해 보였다. 별천지 같았다. 항상 부둣가가 아니면 저잣거리를 오가는 모화에게, 몽치 때문에 정신이 산란한 모화에게는 마치 남의 세상과도 같은 마을 풍경에 눈시울이 왈칵 뜨거워지면서 눈물이 쏟아질 것만 같았다. 짓이겨진 자신의 팔자하고는 아무 인연도 없는 것 같은 남의 세상. - 153

- 인생이란 겨울 햇볕과도 같이, 쏟아지는 폭설과도 같이, 쩡! 하고 굉음을 지르며 스스로 몸을 가르는 빙하와도 같이, 그리고 동천에 얼어붙은 달과도 같이, 물론 봄의 환희와 여름의 정열도 있지만, 어디 사람의 삶만이 그러했겠는가. 삼라만상, 억조창생 생명 있는 것은 그 모두가 시간과 자리, 혹은 공간이라는 엄연한 십자가 밑에서 만나고 이별하며 환희와 비애를 밟고 지나가는 것이다. 욕망의 완성은 없다. 그것은 인간의, 생명의 불행인 동시 축복이다. 종말이 없는 염원의 연속이기 때문이다. - 230

- "어미니! 이, 이 일본이 항복을 했다 합니다!"
"뭐라 했느냐?"
"일본이, 일본이 말예요, 항복을, 천황이 방송을 했다 합니다."
서희는 해당화 가지를 휘어잡았다. 그리고 땅바닥에 주저앉았다.
"정말이냐..."
속삭이듯 물었다.
그 순간 서희는 자신을 휘감은 쇠사슬이 요란한 소리를 내며 땅에 떨어지는 것을 느낀다. 다음 순간 모녀는 부둥켜안았다. - 394

- "내가 행복했다면 문학을 하지 않았을 것이다." 데뷔 직후 조연현 씨의 문학강연회에 갔다가 우연하게 청중들에게 털어놓은 이 말을 박경리 씨는 지금도 번복하지 않는다. "문학은 불행의 편이고, 문학은 끊임없는 단련에서 나온다. 그러나 그 불행을 일부러 자초할 필요는 없다"고 작가는 말한다. '문학보다는 삶이 우선'이기 때문이다. 작가, 작품의 존엄성도 중요하지만 인간, 생명의 존엄성이 더 소중한 까닭이다. - 시사저널 기사 중

2025. dec.

#토지 #박경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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딸기홀릭 2026-03-06 08:05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짝짝짝! 축하드려요~
와 인내심 지구력 실행력 대단하시네요
저는 7권서 멈췄는데 올핸 꼬옥~ ㅎㅎ

hellas 2026-03-09 17:15   좋아요 1 | URL
올해 완독 응원합니다:)
 
고양이의 참배 미야베 월드 2막
미야베 미유키 지음, 김소연 옮김 / 북스피어 / 2025년 11월
평점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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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제는 너무 친숙한 캐릭터들.
익숙해져서 지루한 것이 아니라 더욱 애정을 갖게 된 이야기다.

미시야마 괴담의 밤의 3편의 고백들.
<백 자루 부엌칼>이 가장 흥미로운 설정이었다.
물론 고양이 이야기도 재밌었다.

미시마야를 이끌어갈 책임감으로 진중한 캐릭터로 그려졌던 큰 형의 의외의 연애담이 크게 공감은 안가지만 불행으로 끝내지는 않았으면 하는 맘도 든다.

그리고 에필로그 도미지로의 이야기에서 "대가로 목숨은 필요 없다. 삶의 보람을 내놓아라."라는 대사로 앞으로 어떤 불길한 일이 일어날지 궁금하게 되었다.

워낙 빨리 속편을 내놓기는 하는 미미 여사지만
기다리는 게 조금 괴롭기는 하다.

- 이야기하고 버리고, 듣고 버린다. 넓은 에도 전체에 단 하나, 미시마야의 별난 괴담 자리만이 해낼 수 있는 역할인 것이다. - 51

- 바깥에서 보기에는 보름달처럼 빠지는 데가 없는 행복을 얻은 듯 보이는 사람도, 마음속 밑바닥에는 어떤 상처를 안고 있을지 알 수 없다. 가볍게 입 밖에 내지 않고, 얼굴에도 드러내지 않고, 담담하게 살아가고, 재미있는 일이 있으면 웃고, 계절의 꽃과 달을 즐기고, 삶을 즐기는 듯 보이는 사람의 마음에도 어떤 상흔이 있을지 알 수 없다.
어쩌면 사람은 누구나 상처투성이인지도 모른다. - 159

- 사람의 삶의 모습은 비슷비슷하지. 비슷한 착한 일과, 비슷한 나쁜 일을 되풀이한다. - 310


2025. dec.


#고양이의참배 #미야베미유키 #미시야마시리즈 #에도시리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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