토지 21 - 5부 5권 박경리 대하소설 토지 (나남출판) 21
박경리 지음 / 나남출판 / 2002년 1월
평점 :
절판


드디어 완독.

기억을 더듬어보니 거의 30년 전에 처음 완독을 목표로 도전했었다.

초반의 이야기는 드라마의 기억도 희미하게 남아있어 쉽게 읽었는데,
두어 번 시도하다 손놓게 된 이유는
이 장대한 이야기가 인물의 서사에만 기댄 글이 아니고,
당시의 사회상과 역사관, 세계의 권력 재편성에 관한 총체적인 인문학적인 글이어서
지루한 부분이 솔직히 없지 않아서였던 것 같다.
이번에 읽으면서도 중언부언 늘어지는 지식층 계급층 캐릭터들의 변명과도 같은 대화들은 좀 지루했지만,
아무래도 과거의 나보다는 알게 된 상식들이 늘어서인지
참을성도 동시에 향상되어 (다른 책들에 비해 더디긴 했으나) 완독에 성공했다고 생각한다.

결국 해방을 맞이한 평사리 사람들....
그들이 모든 회한을 풀어냈다고는 절대 느껴지지 않고, 실제의 역사에서 우리 국민들도 그러했겠지만, 그 이후로도 지난하게 반복되는 홧병의 역사가 있었기 때문에
홀가분하게 마지막 장을 덮게 되지는 않는다.

언제쯤이면 진정한 대동세상을 볼 수 있을지 현재도 뭐... 그렇지만...

이런 복잡다단한 감정을 제쳐두고 토지를 한번 완전히 읽어냈다는 점이 스스로 대견하므로 셀프 토닥토닥하고 언제가 될지 모르겠지만 재독도 도전해 보겠다고 다짐. :)

- 최서희로 인하여 돌이킬 수 없는 깊은 상처를 받은 상현은 일본으로 유학하고 오라는 부친의 당부도 있었고 해서 귀국했다. 그것은 지극히 형식적인 것이었지만 동경서 몇 해 공부는 했고 심장이 폭발할 것만 같았던 삼일 민족 봉기를 겪었으며 신문사 기자 생활, 소설을 발표하기도 했다. 그러나 독립 쟁취를 위하여 일어섰던 조선민족의 절규가 허사로 끝나고 만 삼일운동은 많은 청년들에게 좌절과 허무감을 안겨주었다. 국제사회의 냉엄하고도 그 비정함에 얼마나 절치부심하였는가. - 12

- "카이로선언, 그거 확실하게 조선 독립을 보장한 건가?"
"당사국들이 자기 자신들 몫을 챙기는 만큼이야 하겠습니까." - 19

- 언덕으로 올라섰을 때 모화의 마음은 다소 진정이 되었다. 언덕에서 눈 아래 내려다보이는 마을은 사방 언덕과 산에 둘러싸여 아늑해 보였다. 별천지 같았다. 항상 부둣가가 아니면 저잣거리를 오가는 모화에게, 몽치 때문에 정신이 산란한 모화에게는 마치 남의 세상과도 같은 마을 풍경에 눈시울이 왈칵 뜨거워지면서 눈물이 쏟아질 것만 같았다. 짓이겨진 자신의 팔자하고는 아무 인연도 없는 것 같은 남의 세상. - 153

- 인생이란 겨울 햇볕과도 같이, 쏟아지는 폭설과도 같이, 쩡! 하고 굉음을 지르며 스스로 몸을 가르는 빙하와도 같이, 그리고 동천에 얼어붙은 달과도 같이, 물론 봄의 환희와 여름의 정열도 있지만, 어디 사람의 삶만이 그러했겠는가. 삼라만상, 억조창생 생명 있는 것은 그 모두가 시간과 자리, 혹은 공간이라는 엄연한 십자가 밑에서 만나고 이별하며 환희와 비애를 밟고 지나가는 것이다. 욕망의 완성은 없다. 그것은 인간의, 생명의 불행인 동시 축복이다. 종말이 없는 염원의 연속이기 때문이다. - 230

- "어미니! 이, 이 일본이 항복을 했다 합니다!"
"뭐라 했느냐?"
"일본이, 일본이 말예요, 항복을, 천황이 방송을 했다 합니다."
서희는 해당화 가지를 휘어잡았다. 그리고 땅바닥에 주저앉았다.
"정말이냐..."
속삭이듯 물었다.
그 순간 서희는 자신을 휘감은 쇠사슬이 요란한 소리를 내며 땅에 떨어지는 것을 느낀다. 다음 순간 모녀는 부둥켜안았다. - 394

- "내가 행복했다면 문학을 하지 않았을 것이다." 데뷔 직후 조연현 씨의 문학강연회에 갔다가 우연하게 청중들에게 털어놓은 이 말을 박경리 씨는 지금도 번복하지 않는다. "문학은 불행의 편이고, 문학은 끊임없는 단련에서 나온다. 그러나 그 불행을 일부러 자초할 필요는 없다"고 작가는 말한다. '문학보다는 삶이 우선'이기 때문이다. 작가, 작품의 존엄성도 중요하지만 인간, 생명의 존엄성이 더 소중한 까닭이다. - 시사저널 기사 중

2025. dec.

#토지 #박경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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딸기홀릭 2026-03-06 08:05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짝짝짝! 축하드려요~
와 인내심 지구력 실행력 대단하시네요
저는 7권서 멈췄는데 올핸 꼬옥~ ㅎㅎ

hellas 2026-03-09 17:15   좋아요 1 | URL
올해 완독 응원합니다:)
 
고양이의 참배 미야베 월드 2막
미야베 미유키 지음, 김소연 옮김 / 북스피어 / 2025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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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제는 너무 친숙한 캐릭터들.
익숙해져서 지루한 것이 아니라 더욱 애정을 갖게 된 이야기다.

미시야마 괴담의 밤의 3편의 고백들.
<백 자루 부엌칼>이 가장 흥미로운 설정이었다.
물론 고양이 이야기도 재밌었다.

미시마야를 이끌어갈 책임감으로 진중한 캐릭터로 그려졌던 큰 형의 의외의 연애담이 크게 공감은 안가지만 불행으로 끝내지는 않았으면 하는 맘도 든다.

그리고 에필로그 도미지로의 이야기에서 "대가로 목숨은 필요 없다. 삶의 보람을 내놓아라."라는 대사로 앞으로 어떤 불길한 일이 일어날지 궁금하게 되었다.

워낙 빨리 속편을 내놓기는 하는 미미 여사지만
기다리는 게 조금 괴롭기는 하다.

- 이야기하고 버리고, 듣고 버린다. 넓은 에도 전체에 단 하나, 미시마야의 별난 괴담 자리만이 해낼 수 있는 역할인 것이다. - 51

- 바깥에서 보기에는 보름달처럼 빠지는 데가 없는 행복을 얻은 듯 보이는 사람도, 마음속 밑바닥에는 어떤 상처를 안고 있을지 알 수 없다. 가볍게 입 밖에 내지 않고, 얼굴에도 드러내지 않고, 담담하게 살아가고, 재미있는 일이 있으면 웃고, 계절의 꽃과 달을 즐기고, 삶을 즐기는 듯 보이는 사람의 마음에도 어떤 상흔이 있을지 알 수 없다.
어쩌면 사람은 누구나 상처투성이인지도 모른다. - 159

- 사람의 삶의 모습은 비슷비슷하지. 비슷한 착한 일과, 비슷한 나쁜 일을 되풀이한다. - 310


2025. dec.


#고양이의참배 #미야베미유키 #미시야마시리즈 #에도시리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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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꾸만 꿈만 꾸자 문학동네 시인선 231
조온윤 지음 / 문학동네 / 2025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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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적인 상상력과 표현들이 콕콕 찌르듯 다가왔다.

일면 초등학교 선생님 같은 느낌을 주는 시.

무언가의 속성에 대해 곰곰이 깊게 곱씹게 되는 시.

- 두드리는 사람은 없었지만
문을 열었어
누군가 문틈에 끼워둔 햇빛이
발밑으로 툭 떨어졌지

쪽지에는 아무것도 적혀 있지 않았네
너무 오래 닫혀 있던 시간에 대해
아무것도 밀고하지 않겠다는 듯이

굴러갈 용기가 없어 멈춰 있는 공처럼
웅크려 있던 밤에 대해서는 오로지
나의 기록에 맡기겠다는 듯이 - 아키비스트 중

- 그리고 언젠가 눈높이만큼 자란 내가 창가에 다가가
네 어깨를 지그시 누른다면
나눠줄 수 있겠니?
네가 읽는 책에 어떤 절망이 쓰여 있는지
네가 있는 세상에 어떤 절망이ㅣ 휘날리고 있는지

우리는 끝나지 않는 장면을 펼쳐두자
귀퉁이에 가만히 손가락을 얹고
같은 쪽을 오래도록 바라보자 - 생각하는 문진 중

- 인간의 내면은 아무도 모르게
썩지 않는 글자를 유기하는 강물이거든
누군가의 밑바닥을 보고 난 후에는
도저히 용서할 수가 없어
저 위로 돌아갈 수가 없어

그건
깊은
자기
혐오
저기
저 아래
어둡고 축축한 굴속에 빠져
나를 부르는 목소리가 있어 - 깊이에의 연구 중

- 가로수의 그늘을 훔치던 한여름을 지나
도난 방지기를 무사히 통과한 기분으로 살지
가난 장마 해변 연민
아름다운 돌인 줄 알고 몰래 쥐고 있던 것들을
여전히 품 안에 감추어두면서
빛의 색출이 뜨거운 날에는 마음을 숨죽이지 - 여름 비행 중

- 나는 따뜻한 쓰레기
누군가 공중에 매달린 마음으로 쥐고 있던 우산 한 자루
언젠가, 주머니에 넣어두고 잊어버린 손들, 손가락들
오랫동안
비에도 바람에도 지고 말았지
도깨비처럼 찾아오는 미움, 미움에게도 - 비와 현실 중

- 우리도 발자국 화석을 만들 수 있을까
그러면 저 자리에 영원히 남을 수 있을 텐데
그러기에 우리 몸은 너무 가볍네
멸종을 모르는 것처럼 무구하네 - 소리 헤엄 중

- 세상의 모든 가족은
신의 탁란에 속아넘어간 바보들
한 지붕 아래 넣어두면 그게 사랑인 줄 알지 - 탁란 가족 중

- 음악이 담긴 책에는 음악의 부호가
고독이 담긴 책에는 고독의 부호가 부여된다
사람들은 분류에 의존하여 서로를 찾는다

그렇다면 이 책은 사랑에 관한 책이다
나는 오래 읽을 것이다 - 사랑의 분류 중

2025. nov.

#자꾸만꿈만꾸자 #조온윤 #문학동네시인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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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인들 - 정재율 김선오 성다영 김리윤 조해주 김연덕 김복희
박참새 지음 / 세미콜론 / 2024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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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시대의 또래 시인들 간의 인터뷰는 다정다감한 분위기로 충만하다.
비슷하지만 깊이 있는 성찰을 주고받는 동료라는 게 얼마나 값진 재산일지.
읽으면서도 왠지 부러워지는 지점이다.

박참새 시인의 인터뷰 방식이 너무 학술적이지는 않고 친밀하기 때문에 좀 더 편안하고 유쾌한 대화가 된 것 같다.

대화 중 소리 내어 읽어보는 시 읽기 론?의 옹호 의견이 있어서 나의 시 읽기가 여러 가지로 적절한 방법론을 택하고 있다는 증명인 것 같아 왠지 기분이 편해졌다. (매번 소리 내어 읽는 것은 아니고 시 안으로 집중해 들어가고자 할 때 종종 쓰는 방법이다.)

그리고 조금은 실험적이거나 난해하다고 느끼는 시들도 굳이 해석해 나가려고 하기보다는 직관적으로 느끼는 것으로도 충분하다는 성다영 시인의 말도 위안이 되었다. 

- 사랑하기와 좋아하기는 양립할 수 없다. 배합 금지, 상극, 틀린 전제... 하지만 '애호한다'고 말할 수 있다면 대화의 차원이 달라진다. 거기엔 사랑과 좋음이 모두 있기 때문이다. - 6

- 이 시대에 시를 읽는 다는 일이 아무런 쓸모가 없을지도 모른다는 것을, 나는 매우 잘 알고 있다. 그럼에도 한구석에서는 반드시 읽어야 하는 사람들이 끝끝내 모여 살벌하게 살아 있어야 한다고도 믿는다. 시가 세상을 구하거나 망하게 할지는 알 수 없지만, 우리를 쥐고 흔들 수 있다는 것은 안다. 그러니 시 앞에서 나는 마음껏 조이고 흔들리고 싶다. 그것이 나를 조금씩 더 나은 사람으로 만들어왔기 때문이다. 그리고 나는 내가 혼자가 아니라는 것을 믿는다. 당신이 이 글을 읽고 있다는 것이 선명한 증거이다. 당신 역시 시를 사랑하지 않는가? 좋아하지 않는가? 하지만 때때로 밉고 서러워서 포기하고 싶기도 하지 않는가? - 7

- 누군가의 세계를 들여다보는 건 정말 신기하고 새로운 일이라고 생각해요. 그리고 누군가의 세계를 끝까지 궁금해한다는 건 어려운 일이고요. - 50

- 사실 해석하려고 하니까 어려운 거거든요. 그냥 감각하면서 읽으면 그저 재밌게 읽을 수도 있어요. 시의 어려움에 대해서는 조금 양가적인 입장인데, 한국 국어 교육에서 취하는 방식대로 시를 해석하고 의미화하려고 하다보니 시를 음미하거나 감각하지 못하게 되는 건 아닌가 싶어요. 의미라는 개념에 매몰되어서 의미화되지 않는 시는 어렵다고 간편하게 해석하는 거죠. 이런 익기의 방식은 반대하고요. 감각하는 방식의 독법이 더 많이 이루어졌으면 좋겠어요. 이해가 안 되고 의미화가 되지 않더라도 좋은 문장, 좋은 단어, 좋은 장면 하나만 있어도 괜찮다고 느낄 수 있는 방식의 독법이 더 보편화되었으면 하는 바람이에요. - 94

- 왜 소리 내서 읽으라고 하는지 조금 알 것 같은 느낌이랄까요. 우선 이 시집 자체가 제게는 어떤 필요한 불편함을 야기하고자 하는 측면이 조금 있는 듯하거든요. 형식과 내용에서도 그것이 느껴지고요. 그런데 거기다가 '목소리'라는 감각이 더해지니까 정말 입체적으로 다가오더라고요. 어떤 거친 피부를 정말로 만지고 있는 듯한 느낌이 들었어요. 내가 가진 모든 감각을 활용해서 이 시집의 거칠고 아름다운 면을 더욱 자세히 살펴보게 되더라고요. 소리 내지 않고 읽었을 때와는 완전히 또 다른 경험이었어요. - 109

2025. nov.

#시인들 #박참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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에게서 에게로 문학동네 시인선 225
김근 지음 / 문학동네 / 2024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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윤슬의 이미지가 여러 차례.

가독성이 있기도 아니기도 하다.

변덕스럽게 나를 어리둥절하게 하는(약간의 positive) 시들.

- 목소리들에 기대어
이만큼 살았다.
목소리들이 나를 보살피고
목소리들이 나를 애먹였다.
그중에는 당신도
한둘쯤은 있을 것이다. - 시인의 말

- 밤이 오고 있었지 어두워오는 하늘을 등지고
나뭇가지들은 검게 흔들리고 휘어지고 이따금
찢어지고 나는 없었어 거기 모든 검고 어두운
가지마다 너를 널어두고 밤이 오고 있었지 - 언제든 어디에고 중

- 너는 한숨을 내뱉는다
네 한숨은 너무 미약하다
네 한숨과 함께 토해져 나온 입김은
너무 옅어서 안개가 되지 못한다
그건 이내 겨울의 차가운 공기 속에
섞인다 너는 사라지지 못할 것이다 - 에게서 에게로 중

- 시간은 늘 어떤 얼룩 같은 걸 남기거든요. 거긴 미로 같을 거야. - 사이사이 중


2025. nov.

#에게서에게로 #김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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