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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천대루
천쉐 지음, 허유영 옮김 / 인플루엔셜(주) / 2025년 1월
평점 :
가벼운 마음으로 시작했다. 드라마를 본 것은 아니지만 유명 여배우의 출연으로 꽤 유명했던 모양이다.
그 원작 소설이 출간되었다는데, 호기심이 생겼다.
그런 가뿐함으로 시작했는데, 기대 이상 흥미롭고 진지한 독서가 되었다.
단순히 아름다운 여성이 살해당한 사건을 파헤치는 줄거리가 아닌, 초고층 빌딩 주거지(와 주변)에서 함께 '생존'하고 있는 여러 층위의 인물들을 심도 있게 조명하는 이야기다.
배경인 대만의 풍경도 상당히 낯익다. 흡사 경기권의 어느 동네 같은...
다양한 등장인물들이 중화풍이라고 생각할 수 있는 약간의 이질감 같은 것도 없이 자연스레 이미지화 되었다.
미스터리이면서 잘 직조된 인물 열전 같은, 또 적절히 버무려진 에로티시즘이 있는, 자본주의 현대인에 대한 통찰이 돋보이는 작품.
그 묘사가 비정하기도, 연민이 가득해 보이기도 하는 균형 있는 거리감을 준다는 점도 장점이다.
불행한 환경에서 벗어난 도피처로, 자신이 일군 성과를 넘어 자기와 일체화하는 트로피로, 화려했던 시절을 뒤로하고 쇠락해가는 인생의 종착지로, 그저 외부인의 시선으로 관조하는 호기심의 대상으로... 다양한 의미로 초고층 빌딩인 마천대루를 그리는데,
작가 천쉐의 바탕에 깔린 관심이 소외된 여성이라는 점도, 이후 작가의 다른 작품도 접해보고 싶은 이유이다.
- 아침 저녁으로 화물 엘리베이터를 통해 쓰레기가 집중적으로 모이는 시간이 되면 재활용품을 주우러 다니는 사람들이 우르르 몰려들어 산처럼 쌓인 쓰레기 더미를 헤집고 다녔다. 그 바로 옆 차도는 시간대 구분 없이 언제나 벤츠가 지나갔다. 중메이바오는 양쪽 사이를 지나가며 이것이 자기 인생의 은유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녀는 쓰레기를 주우러 다니는 사람도 아니고 고급 차를 타고 다니는 사람도 아닌, 절대로 연결이 불가능한 두 세계를 잇는 중간 매개체 같았다. 이것이 그녀 자신을 마모시켜 영혼의 어떤 곳이 망가진 듯 고장 나버렸고, 이런 고장 난 느낌이 그녀로 하여금 오랫동안 자기 개성도 없이 부유하게 했다. - 63
- 이곳에 얼마나 많은 사람이 살고 있을까 생각하다가 1200세대라는 숫자를 떠올리게 되고, 날마다 하는 일상적인 순찰을 떠올리고 또 내가 외우고 있는 기기묘묘한 이름들을 떠올리다가 문득 그것들이 어떤 신비한 계시인 듯한 느낌이 든다. 가까이 다가올수록 비구름이 흩어지고 빌딩이 점점 선명해진다. 살고 있는 사람들의 숫자만큼이나 죽는 방식도 다양하다. 이건 내가 읽은 탐정소설의 주제이기도 하다. 소설 속 탐정은 항상 자신에게 이렇게 물었다. "그 사람이 죽을 때 난 무엇을 하고 있었을까?" 한 사람이 죽었다. 우리가 모두 좋아했던 사람이고, 결코 그런 방식으로 죽어서는 안 되는 여자였다. 셰바오뤄는 자신이 죽였을 거라고 했다. 그렇게 따지면 내가 죽였을 수도 있다. 부검보고서는 아직 나오지 않았고 그녀가 몇 시에 죽었는지 모른다. 하지만 난 알고 있다. 누가 죽였든, 그녀의 죽음이 우리와 관련이 있다는 것을, 누구도 무관할 수 없다는 것을. - 202
- 침몰하려는 무언가를 사력을 다해 붙잡는 것처럼 있는 힘껏 끌어안았어요. 그때 그녀가 작은 소리로 "가도 가도 인생이 끝나지 않는다는 사실이 너무 무서워"라고 말하고는 이내 조용해졌어요. - 310
- 이곳을 떠나서 얼마나 시간이 흘려야 이런 기분이 사라질까? 그 거대한 빌딩 속에 얼마나 많은 지옥이 감춰져 있을까? 이곳을 떠나는 사람들은 어떤 세계로 들어갈까? 더 좋은 세계? 더 나쁜 세계? 이런 의문의 해답은 리둥린 자신이 떠난 뒤에야 알 수 있을 것이다. - 474
2025. feb.
#마천대루 #천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