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눈과 돌멩이 - 2026년 제49회 이상문학상 작품집 ㅣ 이상문학상 작품집
위수정 외 지음 / 다산책방 / 2026년 1월
평점 :
정이현의 실패담 크루가 가장 인상적이었다.(바로 뒤이어 노 피플 존을 읽었다.)
정말 세련되고 정곡을 찌르는 문장으로 글 쓰는 작가가 아닌가. 부럽다.
하나의 단편 속에 실패담이라는 이름으로 여러 에피소드를 삽입하는 자연스러운 블렌딩.
계급이라는 무형의 실체에 대해 곱씹게 만드는, 은근하게 예리한 이야기.
지나친 진심.... 그게 불편해진 세상에 대하여...
- 수진이 죽은 후 재한은 수진을 생각한다는 의식도 없이 종종 그렇게 수진을 떠올렸다. 수진이 했던 말과, 어떤 순간의 표정과 몸짓 같은 것들. 기억하는 줄도 몰랐던 장면들을. 그것은 유미도 마찬가지였다. 가까웠던 누군가가 떠나면 그렇게 된다는 것을 둘은 이제 알게 되었다. 그 무력함과 슬픔을. 이어서 뒤따르는, 대상이 모호한 분노도. - 위수정, 눈과 돌멩이, 13
- 재한은 고개를 틀어 바깥 풍경을 응시했다. 라디오에서 흘러나오는 정제되지 않은 웃음소리를 들으며 재한은 창밖으로 보이는 희고 고요한 식물들의 세계를 바라보았다. 소리와 풍경의 불일치가 오히려 재한의 불안을 조금씩 가라앉혔다. 그것은 낙관이라기보다는 슬픔에 가까웠다. - 위수정, 눈과 돌멩이, 21
- 누구나 가족과 연인과, 결국엔 삶과 이별해야 한다. 예외는 없다. 그 모든 일을 겪어야 한다는 사실을 나는 믿을 수가 없다. 하지만 사건들은 일어난다. 나의 이해와 무관하게. 그러므로 나는 내게 일어난 일들을 사후적으로라도 이해하기 위해 살아가는 것 같기도 하다. 아무리 오랜 시간을 들여 되새겨보아도 불가해한 일들은 있을 것이다. 불가해한 채로 받아들이는 연습도 필요하겠지. 살아가려면. 인간으로 살아가려면. 그것을 애도라고 불러도 될까? - 위수정, 문학적 자서전, 62
- 원희에게서 조금 떨어진 벤치 주위에서 큰 소리로 이야기를 나누는 젊은 남녀 무리가 보였다. 짧은 스커트에 어깨가 드러난 셔츠. 누군가 농담을 던졌는지 무리는 동시에 크게 웃음을 터뜨렸다. 그 모습이 못 견디게 아름다웠다. 가슴 깊은 곳에서 질투심이 솟아났다. 하지만 시간은 누구에게나 공평하니까. 나도 저런 때가 있었던가? 저들도 지금 자신들이 얼마나ㅏ 아름다운지 모를까. 무심할까. 원희는 한동안 그들에게서 눈을 떼지 못했다. 그들이 무지하기를 바랐다. 실수를 반복하고 좌절하기를. 그리고 후회하기를. 내가 그랬던 것처럼. - 위수정, 오후만 있던 일요일, 91
- 해진이 살아 있다는 소문을 들었다.
(...)
나는 끔찍한 내용보다 아직도 해진을 기억하는 사람이 있다는 사실에 놀랐다. 그때 죽었으므로 사람들이 기억하는 해진은 열여섯 살에 멈춰 있을 텐데 사람들은 어떻게 성인이 된 그 애를 알아본 걸까. 그저 신기할 따름이다. 누구하나라도 말을 걸었다면 그 애가 아니라는 걸 알았을 텐데 아무도 확인하지 않은 게. 사람들은 온갖 이야기를 지어내고 믿으면서 그 애의 죽음 만은 상상하지 못한다. - 이민진, 겨울의 윤리, 209
- 페이스트리는 뜻밖에 정치적인 빵이다. 겹겹이 쌓인 층과 층 사이, 선처럼 얇은 틈이 숨어 있다. 한 입 베어 물면 버터 향이 입안에 퍼지고, 부스러기는 겹의 바깥으로 바스스 쏟아져 내린다. 당신은 이미 어디에든 속해 있다. - 정이현, 실패담 크루, 253
2026. ju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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