모든 열정이 다하고 쏜살 문고
비타 색빌웨스트 지음, 임슬애 옮김 / 민음사 / 2023년 3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여성에게 억압적인 사회에서 조금씩 벗어나 자신의 삶을 의미있게 하고자 하는 여성들이 등장한다.
그 성과가 크고 작고를 떠나 모두 의미있다.

비타 색빌웨스트의 다른 책도 궁금하다.

- 오래 살았다는 사실은 인간의 타고난 결점 중 적어도 하나를, 즉 삶의 유한성을 극복했다는 뜻이니까. 영원한 소멸을 이십 년 정도 유보했다는 사실은 그가 너무나도 우월한 까닭에 신조차 미리 짜 놓은 계획을 바꿀 수밖에 없었다는 의미이리라. 우리가 스스로의 가치를 측정하는 저울은 이토록 보잘것없다. - 9

- 어머니는 자기만의 의지가 없었다. 한평생 자애롭고 온화했으며 전적으로 가족의 의지에 따랐다. 일종의 부속물이었다. 그들은 어머니가 자기주장을 내세울 만큼 똑똑하지 않다는 데 암묵적으로 동의했다. “정말 다행이지.” 허버트는 가끔 말했다. “어머니는 잘났다고 설치는 다른 여자들이랑 다르잖아.” 아무도 어머니에게 자기만의 비밀스러운 내면이 있으리라고, 또 아무도 어머니가 문제를 일으키리라고 생각하지 않았다. - 17

- 다른 사람들 역시 이디스와 이디스가 내놓은 제안을 고민했다. 미혼의 딸은 당연한 해법이었다. 하지만 홀랜드 집안은 의무를 저버리지 않았고, 실로 껄끄러운 의무일수록 절대 회피하는 법이 없었다. 그들의 삶에서 즐거움은 그다지 큰 자리를 차지하지 못했으나 의무는, 항상 진지하고 가끔은 가혹하기까지 한 의무는 언제나 존재했다. - 24

- “아, 잠깐.” 레이디 슬레인이 손을 들어 보이며 말했다. 처음으로 해 보인 손짓이었다. “너무 성급하구나, 허버트. 난 동의하지 않았어.”
다들 실망한 얼굴로 어머니를 바라보았다.
“동의하지 않는다고요, 어머니?”
“응.” 레이디 슬레인이 미소 지으며 말했다. “난 너희 집에서 살지 않을 거다, 허버트. 너희 집에서도 안 살아, 캐리. 네 집도 싫다. 윌리엄. 너도 마찬가지고, 찰스. 다들 친절하기는 하다만. 나는 혼자 살 거야.” - 46

- 사실 가족 모두가 레이디 슬레인을 - 그녀의 상냥함과 이타심, 공적 활동까지도 - 오해했다. 아무리 오랫동안 알고 지내도 여전히 타인을 속속들이 알기란 불가능하다는 사실을 케이는 태어나서 처음으로 실감하고 있었다. 이디스만 신이 나서 속으로 방방 뛰고 있었다. 그녀는 어머니가 미치지 않았고 사실 그 어느 때보다 제정신이라고 생각했다. 어머니가 조용히 캐리와 허버트의 간섭을 저지함으로써 그들을 궤멸시키는 모습을 보고 있노라니 즐거웠다. 부드럽게 양손을 맞잡고 속삭였다. “잘한다, 어머니! 계속해요!” 일말의 분별력으로 함성을 자제할 뿐이었다. (...) 이디스는 문득 이런 생각을 했다. 어쩌면 어머니는 그 오랜 세월 동안 다정하고 세심하게 사람들을 관찰하면서 내심 자기만의 세상을 품고 살았는지도 모르겠다고. 어머니는 얼마나 많은 것을 관찰하고, 눈치채고, 비판하고, 묻어 뒀을까? - 51

- 아, 여자들은 결혼을 하면 이다지도 난리를 피우는구나! 그러나 누가 탓할 수 있겠어? 가만 생각해 보면 여자들은 한평생 오직 결혼에 대해서만 - 그리고 결혼에 수반된 일에 관해서만 - 난리를 피울 수 있잖아?다른 사람의 결혼식이더라도 대리 만족을 얻을 수 있다면 이미 충분한 거야. 결국 여자는 이렇게 쓰이려고 길러지고, 입혀지고, 치장되고, 굥ㄱ받고 - 이렇게 일방적인 세뇌를 교육이라 부를 수 있을지 모르겠지만 - 보호받고, 무지를 강요받고, 겨우 단서만 제공받고, 분리되고, 억압당하는 거잖아? 그러다가 일말의 기회라도 생기면 그 즉시, 웬 남자를 섬기러 떠나는 거지. 아니면 자기 딸을 보내든가. - 118

- 그녀는 자신이 헨리를 사랑하지 않는다는 사실을 알았으나, 설령 헨리를 사랑했더라도 자기만의 삶을 통째로 포기할만한 사유는 아니었다. 헨리는 그녀를 사랑했지만 아무도 헨리더러 자신의 삶을 포기하라고 기대하지 않았다. 오히려 헨리는 데버라를 획득하듯, 그렇게 자기 삶에 무언가를 더하는 것처럼 보였다. - 119

2023. jun.

#모든열정이다하고 #비타색빌웨스트

댓글(2) 먼댓글(0) 좋아요(6)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은하수 2023-08-23 18:28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저도 이 책 지금 읽고 있어요~~
전 흄세로요
근데 문장들이 어쩜 이리 아름답고 멋진지...
정말 비타의 다른 책도 얼른 번역출간되면 좋겠어요^^

hellas 2023-08-23 18:30   좋아요 0 | URL
큰 통쾌함은 아니지만 히죽히죽 통쾌하고 ㅋㅋㅋㅋ 표지도 너무 딱인거 같아요. 흄세 책도 나온거 봤어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