실격당한 자들을 위한 변론
김원영 지음 / 사계절 / 2018년 6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장애인 이동권 투쟁에 대해 더 깊이 들여다 볼 수 있는 기회를 열어주는 책이다.

아무리 외쳐도 들어주지 않는 요구에 일부겠지만 비장애인들의 몰이해가 갑갑하던 차에 읽게 되었다.

이 책을 읽던 작년 8월도 마찬가지였던 상황이지만, 2023년 2월 현재도 갑갑하긴 마찬가지다. 오히려 더하면 더했지....

이동권 시위 당사자들과의 면담에서 이들을 사회적 강자라고 칭하는 모지리 정치인이 존재하다니....... 허탈해서 헛웃음이 다 나왔다.

악담이 아니라.. 장애는 현재 장애를 가진 사람의 문제가 아니라는 걸 좀 깨우쳐야할텐데...



- 범인들은 정신의학적으로 질병을 가졌을 수 있고, 그 질병이 범죄에 영향을 미쳤을지도 모른다. 하지만 우리가 주목해야 할 것은 이들의 행위가 왜 ‘하필이면 그렇게’ 전개되었는가이다. 사건 사고의 원인을 그저 질병으로 환원하는 것만큼 간편하고 게으른 설명은 없다. - 37

- 뉴욕대 로스쿨 교수 켄지 요시도는 현대 사회에서 장애인, 소수 인종, 성적 소수자 등을 대놓고 차별하고 배제하는 일이 많이 없어졌지만, 이 사람들에게 주류 집단에 동화되기를 요구하는 이른바 ‘커버링covering‘ 압력이 존재한다고 지적한다. 커버링은 말하자면, 자신이 가진 비주류적인 특성을 ’티 내지 말라‘는 요구다. 여성을 차별하지는 않지만 여성의 몸이 가진 특별한 상황(생리나 출산)을 티 내지 말 것을 암묵적, 명시적으로 요구하는 조직 문화, 장애인을 차별하지 않지만 장애로 인한 특성을 숨기기를 원하는 사회 분위기 같은 것이 그 예다. - 199

- “너희가 버스를 못 타는 게 너희 잘못은 아니야.”
특정한 세계관은 내밀하고 조용히 세상에 퍼져가다 어느 시점에 이르면 권리의 언어로 결정되어 사람들의 말에 담긴다. 말은 흐르고 흘러 눈앞에 등장하고, 몸에 감촉되는 ’물질‘이 된다. 1997년 나에게 버스에 관해 언급했던 도덕 교사 백정기 선생님은 단국대학교 특수교육학과의 80년대 학번이었다. (...) 1984년 김순석이 “서울 거리 턱을 없애주시오”라는 말로 심어놓았던 불씨가 결합하여 강한 화학 반응을 일으키던 때였다. (...) 사회가 설계하고 구축한 각종 인프라를 자신의 타고난 신체로 사용하지 못한다면, 이는 실상 자유권의 침해와 동일한 피해가 아닌가? 왜 이것이 국가나 공동체의 자선, 혹은 사회복지서비스의 문제로만 다루어져야 하는가? 2001년 서울 지하철 4호선 오이도역에서 장애인용 리프트가 추락해 탑승해 있던 장애인이 사망한 사건을 계기로 ’장애인 이동권 투쟁‘이 시작되었다. 이는 면면히 흘러오던 새로운 인식이 구체적인 권리의 언어로 등장한 가장 유명한 사례라고 할 만하다. - 217

- 2005년 1월 [교통약자의 이동편의증진법]이 제정되었다. 이 법률은 지하철과 버스는 물론이고, 비행기와 선박에 이르기까지 다양한 교통수단을 장애인, 노인, 임산부 등 ’교통약자‘가 탑승할 수 있도록 설비를 가줄 의무를 교통 사업자에게 부과하고, 국가는 저상버스, 특별교통수단(장애인용 리프트가 설치된 콜택시 등)을 각 시도별로 일정 비율 이상 도입하는 ’교통약자이동편의증진계획‘을 세우도록 하는 등 장애인의 교통수단 접근을 촉진하는 세부적인 규정을 대거 도입했다. 특히 주목할 만한 부분은 이 법 제3조가 장애인운동이 처음 ’발명‘한 말이었던 ’이동권‘을 드디어 공식적인 법률용어로 인정했다는 점이다. - 229

- 이동권 투쟁의 역사가 보여주는 또 하나의 흥미로운 요소는, 장애인이 이동할 수 없다는 것을 보여주기 위한 시위 과정 자체가 장애인을 자꾸 이동시켰다는 점이다. 이동권 투쟁을 위해 시위를 하려면 장애인들이 버스를 타러, 지하철을 타러 밖으로 나와야 했다. 시위에 자주 참가했던 한 장애인은 집회가 열리는 날이면 집을 나서면서 “계단 30개를 오르는 데 30분이 걸릴 때도 있고 1시간이 걸릴 때도” 있었지만 그래도 “바깥으로 나갈 수 있다는 사실이 꿈만 같았다”고 회상한다. - 230

- 사회적 약자에 대한 배려가 더는 가진 자들의 은혜적 배려가 아닌 전 국민이 함께 고민하며 풀어가야 할 사회적 책무로서 막연히 예산상의 이유만을 들어 그러한 의무를 계속적으로 회피할 수는 없다. ...... 모든 인간은 자신이 인간다운 생활을 할 수 있는 권리를 끊임없이 요구하는 방법으로 일상생활을 보다 나은 방향으로 발전시켜왔다. 그런데 일상생활에 있어 아무런 제약이 없어 비장애인에게는 그 존재의 가치조차 논의하지 아니하는 이동권이 단순히 예산상의 이유만으로 제약을 받는 것은 이 시대의 모순일 수밖에 없는 바, 이러한 모순은 이 시대를 살아가는 모든 사람들이 함께 해결할 문제로서 조그마한 노력과 비용의 부담으로 충분히 극복할 수 있는 것이므로 더는 비장애인의 기준으로 판단하여 그 시기를 늦출 수는 없다고 할 것이고, 인간에게 있어 가장 기초적인 이동권마저 비장애인과의 형평성 및 예산상의 문제 등을 거론하며 그 시기를 늦추려고 하는 것은 비장애인들의 편의적인 발상에 불과하다고 할 것이다. - 233, 창원지방법원 2008.4.23. 선고 2007가단27413 판결.

- 우리는 존엄하고, 아름다우며, 사랑하고 사랑받을 가치가 있는 존재인 것이다. 누구도 우리를 실격시키지 못한다. - 313

2022. aug.

#실격당한자들을위한변론 #김원영

댓글(2) 먼댓글(0) 좋아요(11)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은하수 2023-02-07 09:21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저도 관련 뉴스 보면서 쥐꼬리만큼도 안되는 시혜를 베풀고서 사회적 강자라는 말을 하는거보고 분통 터졌거든요 전 제가 언제라도 예기치 않게, 원하지 않게 장애인이 될 수 있다고 생각하거든요.

hellas 2023-02-07 14:27   좋아요 1 | URL
사회적 강자 얘기에 심하게 욕했습니다 ㅡㅡ 하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