첫날
온 집안이 울음 바다였다. 7시30분 밥을 먹다가 나온 남자의 한 마디 때문이었다. 남자가 잠수교도 잠기고 서울이 지금 물난리가 난 모양인데 그냥 취소하는 것이 어때? 하는 말 한마디...
나도 장대같이 오는 서울의 비가 원망스러웠지만 이 비에 아이들도 위험할 것도 같았고 나오시는 분들에게도 괜히 폐를 끼치게 되는 것이 아닌가 하는 생각에 고민을 하고 있었다. 그래서 우주님에게 상황을 알아볼려고 전화를 할려고 하는데 소현이가 갑자기 아무 소리도 안하고 밥상머리에서 눈물을 뚝뚝 흘리는 것이 아닌가? 뜨아했다. 남자와 나는 마주 보았다. 그러면서 아빠가 가기 싫어서가 아니고 너무 비가 많이 온다고 하니 너희들이 위험 할 것 같아서 그런다고 했지만 아무말도 안하고 닭똥 같은 눈물이 뚝뚝....
그 모습을 보니 나도 남자의 한 마디가 원망스러워서 눈물이 뚝뚝. 민수가 엄마와 누나가 우는 것을 보고 눈물이 뚝뚝...그야말로 남자는 죄인이 되었다. 소현이는 밥이 안 먹고 싶다고 벌건 눈으로 방으로 들어가고 민수도 뭘 아는것처럼 엄마 서울 안가요를 반복하고. 나는 나대로 우리집 남자가 비가 와서 차가 막히더라도 한 번 가보자고 했으면 하고 섭섭해 하고.
그렇게 해서 우리의 침묵은 계속 되었다. 설거지를 하고 있으면서도 남자의 마음을 알지만 섭섭한 것은 이루말 할 수가 없었다.
그당시 내 마음은 이러했다.
"어디 두고 보자. 일단은 내 일로 간다니까 저러는 거지. 나는 자기가 아무리 술을 먹고 늦은 시간에 열 번을 친구들을 다 데리고 와도 열 번을 편안하게 해 줄려고 노력했건만.....나는 내 몸이 아무리 피곤해도 시댁의 무슨 일이던지 하하 호호 열심히 했건만..두고 보자. 조금 있으면 있을 시어머니 칠순 잔치에 나는 무관심하리라 (실제론 절대 그렇게 못하지만)"
그러나 남자의 말 한마디가 우리의 맘을 또 되돌려 놓고 말았다. 장난감 놀이를 하고 있던 민수에게 "민수야 이 장난감도 서울에 가져 갈 거가?" 하는 한 마디에 소현이는 나에게 살짝 다가와서 "엄마 아빠가 갈 건가봐요" 하고 귀뜸을 해 주었다. 나는 웃으면서 "언제 아빠가 안 간다고 하더냐고. 예약 해 놓은 차비가 아까워서라도 엄마는 갈거야" 고 하면서 아침의 일은 깡그리 잊고 민수 손을 잡았다.
무겁다며 남자는 배낭을 메고 나는 민수 손만 꽉 잡고 문을 나섰다. 정말이지 날씨는 상쾌했고 코 끝을 스치는 바람은 충분히 우리를 들뜨게 만들었다. 소현이는 룰루 랄라 아침의 재앙(?)은 깡그리 잊고 그렇게 꿈에도 그리던 롯데월드를 가게 된 것이다. 이 번 시험을 잘 치르면 롯데월드에 간다고 해서 소현이는 정말 열심히 공부했다. 9살의 딸과 수준이 같은 옹종한 내 속이 또 얼마나 우스운지.....
기차 여행이다. 아이들의 말만 믿고 그야말고 기차를 택했다. 그러나 가는 도중에 정말이지 엉덩이에 좀이 쑤셔 죽는 줄 알았다. 아이들은 기차에서 딱지치기를 하고 드래곤볼 게임도 하고 별로 지친 기운도 없었다. 기차가 한 정거장 설때마다 "여기가 서울이에요"하는 소리를 여러 수십번은 더했고 소현이는 화장실이 신기한지 10번은 드나 들었다.
남자가 내 옆에 앉아서 살며시 손을 잡았다.
"뭔 속이 밴댕이 소갈따지냐고. 애미나 얼라들이나 똑 같다" 고 한다. 나는 "미안해요, 그래도 서러운데 어떡하냐고" 하면서 다시 한 번 손을 잡고. 속으로는 우리 시어머니의 칠순 잔치를 잘해 드리겠다고 다짐했다. 그러면서 딱지 치기를 아이를 흐뭇하게 바라 보았다.
장장 7시간 기차를 타고 가야 하는 서울 나들이. 그러나 이런 기회가 아니면 언제 해 보냐? 먹고 살기도 바쁜 판국에 저지르지 않고 생각하면 갈 수가 없는 먼 한양길인데......
아이들에게 이름표를 하나씩 달고 (이제는 앞면에 나의 휴대폰을 썼다) 우주님의 집들이를 핑계된 서울 나들이는 시작된 것이다. (우주님 고마워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