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의의 사람들·계엄령 알베르 카뮈 전집 13
알베르 카뮈 지음, 김화영 옮김 / 책세상 / 2000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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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의의 사람들"은 오랜만에 다시 읽은 희곡이고, "계엄령"은 처음 읽은 희곡. 두 희곡의 공통점은 독재, 또는 전제국가를 배경으로 하고 있다는 것. "정의의 사람들"은 러시아를, "계엄령"은 스페인을 배경으로 하고 있다.

 

압제에 대항하는 사람들의 모습을 그리고 있는 희곡이라고 보면 되는데, 정의의 사람들에서는 테러로 권력을 휘두르는 한 개인을 암살하는 것을 소재로 삼고 있다면, "계엄령"은 페스트라는 서양을 휩쓸었던 질병에 독재를 비유해서 전개하는 희곡이다.

 

"정의의 사람들"이나 "계엄령"이나 생각할 것이 많은데, 우선 폭력과 사랑의 문제다. 그리고 복종과 저항에서 중요한 역할을 하는 두려움.

 

더 큰 사랑을 위해서 작은 사랑을 포기하고, 폭력을 행사할 수밖에 없다? 그것은 정당하다. 이는 목적을 위해서는 수단은 어떠해도 된다는 말로 전이가 될 수 있는데...

 

민중을 위한 사랑이 독재자를 위한 테러로 나타나는데, 테러를 하기 전에 이들이 고민하는 점, 우리 역시 고민해야 하고, 테러가 성공한 뒤에 대공비와 이야기하는 지점에서 과연 테러는 정당한가라는 질문을 다시 한 번 하게 된다.

 

어려운 문제다. 다수를 위해 소수를 희생시켜도 되는가라는 질문인데... 이것이 자칫 공리주의로 흐르지 않기 위해서는 인간의 생명이란 절대적이라는 것, 그것은 누구에게도 해당한다는 것을 명심해야 한다.

 

그렇다면 독재를 물리치기 위해서 한 개인을 제거하는 것이 아니라, 그 개인이 나타나게끔 되어 있는 사회 구조를 바꾸어야 한다. 어떻게? 개인이 공고하게 그 구조를 지탱하고 있지 않은가라는 질문도 할 수 있다.

 

러시아를 배경으로 하고 있는 이 희곡, 정의의 사람들에서는 이 질문에서 사회구조는 언급하지 않는다. 그냥 그 사회구조를 지탱하는 인물인 대공을 암살할 생각, 그 암살에 대한 정당성을 이야기할 뿐이다.

 

과연 대공의 암살 이후 사회구조가 바뀌었는가? 이는 우리나라 박정희의 죽음으로 민주화가 이루어졌는가라는 질문과 상통한다. 사람만 바뀔, 그것도 더 좋지 않은 쪽으로 바뀔 확률도 많다.

 

반면에 계엄령엔 이러한 테러는 나타나지 않는다. 독재에 저항할 수 있는 길, 여기서는 특정한 개인을 암살하는 테러가 나오지 않는다.

 

독재자에 대해 지니고 있는 두려움, 그 사회에 퍼져 있는 이념에 대한 두려움이 자발적으로 사람들을 독재에 따르게 하고 있다는 식으로 해석이 될 수 있다.

 

지배층은 말할 것도 없고 민중들 역시 두려움에서 독재에서 벗어날 생각을 하지 못한다. 그냥 순응할 뿐이다. 그들이 말살정책을 펴도 두려움에 쌓인 민중들은 말살될 뿐이다.

 

이들이 말살되지 않기 위해서는 두려움에서 벗어나야 한다. 깨어있는 사람, 한 사람이라도 있어야 한다. 두려움을 없앤 깨어있는 그 사람이 독재자에게 자신의 온몸을 걸고 이야기해야 한다. 그랬을 때 남들도 깨달을 수 있다. 두려움에서 벗어날 수 있다.

 

정의의 사람들이 개인의 투쟁을 중심으로 개인을 제거하는 것의 문제를 다루고 있다면, 계엄령은 독재를 물리치는 개인을 주인공으로 하고는 있지만 폭력이 아닌 방식으로도 독재를 물리칠 수 있음을, 어쩌면 우리나라 촛불집회를 연상시키는 그런 희곡이다.

 

박정희와 박근혜에 비유할 수도 있는 이 두 희곡들, 독재, 전제를 물리칠 수 있는 방법, 수단과 목적에 관한 고민, 우리는 어떻게 해야 할 것인가를 생각하게 해주고 있다.

 

좋은 작품은 시대, 나라를 초월해 적용될 수 있다더니, 우리나라와 먼 시대, 먼 나라 이야기를 다룬 이 두 희곡이 우리나라 상황에 이렇게 적용될 줄이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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