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수는 내가 살게 삶창시선 46
김정원 지음 / 삶창(삶이보이는창) / 2016년 9월
평점 :
품절


영화 두 편을 이틀에 걸쳐 보았다. 그런 경우가 거의 없었는데, 그냥 영화를 보고 싶었다고 할까? 그 두 편의 영화가 전혀 다른 내용이라고 할 수 있지만, 어떻게 보면 하나로 연결이 될 수도 있는 영화라는 생각도 든다. 보고나니.

 

한 편은 "죽여주는 여자" 그리고 또 한 편은 "그물"

 

[죽여주는 여자], 얼핏 떠오르는 말은 '와, 저 여자 죽여준다!'는 말. 여기서 죽여준다는 끝내준다는 뜻, 처음에 영화는 그런 뜻의 주인공을 보여준다. 그러다 이 말을 목숨을 끊어준다는 뜻으로 바꾸어 주인공을 보여준다.

 

 성적(性的)으로 끝내주는 여자에서 사람을 죽여주는 여자로... 사람이라야 힘없는 남자 노인. 앞으로의 삶에 희망이 없는 사람들. 인생에서 쓸쓸한 겨울을 맞이한 사람. 더 이상 살아갈 어떤 이유를 찾지 못한, 빅터 프랭클의 말을 빌리면 삶의 의미를 잃은 사람들.

 

 여기에 주변 인물들은 어떤가. 함께 거주하고 있는 남자 인물은 다리 한쪽을 잃은 장애인에, 변변한 돈벌이를 못해 집세를 제대로 내지 못하고 있으며, 그들을 보듬어 주며 사는 집주인은 트랜스젠더이고, 여자주인공이 데리고 온 아이는 혼혈아.

 

다들 사회에서 변방에 머무는 사람들, 소외된 사람들, 소수자로 분류가 되는 사람들. 대다수가 삶 속에서 혹독한 겨울을 맞이하고 있는 사람들. 그래서 서로가 서로에게 몸을 기대고 적은 온기나마 함께 나누는 사람들. 이들에게 사회는 겨울이다. 그들의 삶을 지탱하기 어렵게 하는.

 

[그물]. 그물에 걸리면 죽는다. 아무리 몸부림쳐도 이도저도 못하고 속절없이 그물을 던진 사람의 뜻에 의해 운명이 결정될 뿐이다.

 

하여 그물에 걸린 존재는 지금껏 어떤 삶을 살아왔든, 또 어떤 생각을 하든 자기가 결정할 것이 하나도 없다. 오로지 그물을 던진 존재의 결정에 따를 뿐. 여기서 자신의 의지가 발휘된다면 단 하나, 목숨을 스스로 끊는 것.

 

 갑자기 혹독한 겨울로 내던져진 삶이라고 할 수 있다. 이들에게 따스한 온기를 전해줄 수 있는 길은 그물을 치워버리는 일인데... 그것이 쉽지 않음을 영화는 그물에 걸린 인간을 통하여 보여주고 있다.

 

물론 영화는 남과북이라는 현실이 개인의 삶에 그물로 작용함을 보여주고 있으며, 남과북이 이렇게 대치하고 서로 체제와 이념 전쟁을 하는 사이, 그 사이에 낀 개인은 이러지도 저러지도 못하고 파멸해 갈 수밖에 없음을 보여주고 있지만, 개인에게 이를 계절로 표현하면 혹독한 겨울이다.

 

여기서 두 영화의 공통점을 찾았다고 할 수 있는데... 이렇게 두 영화를 보고 난 뒤 생각에 잠겨 있을 때 연결시켜준 책이 바로 이 시집 [국수는 내가 살게]이다.

 

이 시집에서도 '겨울'에 해당하는 삶들이 많이 나오는데, 특히 그 중에서도 첫시인 '겨울'은 반대로 생각하도록 해서 겨울의 의미를 더욱 실감나게 다가오게 한다.

 

'겨울'에 살고 있는 사람들을 생각하게 하는 시인데...

 

    겨울

 

겨울은 참 따뜻한 계절이다

그대의 체온을 그립게 하니까

 

겨울은 참 인간다운 계절이다

그대의 추위를 나누게 하니까

 

살 에는 평화의 소녀상에게 목도리를 씌워주고

살갑게 손잡고 오랫동안 머물게 하는

 

겨울은 참 깊은 철학의 계절이다

묵은 정신의 때를 서슬 푸르게 벗기게 하니까

 

김정원, 국수는 내가 살게. 삶창. 2016년. 초판 1쇄. 12쪽.

 

따스한 봄만 있다면, 겨울을 알지 못하고 살리라. 자신의 인생에서 이상하게도 봄만을 보고 살아온 사람이 있다면 그 사람에게는 겨울에 사는 사람을 이해할 수 있는 감성이 없으리라. 아니, 머리로도 이해하지 못하리라.

 

그래서 머리에서 가슴까지, 다시 가슴에서 손과 발로 가는 가장 먼 길을 (고 신영복 선생님의 말) 그는 절대로 가지 않으리라. (시인은 시인의 말에서 자신 역시 머리에서 가슴, 손과 발로 가는 여행이 30년이 걸렸다고 했다. 그는 교사이자 시인이다)

 

사회에서 소수자로 살아가는 사람들, 이미 전성기를 지나 노년에 접어들어 사회에서 더이상의 쓸모를 잃고 잉여가 된 삶을 살아가는 사람들, 다르다는 이유만으로 배척받는 사람들, 없어서, 도무지 가진 것이 없어서 몸을 팔 수밖에 없는 사람들, 이념이 달라서 배제되는 사람들...

 

기껏 가진 아주 작은 것에 만족하고 살고 싶다고 해도 안보라는 이름으로 그것마저 빼앗기고 떠나야 하는 사람들, 그런 사람들에게 삶은 얼마나 추운 겨울인가. 그런 겨울을 사는 사람들을 볼 수 있는 사람.

 

그 사람은 단순히 머리로만 이해하지 않을 것이다. 그 사람은 머리에서 가슴으로의 여행을 시작할 것이다. 그리고 가슴에서 다시 손과 발로의 여행을, 그리고 겨울을 나는 사람 곁에서 함께 겨울을 나기 시작할 것이다.

 

이 시를 보라. 그렇게 겨울은 다가온다. 그에게 겨울은 주변을 볼 수 있게 해주는 계기가 된다. 따스한 봄 속에 갇혀 사는 삶이 아니라 자신의 삶 주변에 겨울이 있음을, 그리고 그 겨울은 홀로 나면 더 힘들어짐을...

 

함께 나야할 겨울은 '묵은 정신의 때'를 벗기고 움직이게 한다. 그래서 함께 나려고 한다.

 

지금 우리 사회는 이 두 영화에서 얼마나 멀까? 멀다고 할 수 없을 정도로 바로 우리 사회의 모습이다. 이 두 영화는 우리 사회를 비춰주는 거울이다. 우리는 이런 혹독한 겨울에 살고 있다고. 이런 겨울이 우리 사회에 넘쳐나고 있다고 보여주는 거울.

 

그리고 이 시는 이런 겨울을 어떻게 나야할지 보여주는 거울이다. 이 시에서처럼 우리는 '겨울'을 외면하는 것이 아니라 '겨울'을 함께 나려고 해야 한다. 그러면 '겨울'은 곧 '봄'에게 우리를 양보한다.

 

김정원의 이 시집을 읽고 영화 두 편과 지금 우리 사회에서 겪고 있는 겨울을 생각하게 됐다. 그냥 춥다고 혼자만 벗어날 생각을 하지 않고 함께 나야 더 겨울을 잘 날 수 있음을 생각하게 해준 시이고, 시집이다.

 

이 시집에는 이 시 말고도 마음을 따스하게 데워주는 시들이 제법 많다. 그 따스한 온기가 번져 나갔으면 좋겠다.

 

덧글

 

출판사에서 보내준 책이다. 반갑고, 고맙고. '겨울'을 날 때 더 많이 생각할 수 있는 시집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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