꼭 같이 사는 것처럼 문학동네 시인선 16
임현정 지음 / 문학동네 / 2012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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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집 제목을 보면서 지금 우리 사회의 모습이 이렇지 않을까 하는 생각을 했다.

 

'꼭 같이 사는 것처럼'이라는 말, 여기서 중요한 역할을 하는 시어가 '~처럼'이다. '~처럼'이라는 말은 그렇지 않다는 것이다.

 

실상은 그렇지 않은데, 그런 것처럼 꾸민다는 말이다. 그렇다면 이 시집의 제목을 보면 우리는 같이 살지 않고 있는데, 같이 살고 있는 것처럼 위장하고 있다는 말이 된다.

 

그것도 '꼭 같이' 위장하고 있으니, 사실은 함께 하지 않음에도 제대로 알지 못하면 '꼭 같이' 사는 것처럼 보인다는 말이다.

 

한 장소에서 함께 살아가면서도 우리는 함께 살아가지 못하고 있다. 같은 공간에 있다고 해도 몸만 같은 공간에 있는 것이지 정신은 지구에서 화성까지의 거리보다도 더 떨어져 있다. 기껏해야 인류는 지금 우주선을 화성에까지 보내고 있는 중이지 않은가.

 

그만큼 우리는 한 공간에 있으면서도 간신히 긴 시간을 통해 도달해야 하는 화성처럼 우리와 우리 사이는 멀어져 있는 것이다.

 

이런 세상에 대한 우려, 그런 세상의 비극적인 모습, 그것이 이 시집에 잘 나와 있다는 생각이 드는데... 대체로 이 시집에 실린 시들은 어둡다. 분위기가 칙칙하고 우울하다. 죽음과 단절이 시집 곳곳에서 나오고, 시들 사이에 스며들어 있다.

 

그래서 시집을 읽으며 마음은 더욱 우울해진다. 어둠 저 끝까지 마음이 내려간다. 다른 사람들과 함께 하지 못하고 나만의 세계에, 단절된 세계에 갇힌다는 느낌을 받는다.

 

세상의 어지러움을 가장 먼저 느끼는 사람들이 시인이라면, 이 시집에서 풍겨나오는 우울, 단절, 죽음, 분리 등등은 지금 우리 사회의 모습일지도 모른다.

 

공동체가 파괴된 현재, 우리의 모습. 그런 단절 속에서 고립된 개인으로 살아가야 하는 우리들.

 

너무도 어두운데, 이 어둠을 인식한다면 빛을 향해 갈 수가 있다. 자신이 어둠 속에 있는지도 모른다면 빛을 추구할 일이 없기 때문이다.

 

단절과 어둠, 그것이 지금 우리 사회의 모습이라면 우리는 함께 함의 세계로 갈 수 있도록 실천해야 한다. 그것이 이런 시집을 읽는 이유이기도 할 것이다.

 

각자가 제 목소리만 내는 사회가 아니라 함께 어울리는 소리를 내는 사회. 너나없이 잘났다고 떠들어대는 사람이 판치는 세상이 아니라 다른 사람과 함께 할 수 있는, 나서기보다는 받쳐주는 사람이 존경받고 우대받는 그런 세상이 우리가 원하는 세상이 아닐까.

 

적어도 이 시집의 제목을 따온 이런 시는 우리가 원하는 사회는 아니지 않은가.

 

사금파리 반짝 빛나던 길

 

인부들이 담배 피우러 나간 사이

이삿짐을 실은 트럭을

통째로

훔쳐갔다는 건데

 

숲 속 공터에

 

책이 꽂힌 책장이며

손때 묻은 소파까지

여자가 살던 집처럼 해놓고

 

남자는 너럭바위에 앉아

생무를 베어 먹은 것처럼

달지도

쓰지도 않게

웃었다고 합니다

 

꼭 같이 사는 것처럼

 

물방울무늬 원피스가

침대 위에 가지런히 누워 있었다는데

경비 아저씨의 푸른 모자가

아파트 화단에 떨어져 있는 날이었습니다

 

임현정, 꼭 같이 사는 것처럼, 문학동네. 2013년 1판 2쇄. 64-65쪽

 

'사금파리' 자체가 이미 깨어진 조각 아니던가. 그런 사금파리가 반짝 빛나던 길은 이미 깨어진 길일 수밖에 없다. 즉, 함께 하지 못하고 단절된 삶일 수밖에 없다. 공동체가 무너진 삶들. 그것은 사금파리가 빛나는 길에 다름 아니다.

 

이 시에 여자, 남자, 경비 아저씨가 등장하지만 이들은 누구와도 함께 하지 않고 있다. 그들은 그냥 자신들의 세계에만 있을 뿐이고, 이들의 삶은 비극으로 치달을 수밖에 없다.

 

서로가 서로에게 희망이자 행복한 존재가 되지 못하는 사회, 그런 세상, 이럴 수밖에 없다는 생각이 든다.

 

이제는 아니다. 이런 세상이 아니라 서로가 서로에게 희망이자 행복이 되는 세상, 사금파리의 빛이 아니라 어둠을 밝혀주는 불의 빛이 되어야 한다. 그런 사회를 꿈꾸게 한다. 적어도 나에게 이 시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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