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로 맛을 낸 행복한 우리 한식
한국시인협회 엮음 / 문학세계사 / 2013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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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네가 먹는 음식이 바로 너'라는 말이 있다. 음식은 단지 우리에게 영양소를 제공해 우리의 생명을 유지해주는 역할에서 그치지 않고 '나'라는 사람을 만드는데 큰 역할을 한다는 얘기다.

 

이런 말과 통할지 모르겠지만 육식을 주로 하는 사람들은 성격이 급하고 거칠다고 하고(물론 다는 아니고, 대체적으로라는 말이다), 채식을 주로 하는 사람은 성격이 느긋하고 부드럽다고 하는데, 음식이 사람의 성격에도 영향을 준다는 결과를 발표한 과학자들도 있다.

 

결국 그 나라의 음식 문화는 그 나라 사람들의 특성을 알게 해주는 역할도 한다고 할 수 있는데, 그만큼 각 나라는 나라마다 고유한 음식 문화를 지니고 있다.

 

우리나라 음식을 한식이라고 한다. 유명한 한정식 식당도 있고, 또 한식하면 전주를 떠올리는 사람도 있고, 아예 영어 단어로 기재된 '불고기' 같은 경우는 외국에서 한식을 대표하는 음식으로 자리잡고 있지만 요즘은 한식이 점점 밀려가고 있는 추세라는 생각이 든다.

 

세계화라고 하여 세계 음식이 많이 들어왔고, 농경사회에서 공업사회, 서비스 사회로 변모되면서 함께 여유있게 밥을 먹던 문화에서 시간에 쫓기는 음식 문화로 바뀌어 가고 있으니 요리하는데 시간이 많이 걸리는(이 역시 대체로 그렇다는 말이다) 한식은 점점 우리에게서 멀어져 가고 있다.

 

특히 젊은 세대들에게는 한식은 고리타분한 음식으로 취급당하는 경우도 있는데, 그들에게는 우리 고유의 음식 문화보다는 서양의 음식 문화가 더 친숙하기 때문이기도 하겠지만, 그만큼 우리 음식 문화가 변해가고 있다는 반증이기도 하다.

 

어느 시에선가 읽었던 기억이 있는데, 정확하지는 않은데 '식구가 반찬'인지 '사람이 반찬'인지, 하여튼 여러 사람이 둘러앉아 밥을 먹을 때 반찬이 얼마 있지 않아도 맛이 있다는 그런 내용의 시였는데...

 

음식은 혼자 먹을 때보다는 함께 먹을 때 맛이 있고 또 의미가 있다는데 이의를 제기할 사람은 없을 거라는 생각이 든다.

 

한때 '저녁이 있는 삶'이라는 구호가 마음을 울리던 때가 있었는데, 저녁이 있는 삶의 시작이 바로 함께 모여 밥을 먹는 것 아니겠는가.

 

최근에 몇몇 교육청에서 주도하고 있는 '학생들 9시 등교' 역시 함께 아침밥을 먹고 학교에 오라는 이야기 아니던가.

 

그래서 '저녁이 있는 삶'이든 '9시 등교'든 '밥'은 늘 그 중심에 있고, 이렇게 '밥'을 함께 하기 위해서는 노동시간, 공부시간에 대한 사회적 고려가 있어야 한다는 생각이 드는데...

 

그런 사회적 변화도 역시 음식과 관련이 있음을, 그래서 우리 한식에 대해서 관심을 가져야 함을 생각하게 되었다.

 

그런 한식에 대해서 알리고자 펴 낸 책이 바로 이 책이다. 농협의 협찬을 받아 시인들이 쓴 시들 중에 한식에 관한 시 76편을 모아 놓았다.

 

시 76편에 우리 한식 76가지가 나오는데, 단지 다양한 음식의 종류를 홍보하는 것이 아니라, 그 음식에 담긴 우리들의 정서, 문화, 생활습관 등을 잘 보여주고 있다.

 

음식이 바로 우리들을 결정한다면 눈이 맑고 밝은 시인들이 그를 놓칠 리가 없다. 하여 시인들은 '음식'에 관해서 시를 쓸 수밖에 없다.

 

그런 시들 중에 한식에 관계되는, 우리 한식에 담겨 있는 문화를, 정을 너무도 잘 보여주고 있는 시 76편이다.

 

한 편 한 편 어느 하나 놓치고 싶지 않은 시들인데, 그 시들 중에 이 시가 우리가 꿈꾸는 모습을 잘 보여주고 있지 않나 한다.

 

우리 한식의 대표적인 음식이기도 한데, 그런 음식을 우리는 사회에서, 정치에서, 문화에서 잘 살리고 있지 못하다는 생각에 마음이 안타깝다.

 

그러나 이러한 전통이 음식을 통해서 우리에게 아직 살아있음을 알고 이를 계승해야겠다는 생각을 한다.

 

비빔밥

          - 오세영

 

음식 나라에선

비빔밥이 민주국가다.

콩나물과 시금치와 당근과 버섯과 고사리와 도라지와

소고기와 달걀-이 똑같이 평등하다.

육류 위에 채소 없고

채소 위에 육류 없는 그 식자재

이 나라에선 모두가 밥권을 존중한다.

 

음식 나라에선

비빔밥이 공화국이다.

콩나물은 시금치와, 당근은 고사리와

소고기는 통나물과 더불어 함께 살 줄을 안다.

육류 없이 채소 없고

채소 없이 육류 없는 그 공동체 조리법

이 나라에선 아무도 홀로 살지 않는다.

 

음식 나라에선

비빔밥이 복지국가다.

각자 식자재가 조금씩 양보하고,

각자 조미료가 조금씩 희생하여

다섯 가지 색과 향과 맛으로 우려내는

그 속 깊은 영양가,

이 나라에선 어느 누구도 자연을 거스리지 않는다.

 

아아, 음식나라에선

한국이 민주주의다.

한국의 비빔밥이 민주주의다.

 

한국시인협회 엮음, 시로 맛을 낸 행복한 우리 한식, 문학세계사. 2014년 초판 3쇄. 30-32쪽

 

더 말해 무엇하리.

 

이 시말고도 한식에는 이렇게 서로 어울려 맛을 내는 음식들이 많다. 어느 하나도 배척하지 않게 함께 어울리는 한식의 민주주의.

 

음식에서는 이미 민주주의를 이루었는데, 공화국이 되었는데, 복지국가가 되었는데... 아직 우리는... 이렇게 한식은 이미 우리에게 '오래된 미래'를 보여주고 있다.

 

그 '오래된 미래'를 현재로 불러내는 일, 그것은 바로 우리의 몫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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