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 시대의 민중비나리 - 2013년 저항시 80인 선집
백무산 외 지음 / 삶창(삶이보이는창) / 2013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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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 역사는 진보했는가 라는 질문을 하면 누구는 진보했다고 하고, 누구는 후퇴했다고 할텐데...

 

역사는 반복되는가라는 질문에 역사는 반복한다고 대답을 한다면 도대체 진보란 무엇인지 의문이 들게 되고...

 

역사는 반복되지 않는다고 하기엔 무언가 찜찜하고...

 

그동안 이루어왔던 것들이 하나하나 사라져가는 모습을 지켜보면서 역사는 반복하기도 하는구나, 사람들이 제대로 지키지 않으면 애써왔던 것들이 한 순간에 사라질 수도 있구나 하고 있는데...

 

역사가 반복되더라도 똑같은 모습으로 반복되지는 않을테니... 아무리 쓸어버리려 해도 그동안 쌓아왔던 것들이 모두 사라지지는 않을테니...

 

사라지더라도 흔적은 남을테고, 그동안 쌓아왔던 과정에서 축적되었던 힘들은 남아있을테니... 그냥 아무런 저항도 없이 사라지지는 않을테니...

 

우리 시대의 민중비나리.

 

민중들의 몸짓이 마음 속에 뭉쳐있던 감정들이 말을 통해서 밖으로 나온다는 얘기는 민중들이 견딜 수 없는 지경에 이르렀다는 얘기가 되는데...

 

민중들이 너무도 힘들어서 자신들의 이야기조차 하지 못할 때, 비나리조차 하지 못할 때, 그 때 민중들이 마음을 어루만져주는 역할을 하는 사람들이 있으니...

 

지금 우리 시대는 시인들이 그 역할을 한다. 그들은 민중들의 삶을 노래할 줄 안다. 그래서 그들의 시를 읽으며 우리는 마음을 다스린다.

 

그냥 포기하는 것이 아니라 풀처럼 지금은 이리저리 흔들리지만 그 뿌리는 뽑히지 않는 그런 민중들이 있음을, 우리도 민중임을 깨닫는다.

 

바람이 계속될 수 없음을, 풀이 곧 푸르름을 유지하는 날이 옴을 시인들은 노래하고 있다. 그들의 노래를 들으며 우리는 희망을 버리지 않는다.

 

역사는 반복하더라도 똑같은 모습으로 반복하지 않는다. 우리가 그동안 쌓아왔던 것이 있기 때문에.

 

시인들의 노래를 읽으며 그 점을 생각한다.

 

80명의 시인들이 우리 시대의 민중비나리를 노래했다. 더 많은 시인들이 참여하려고 했으리라. 그래서 만약 2014년에도 민중비나리가 나온다면 더 많은 시인이 참여하리라고 하는데...(197쪽 이시집의 발문 참조)

 

나는 개인적으로 이런 시집이 나오지 않았으면 좋겠다. 아니 나올 필요가 없게 되었으면 좋겠다. 민중들이 비나리를 하지 않을 그런 사회가 되었으면 좋겠다. 시인들이 시대의 아픔을 노래하지 않고 우리 시대의 희망을 노래하는 사회가 되었으면 좋겠다.

 

그래도 만약, 정말 만약, 또다시 시인들이 민중비나리를 노래해야 하는 사회가 유지된다면, 그 때는 우리들 모두가 민중비나리를 노래해야 할 것이다. 우리의 삶을 위해서... 그렇게 되지 않기 위해 우리 정신을 똑바로 차려야겠지.

 

이 시집에 실려 있는 정희성의 시처럼, 부끄러워하지 않기 위해서.

 

부끄러워라

- 정희성

 

부끄러워라

더 이상 분노할 수 없다면

내 영혼 죽어 있는 것 아니냐

완장 찬 졸개들이 설쳐대는

더러운 시대에 저항도 못한 채

뭘 더 바랄 게 있어 눈치를 보고

비굴한 웃음 흘리는 것이냐

죽은 시인의 사회에서 이제 그만

주민등록을 말소하고

차라리 파락호처럼 떠나버리자

아아 새들도 세상을 뜨는데(황지우, 새들도 세상을 뜨는구나에서 인용)

좀비들만 지상에 남아 있구나

 

송경동, 이도흠 엮음. 우리 시대의 민중비나리. 삶창. 2013년. 92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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