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시를 걷다 - 사회적 약자를 위한 도시건축, 소통과 행복을 꿈꾸다
이훈길 지음 / 안그라픽스 / 2013년 11월
평점 :
절판


우선 반갑다. 이런 책을 읽게 돼서. 아마도 이런 책이 나온 적이 있었겠지만, 과문한 탓에 도시건축, 그것도 장애인을 중심에 둔 도시건축에 대해서 이야기하는 책은 이 책이 처음이다.

 

장애인이 아니라 사람들이 편리하게, 소통할 수 있게 도시를 구성해야 한다는 내용의 책은 읽은 적이 있었고, 고 정기용 건축가의 책도 어느 정도는 소통을 중심에 둔 도시건축이었다고 할 수 있지만, 구체적으로 장애인을 꼭 집어서 이야기한 책은 내게는 이 책이 처음이다.

 

"도시를 걷다"

 

한 번 걸어보라. 얼마나 불편한지. 조금만 걸어도 길이 연결이 되지 않는다. 그리고 잠깐 한눈을 팔면 발에 무언가가 걸려 넘어지기 쉽다. 더 위험한 일은 차가 걷는 길에 세워져 있다든지, 난데없이 들어온다든지 하는 일이 빈번하다는 것이다.

 

여기에 상점의 간판들, 상점을 홍보하는 입간판들... 그리고 온갖 소음들, 매연들. 정말로 장애가 없는 사람들도 걷고 싶어하지 않는 길이 바로 도시의 길이다. 특히 서울은 더.

 

장애가 없는 사람들도 걷고 싶어하지 않는 도시의 길을 장애가 있는 사람이 걷는다는 일은 정말로 힘든 일이다. 위험한 일이다. 이 책에도 나오지만 이들은 장애가 없는 사람이 3분이면 가는 길을 30분에 걸쳐서 가는 경우가 태반이라고 한다.

 

무엇이 문제일까? 도시를 계획할 때 전체적인 밑그림 없이 그때그때 편의성을 따지면서 건설되었기 때문이다.

 

조선이 한양으로 도읍을 옮길 때 과연 그들도 도읍지를 그냥 막 건설했을까? 예전 책을 읽어보면 상당히 공들여서 계획하고 건설했던 것으로 알고 있는데... 서울이 우리나라 수도가 된지 700년이 되어가고 있는 지금... 옛것을 익혀 새로운 것을 안다는 온고지신의 지혜를 발휘하지는 못할지라도, 잘못된 것은 바로잡고, 지금부터라도 모두가 행복한 도시를 건설하려고 해야 하지 않을까.

 

작가는 이 책에서 건축가는 이런 사람이라고 말한다.

 

  명심해야 할 것 가운데 하나는 건축을 위한 삶이 아니라 삶을 위한 건축이라는 사실이다. 건축가는 멋있는 건물을 짓는 사람이 아니라 건강한 건물을 짓는 사람이어야 하고 나아가 좋은 삶을 위한 공간을 만드는 전문가여야 한다. (200쪽)

 

그렇다. 적어도 건축가는 건축을 할 때 가장 약자를 중심으로, 그가 행복한 생활을 할 수 있는 건축을 해야 한다. 가장 약자가 행복하다면 그보다 나은 처지에 있는 사람들은 당연히 행복할 것이기 때문이다.

 

그런 건축을 '유니버셜 디자인'이라고 한다. 모두가 행복할 수 있는 디자인. 모두에게 통하는 디자인. 여기에는 장애인이고 임산부고 노인이고 모두가 편리하게 사용할 수 있는 디자인(건축)이라는 뜻이 담겨 있다. 그런 '유니버셜 디자인'은 자연스레 '무장애 디자인'을 포함하고 있으리라. 누구에게도 장애가 되지 않는 디자인이라는 '무장애 디자인'.

 

하여 모두가 행복한 건축에는 시각만이 아니라 오감이 동원되어야 한다고 한다. 만약 우리가 장애인이라고 하더라도 어느 장애를 가질지 모르기 때문이다. 모든 장애인들이 행복한 건축이라면 오감을 적절히 자극하는, 또는 오감이 동원되는 그런 건축일 수밖에 없다는 생각이 든다.

 

하나 배웠다. 건축에는 오감이 작용되어야 한다는 사실. 집에는 시각만이 아니라, 촉각만이 아니라, 후각도 청각도 모두 함께 작용하고 있다는 사실을 말이다.

 

여기에 또 걷고 싶은 도시에서는 '거리'와 '길'의 개념을 명확히 해야 한다는 사실도 배웠다. 글쓴이는 '거리'는 단지 물리적 공간을 떠나서 삶이 이루어지는 공간, 행동이 이루어지는 공간이라는 개념으로 사용하고 있으며, 그래서 건축가는 '거리'를 추구해야 한다고 하고, '길'은 이동을 중심으로 하는 지향성을 지닌 목표중심적인 개념이라 건축가가 추구하는 개념이 되어서는 안된다고 한다.

 

건축에서 길을 어떻게 개념지우던, 우리에게는 길이 바로 거리가 되어야 한다. '길'은 우리에게 생활이 되어야 하고 만남의 장소가 되어야 하며, 우리의 삶이 이루어지는 공간이 되어야 한다. 어쩌면 길은 그래서 우리에게 단순한 물리적 공간이 아니라 삶이 녹아 있는, 삶이 이루어지고 있는 '장소'가 되어야 한다. 그리고 건축가는 바로 그러한 건축을 추구해야 한다.

 

이 책에서는 사회적 약자를 배려해야 하는 건축에 대해서 자세하게 잘 설명해주고 있어서, 지금 우리의 도시 건축이 얼마나 배려에서, 아니 배려가 아니라 '함께 삶'에서 많이 벗어나 있는지를 알게 해주었다.

 

문제를 알면 고쳐야지. 바로 그 점이 이 책의 시작점이 아닐까 한다.

 

"자, 문제는 이렇습니다. 그렇다면 우리는 어떻게 해야 할까요?" 이렇게 이 책의 저자가 묻고 있는 것 같다.

 

그렇다면 답은 사회적 약자들이 함께 즐길 수 있는 그런 도시를 만들 수 있도록 우리가 관심을 가지고 참여해야 한다가 된다. 그것은 바로 사회적 약자들만의 문제가 아니라 우리 모두의 문제니까.

사회적 약자가 행복한 도시라면 우리 모두는 행복할 수밖에 없으므로. 누군가가 불편하고 힘듦 생활을 하게 계획된 도시라면 우리에게도 불편하고 힘들 수밖에 없으므로.

 

참, 좋게 읽었다. 이런 책이 많이 나와야 한다는 생각을 하면서. 이런 책의 내용을 도시 행정을 책임지고 있는 사람들이 읽어야 한다는 생각을 하면서. 아니, 한 나라의 정치를 이끌어가는 사람들이 읽어야 한다고 생각하면서. 좋았다.

 

덧글

 

이 책 참 좋게 읽었는데.. 읽으면서 자꾸 학교 생각이 났다. 우리나라 학교 건물을 생각해 보라. 얼마나 폭력적인지. 사회적 약자에게 얼마나 다니기 힘든 건물인지. 지금은 좀 나아졌지만, 예전에 대학에 입학한 장애인 대학생이 학교를 자퇴한 경우가 있었다. 도저히 학교를 다닐 수 없는 구조였기때문이다. 그런 일들을 거치며 대학은 조금 좋아졌는데...

 

초중고등학교는? 이렇게 물으면 아니다다. 건물은 낡고 휠체어는 당연히 다닐 수 없으며, 장애인 화장실은 구색을 맞추기 위해서만 존재하는 경우가 많으니... 장애인에게 초중고등학교의 건물은 폭력이다. 접근하기 너무 힘든 철옹성이다. 이런 경험을 한 아이들이 어떤 생각을 할까 고민해봐야 한다.

 

적어도 학교 건축에 대해서는 우리나라 최고의 건축가들이 고민을 하고, 설계를 하고, 조언을 하고, 교육당국은 그런 조언을 받아들여 건축을 해야 하지 않을까. 돈이 많이 들겠지만, 지금 낡은 학교 건축들을 개조해야 하지 않을까? 학교 다니면서 모두가 행복할 수 있는 건축을 몸소 겪은 아이들이 자라면 도시 건축도 나라 건축도 모두 그런 방향으로 자연스레 가지 않을까 하는 생각을 한다. 

 

또 하나 다음에는 경제적 약자들도 도시에서 소외되지 않는 그런 건축에 대한 책도 나왔으면 좋겠다. 추상적인 주장만 담긴 책이 아닌 구체적인 내용이 담긴 그런 책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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