황금빛 모서리 문학과지성 시인선 130
김중식 지음 / 문학과지성사 / 1993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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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시집에 나온 시들을 읽으며 마음이 편치 않았다. 남들이 말하는 격동의 80년대가 다시 살아난 듯한 느낌 때문이라고 할까?

 

치열하게 그 시대를 보냈다고 할 수도 없는데, 어떻게든 그 시대에 몸을 담을 수밖에 없었던 사람들은 그 시대의 자장에서 벗어나지 못했으리라.

 

때론 혁명을 꿈꾸고, 때론 좌절하고, 때론 능동적으로 참여하고, 때로는 수동적으로 방관하고, 때로는 벗어나고 싶어 달아나기도 하고, 때로는 그대로 그럴 수 없지 하고 그 자리로 돌아오기도 하고...

 

어떤 사람들은 그대로 그 시대가 행복했다고 한다. 적어도 꿈은 꿀 수 있지 않았느냐고... 무언가를 만들어가거나 선택을 할 수는 있지 않았느냐고...

 

지금은 그럴 수도 없다. 우리는 선택을 하는 모양을 취하고 있지만 사실 선택을 당하고 있으며, 꿈을 꿀 수 있다고 하지만 그 꿈조차도 한계지워지고 말았으니...

 

 

그럼에도 이 시집은 편치 않다. 80년대의 그 암울한 모습이 그대로 드러나고 있기 때문이다. 이 시집이 93년에 발간이 되었으니까, 그리고 시인의 나이를 보건대, 시인은 80년대에 대학을 다닌, 격동의 80년대를 온몸으로 통과한 사람일테고, 그러한 몸부림이 시로 나타나고, 이 시집에 시로 실렸기 때문이다.

 

93년에 나온 시집임에도 불구하고 시집의 서지를 보면 2011년에 13쇄가 발간되었다. 13쇄가 발간되었단 얘기는 꾸준히 시집이 팔리고 있다는 얘기인데... 그 얘기를 다른 말로 하면 우리의 역사가 더 앞으로 나아가지 못하고 반복되고 있다는 얘기이기도 하리라.

 

이 시집에서 표현되고 있는 내용들이 단지 과거에만 존재하지 않고 20년이 흐른 지금에도 존재하고 있다는 얘기... 그래서 시를 읽으며 시대를 파악하고, 자신을 위로하기도 하리라.

 

반복되는 역사, 그것은 처음에는 비극이지만, 다음에는 희극이라고 했는데... 아니다, 역사는 반복하더라도 희극이 되지 않는다. 희극이었으면 좋겠지만, 그것은 미래에 그 당시를 평가할 때나 할 수 있는 말이고, 반복되는 당시에 살고 있는 사람들에게는 똑같이 비극이다.

 

그럴 때 이탈이 필요하다. 다람쥐 쳇바퀴 돌듯이 같은 자리만 맴돌 수는 없지 않은가. 궤도에서 벗어나 궤도를 바라볼 수 있는 힘, 그것이 필요하다.

 

이 시집은 그렇게 이탈에서 시작한다. 첫시의 제목은 '이탈한 자가 문득'이다.

 

이탈한 자가 문득

 

  우리는 어디로 갔다가 어디서 돌아왔느냐 자기의 꼬리를 물고 뱅뱅 돌았을 뿐이다 대낮보다 찬란한 태양도 궤도를 이탈하지 못한다 태양보다 냉철한 뭇별들도 궤도를 이탈하지 못하므로 가는 곳만 가고 아는 것만 알 뿐이다 집도 절도 죽도 밥도 다 떨어져 빈 몸으로 돌아왔을 때 나는 보았다 단 한 번 궤도를 이탈함으로써 두번 다시 궤도에 진입하지 못할지라도 캄캄한 하늘에 획을 긋는 별, 그 똥, 짧지만, 그래도 획을 그을 수 있는, 포기한 자 그래서 이탈한 자가 문득 자유롭다는 것을

 

김중식, 황금빛 모서리, 문학과지성사. 2011년 초판 13쇄. 11쪽

 

역사의 궤도가 일정하게 반복하면 문제가 되지만, 그렇다고 그 궤도를 수정하기는 힘들다. 그 궤도를 수정하는 사람은 궤도 속의 사람이 아니라 궤도 밖으로 이탈한 사람이다. 그런 이탈이 있기에 수정이 가능하다. 그렇다. 진정 자유로운 사람은 궤도에서 벗어날 줄 아는 사람이다. 그런 사람이 역사를 만들어간다. 그런 사람이 없다면 역사는 그냥 궤도를 도는 반복을 할 뿐이다.

 

그렇다면 자유롭기 위해서는 어떻게 해야 할까. 나는 경계에 서야 한다고 생각한다. 어느 쪽에 포함되는 것이 아닌 경계에서 이쪽과 저쪽을 함께 볼 수 있어야 한다고 생각한다. 경계인, 그는 어디에도 속하지 않기에 이탈할 수밖에 없는 사람이다.

 

그는 중심을 차지하고 있지는 않지만, 어디로도 갈 수가 있기에 늘 무한한 가능성을 지니고 있는 존재이다. 반대로 그는 어디에도 속하지 않기에 너무도 어려운 삶을 살 수밖에 없는 존재이기도 하다.

 

이런 경계인의 삶을 그는 '갈대3'에서 노래하고 있다.

 

갈대3

 

  바다가 불러도 바다에 간 적 없고 바다를 사랑한다면서도 깨어지는 파도가 되기를 두려워한 놈이외다 山(산)을 사랑한다면서도 떨어지는 잎새가 되기를 두려워하였으므로 山이 움직여도 山에 들어간 적 없는 놈이외다 이런 놈이외다 붉은 山 푸른 바다 사이에서 고개 숙인 채 오도 가도 못하는 의지, 박약한

 

김중식, 황금빛 모서리, 문학과지성사. 2011년 초판 13쇄. 79쪽

 

그는 의지박약이라고 표현하고 있지만, 어느 편에도 속하기를 거부한 강한 의지의 표현이라고 해석을 할 수 있다.  강한 두 편이 있을 때 어느 편에도 속하지 않는다는 것은 힘든 일이다. 어느 편이든 자신의 편을 정해 그곳에 몸을 담그는 일, 그것이 더 쉬운 일이다.

 

이럴 때 어느 쪽으로도 가지 못하고 경계에서 이쪽 저쪽을 다 볼 수 있는 것, 이쪽 저쪽에서 다 비난을 받는 것, 결코 의지 박약이 아니다. 그것은 궤도에 들기를 거부한, 반복된 삶, 시류에 휩쓸리는 삶을 거부한 강한 의지이다.

 

2000년대가 이미 10년이 지나간 지금, 80년대 그 치열했던 삶들이 이 시집에 녹아 있음에도 이 시집이 계속 읽히고 있는 이유는 우리가 아직도 반복되는 삶을 살기 때문. 우리가 아직도 자유로운 삶을 살고 있지 않기 때문이 아닐까...

 

이 시집을 읽으며 마음이 불편했던 이유가 그것이 아니었을까? 그럼에도 이 시집에서 희망을 찾는다. 그것은 바로 궤도에서 이탈할 자유, 경계에서 바라볼 의지를 느낄 수 있기 때문이다.

 

날아오르길 기다리는 그런 모습. 그것을 이 시집에서 발견한다. 시집은 제목은 곧 그 시집의 얼굴이자 몸통이자 내용이다. 제목이 된 시를 보자.

 

  황금빛 모서리

 

뼛속을 긁어낸 의지의 대가로

석양 무렵 황금빛 모서리를 갖는 새는

몸을 쳐서 솟구칠 때마다

금부스러기를 지상에 떨어뜨린다

 

날개가 가자는 대로 먼 곳까지 갔다가

석양의 흑점에서 클로즈업으로 날아온 새가

기진맥진

빈 몸의 무게조차 가누지 못해도

 

아직 떠나지 않은 새의

피안을 노려보는 눈에는

발 밑의 벌레를 놓치는 원시의 배고픔쯤

헛것이 보여도

현란한 비상만 보인다.

 

김중식, 황금빛 모서리, 문학과지성사. 2011년 초판 13쇄. 101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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