언어의 배반 - 언어학자와 정치학자, 권력에 중독된 언어를 말하다
김준형.윤상헌 지음 / 뜨인돌 / 2013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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언어는 가치 중립적인가? 예전에 토론거리로 이야기를 나누기도 했던 주제였는데...

 

"언어는 가치 중립적이다."

" 아니다. 언어에는 이미 이데올로기가 들어 있다."

 

이렇게 첨예하게 갈리는 관점에서 자신의 주장을 펼쳐나가기도 했는데... 언어 자체에 지시대상과 지시관계, 그리고 의미가 있다고 한다면 이미 언어는 그 자체로 가치 중립일 수가 없다는 생각이 들기도 한다.

 

언어 자체가 그 자체로 존재하기도 하겠지만, 언어가 언어로서 기능하는 것은 특정한 사람에 의해서 특정한 상황에서 발화되었을 때니, 발화 상황, 즉 담론의 입장에서 보면 언어는 분명히 이념(이데올로기)적인 것이라고 할 수 있다.

 

그래서 언어에는 사전적 의미의 뜻도 있지만, 상황에 따라서 다양하게 해석이 되기도 한다. 단지 해석되기만 하지 않고, 사회-정치적인 힘을 발휘하게 된다.

 

우리 사회에서 가장 힘을 발휘하는 낱말이 바로 "친북 좌파" 또는 "좌빨", "빨갱이"라는 말일테다. 이 말이 상대에게 향하는 순간, 상대는 무장해제 당하고 만다. 그리고 그 말을 들은 사람들도 더 이상 논의를 진전시켜 나가지 못한다.

 

그만큼 이 말은 무소불위의 힘을 지니고 우리의 삶을 옭죄고 있다. 특히 선거 때에 상대 정당을, 상대 후보를 공격하기에 이만큼 좋은 말도 없으니...

 

분단 현실이라는 우리나라 상황이 이 말이 상대를 꼼짝 못하게 얽어매는 힘을 발휘하게 만들고 있다.

 

이런 말들을 언어학자와 정치학자가 주고받는 형식으로 다루고 있다. 많은 말들을 다루고 있는데, 앞에서 이야기한 "좌빨"이라는 말부터 시작하여... 우리가 아무 의식 없이 쓰는 말인 '순수'라든가 '진정성, 용서와 화해, 착함'이라는 말까지 두루 살펴보고 있다.

 

역시 말은 무서운 것. 어떤 상황에서 어떻게 쓰이냐에 따라 굉장한 힘을 발휘하기도 한다. 대부분의 경우 힘있는 사람들에 의해서 힘없는 사람들을 누르는 역할을 하지만...

 

이런 말들이 쓰이는 상황을 스토리텔링의 관점에서 보면, 이 말을 깰 수 있는 또다른 스토리텔링을 만들어내야 하는데, 그것이 쉽지 않다.

 

최근에 논란이 되고 있는 NLL건만 보아도 그렇다. 포기니 아니니, 정상회담 대화록이 있느니 없느니 하는 말들, 실체는 분명히 존재하는데 그 실체를 규정하는 말들이 서로 다르고, 그 말들이 힘과 힘으로써 부딪히고 있다.

 

여기에 또 하나의 힘으로써 악용되고 있는 "여론"이란 말이 사람들의 의식을, 일방적인 방향으로 이끌어 가고 있다.

 

평화구역으로 만들자를 포기로 바꾸는 그런 언어의 배반... 생존을 위한 몸부림을, 지역이기주의로 바꾸는 그런 언어의 배반... 지금도 많이 일어나고 있지 않은가.

 

하다못해 공약(公約)에 있던 노인기초연금 20만원 지급도 국민연금과 연동할 수 있다고 했다고 하고 있고, 하지 않는 것이 아니라 못하는 것이며, 최선을 다해서 하려고 하기에 공약 파기가 아니라고 하는 언어의 배반.

 

그래서 우리는 언어에 대해서 민감하게 생각하는 습관을 가져야 한다. 그런 습관을 들이는데, 이 책은 도움을 줄 수 있다. 우리가 아무 생각없이 쓰는 언어가 이렇게 사용될 수 있다는 것을 보여주고 있으며, 이 말들이 어떤 권력을 지니고 있는지, 우리 생활을 어떻게 침해하고 있는지를 보여주고 있기 때문이다.

 

공자는 자신이 추구하는 일이 바로 정당한 이름짓기라고 했다고 하다. 정명(正名). 얼마나 중요한 일인가. 언어가 본래 지니고 있는 의미로 쓰이게 하는 것, 그것은 언어를 두고 또다른 힘과 힘이 부딪치는 일일테다.

 

하여 언어의 배반을 한탄하기 보다는, 언어에는 정치-사회적인 힘이 있음을 인식하고, 언어를 바르게 사용할 수 있도록, 또한 바른 언어를 사용하도록 압력을 행사해야 한다. 그것이 우리 사회가 바르게 갈 수 있는 한 방법이 될 것이다.

 

다양한 언어에 이런 사회-정치적인 함의가 있다는 것을 알 수 있게 해준 책이고, 아무 생각없이 이런 용어들을 사용하는 것은 또다른 권력을 형성해주는 일임을 깨닫게 해준 책이기도 하다. 조심할 일이다.

 

덧글

 

사람의 이름은 정확히 표기해야 한다. 184쪽의 두번째 줄에서 세번째 줄의 "정치인 김문수 씨나 이재호 씨"라는 문장에서 '이재호 -> 이재오'로 바꾸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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