삼켜야 했던 평화의 언어 - 병역거부가 말했던 것, 말하지 못했던 것
임재성 지음 / 그린비 / 2011년 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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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80년대 20대 초반, 병무청에서 나온 신체검사 통지서를 받고 있는 나. 군대 누구나 간다고 하지만 누구나는 가지 않는 그 곳. 가고 싶지 않고, 될 수 있으면 가지 않았으면 하는 곳. 어떻게 하면 가지 않을 수 있나? 눈이 나쁘면, 간이 안 좋으면, 혈압이 높으면, 평발이면, 몸무게가 너무 안 나가면, 몸무게가 너무 나가면, 키가 아주 작으면, 손가락이 없으면....등등 

온갖 군대 가지 않을 방법이 난무한다. 이 많은 방법이 대부분 자신의 신체에 관한 것이다. 양심이라는 신념에 대한 것은 없다. 아니 없었다. 그 때는 생각을 못했다. 기껏 생각해 낸 것이 감옥에 갔다오는 것, 양심수로 말이다. 

결국 '빽'없는 소시민의 자식들은 신체검사를 통해 현역병으로 입영하게 된다. 

 

우리나라에서 존경하는 인물은?  세계적으로 유명한 인물은? 이런 질문에 빠지지 않고 나오는 사람들... 장군들이다. 이순신, 강감찬, 을지문덕, 하다못해 요즘 드라마에서 다루고 있는 계백, 김유신, 연개소문, 왜 광개토대왕이 광개토태왕이 되고, 영웅이 되겠는가? 세계적으로도 나폴레옹, 한니발, 아이젠하워, 게다가 우리나라 사람들은 맥아더... 

이들이 이름을 알리기 위해서 이들 밑에서 얼마나 많은 군인, 백성들이 죽어갔겠는가? 이들의 이름을 돋보이게 하기 위해 얼마나 많은 상대편 사람들이 죽어갔는가를 생각하지는 않는다. 한 사람을 죽이면 살인자지만, 수 천, 수 만 명을 죽이면 영웅이 된다고 하는 말도 있지 않은가. 결국 전쟁영웅이란, 장군이란 남의 생명을 수없이 없앤 사람의 다른 이름에 불과하다.  

루쉰이 쓴 '나폴레옹과 제너'란 글이 생각난다. 왜 사람들은 수많은 사람을 살린 제너보다는 수많은 사람을 죽인 나폴레옹을 더 기억할까 하는 글. 우리가 기억해야 할 사람은 나폴레옹이 아니라, 제너와 같이 수많은 사람을 살린 사람들이 아닐까.

 

양심적 병역 거부, 양심에 따른 병역 거부..용어야 많지만, 이 책은 양심적 병역 거부라는 말을 사용하고 있다. 이 때 양심은 우리가 말하는 착한 마음이라는 의미보다는 자신의 신념을 이야기 한다고 보아야 한다.  

그렇다면 이들은 병역 거부를 하고 무엇을 하고자 하는가? 처음에는 병역 거부는 살상 무기를 잡지 않을 권리, 남을 해치지 않겠다는 자신의 신념을 유지하게 해주는 차원에서 대체 복무제를 이야기 하고 있다. 노무현 정권 말기에 실시한다고 했다가, 이명박 정권에 들어와서 백지화시켜 버린 대체복무제. 점점 평화에서 멀어지고 있다. 우리나라 병역거부의 역사가  짧은 것도 있고, 여호와의 증인을 중심으로 종교적인 신념에서 이루어지기도 했지만, 그래서 이들이 감옥에 가게 되었고, 이들을 감옥에 가게 하지 말자는 운동으로 대체복무제를 주장했지만, 아직도 이는 이루어지지 않고 있다. 

대체복무제가 양심적 병역 거부 운동의 끝이냐고? 아니다. 이 책은 그것이 아님을 이야기 하기 위해서 쓰여졌다고 보아도 된다. 그것이 삼켜야 했던 평화의 언어다. 

양심적 병역 거부는 대체 복무제만을 주장하지 않고, 군사주의를 반대한다. 군사주의로 표방되는 획일화, 생명경시의 사회를 반대한다. 이들은 평화주의를 제창한다. 그리고 세계 평화를 만들기 위해 노력하고자 한다. 그런 차원에서 양심적 병역 거부 위에 군대 거부까지 나아가려고 한다.  

이런 내용이 2부에 자세히 실려 있다. 군대, 그리고 군인, 이는 살인집단이고 살인기계일 뿐이라는 말이 있다. 당장은 아니더라도 언제나 예비되어 있는 살인 집단이라는 인식을 지니고, 이에 대한 반대를 한다면 평화는 한걸음 더 우리 앞에 다가오게 된다.

 

1부는 일제시대부터 지금까지 양심적 병역 거부에 대한 역사적인 연구를 하고 있다고 보면 된다. 

여호와의 증인과 재세례파들로 이루어진 종교적이 신념에서 한 거부부터, 2000년대 들어 자신의 평화에 대한 신념으로 거부한 사례까지 다루고 있다. 종교 자체가 이미 평화이거늘, 어떤 종교 단체에서 양심적 병역 거부를 극렬하게 비난하는 모습은 이해하기 힘들다. 대부분의 종교 단체들은 이제 양심적 병역 거부를 인정하고 있는데... 아직도 군복에 대한 향수를 잊지 못하고, 군대만이 나라를 살릴 길이라는 인식을 지닌 사람들이 있듯이, 종교가 정치와 밀접한 관계를 가지고 세속의 이익에서 벗어나지 않으려는 모습을 보이는 종교집단이 있다. 

교회가 늘어나고, 절이 늘어나고, 성당이 늘어나고, 모스크가 늘어나고, 또... 어떤.. 어떤 종교의 예배장소가 늘어나면 늘어날수록 세상은 평화로 넘쳐야 하는데...왜 아직 안 될까? 왜 이들은 군대를 문제삼지 않을까? 임재성의 이 책은 이제는 우리가 병역 거부를 정면에서 문제 삼아야 한다고 한다. 학교에서도, 종교 현장에서도 군대를 정면에서 다룰 줄 알아야 한다고... 

 

다시 한반도에 긴장이 고조되고 있다. 그래도 전쟁은 안된다는 생각을 국민 대다수가 지니고 있고, 평화통일이 되어야 한다고 대부분이 생각하고 있다고 한다. 전쟁은 안 된다. 그렇다면 어떻게 평화의 모습을 만들어갈까? 

이 책의 마지막에 보론이라고 인터뷰가 실렸는데.. 이 중 마케도니아 사람의 말이 가슴에 와닿는다. 마케도나아와 알바니아가 전쟁상황 비슷한 갈등에 처했을 때 이들 마케도나아 병역 거부자들이 한 일은 조국을 지키자가 아니라, 알바니아 병역 거부자들과 함께 전쟁을 반대했다는 이야기. 우리나라도 마찬가지다. 결국 우리는 우리만을 보지 말고, 저 편에도 사람이 있다는 사실을, 우리와 같이 숨쉬고, 먹고, 울고, 웃으며 행복한 삶을 꿈꾸는 사람이 있음을 명심해야 한다. 전쟁은 어떤 형태로도 정당화될 수 없음을 이 책을 읽으면서 더 강화했다고 할까. 

양심적 병역 거부자, 이들은 우리가 보호해 주어야 할 대상이 아니라, 우리가 함께 해야 할 사람들이다. 이들이 거부하는 병역, 그것은 지금 우리 삶에도 깊숙히 들어와 있으니 말이다. 

 

군대 갔다와야 사람된다. 쉽게 하는 말이다. 사람된다에서 사람이 어떤 의미를 지니고 있는가. 이제 제 주제를 알고 조용히 지내는 사람을 의미하면 사람된다는 말이 맞다. 그러나 사람이란 남에 의해 자신의 삶을 저당잡히지 않고, 자신 스스로 자신의 행복을 찾아가는 존재라면 이 말은 바뀌어야 한다. 군대 갔다오면 사람 없어진다로. 생각하면 안 되는 존재, 바로 그들이 군인 아니던가. 그래서 이 책은 양심적 병역 거부는 대체 복무로 끝나지 않고, 군대 폐지 이전의 단계로 군대의 인권 문제를 다루어야 한다고 한다.  

최근에 기수열외 등 참 안 좋은, 군대내 비인권적인 모습이 많이 불거졌는데... 군대를 인권이 살아있는 조직으로 만드는 운동 역시 양심적 병역 거부 운동이 해야 할 일이라고 한다. 맞는 말이다. 인권은 어떤 때, 어떤 장소에서도 양보할 수 없는 천부의 권리니까.  

 

군대. 많은 사람을 소외시킨다. 여성, 장애인, 성소수자, 이주노동자 등등 

이런 군대에 대해 다시 한 번 생각해 보아야 한다. 과연 군대는 필요한가. 톨스토이는 국가는 폭력이라고 했다. 그리고 어떤 이들은 군대를 잘 생각해 보라고 했다. 외국군 보다도 자국민을 더 많이 죽인 집단이 군대라고...  

생각해 볼 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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