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 노동으로 - 신동문 전집 시 솔시선(솔의 시인) 2
신동문 지음 / 솔출판사 / 2004년 9월
평점 :
절판


시인이라면 자신만의 시집을 갖고 싶지 않을까. 

명색이 시로 업을 삼은 사람치고 시집 한 권 지니고 싶지 않은 사람은 없을 것이다. 그러니 살아서 시집을 내지 못한 시인을 안타까워 하고, 그 시인을 위해 유고시집을 내주지 않는가. 

우리 시사(詩史)에서 중요한 위치를 차지하고 있는 육사, 동주의 시집도 살아생전에 나오지 못하고, 사후에 지인이나, 동생에 의해서 발간되지 않았던가. 하다못해 신동문과 친했던 천상병만 해도 그가 행방불명 되었을 때, 친구들이 그의 유고시집 "새"를 발간하는 일도 있지 않았던가. 

그런데 신동문은 시집을 딱 한 권 내고 더 이상 시집을 내지 않았다. 그에 대한 다른 글을 읽어보면 시집을 내자는 제의도 있었다는데, 그는 쓰레기를 양산하기 싫다고 내지 않았다고도 하는데... 

그만큼 자신이 낸 처음 시집에는 애착이 있다는 얘기도 되고, 또 기존에 발표한 시들에도 불만은 있을지 모르나 발표를 했다는 자체에 어느 정도 자부심과 애착이 있었다고 봐야 한다.  

이 "내 노동으로"는 신동문이 발표한 시들을 찾을 수 있는 대로 찾아 수록한 그의 전집이다. 전집이 보통 시인들의 시집 한 권 분량밖에 안된다는 사실이 안타깝긴 하지만, 그래도 이렇게 시집이 남아 있다는 사실에 위안을 느낄 수도 있지 않을까 한다. 

시집을 읽을 때 기억에 남는 시, 마음을 울리는 시 하나만 있어도 시집을 잘 샀다는 생각이 든다. 그냥 무슨 이야기인지는 모르겠는데, 마음에 들어와 나가지 않는 시, 이렇게 세상을 볼 수도 있구나, 이렇게 표현할 수도 있구나 하는 시, 이런 시들을 발견했을 때, 비로소 시집을 산 즐거움을 느끼게 된다. 이 즐거움이 다음에 시집을 살 수 있게 해주는 원동력이 되고. 

신동문의 시전집에서는 너무도 잘 알려진 '아, 신화(神話)같이 다비데군(群)들' 말고도 여러 시들이 내 맘에 들어왔다. 이 시인은 과거의 시인이 아니라, 과거의 현실만을 노래한 것이 아니라, 지금 우리에게도 유효한 시인이라는 생각이 든 시들이었다. 

그 중의 하나를 들면 '연령'이란 시다. 무엇을 얘기하려 했는지 생각하기보다, 그냥 마음에 쏙 들어왔다. 나 역시 나이 먹어가고 있단 얘기인가. 그렇다면 나이를 의식하는 사람에게 이 시는 마음에 들어올 수 있단 얘기가 되는데... 

어느 날 들녘에서 청자빛 새금파리 같은 것이 석양에 반짝 빛나는 걸 봤다. 

하루는 여자의 두발 같은 것이 쓰레기통가에 버려진 걸 봤다. 

어제는 길 가다 말고 무심코 엉엉 통곡하는 시늉을 해보고 웃었다. 

오늘은 아침 양치질 때 칫솔에 묻은 피를 보며 노후의 독신을 공상해봤다. 

내일은 그 오래 못 만난 우울한 친구를 찾아봐야겠다고 생각한다. 

신동문, 연령 전문  

이 시 외에도 통렬하게 박정희 정권을 풍자하고 있는 '모작조감도'(다들 모작오감도라고 해야 이상의 시를 모작하는 것이라고 생각하는데, 시인은 모작조감도라고 했다고 한다. 오자인지, 아니면 이조차도 이상의 시를 패러디한 것인지 의견이 분분하다), 세상과의 불화을 이야기하고 있는 '의족' 그리고 노동을 하고 살고 싶다는 의지를 내비치는 '내 노동으로' '산문 또는 생산' '바둑과 홍경래' 등이 있다. 

무엇보다 우울한 마음이 들 때 읽을 수 있는 시로 '절망을 커피처럼'이 있다.  

절망을 커피처럼 / 절망을 아침 차례 진한 커피처럼 / 아침부터 마시면 / 빈 창자 갓갓이 / 메마른 가슴 구석까지 / 절망은 커피처럼 스미고 / 가벼운 미열과 함께 / 나는 흥분한다.  

-절망을 커피처럼 부분

 절망이 내 온몸 구석구석 혈관을 타고 스며드는 느낌이 들지 않는가. 

이처럼 이 시집에는 지금의 우리 마음에 다가오는 시들이 꽤 있다. 이런 시들로 인하여 이 시는 문학사적인 가치뿐이 아니라, 내 맘을 위로해주고 풍성하게 해주는 역할도 한다. 이런 점으로 하여 신동문은 단지 과거의 시인이 아니라, 현재에도 읽혀야 하는 시인이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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