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른 사람 - 제22회 한겨레문학상 수상작, 개정판
강화길 지음 / 한겨레출판 / 2021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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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른 사람'

 

제목을 보면서 '나'가 아닌 존재를 가리키는 말, 아니면 지금의 '나'를 벗어나고 싶어하는 존재가 바로 '다른 사람'이라는 생각을 했다. '나'라는 존재에 대해서 나 자신도 잘 모르면서도 우리는 대부분 '나'보다는 '다른 사람'을 더 좋게 바라보는 경향이 있다. 그러면서 나도 저런 다른 사람이 되어야겠다고 다짐하기도 한다. 특히 지금 자신이 어려움을 겪고 있다면, 그래서 자신에 대해서 실망하고 있다면, '나'보다는 '다른 사람' 되기를 열망한다.

 

그러면서 '나'를 잊고 '다른 사람'으로 살아가려고 한다. 그것이 결국 '나'를 갉아먹는 일임을, '나'를 '다른 사람'으로 만들지 못하고 '나'를 지워가는 과정임을 깨닫지 못하고.

 

소설을 읽는 중간에 내가 갖고 있지 않은 무언가를 갖고 있는 사람, 그것을 아무렇지도 않게 행사는 사람, 그런 사람을 '다른 사람'이라고 생각하게 됐다.

 

그렇다면 피해자에게는 가해자가 다른 사람이고, 여성에게는 남성이 다른 사람이다. 이상하게 소설을 읽으면서 남성이 여성을 다른 사람으로 여긴다는 생각은 들지 않는다.

 

소설은 처음부터 섬뜩하게 시작한다. 피해자가 더 피해를 본다. 그렇다면 피해자로 지내기보다는 다른 존재로 지내려고 하는 마음이 생긴다. 피해자가 가해자보다 더 비난을 받는 상황. 이런 상황은 생물학적으로 남성보다는 여성에게 더 잘 일어난다.

 

그렇게 데이트 폭력으로 소설은 시작한다. 자, 이 데이트 폭력이 어떻게 전개될 것인가? 데이트 폭력을 공개한 피해자가 어떤 삶을 살게 될 것인가? 대략 예상은 하지만 온라인 상에서는 피해자를 두둔하는 댓글과 피해자는 비난하는 댓글이 달린다.

 

그런데 그런 댓글들이 동등하게 달리지는 않는다. 동등하게 달리더라도 피해자의 눈길을 끄는 댓글은 피해자를 비난하는 댓글들이다. 그것이 비록 소수일지라도 피해자의 눈에는 그런 비난 댓글이 더 잘 들어온다. 잘 들어올 뿐만 아니라 피해자의 가슴에 비수처럼 박힌다. 박혀서 빠지지 않는다. 그리고 피해자를 더욱 힘들게 한다.

 

(최근에 읽은 시, 이소호가 쓴 '누구나의 어제 그리고 오늘 혹은 내일'을 보라.)

 

이런 전개는 상투적이다. 이런 피해자가 비난 댓글을 극복하고 자신을 찾아가는 과정, 자신 속에 있는 또 다른 자신을 찾아가는 과정으로 '다른 사람'을 생각한다면 이 소설은 힘을 잃을 것이다.

 

소설은 여기서 한 발 더 나아간다. 인물들이 한 명이 아니라 여러 명이 얽히고 설킨 관계로 맺어진다. 소설에 등장하는 주요 여성 인물로 진아, 수진, 유리가 있고, 이들과는 다른 사람이라고 할 수 있는 이강현이 등장한다. (이 이강현은 생물학적인 성별로는 여성이지만 삶의 양태로 보면 이 소설에서 말하는 '다른 사람'이라고 할 수 있다) 여기에 남성 인물로는 류현규와 김동희가 등장한다.

 

물론 이 소설의 서술자인 진아를 나락에서 허우적거리게만 만들지 않는 단아라는 여성 인물이 등장하고, 나중에 '다른 사람'보다는 '나'로 살아가는 모습을 보인느 당찬 젊은이인 김이영, 서술자인 진아를 서술로 이끈 이진섭이라는 남성이 등장하지만 이들이 서술의 중심에 있지는 않다.

 

진아, 수진, 유리는 공통점이 있다. 이들이 겪은 일들이 그렇고 대응하는 방식이 그렇다. 이들은 '나'보다는 '다른 사람'이 되고 싶어했다. 그렇게 자신들의 '나'를 지우고 이 '나' 위에 '다른 사람'을 덧씌우려 했다.

 

물론 성공하기도 한다. 수진은 언뜻 보면 성공한 삶을 사는 듯하다. 그렇지만 아니다. 수진은 지속적으로 '다른 사람'의 그림자 속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있다. 이 그림자를 벗어나지 못하는 한 수진은 겉으로 보이는 모습과는 다르게 '나'로 살아갈 수밖에 없다.

 

온전히 '다른 사람'이 되지 못하고 '나'임을 의식하면서 전전긍긍하는 삶. 이런 삶에서는 '나'와 비슷한 존재들을 배척할 수밖에 없다. 왜냐하면 이런 존재들은 '나'를 '다른 사람'으로 살아가게 하는데 방해가 되기 때문이다.

 

그래서 이들은 관계맺기에 실패한다. 바로 그들에게서 '나'를 보기 때문이고, 이런 '나들'이 바로 자신을 나약한 존재, 삶을 힘들게 하는 존재라고 여기기 때문이다.

 

그렇기 때문에 수진도, 유리도 서술자인 진아의 '나'에 해당한다. 그들은 '다른 사람' 될 수 없다. 그렇다면 '다른 사람'은 누구인가? 바로 이런 '나'를 힘들게 하는 존재다. '나'를 힘들게 하기에, '나'가 도저히 견딜 수 없기 때문에, '나'역시 '다른 사람'이 되고자 한다.

 

강간당하는 사람보다는 강간하는 사람이 되고자 한다. 그런데 이게 과연 해결책일까? 이는 가해와 피해의 이분법 속에서 벗어나지 못하는 모습일 뿐이다. 내가 가해자처럼 군다고 해서 내 피해가 사라지는가? 아니다. 사라지길 바라지만 그러면 그럴수록 피해는 내 속에 더 깊이 남아 있게 된다. 이런 피해의식들이 알게 모르게 내 삶을 규정한다. 내 행동, 내 말투 등등을.

 

그렇다면 '다른 사람'이 되기보다 '나'를 인정하는 방향으로 바꾸어야 한다. 내가 피해를 당한 것을 내 책임으로 돌려서는 안 된다. 가해자가 잘못한 일을 왜 피해자에게 돌리는가. 잘못은 가해자가 했고, 책임도 가해자에게 돌려야 한다. 그럼에도 지금까지 많은 경우에 책임이 피해자에게 돌아왔다.

 

바로 피해자들의 '나'를 왜곡하고 축소하고 '나 피해의식 있어.'라는 말로 책임을 전가한다. 이런 상황에서 '나'는 '다른 사람'이 되고자 하지만, 그 '다른 사람'은 바로 '나'일 수밖에 없다. 끊임없는 도돌이표.

 

이 도돌이표는 '다른 사람'이 되기를 바라지 않고 '나'를 바라보고 '나'로 살아가는 길을 찾았을 때 멈출 수 있다. 이는 바로 피해의식이 있다고 하는 그 말들이 바로 '가스라이팅'에 불과하다는 것을 인식하는 일이다. 그리고 '나'가 또다른 '나'와 연대할 때, 비로소 '나'와 대척점에 있던 '다른 사람'이 아니라 '나'가 '나들'로 굳건하게 연대한 '다른 사람'이 될 수 있다.

 

소설은 유리를 통해서 이런 '나'가 '나들'이 되는 과정, 그리고 젊은 세대인 김이영이라는 학생을 통해서 보여주고 있다. 진아는 뒷세대인 김이영을 통해 '나들'인 '다른 사람'이 될 수 있다. 그때서야 이제 과거의 인물이었던 유리가 현재로 나올 수 있게 된다.

 

이 다음부터는 우리들의 몫이다. 소설이 제기하는 문제는 바로 여기다. 소설은 사회의 문제를 제기한다. 그렇다면 이 소설이 제기하는 문제는 무엇인가? 이 소설에서 '다른 사람'의 의미는 무엇인가? 왜 가해자는 당당하게 피해자에게 '너 피해의식 있어.'라고 말하면서 자신이 어떤 잘못을 했는지도 깨닫지 못한단 말인가.

 

소설을 읽어보자. 서술자인 진아의 처지에서 읽어도 좋지만, 거꾸로 '다른 사람'이라고 할 수 있는 김동희의 처지에서 읽어보아도 좋다. 왜 그가 자신을 제대로 보지 못하는지, 그가 지니고 있는 것이 무엇인지... 긍정적인 면이 류현규라면 그 반대 얼굴이 바로 김동희라고 할 수 있으니...

 

하여 우리는 또다른 김동희가 되지 않도록 해야 한다.

 

소설은 중반을 지나면서 추리소설의 면모를 띠기도 한다. 문체의 박진감과 사건 전개의 속도, 그리고 누가 누구를 괴롭혔을까 하는 추측으로 결말이 어떻게 날 것인지 궁금하게 한다. 그렇게 끝을 향해 소설은 빠른 속도로 우리를 이끈다. 끝에 도달했을 때 여기가 끝이 아니라 시작임을, 유리의 보고서 제목이 '다른 사람'인 것을 보고 알게 된다.

 

소설에서 남자가 한 말을 진아가 돌려주는 장면이 있다. 끝부분에서 진아는 이렇게 말한다.

 

"이게 끝이라고 생각하지 마." (23쪽- 이진섭의 말)

"이걸로 끝이라고 생각하지 마." (329쪽-진아의 말)

 

도돌이표인가? 아니다. 이는 앞의 말을 이겨낸 '나'의 말이다. 나를 짓누르고 있던 '다른 사람'의 그늘을 벗어난 '나'의 말. 그러니 이제 소설은 끝났지만, 우리의 여행은 계속된다.

 

[소설의 이론]에서 루카치가 했다는 말이 생각났다.

 

'길이 시작되자, 여행이 끝났다'

 

그런가? 소설 읽기는 지금까지 우리가 해온 여행이다. 이 소설 읽기 여행은 끝났다. 하지만 소설의 끝은 바로 새로운 길의 시작이다. 이제 그 길은 소설 밖에 있다. 새로운 길로 우리의 새로운 여행이 시작되어야 한다.

 

"이걸로 끝이라고 생각하지 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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